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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는 카이사르가 도버에 상륙하는 순간 시작되었다. 독일의 역사는 카이사르가 라인 강을 건너는 순간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역사는 카이사르가 알레시아를 함락시키는 순간 시작되었다. - 테오도르 몸젠
로마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영웅호걸의 모든것을 갖추고 머리까지 좋은 이 남자를 빼고 로마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들과 이야기를 하면 정말 거품을 물 정도로 할 이야기 많은, 로마, 아니 유럽 역사속에서 한획을 그었음이 틀림없는 '카이사르'. 이 대단한 남자를 '부르투스, 너마저...'라는 말로 더 유명한 부루투스가 소송을 걸었다. 억울할만도 하긴 하지. 로마 공화정을 위해 암살을 마다하지 않은 부루투스는 암살자 취급이나 받고 카이사르는 여전히 영웅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로마는 공화정을 채택했던 나라다. 공화정이란 나라를 왕이나 황제 같은 한 사람의 지배자가 다스리는 체제가 아니라 국민의 합의로 선출된 사람이 특정 기간 동안 나라를 통치하고, 임기가 끝나면 또 다른 사람이 통치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약 2천년 전부터 이런 공화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509년에 이탈리아 반도에 살던 에트루리아인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세웠다. 그리고 이때 증장한 인물이 부루투스의 선조 '루키우스 유니우스 부루투스'다. 공화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로원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국회의원과 비슷하다. 원로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귀족출신 집정관, 평민출신 집정관, 원로원 300명, 독재관,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 10명이 공화정을 이끌었다.
공화정을 보면 귀족과 평민이 서로 힘을 합쳐서 잘 꾸려가는것 처럼 보이지만, 당시 로마는 12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큰 전쟁에 휘몰아쳤다. 로마가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카르타고(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인들을 포에니라고 불렀다)를 물리친 포에니 전쟁이 그것이었는데, 포에니 전쟁이 끝나자 이탈리아 반도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토지는 황폐화되고 전염병까지 돌면서 민중은 약해지고, 전쟁의 승리로 귀족들은 부유해졌다. 이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크라쿠스였는데, 이들의 토지 제도 개혁은 실폐로 돌아가고, 귀족들에게 살해를 당한다.
카이사르는 어떻게 힘을 키웠을까? 정치적 혼란이 소용돌이치는 로마 공화국안에서 카이사루는 큰 재력을 뽐내던 크라수스, 로마 시민의 지지를 받던 폼페이우스와 힘을 합쳐서 그 유명한 '삼두정치'를 하게 된다. '삼두정치'를 통해서 카이사르는 네 개 군단의 지휘권을 얻고, 총독 임기는 1년이 아닌 5년으로 정하면서 그 기간 동안 법정에 기소되는 것도 면제를 하게 만들었다. 모든 힘이 카이사르에게 모아지는 것을 공화정 귀족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원전 55년. 폼페이우스가 주도하는 원로원은 집정관 임기가 끝나가는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당시, 로마에서는 속주에서 임무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장군은 루비콘 강 앞에서 모든 군대는 무장을 해제하고 혼자 강을 건너야 한다는 법이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후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 칼이 해결해 줄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던지고 루비콘강을 건넌다. 카이사르와 원로원의 대립. 카이사르는 반란을 한 것일까? 무장을 한채 강을 건넘으로써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에 오르게 된다.
장인과 사위관계였던 폼페이우스와의 관계가 깨지면서 폼페이우스는 원로원을 주도하고, 이로 인해 '삼두정치'까지 했던 두 사람은 거의 왼수가 되어버린다. '종신 독재관'이 된 카이사르를 피해 이집트로 간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에서 살해당하고, 폼페이우스를 따라 이집트로 간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죽음을 원통해 하면서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탄자에 돌돌 말려져서 배달되어 온(?)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만나게 된다. 남편이자 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의 권력 다툼 중이었던 클레오파트라는 이렇게 카이사르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지만, 얼마후 카이사르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뒤를 이었던 안토니우스와 연인관계가 된다.
부루투스에 의해 죽음을 당한 카이사르. 이제 카이사르가 아닌 암살 이후가 궁금하다. 어떻게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첫 황제가 되었는지 말이다. 카이사르의 반란을 두려워했던 원로원이 어떻게 옥타비아누스는 그냥 두었을까? 시대의 흐름이었을까? 옥타비아누스는 기다릴 줄 알았고 현명했다. 카이사르보다.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안토니우스를 제거한 후 옥타비아누스는 존엄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고, 원로원으로 부터 제 1시민이라는 '프린켑스'라는 칭호와 로마 병사들로 부터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를 받는다. '임페라토르이며 호민관 특권을 보유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는 이렇게 탄생을 한다. 천재적 정치가의 이런 행보는 죽음을 당한 카이사르 덕분이었다.
공화정과 황제치하. 어떤것이 더 옳은 것일까? 로마의 황제하면 네로, 칼라굴라, 코모두스처럼 미치광이들이 먼저 생각나지만, 5현제 시대라는 네르바,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처럼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황제치하를 막기위해 카이사르를 죽인 부루투스 입장에서는 무척 원통하겠지만, 왕권 국가를 만든것은 카이사르의 영향이 컸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카이사르는 단지 로마의 전통이라고 생각되고 있던 공화정 체제가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로마의 평화, 이렇게 팍스 로마나는 시작된다. 역사공화국의 담당 판자 정역사는 판결을 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판결을 내리던지 내가 느끼는 역사가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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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라이벌들이 재판을 벌이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 로마 원로원의 공화파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로마의 역사가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공화정과 제정으로 나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어요.
원고 브루투스 (로마공화정 창시자의 후손, 로마 공화정 수호를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 원고 측 변호사 김딴지 피고 카이사르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 권력자, 믿었던 브루투스의 손에 암살당함) 피고 측 변호사 이대로 등장인물의 특징이 역사적 사실에 맞게 설정되어 있어 재미있게 그려졌어요^^
당시 로마인의 마음속에는 한 사람이 지배하는 체제를 강하게 반대하며 정치적 자유를 얻고자하는 열망으로 왕 한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닌, 귀족들이 임기를 정해 돌아가며 로마를 다스리는 공화정 체제를 선택했어요. '공공의 이익'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국가' 이렇게 성립된 로마 공화정은 카이사르가 집권할 때까지 약 4백여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해 나갔어요.
열려라, 지식 창고 폴리비우스가 말한 로마의 혼합정체론 = 로마는 1인의 왕정, 소수의 귀족정, 다수의 민주정의 세 가지가 혼합된 정부 형태를 사용해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한니발의 코끼리 부대와 포에니 전쟁 = 기원전 264년부터 약 120년에 걸친 긴 시간동안 로마는 카르타고와 전쟁을 치릅니다. 로마인은 카르타고 주민을 '포에니(페니키아 사람)'라 부르고 3차에 걸쳐 카르타고와 싸운 이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합니다. 카이사르와 알레시아 공방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카이사르는 대중을 감동하게 만드는 말솜씨를 지녔다고 해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와 소아시아 지역을 평정한 후 원로원에 보낸 보고서에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단 세 마디만 적혀 있었답니다. 로마의 평화, 팍스 로마나 지식 창고로 알 수 없던 그 시대의 지식이나 정보를 얻어 관련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네요!!
휴정 인터뷰 ??소송 이유는 원고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로마의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독재자 되어 로마를 쥐락펴락하려 했다며 밝혔습니다. 다알지 기자의 휴정 휴정 인터뷰인터뷰에서는 김딱지 변호사와 이대로 변호사의 법정에서 재판 이야기를 요점을 알려주셔서 앞에 읽었던 내용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역사 유물 돋보기 카이사르 동상 - 넓은 이마와 눈가의 주름, 구불거리는 머릿결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 브루투스 동상 - 젊은 브루투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 카이사르 앞의 클레오파트라 - 카이사르의 집무실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전통 의상을 입고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 카이사르의 암살자 - 독일 화가인 카를 테오도르 폰 필로튀가 1865년 완성한 그림 작품
떠나자, 체험 탐방! 카이사르가 보이는 로마를 찾아서는 직접 가볼 수 없지만 실사 사진으로 지역을 볼 수 있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한 걸음 더! 역사 논술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독후 활동과 토론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화정에서는 그런 카이사르가 계속해서 집권해 황제가 될까 봐 두려웠고, 카이사르는 긴 세월을 나라를 위해 싸운 자신을 죽이려고 하니깐 배신감에 무기를 들고 루비콘 강을 건넜을 거예요. 그동안 지루하게 읽었던 세계사가 법정의 재판 방식으로 역사 인물을 설명하고 배경까지 알 수 있어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어요.
#문해력 #초등세계사 #초등세계사전집 #중등논술 #초등세계사전집추천 #초등세계사공부 #초등교과연계 #초등세계사논술 #역사공화국세계사법정 #세계사법정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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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교와 다르게 세계사를 중1 때 배우게 되었는데요 다행히도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덕분에 학교에서 배우는 중등세계사와 연계하여 책을 읽다 보니 안 그래도 좋아하는 역사가 더 재미있다는 썬양이에요.
세계사 속 인물들을 모아 재판을 벌이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세계사 속 사건들을 재판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인데요 세계사 속 인물들을 역사공화국의 세계사법정으로 데리고 와 원고와 피고, 증인으로 나누어 그들의 주장을 들어볼 수 있지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3권 <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에서는 새 시대에 맞는 로마의 정치 체제를 위해 고민했다고 주장하는 카이사르와 카이사르의 암살범으로 비난받던 브루투스가 세계사법정에 소장을 냈네요.
이 책에서는 원고는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의 후손인 브루투스이며, 피고는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 권력자로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렸으며 브루투스의 손에 죽음을 당한 카이사르랍니다. 그 외 양쪽 변호사와 증인들, 그리고 판사가 등장하지요.
원고 브루투스는 후대의 사람들이 카이사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진심은 몰라주고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것이 억울하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소장을 냈는데요 책을 읽어보면서 역사적 사실과 재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함께 확인해 보아요.
오늘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로마~~ 고대 로마 사람들은 이탈리아 중부의 테베레 강 유역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에트루리아 왕의 지배를 받으며 살다가 기원전 509년에 로마인은 에트루리아 왕을 내쫓고 귀족 중심의 공화정을 시작했는데요 공화정이란 공공의 이익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국가로 이때 성립된 로마 공화정의 전통은 카이사르가 집권할 때까지 약 4백여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해 나갔답니다. 왕이 사라지자 로마의 귀족은 최고의 지위를 상징하는 집정관을 민회에서 매년 두 명씩 뽑았는데요 집정관은 로마의 최고 권력자로 오늘날의 국무총리와 같은 것이었지요. 집정관의 임기는 1년으로 행정과 군사에 관한 권력을 갖고 있었으며 귀족 회의 집단인 원로원과 중요한 나랏일을 의논했다고 해요.
원로원은 오늘날의 국회의원과 비슷한데요 왕정 시대 때, 로마의 원로원은 왕을 위한 자문 위원회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공화정 최고의 권력기관으로서 원로원의 충고는 집정관도 거부할 수 없게 되어 있었고 원로원 의원의 수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공화정 초기에는 3백 명 정도였다고 하니 인원이 꽤 많았던 만큼 권력도 막강했겠어요. 로마의 최고 엘리트 귀족으로 이루어진 기구였다니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반면, 평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관직인 '호민관'이 있었는데요 2백여 년이 넘는 신분 투쟁 끝에 평민은 겉으로 보기에는 귀족과 거의 동등해졌고 로마는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단결시킬 수 있었다고 하네요. 타협과 양보로 귀족과 평민 간의 단합이 이루어진 사실은 로마의 정치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당시 로마에서는 120년간 일어났던 포에니 전쟁이 끝나 이탈리아반도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토지가 황폐화되고 전염병까지 돌아 인구가 크게 줄었으며, 전쟁을 마친 병사들은 고향에 돌아와 다시 농사를 지었지만 외국에서 값싼 곡물이 들어와 몰락하여 농민의 수가 심각하게 줄어들었죠. 로마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풍부한 자본과 토지, 노예, 노동력을 얻었으나 귀족들이 차지하여 넓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노예를 부리는 라티푼디움이 형성된 것이죠. 로마 농민의 반란이 생기면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 형제가 등장하여 귀족에게 몰려있던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토지 제도를 개혁했네요. 책을 읽던 썬양이 의외의 내용을 발견했다며 말해 주었는데요 왠지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농민이 동원되었을 것 같은데 로마의 군대는 조금이라도 땅을 갖고 있는 농민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해요.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시민은 나라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에 알맞은 의무를 수행한다고 보았기에 재산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병영의 의무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전쟁 기간이 너무 길어 농토와 가족을 버려두고 전쟁을 치르다 보니 전쟁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농토는 황폐해지고 가족은 굶어죽기 직전인 상태가 되어 있어 농민들이 헐값에 토지를 내놓으면 귀족이 사들여 빈부의 차이가 더욱 심하게 벌어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라쿠스의 형인 티베리우스가 중소 농민을 키우기 위해 원로원 귀족이 갖고 있던 땅을 제한하고 귀족들이 불법적으로 갖고 있던 땅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 주장했으니 원로원 귀족들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겠지요? 호민관 선거가 있던 날 티베리우스가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뭔가 신호하는 걸 보고 왕관을 요구하는 몸짓을 했다며 사람들을 부추겨 노예들에게까지 몽둥이를 들게 해 맞아 죽었다고 하네요.
형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라쿠스는 토지 개혁이 공화국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원로원 반대파에 맞서 다시 한번 개혁을 추진기 위해 티베리우스가 죽임을 당하고 10년 뒤, 호민관에 당선되어 농지 개혁법을 제안했답니다. 그라쿠스는 로마 시민의 권리를 넓히기 위해 시민권 개혁법을 만들어 로마 민중의 지지를 받자 원로원 귀족들은 그라쿠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로마 공화국의 적으로 규정하여 가혹하게 죽였고, 그라쿠스는 울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네요. 원로원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만심에 빠져 로마 시민을 위한 자신의 의무를 저버렸으며 공화정이 생길 때부터 전해져 왔던 그들의 전통적 가치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미덕을 잃었기에 결국 로마 공화국에서 불행의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원전 59년 일찍 가장이 되어 다양한 경험을 쌓은 카이사르가 로마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에 당선되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삼두 정치를 하게 됩니다. 삼두 정치란 세 사람의 우두머리가 로마를 좌우하게 되었음을 뜻하는데요 카이사르의 뛰어난 두뇌, 폼페이우스의 막강한 군사력, 로마 최고의 갑부 크라수스의 재력을 합쳐 로마의 강력한 실력자가 되었었 것이죠.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아내인 율리아가 아기를 낳다가 죽자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묶는 끊은 더 이상 없었으며, 돈줄이 되었던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죽어버리자 삼두 정치는 무너졌지요. 하지만 카이사르는 8년 동안의 갈리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답니다.
기원전 55년 폼페이우스가 주도하는 원로원은 집정관 임기가 끝나가는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올 것을 명령했고, 원로원은 카이사르가 다음 번 집정관 선거에 또 출마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로마에 있지 않은 사람은 선거에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속주에서 임무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장군은 루비콘 강 앞에서 모든 군대는 무장을 해제하고 혼자 강을 건너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고 해요. 아무와도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맨손으로 들어오는 것을 나라에 대한 충성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이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군대를 이끌고 무기를 버리지 않은 상태로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 말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후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 칼이 해결해 줄 것이다!"
무장한 채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 들어온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에게는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반역자일 수밖에 없기에 파르살루스 전투를 벌였지만 폼페이우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로마를 카이사르의 독재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던 브루투스는 원로원 회의장 입구에서 14명의 귀족들과 카이사르를 둘러싸고 단도를 휘둘러 카이사르를 암살했고, 로마의 시민들은 각자 자기 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암살한 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침묵으로써 카이사르에게 애도를 표현했지요.
이제 중국 제일의 미녀 양귀비도 울고 간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네요. 이집트로 도망간 폼페이우스를 잡기 위해 쫓아온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이미 살해당하자 원통해 했는데요 당시 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권력 다툼을 벌이며 위험한 상황에 있던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에게 찾아가 둘은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았지만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의 손에 죽자 안토니우스와 다시 사랑에 빠졌고,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안토니우스도 클레오파트라도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더 이상 옥타비아누스를 견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로마의 공화정이 무너지면서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는 제정 시대로 넘어가게 되지요.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하며 기원전 27년 로마에 평화가 찾아오자,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돌려줄 것을 선언했어요. 최고의 권력이 카이사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을 거울삼아 옥타비아누스는 권력을 유지하면서 원로원 귀족의 견제를 받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머리를 쓰면서 노력했지요. 로마군 최고 사령관과 호민관 특권을 가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었던 것이죠.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된 뒤, 로마를 평화롭게 다스린 훌륭한 황제들도 있었는데요 96년부터 180년까지 네르바, 트리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가리켜 5현재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했답니다. 반면, 네로, 칼리굴라, 코모두스처럼 무능하고 광기 어린 인물이 황제가 되었을 땐 로마에 재앙이 닥쳤던 시대도 있었죠. 양쪽의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여러 증인들을 내세우며 자신이 역사의 진정한 승자임을 강조하는데 세계사법정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요? 중등세계사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를 읽어보시고 확인해 보세요.
<한 걸음 더 역사 논술> 코너를 통해서 논리적 사고력도 키우고 대학입시의 논술시험에 대비도 열심히 해 보아요.
역사 시간에 로마시대를 배우면서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살짝 설명을 해주셨다는데요 역시 책으로 보니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가 숨겨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썬양~~ 이래서 책을 읽어봐야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나요?ㅋㅋ 로마 원로원의 입장에서 보면 카이사르가 집권을 하게 될까 봐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고, 카이사르의 입장에서는 오랜 세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자신을 환영은 못해줄망정 죽이려고 하니 살기 위해 당연히 무기를 들고 루비콘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냐며. 양쪽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간다는군요.
엄마가 만보 걷기 운동을 다녀온 사이 휘리릭 독후 활동을 해놓았기에 완성 사진만 찍었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카이사르가 한 말이었군요~~
재판 형식을 통해 역사 속의 여러 인물들이 서로 치열한 공방을 펼치며 세계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로마 공화정 말기 카이사르의 시대를 매우 흥미롭게 이해하기 쉽도록 전해 주는 세계사법정 <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를 읽어봤는데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는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해당도서를 제공받았습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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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법정 / 역사공화국 / 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 / 자음과 모음
“부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카이사르를 상대로 부르투스가 소장을 냈습니다. 자신은 로마 공화정을 위협하는 독재자를 죽였을 뿐이기에 카이사르의 암살범이라는 오명을 벗고 싶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카이사르가 왜 독재자가 되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텐데요, 전쟁으로 많은 땅을 얻은 귀족들이 대농장을 경영하면서 노예를 부리고 공화정의 기반이 되었던 자작농이 몰락하게 되었지요. 이로 인한 귀족과 시민의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가 자영농 육성을 위한 개혁을 단행하지만 실패하면서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귀족들의 다툼이 심해졌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로마 시민의 마음을 얻은 카이사르는 새 시대에 맞는 로마정치를 하기 위해 힘을 길러 집정관이 되고, 루비콘강 앞에서 무장을 해제하고 혼자서 들어오라는 로마 원로원의 명령에 불복종하면서 종신 독재관 자리에 올라 여러 개혁을 단행하지만 전제정치를 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귀족들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그 뒤 옥타비아누스가 최고 권력자로 떠오르며 로마는 황제의 나라가 되고 카이사르의 비극을 재현하지 않기 위해 옥타비아누스는 치밀하면서도 영리하게 합법적 황제가 되었답니다. 더불어 그 이후 200년이나 로마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지요.
부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유가 공화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라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로마는 카이사르가 아니어도 공화정이 무너지게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고로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으로 바뀐 탓을 카이사르에게 묻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루비콘강에서 카이사르가 무장을 하고 강을 넘는 모습을 보며 왠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역사가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 지기는 하지만 세계사 법정은 아주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화정의 역사와 구조, 당시 시대상황과 그 후에 상황까지도 다채로운 증인들을 통해 알려주니 어느 한 쪽만 알게 되는 편파적인 역사가 아닌 객관적이고 주체적인 세계관을 기를 수 있게 도와주어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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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브루투스 너마저!
이는 모두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3두정치를 했었고 로마시민의 큰 인기를 얻었으며 지방장관으로서는 갈리아전쟁을 수행하던 1인 지배자가 되어 각종 사회정책, 역서의 개정 등의 개혁사업을 추진하였으나 브루투스 등에게 암살당한 카이사르가 남긴 명언들입니다.
무장해제를 명받은 루비콘강을 무장한채 건너며 했던 말이 주사위는 던저졌다였고 소아시아 지역을 평정한 직후 로마 원로원에 보낸 보고서에 적혀있던 말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였으며 그의 권력과 독재를 두려워한 로마원로원에 의해 암살당할당시 남긴 말이 바로 브루투스 너마저 였던 것입니다.
역사속 대립되는 두 인물을 통해 세계사를 이해하게 만드는 자음과모음의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3번째 이야기는 바로 공화정에서 황제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로마사를 정리해주고 있던 브루투스와 카이사르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두 인물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카이사르의 이야기를 통해 복잡했던 당시 로마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답니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3번째 브루투스 vs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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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민주주의가 발전했던 로마는 공화정 정치를 하였으며 귀족과 평민간의 지위동안 오랜 투쟁끝에 겉으로나마 평등함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원로원 300명중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을 선출했으며 집정관 2명중 한명은 귀족 출신, 다른 한명은 평민출신에서 선출되었고 전쟁때에는 독재관이 있어 안정을 기합니다. 그러한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정복전쟁을 펼치며 코르시카, 마케도니아, 그리이스, 북아프리카, 소아시아등 넓은 지역을 정복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카이사르의 인기는 높아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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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카이사르의 세력확장에 두려움을 느낀 로마 원로원의 대립과 평민들의 권력을 더 이상 인정하기 싫었던 귀족들의 계략에 의해 로마 공화정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최고의 장군 폼페이우스와 최고의 재산가 크라수스, 그리고 카이사르에 의한 3두정치시대가 열리며 안정을 꾀하기도 하였으나 무장한 채 루비콩 간을 건넌 사건으로 인해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는 결국 적이 되어 최후를 맞이하지요.
그 후 잠시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의 협약으로 제 2차 섬두정치 시대가 이어지고,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초대왕제에 오르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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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우린 역사속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추앙받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크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관계에서 역사의 한 축을 이루는 사건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수도 있었습니다.
카이사르는 과연 독재자였던걸까 ?. 그래서 그는 죽어야만 했는가 ?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한 인물의 평가는 고대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 바탕이었습니다.
카이사르와 얽혀있던 인물관계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고대로마의 역사가 보이고, 왜 그가 죽어야만 했는지의 대한 사실을 알아가는 데 에서는 공화정에서 황제시대로 넘어가는 로마의 정치사가 투명해져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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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도 그러하고 우리의 역사도 그러하고 보통 역사공부하면 인물, 연대, 사건을 중심으로 달달달 외우는 공부가 되기 쉬운데 그리하여 개념보다는 단편적인 지식이 되곤하는데 역사공화국 시리즈는 이해하는 역사, 개념을 확인하며 연관관계를 찾아가는 공부가 되어주니 좀 더 확장된 역사관과 기본이 탄탄한 역사공부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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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을 통해 많은 위인들을 만났다. 쿠푸왕과 헤로도토스, 함무라비와 쿠르실리스, 크세르크세스와 레오니다스, 순자와 맹자, 데바닷다와 사리푸트라, 아르키다모스와 페리클레스, 아니토스와 소크라테스, 부차와 구천, 데모스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진시황과 사마천, 항우와 유방, 한니발과 스키피오 그리고 이 책의 원고인 브루투스와 피고 카이사르까지 세계사법정을 통해 만난 인물들이 모두 26명이나 된다. 하나같이 무척이나 유명한 사람들이다 보니 영혼법정이 아니고서는 만날수 없었을 사람들이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세계사법정]의 장점을 들자면 살아생전 패배자로 불리게 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을 변호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변명의 기회조차 빼앗긴채 살아가는 수많은 약자들에 비하면 그들은 나름대로 운이 좋았다고 말할수 있을까? 브루투스, 정식 명칭은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세계사법정에 세웠다.
'브루투스, 너마저‥‥‥' 이것은 브루투스가 자신을 제거하려 하자 카이사르가 한 말이다. 그때 카이사르는 자신이 찰떡같이 믿었던 브루투스가 배신을 때리자 많이 실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승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실망이 미움으로 바뀌었을 터, 그런데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게 소송을 걸어버렸다. 기름에 불이 붙듯이 미움과 실망은 더 커져갔을 터, 둘은 이번 재판에서 자신에게 이로운 판결이 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있다. 브루투스는 무슨 이유로 카이사르를 죽이려고 했을까? 카이사르을 암살한 후 로마시민들 앞에서 브루투스는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다고 한다. 공화정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카이사르를 죽이면서까지 보호하려고 했을까? 공화정이란 나라를 여러사람이 돌아가면서 통치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국무총리와 같다고 한다. 그만큼 많이 중요하기도 하다.
브루투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공화정 말기 내란 때 카이사르에게 대항했으나 사면되었을 뿐만 아니라 요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왕이 되고자 하는 카이사르의 야심을 알아채고 그를 암살했다. 그 후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군과 싸우다 패해 자살했다.
삼두정치는 로마공화정 말기에 3명의 실력자가 동맹하여 국가권력을 독점한 정치형태로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가 있다. 어떻게 카이사르는 삼두정치을 운영하는 3인에 낄 정도로 힘을 키웠을까? 혼란스러운 로마의 귀족 간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않아 카이사르는 잠시 로마를 떠나, 아시아 식민지에서 군인으로 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다 기원전 78년 로마로 돌아왔으나 정치적 반대파에게 유산을 모두 빼앗긴 후라서 하층민이 사는 마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빼어난 논리와 웅변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 뒤 기원전 69년에는 재무선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때도 변호사때 써 먹었던 논리와 웅변이 큰 효과를 보인것 같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위해 돈을 펑펑 쓴 카이사르는 감당할 수 없는 빚까지 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빚을 결국은 갚았으까? 이 책에는 그것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아 알수가 없다. 내생각엔 그 빚을 갚지는 못했으나 대신관직에 당선된 것을 빌미로 빚 자체가 있었던 사실을 비밀리에 부쳤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로마시민의 지지를 얻어 결국 대신관직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럼 그 다음에도 로마시민의 지지는 유용하게 써 먹었을 것이다.
<판결문>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은 '브루투스 대 카이사르 사건' 의 피고 카이사르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내 판결문>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은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상대로 제기한 '후대의 평가 왜곡죄' 에서 무죄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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