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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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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화책속에 등장하는 임금님은 벌거벗은 임금님만 제외하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어느 나라 왕인지도 모르면서 화려한 보석왕관과 짐승의 보드라운 털로 끝마무리를 한 망토를 입은 자태가 멋져보였는지 그런 비슷한 흉내를 내며 왕과 왕비놀이를 하며 한 시절을 보냈다. 서서히 자라면서 위인전이라는 전집이 유행했고  내 손에 쥐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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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화책속에 등장하는 임금님은 벌거벗은 임금님만 제외하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어느 나라 왕인지도 모르면서 화려한 보석왕관과 짐승의 보드라운 털로 끝마무리를 한 망토를 입은 자태가 멋져보였는지 그런 비슷한 흉내를 내며 왕과 왕비놀이를 하며 한 시절을 보냈다. 서서히 자라면서 위인전이라는 전집이 유행했고  내 손에 쥐어진 조선의 왕중 세종대왕의 업적을 읽게 되었다. 큰 감흥은 없었지만 한글 창제와 과학적 기기들이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기는 했다. 고단한 학창시절에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왕들이 왜 위대했는지, 왜 폭군이었는지, 왜 죽었는지, 왜 죽였는지에 대해 논한다거나 분석하는 일보다 자세한 시대적 상황들을 외워야 했으니 별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점 성인이 되어가면서 바쁜 일상과 밥벌이때문에 책보다는 TV쪽에 가까이 다가가 정사에 야사를 섞어 버무린 대중적인 역사드라마에 심취했다. 그나마 과거 당시에는 시대적 정치상황을 정사와 야사로 나누어 설명해주는 나레이터가 있어서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편이지만 요즘의 역사드라마는 봇물터지듯 만들어지지만 고증도 부족하고 야사도 아닌 픽션 그 자체를 다루는 일이 고작이다. 그래서 싱겁기 그지없다.

역사를 진실되게 알아야 한다는 말은  다양한 시선을 인정하고 고증과 자료들을 통해서 사실적인 것과 추측가능한 것을 분리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정황으로 섣불리 추측을 한다거나 주관적인 역사판단은 아무래도 공감대 형성과  바른 역사관을 갖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무리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이 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2>은 1권에 이어 당대 쓰여진 실록과 자료들을 제시하며 있었던 사실에 대한 그 시대의 왕들을 테마별로 나누어 정리한 책이다. 삼종혈맥을 이어간 왕들의 계보를 시작으로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 성공한 임금들,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로 정리가 되어있다. 1권의 편집자료들이 거듭 활용되는 일도 있고 정조임금부분에서는 이미 읽었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내용및 자료사진들이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점도 보인다. 같은 저자의 작품이었기에 좋은 점은 역사적 사실들을 복습하고 일관성있게 진행되는 저자의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꼼꼼하게 읽은 덕분인지 꽤 겹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래서 몰입도는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다. 숙종임금의 미인계 정치는 엄마랑 함께 보던 드라마속 장희빈이나 인현왕후때문에 편견의 강도가 심한데 선과 악으로 갈리게 한 극단적 판단이 일조를 한 셈이다. 정치상황에 선과 악이란 우스운 게임의 소재 아닐까. 영정조시대는 조선 후기를 찬란하게 했던 성공한 왕의 케이스라고 배웠는데 그래서 영조와 정조를 묶어서 외우게 하지 않았는가. 알고 보니 영조임금은 그렇게 평가할 수만은 없던 인물이었다.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던 조선 왕들의 근저에는 여인들의 정치 암투와 사건사고가 많았다. 영조임금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차후 망국의 물고를 터준 인물이지 않았을까 생각되고 나라를 망해드신 고종임금의 명성왕후는 우리가 순진하게 알고 있는 그런 분과는 꽤 차이가 있다.
나라를 닫은 임금으로 고종임금부분에서는 자질부족이 확실한 자가 권좌에 44년동안이나 머물면서 야금야금 나라를 말아먹는 과정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실로 통탄을 금치 못하겠더라.

조선의 임금들을 통해서 조선 왕조의 정치적 상황이 가여운 민초들의 삶속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 지, 정보력이나 기동성이 떨어지는 상황속에서도 바른 판단을 하고 행동했던 전장의 백성들과 변화를 꿈꾸며 이상을 향해 나아가던 천재들의 발자취를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이런 역사서를 읽고 얻은 개인적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딱히 중심이 잡히질 않는다. "정치는 밥이다"라고 누군가 써놓은 글귀가 표피적인 의미만 내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밥만 먹여주면 만사 오케이가 아니라는 것을... 정신적 가치가 있는 밥상을 논해야 할 시기 아닐까.



b*******e 2011.10.16. 신고 공감 10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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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2]대한민국 지도자의 자질을 말하다
"[조선 왕을 말하다2]대한민국 지도자의 자질을 말하다" 내용보기
이덕일 저자의 대중역사서 읽기를 좋아하여 출간 즉시 구입하여 읽곤 했으나 이번 <조선왕을 말하다>의 경우에는 좀 머뭇거리다가 시내 서점에서 들춰본 후에야 주문하게 되었다. 목차에 소개된 9명의 왕들 중 예종, 세종, 태조의 3왕을 제외하고는 다 저자의 전작들에서 이미 다루었던 왕들이기에 같은 내용이 또 실려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기 때문이었다. 또 신문 연재되던 당
"[조선 왕을 말하다2]대한민국 지도자의 자질을 말하다" 내용보기

이덕일 저자의 대중역사서 읽기를 좋아하여 출간 즉시 구입하여 읽곤 했으나 이번 <조선왕을 말하다>의 경우에는 좀 머뭇거리다가 시내 서점에서 들춰본 후에야 주문하게 되었다. 목차에 소개된 9명의 왕들 중 예종, 세종, 태조의 3왕을 제외하고는 다 저자의 전작들에서 이미 다루었던 왕들이기에 같은 내용이 또 실려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기 때문이었다. 또 신문 연재되던 당시 부분부분 읽어 보았던 점도 선뜻 구매 클릭하지 못한 이유가 되겠다.

 

그러나, 읽어보니, 이같은 머뭇거림은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의 대부분의 저서들이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기에, 앞서 저서의 내용을 요약 재탕한 정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역사서는, 사실을 재현하기만 하는 객관적인 책이 아니다. 같은 시대를 같은 저자가 집필하더라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여 서술할 수 있는 법. 이들 9명 조선왕들의 정책과 국왕을 견제하기도 하고 국왕에 협력하기도 하는 사대부 정치세력을 눈으로 따라 읽어가다보면 결국은 조선의 왕이 아니라 지금 현실의 지도자와 정치판이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볼 수밖에 없도록 저자는 독자인 나를 이끌어 주었다.

 

책의 순서는 일반적인 '태정태세 문단세'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이 점에서부터 저자의 확실한 집필 입장이 느껴진다. 1부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은 효종, 현종, 숙종 시대를 다룬다. 저자는 숙종 이후 궁내에서 선대왕들의 후계를 논할때 운운했던 바로 그 '삼종 혈맥'이란 고리타분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내 생각에서는 인조 시절에 발생한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이후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삼종의 혈맥'이란 표현을 한 것 같다. 즉, 그 혈맥은 인조반정과 소현세자의 독살로 시작된 왜곡된 정치사란 비극의 혈맥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인조반정세력이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합리화하기위해 내건 북벌이 사실은 집권 세력의 기득권 수호에 밀렸다는 점, 자신들이 세운 왕과 그 후손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아 소모적인 예송논쟁이 일어났다는 점은 권력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점이라고 하겠다. 

2부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편에서 저자는 예종과 경종의 독살설을 다룬다. 그런데 그저 흥밋거리로 국왕 독살설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당시 집권층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학자들의 사료 연구를 통해 독살설의 진위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왕 급서후 얼마나 급격히 전 국왕의 개혁정책이 어떤 세력에 의해 폐기되었는가가 진실을 밝히는 데에 더 중요하다는 점을 말한다. 독살설 부분에는 정조가 빠질 수 없는데, 저자는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이미 다루었기에 그런지, 정조는 성공한 임금들 카테고리인 3부로 넣었다. 이런 구성만 보더라도 저자의 의도가 확연히 느껴진다.

 

3부인 ‘성공한 임금들’은 세종과 정조라는 성공한 군주를 통해 성공한 리더의 조건을 성찰하게 해 준다. 세종은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에서 배경으로 약간 나왔을뿐 저자가 오롯이 다룬 저서는 아직 없기에 읽으면서 신선한 느낌이 들어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인재등용에 있어서 신분보다 능력을 우선하는 세종에게서 지도자의 바른 자세를 볼 수 있었다. 아마 어느 정도는 아직 신분질서가 유동적인 개국 초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종편을 읽으며 이 저자가 다음에는 세종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을 집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반면 정조 시대의 경우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사도세자의 고백> 등 전작에서 여러 번 다루었기에 조금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왕의 정치력과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라는 면에서 보니 새롭게 읽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새로 발견된 심환지와 정조 사이의 어찰에 대한 견해가 기존 사학계 비판과 더불어 강한 어조로 실려 있었다.  

 

마지막 4부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에서는 나라를 연 왕인 태조와, 순종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의 시대에 나라 문을 닫게 만든 왕인 고종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태조의 경우 백성의 삶을 개선시키는 실질적 정책을 시행하여 민심을 얻은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집중된 권력을 사적인 용도로 썼다는 점은 비판하고 있다. 작년에 강제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이하여 유행처럼 고종 재조명 책들이 발간되었는데, 일부 책들은 고종을 개화군주로 묘사하며 고종의 독립운동 지원 부분을 강조해 서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히 고종을 자신의 전제 왕권에만 집착한 군주로 평한다.

 

이상의 책 내용을 보면 역사책이란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사실을 저자의 사관에 따라 재해석하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책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뛰어난 정치가나 지식인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의 내면을 관통하는 흐름을 간파할 줄 안다. 내면의 흐름이 현상의 본질이다. 현상에 집착하다 보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대원군 집권기는 조선왕조 자체의 존립이 의문시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은 왕권 강화를 문제의 본질로 인식하면서 실패한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 - 본문 408쪽

 

이 책을 읽는 독자 또한 이 책의 겉에 드러난 조선왕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면에 흐르는 집필 의도를 파악하며 읽어야 하겠다. 과연 저자가 이 조선왕들의 정책과 집권 노론당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조선왕만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 이 시대의 지도자의 자질과 개혁을 견제하는 기득권층의 오랜 정치작전의 역사를 말해주는 책으로 내게 읽혔다.

 

 

*** 436쪽 맨 아랫부분

'그는 사쓰마와 조슈번 출신인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 등이 메이지 유신을 일으켜' 이 부분, 이상함.

=>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는 둘다 조슈번 출신이다. 그리고 요시다 쇼인은 1858년 일명 안세이 대옥 사건으로 인해 메이지 유신 10년 전에 사망하므로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지 않았다. 유신을 이끈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m******n 2011.01.31.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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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매일의 현대사를 역사로 읽는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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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달리 2권은 분량이 꽤 된다. 대개 연결된 책이 같은 분량임에도 그런건 그만큼 저자가 할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맘에 드는 부분은 저자가 각 편명앞에 그의 사관과 의견을 담은 글들을 읽으며 명확한 자신의 신념을 역사를 통해서 피력하는것이 아닌가한다.  1권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교과서적인 기술과의 차이가 있다. 역사의 이해를 그 시대의 눈으로 보아야할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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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달리 2권은 분량이 꽤 된다. 대개 연결된 책이 같은 분량임에도 그런건 그만큼 저자가 할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맘에 드는 부분은 저자가 각 편명앞에 그의 사관과 의견을 담은 글들을 읽으며 명확한 자신의 신념을 역사를 통해서 피력하는것이 아닌가한다.  


1권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교과서적인 기술과의 차이가 있다. 역사의 이해를 그 시대의 눈으로 보아야할 일이지만 이를 통해서 나아갈 바를 설정하고자한 저자의 의도가 명확해 그시대의 평가를 통해서 현재를 반추하려고 하는 것을 나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원자바오의 말처럼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반성하여, 내일을 준비하자고 한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갈팡질팔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2권은 삼종혈맥의 시대로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 2권 1부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북벌을 논하던 효종, 사실 큰 인지도 없던 현종, 환국을 통해 당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숙종의 한계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우암 송시혈선생에 대한 부분을 읽다보면 천원짜리가 급 싫어지긴합니다. 이걸 인지상정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어려서 사당근처를 지날땐 좋은 학자라고만 듣고 살았는데요. 각 편의 내용속에 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설명과 숙종때 청내란의 정세와 조선의 정세의 흐름을 등 좀더 세밀하게 역사를 인식한다는 점도 호감이 갑니다.


2부는 예상과 같이 독살설의 증거로 추정되는 구체적인 근거가 실록에 존재하는 왕에 대한 설명이다. 이를 통해서 성리학의 기초와 사대부들의 사회가 권력쟁탈의 전장에 있음을 반증하는데, 그건 한편으로 인간 본성을 사회제도와 시스템으로 억제하지 못하는 것을 반증하는것 같습니다. 물론 예상대로 저자의 사관이 노론일당으로 인한 폐망의 조선을 설명 또는 노론 망국론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같으면 발전이 없고, 물이 고이면 썩는 원리를 자명하게 보여주는것 같습니다. 당쟁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현재의 눈으로 구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시대의 눈으로 볼때 폐해가 더 크다는데 방점을 찍을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다만 이 장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의 전작을 보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부분이 곳곳에 남아있긴합니다.


3부는 이책의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조의 설명중 영토에 대한 부분에 대한 고증은 저자가 쓴 상고사에 대한 책들에서 우리민족의 웅혼한 역사를 찾기 위한 노력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세종이 뛰어난 성리학자 언어학자의 능력을 넘어 인본주의의 실현을 가장 구체적으로 기술했다고 생각한다. 정조조의 편에서는 당시 남인 채제공의 등용만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았으나 실록등의 근거를 통해서 당시 왕권의 위치를 좀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전제군주가 서양과 동양엔 차이가 참 많은듯해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조선의 왕권이 서양보다 민주적이었다고 봐야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왕을 제1사대부로 보는 노론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당시 시대의 눈으로 보면 당연하고, 正을 쫒음에도 파당의 겁박이 고상한 방식으로 통하는 것을 보면 세상의 순리가 통하는지 안타깝다. 책속에 공자의 문답을 통해서 죽음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옳음에도, 지속적인 옥사와 사화, 이상적 명리에 묶에 다름은 죽음으로 이어가던 역사를 끊어내지 못함이 아쉽고, 신분을 나타내는 비단옷과 관을 쓰고 적의 뿌리까지 토벌하는 것을 보면 조선후기 성리학과 현대의 마피아의 나와봐리 전쟁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물론 요즘의 현실정치도 대동소이하다고 봅니다.


4부는 조선의 시작과 마지막을 통해서 책을 마무리하고 맨 마지막을 통해 새로움을 갈구하는 저자의 의지가 보인다. 마지막 고종시대를 매천야록의 근거를 많이 인용한것과 책에 간간히 교과서의 사관을 식민사관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그의 다른 책에서 언급한 한국사 4가지 왜곡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또 태조의 베개머리 송사부분을 보면 많은 조선왕들이 왕권유지와 대를 잇기 위한 중혼이 많은 파국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나는 난잡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자가 말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주자의 폐해가 계속된것이봐도 무방하지 않을까하다. 예는 없고 수단의 근거가 너무 많이 보여서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고종시절은 화딱지가 난다. 청의 마지막황제의 영화처럼 가련한 생각은 들지 않고, 책속에서 바라던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나락으로 가는 시절이 때문인것 같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도 신랄하다. 나도 그녀를 시대의 아픔으로 인정하기 보단 시대의 폐해로 인정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녀의 비참한 운명, 개인에 대한 동점심과 역사는 결코 혼용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경술국치 이후 망국의 날 500년 선비의 나라에 선비가 살아있음을 증명한 매천황헌선생이 더 존경스러우니 갑갑한 일이고, 저자의 말처럼 현재가 500년의 현대사를 읽고 그 미래인 오늘과 내일이 나아졌는가 깊이 생각해볼 일이라 본다. 마지막으로 이책 2권을 읽기전엔 꼭 역사교과서라도 보아 그 차이를 좀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읽고난 후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500년 오늘의 기록을 대략적으로 보았는데, 근심이 많은 오늘은 무슨 연고인고?!

k***i 2012.06.14.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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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에게 성군이라 불리는 지도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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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조선왕 - 효종,현종,숙종,예종,경종,세종,정조,태조,고종 - 에 대해 저자의 연구와 독자의 견해를 종합하여 나온 책입니다.  이책을 읽기전에 조선왕 암살사건을 통해 예종과 경종의 이야기를 접했고, 사도세자의 침묵, 소현세자, 김종서 의 책을 보면서 효종,정조,예종에 관한 내용을 읽게 되서 과거 읽은 책의 다시한번 보기도 되었거니와 지도자라면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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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명의 조선왕 - 효종,현종,숙종,예종,경종,세종,정조,태조,고종 - 에 대해 저자의 연구와 독자의 견해를 종합하여 나온 책입니다.  이책을 읽기전에 조선왕 암살사건을 통해 예종과 경종의 이야기를 접했고, 사도세자의 침묵, 소현세자, 김종서 의 책을 보면서 효종,정조,예종에 관한 내용을 읽게 되서 과거 읽은 책의 다시한번 보기도 되었거니와 지도자라면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미약한 왕권으로 인해 신하와 치열하게 싸운 조선의 왕들.. 유럽은 새로운 계층과 백성들의 투쟁으로 왕권을 넘겨받아 공화정의 시대로 접어들어 산업혁명을 통해 나라가 부강하는 길로 접어들지만, 조선의 노론세력은 왕과 권력에 대한 투쟁의 결과를 철저하게 자신들만을 위해 독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의 삶은 비참해질 정도로 추락하게 되며, 결국 개화된 서양 및 일본세력에 대응하지 못해 나라를 그대로 일본에 헌납하게 됩니다. 

  조선으로서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정조는 1800년에 허무하게 죽고, 아직도 그의 죽음은 독살설의 뒤끝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세력의 용서를 통해 화합의 정치를 지향했던 정조는 결국 죽게되며, 그가 진행한 개혁은 다 원위치가 됩니다. 

  너무 성급하게 왕이 지향하는 바를 추진하려다 죽은 왕으로 예종을 들 수 있습니다. 부왕인 세조와 공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다 결국 공신세력에 의해 죽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죽인 국모의 아들인 경종 또한 불행하게 가게 됩니다. 물론 정조도 암살위기도 지속적으로 받죠. 

  집단의 이기주익적 사고는 항상 도전을 받게 되어 왔으며, 도전세력을 무력하게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심지어 왕조국가의 왕조차 그들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게 되죠.  지금의 한국은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한국만큼 드라마틱한 현대사를 겪은 나라가 있을까요?  자산폭락이 동반되는 디플레이션 시기만을 겪지 않는 한국은 약 100년동안 모든 일을 겪은 나라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항상 위에서만 남들위에  군림하는 계층이 분명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응징보다 과거에 대한 사과 그리고 이를 기반한 용서 화합만이 향후 한국이 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기때문에 아직도 우리사회는 서로를 불신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반성과 용서 그리고 화합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할 수 없는 길인것 같습니다.

d*****b 2011.09.29.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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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2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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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언제 봤나 싶어 살펴보니 무려 4년전이다. http://blog.yes24.com/document/2334140 마찬가지로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당시와 별다르지 않다.   이 책에는 효종, 현종, 숙종, 예종, 경종, 세종, 정조, 태조, 고종까지 총 9명의 조선 왕을 다루고 있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던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수 있다고 하던데 조선시대의 권력다툼을 보고 있자니 그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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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언제 봤나 싶어 살펴보니 무려 4년전이다.

http://blog.yes24.com/document/2334140

마찬가지로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당시와 별다르지 않다.

 

이 책에는 효종, 현종, 숙종, 예종, 경종, 세종, 정조, 태조, 고종까지 총 9명의 조선 왕을 다루고 있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던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수 있다고 하던데 조선시대의 권력다툼을 보고 있자니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게 뭔지, 사람의 권력욕이라는게 참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오늘날의 정당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인이며 남인이며(북인도 있다.) 나뉘어 서로를 잡아죽이는데 힘쓰고 또 그 사이에서도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걸 보고 있자니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참 씁쓸하더라는. 나중에는 왕의 지위마저 자신들보다 조금더 높은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독살설이 파다할 정도로 전횡을 휘둘렀다고 하니 조선이라는 국가가 500년이나 이어왔다는 사실을 과연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것인가라는 의문마저 가지게 만들었다.

 

예종 같은 분이 조금더 오래 살았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싶기도 했고, 고종 같은 경우는 물론 시대적 한계가 있었겠지만 정말 나라를 말아먹은 대표적인 왕이 아니었나 싶더라는. 같은 저자의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 심지어 조금 다른 시각에서 고종을 다룬 책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종이야 뭐 워낙 성군으로 알려진 관계로 크게 흠잡을건 없었지만 사대부에 밀려 종부법에서 종모법으로 다시 바꾼 사실은 안타까운 오점으로 기억해둘만했고.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을 보니 자신의 권력욕에 취해 사람의 목숨을 쉽게 앗아갔던 사람을 모신 사당인지 서원인지가 전국 각지에 있는것 같은데 공은 공대로 사는 사대로 정확하게 관련 내용을 함께 안내해주면 좋을것 같다.



b******o 2014.0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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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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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 [독살설에 힙싸인 임금들],[성공한 임금들],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 - 이 책은 시대 순이 아니라 이런 비슷한 성격의 임금들을 묶어서 편집이 되어 있다. 처음엔 시대순이 아니라 의아했지만, 이런 구성이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본 역사책보다 이외로 더 읽기는 편한 점도 있었다. 『조선 왕 독살 사건』을 읽고 나서 접하게 된 책이라 더욱 흥미로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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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 [독살설에 힙싸인 임금들],[성공한 임금들],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 - 이 책은 시대 순이 아니라 이런 비슷한 성격의 임금들을 묶어서 편집이 되어 있다. 처음엔 시대순이 아니라 의아했지만, 이런 구성이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본 역사책보다 이외로 더 읽기는 편한 점도 있었다.

『조선 왕 독살 사건』을 읽고 나서 접하게 된 책이라 더욱 흥미로웠고, 재밌게 읽혔다. 안타까운 부분도 많지만, 절대권력에 대한 야망과 음모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며 역사를 접하게 되는 부분은 그 이전에 사건 암기식으로 접하던 역사를 흥미롭게 찾아서 읽게 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v****e 2011.10.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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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행복한 나라를 말하다.
"백성이 행복한 나라를 말하다." 내용보기
우리는 넓은 광야와 푸른 하늘이 있는 행복의 나라에서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역사의 강물 속에서 백성의 생활은 고달펐다. 그들의 존재는 거대한 소용돌이 강물에 떠다니는 일엽편주(一葉片舟)와 같은 존재였다. 한 조각의 배는 강물의 생채기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하다가 혁명을 꿈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배층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온몸으로 부대껴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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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넓은 광야와 푸른 하늘이 있는 행복의 나라에서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역사의 강물 속에서 백성의 생활은 고달펐다. 그들의 존재는 거대한 소용돌이 강물에 떠다니는 일엽편주(一葉片舟)와 같은 존재였다. 한 조각의 배는 강물의 생채기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하다가 혁명을 꿈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배층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온몸으로 부대껴야 했다. 그들은 지금도 날마다 오르는 물가에 한 푼 두 푼이 아쉬워 물건 하나하나 책 한 권을 사더라도 계산기를 일일이 두드리고  따지고 도 따지며 혹시 할인 쿠폰은 없나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그들에게서 물가의 고공행진은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다. 그런데 서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직 관료 엘리트들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종속적인 영향을 받을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민들은 어떤 정치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활의 물적, 질적인 수준이 달라졌다. 爲民(for the people)의 자질을 갖춘 군주가 등장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백성들을 위한 정치가 시행되었다. 하지만 지난 5천년 역사에 여러 왕조[國家]가 있었고 통치자[대통령]도 많았지만 위민의 정치를 실시한 통치자는 극히 드물었다. 통치자들은 자기만의 스타일과 철학이 있었고 기득권 세력을 배제하고 약자, 자신도 모르는 약자를 위한,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 통치자가 있었는가 하면,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통치자가 있었다.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시대를 앞서가 당대의 국민들에게는 과분한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국가와 국민을 나락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제 우리는 국민주권이라는 권리의 힘으로 우리의 통치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 것은 우리를 위해서 일할 통치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과거 역사만의 얘기는 아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공자는 '君君臣臣民民'이라고 했다. 군주는 군주의 역할을, 신하는 신하의 역할을, 백성은 백성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 국가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일정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이들 어느 하나가 없는 국가는 존재하기 어렵다. 각각의 계층은 국가 내에 자신의 계층만의 역할이 있다. 각각의 계층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질서이고 근본이며 미래 질서가 시대의 구성원을 보존해 주는 것이다. 마땅히 통치자는 신하와 백성을 포함하는 모든 계층이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는 가진 자와 그러지 못한 자를 모두 아우르고 그들의 미래에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국가의 지도자는 초월적 지위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자신의 애욕을 위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정권은 강화할 수 있겠지만 더이상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니고 시정잡배와 매한가지이다. '조선왕을 말하다'에서는 조선 역사에서 국왕과 신하들 사이의 역학 관계와 치세에 성공한 국주들의 고뇌를 많은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살펴보고 21세기 선진국을 꿈꾸는 우리들이 바라는 미래의 정치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역사는 '특권'의 물결과 '능력'의 물결이 대결을 이루는 장이다. 혈통, 신분으로 형성된 카르텔에 '능력'은 끊임없이 도전하였다. 군주는 능력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군주의 바로 밑에서 특권을 형성하던 기득권은 군주의 선정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했다. 심지어 기득권세력은 군주를 독살하는 행태를 보였으며 자신들보다 열위에 있는 경쟁자들이 민생 안정이라는 개혁을 주장하면 모함과 정치 공작으로 그를 죽게 하였다. 이처럼 조선 5백년의 정치사에서 군주와 신하, 기득권 세력들간에는 수 없는 권력 투쟁의 길을 걸었다. 그 투쟁의 관계에서 서로 공존의 길을 걸었던 적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권력투쟁에서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집권세력, 특히 서인 노론의 승리로 끝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군주는 과감히 제거하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실과 다르게 기록하였다. 다만 정황상으로만 그들의 만행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예종이나 경종의 경우에는 독살의 정황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명징한 증거는 없다. 역사 서술의 주체가 왕을 살해한 기득권이었기 때문이다. 태종, 세종, 예종 인조나 숙종이 주장했던 왕권강화나 효종, 현종이 고집을 부렸던 북벌정책 모두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국민]의 행복을 위한 과정이어야 했다. 하지만 아쉽게 이 모든 것들은 순수하게 그들의 기분이나 명분을 위한 것이었고 오히려 백성들의 피와 살이 그것을 위한 수단적 가치에 지나지 않았다. 백성의 피는 단지 금 잔의 아름다운 술이고 만백성의 원망소리는 옥 쟁반 위에 기름진 안주에 지나지 않았다.

 

병자호란 이후에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조선 후기의 왕들은 기득권 세력의 헛기침에 가슴을 쓸어 내리고 밤마다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존재였다. 집권세력인 서인은 표면적으로는 효종을 국왕으로 섬겼으나 내심으로는 차자로 낮춰 보면서 왕도 하나의 사대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자신들과 똑같은 예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실질적으로는 왕을 왕으로 보지 않았다. 두 번의 반정[쿠데타],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그들에게 더이상 왕은 왕으로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의 지배와 탐욕의 추구를 합리화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행태는 오늘날에도 계속되었다. 기득권 세력은 두 번의 국난, 경술국치와 한국전쟁으로 성역을 이룬 다음에는 국민도 국민으로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도 대통령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에 영합하는 대통령만 대통령으로 인정하였다.

 

숙종 집권 기간에 벌어진 西人과 南人간에 벌어진 아슬아슬한 정치공작의 드라마는 단지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로 치부하기에는 절체절명으로 다가온다. 음모와 허위 고변(告變)으로 점철되는 분열의 정치와 증오의 정치가 극에 달하였다. 숙종은 이를 천연덕스럽게 즐기면서 정치권을 분열시켜 왕권 강화를 꾀하였다.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으로 치부되는 정권교체에는 수 많은 유생들의 생명과 목숨들이 이승과 저승을 공유하였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죽음이 죽음을 부르는 망난이의 굿판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런 정치무대를 물려 받은 경종은 집권세력에게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득권 세력은 헌정 질서를 무시하고 수당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정잡배도 주저할 수단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여 경종을 왕좌에서 끌어내고 연잉군을 옹립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기득권 세력은 국왕보다 자신들이 위에 있으며 국왕은 유한해도 자신들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다. 노론 일당체제를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물려받은 정조가 권좌를 유지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벌이는 러시아 룰렛 게임이었다. 이들의 룰렛게임으로 조선은 망국의 길로 치달았다. 서민들의 변혁 욕구는 날마다 강해지고 국제 사회는 제국주의의 물결로 흘러 갔지만 그들만의 리그는 계속되었다. 변화의 시대 흐름에 둔감한 정치는 인재이고 소빙기에 불어닥친 천재지변과 함께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목숨을 거는 도박판으로 내몰았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p285) 백성들이 정부에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욕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혹한 세금,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시장 물가와 주택 가격에서 벗어나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고 소득에 걸맞는 세금을 원할 뿐이다. 백성들은 법을 잘 지킬 테니 자신들도 법을 준수해달라는 것이다. 즉 기득권층은 가렴주구하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탐욕과 만족, 즐거움은 백성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채우지 말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채우라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기득권층은 눈곱만큼의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영세한 병작농에게만 뒤집어 씌우던 진상을 토지, 즉 재산의 보유 상태에 따라 부과하려던 대동법이 전국에 실시하게 된 것은 처음 시행한 이후로 꼭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국방의 의무에서도 모든 국민에게 부담지울 수 있게 된 데에도 수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부를 축적하는 데에는 하룻 밤 사이에 행해졌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에 관계없이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하는 데에도 온 나라가 시끄럽다. 소득 상위 30%에게 급식을 하는 것은 안된다거나 표장사를 한다거나 하면서 온갖 태클을 건다. 그러면서도 부자들에게  중등 무상교육을 하거나 감세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의를 하지 않고 당연하게 일사천리로 실시하였다. 실은 서민들에게 약간의 떡고물도 허락하지 않고 모든 것은 기득권이 독차지하려는 심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옹색하고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군주 27명 가운데에 기득권 세력인 관료들에게 끌려만 다니다가 反爲民의 정치를 행한 군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권력은 나눌 수 없다고 하면서 사돈, 처남들도 형장의 이슬로 보낸 아버지 태종이 탄탄하게 물려 받은 세종은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만의 위민의 정치를 실시하려고 했다. 역사상 최초로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통하여 공법을 실시하기도 했다. 세종은 역사책을 읽고 지식경영을 통해 미래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는 독서는 시간이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업무의 연장으로 보았고 무릇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前代 치란(治亂)의 자치를 보아야 하고, 그 자취를 보려면 오직 사적(史籍)을 상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p233) 역사를 통해 국가 중흥의 요체는 미래의 지식인 양성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집현전의 내실을 강화하여 실질 부서로 만들었다. 그는 춘추좌씨전, 초사, 통감강목 등의 역사서를 수 백번을 읽었고 치평요람이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정조는 아버지의 현륭원의 배후 도시로 화성을 건설하면서 백성의 강제 부역을 금지하여 임금노동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정부예산을 전용하지 않고 내탕금과 정번군의 납부금으로 비용을 마련하는 서민 프렌들리를 실천하였다.     

 

강물은 흐르고 흘러서 예전의 강물이 아니다. 조선의 왕은 운명이나 숙명처럼 소수의 권력투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최고 권력자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그만큼 서민들은 자신의 운명에 어느 정도 선택권을 주장할 수 있는 강물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 강물은 예전에 것에 비해서 그리 깨긋해 보이지는 않는다. 인재를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고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취하고 심지어 자신을 반대한 사람들도 중요한 세종의 십분지 일이라도 따라하지 못할지라도 정치 보복을 근절하고 배척하지 않아야 국가는 한층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땅의 특권층은 '학력', '지역 감정'으로 카르텔을 형성하여 다수의 서민들이 살맛나게 노래 부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최근의 역사에서도 이 특권 카르텔에 도전하였다가 과거 선배들처럼 이승의 소풍은 아름답게 끝나지 않고 슬픔만 남겨 놓았다. 그는 '바보'라는 별명이 자신이 이름 앞에 붙는 것을 좋아했던 통치자였다. 그는 집권 초기에 '평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그는 통치자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권위주의의 대표주자인 그들과의 대화에서 검은 정치권력을 양지로 끌어 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엄청난 오판이었다. 그 일로 인해서 그의 권위만 상실되었고 권위주의는 쾌재를 부렸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는 그의 후임자의 홍위병 노릇을 하는 검사들에 의해서 창피를 당할 뻔 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최악의 선택을 하였다. 이 땅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어떤 가수의 외침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하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정당정치는 여야의 공존이 전제 조건이다.(p124.)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공존의 본질이다. 그런데 정치 독식의 야욕은 언론을 장악하고 상대를 제거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여 정치 생명과 자연의 생명을 끊어 놓으려고 한다. 이런 야욕에서 배태되는 정치 현실은 수사 권력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무슨 범죄이냥 과대 포장하여 까발리고 기득권 언론은 그것을 다시 과대 포장하여 전직 최고의 통치자에게도 온갖 누명을 씌우고 파렴치범으로 몰아가서 창피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죽음의 골목으로 몰아 넣고 있다. 공자는 정치를 하면서 죽임을 수단으로 쓰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도덕을 제일로 삼는다는 '보수'를 자처하고 '정직'을 가훈으로 삼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도덕과 정직을 타인에게만 강요하였다. 이웃의 중국이나 일본은 역사를 조작하면서가지 역사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 땅에서는 역사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권불십년'이라는 역사가 주는 교훈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예전에 화려하고 예리하게 한바탕 추었던 칼의 춤은 자신의 영혼을 달래는 굿판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모른 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교훈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대한민국의 정치 마당은 서인과 남인이 생사를 걸고 정치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처럼 공존의 틀이 붕괴되었고 상대를 죽여야 자신이 사는 제로섬 게임의 장으로 변했다. 허위의 정치 공세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소수 몇몇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인 나라인데 백성이 소외되고 있다. 기득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려는 정적을 매장하고 정권을 강화하였지만 국민들의 고달픈 현실은 더욱 수렁 속으로 빠져간다. 민생안정을 위해 내세우는 복지정책으르 해괴망측하고 5천년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출처분명의 단어인 '포퓰리즘'으로 매도한다. 정치 지도자가 기득권 세력과 야합을 하는 경우에 서민들의 생활은 알게 모르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또한 기득권 세력의 저의를 알지 못하고 그들의 달콤하게만 들리는 사탕발림에 뇌화부동하는 서민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피와 살을 파먹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날마다 조금씩 불을 향해 날아 가고 있는 불나방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칼날이 자신의 목전에 왔을 때야 알아차린다. 하지만 이 때는 이미 생활의 터전이 확고한 형세를 갖추고 있어서 판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정권의 강화와 국민의 생활은 따로 노는 괴리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집권 위정자들은 중산층의 몰락하고 극빈층이 증가하는 것은 국가 발전을 가로 막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직 절대적 자유하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탐욕을 극대화 하고 파이를 크게만 하여 개인들의 효용의 합만이 최대가 되는 것이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의 찬가를 합창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강물은 지금도 서민들의 삶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하고 야속하게 흐르고 있다. 춘추시대의 공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다.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것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마치 모든 국민의 이익인 냥 과대포장하고 자화자찬하고 자신들의 과오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노래 소리가 높아만 지지만 다른 쪽에서는 원망소리도 제대로 못하고 숨죽이고 납작업드려 있어도 시계는 돌아가고 새로운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말로만 아닌 행동과 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지도자가 선택되기를 원한다. 자기들만의 리그, G7이니 G20이니 하면서 자기들만의 선진국을 말하지 말고 서민들도 함께 선진국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지도자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탐욕을 개걸스럽게 인정하는 것보다는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항상 든든하게 하고 시장 바구니에 원하는 것을 어렵지 않고 가격표에 한숨 쉬지 않고 채울 수 있게 해주는 지도자를 원한다.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에 더 나은 삶을 보장하여 애를 낳아도 걱정하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희망한다. 평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선택이지만 선택은 시간은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에 평생의 고뇌가 결정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서민들에게는 선택의 안목이 부족하다. 참과 거짓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누가 서민들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지도자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 놈이 되는가 싶으면 허당이고 저 놈인가 싶으면 그 놈은 더 악날하다. 이래 저래 고민만 늘어가지만 이 놈이 아닌게 벼 하며 자신의 손목아지를 자르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속지 말고 제대로 한표 한표를 행사해서 진정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그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자기계발에 노력해야 하고 정치에 소극적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덕성과 능력을 갖추고 남과 북이 복종하고 사경(四境)이 편안하여 서민들이 살아가는 것이 즐거운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k*******4 2011.01.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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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만나며 미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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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는 역사는 과연 참인가 아니면 참을 가장한 무엇인가...   우린 과거 오랫동안 희빈장씨에 대해 악녀로만 배우고 숙빈최씨에 대해 의리가 있는 여인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를 배워왔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도 자신의 정견을 아니면 정치적 성향에 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고 단지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를 지나치게 고정되게 배워왔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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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는 역사는 과연 참인가 아니면 참을 가장한 무엇인가...

 

우린 과거 오랫동안 희빈장씨에 대해 악녀로만 배우고 숙빈최씨에 대해 의리가 있는 여인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를 배워왔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도 자신의 정견을 아니면 정치적 성향에 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고 단지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를 지나치게 고정되게 배워왔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어린이 도서로 나와있는 동이나 숙빈최씨를 보며 기득권으로 점철된 역사로 고정관념의 역사를 아이가 배우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그러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하고 배우게 하는 연구가 나온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1권에 이어 조선왕을 말하다를 만나고 있다. 세종의 종모법은 참 아이러니 하다고 나도 느꼈다. 저자의 말처럼 좀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창제하고 연구하신 그 애민정신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그런데 세종의 출생년도가 틀리게 기록되어 있음에 한참 헤매고 찾아야 했다는 사실 하나 오류발견이다.

 

성공한 군주, 정조편에서 정조의 행보에 대해 같이 호흡하고 같이 숨을 죽이고 같이 숨을 쉬는 나를 발견하며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정순왕후와 노론의 과거로의 회귀에 나는 분노의 눈물을 더 흘렸다. 그들의 후손은 어떤 말로 자신의 조상을 평가할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저자만이 조선의 역사를 그리고 조선왕들에 대해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했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명백히 우리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조차 하지못하게하는데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인지 진심으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은 사람인데 역사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우리 후손들, 혹은 보여주는 것만 보는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이끄는 대한민국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에 대해 제대로 된 참을 배우고 싶으며 가르치고 싶다.

 

n*****i 2011.01.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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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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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나 과거나 한 국가의 흥망성쇄를 절대적으로 좌지우지 하는 것은 대다수의 민중계층이나 일부 지배계층이 아니라 절대권력자의 정치적 역량과 인간적인 소양에서 발전이라는 방향으로 도약하느냐 늪의 구렁텅이로 빠지느냐를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그들의 의사결정은 결국 국시라는 형태로 포장되어 권력유지를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그리고 자신의 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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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나 과거나 한 국가의 흥망성쇄를 절대적으로 좌지우지 하는 것은 대다수의 민중계층이나 일부 지배계층이 아니라 절대권력자의 정치적 역량과 인간적인 소양에서 발전이라는 방향으로 도약하느냐 늪의 구렁텅이로 빠지느냐를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그들의 의사결정은 결국 국시라는 형태로 포장되어 권력유지를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그리고 자신의 치세를 이끌어가는 나침반 역활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권력자에 대한 검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조선왕을 말하다>는 조선시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있었던 군주들을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 철학과 의지로 인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줌으로서 현재의 바로미터 역활을 하고 있다. 물론 왕이라는 군주 한사람만으로 평가하기엔 지배계층의 역활이 지배적이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책임은 군주가 감당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바로 절대권락자의 비애이기도 하다. 또한 시대적 순차에서 어긋나지만 9명의 군주을 통해서 조선사 전체를 개략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하고 있어 시대흐름 전체와 군주 개인에 대한 치세를 동시에 고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그동안 대한민국 사학계를 일맥상통하게 지배해왔던 거대한 사학권력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고 있고, 바로 노론식민사학계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물론 저자의 반론는 정확한 사초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호기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책에서는 크게 예종과 경종처럼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과 조선시대를 통들어 가장 성공했다고 공인받은 세종과 정조, 그리고 인조 이후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효종,현종, 숙종을 조명했고 마지막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나라을 닫은 고종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런 9명의 임금중에서 효종시대 북벌정책을 둘러싼 진실, 세종의 치세중 알려지지 않았던 세종의 또 다른 면모, 그리고 얼마전 공개되어 학계에서 독살설을 일축했다는 정조의 비밀어찰에 대한 재해석등이 저자 자신의 일관된 사관을 증빙사료를 통하여 일관되게 전개하고 있는 점이 눈에 돋보인다. 흔히 우암 송시열이 효종의 북벌정책을 지지했다는 노론사학계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낭설인지에 대한 논거와 대왕세종으로 만민의 아버지였던 세종이 한때는 백성을 괴롭히는 악법으로 회귀등으로 지탄받았다는 점과 한글창제에서 부터 한글변천사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정조의 화성신도시 건설의 내막등은 역사를 볼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본보기로 남는다.

 

전편에서 연산군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해석을 끌어내면서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왜곡된 사관과 평가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었던 저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장을 확대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역사평설(스토리텔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면서 대중들에게 역사에 관한 편견을 일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옛날 옛적의 이야기라 아니라 현대를 투영할 수 있는 유일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대중화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정도로 그동안 노론식민사학계가 주류를 이룬 우리사학계에 자성의 목소리를 던져 주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새롭게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했다. <조선왕을 말하다>는 기존의 사관과 상당하게 배치되는 부분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역사의 행간을 읽는 눈은 항상 자의적일 수 밖에 없지만 객관적인 사초자료나 당시의 정황을 추정하는 일은 객관적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국가와 민족의 생타여탈권을 행사했던 군주에게 이러한 공명정대한 평가는 두말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l******e 2011.01.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의 교훈도 결국,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바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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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도 결국,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바를 보게 된다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이 접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해야 하는 원칙이다. 이는 역사를 볼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같은 상황도 보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며 이것 역시 보고자 하는 사람이 처한 시대적 요청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에 요구되는 정신으로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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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도 결국,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바를 보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이 접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해야 하는 원칙이다. 이는 역사를 볼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같은 상황도 보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며 이것 역시 보고자 하는 사람이 처한 시대적 요청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에 요구되는 정신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찾고자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역사를 보는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기록유산에 묻혀 있는 사료를 발굴하고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하여 현대인에게 삶의 지혜를 제공하고 있는 저자 이덕일의 저작은 그래서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의 전작 ‘조선 왕을 말하다’를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 확인하였다. 그렇기에 ‘조선 왕을 말하다’ 두 번째 책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쩜 당연할 것이다. 

조선 왕을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시대 순을 무시하고 주제별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왕권의 계승과 관련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왕 효종, 현종, 숙종의 시대인 삼종의 혈맥‘이라는 시각으로 살피고 있다. 이는 인조반정과 소현세자의 죽음이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2부는 왕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신하들에 의한 죽임에 그 관심이 집중되는 왕, 예종과 경종이다. 왕의 권력의 근본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의 달라진 시각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이어 3부에서는 조선 28명의 왕들 중 성공한 왕으로 조선 전기 세종, 조선 후기 정조를 선택 그 왕들이 걸어간 길을 살피고 있다. 두 군주의 비교는 매우 흥미로운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조선왕조를 시작한 개국군주 태조와 시들어가는 조선의 운명을 예견하게 하는 고종이다.

저자가 이 ‘조선 왕을 말하다’에서 주목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최고 권력자들이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왕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과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비롯한 다양한 시련을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대처 했는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삶의 지혜이며 아주 현실적인 리더들의 처세술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저자의 시각으로 살펴본 조선 왕들 중에 지금까지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의 면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는 거론하고 있는 애민군주 세종에 대한 것이 그렇다. 종모법으로 회귀와 노비제 확대시행이라는 애민사상과는 어울리지 않은 정책의 시행이 그것이다. 이는 공신을 비롯한 기득권층에 굴복한 왕권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예상을 뛰어 넘는 이미지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세종 때에 전 국민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민감한 정치사안의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왕들 중 그의 죽음에서 애석함 가장 큰 정조에 대한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당파문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한 왕권 계승의 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합하여 근본적인 개혁을 실천해갔던 정조의 의문 가득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미완의 개혁으로 그치고만 점이 이후 조선 왕조의 마지막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저자의 시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주제들 밑에 있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각각의 주제를 이끌어가기 전에 분명하게 저자의 시각을 보이고 있어 저자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자 하는지를 알고 본문을 읽어간다면 행간에 숨겨진 뜻을 더 많은 부분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태종의 왕권에 대한 정의는 조선시대의 각종 정변을 관통하는 말이 될 것이다. 왕을 중심으로 한 권력 투쟁에서 왕과 신하 중에 어느 편에 권력이 집중 되었는가의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분석한다면 많은 부분을 이해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왕의 권력은 나눌 수 없다’에서 점차 ‘왕도 사대부의 일원’으로 여기는 신권의 강화가 권력투쟁의 본질이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사료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승정원일기와 개인들의 저작물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사료에 적혀 있는 바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한 사관들의 성향을 고려하여 그들이 속한 당파적 입장이 반영된 사료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가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저자만의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표면적인 결과만을 보고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데서 오는 ‘역사해석의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결과에 이르게 되는 당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역사해석에서 이 점이 간과되어 온 점에 대한 저자의 반영이라고 보여 진다.

역사를 보는 이유는 현실을 살아가는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왕과 신하가 서로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살핀 역사 속에서 우리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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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페이지 
[대리청정을 시킨 후 국가 경영 능력이었다며 폐출 시키려는 → 능력이 없다며]가 옳을 것으로 보인다.



m*****8 2010.12.1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