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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백제는 어떤곳인가? 기원 전후한 시기에 마한의 소국으로 출발하여 한반도 중부와 남서부를 차지하고, 고구려, 신라와 더불어 삼국을 이루던 나라. TV드라마의 영향으로 어떤 왕들보다 서동이라 불리던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고, 일본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끼친곳 정도. 아니, 내가 터를 잡고 있는 곳, 송파의 영향으로 백제의 문화가 부여만이 아닌, 송파라는 것 정도이다. 백제고분이 지척에 있음에도 몇년에 한번 갈까말까하고, 매년 있는 한성백제축제에도 동참을 꺼려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백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2장. 700년 백제, 불국토를 꿈꾸다 3장. 백제는 최강의 하이테크 국가였다 4장. 고대 한류, 백제가 살아나다 5장. 백제, 바다를 꿈꾸다
500년 왕조를 이어온 조선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면서도, 사라져간 700년 역사의 백제는 어쩜 그리도 물거품처럼 여겼는지 모른다. 일본 속의 백제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음에도 두 나라는 서로 눈을 가리고 있다. 아닌듯이 말이다. 처음 알았다. 법성포의 굴비만 알았지, 법성포의 명이 왜 법성포인지 말이다. 불국토를 꿈꾸던 한 나라의 불법이 전해졌던 통로. 그곳이 법성포임을 왜 몰랐을까? 금속공예품의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금동대향로와 밀랍을 이용한 실납 주조법과 도금기술인 수은아말감법으로 보여주고 있는 최첨단 금속공예기술이나, 한류의 원조였던 미마지와 백제 기악, 그뿐인가? 우리네 백조의 의상을 너무나 닮아있는 기모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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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티비에서 백제의 후손이 사는 일본땅을 본적이 있다. 프로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정확히 다 보지는 못했지만 일본내에 신사도 만들어져 있고 매해마다 재를 지내고 후손들이 백제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으로 나왔었다. 그 프로를 본뒤에 무식한 내가 늘 말로만 일본은 백제의 쪼가리다 라는 말의 근원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늘 우리가 아는 우리 역사는 많은 사실이 외곡되어지고 감추어 져서 진실을 다 알면 세계가 놀랄만 한 엄청난 사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 중에 하나가 한단고기 였고 그리고, 일본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을 보면서 하나씩 내 머리속에 정리가 되어 나의 지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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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太王)
방송의 힘은 강하다. 지금 방영중인 근초고왕을 보면 생소한 말들을 한다. 그나마 고구려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연이어 방송되어 태왕은 익히 들었지만 어라하(왕), 어륙(왕비..방송에선 못들은 것도 같음),. 욱리하(한강의 옛이름)란 말은 너무나 생소하다. 알고 있다면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수준이 상당한 수준임에 분명하다.
이 책 역시 대전방송에서 5부작으로 방영된 것을 옮긴 책이다. 역사스페셜, 한국사전, 안중근을 보다, 지식 채널 e, W 등 방송 내용을 책으로 옮긴 책을 자주 읽는데 그중 필력이나 묘사는 다른 책들에 비해 부족 (방송원고를 그대로 옮긴 느낌, 방송과 책은 달라~)하나 심층취재를 통해 대백제의 면모를 우리에게 전달하는덴 부족함이 없다.
왕흥사지에서 발굴된 1400년의 세월을 초월한 백제금동대향로, 익산사 미륵사 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고구려 신라보다 더 화려한 문화와 기술을 보유했던 해상강국 백제와 어울리지 않는 능산리고분에 위치한 초라하기 그지없는 의자왕과 그 아들의 능
비운의 해동증자 의자왕은 낙화암과 삼천궁녀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주지육림으로 나라를 망친 왕이란 인식이 일반적이다. 역사는 승자의 눈으로 본것이 전부는 아닐진대 고대사에 대한 우리 기록은 너무나 일천하다. 김영수교수의 사기본기 완역본을 읽는중인데 중국의 역사서중 25사만 봐도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분량이라고 한다. 물론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을 본다면 결코 중국에 비해 꿀릴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히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서는 없는가. 실전하지 않고 이름만 남았을까
칠지도, 무녕왕능에서 발굴된 일본의 나무, 불상, 기악극, 일본에 존재하는 다양한 백제관련 지명, 더 충격적인 것은 일본의 산촌에서 백제 왕족의 후손을 만났다는 것이다. 현 일본 천황이 자신의 뿌리가 백제의 왕족임을 인정한 것에 이르면 백제는 말그대로 대백제다. 그렇다고 그것이 일본보다 우리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문화는 자연스럽게 전파되기 마련이므로. 백제나 가야, 신라로부터 문화를 전수받은 것을 부인하고 오히려 백제의 옛땅에 왜가 존재했고 임나일본부설을 통해 적반하장격으로 그들이 우리를 식민지배했다고 그것을 토대로 일제시대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삼는다. 우리 안에도 일제 식민사관를 계승한 사학자들이 많아 이 책이 내용중 상당수는 미스터리 혹은 근거가 미약하다는 논리로 폄하를 할 수도 있다. 전문 연구서적이 아닌만큼 논거가 약한면은 피할 수 없는 약점이겠으나 말미에 다양한 출처와 근거를 좀더 밝혀준다면 깊이 공부하고픈 독자를 위한 가이드 역활을 할터인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일본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은 것은 백제의 도래인 혹은 유민이 맞지만 신라와 백제, 가야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정창원이나 황실에서 보관중인 우리 고대사 관련 역사서나 유물을 완전공개하여 우리가 의문부호로 갖고 있는 우리 고대사의 미스터리가 미스터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입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백제 역시 고구려에 필적하는 제국이요 문화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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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다튜멘터리 제작팀이 만든 <대백제>가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700년의 역사, 일어버린 왕국! 이란 부제를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요즈음 11대왕인 비류왕과 12대 계왕, 그리고 13대 근초고왕까지를 다룬 드라마 <근초고왕>이 방송되고 있기도 하죠..
최근들어서 드라마의 영향도 있고해서 종종 백제를 다룬 기사도 자주 올라오기도 하고 있죠..
역사의 패자였던 나라였던 백제인지라, 신라에 의해서 역사도 많이 왜곡되기도 했기에..
역사는 아무래도 고구려와 특히 신라를 위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백제>는 5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백제와 일본의 관계, 불국토로의 백제, 첨단 기술을 가졌던 백제,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백제, 해상 강국 백제를 다루었던 내용을 짤막하게나마 책으로 엮은 작품입니다..
백제라는 국가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다가선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백제>가 아쉬운 점은 다양한 면으로의 접근에 비해 그 깊이나 양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200페이지를 갓넘는 분량, 거기에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 사진이 들어가다보니 많은 내용이 들어있지 못합니다..
<대백제>안의 내용도 이미 다른 여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익히 들어온 내용이 상당히 있다는 점..
또한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굉장히 심층있는 내용과 깊이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스러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백제에 대해 지식이 부족한 분들에게 권할 만한 책입니다..
어렵지 않는 설명과 다양한 사진자료, 그리고 각주처럼 달린 첨부설명 등이
역사에 관심이 적었던 분들이 보시기에 아주 좋은 책인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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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을 받았던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책으로 출판해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이 요즘 들어 잦다. 역사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대백제’ 5부작을 그대로 5장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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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백제의 온조 , 의자왕, 삼천궁녀, 660년 신라에 멸망함, 황산벌과 계백장군 아니면 세종시의 옛 지명인 부여(사비성), 위례 신도시가 들어서는 백제의 최초 수도 한성, 웅진 코웨이 윤석금 회장의 고향 이자 박찬호 선수의 고향인 공주 혹은 4세기 근초고왕이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주도권을 잡음. 60년간 이어온 신라와의 나제 동맹이 깨지고 성왕은 전사한다. 신라의 진흥왕은 명목을 포기하고 실리를 챙겼다. 이 정도가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제동맹의 경우 신라가 점령한 가야소국들이 서로 연합하여 다시 되찾도록 충동질하면서 영토쟁탈전이 일어나면서 발생한 것이다. 또한, 백제의 의자왕 역시 우리가 배웠던 것 만큼 무능력하고 폭군은 아니다. 전쟁의 승리자인 신라에 의해 역사가 왜곡된 것이지 실제로는 유능한 왕이었다. 다만, 농업중심 국가인 백제에서 원수를 갚기 위해 무리하게 전쟁을 일의키고 대야성 전투에서 김춘추의 딸과 사위 품석을 전사시켜 그에 대한 보복으로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무능력한 점이라면 외교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겠다.
책에서는 백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적어나갔다. 그리고, 백제의 문명이 어떻게 일본에 전해졌으며 일본과 백제 문화와의 연관성을 찾아나가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백제 문화와 일본 문화의 유사성을 찾아서 억지로 끼워맞춰 백제왕이 일본을 다스렸고 문화를 전했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왜 삼국은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수시로 전쟁을 일의켰으며 신라는 왜 같은 민족도 아닌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냐며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민족사관 같은 개념자체도 없지 않았는가? 게다가 당나라와 신라도 그 뿌리는 하나에서 시작하였을 것 아닌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이전에 왜 유럽국가들은 서로 연합하여 EU도 결성하고 유로화라는 단일화폐를 통용하려고 하는데 동북아시아들은 서로 경쟁을 하며 올림픽에서 괜시레 반한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불매운동을 벌이겠는가? 태생적으로 동양인들은 국수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 왜곡에 목숨걸고 따지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 작가는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이다. 다큐멘터리라면 특히 남자들이라면 사죽을 못쓴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간과한 것이 하나가 있다. 다큐멘터리는 소리와 움직이는 영상을 보지만 책으로 볼 때는 사진과 글로서만 가능하다. 다큐멘터리를 볼때는 시청자들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나레이터가 말하는 것을 듣고 화면이 움직이는 대로 시선은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독자들은 그림을 볼 때도 글을 읽을 때도 머리속에는 갖은 생각들이 가득하다. 눈은 그림을 향하고 있지만 머리속에는 고등학교때 배웠던 국사책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다큐멘터리와 다른 글과 그림으로 독자를 사로잡지 않으면 안된다. 영상으로 전달하지 못한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역사속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의켜야 한다. 그런 면에서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우리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백제의 숨겨진 역사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온조와 비류왕이 주몽의 아들이었지만 본처의 아들인 유리왕이 찾아오자 떠나서 온조는 위례(한강유역)과 비류왕은 미추홀(인천)에 터를 잡지만 비류왕은 해안가에 터를 잡아 땅이 척박하여 농사에 실패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배웠다. 그러나, 책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하긴 내가 봐도 그 부분은 잘 이해가 안되었었다. 지금의 인천지역이라 하면 갯펄이 유명하기 때문에 조개등을 쉽게 채취할 수 있으며 조수간만의 차가 크므로 물고기 잡기에도 훨씬 유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백제의 역사 이야기보다 문화에 지나치게 치중하였고 특히 일본과의 관계 그리고 백제가 끼친 영향력등에 너무 집중한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백제의 유명한 목조건물들이 지어졌으나 많이 소실되었으나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조금 아쉽고 또한 신라나 고구려와의 건축물의 차이점 등에 대해 좀 더 설명이 이루어졌다면 더 좋았을 법하다. 백제의 700년 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나 잔뜩기대를 하였지만 일본문화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을 한점은 아쉽지만 우리가 몰랐던 백제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백제 역사이야기를 좀 더 다루는 후속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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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상고사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불과 십여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장족의 발전을 했다. 특히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외부적인 자극이 오히려 우리 상고사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왔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면 다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지만 그 어떠한 원인으로도 뒤늦게 남아 우리 한민족의 뿌리를 찾는 여정의 첫발을 과감하게 옮겼다는 점에선 반가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진행되었던 상고사연구과정은 왠지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기점과 촛점은 당연히 고조선과 고구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성에 발목이 잡혀 신라나 백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신라는 전하는 사초나 기록 및 유물들이 그나마 좀 남아있는 관계로 꾸준한 연구의 대상이 대었지만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백제의 연구나 관심은 비주류대상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고 이러한 여파로 우리는 백제라는 국가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나 감정적 거리감을 상존한채 살아왔다.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는 바로 그동안 막연한 대상으로 남을수 밖에 없었던 백제에 대한 고찰이다. 특히 SBS 대전방송국에서 5부작으로 방영했던 대백제 다큐멘터리를 요약하여 책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심오한 역사적 지식이나 깊이를 수반하지 않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내용들로 충만하여 백제라는 고대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어찌보면 일본과의 고대사 충돌장면을 이 한권의 책이면 대충은 교통정리가 될 정도로 백제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일본천황가의 내력에서 부터 불교문화의 전파, 철기문명, 의식주등의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문화에 끼친 영향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의도가 그저 자국의 역사를 과대포장하자는 취지보다는 국내와 일본학자들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각종 사서들을 기준으로 좀더 객관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다큐에서 돋보이는 점은 백제라는 국가가 한반도내에 국한되었던 일개의 고대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요서와 월주 그리고 일본에 걸쳐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실제로 그 지역을 통치하였다는 각종 증거들을 고증하면서 고구려에 버금가는 그야말로 대제국 반열의 국가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백제는 삼국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고구려는 우리의 대표적인 진취성을 가진 국가였고 신라는 비록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이루었지만 나름대로의 역활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백제는 의자왕, 삼천궁녀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세뇌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금속공예나 불교문화의 융성등으로 기억되는 문화국가정도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역사적 사관은 그동안 식민사관의 학자들에 의한 사실왜곡의 연장선이었고 이제 서서히 백제라는 대제국의 실체가 하나둘씩 들어나고 있다.
상고사에 대해서 유독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물론 한국사 통사적인 입장에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하지만)강단 학계의 뿌리깊은 노론식민사학은 지금도 여전히 백제의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부인하고 있다. 우리의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지 않는 이유겠지만 왜 중국의 사서나 일본서기의 내용은 굳이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실증사학을 모토로 하고 있다지만 어떤 접근이 제대로된 실증사학인지 그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할 뿐이다.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이 잘못되었고 일본의 역사평가가 억지라고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역사관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그야말로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비단 지방방송의 다큐로 방영되었지만 이러한 시도가 확산되어 일반인들에게 좀더 알려져야 할 것이고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연구하고 실증하는 사관의 폭을 보다 적극적이고 넓게 가져야함을 보여주고 있는 실례가 될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我와 非我의 투쟁이다"라고 했다. 이말은 어쩌면 제대로된 我를 발견해야만 진정한 역사를 보는 눈을 갖게 된다는 말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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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완조 500년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700년 대백제라는 말은 솔직히 엄청많이 생소하고 꺼끌꺼글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살아 남은자 이긴자(승자)의주관에 의해서 쓰여진 것을 알므로 같은 대한민국의 뿌리인 백제에 대해 늦었지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가슴뛰는 시간이었다. 모두 다섯단락으로 소개해 주는 대백제를 만나면서 내내 내 가슴은 뭉클하여 알싸하고 콧잔등은 감기증상처럼 빨게지고 목은 킁킁거리는 기침을 해 대기에 바빴다. 우리의 선조(조상)라고 생각하니 더 뭉클한 것이 진작에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일본의 천왕이 백제의 후손이라는 표현을 이리 대놓고 말 할수 있어서 뿌듯했고, 금강을 지나면서도 전혀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하고 지나친 나 자신이 미워지고 알지못했던 백제인들에게 미안했다. 아무말 없이 정말 유유히 흐르고 있는 금강이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한번 가봐야겠다고 이번엔 지나치지 말고 인사라도 건네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왜라는 섬을 일본이라는 나라로 만들고 그들의 귀족계급 지배계급이 된 백제의 왕조들이나 그 이전부터 그들 땅에 가서 여러모양의 장인의 본이 된 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신으로 불리웠던 백제인들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피터지게 싸우기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도전할 자신감을 가졌던 백제인들,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해서조차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고 움추리고 배척하기보다 먼저 부딪혀 그들 속에서 백제인의 뿌리를 내린 우리의 조상들이 너무자랑스럽다.많은 좋은 영향을 준 문화중에도 특히 나에게 다가온 주산군도(신라군도)는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부분이었다. 중국대륙도 아닌 그보다 더 먼 아랍인들에게까지 경이롭고 환상적인 지상낙원으로 불리웠다는 점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긍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일본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고 중국이 또한 그러한것을 알고 있음에도 단지 국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역사가 왜곡되고 뿌리를 파헤쳐지고 결국엔 콘크리트에 묻혀서 잠자고 지명을 개명하여 우리가 그들보다 우수한 민족이었음을 암암리에 사람들 기억속에서조차 지워지기를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역사에 대해 귀한 줄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세대들이나 특히 나처럼 알지 못하여 무지한 자로 전락할 뻔한 사람들이 읽어서 우리의 뿌리가 이렇게 든든함을 자랑스러움을 알고 아무리 왜곡의 파도가 부딪힐지라도 깨지지말고 잊지말고 소중한 우리의 선조들을 자랑스러움으로 잘 보존해 나가 후손들에게 든든히전달 할 수있었으면 좋겠다.우리것은 소중한 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역사는 비록 아픔의 역사일지라도 충분히 자랑스러움을 잊지않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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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0년 의자왕은 백제와 함께 몰락했다. 패망국가의 수장에겐 어떠한 위엄이나 호혜도 베풀어지지 않았다. 해동증자라 불렸던 의자왕에겐 부패와 타락이라는 오명이 뒤집어 씌워졌다. 어떤 연유에서 구전되었는지 모르지만 삼천궁녀는 한 국가를 패망시키기에 더할 나위없는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무릇 패자는 말이 없다. 그렇다고 역사는 승자의 손만을 들어주진 않는다. 만약이란 추정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린 바꾸고 싶은 시대를 만날 수 있다. 잊힌 제국 백제 역시 마찬가지다. 백제의 역사는 700년이다. 500년 조선이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듯이 한반도 곳곳에선 백제의 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백제를 기억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2010년 우린 왜 백제를 다시금 부활시키고 있는 것일까?
2010년 우린 대백제를 만날 수 있었다.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한 백제의 위상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시공간이었다. 백제의 진면목은 왜(일본)와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왜 그토록 일본과 신라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는지, 사실상 백제 제국이랄 수 있는 일본왕조는 백제왕들과 함께 흥망성쇠를 지속해왔다. 2001년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속일본기라는 일본 정사에 입각해 자신은 백제 무령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한일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당시 천황의 발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언급한 ‘칸무천황’과 그 어머니는 과연 누구였을까?
백강전투(663년, 백제와 일본연합군과 당과 신라 연합군이 벌인 동아시아 최대해전)는 일본과 한반도 관계의 분수령이 된다. 2만7천명의 군사를 백제에 지원한 일본은 전쟁 후 백제 평 씨와 신라 원 씨로 나뉘어 치열한 권력다툼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하지만 칸무천황과 헤이시정권이 이루려던 백제의 꿈은 단노우라 전투의 패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구마모토현엔 칸무천황의 49대손이 백제왕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조용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고구려의 침입과 신라의 압박, 백제는 끊임없는 내외 란을 겪어야만 했다. 백제에 대한 무수한 편견들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문화유산이 ‘불교문화’다. 서기 639년 백제 무왕은 16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대지위에 국내최대의 불교사찰을 건립한다. 무려 36년의 공사기간이 소요된 ‘미륵사’의 건립이다. 미륵사는 불국토를 이룩하기 위한 백제왕조의 염원이었고 전쟁에 지친 백성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쉼터였다. 2009년 1월 미륵사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백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1400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백제인의 꿈을 담은 사리장엄은 문양의 화려함과 금속공예의 정교함 그리고 신비로운 기운으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백제는 마리난타의 인도불교를 받아들였다. 현존하는 한반도 대부분의 유물이 중국을 모방하거나 북방민족을 거쳐서 온 것이라면 백제는 가장먼저 세계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문화가 일본의 핵심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은 물론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백제가 뛰어난 해상국가라는 점이다. ‘백제’라는 국호는 백가가 바다를 건넜다는 ‘백가제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위례성과 마추홀을 중심으로 한 백제 무역은 인도, 인도차이나, 캄보디아, 그리고 중국의 요서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금도 요하 하류 서쪽지역에는 백제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백제 패망 후 1400년이 지난 현재, 다시 백제를 찾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우리들이 후손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고 자존심이고 희망이다. 우린 역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백제는 우리들이 알았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역사를 기록해왔다.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지 않는다고 세계적 역사를 폄하해버린다면 미래는 더욱 많은 시간을 낭비될 것이다. 한반도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백제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사라진 백제의 혼과 꿈을 부활시킨 제작진들에겐 무한한 박수를 보내드린다. 세계는 다시금 동북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대백제의 혼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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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는 백제의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책으로 모두 크게 5장으로 구성되있다.
1장 두나라 한핏줄. 인물속의 백제 2장 불국토 3장 희망의 하이테크 4장 음악, 패션, 의복, 건축 5장 해상강국
장 마다 내용에 관한 설명과 그 설명에 맞게 유물들의 사진들이 수록 되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책 내용에 의하면, 백제는 당시 삼국중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으로 제일 먼저 나라를 잃게 되는 작은 나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백제라는 나라가 얼마나 큰나라였으며 백제의 문화와 유물들과 모든것이 휼륭했었는지 달리 인식해야한다. 백제가 큰나라임을 증명하는 예로 유물 중 무령왕릉과 금속공예작품의 최고라 할수있는 금동대행로 등이다. 한편으론 의자왕과 삼천궁녀에 관한 역사가 왜 그렇게 왜곡됐는지에 당혹을 금치못했다. 흔히들 의자왕은 정사를 안 돌보고 매일 삼천궁녀와 가무를 즐기면서 방탕한 생활을 한 왕으로 알려져 있고 백제가 멸망하면서 삼천궁녀와 의자왕은 같이 자살한 걸로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의자왕은 효성이 지극하고 성자로 유명하며 삼천궁녀는 역사에 없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의자왕은 자살이 아니라 태자와 그 밖의 백제인들하고 중국으로 끌려가 병사했다고 한다.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나라가 신라연합국에 망한 것이 아니면 무슨 이유로 망했는지 이 책에선 알리지 않는다. 보다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하다.
백제는 700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고대국가이면서 다른 국가와도 활발한 외교 활동을 했으며 강력한 해상국가였다. 더불어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을뿐더러 다른 국가에도 자국의 문화를 전해주었는데 특히 일본에 제철제강기술, 음악, 패션, 의복 건축등을 전해주면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요약해보면 백제는 나라를 잃게되는 비운의 나라였지만 찬란한 문화를 가졌으며 최강의 제철제강국, 해상국으로서 일본뿐만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큰 나라였던 것이다. 게다가 한때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의 왕실 또한 백제왕족의 혈통이고 일본의 언어와 모든 문화가 백제 즉 우리나라에서 기인한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 밖에 대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그 문화가 다른 나라로 전파된 경위와 유물들의 실제적인 사진들이 책의 이해를 도왔고 의자왕에 관한 잘못된 역사 지식을 바로잡을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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