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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삼국연의8...삼국은 다시 진으로 통일되고 기나긴 여정이 끝이 났다. 당초 후다닥 읽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양한 변수가 속출하면서 단지 예전에 읽어서 ‘안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하다보니 이제야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 읽었던 삼국지연의와 해석에 있어 미묘한 차이도 발견되고, 박기봉님의 깊이있는 해설은 그냥 이야깃거리로 슬쩍 읽고 지나가던 것에서 서로 대구되고, 복선, 다양한 묘사 방법등이 소개되면서 저자의 탁월한 작품성을 알게되었다. 나아가 삼국연의가 명작이 될 수 밖에 없는 지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흔히 중국의 4대 기서로 삼국지연의, 수호지, 금병매, 서유기를 꼽는 이유도 알았다. 후환의 환제, 영제의 혼란기부터 위의 조조, 조비, 조예, 조환 정권을 거쳐 사마염에 의한 진으로 통일되기까지 위, 촉, 오 삼국간의 쟁탈전을 다룬 작품으로 마지막 8편에서는 진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선, 위 조예의 죽음과 조상의 독주 체제를 거쳐 사마의에 의한 위나라는 전복되고 이후부턴 허수아비 정권이 유지된다. 사마의 병사후 그의 아들인 사마사와 사마소가 병권을 장악하면서 실질적인 권력자가 된다. 사마소의 주도하에 촉의 강유와의 끊임없는 사투 끝에 강유 역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 중원을 8번이나 진출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나마 제갈량의 후계자로서 젊은 패기와 지략에 힘입어 싸움을 지속하지만 이전까지완 양상이 다르다. 후주의 지원이 없는 강유 만의 싸움이어서 ‘외로운 늑대’의 절규에 지나지 않았다. 유선의 어리석음과 내시 황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촉 정권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임에도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안주하여 시나브로 다가오는 위험을 인식할 수 없었다. 안타까울 노릇이다. “인생이란 마치 작은 틈새로 비치던 햇살이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는 데 이처럼 세월을 끌다가 언제 중원을 회복하겠나이까?”(P.51) 강유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후주의 군주 자격은 처음부터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던 것. 결국 등애의 기습공격한 방에 항복하고 말았으니 무엇 때문에 선주가 평생에 걸쳐 싸웠는 지 그 의미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 답답했다. 차라리 제갈량이 그냥 후사를 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싶기도 했다. 등애와 종회, 이 둘에 의해 촉은 망했다. 그러나 등애와 종회의 이전투구는 사마소에 의해 평정된다. 한편, 오나라 역시 손권 사후 손준, 손침, 손량, 손휴, 손호로 이어지면서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 권력의 부침 속에 명재상들의 죽음과 함께 내시 잠혼의 정권 농락과 더불어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사마소 아들인 사마염이 집권하던 시기, 양호의 천거를 받은 두예에 의해 정벌된다. 이로써 어수선하던 삼국은 다시 하나의 나라인 ‘진’으로 통합된다. 제갈량 사후 실질적인 주도권은 위나라로 옮겨졌고 강유에 의한 무모한? 싸움은 번번히 실패한다. ‘최선의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임을 자각한 강유지만 잦은 공격으로 인해 인적, 물적 손실과 국부유출, 후주의 무능력한 집권, 황제의 마음을 사지 못한 강유의 편벽한 마음, 수도인 성도보다 국경인 한중에 머물다보니 내외적으로 아우르는 정사를 펼치지 못한 한계로 말미암아 위나라가 7곳으로 쳐들어오자 속수무책으로 고립되어 무창을 기습한 등애의 공격에 힘쓸 재간도 없이 항복하면서 촉은 그대로 ‘한나라’ 재건의 꿈을 접는다. “천하를 삼분하여 각기 할거하려던 것도 모두 한 낱 꿈이 되었다”(P.239). 오나라 역시 ‘순망치한’이라 했던가. 촉이 무너지면서 힘의 균형이 사라지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두예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양국은 멸망의 순간이 허무하다. 촉의 험한 지세도, 오의 병풍처럼 펼쳐진 양강, 장강의 잇점도 소용이 없었다. 임금이 바로서지 못했으니 아무리 지략가가 버티고 있다손 치더라도 별의미가 없었다. 삼국연의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정권의 안정이 우선해야 나라도 산다는 것. 내적 혼란이 있는 한 외부의 작은 틈만으로도 능히 좌초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삼국 간의 힘의 균형이 사라지는 순간 나머지 국가 역시 온전치 못하다는 것. 선주의 평생에 걸쳐 이뤄놓은 업적도 어리석은 후주를 만나면 단지 ‘통일’은 꿈에 지나지 않는 허망한 것이 되기 십상이다. 군사적 힘만으로 싸우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임금과 신하가 혼연일치된 마음이 없는 한 사상누각에 불과한 그저 ‘일장춘몽’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국연의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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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를 읽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말은, 무후가 죽은 후부터는 곧바로 차마 읽을 수 없다는 것인데, 지금 시험 삼아 이 편篇을 한 번 읽어보라. 무후가 살아 있을 때와 다른 게 뭐 있는가? p.178 제 113회 모종강 서시평 中 『삼국연의』의 앞 이야기들을 술술 읽어나가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잠시 주저하게 된 것은 삼국연의의 주요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관우, 장비, 유비의 죽음에 이어 무후(제갈공명)가 죽자 마치 삼국연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속도가 늦춰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강유가 무후의 병법서를 물려받고 위를 치러 중원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무후의 화공술과, 그리고 등애와의 전투를 치를 때 구사하는 전략과 진법 싸움을 읽어나가면서 서서히 이야기의 흡인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제 113회 모종강 서시평에 이르러서는 저 문구를 보았을 때는 뜨끔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삼국연의 제 1권에서 한나라가 망할 조짐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제 8권에서 촉의 유선의 실정과 촉의 정세에 대한 내용과 대구를 이루며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공통적으로 환관이 나라의 일에 독단적으로 개입하여 국정을 뒤흔든다는 것과 황제는 충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어진 이를 꺼리며 소인들과 더불어 즐긴다. 관우가 형주를 잃게 되었을 때 유봉이 관우를 도와 그를 위기로부터 구해내었다면, 유봉은 관우를 잃어 분노한 유비로부터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고 장자였던 유봉은 유선 대신 황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관우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장비와 유비가 무리하게 동오를 침략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한의 명운은 좀 더 길게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선주 유비의 '나라를 다스릴 재목이 되지 않거든 승상께서 이 나라를 맡아 다스려주시오'라는 유언대로 무능한 유선 대신 총명한 다른 인재가 왕이 되었다면 촉한은 이다지도 우스운 최후를 맞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강유를 비롯한 촉의 명장들이 긴급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싸우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냉큼 나라를 갖다 바치질 않나, 위나라가 열어준 연회에서 촉에 대한 생각이 전혀 나질 않다고 이야기하고 조롱을 당하게 되는 등 그 많은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이루어낸 일들을 아주 쉽게 망치고 있다. 제갈무후가 살아있었을 때 그의 출사표에서도 환관을 가까이하여 나라일을 그르치고 있는 유선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는 내용이 드러나 있었으니 사실상 촉의 망할 조짐은 그때부터 진전되고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나, 목숨을 바쳐 대업을 이루려는 여러 충신들의 노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 아쉽다. 이 책의 관점대로라면 천운은 어쩔 수 없고 비록 그 결과를 뻔히 알고 있지만 사람의 도리로 사람의 일을 계속해나갈 수 밖에 없다. 人事를 이루려고자 하는 당사자였다면 그 대업의 무게만으로도 힘들었겠지만 패색이 짙어 괜히 더 힘빠지는 일이 될테니 곱절로 힘이 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차피 뻔한 결말에 공을 들여 나라의 명운을 조금이라도 늘려놓는다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일일까? 후대의 등애가 촉을 침범할 것마저 예상하고 있었던 제갈무후의 그 신묘함이 허무하게 쓰인 것 같았다. 그럴 정도로 유선의 우둔함이 아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무능한 인물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기도 했다. 한편으로 나라의 주인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라를 되찾고자 이간계를 써 최후까지 노력했던 강유의 죽음도 안타까웠다. 그들이 좇는 의와 아무런 결과도 낳을 수 없던 것에 대한 무상함이 읽는 내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또한 삼국연의에서 흔히 나라가 망하는 순서로 촉-오-위로 생각하게 되는데 모종강의 합평을 읽으니 위-촉-오라는 분석에 동의하게 되었다. 모종강은 '조방이 황제의 자리에 섰을 때 위는 이미 망했으며, 조방이 폐위되었을 때 위는 두 번째로 망했고, 조모가 시해되었을 때 위는 세 번째로 망했다'고 했다. 사마씨의 압력에 의해 조씨 황족들이 핍박을 받고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조씨의 나라가 아닌 사마씨의 나라였음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라를 망하도록 몰아넣은 유선의 어리석음은 그 때조차도 계속되고 있었을 텐데 어떤 나라가 먼저 망했는지를 논하며 촉을 위보다 위에 세우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해보인다. 대부분의 책들은 그 종편終篇에 이르면 매번 그것이 너무 쉽게 끝나버릴까봐 염려하게 마련인데, 이처럼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듯이 조마조마하고 갈수록 더욱 기이해지는 것이 있던가? p.343 제 120회 모종강 서시평 처음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불쑥불쑥 끼어드는 불청객같았던 모종강의 논평이 서서히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점차 삼국연의의 우수한 점을 예찬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그동안 삼국연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가 좋다, 좋다 이야기를 계속 하면 점차 나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듯이 이 이야기를 아주 사랑하는 듯 보이는 모종강의 예찬을 읽어나가면서 나도 이야기 속 인물들과 흐름에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346쪽에서 '<三國演義> 大尾.'를 보았을 때는 뿌듯하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하고 읽으면서 느꼈던 많은 것들에 대한 감정들이 밀려와 잠시간 멈추어 있어야 했다. 삼국연의 이야기에 다시 흥미를 느끼고 원문을 통해 주요 사건들의 인과관계 및 정황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비봉 출판사의 삼국연의에 감사하며 감상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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