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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사람과 이정표뿐이다. 잘못된 방향을 제시할지라도 믿고 나간다.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왔을 때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들인 시간이 아깝고 화가 나도 돌아가야 한다.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과감하게 돌아나가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이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계속 가기도 하고 어떤 있는 그 끝에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낯선 길을 가는 것이다. 모든 게 처음이기에 의지할 누군가를 찾는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경험으로 확인하고 새로운 것을 인식한다. 낯선 길을 동행할 이가 있다면 점점 그 길은 익숙해진다. 반대로 동행하는 이와 헤어지고 혼자 걸을 때 더 편안할 수도 있다.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혼자 또는 같이의 삶을 생각했다.
수상작인 황정은의「웃는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d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d는 혼자가 된 것이다. dd가 사고로 죽고 세상은 이전과 다른 것이 되었다. dd와 같이 있을 때 모든 것의 존재는 그 자체로 빛났고 삶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제 삶은 그저 그런 것이다. 세상과 d는 소통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dd를 대신할 존재는 없으니까. 이정표를 잃은 d는 용산 세운 상가에서 택배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아니 그냥 산다. 그런 d에게 앰프와 스피커를 고치는 60대 중반의 여소녀가 말을 건다. 침묵이었던 d의 세상에 소리가 들어온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소리를 만지고 소리에 둘러싸인 여소녀의 가게에서 들리는 오디오의 소리. 그것은 dd을 불러왔다. 잃어버린 세상을 찾은 것처럼 d는 음악에 빠진다. 세상과 단절되었던 d에게 여소녀와 오디오의 선율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인식한다고 하면 맞을까. 황정은의 여느 소설이 그렇듯 「웃는 남자」는 개인의 상실과 절망을 세운상가의 그것과 결합시킨다.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산업화를 통해 세운상가의 번영과 쇠락을 지켜본 여소녀의 생이 그러하고 d 앞에 펼쳐진 시위 현장이 그러하다. 희망과 변화를 외치며 행진하는 그들과 그 곁을 지나가는 d는 그 속으로 합류하지 못하지만 외면하지는 않는다. 조금씩 세상의 소리와 마주하는 d. 그렇다고 그가 제목처럼 웃는 남자가 된 건 아니다. 여전히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d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어떤 소리로 채워질지 기대할 수 없지만 그 소리가 궁금하다.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웃는 남자」, 94쪽)
김숨의 「이혼」은 주도적으로 혼자를 선택한 삶이다. 소설 속 민정은 엄마의 이혼을 바랐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 엄마가 이혼하기를 원했다. 모든 서류를 준비했지만 주저하는 엄마를 두고 민정은 집을 나온다. 이혼을 원하면서도 사회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는 엄마. 그런 민정이 이제 자신의 이혼을 결정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철식은 왜 이혼하려는지 민정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혼 요구를 묵살한다. 결혼이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듯 이혼도 그렇다. 앞으로 삶을 제대로 가기 위해 민정은 돌아 나왔지만 편혜영의 「개의 밤」속 김은 계속 가는 걸 택했다. 가족이 될 수 없는 처가 식구들과 그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장인은 김에게 군대 폭력의 가해자인 처남을 위해 탄원서를 받아오라고 말한다. 취직을 시켜주고 전원주택에서 살게 해준 장인이다. 처남은 그저 운이 나빴고 실수를 했다며 김에게 동의를 강요한다. 처남이 죄를 지었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김은 어느새 장인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며 백수로 살아가는 진수의 일상을 다룬 김언수의 「존엄의 탄생」에서 진수 곁에는 같이 할 이가 없다. 동네 떠돌이 개도 반겨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이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에게 삶은 얼마나 처량하고 쓸쓸한가. 윤성희의 「여름방학」의 주인공 병자도 마찬가지다. 노년의 삶에 대한 계획이 명예퇴직으로 인해 조금씩 수정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도 떠나고 어머니를 부양했고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위해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진수의 현실과 꿈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면 병자를 위로해 줄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온라인과 sns으로 소통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에서는 오랜만에 재회한 남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난 감정이 서로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기호의 「최미진의 어디로」는 중고 사이트에서 자신의 책을 덤으로 주는 판매자와 직접 거래를 시도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의 소설이 그렇게 엉망이냐고 따지러 나왔지만 판매자의 사연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사인본을 비롯해 책만 남기도 말없이 떠나간 연인의 사연이라니, 멋쩍고 허탈할 뿐이다. 7편의 소설 속 인물 가운데 ‘웃는 남자’는 없다. 상황을 모면하려 쓸쓸한 농담을 던질 뿐이다. 소설을 읽는 일과 사는 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과 인생이 어떻게 동급이 될 수 있냐고 물어도 할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럴 때가 많으니까. 소설을 읽을 때 재미와 웃음과 감동을 기대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이 소설이 아닌 현실 속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면 소설은 내게 어렵고 복잡한 생각을 던진다. 살면살수록 낯설 길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 말이다.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행복한 결말을 바란 건 아니다. 이젠 소설이나 현실이 비슷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무를 받는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생을 사는 거라고 중얼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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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지만 리뷰를 쓰기 힘든 책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좋은 느낌을 전할 자신이 없을 때 그렇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매력적인 소설을 만날을 때 그것을 고스란히 나누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웃는 남자』도 그러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복합적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이 있고, 술술 재미나게 읽은 단편도 있는데 그걸 글로 옮기는 게 참 어렵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자주 나를 붙잡는다. 단지 게으를 뿐인데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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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는 남자에 대한 앞뒤 이야기를 읽기 오래전부터 궁금하게 여겨왔었는데 앞서 엿보았던 글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이나 방향이 생각과는 달랐던 것 같다 아쉬웠다고 말하는 편이 더 가까울 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떤 문장은 몹시 좋았는데, 예컨데 이런 문장이다 dd를 만난 이후로는 dd가 d의 신성한 것이 되었다. dd는 d에게 계속되어야 하는 말, 처음 만난 상태 그대로, 온전해야 하는 몸이었다.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d를 이따금 성가시게 했던 세계의 잡음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행복해지자고 d는 생각했다. 더 행복해지자. 그들이 공유하는 생활의 부족함, 남루함, 고단함, 그럼에도 주고받을 수 있는 미소, 공감할 수 있는 유머와 슬픔, 서로의 뼈마디를 감각할 수 있는 손깍지, 쓰다듬을 수 있는 따뜻한 뒷통수, 어깨를 주무르고, 작고 평범한 색을 띠고 있는 귀를 감싸고, 따뜻한 목에 입술을 대고, 추운 날엔 외투를 입는 것을 서로 거들며, dd의 행복과 더불어, 행복해지자. * 윤성희 작가 글이 좋았다 좋아서 그대로 두 번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좋은 글이었다 * 이기호 작가 글도 재밌었다 다른 작가들이 혹시나 나의 감상을 들춰보는 건 아닐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실망한 작가들의 이름을 걸어두고 싶지만 역시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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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의 두 편의 중편소설 중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다른 주옥같은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어 가격적인 면에서 부담없이 구매해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도서이다. 황정은의 작품들은 한번 읽을 때는 의아할 수도 있지만 두어번 읽는다면 진짜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조금 어려울 수도. 다만 책이 낡은 듯이 스크래치나 찍힘이 많았다. 가격을 보아서는 그것을 무시해야 하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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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표제작 '웃는 남자'를 읽어보았다. 한국 문학을 이끌 젋은 문학도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단편소설 성찬을 맞볼수 있는 좋은 책이다. 수상작인 황정은 작가님의 "웃는 남자"는 물론이고 어떤 작품이 더 좋았는지 꼽는 것은 정말 힘들고 무의미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한 문학뷔페를 맛보는 가격이 커피한잔 가격이다. 쌀쌀한 가을에 문학의 향기를 느낄수 있는 이 책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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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라는 표현을 책에 쓰는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좋은 문학집을 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니 가성비 좋은 책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유명한 김유정문학상이지만 구입해서 읽어보는것은 처음이었다. 다양하고, 젊은 작가님들의 신선한 문학작품들을 한번에 읽을 수 있는 기분좋은 문학도서이다. 각 문학작품들이 길지 않아, 지루하지 않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책. 다음에 나올 작품집도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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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이벤트로 한권이지만 무료배송을 받아 너무 좋습니다. 예스24덕분에 읽어보고 싶은 책 저렴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네요. 참으로 좋아하는 작가님이신 황정은 작가님이 발표하신 신작이라 구입하게 되었는데 다양한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젊은 작가님들도 많아서 내용이나 문체들도 신선한 책인 것 같아요.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하나하나 이야기에 많은 것이 담겨져 있고 그 글을 읽으면서 생각할 것도 많아집니다. 작가님들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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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웃는 남자 최근에 읽어본 책이지만 나름 책내용이 궁금하고 기대가 되어서 오래만에 책을 구매를 해보았습니다. 확실히 웃는 남자는 기존에 읽었던 책과 달리 독특한 느낌과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그리고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었다고 알려진 웃는 남자 흥미 진진합니다. 연휴기간에도 읽어보면서 그야말로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책내용조차도 흥미롭고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해서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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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자 황정은 작가님의 신작이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역시라는 말이 나오는 황정은 작가님의 웃는 남자였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 또한 너무 좋고 또 좋았습니다. 흥미롭고 교훈적인 내용도 많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신선한 문체들도 많았고 평론가들이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을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도입한 역작이라고 평가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름만 대면 아는 스타 작가님들의 작품들 또한 좋지만 눈을 조금만 돌리면 이런 젊은 작가님들의 책들 또한 흥미롭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다음들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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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는 한국사회에 침전되어 있고 작고 희미한 소리들, 마치 웅웅거리는 소음과도 같은 소리들을 불러내어 서사시적인 필체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서울 주변부를 힘겹게 옮겨 다니며 살아가는 두 사람이,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세운상가에서 만나 같이 짜장면을 먹고 진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공 d는 동거하던 연인 dd를 잃은 후 환멸에 젖어서 지내는 20대의 청년이다. 그는 창문도 없는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세운상가에서 하루 열 시간씩 짐을 나른다. 또 다른 주인공인 여소녀는, 1967년 세운상가의 일부인 가동과 나동이 완공된 해이자 그가 청계천에 수리실을 연 이후, 40년이 넘도록 세운상가에서 오디오 앰프와 스피커를 수리하고 있는 60대 중반의 남자이다. 그는 지금 사람들이 떠나가서 텅 비어있는 세운상가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d의 집주인 김귀자 노인은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의 폭격과 함께 무너져내린 아이의 얼굴과 함께 전쟁의 공포를 이야기하며, 사고로 죽은 연인 dd의 책과 음반은 반지하 방에서 그녀가 꿈꾸었던 세상을 이야기한다. 세운상가는 무엇이었을까. 국가주도의 개발과 정치적 억압이 기묘하지만 굳건하게 결합되어 있던, 한국 현대사의 아이콘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바라본다. 한국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던 세운상가가 진공상태로 변하고 있음을, 그리고 진공상태로 변해가는 세운상가 안에서 빛과 열을 내며 소리를 정돈하고 증폭하는 진공관을 발견한다. 소음이 세계의 배음이었던 d에게 진공관은, 여전히 불명료하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 어떤 가능성의 신호, 그 어떤 변화의 신호로 다가온다. (심사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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