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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도시가 아니다. ‘기억을 품은 공간’이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로제 그르니에(Roger Grenier, 1919~2017)는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를 “내가 시골 사람인지 파리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포(Pau)와 베아른(Bearn)이 내 책 대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도시는 파리다. 내가 느끼기에 진짜 파리지엥들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는 파리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정복이다. 나는 센 강의 다리 위를 지나기만 해도 감탄한다. 한쪽에는 시테 섬과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랑 팔레와 샤이요 언덕이 있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하늘이 있다! 꿈이 아닌데, 내가 파리에 있다니!”1) 라고 시작한다. ‘파리’라는 도시에 어느 정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반면 이 책 <파리, 에스파스(PARIS, ESPACE2))>를 쓴 건축가 김면은 파리를 하나의 ‘공간’으로서 바라본다고 한다. 즉, ‘파리’라는 공간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다가 지상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구석구석을 살피는 방식을 사용해서 살펴본다는 얘기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등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떠올리면 된다. 그들은 마치 새가 날면서 공중에서 내려다 본 듯, 전체를 관망하는 부감법(俯瞰法)에 의한 시각 구성으로 구도의 틀을 만들어냈으니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부 도시의 오브제]에서는 길, 광장, 정원, 시장, 강, 메트로, 공동묘지 등을 둘러보는데, “도시에서 태어나 이름을 얻고 느리게 변화하는 그러한 오브제들은, 자신의 몸에 시간의 먼지와 때가 쌓여 갈수록 더 깊은 이야기를 간직하며 도시의 기억을 이어 간다” [p. 8]고 말한다. [2부 건축물, 기억의 상자]에서는 “파리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은 ‘역사의 껍질’이 되어 궁전이나 교회, 기념비 등의 형태로 도시 속에 놓여 있다” [p. 100]고 얘기한다. 그리고 [3부 일상의 공간]에서는 서점, 아파트, 레스토랑, 카페 등 파리지엥(parisien)들의 변화하는 생활양식과 연결된, 과거와 현재가 사이 좋게 공존하는 공간들을 엿본다. 다시 말해 1부는 공동의 공간을, 2부는 좀더 공적인 공간을, 3부는 일상의 공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파리’라는 도시의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은 여행객의 스쳐가며 본 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본 같은 사건을 엮은, 미나토 가나에[溱 かなえ, 1973~ ]의 <고백>이나 다이 호우잉[戴厚英, 1938~1996]의 <사람아 아, 사람아!>처럼.
파리를 걷는 것은 시간 속을 유영(遊泳)하는 것이다
파리에는 여러 세대의 삶이 지층처럼 쌓여 있다. 이러한 장소성과 시간의 흔적들은 도시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를테면 오래된 길과 때 묻은 건물, 공터, 깨진 성곽, 궁전, 기념비, 카페 등은 중세와 근대의 기억을 담아 과거와 현재를 이어 준다. 먼지가 내려앉은 건축물, 빛 바랜 회벽, 군데군데 벌레 먹어 구멍이 난 목재는 신화가 되고 상상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파리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또 하나의 파리’가 생겨나곤 한다. 모네가 루앙 성당을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으로 그린 것처럼, 도시의 풍경과 공간을 대할 때 우리는 소리, 냄새, 온도, 시간, 빛, 살갗을 스치는 공기에 따라 각자의 몽타주를 갖게 된다. 도시의 다양한 오브제와 건축물, 일상의 공간들이 머릿속에서 살아나 나를 둘러싸고 세워지며 겹쳐진다. 그것들은 벽이 되고, 바닥 재료가 되고, 나무와 가로등이 되어, 발 앞에는 나만의 산책로가 만들어진다. [pp. 4~5]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처럼 파리라는 도시는 시간 속을 떠다니는 것처럼 낭만적인 환상이 가득 찬 공간이다. 아마도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책을 펼치면, 파리의 골목마다 켜켜이 쌓여 있는 기억이 현실로 소환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동안 우리 머릿속에서는 도시의 다양한 오브제와 건축물, 일상의 공간들이 생명이 깃든 듯 살아난다. 그 공간들에 쌓인 공동의 기억을 재료로 나의 시간과 추억을 곁들이면 그곳에서 나만의 파리가 구워져 나올 것이다. 이런 과정들 때문에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쯤은 파리라는 도시를 여행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비록 시공간을 넘나들지 않더라도 하나의 공간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신기하게도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모든 도시에는 전통 시장, 즉 마르셰(marche)가 남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한낮에 텅 비어 있던 마을이 저녁이 되면 시장으로 변하는 것처럼, 파리에서는 주말 이른 아침이면 마을의 광장 한쪽이나 큰길의 가로수 아래, 혹은 시청 앞에 간이 기둥이 세워지고, 팔레트 위의 물감처럼 갖가지 색으로 테이블과 벽이 만들어진다. 해가 높이 떠오르고, 팔레트를 채우던 형형색색의 상품들이 다 팔려 없어질 때쯤, 언제 그랬냐는 듯 시장은 사라지고 도시는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p. 51]
몇 곳의 유적지를 제외하고, 오늘날의 파리에서 중세 이전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파리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앙리 4세 이후, 그러니까 17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p. 13] 이런 점을 따져보면, 오스만 남작이 추진한 근대 도시계획의 산물인 파리와 정도전의 계획에 기초한 서울은 비슷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물론 우리는 근대화의 세례를 받으며 지난 시간을 부정하고 지우고 바꾸는 데 열광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무엇이 파리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우리와 다른 점을 떠올리면 도심 속의 공동묘지가 먼저 떠오른다. 파리의 녹지대 중 한 곳이기도 한 이러한 공동묘지는 도시의 허파가 되어 바쁜 일상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 준다. 집 옆에 있는 무덤이 도심의 쉼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우리 문화의 시선으로 보자면 자연스러운 광경은 아니다. 파리 역시 처음부터 도시 내에 공동묘지를 만들려 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1824년에 생긴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는 원래 도시 속 묘지가 아니었는데, 당시 이 지역은 파리 시 바깥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파리 내에 있는 다른 공동묘지들도 마찬가지였다. 나폴레옹 3세에 들어 파리 시의 경계를 지금과 같이 넓혀 도시 면적을 두 배로 키우는 과정에서 도시의 안쪽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p. 82]
또 하나는 과거를, 오래된 것을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유휴(遊休) 공간’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쓰임새가 다한 건물이나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도록 고민해 온 문제이다.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생각을 나누며 그 결과물을 공유하려는 국민성이 있는 그들은, 쓰임이 다한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다 함께 고민하면서 그 방안으로 예술품이나 문화재의 전시를 계획하곤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파리의 낡은 옛 병원들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또 도시 안에 남아 있는 커다란 창고 및 교역장, 다리의 하부 공간, 옛 주택과 궁전 등을 사들인 뒤 박물관으로 바꾸어, 교육의 장으로서 사회에 환원한다. 역사성이 있는 공간들을 없애지 않고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 ‘도시의 기억’을 이어 가는 것이다. [p. 151]
같은 단어로 번역되었지만, 원어(原語)의 차이에 따른 미묘한 어긋남도 복잡하고 낯선 단어들 사이에서 잠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우리는 ‘갤러리’라고 하면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 즉 화랑(畵廊)을 떠올린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갤러리(galerie)’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근 몇 년간 SNS감성을 타고 유행하는 ‘골목길 여행’에서의 골목길에 가깝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이지만 어둡지 않은 이곳, 갤러리는 소비와 사치 문화가 만들어 낸 근대의 발명품이다. 오늘날 파사주와 갤러리의 구분은 엄격하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나가는 길, 즉 통로를 통칭하여 ‘파사주’라고 하고, 그중 철과 유리로 지붕을 씌운 파사주로서 주로 서점, 부티크 등 고급 상점이 길게 늘어선 공간을 ‘갤러리’라고 한다. 그리고 참고로 아치형 천장으로 이루어진 통로 공간 전반을 ‘아케이드’라고 부른다. 이러한 갤러리는 대부분 프랑스 왕정 복고기인 19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최신 물건을 가장 빨리 접하고 구입할 수 있었던 이곳은 자본주의를 축소해 놓은 하나의 ‘세계’였다. 또한 비가 내리는 날에는 피신처 역할을 해 주며 언제라도 쇼핑을 할 수 있는 산책로를 제공했다. 이 통행로들을 걷다 보면 파리가 세계의 문화 수도였던 19세기의 화려한 시절로 어렵지 않게 돌아갈 수 있다. 닳아서 반짝이는 바닥의 돌 위로 한 걸음씩 천천히 떼면서, 벽에 걸린 오브제들과 천장의 철 구조물, 조명, 책이나 옷을 판매하는 가게들을 바라보며 약 200년 전 이곳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파리 시를 수놓은 철골 건축과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군중, 투명한 지붕 아래로 늘어선 가게들, 물건을 진열하는 상인과 이를 감상하는 구경꾼들, 그들 사이에서 자기과시를 하며 들떠 있는 댄디(dandy)들, 그리고 특별한 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눈앞에 불러낸다. [pp. 200~203]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파리’라는 도시 공간의 인상을 저자는 직접 손으로 그린 약도와 풍경 스케치, 그리고 사진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준다. 흔히 생각하는 여행 가이드가 아니기에 오히려 더 현장감이 느껴지는 이 책 덕분에 과거 배낭여행을 하면서 둘러봤던 파리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는 박물관과 미술관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다시 파리를 방문하게 된다면 건축물과 골목 위주로 걷게 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름 모를 노상 카페에서 도토리 만한 잔에 나오는 에스프레소가 아닌 그냥 커피 한 잔 시키고 나른한 오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럴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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