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7%
  • 리뷰 총점8 2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10.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집착의 광기에 몰락해 가는 한 남자의 초상
"집착의 광기에 몰락해 가는 한 남자의 초상" 내용보기
남자들 중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첫사랑의 성을 쌓고 있는 경우가 있다. 처음 사랑의 감정에 눈을 떴던 그 시간들과 그때의 순수함과 황홀한 감정에 휩쌓여서, 상대가 떠났어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그녀와 행복하게 사는 성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런 감정은 어느 정도 삶의 순수성과 낭만을 유지시켜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너무 과도할 경우 현실과의 괴
"집착의 광기에 몰락해 가는 한 남자의 초상" 내용보기

 

남자들 중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첫사랑의 성을 쌓고 있는 경우가 있다. 처음 사랑의 감정에 눈을 떴던 그 시간들과 그때의 순수함과 황홀한 감정에 휩쌓여서, 상대가 떠났어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그녀와 행복하게 사는 성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런 감정은 어느 정도 삶의 순수성과 낭만을 유지시켜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너무 과도할 경우 현실과의 괴리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해 버린다.

여기에 자신의 첫사랑 애나벨과 행복한 성을 쌓고 사는 한 남자가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창조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의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이다. 그는 마음 속에 성을 쌓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상상 속의 애나벨과 행복하게 사는 집을 구입하고, 꾸미고 있다. 스스로의 이름을 월리엄 뉴마이스터라고 부르면서...

페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인간의 내면의 어둡고 침울한 심리를 극도로 사실감 있게 묘사하는 작가이다. 우리에게는 [캐롤]이라는 작품이나 [리플리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이라는 책을 가장 좋아한다.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 남성에게 아내를 살해하도록 반승락?한 남성의 이중적이고도 어두운 내면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에서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성을 사랑을 넘어 집착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질투로 잠을 못 이루다 컴컴하고 적막한 하숙집의 헝클어진 침대에서 빠져나와 거리로 나섰다. 오랫동안 질투를 품고 살아서 그런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웬만한 상상이나 얘기로는 마음의 외피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상황이 그랬다. 상황은 변하지 않고 2년 가까이 지속됐다. 일일이 신경 써봐야 소용없었다. 가슴에 2킬로그램짜리 돌덩이를 올려놓고 밤낮으로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했다. 일이 없는 저녁이나 밤이면 낮보다 더 좀 더 심해질 뿐이었다. (P 7)

데이비드는 유능한 화학자로서 좋은 직장에서 많은 돈을 받으며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주중에는 매카트니 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주말에는 요양원에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하숙생활을 하면서 여성을 집에 들이거나 하지도 않고, 깔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매일 아내의 바가지에 시달리는 웰스라는 친구와 같은 하숙집에서 생활하며 그를 짝사랑하는 에피라는 여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반듯한 삶 이면에는 이미 제럴드라는 남성과 결혼한 애나벨이라는 여성에 대한 어두운 사랑에 지배 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외곽에 뉴마이스터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단독주택을 구입하고, 그 곳에 애나벨을 위한 모든 것을 가추어 놓고 있다. 그리고 주말이면 그곳에서 애나벨과 산다고 생각하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데이비드의 통제 안에 있었다. 애나벨과의 상상의 결혼생활과 데이비드 안에 있는 뉴마이스터도 모두 데이비드가 불러 낼 때만 존재하였다. 그러나 데이비드에 집착에 흥분하여 데이비드의 은밀한 공간까지 찾아 온 제럴드와 자신을 사랑한다며 자신의 은밀한 모든 것을 알아버린 에피를 죽이게 되면서 점점 그에 안에 있는 광기가 그를 지배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데이비드인지, 뉴마이스터인지 헛갈리게 된다. 후반부에 자신이 뉴마이스터가 되어 상상의 애나벨과 도피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망가졌다' 그 말이 달콤한 희망을 주었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망가졌다'는 건 죽은 것도, 끝난 것도 아니다. 망가지면 고치면 된다. 이제 초상화와 벡스브룩 경찰이 떠올랐다. 그는 몸을 돌려 누운 애나벨을 품에 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 단 몇 조만에 눈물을 뚝 그치고 벌떡 이러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었다. "윌리엄 뉴마이스터" 그는 거울을 보며 경쾌하게 말했다. "기운 차려. 넌 영특한 과학자는 아니지만 애나벨이 네가 좋다잖아. 애나벨은 데이비드 켈시보다 널 훨씬 좋아해. 그러니까 같이 호텔 방에 있짢아. 아직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침실에 있는 애나벨에게 들릴까 봐 목소리를 낮추었다. (P 334)

사람은 대부분 여러 가지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마음에 드는 새로운 존재의 가면을 만들고, 그 가면을 연기한다. 직장에서는 멋진 상사로, 가정에서는 자상한 부모로, 사회에서는 친절한 시민으로... 그러나 점점 그 가면이 자신을 잠식해 버릴 때가 있다. 실제의 나를 잠식해 들어가는 것이다. 어느 것이 실제의 나이고, 어느 것이 내가 만든 나일까... 그러는 사이 자아가 망가져간다. 데이비드 켈시처럼...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진솔한 사람이 가장 건강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i*******3 2017.08.18. 신고 공감 4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우려의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다...
"'우려의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다..." 내용보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읽을 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그녀가 코뮤니스트에다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 그가 '열차 안의 낯선 자들'로 데뷔했을 때가 1950년이었다. 아시다시피 그 때는 그녀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기둥을 남들에게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시기였다. 드러내면 대놓고 배척을 당했다. 그런 편협과 억압의 시기를 그녀는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것
"'우려의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다..." 내용보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읽을 때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그녀가 코뮤니스트에다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 그가 '열차 안의 낯선 자들'로 데뷔했을 때가 1950년이었다. 아시다시피 그 때는 그녀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기둥을 남들에게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시기였다. 드러내면 대놓고 배척을 당했다. 그런 편협과 억압의 시기를 그녀는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회 스스로 정상이라고 말하는 시대의 공기가 실은 얼마나 무지와 적의로 오염되어 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늘 사회 속에서 함께 섞일 수 없는 '타자'로 존재해야 했던 그녀는 그런 오염이 점점 보편이 되고 냉전 시대를 빌어 진리가 되려는 것을 보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작품으로 옮겼다. 언젠가 거대한 파국을 가져올 지도 모를 불길한 시대의 대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려 한 것이다. 언젠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의 개인적인 질병과 불안은 내 세대의 그것이 좀 더 고조된 것일 뿐.'


 그러므로 영국의 유명한 스릴러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두고 '우려의 시인'이라 부른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앞서 인용한 작가 내면의 고백이 온전히 그리고 생생하게 드러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나 하고 몇 개를 읽었는데, 주인공 범죄에 대해 경찰이 대응하는 게 좀 미숙하고 허술하다는 평가가 보였다. 나 역시 그것이 이 소설의 주된 단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스릴러 장르가 가지는 공식에 한정시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릴러라기 보다 시대의 주류적 경향과 전혀 다른 신념을 가진 이가 그 신념을 단념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일어나는 갈등이 전면화 된, 한 마디로 생생한 심리 드라마적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온 것은 60년이다. 냉전 시대가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었고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 소련은 전무후무한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가리지 않고 색출하는 '메카시즘'이 있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은 코뮤니스트에다 레즈비언이라면 여기저기서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시험 받는 시기였다. 어디서나 그녀를 범죄자에다 괴물로 규정하는 주장과 구호들을 만나야 했다. 단죄의 손가락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본성과 신념을 더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실제로 그녀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성애자인 척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대표작 '리플리'가 위장하는 자의 심리를 그토록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실제 경험이 눅진하게 녹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엔 늘 '리플리' 처럼 다른 사람과 입장을 바꿔보는 게 나타난다. 데뷔작,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부터가 그러하다. 어쩌면 그만큼 내면의 고통이 컸다는 방증이고 아니면 절대로 사회가 자신의 진실된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의 표현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그런 시간을 거쳐왔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 나오기까지 10년이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그 10년 간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었던 고민이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로 재현되었다.

 자신의 진실된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가진 신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한 편에 있다면 다른 한 편엔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세상이 요구하는 '정상성'이라는 것에 맞춰 살고 싶다는 타협이 있다.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가 오매불망 사랑하는 애너벨이 바로 전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구애하는 에피 브래넌이 후자다. 애너벨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 혹은 관철해야 하는 신념의 상징이고, 에피는 포기를 통해 얻어지는 현실의 안정과 달콤함의 상징이다. 당연히 데이비드 켈시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분신이다. 그의 고민은 곧 작가 자신의 고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의 집념과 마지막 선택은 작가 자신의 의지 관철이요 선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주인공 내면의 심리가 세밀하고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는데, 분명 작가의 내면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내면을 알고 싶습니까? 그러면 좌고우면 하지 말고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읽으세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심리 묘사 상세하고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생각해 보면 심리 묘사 자체가 그런 평가를 낳지 않는다. 아무리 상세하고 생생하게 심리를 묘사해도 그 묘사가 독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쓸데없이 장황하고 뭘 보여주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반응만 낳을 뿐일 테니까 말이다. 심리 묘사를 읽을 때, '와, 어떻게 이렇게 묘사하지? 굉장한 걸!' 하고 느낄 때는 언제나 나도 언젠가 가졌던 마음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거나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이런 마음도 가능하겠다 생각될 정도로 재현하고 있을 때다. 즉 묘사가 보편적 공감을 얻고 개인적 체험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묘사의 수준이 세밀한 것을 넘어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었던 것까지 선명하게 표현할 때 그러하다. 이 소설의 심리 묘사는 정확히 바로 이런 차원을 담고 있다.


 어쩌면 이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애너벨을 향한 주인공의 집착은 광기에 가까워서 '거기서 어떻게 보편적 공감을 가진다는 말인가?' 하는 반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주인공의 심리를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고수하려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맞춰 본다면,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들도 늘 하기 마련인 이상과 현실 사이의 번민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상과 신념 그리고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모습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은 늘 우리도 바라는 게 아니었던가? 그런 면에서 주인공과 우리는 그리 다르지 않다. 보편적 공감은 바로 거기서 우러난다. 우리도 한 때는, 아니 어쩌면 지금도 나만의 모습과 이상 그리고 신념을 쫓았거나 그러고 있으니까.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범죄 소설의 외형을 취하고 있으나 실은 그런 자들을 위한 응원이다. 가고자 하는 길을 내처 걸어가라는 등의 토닥임이다. 그랬기에 제목 역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인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길로 걸어가면서 당하는 고통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이토록 달콤한 고통'일 테니까.





l****1 2017.08.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토록 달콤한 고통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김미정 옮김, 오픈하우스)
"이토록 달콤한 고통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김미정 옮김, 오픈하우스)" 내용보기
하숙집 사람들이 ‘성인(聖人)’이라 부를 만큼 예의 바르고 조용하며 회사에서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는 젊은 과학자 데이비드 켈시.그는 2년 전 고향에서 애나벨을 보고 첫눈에 반한 뒤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지만,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큰 충격에 빠진다.애나벨이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거라 확신하는 데이비드는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가명으로 둘만
"이토록 달콤한 고통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김미정 옮김, 오픈하우스)" 내용보기

하숙집 사람들이 성인(聖人)’이라 부를 만큼 예의 바르고 조용하며

회사에서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는 젊은 과학자 데이비드 켈시.

그는 2년 전 고향에서 애나벨을 보고 첫눈에 반한 뒤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지만,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큰 충격에 빠진다.

애나벨이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거라 확신하는 데이비드는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가명으로 둘만을 위한 집을 마련하곤,

주말마다 그곳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달콤한 나날을 상상하며 보낸다.

하지만 그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애나벨에게서는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는다.

그런 어느 날, 애나벨과 결혼한 사내가 찾아오면서 데이비드의 비극은 시작된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름과 그녀의 대표작인 리플리 시리즈는 여러 번 들어 익숙했지만,

작품으로 만나는 건 국내 초역 출간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 처음입니다.

1960년에 출간된 심리서스펜스라는 것 외엔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일찌감치 밝혀지는 주인공 데이비드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법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작품의 제목에 담긴 반어법의 의미가 뚜렷이 각인됐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것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그녀와의 미래를 위해 가명으로 집을 사고

주말이면 그곳에서 그녀와 클래식과 와인을 즐기는 상상을 하며 절정감을 느끼는 데이비드는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지독하게 일그러진 스토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이라는 아날로그적인 배경은 어딘가 그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 합니다.

불편한 전화통화, 편지로 오가는 고백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 등

스마트폰과 각종 디지털 문명이 삭제해버린 관계와 소통의 문제덕분에

데이비드의 사랑은 일견 섬뜩하면서도 애틋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듭니다.

더구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훌륭한 인격체로, , 능력 있는 과학자로 인정받는 그가

한편으론 두 개의 집과 두 개의 인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현대의 그 어떤 편집증적이거나 집착적인 사랑에 빠진 캐릭터도

이토록 매력적(?)이진 않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작가는 이런 데이비드의 심리를 때론 돌직구처럼 과격하고 거칠게,

때론 시적인 섬세함과 (그의 직업대로) 과학적인 정교함으로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그 덕분에 3인칭 시점의 서술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데이비드에게 꽤나 깊이 이입하게 됩니다.

그의 일그러진 사랑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게 될 때도 있고,

동시에 그가 얼른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몸과 마음에서 무한 증식하는 그의 집착이

어떤 식으로 그를 내부에서부터 갉아먹으며 붕괴시키는지 잔인할 정도로 천천히 묘사합니다.

 

애나벨을 향한 그의 사랑은 끝내 살인이라는 참극을 불러오고,

그때부터 데이비드와 뉴마이스터라는 두 개의 인격이 각각의 역할놀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놀이의 실체를 궁금히 여기는 주변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의 서사까지 함께 전개시킵니다.

 

사실 이 미스터리 서사가 현대 독자의 눈에는 가장 거슬리는 대목인데,

번역하신 김미정 님도 후기에서 지적했듯

느슨하게 수사한 후 대충 넘어가는경찰 때문에 몰입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학수사나 네트워크로 공유된 범죄자정보 같은 게 요원했던 1950년대 후반이긴 하지만

눈앞의 진실을 일부러 외면하는 듯한 경찰의 태도가 내내 목에 가시처럼 느껴진 건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아무래도 심리 서스펜스라는 장르의 특성 상

빠른 전개나 사건 위주의 서사가 아니라 느리고 집요한 심리 묘사가 지배적인 작품이다 보니

때론 장황함이나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점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게 그녀만의 개성을 부여한 매력 포인트겠지만,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게 만드는 지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워낙 센 캐릭터들과 독한 이야기들 덕분에 생긴 내성 때문일 수도 있고,

데이비드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가치관 또는 도덕관의 결과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동안 먹먹한 감정에 휩싸였다는 번역가 김미정 님과는 달리

아무래도 그의 달콤한 고통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데이비드를 미화하거나 구원하거나 징벌할 생각 없이

독자에게 생각을 위한 먹잇감으로 툭 던져놓은 듯한 작가의 스탠스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독자들의 평가와 호불호가 무척 궁금해지는 작품입니다.

h****s 2017.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이토록 달콤한 고통 (2017년 초판)저자 - 퍼트리샤 하이 스미스역자 - 김미정출판사 - 오픈하우스정가 - 14000원페이지 - 367p 이토록 치명적이고 극단적인 사랑 감성적인 독특한 제목에 끌려 읽게된 작품이다. 어떤 고통이기에 이토록 달콤한건가?...그렇다....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안겨준 정체는 바로 짝사랑....미치도록 사랑하고 모든것을 바쳐 구애를 펼쳐도 꼼짝 않는 상대는 망부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이토록 달콤한 고통 (2017년 초판)
저자 - 퍼트리샤 하이 스미스
역자 - 김미정
출판사 - 오픈하우스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67p

 

이토록 치명적이고 극단적인 사랑

 

감성적인 독특한 제목에 끌려 읽게된 작품이다. 어떤 고통이기에 이토록 달콤한건가?...그렇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안겨준 정체는 바로 짝사랑....미치도록 사랑하고 모든것을 바쳐 구애를
펼쳐도 꼼짝 않는 상대는 망부석 그 자체...열번찍어 안넘어 가는 나무 없다지만 어찌하여 찍으면
찍을수록 날카로운 도끼 자욱만 더해 가는구나. 냉정한 사람...나에게도 기회를 주시오...ㅠ_ㅠ
독특한 설정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심리용어까지 만들어낸 [리플리]시리즈를
써낸 '퍼트리샤 하이 스미스'의 [리플리]시리즈의 등장을 예고한 작품이다. [리플리]는 작품으로
는 읽지 못했고, '멧 데이면'이 출연했던 리메이크된 영화로 봤었는데 절박하고 희망없는 현실상황
에서 완벽해 보이는 가공의 인물을 창조하여 그 인물로 분하여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이는 안드로메다
행 정신세계를 보며 참 독특하다 생각했었는데, 이번 작품 [이토록 달콤한 고통]에서도 짝사랑에 지치
고 지친 주인공 데이비드가 가망없는 현실을 인정 못하고 뉴마이스터라는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거짓
과 환상의 뇌내망상 속으로 도주해 버린다. 사실상 [리플리]시리즈 이전에도 이런 인격 분리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심리 서스펜스 장르를 써오신듯 하다는....

 


화학박사로 기업의 자문위원을 맡으며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데이비드는 남들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다. 바로 오래전부터 짝사랑 해오던 에나벨을 잊지 못하는것...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로 아들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데이브는 오로지 가난한 친정의 성화로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에나벨을 향해 끊임없이 구애의 편지를 보내고 시든때도 없이 가정
집으로 전화를 걸어 데이트 약속을 잡으려 한다. 에나벨이 결혼 후 2년째 집착에 가까운 이런저런 결혼
깨기 시도를 하면서 에나벨의 집 근처에 버젓이 새집을 구입하고 주말엔 데이브의 지인들에겐 이미
돌아가신 어머님의 병간호를 한다며 집을 나서 아무도 모르는 새집으로가 데이브의 뇌내망상의 산물
뉴마이스터로 변신해 상상속 에나벨과 함께 주말을 보내고 돌아오는 이중 생활을 지속한다. 위태로운
날들속 데이브를 짝사랑하는 에피의 등장으로 데이브의 생활에 파문이 일기 시작하는데.....

 


멀쩡한 남의 집에 큰 분란을 일으키며 난입하려는 집착의 끝판왕 데이브의 뻔뻔한 행동은 가정파탄
범으로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지만 그렇게 극단적 집착과 절실함을 드러낼 정도로 에나벨을 열열히
사랑하는 지고 지순의 불페너로도 비쳐져 눈물이 앞을 가리게 만든다...ㅠ_ㅠ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면서도 첫사랑을 못잊고 자신의 인생을 망쳐가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이토록 치명적
이고 극단적인 사랑이라는 고통을 몸소 체감할 수 있는것 같았다. 물론 버젓이 살인을 저지르고 무덤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정신 못차리고 여전히 에나벨에게 쪼르르 달려가 구애를 하는 데이브의 모습은
이미 정상이 아닌 정신병 환자라고 보기에 충분하지만..머...주변에도 종종 있지 않은가...자신이 한번
맘먹은 것은 무슨일을 벌여서라도 갖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말이다. 물건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틀어쥐겠지만 그 상대가 인간이라면...그것도 여성이라면....그것도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유부녀라면
결과는 달라진다는걸...-_- 완벽에 가까운 성격과 집착에 가까운 소유욕,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유체이탈 하는 데이브의 모습은 충분히 공감되는 모습이었기에 욕하면서도 동정이 가더라...

 

사실 이렇다 할 만한 사건은 거의 없다. 마냥 데이브의 시선을 따라 그의 일상적 행동들과 패악질을
보다 보면 이야기는 끝나는데, 지루 할수도 있는 백페이지 이후 본격적인 첫 살인이 발생 되면서
부터는 막장 아침드라마를 팝콘과 곁들여 보듯 이웃을 향한 에나벨, 에나벨을 향한 데이비드, 데이비드를
향한 에피의 얽히고 설킨 일방통행 4각 관계를 시청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탄식도
하면서 즐기며 볼 수 있게 된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작품이 쓰여진 시점이 1960년대 이다 보니 고구마
삼킨 듯한 아날로그 시대의 답답함을 감수 해야 한다는 것이다..-_-;;; 전화를 걸기위해 교환원을 통해
야 하는 시대의 이야기라니...허허...그런 시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인물의 심리 묘사는
상당히 인상적이라 단점을 감수하고 보기에 충분한 매력적인 작품이라 여겨진다.

e****o 2017.08.1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그녀의 소설은 '지독하다'는 평이 있다.  그 평에 동감을 표한다. 그녀의 소설은 정말로 지독하다.그녀의 대표작 리플리(5부작)를 조금씩 사모으고 있는데 읽고 나서 어떤 파장이 생길지 기대되기도 하고 한동안 리플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 여튼 아직 두권밖에 못샀다. ㅜㅜ열차안의 낯선 승객과 올빼미의 울음 이 두권의 책을 읽었는데 사실 열차안의 낯선 승객은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그녀의 소설은 '지독하다'는 평이 있다.  

그 평에 동감을 표한다.

그녀의 소설은 정말로 지독하다.


그녀의 대표작 리플리(5부작)를 조금씩 사모으고 있는데 읽고 나서 어떤 파장이 생길지 기대되기도 하고 한동안 리플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 여튼 아직 두권밖에 못샀다. ㅜㅜ


열차안의 낯선 승객과 올빼미의 울음 이 두권의 책을 읽었는데 사실 열차안의 낯선 승객은 아직까지도 많은 추리스릴러계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독특한 설정과 함께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올빼미의 울음은 전혀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울하고 끈적거리며 진흙탕에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작품 자체는 읽히기도 잘 읽혔다.

희한하게도 이번 작품도 가독성이 좋았는데 생각해보면 시대배경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1950-6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혔다. 결국 배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책은 '감정'이 중요한 것이었다. 사랑이든 집착이든 질투든 그 모든 것은 인간의 '감정'이니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이리라. '인간'이니까.

올빼미의 울음도 이 책과 비슷하게 '사랑' '집착' '질투' 등의 감정을 다루었다. 거기에다가 '죽음'을 첨부해서 전체적으로 우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세번째로 읽게 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요즘에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데이트폭력'(사실 데이트라는 단어를 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헤어진 사이인데다가 사귀지도 않은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토커이기도 하다. 그걸 어떻게 하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언어란 보이지 않는 올가미와도 같아서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에는 마치 두 사람이 연인인데 어쩌다가 싸우게 되어서 과도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실제로 큰 범죄를 작은 범죄로 인식하게 된다.)을 떠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는 겉으로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 은둔형 사람이다.

과학자답게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통제함으로써(심지어 마음까지도) 데이비드는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 하지만 그가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 애나벨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의 애나벨에 대한 사랑은 망상과 집착으로 변화했다.

그 과정들을 읽으면서 사실 데이비드 켈시를 동정하기도 했다. (동정의 여지도 있었다. 초기에 애나벨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데이비드를 더욱더 망상 속으로 빠뜨리지 않았나 한다. 물론 애나벨이 착한 사람이어서 데이비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최선의 상처치료 방법은 확실한 선긋기임을 과거나 현재나 정답임을 왜 모르는가.)

데이비드의 심리와 함께 데이비드를 사랑하고 에피(데이비드가 애나벨에게 집착하듯이 에피 또한 데이비드에게 집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내를 지겨워하면서도 이혼하지 않고 다른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웨스, 데이비드를 확실히 끊어내지 못하는 애나벨, 그녀의 남편 등 사실 이 책 속의 사람들 또한 데이비드 못지 않게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아줘 작가 길리언 플린이 하이스미스 소설이 예측을 불허하기에 사랑한다고 했다. 나 또한 동감하는 바이다.

올빼미의 울음도 예측을 벗어났는데 이번 책 또한 예측을 벗어났다.

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라고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는 가지만 데이비드의 삶을 보았을때 지독하지 않았나 싶다. (희한하게도 그를 옹호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동정하는 내가 있다. 아마도 책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실제 상황이라면 아니, 저 미친넘이 있나 하지 않을까.)


예전에 그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짝사랑은 시작할땐 달콤하지만 끝날땐 쓰다고.

쓰고도 지독한 것이 결코 돌아보지 않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를 죽였습니까, 라는 책을 샀는데 시간을 조금 두고 읽어야겠다. 이 책은 또 얼마나 지독할까라며 기대해본다.)

j******r 2017.08.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0170827 _ [이토록 달콤한 고통]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김미정)
"20170827 _ [이토록 달콤한 고통]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김미정)" 내용보기
제일 처음 이 책에 끌린 것은 책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 모순적인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갔고 결국 책을 펴게 되었습니다. 보통 어떤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의 저자나 혹은 관련 작품에 대해 미리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읽어 갔습니다.   다 읽고 나서야 책 표지에 쓰여 있는 글도 보고 책 구석구석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검색
"20170827 _ [이토록 달콤한 고통]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김미정)" 내용보기

 

제일 처음 이 책에 끌린 것은 책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 모순적인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갔고 결국 책을 펴게 되었습니다. 보통 어떤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의 저자나 혹은 관련 작품에 대해 미리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읽어 갔습니다.

 

다 읽고 나서야 책 표지에 쓰여 있는 글도 보고 책 구석구석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검색까지 해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여러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이 예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1960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이더군요. 즉 요즘 나오는 소설에서 2010년 대 중후반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전화를 해도 전화교환국을 거친 후에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 우리가 지금 흔히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알고 있는 증상에 대한 용어가 저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5년 소설인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켈시'는 바로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 증후군의 증상으로 알려진 대로 데이비드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합니다.

 

2007S씨의 예일대 박사학위와 학력을 위조한 사건과 2014SBS'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되어 더욱 화제가 되었던 6년간 48개 유명 대학교에서 신입생 행세를 했던 사람의 이야기, 2015년 미국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여고생의 자신이 스탠포드와 하버드 대학에 동시 합격했고 양 대학을 각각 2년씩 다니고 원하는 학교에서 졸업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그들이 제안했다는 거짓 주장 등 우리나라에서도 리플리 증후군의 사례가 그동안 알려진 것만 해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방금 살펴본 대로 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우리가 흔히 '집착', 혹은 '스토킹'이라고 말하는 행동들과는 조금 다르게 행동합니다. 리플리 증후군이 더욱 무서운 이유는 욕구가 좌절됨으로 불만족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마음속 허구세계를 진실로 믿음으로써 하게 되는 상습적인 거짓말이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계나 상황이 심각해지면 결과적으로 타인에게까지 심각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힐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데이비드도 이처럼 리플리 증후군의 가장 안 좋은 영향을 주변 사람들에게 끼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인생까지 무너지고 마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믿으며 그들의 언행을 받아들이는 데이비드의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많이 무섭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심리스릴러의 거장다운 저자의 뛰어난 표현력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이겠지요. 그녀의 다른 책들도 꼭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f*******h 2017.08.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60년 발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책을 덮자마자 드는 생각은, 세상에 결코 달콤한 고통은 없다는 것.고통은 고통일뿐.만약 고통이 달콤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일지도.고로 인간은 고통이 자신의 한계치를 벗어나면 미친다는 결론.혼자 미치는 상황에서 끝나면 개인의 불행이지만, 미쳐서 타인을 위협한다면 심각한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60년 발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책을 덮자마자 드는 생각은, 세상에 결코 달콤한 고통은 없다는 것.

고통은 고통일뿐.

만약 고통이 달콤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일지도.

고로 인간은 고통이 자신의 한계치를 벗어나면 미친다는 결론.

혼자 미치는 상황에서 끝나면 개인의 불행이지만, 미쳐서 타인을 위협한다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에는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법?

궁금한 건 사람의 심리, 특히 사랑에 대한 기준이랄까?

사랑이란, 과연 어떻게 기준을 정해야 옳을까요. 이제는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사회적 질문이 된 것 같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내용이 종종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호감을 갖고 만나던 사이였다가, 이후에 상대방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분노하다가 폭력까지 휘두르는 상황.

문제는 폭력의 가해자가 사랑이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서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헤어져."

"무슨 말이야?"

"날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여기서 끝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  가만 안두겠어."

이건 순전히 제 상상 속 상황입니다만, 사귀던 두 사람이 이별하는 상황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별 후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매달리다가 스토커, 공갈협박범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별의 고통이 견디기 힘들다고 해도 혼자 견뎌야 할 고통입니다.

만약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방을 계속 괴롭힌다면 .... 끔찍한 비극이 펼쳐집니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데이비드처럼.

그는 과거의 연인 애나벨이 결혼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와의 결혼 생활을 꿈꾸며 새 집을 마련합니다.

평일에는 허름한 하숙집에서 보내다가, 주말이면 아픈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 간다며 거짓말을 하고 새 집에 가는 데이비드.

자신이 사랑하는 애나벨과의 결혼 생활을 상상하며 새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이 그의 즐거움.

물론 애나벨에게는 지속적으로 편지를 통해 구구절절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중입니다.

아무도 데이비드의 이중생활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에피가 나타날 때까지는.

에피는 하숙집에 새로 입주한 이웃 여자인데, 데이비드를 보자마자 호감을 표시하다가 점점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중입니다.

그녀는 데이비드의 직장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 웨스까지 동원해서 친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여기까지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구나, 그러나 이 소설은 막장을 보여줍니다.

큐피트의 화살이 어긋난 건 불행의 씨앗.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버린 이야기.

데이비드를 통해서 비뚤어진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a*****7 2017.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을 읽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을 읽고" 내용보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을 읽고정말이다. 내 자신 책을 많이 대하고 있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물론 어떤 장르 가리지 않고 사랑한다. 그 만큼 책과 함께 있으면 우선 기분이 좋으면서 뭔가 얻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내 자신이 그 만큼 풍성해지면서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즐거우면서도 자신감 있게 살아가도록 힘을 얻고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을 읽고" 내용보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읽고

정말이다.

내 자신 책을 많이 대하고 있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물론 어떤 장르 가리지 않고 사랑한다.

그 만큼 책과 함께 있으면 우선 기분이 좋으면서 뭔가 얻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내 자신이 그 만큼 풍성해지면서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즐거우면서도 자신감 있게 살아가도록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책마다 나름대로 풍기는 특징들을 갖고 있다.

물론 사람들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모습들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 자신이 느끼는 바는 이 소설만큼 긴장과 함께 예측을 불허할 수 없는 시간을 갖기는 거의 없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내 자신을 포함하여 내 주변 사람들은 진정으로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이다.

보통의 삶에 익숙하고 아주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볼 때는 왠지 이상하게 보고 느낄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구성원 들 중에서 벌어지는 범죄 상황이라면 엄청난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은 더욱 더 극심한 말도 할 수 없을 정도 어려운 처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어렵고 아주 극한의 인간의 처지를 잘 그려낸 작가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동안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양면성인 평온과 불안, 태연함과 죄의식 등을 정교하게 포착하여 20세기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긴장감 넘치는 심리극으로 우리 인간의 맹목적인 집착이라는 감정을 숨 막히게 그려내며 인간 심연의 관찰자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무도 몰래 이중생활을 하는 전도유망한 화학자인 데이비드 켈시가 엮어내고 있는 아주 흥미진진하면서도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하려는 작품이다.

그래서 중간에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결국은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도 아니고,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것을 하고,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가 바로 이미 유부녀가 된 과거의 연인 애나벨을 잊지 못해 언젠가는 그녀를 되찾아 오리라 다짐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애나벨은 자기 남편이 데이비드에게 죽자 다른 남자와 재혼하며 선을 긋자 현실을 부정하며 파멸로 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외톨박이 은둔자로서 변모되는 모습과 함께 종말을 앞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흐르는 심정의 표현에서는 역시 사람의 마음은 다 한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진정으로 사람의 달콤한 고통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이 책을 통해 확인했으면 한다.  

 

m***3 2017.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토록 달콤한 고통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달콤한 고통(sweet sickness)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은 어떤 걸까? 고통을 달콤하다고 할 만한 상황이라면 고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뉘앙스가 아닐까? 그런 경우라면 달콤한 고통이란 역시 사랑의 아픔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는 소설 속 데이비드의 상황을 달콤한 고통이라는 말로 간결하게 정리한다. 아픔보다 더 큰 희망을 품는 데
"이토록 달콤한 고통" 내용보기

달콤한 고통(sweet sickness)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은 어떤 걸까? 고통을 달콤하다고 할 만한 상황이라면 고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뉘앙스가 아닐까? 그런 경우라면 달콤한 고통이란 역시 사랑의 아픔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는 소설 속 데이비드의 상황을 달콤한 고통이라는 말로 간결하게 정리한다. 아픔보다 더 큰 희망을 품는 데이비드의 모습을 보면 분명 그에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도 달콤한 고통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는 상황인 걸까?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이 소설에서 사랑의 일그러진 모습인 집착이라는 감정을 한 편의 흑백 영화를 보는 듯하게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녀의 작품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건 바로 그 점이다. 피를 튀는 잔인한 장면이 넘치는 컬러 영화와는 달리 어떤 점에선 너무 잔잔하기까지 한 흑백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 담긴 세밀함과 치밀함이 읽는 내내 독자에게 공포감과 긴장감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소설 초반에는 연인이었던 애나벨을 향한 데이비드의 집착이 일반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집착을 과연 그만의 문제로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은 데이비드에 대한 애나벨의 애매한 태도 때문이었다. 진부한 유교적 사고일지는 모르지만 결혼을 한 애나벨이 데이비드를 대하는 태도가 그의 집착을 더욱 심해지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은 소설을 다 읽을 즈음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데이비드를 대하는 애나벨의 태도가 애매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은 데이비드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끈질기게 그녀에게 달라붙는 데이비드는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스릴러 작품에 정신분석학 임상 보고서를 녹여낸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인간의 한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작가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이다.

p*****4 2017.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최악의 사랑..
"최악의 사랑.." 내용보기
여우는 나무에 매달린 포도가 정말 먹고 싶었다. 하지만 갖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여우는 이렇게 말했다. 저 포도는 너무 시기 때문에 먹을 필요가 없어! 라고.  이렇듯이 자기합리화는 너무나도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자기합리화라는 건 쉽게 말해 변명이다.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방어기제이기도 하
"최악의 사랑.." 내용보기

여우는 나무에 매달린 포도가 정말 먹고 싶었다. 하지만 갖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여우는 이렇게 말했다. 저 포도는 너무 시기 때문에 먹을 필요가 없어! 라고.  이렇듯이 자기합리화는 너무나도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자기합리화라는 건 쉽게 말해 변명이다. 원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런 합리화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쁜 상황이라면 자기합리화의 결과는 상당히 무서워진다. 바로 이 책속의 주인공처럼. 오직 자신의 마음만이 중요한 한 남자의 집착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파괴해가는지 두려운 현실과 마주했던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내내 소름이 돋았다. 저런 사랑이라면 누구라도 끔찍할거야.

 

사랑이라는 말처럼 대단히 주관적인 표현도 없다. 사랑이란 말의 정의가 뭘까?  사전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의 정의 그대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플라토닉이니 아가페니 떠들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에로스를 꿈꾸며, 주는 것보다는 받는 걸 더 좋아하는 게 인간의 솔직한 사랑일 것이다. 그렇다면 책속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캘시가 꿈꾸었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첫눈에 반했던 애나벨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확신으로 자기 자신을 옭아매버린 것이 그 끔찍한 일들의 시작이었다. 언젠가 돌아올 그녀를 위해 집을 마련하고 주말마다 그 집에서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달콤한 상상을 한다. 편지도 보내고 전화도 하는데 그녀는 왜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 남편이란 존재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것일거야. 그녀가 그토록 보잘 것 없는 남자를 사랑할 리가 없어...

 

모든 범죄가 특별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일상속에 범죄는 항상 또아리를 틀고 있다. 우리가 그걸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 우리의 현실속에서 마주치는 범죄들만 봐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다. 익숙한 일상속에서 벌어지는 범죄상황. 거기에서 느낄 법한 인간의 양면성을 포착했다는 저자의 소설에서 마력이 느껴진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디선가 보거나 들은 듯한 기시감 역시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더 무섭다. <열차안의 낯선 자들>, <심연>, <올빼미의 울음> 등을 읽어보았지만 조여오는 긴장감은 한결같았다. 저자의 소설은 책장을 넘길수록 긴장감이 더해진다. 맹목적인 집착을 사랑이라 말하며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이토록 달콤한 고통>이라는 제목이 씁쓸하다. 철저하게 남자의 입장에서 쓴 제목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당해야 하는 여자의 입장에서라면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최악의 고통일 것이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다른 인간들과 다른 괴물로 태어났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기보다, 평범한 듯하지만 어딘지 싸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그저 갸웃하다가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인간들의 심연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라는 책의 소개글이 시선을 잡는다.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아이비생각

 

 

 

i****9 2017.08.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