|
귀농이 아닌 귀촌을 한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귀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골로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느리게 생활하겠다고 마음먹고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사정은 다르게 흘러갔다. 집에 딸린 밭이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이것, 저것 많이
심었는데 고추 하나를 제외하곤 그저 집에서 먹는 정도로 수확했을 뿐이다. 처음이라 그런지 시행착오도
많이 했다. 그렇다고 올해는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무계획적이고 또 제대로 알지 못해 시행착오가 이어지고 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수확량이 형편없지만, 농약을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마
농사를 주업으로 삼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위에 논농사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젊은 사람은 구경하기 힘들고 노인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럴 게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과일재배에 온 힘을 쏟고 있고,
연세가 드신 분들은 밭농사를 짓고 있다. 그럼에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밭에서 지낸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서 그분들을 보면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농업이 불과 몇 십년 전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다르다는 말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농업이 자급자족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바뀌면서, 농사법, 인간관계, 자연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지혜마저 바뀌고 단절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농업이 돈벌이 수단이 되면서
타산업과 경쟁을 하다 보니 어쩔 수없이 계절과 무관하게 1년 365일
쉼없이 돌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귀농하여 2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는 저자가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농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1년 열두달에 걸쳐 이루어졌던 농사와 생활이야기,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옛날 농사법에 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이고, 새롭게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어쩌면 그것들은 지금 더 필요한
것이 아닌지 반문하고 있다. 사람과 땅, 작물 모두를 돌보는
전통 농사살림을 저자는 겨울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가을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마늘이나 보리 등 가을
파종까지 끝나면 지붕을 이기위한 이엉 엮기를 시작했다. 초가집의 지붕수명은 딱 1년으로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레이트 지붕의 등장은 한 순간에 농촌생활 전체를 바꿔 놓았다고 한다. 볏짚 길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져
통일 벼와 같은 개량 벼가 등장했고, 껍질 벗긴 삼나무 대가 필요 없어져 동네마다 있던 삼밭이 사라졌다. 또한 초겨울에는 겨울철 난방을 위해 방에 있는 모든 문에 새로운 문종이를 바르고 문틈에는 문풍지를 끼워 넣었다. 겨울 밤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소리가 달랐던 문풍지 우는 소리는 지금은 거의 들을 수가 없는 소리가 되었다. 굴뚝을 뚫고 구들장을 청소하고 겨우내 땔 나무를 하는 것도 겨울을 맞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연탄에 이어 기름보일러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물론 초가집이 더 좋고, 나무를 때서 보온을 하는 것이 더 좋다는 뜻이 아니다. 아쉬운 것은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지붕을 잇고, 보온준비를 하는 것들이 결코 혼자 혹은 가족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데 있다. 품앗이가 사라진 마을에서 이웃들도 읍내 계모임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사이의 관계가 멀어진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고추를 시작으로
작물들을 심었다. 예전에는 작물의 씨앗을 직접 관리하고 직파했지만 지금은 육묘장에서 모종을 사다 심는다. 그러다 보니 토양과 맞지않아 병충해에 약하다. 때에 맞춰 살충제와
같은 농약살포가 필요하게 된 이유이다. 또한 예전에는 가장 어려운 것이 논농사였지만 요즘에는 가장 쉬운
것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화학약품과 농기계가 다 해주기 때문이다. 제초제를 뿌리는 것과 직접 논매기를 하는 것은 노동력과 비용의 차이를 떠나 문화와 삶에서 오는 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옛 농서를 보면 잡초방제법은 나오지만 해충방제법은 없다고 한다. 이것은 예전에는 해충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놔두고 흙을 잘 돌보면 병충해는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비료를 주면서 토양의 물리적 성질이 악화되고, 각종
해충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충제는 이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여름철,
논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새참이 나온다. 예전엔 집에서 빚은 막걸리였으나 요즘에는 커피믹스나
박카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음식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각성제이다. 품앗이가 사라진 곳에 나타난 농업노동자의 노동효율을 따진 결과라고 한다. 풀도
매고 수확량을 올리기 위해선 고랑의 흙을 파서 작물의 뿌리위로 북돋아 주는 북주기가 필수였지만, 지금은
검은 비닐로 씌워서 그런 것이 필요 없게 되었다. 농기계의 등장과 함께 농요가 사라졌듯, 우리 선인들의 농촌 생활방식이 농업의 주산단지화에 따라 변해갔다. 정부는
돈벌이 농업을 강조했고, 세계 농식품체제로 빨려 들어가면서 이제는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풍년이 들어도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농산물은 농민들을 신음하게 만들 뿐이다. 거기에
해충피해는 더욱 극심해지고 흙은 죽어가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던 삶이 이제는 각기 신음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 농촌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옛 농촌의 모습과 생활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옛 지혜를 돌아보고
우리가 지닌 자연을 회복하는 노력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농업이
이렇게까지 피폐해진 이유는 우리가 이용하는 자원이 영원하리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태도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제는
사람과 땅, 작물 모두를 건강하게 키웠던 선인들의 농사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귀촌하여 시골에서 살면서 그나마 텃밭이라고 가꾸다 보니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나 역시 모종을 육묘장에서 사다 심고 풀을 방제하기 위하여 비닐을 깔고 있지만, 병충해는 가능하면 그냥 감수하고 있다. 해충이나 익충이라는 구분은 단지 인간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벌레와 그리고 새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제초제나 살충제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사용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올해도 고추농사만 잘 되었다. 작년에 200포기를 심어 50근을 수확했던 아내는 올핸 욕심을 낸다고 300포기를 심었다. 계속 이어지는 비로 동네 고추 밭에 병이 돈다고 한다. 익은 것을 일찍 따는 것으로 방제를 대신하기로 했다. 어제, 오늘 비를 맞으며 빨갛게 익은 고추를 땄다. 농사일에 쉬운 일이 없음을 새삼스레 느낀 날들이다. |
|
《옛 농사 이야기》에서 발췌하고 필사한 내용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2월 말에 고추 농사를 시작했다. 대개 줄뿌림을 했는데 쟁기로 한 줄은 깊게 갈고 그 옆줄은 조금 얕게 갈았다. 깊게 간 곳에 거름을 넣고 고추씨를 뿌린 다음에 흙으로 덮는다. 얕게 간 골은 사람 다니는 통로이자 고추 두둑으로 끌어올릴 흙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고추를 심은 뒤에 서리도 오고 눈도 오는지라 발아율은 형편없었다. 어쩌다 날이 가물기라도 하면 싹이 나지 않고 말라 죽는다. 오롯한 제철 농사다.
옛날에는 씨를 뿌린 자리에서 그대로 키웠다. 농작물은 옮겨 심으면 스트레스에 ㅣ시달린다. 옮겨 심는 과정에서 잔뿌리가 다 떨어져나가기 때문이다. 살포시 비가 오거나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뿌리고 나서 옮겨 심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옮겨 심으면 작물이 더 튼튼해진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치는 않다. '풀 잡기'와 '밭 만들기'에는 옮겨 심기가 좋은 건 사실이나 작물의 건강에는 손상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직파 농사의 최대 장점은 뿌리가 튼튼하여 건강하다는 것이다. 추운 바깥 날씨 속에 씨를 뿌리고, 뿌린 곳에서 싹을 틔우는 고추 농사야말로 직파 농사의 으뜸이다.
응애는 익충일까 해충일까. 응애는 강낭콩잎이나 신선초, 가지 뒷면에 겨우 0.5mm밖에 안 되는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 액즙을 빨아 먹으니 해충이다. 이리응애는 점박이응애를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응애는 익충일까.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하루에 수백 마리씩 먹어 치우는데 무당벌레 한 마리가 사는 동안 진딧물 5천 마리를 잡는다고 한다. 대단한 익충이다. 하지만 가지, 토마토, 고춧잎과 줄기를 갉아 먹기도 한다. 특히 감자잎을 가장 잘 먹어 치운다. 고약한 해충이기도 하다.
가장 훌륭한 방제법은 그냥 놔두는 것이다. 나 하나, 땅 하나, 들짐승 하나 나눠 먹으려고 했지만 씨도 안 남기고 벌레들이 다 먹어 치우는데 그냥 놔두라고? 물론 이미 여러 자연 방제법이 나와 있고 유기농자재도 비싸긴 해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놔두고 흙을 잘 돌보면 병충해는 해결된다. 그게 근원적인 해결법이다. 흙을 돌봐서 살리나다는 것은 흙을 떼알구조 상태롤 돌리라는 것이다.
벼농사의 꽃이라고도 하는 모내기의 역사는 9천 년 벼농사 역사를 보면 아주 짧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10세기 초에 이앙법이 등장했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서야 일반화되었다. 그전에는 다 직파했고 논을 갈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노동력 절감과 다수확, 그리고 농지 이용률을 높이는 측면에서는 이앙법이 앞서지만, 논을 갈지 않는 직파법은 비밀스러운 원리를 품고 있다.
논을 갈지 않으면 토양에 뿌리 구멍 구조가 생겨서 흙이 숙성된다. 1996년 미구구 농무부의 사라 라이트 박사는 '글라말린'이라는 강력한 점착성 당단백질을 발견했다. 식물과 공생하는 뿌리 근처 진균에서 분비되는 글로말린이 식물의 성장과 건강에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고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을 갈면 다 죽어버린다고 한다.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절멸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뿌리균들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산화에틸렌을 분비하여 병균을 막아내어 식물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한다. 논을 갈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들인데,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주목할 만하다. 수천 년 벼농사의 역사는 이런 원리를 품고 있었나 보다.
|
|
책읽기 삶읽기 327 ‘비료·농약·새마을운동’은 독재정권 감시 정책? ― 옛 농사 이야기 전희식 글 들녘 펴냄, 7.28. 12000원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들이 요즘 고향으로 돌아와 보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거나 곱씹고 추억할 만한 풍경이 다 사라지고 없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농사의 목적이 자급자족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바뀐 데 있다. (6쪽) 시골에서 흙살림을 짓는 전희식 님이 마음먹고 《옛 농사 이야기》(들녘, 2017)라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오늘날 거의 모든 시골에서 자취를 감추는 ‘옛 흙살림’을 다루면서, 오늘날 시골은 흙살림 아닌 ‘농업’만 있다고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옛날에는 흙을 살리면서 먹고살았으며, 오늘날은 흙을 죽이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얼거리라고 해요. 요즘 누가 분무기나 드론으로 제초제를 뿌리면서 ‘논매기노래’를 부르겠는가. 논일하면서 부르던 농요는 농기계가 등장하면서 사라져버렸다. (22쪽) 슬레이트 지붕 개량은 볏짚 길이가 짧은 통일벼 등 개량 벼가 등장하던 시기와도 맞물린다. 동네마다 있던 삼밭도 사라졌다. (34쪽) 이때(1974∼1975)부터 화학비료와 농약이 농지를 점령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학계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 농촌의 급격한 변화를 주도한 새마을운동은 미국의 동남아시아 개발 전략과 한반도 안보 전략에 따른 기획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 말 안보 취약지구에 건설된 ‘전략촌’이 그 효시다. 종적인 관의 주도성과 마을 단위의 감시 체제를 강화하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77∼78쪽) 전희식 님이 《옛 농사 이야기》에서 밝히는 이야기를 이제는 함께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사람들이 애틋하거나 그립게 떠올릴 만한 모습이 참말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미꾸라지나 가재를 잡을 만한 흙도랑이 빠르게 사라지지요. 어쩌다 시멘트 아닌 흙으로 도랑이 남았어도 농약 때문에 섣불리 못 들어갑니다. 농약 때문에 논둑이나 밭둑에 섣불리 앉기 어려우며, 맨발로 들을 달리기 어렵지요. 연을 날릴 곳이 없고, 시골길에서도 자동차를 걱정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지만, 요새는 그리 별이 안 쏟아집니다. 옛날에는 여름 밤을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날았으나, 요새는 반딧불이를 볼 만한 시골이 적고, 그나마 숫자도 매우 크게 줄었어요. 더구나 요즈음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트로트나 대중가요는 부르지만, 시골노래가 없어요. 논매기노래뿐 아니라 방아를 찧거나 콩바심을 하며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기계로 심고 기계로 거두니 심거나 거둘 적에 노래를 부를 일조차 없어요. 옛날에는 해충이 없었고 농장에 해로운 균이 번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촌로들이 똑같이 얘기한다. 비료를 주면 토양의 물리적 성질이 급격히 악화된다. 통기성과 배수성, 물리적 구조 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흙이 죽어버린다는 얘긴데,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들이 사라지게 되니 결국엔 특정 개체의 벌레가 농장을 독점하게 된다. (110쪽) 새마을운동은 안보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독재정권이 시골을 감시하는 얼거리였다고 하지요. 이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껴요. 북녘은 북녘대로 주민을 감시하는 얼거리가 있었는데, 남녘은 시골에서는 새마을운동으로, 도시에서는 반상회로 주민이 서로 감시하도록 했습니다. “살기 좋은 새마을”이 아닌 “독재하기 좋은 새마을”이었다고 할까요. 이러다 보니 서로 돕는 두레나 품앗이가 줄어들밖에 없어요. 게다가 기계로 심고 거둘 적에는 두레나 품앗이가 부질없어요. 기계가 널리 번지면서 농약하고 비닐도 널리 번졌고, 이러는 동안 시골에서는 장구를 치거나 꽹과리를 울리는 일이 사라지고 노래가 함께 사라졌어요.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노는 마을이 아닌,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들여놓고서 ‘위(서울)에서 내려보내는 방송에 목을 매는’ 얼거리가 됩니다. 시골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는 만큼도 안 나오는 방송을 시골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도시로 떠나기’를 꿈꾸고, 시골을 떠난 젊은 일꾼은 도시에서 값싼 공장노동자가 되었어요. 이는 1970∼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우리 시골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배추 뿌리를 얻어먹기 위해 김장하는 어머니 곁을 얼쩡댔다. 오래전 기억으로나마 남아 있는 추억이다. (161쪽) 고구마잎은 나물도 해 먹지만 소여물로도 최고였다. 볏짚만 끓여 주다가 말린 고구마 넝쿨을 작두로 썰어 한 줌 넣어 주면 누워 자던 소가 벌떡 일어나 여물통으로 달려오곤 했다. (221쪽) 요즈음 시골은 도시로 떠날 젊은 일꾼이 없습니다. 시골에까지 이주노동자가 들어와서 밭일을 하거나 김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아직 어린이가 있어요. 시골 어린이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얼른 도시로 떠날 생각을 합니다. 이 흐름이 꺾이지 않는다면 참말로 시골은 한국에서 모조리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옛 흙살림 이야기만 사라지는 시골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이 사라질 수 있어요. 더욱이 사람이 크게 준 오늘날 시골에서 이 숫자마저 더 줄어들면 기계하고 농약하고 비료를 더 많이 쓰는 기업농만 불거지겠지요. 옛날에는 벼농사를 전년도 10월에 시작했다. 타작할 때를 1주쯤 앞두고 완숙 단계에 들어가는 벼를 베어내서 씬나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직 몇몇 겉잎사귀가 푸릇한 청장년쯤 되는 벼를 조심스레 베어서 천천히 말렸다. 그리고는 일일이 홀태를 이용해서 손으로 낟알을 훑어냈다. 탈곡기에 넣으면 요즘말로 스트레스 받을까 봐서다. (93쪽) 씨로 삼는 나락 한 톨(씨나락)이 기계(탈곡기)를 거칠 적에 힘들까 봐 걱정했다는 지난날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대목을 걱정하는 눈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운기가 지나갈 적에 소리가 대단히 크고,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고 나면 마을 어디에서도 새나 풀벌레나 개구리가 노래하지 않아요. 모두 죽기 때문이지요. 올봄에 저희 보금자리에 깃들던 제비는 유월 끝자락까지 튼튼히 잘 살았으나, 바로 이 유월 끝자락에 마을 곳곳에서 드론으로 농약을 뿌려대니 얼마 안 가서 모두 죽어서 사라졌습니다. 제비 같은 작은 새 한 마리는 이 땅에서 한살이를 거치는 동안 한 마리마다 날벌레나 풀벌레를 1만 마리쯤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참새도 가을에 낟알을 얻어먹으려고 하기 앞서까지 한 해 동안 1만 마리가 훌쩍 넘는 날벌레하고 풀벌레를 먹고요. 우리는 흙살림을 잊거나 잃으면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흙을 살리지 않는 농업이 춤추는 오늘날 우리한테 돈이나 기계나 비닐이나 농약이나 드론은 남는다지만, 돈·기계·비닐·농약·드론만 남은 시골에서 어느 어린이가 어떤 애틋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것만 남는 시골에 나이든 분들이 시골을 떠올리거나 그리워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흙이 살고 숲이 살며 마을이 살아나는 자리에서는,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싶습니다. 흙이 죽고 숲이 죽으며 마을이 스러지는 자리에서는, 기계와 농약을 뺀, 그리고 이 기계와 농약을 시골에 끌어들인 새마을운동 깃발을 빼고는 남아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가을이 저물려고 합니다. 2017.11.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
|
이 책의 저자는 귀농을 하여 2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는 분이라고 한다. 저자는 책 제목 그대로 우리 조상들의 농사이야기를 일년 농사를 준비하는 겨울부터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사계절 이야기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들려준다. 그리고 농사 과정의 기계화 현대화 그리고 농작물이 세계시장으로 편입된 오늘 날 농촌의 현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된 지금 농사가 산업이 되어 더 많은 생산물을 내 놓기 위해 종자 개량을 하고, 해충방지를 위해 더 나은 농약을 뿌리고, 기계화를 하며 현대적 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결과 소비자들에게 제철에 관계 없이 언제나 필요로 하는 작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의 모습 역시 현대식으로 지붕은 개량되었고, 구불구불하던 비효율적인 경작지는 기계가 들어갈 수 있도록 정리 되었으며, 현대식 농법의 보급과 보다 많은 소득을 위해 특화된 작물, 사시사철 수확을 위해 하우스는 설치되어 대량생산의 채비를 갖추느라 마을의 모습은 예전이랑은 달라졌다. 과거 농촌이면 떠오르는 공동체문화 역시 농촌의 변화와 함께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모든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고 한 마디로 농촌의 발달과정이라고 정리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여기까지는 농촌의 외형적 변화이다. 저자는 이같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오히려 갈수록 농촌이 살기 어려워지는 현실을 짚는다. 농업이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이 이루어진 1994년 우루과이 협상이후 쌀값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던 21만원은 고사하고 15만원 선도 무너졌으며 생산성 중심으로 녹색혁명이라 불리며 이루어진 그간의 변화는 미국식 농업의 이식이었고, 그 결과 생산원가도 지키지 못하는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다. 어찌된 일인지 기계화되고 현대화 되었지만 농촌은 옛날보다 오히려 바쁘게 일을 해야 한다. 또 농산물 증대를 위해 뿌려지는 화학비료는 병충해를 불러오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농약을 뿌려야 한다. 그리고 상품성을 갖추기 위해 보기 좋은 농산물은 필수가 되었다. 저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주는 동안 저자와 함께 농촌의 현실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나를 발견한다. 4차산업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우리 앞의 삶의 모습은 급변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즈음 함께 변화할 농촌은 과연
어떻게 가야할까? 저자가 과거 우리 선조들의 농사를 하나하나 짚어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기계화는 어느정도 되어야 적당한가? 환경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과거에서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나는 사실 태어난 곳은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돌이 채 되기도 전에 서울로 올라와서 지금까지 도시 그것도 아파트에서 줄곧 살아왔기 때문에
저자가 이야기하는 일년의 농사과정을 직접 접하거나 겪어본 일은 없다.
대신 내가
태어났던 마을엔 큰아버지댁이 있었고 나와 동생들을 반갑게 맞아 주시는 큰어머니 덕분에 방학만 되면 그 곳에서 또래 사촌들과 시간을 보냈던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 흐르는 개울, 그 개울에서 여럿이 빨래를 하던 풍경, 마을 우물, 마을에 이르는 길가에 하늘하늘 피어있던 코스모스, 새참을 나르시는 큰어머니 뒤를 따라 걷던 논둑길, 밤에 술래잡기를 한다고 나와서 놀 때 보았던 작은 반딧불이, 화롯불, 새벽에 쇠죽 끓이는 냄새, 무서웠던 화장실, 여름 저녁이면 피워주셨던 모깃불, 마당에 펼쳐 논 멍석에 누워 바라본 뭐라 표현 할 길이 없이 아름다웠던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 무리, 그 곳에서 웃고 떠들던 기억… 이제는 동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내가 가지고 있는 농촌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초. 중. 고. 대학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갈 때마다 달라지는 마을의
모습을보며 세월의 변화에 따라 당연한 변화로 받아들이기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책의 저자가 옛농사이야기 속에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곁에서 바라본 농촌의 바로 그 모습이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소 대신 경운기가 일을 하고, 지붕은 색색으로 변했으며,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마을이 전기가 들어오고, 마을로 들어가는 커다란 길이 새로 생겼으며, 집에서 소를 키우는 집이 없어지는 대신 마을엔 축사가 생겼으며 개울은 더 이상 맑은 물은 흐르지 않으며 넓게 펼쳐졌던 논 밭 대신 곳곳에는 비닐하우스가 생겨 갖가지 농작물을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마을 여러집이 그런 것처럼 우리 큰아버지댁도 살고 계시던 집 대신 마을 어귀에 새로 양옥을 지으셔서 이사를 하셨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다. 사촌들도 모두 그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중년이 되어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우리뿐 아니라 그 마을에 살고 있던 친구들도 모두 떠나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이제 그 마을의 대부분은 자식들을 도시로 떠나 보내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변하는 건 당연하지만 왠지 황량한 기분마저 들게하여 갈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안타깝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뉴스에서 접하곤 하는 농촌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문제는 방향이다. 현대 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그리고 어느 때 보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공동체 보다는 개인이 강조되는 시대, 그래서 앞으로 농촌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하는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농촌과 관계된 개인들의 선택의 결과일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