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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면 생각이 깊어지고 사람을 만나면 그리움이 농익는다. 이 책은 최일남 선생이 지나온 삶에서 마주한 풍경과 인물들을 회상하는 수필집이다. 풍경의 깊이는 지리산 노고단, 전주 완산 등과 같은 지리적 풍경과 이은상 작사 김성태 작곡의 조가,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 <비목>, 페티 페이지의 <테네시 왈츠>, 비틀즈의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드> 등과 같은 노래 풍경으로 구분된다. 사람의 깊이는 문인과 기자 두 유형으로 구분된다. 문인은 '남산골 딸깍발이' 일석 이희승,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에서 전쟁과 폭력을 고발한 시인 이시영, <수난 이대>의 소설가 하근찬, 문학평론가 김윤식 등이 출연하고, 일본 작가로 다자이 오사무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후지와라 마사히코 등이 나온다. 저자는 일석과 백범을 떠올리며 고매한 선비정신을 되새기는데 '명사출고도(名師出高徒)'라고 할까, 최 선생도 은연중 딸깍발이 면모를 글매에 드러낸다. 선생이 술회한 "내 글쓰기가 좀 칼칼하고 야무졌으면 싶은 헛된 소망"이 바로 반증 아니겠는가.
최 선생은 언론계의 내로라하는 이들을 기리고 그린다. 대부분 남성 기자 출신의 인물이라는 점이 다소 아쉽다. 외국기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가 나올 뿐이고 주로 자신의 동료나 친구를 그리고 있다. 예컨대 50년 신문 기자의 경력을 지닌 김중배, 걸출한 기자이자 춘추필법의 정치가 조세형, 경제학자 정운영,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탐구한 달인 이규태, 《세계공연 예술 현장기행》의 최정호, 《조선민요집》의 김소운 등이다. 참고로 이규태 선생(1933-2006)은 내가 문청시절 무척 좋아했던 분이다. 지금도 가끔 이 선생의 문집을 들추는데 글쟁이란 모름지기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진득하게 앉아 한줄한줄 써내려가는 정성과 의력(毅力)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그런데 이 선생 묘비명을 저자가 지었다 한다. 몇 마디만 인용하자.
"한편의 글로 사람들의 아침을 새롭고 다감하게 열어 준 불세출의 기자 여기에 영면하시다. 선생은 격변의 나날을 변치않는 과거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겨냥하고자 하셨다. …특유의 친근한 문법으로 보편타당한 쓰기와 읽기의 경지를 아울러 텄다. "(190쪽)
저자가 언급한 책들 가운데 읽어보고 싶은 것은 오늘날의 영어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담은《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당대 발행, 2007)이다. 윤지관 교수가 책임편집한 이 책은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지는데 '영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영어,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하나' '영어의 지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형식이다. 조기유학열풍이나 기러기 아빠 현상 등 국내에 만연한 영어숭배와 문화 식민주의가 다소 진정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재일작가 김달수의 자서전《나의 아리랑 노래》는 차별과 가난을 견디며 소설가로 입신하기까지의 고단한 한살이가 담겨 있다는데 이 책도 필독 리스트에 올려야겠다. 이 책을 어망 삼아 내 손에 건져 올린 값진 책들이 가득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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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이 작가의 소설은 한 해에 몇 번씩 보게 되는데, 산문을 읽은 기억은, 없다. 영 안 읽어 본 것은 아니겠으나 기억에 남을 만큼 읽은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읽기는 읽었으되 내 기억데 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또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산문집이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의 산문들은 아니다. 소설가로서 언론인으로서 살아온 삶,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다 보니 다른 격이 느껴진다. 이른바 글을 쓴다는 사람들의 세상 이야기.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가 온통 글과 관련된 세상이다. 젊어서 언론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처지라면 상당히 매력적일 것 같은데, 지금 내 처지에서 보는 그쪽 세상은 좀 고달프겠다 싶다.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깨닫는 만큼, 그리고 글을 써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 세상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가볍게 읽히는 글이 아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글, 삶, 관계 혹은 그 모든 것에 품격을 갖춘 글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함께 담긴 그림들이 보는 눈의 격도 높여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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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최일남)>를 읽었다. 어렸을 때 최일남의 글은 밑줄 그으며 읽었다. 좋은 월(문장)은 베껴쓰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칼럼을 통째로 베껴 써서 익히지 못한 게 아쉽다.
최일남을 읽고서 글이 사람을 바꿀 수 있고, 글이 삶을 살찌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돌이켜 보면 읽고 또 읽어서 몸에 스며들게 하지 못한 게 아쉽다.
다시 글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최일남의 책을 잡았다. 누군가의 칭찬을 받는 일은 기쁘다. 그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면, 매우 기쁜 일이다. 최일남은 많은 사람을 재밌게 칭찬한다. 그가 겸손한 대가이고, 차분한 고수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의 월(문장)은 늘 그렇듯 해학과 웃음을 넘나든다. 삶을 느긋하게 살피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세상살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결코 가볍지 않고 어렵지도 않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슬쩍 알려주는 글들이다.
갈수록 우리는 양심과 염치를 저버리며 산다. 도덕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시간은 재빨리 흘러가고, 상식은 관행 앞에 무릎 꿇고 손을 비빈다. 왜 이렇게 각다분해졌을까?
가득 찬 불통을 버리고, 새롭게 삶을 쌓아야 할 때다. 짐승의 마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 법이 아니라 따뜻함이 무엇인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 무엇인지, 다툼이 아니라 웃음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때다. 이 책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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