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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좋아한다. 마침표를 찍지 않은 완벽하지 않은 여지가 좋다. 한때는 도무지 한계가 없는 추상적인 시가 버거웠던 적도 있었다. 그땐 모든 것들에 마침표를 찍고 싶을 정도로 완벽하고자 했던 열망이 컸었다. 마침표를 찍지 않고는 도무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그 열망 또한 지나가리라. 그 후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다음에서야 무한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이문의 시는 ‘무한’에 떠돌아다니는 등불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어떤 시는 표지가 되어 주기도 하고 어떤 시는 갈림길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박이문의 시는 어둠 속에서 묻혀 숨고픈 욕망이 있는 곳에 여지없이 빛을 발해 밝혀준다. 생태계 파괴와 문명 비판은 누군가에게는 조금 불편한, 다른 사람에게는 고마운 등불이다. 시인의 의하면 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는 「부모의 따뜻한 보호, 사랑도 없이 자란 분노 때문이란다. 아비 어미의 가정교육도 없이 자란 정신적 상처 때문이란다.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팔순의 노철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시를 읽었다. 인간의 삶을 「살짝 스쳐가는 바람인데/ 아무것도 아니데, 아무것도 아니라서/ 모두가 난리다」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은 그저 이곳에 잠시 빌려 머물다 가는 존재인데도, 마치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물욕에 사로잡혀 전 생애를 수전노로 살고 있다. 그의 글을 통해 인간의 부조리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고 성찰하게 된다. 이 시집은 1부는 생명, 2부는 일상, 3부는 인생, 4부는 이국 그리고 서정이라는 제목으로 저자의 환경철학과 일상생활과 인생관조와 이국정서를 엿볼 수 있다. 일산에서의 삶도, 네팔의 히말라야 산봉(우주의 흰 옷 입은 수도승 같이 경건하다), 바그마티 강변의 힌두교 성지 그리고 시바신의 파슈파트넛 사원 화장터(꿈인지 생시인지, 여기인지 저기인지를)에서... 문명의 광란이 빗을 생명의 임종 앞에서 노시인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생명의 구원이 정말 가능할까? 언젠가 아름답고 우아한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에게 세상은 아니 인간은 아니 삶이란 너무 가혹하지 않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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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들과는 조금 다르다. 함축된 언어로 많은 것을 말하고 느껴야 하는 것이 시이지만, 다른 시어들에 비해 그냥 평범한 이야기 같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이 있다. 남들이 이야기 하지 않은 것들이. 그냥 한번 읽고 손을 놓기에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들이 있는것 같다. 그래 읽고 또 읽고 깊은 의미를 새겨보자는 생각이다.
고아로 자란 코끼리를 읽고 참 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나부터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다. 사람들은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살생을 하고 재미로도 죽이는 일들이 허다하니 어찌 생각이 있는 인간들이 이러한 못된 행동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
올해로 칠순이 되신 나의 엄마 몇년전인가 시신기증등록을 하셨다고 한다. 아니 ~ 난 절대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했는데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의 한몸을 아니 땅속에 묻혀 썩어 없어질 시신을 기증한다는 것 별거 아닐 것 같지만 아무나 못하는 일이지만 생각한번 고쳐 먹고 나도 시신기증에 앞장 서볼까 한다.
나의 동무는 개였다고 나도 그랬는데 나도 먹었는데... 그때는 미안한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얼마전 키우던 고양이를 다른 곳에 입양을 했다. 펑펑 울고 또 울었던 큰아이 자기 새끼처럼 키우던 아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새끼도 낳고 잘 산다고 한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 시집은 생명 일상 인생 이국 그리고 서정등 4부로 나뉘어져 있고 파괴되는 생태계에 대한 안타까운 글들도 많으며 팔십에 가까운 시인의 나이 때문인지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할머니를 부축해 드리라는 글도 요즘의 젊은이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인 것 같다. 나는 어찌 노인들을 대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겠고 친절히 부축할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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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 라는 제목의 글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에 이 시집을 만나게 되었어요 박이문 선생님의 깊이 있는 책과의 만남이 첨이라 반갑고 인생의 깊은 연륜까지도 느껴지는 시집이라 더욱 곱씹어 읽는 재미가 좋았던 책입니다. 시 속에 표현되는 인생이 보이고 시인의 고뇌가 보입니다. 특히 그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니라서 라는 시에서는 복잡 다단한 인생사가 시 속에 함축 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인생에서 그 아무것도 아닌것 때문에 울고 웃으며, 의미를 부여하고 더 잘할려고 , 더 잘 살려고 애쓰는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그냥 왔다가 가는 인생임에도 뭘그리 인생에 의미를 부여 하고 붙잡고 싶어하는것인지?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 시다. 환경에 관한 관심은 숨이 있는 인생들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일텐데 생태계라는 시는 생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그러진 생명의 존엄성과 잘못 끼워진 생태의고리라는 표현으로 생태계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 생명을 살리는 생태계에 대한 염원이 나타나서 좋았다. 지구가 병들고 생태계가 병든것을 시로 풀어내고 시로 작가의 의도를 나타내고 생명의 존엄을 향한 몸부림과 생명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시어에 스며들어 삶을 노래하는 가운데도 시의 크고 작은 마음들이 노래되어진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일들로 살아가고 고민하지만 그 역시도 생태계를 향한 우리들의 표현방법이고 염원인것이다. 김연아송이라고 해서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의 모습을 나비가 춤추는 표현으로 현관심사를 시로 품어져 작품으로 나타난 작가의 의도와 만날 수 있었고, 작가의 생각과 만날수록 더욱 빛나게 되는 시들과의 만남이 고맙고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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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여년도 더 지난 학창시절에 국어 교과서와 여타 문학작품들을 접하면서 특히 이 책의 저자이신 박이문 선생님의 "나의 길, 나의 삶"을 비롯한 많은 글들을 좋아했었다. 게다가 이 책을 통해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국민윤리 교과서를 단골로 집필하시던 김태길 선생님의 "글을 쓴다는 것" 역시 교과서에 실린 글 중에 무척 감명 깊었던 글이었다. 사실 박이문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특히 존재와 인식과 같은 실존철학에 대한 많은 글들을 집필하셨다. 그런 분이 백발성성한 연세에도 시집을 출간하신 것이다. 내용도 이제 팔순이 넘은 노학자의 경륜과 생각이 가슴 가득히 묻어난다. 그 분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숙고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이며 맨 첫 장에 나오는 시의 주제는 생명의 소중함이다. 사람의 밀렵에 의해 희생된 어미 코끼리의 부재로 인해 고아가 된 새끼 코끼리들이 부모의 따뜻한 보호나 사랑도 없이 자란 분노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닥치는 대로 들이받고 부순다는 내용이다. 생태계의 보존과 생명 존중 사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 밖에 일산공원에서의 아름다운 시상들, 연세대 캠퍼스를 뒤덮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글, 김태길 선생을 위한 조사, 네팔의 히말라야, 인도의 갠지스 강 순례지 등을 여행하며 느꼈던 이국의 서정 등이 시구로 담겨져 있다. 특히 나이 듦과 인생에 대한 사무치는 듯 그 모습은 가슴이 절절하다.
77번째의 꿈을 꾸며, 79번째 설날을 맞이하며, 병원에 입원해서 느꼈던 단상들,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을 무엇일까를 궁구하면서 인생이 백발이 되도록 갈구하는 그 모습이 아련하다. 꼭 할 말이 있다고 믿어 중학 때부터 백발이 된 오늘날까지 수 천편의 시를 습작해 왔는데도 써야 했을 시를 쓰지 못한 채 희수가 넘도록 밤마다 시에 매달려 있는 심정이라던가, 대학원 동창명부를 들춰 보면서 6.25 일선에서 전사한 전우,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친구, 살기에 지쳐 자살한 친구 등을 생각하며 살아남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고 계속 시를 써야 하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는 노학자의 모습에 숙연해진다.
책 뒤편에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저자가 썼던 여러 편의 시들이 실려 있다. 그 때의 시대상과 나이에 맞게 날카로운 철학과 기백이 넘치는 시들이다. 전체적으로 포켓에 들어갈 만큼 작은 판형으로 만든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사람의 마음을 진지하게 만든다. 철학자의 고뇌가 담기고, 노학자의 인생 경륜이 담긴 시이기에 그 내용을 허투루 볼 수 없게 만든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 삶이 고달프게 느껴질 때 읽으면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박이문 선생님의 더 많은 시집과 글들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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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콩 서평은 몇 개 써왔지만, 이토록 서평이 쓰기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부족한 글재주와 부족한 글읽기 능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 예를 들어 단순히 "생명의 소중함"이라고 하기에는 언어가 너무나도 부족한 그 무엇이 가슴 속에 가득 남았는데.. 표현할 말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우스운 이야기를 하자면, 모 건강식품 광고 중에 "정말 좋은데.. 정말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사장님의 마음을 알 듯 싶다. 시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마음 속에 밀려 오는 것... 또는 이 시의 의미를 무엇일까 하면서 다음 장을 차마 넘기지 못한 채 멍해지는 것.. 이 얇은 책 하나 읽는데, 이때까지 숙달해온 가독력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 다른 리뷰어처럼 인문학적 깊이를 갖추지 못한 서평단이지만, 이 책을 통해 '시'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혹시나 박이문 선생님의 글에 우스운 이야기를 끌어들여 민폐를 끼쳤다면 죄송하다.
1부는 생명, 2부는 일상, 3부는 인생, 4부는 이국 그리고 서정으로 구성되어진 이 시집은 구절구절 볼 만하며.. 이번 서평단의 기회에 느끼지 못한 시들에 대해 곱씹을 기회와 숙제를 2011년 새해에 나에게 던져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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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냉정한 두뇌, 슬픈 심장의 언어!!
<저자소개> 193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등지에서 30여 년 동안 지적인 탐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 교수생활을 한 뒤 귀국했다. 귀국 후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하였으며, 현재 미국 시몬즈 대학 명예교수이자, 연세대학교 특별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예스24제공]
<서평> 시라고 하면 아름다운 말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는 제목만큼이나 현실을 비판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너무나 공감되는 글들... 환경문제,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세계의 모습 등... 이 책을 보는 동안 한 권의 책을 본 게 아니라 여러권의 책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저자는 여러방면으로 심도깊게 글을 썼단 생각이 들었다. 지식적인 부분, 철학, 여행...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글들을 보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게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응어리져 표현되지 않는 언어를 잘 표현해 주었다고 해야하나? 삶의 깊이와 통찰을 볼 수 있었다. 거칠지만 거칠지 않은 언어, 사실적인표현들... 서툰 독자지만,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좋았다.
어미 아비를 잃어 고아가 된 새끼 코끼리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숲에서 마을로 나왔다 그들은 시골 마을에 몰려와 보이는 대로 뒤져 먹고, 닥치는 대로 길고 힘센 코로 들이 받고 부순다 동네 사람들에게 아비 어미를 잃은 어린 코끼 리들은 분노와 원한, 복수심에 차 있다
자연을 헤치기 시작한 인간은 결국 그로 인해 해를 입는다. 어찌보면 인과응보인 것을.. 내 입장에서 생각만 하게 되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코끼리가 집을 부순다고 코끼리를 나쁘게 보는 것은 인간의 입장이고, 코끼리의 입장은 부모를 잃은 분노 원한, 복수심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아 이상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을 망치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 인.과.응.보. |
![]() 시(詩)란, 말로써(言) 절(寺)을 짓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말로 짓는 절....... 정확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힘드나 절(寺)이라는 공간을 나름 생각해 볼 때, 고요한 깃듬과 스스로운 깨달음이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시는 문학 중 가장 처음 쉽게 집어들었다가 가장 마지막에 다시 펴 드는 책이 아닌가 한다. 짧고 담백해서 쉬이 다가설 듯 하지만, 또한 쉬이 덮을 수없는 함축된 여운에 그 깊이를 알수록 어려워지는 장르다. 그래서, 많은 아티스트 뒤에 작가, 화가, 연출가..직업군의 가(家)를 붙이지만, 유독 시를 쓰는 사람만은 '시인' 이라 칭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이문님의 시를 처음 접했다. 이 시대의 석학으로 정평이 나 있고, 100권에 가까운 유수한 그의 저서에 빛나듯 그는 시인이라기 보다는 철학자였고 교수였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마지막을 시인으로 살고자 시장작에 몰두하고 있다는 표지의 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은 시인들이 일러 주었듯 시로 밥을 먹고 살기란 어려운 시대다. 그럼에도 시 아니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 시를 쓰는 시인들을 나는 존경한다. 인생의 가장 마지막에 다시 펴는 책, 시집!!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하고 싶은 일, 시인!! 이런 마음 하나로도 나는 어쩐지 시인의 길에 접어 든 이 노 시인이 멋있어 보이고 존경스럽다.
메타시의 느낌이 들어있는 그의 글에서 느껴지듯, 희수가 넘은 노(老)시인에게도 인생의 모든 길이 훤하게 보일 듯한 그에게도 시란 녹록치않은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수 천 편의 습작과 희수를 넘긴 세월, 삶의 절규와 고함, 분노를 넘어선 구도의 길에 이르는 시에 다다르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아름답고 우아한 시를 쓰겠다는 생각에 사무치는데까지 이르러는 걸 읽으면서 나는 그만, 숙연해진다. 짧지 않은 인생의 굴곡마다에서 느낀 감상만을 옮겨 적어도 몇 천 편의 시가 저절로 씌여 질 것같은데, 이렇듯 시를 오래토록 사모하며 아름답고 우아한 시를 향한 열정에 사무치며 밤마다 고민하는 모습에 풀썩, 기가 죽는다. 맨 마지막에 살고자 하는 삶이 시인인 이유가 여기 있는가?
다분히 개인적이고 시에 대한 문외한 독자의 생각이지만, 시를 열망하고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교과서적으로 펴 놓고 필사를 하거나 구절구절을 흉내 낼 만한 포퓰리즘적 언어가 있는 시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1부- 생명, 2부- 일상, 3부- 인생, 4부- 이국 그리고 서정으로 옮겨가는 박이문님의 시를 천천히 읽어보면, 삶의 연륜과 지나온 행적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있다. 이것이 독자보다 한 수위인 시인의 언어감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메타포의 은유로 읽히기보다는 메타, 자신 스스로의 목소리로 읽히는데 그 이유를 찾아본다.
생명에서(전직이 철학자였고 교수였던 선입견 탓이겠지만) 언뜻언뜻 읽히는 가르침의 교훈과 철학의 명상들이 척추를 곧추세우며 읽어야 했다면, 일상과 인생, 이국 그리고 서정으로 옮겨 가면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선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차 한 잔 대접 받은듯 온 몸이 데워져 온다.
시인(時人)이 아니라고 시인(是認) 할 때, 비로소 시인(時人)이 된다는 말,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하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시며 건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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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는 엄청난 몸살을 겪고 있죠? 최근에 지구의 눈물들을 참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존의 눈물을 통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거대한 산림을 벌목하여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동식물들이 지구상에서 멸종되어 사라져가야되는 현실에 대해서 자연이 사라지게 되면 과연 인간이 살 수 있을까요? 아마존의 거대한 숲은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주기도 하면서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우리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북극의 눈물에서는 이런 인간의 자만과 오만, 탐욕 등으로 인해서 지구 온난화를 가중시키고 그 결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버리고 그것을 토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 곳의 원주민과 곰의 운명을 다루고 있죠.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지만 태평양의 어떤 섬은 지금 점점 바다 속으로 잠기어 사라져간다고 하잖아요. 아프리카의 눈물에서는 아프리카에 눈이 있다면 의아해하겠지만 만년설이 녹고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과 식물들. 어쩌면 그대로 두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르죠. 이처럼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만 같아요. 고아로 자란 코끼리는 어쩌면 이런 인간의 잘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지 그 분노는 어쩌면 자연이 인간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생명이나 일상, 인생, 이국 그리고 서정. 이제 우리는 좀 더 자연과 함께 하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슬픈 미래가 아닌 희망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구요. 아직 늦지 않았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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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란 것은 청소년기에 읽고 그 이후부터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 한장 넘길때마다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걸까, 시에대한 어려움이 아직도 적응을 하지 못한채 읽어내려가고 있다. 내가 읽은 시집은 김소월과 윤동주 뿐, 현대시에 관한건 거의 전무한 무지식인이다. 그래도 새로 다가오는 신년부터는 시집이라는 분야에 투자하고 싶어 용기를 내본다. 제목부터 독특하다면 독특하다할까.. 박이문님이 유명한지도 몰랐지만,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한 행 한 행 마다 어려운 글귀보다는 눈으로 보여지는 장면을 쉽게 상상하게끔 쉬운 글로 적혀있어, 내가 읽어내려가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렇담 작가는 어떤말을 하려고 했을까? 난 잘 모른다. 단지 작가가 어떤 사물을 보고 어떤 장면을 보는 화자로써 말할때 나도 그 모습으로 빙의해본다면 조금은 같은 감정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읽어내려간다.
매일 읽어내려갔지만, 기억에 잘 안난다. 하지만 시를 읽겠다는 내 의지는 황량하고 살기 척박할꺼 같지만, 눈속에 덮힌 흰 크로커스 꽃봉우리가 새생명의 시작을 알리듯 내 마음도 그렇게 지금 시작하는게 아닌가 싶다.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갈망하고 이뤄낼려는 자그만한 성취감이 내 겨우내 인생살이에서 밝은 빛 한줌이 되고 있는것 같다.
이 조그만 책 한권에 그 어떤 크고 두꺼운 책보다 많은 생각을 해주며, 읽을때마다 다른생각으로 발상하게 된다. 그전에 읽어서 생각난 느낌은 지금과 상이하며 나의 생각의 폭은 더 넓어진다. 그동안 소설만 읽었던 내가 시를 읽겠다고 햇을때 주변사람은 그저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만, 정말 읽어본 사람은 좋은 느낌을 가질것이다. 그만큼 시가 나에게 주는 영향은 미지의 영역에 새로운 영양분을 준것처럼 폭이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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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 시를 잘 알지는 못 한다. 사실 학창시절만 해도 시를 참 따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두꺼운 뿔태를 쓰고 세상과 단절된 사람. 세상을 포기한 사람처럼 그런 느낌이 사람이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나 시를 쓰고 읽는다고.. 참 어이없는 편견을 갖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의 쓴맛들을 맛보면서 내가 시를 좋아하며 즐기며 또 쓰게 될줄은 몰랐다. 어느날 우연히 읽었던 시집을 보면서 내 가슴을 이 시가 이렇게 위로 할 줄 몰랐다.. 시는 그냥 일상의 고백이다. 시는 어려운것도 심오한것도 아니오 시는 그저 삶의 고백이다. 그때부터 나는 시를 어렵게도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의 것이라고도 느끼지 않는다. 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도시의 화려한 거리를 걷는 유행을 따라 사는 사람도 읽는 그리고 쓰는 그런 것이었다. 참 좋은 또 하나의 시집을 만났다. 그 책이 이 책이다. 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 이 책은 박이문 작가가 쓴 시집으로 그는 21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철학적 지성이자 당대의 석학이라고 한다. 1930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100권에 가까운 철학, 윤리학, 미학, 예술학, 생태학적 저작 및 시집을 출간하였다고 현재는 포항공대와 시몬스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을 시인으로 살고자 시창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시집의 내용을 잠깐 보자면 책 제목인 시다. 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 인도의 밀렵꾼들이 상아를 팔아 돈을 벌려고 어미 코끼리들을 마구 죽였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밭을 만들려고 코끼리들의 거처인 숲에 침입해서 나무를 베고, 숲을 밭으로 바꾸어 코끼리들은 생존의 터전을 잃었다 어미 아비를 잃어 고아가 된 새끼 코끼리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숲에서 마을로 나왔다 그들은 시골 마을에 몰려와 보이는 대로 뒤져 먹고, 닥치는 대로 길고 힘센 코로 들이받고 부순다 동네 사람들에게 아비 어미를 잃은 어린 코끼리들은 분노와 원한, 복수심에 차 있다 분노에 찬 어린 코끼리들은 물건, 동물, 사람도, 집도, 먹을 것도, 먹지 못할 것도, 그리고 또 그들의 사육사들까지도 코로 올려 높이 공중에 던지고, 땅에 떨어지면 바윗돌 같은 발로 밟아 죽인다 부모의 따뜻한 보호, 사랑도 없이 자란 분노 때문이란다 아비 어미의 가정교육도 없이 자란 정신적 상처 때문이란다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잘 살려고, 아니 그냥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코끼리를 죽인다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코뿔소를 사냥한다 사람들은 재미로 동물을 죽이는 스포츠를 즐긴다 생명을 죽임으로 삶의 환희를 느낀다 인간은 정신병에 걸렸고, 고아 코끼리들은 분노한다 코끼리, 코뿔소를 쏘는 밀렵꾼을 쏴라 재미로 사냥하는 사냥꾼을 사냥하라 생명의 이름으로, 인간의 이름으로! 예술이라는 것이 그렇듯 뭐 대단한 것을 느낄 필요는 없다. 국어수업에 답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느낀대로 이 시가 내게 주는 그 느낌대로 그냥 느끼면 된다. 평론가의 평론도 무시하고 시의 저자가 느꼈던것도 그냥 참조정도만 하면된다. 그냥 즐려라 내 상황에 따라서 시가 느끼게 해주는 그것에 그냥 집중하면 된다. 글쎄 그 방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예술을 그렇게 즐긴다. 그림도 음악도 시도 소설도 연극도.. 그렇게 하면 그것은 나만의 예술이 되어서 내 삶에 녹아들어 나를 위로하고 나와 대화하고 나를 북돋아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좋은 시집을 만나서 행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