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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이었다. 선교단체 선배가 추천해주었던 책이 그의 공동체 제자도라는 책이었다. 당시 나름 독서에 재미를 붙이던 때라 책을 구해서 읽었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그리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이 담고 있었던 여러 가지 고민과 실천이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제목과 부제에 희망, 지친 영혼, 기쁨이라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부담스러운 기억을 떨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저자의 모든 지혜와 통찰은 공동체를 통해서만 빚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중요하다고 말하는 공동체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그 삶을 사는 자가 말할 수 있는 잔잔하면서도 힘이 있는 메시지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책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 맞닥뜨리게 되는 총체적인 문제와 숙제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인 문제로서의 고독과 절망과 과거의 상처, 시대적인 문제로서의 성공과 성적 쾌락을 향한 욕망, 신앙인으로 가장 풀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의 주제를 다룬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한 거듭남과 구체적인 삶의 모델들을 제시하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새롭게 하고 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뜬구름 잡는 전개가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각 장마다 그 상황에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증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제와 갈등 가운데 있었지만 회복된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삶을 다 드려 이 땅에서 천국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물론 끝내 비극적으로 삶을 마치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독자의 삶에 구체적인 결단과 도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 큰 장점이다.
희망을 보게 하는 것, 지친 영혼이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고독과 절망이라는 양날의 고통에서 회복되는 것은 관심 받으려고 애쓸 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 때’이며(43p),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체 게바라의 비전은 ‘진정한 혁명은 강력한 사랑의 감정에 이끌린다는’(158p) 메시지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기쁨으로 다른 이들에게 삶에 영항을 주는’(196p) 삶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랑의 삶이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거듭나야 하지만, 천국에 대한 우리가 가진 생각과 느낌 또한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천국이라는 희망은 단순히 죽음 이후로 미뤄두는 것이 아니다.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때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천국을 선택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며 기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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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이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인생 좌표’라고 작게 쓰여진 부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된 한 학기를 마친 시점이라 더더욱 끌리는 책 제목이다. 이렇게 지쳐 있는데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어떻게 하면 되지? 라는 의문을 품고 책을 들춰보았다.
책날개에 적혀 있는 작가 소개 글에서 눈에 띄는 문장이 있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목사로서,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장로로서 평화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평생 헌신한 사람이었으며, 복음을 살아내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싸운 전사였다.’ ‘전사’라는 표현이 새롭다.
이 책은 2004년 ‘시련을 헤치고 천국을 본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을 새롭게 번역하여 낸 개정판이다. 저자는 초판을 쓴 지 15년이나 지난 현시점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과 지옥을 만나고 있으며, 아무리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저마다 삶에서 자유와 자신감, 동료애와 공동체를 찾게 되면 행복을 알게 되고 나아가 천국도 어렴풋이 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천국의 기쁨은 종종 구름에 가려져 있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 숨기어 있다. 그 기쁨은 항상 그곳에 있으면서 그걸 부단히 찾으며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사람에게 발견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쁨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고독이라는 전염병과 절망에서 탈출하기, 과거 구하기, 성공의 노예, 섹스, 시련과 고통, 거듭나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관심을 받으려고 애쓸 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 때 고독과 절망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돈을 벌고, 생산해내고, 성취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만나는 모든 이들, 특히 외롭거나 기진맥진한 이에게 사랑을 보여줄 때 삶에서 깊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9장에서는 천국의 기쁨을 찾아가는 여행의 안내자로 ‘체 게바라, 도로시 데이, 하인리히 아놀드’ 세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대가 해야 할 일이다. 대지와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필요한 모든 이에게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은 일에는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에 바치고 폭군들을 미워하고 신에 대해 논쟁하지 말라.’
저자는 지옥 같아 보이는 세상에서 천국을 위해 살려면, 이기심과 탐욕, 권력욕이 보상을 받는 문화에서 사랑과 겸손을 위해 살려면 분명 날마다 싸워야 한다고 피력한다. 영적이면서 실제적인 이 싸움을 위해 전사로서의 삶을 살도록 독려한다. 다음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며.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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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다. 이 동화는 애벌레가 꽃들에게 희망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책의 내용이 지금 우리의 삶을 잘 반영해 줄 뿐만 아니라 현대를 힘겹게 살아가지만 결국 남은 건 허무함과 절망, 고독이라는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대안과 이정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주인공 애벌레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에서 그는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삶에서 권태를 경험하고 기둥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벌어지는 무한경쟁과 이기주의가 참된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지 못함을 뼈저리게 경험한다. 여기서 애벌레가 추구했던 삶과 그 삶에서 경험한 허무함과 절망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흔히 경험하는 감정이다. 현대의 사회가 낳은 고독과 절망, 욕망의 노예된 삶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로 우리를 이끈다. <희망이 보이는 자리>는 책의 초반에 이러한 현대 사회의 병폐를 고발한다. 우린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절망한다. 이러한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애쓰지만 그 애씀 역시 우리에게 참된 자유로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끝없는 낭떠러지로 밀어 넣는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의 병폐 속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희망을 버릴 만큼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애벌레가 결국 희망을 발견했듯이, 저자는 우리 역시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과 그에 따른 올바른 선택으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희망이 보이는 자리>에서 저자는 오늘이라는 순간이야말로 옳은 편을 선택할 기회라고 이야기한다. 고독의 전염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체를 의지하는 것, 고통과 절망의 구렁텅이를 뚫고 사랑의 삶을 선택하는 것, 매일 자신의 옛 삶의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남을 선택하는 것을 통해 우린 희망에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책의 제목처럼 단지 애벌레가 희망을 찾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나비가 된 애벌레는 온 세상의 꽃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된다. 우리가 우리를 옭아매는 세상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삶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은 매일 평범한 일상 속에 주어진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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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디에
그래도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다고 한 청년이 상담을 요청해왔다. 그 청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았다. 이대로 사는 것이 맞는가? 지금의 삶에는 만족이 없고, 그렇다고 모험을 하자니, 불확실성의 어둠은 너무나 짙어서 선뜻 내키지 않아 한다. 어쩌면 좋겠냐는 청년의 말에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지지부진한 상담이 끝나고 찝찝한 마음만 남았다.
몇 년 후 그 청년을 다시 만났다. 그 청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상하게 다시 상담의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나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이 없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겁이 난다는 이야기를 리플레 이했다. 한편으로는 고구마였지만,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현대 사회에서 청년들은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평범하게 대학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이런 루틴한 삶이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대학 생활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성적에 맞춰 택한 전공공부는 포기한지 오래다. 학자금 대출로 잔뜩 빚을 진채 졸업한다. 금방 취업할 줄 알았지만, 알바를 전전한다. 친구들 모임에는 안간지 오래고 공무원 인강을 지루한 맘으로 의무감으로 듣는다.
sns에서 넘쳐나는 성공담중 하나가 될 줄 알았던 나의 삶은 지금을 지탱하기에도 위태위태하다. 나도 의미 있고, 멋진 삶을 살고 싶었지만, 남들 다 사는 정상적인 삶이 이제는 꿈이 된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이라니..희망은 있기나 한 것일까
많은 자기개발서와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과는 결을 달리한 채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창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손자로서, 그의 삶 역시 만만찮다. 1999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만다. 50대 말에 비극적 사고를 당한 그가 절망한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평화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평생 전했다. 그에게 있어서 희망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인생이 지옥과 같은 것임을 알고 있다. 대책 없는 낙관적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도한다고 전신마비가 풀리고, 삶이 나아지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저 너머의 세계로 가면 된다고 이 세계에서 조금만 버티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발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음을 일깨워 준다.
그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독, 절망, 과거에 매임, 성공의 욕망, 중독, 고통 등의 주제로 다루고 있다. 먼 하늘위에서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큰 아픔과 절망을 겪은 사람답게 아래에서 눈을 맞추며 위로를 전한다. 그러나 단순히 달콤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칼로 찌르듯 아프게, 하지만 직면할 수 있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기도 한다.
이 모든 주제를 이야기하며 그가 일관되게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이다. 내가 처한 상황만 바라보고, 나만 바라보는 사람은 내 주변에 있는 고독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옥 같은 삶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시는 그 분의 섭리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수록 스스로 판 덫에 걸린 꼴이 되고 만다.
우리의 희망은 사랑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모든 것을 던져서 사랑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에서 희망이 시작된다. 사랑할 때 나의 자리에 하나님을 위한 빈 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한 자리를 내 줄 수 있다. 나처럼 외롭고 힘든 이를 위해서 눈물흘리고 함께 있어 줄 때 전능자의 아픔과 사랑을 알 수 있다. 타인을 위한 나의 마음이 흘러갈 때 나의 자리가 보인다. 내가 진정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삶이 보인다. 그리고 진정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옥 같은 삶속에서 더 높은 자리를 끝없이 욕망하며 살아갈 것인지, 사랑 속에서 자리를 내어주는 희망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 그럴 시간이 없다며 보이지 않는 길을 달려갈 것인지, 잠시 멈추고 삶의 중요한 질문을 고민할 것인지 그것은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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