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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1 유홍준 창비/2022.12.22. sanbaram
서울을 역사의 도시라 하지만 현대화 된 서울을 생각하면 쉽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문물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0년 동안 수도였던 서울이기에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섯 개의 궁궐과 성곽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도시다. 그러나 늘 자주 접하는 곳이지만 제대로 그 문화유산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서울편 1)에서는 종묘와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을 다루고 있다. 여러 차례 들렸던 곳이기에 나름대로 익숙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문화유산의 진가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유홍준은 서울대 미학과, 홍대 미술사학과 석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화인열전>, <추사 김정희>등 다수가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서울편 1)에서 설명하고 있는 종묘는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와 우리 선조들의 문화인식까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궁궐 중에서 창덕궁을 먼저 설명하는 것은 조선시대 대다수의 왕들이 정사를 돌보고 생활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궁궐 중 가장 한국적인 특색을 갖춘 궁궐이기도 하다. 창덕궁 후원 설명을 통해 우리의 정원문화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 드라마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창경궁을 통해 우리 역사의 명암과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기에 독지들에게도 꼭 한번 읽고 현장답사를 다시 해 볼 것을 권한다.
종묘 종묘는 일반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조선왕조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궁궐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죽음의 공간이자 일종의 신전이다. 세계 모든 민족은 제각기 어떤 형태로든 고유한 신전을 갖고 있고 그 신전들은 한결같이 성스러움의 건축적 표현이라고 한다. 우리의 종묘는 “동양의 목조건물 중 가장 길다는 정전을 보면서 그는 ‘민주적’이라고 했다.(p.26)” 똑같이 생긴 정교한 공간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에서 권위적이지 않고 무한한 우주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한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고 저자는 말한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정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하기 때문이란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p.53)”라고 안내한다.
창덕궁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5개의 궁궐이 있다. 세계 어느 역사도시에도 한 도성 안에 법궁이 5개나 있는 곳은 없다고 한다.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태조 4년(1395년)이고 창덕궁이 창건된 것은 태종 5년(1405년)이었다.(p.104)” 조선 개국 1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두 궁궐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비극의 소산이었지만 결국 우리 문화유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궁의 구조는 3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3조란 외조, 치조, 연조를 말한다. 외조는 의례를 치르는 인정전, 치조는 임금이 정무를 보는 선정전, 연조는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이 주 건물이다. 경복궁에서는 이 3조가 남북 일직선상에 있지만 “창덕궁에는 산자락을 따라가며 어깨를 맞대듯 나란히 배치되었다. 그래서 경복궁에 중국식의 의례적인 긴장감이 있다면 창덕궁은 편안한 한국식 공간으로 인간적 체취가 풍긴다고 하는 것이다.(p.129)” 그리고 규장각에는 헌종 때 작성한 <승화루 서목>이 있어 여기 소장되었던 책, 그림, 글씨의 내용을 알 수 있는데 910종 4,555점이나 되며, 목록만 총 103쪽이라고 한다. <승화루 서목>을 통해 조선의 왕과 왕세자들 교양의 샘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창덕궁 후원 비원이라고도 불렀던 창덕궁 후원은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나아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정원의 미학이라고 강조한다. 중국과 일본의 정원도 자연과의 어우러짐을 중시했다. 그런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부른다. 원림을 경영하는 데는 울타리 바깥의 자연 경관을 정원으로 끌어들이는 차경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그러나 “우리 원림에서는 자연 경관을 빌려오는 차경 정도가 아니라 자연 경관 자체가 정원의 뼈대를 이룬다. 인공적인 조원이 아니라 자연을 경영하는 것이다.(p.217)” 산자락과 계곡의 즐비한 자연 지형에서 나온 우리만의 독특한 정원 형식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원에서 건물은 마치 자연이라는 거실에 배치된 가구 같아서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경관이 생기고 건물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고 우리의 정원을 설명한다.
첫 번째 골짜기에는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 규장각, 영화당, 비각이 거실의 가구처럼 배치되어 있는 모양과 그 기능을 설명한다. 두 번째 골짜기에는 불로문, 애련지, 애련정, 연경당, 선향재, 농수정 등이 있으며 각각의 역할과 역사적 사실 등을 안내한다. 그리고 세 번째 골짜기에는 관람지를 중심으로 폄우사, 관람정, 승재정, 존덕정 등의 위치와 모양, 특징을 설명하고 예전과 달라진 점을 이야기 한다. 골짜기에서 올라 등성이에 있는 취규정과 내려 가는 길가의 취한정을 지나면 네 번째 골짜기를 흐르는 옥류천가에 있는 소요정, 유상곡수, 농산정, 태극정, 청의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골짜기마다 정자를 곳곳에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겼는데, “정자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보다 거기에 앉아 밖을 바라볼 때가 더 의미 있다. 관람객이 아니라 사용자 입장이 중요한 것이다.(p.264)”라고 정자의 정취를 느끼는 방법을 설명한다. 중국의 정원에는 괴석이 없으면 안 된다. 얼마나 좋은 괴석을 갖고 있느냐가 정원의 수준을 좌우하기도 한다. 일본 정원에서는 연못이 없으면 안 된다. 오죽하면 지천회유식이라고 하겠는가. 이에 반해 “우리나라 정원에선 정자 하나가 있는 것으로 골격이 갖추어진다.(p.293)”고 한다. 그윽한 골짜기가 정자 하나로 인해 정원으로 바뀌고, 언덕 위에 오롯이 올라앉아 있음으로 해서 자연 풍광에 인간적 체취를 불어넣는다고 그 정자의 정취를 설명한다.
창경궁 한때 동물원과 식물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여 창경원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임란 후 광해군 8년(1616년)에 지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5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p.329)”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드라마로 가장 많이 재현되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장희빈 사건이 모두 이곳 창경궁에서 일어났으니, 이곳은 그야말로 숱한 궁중비사의 현장이다. 세종은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창덕궁 곁에 수강궁을 지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뒤 성종은 무려 세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인 세조 비, 작은 어머니인 예종 계비, 생어머니인 덕종 비 등이다. 이에 성종은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창경궁이라 했다. 창경궁이란 빛나는 경사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춘당지는 1907년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 식물원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면서 우선 우리 궁궐을 일본식 정원으로 꾸미기 위해 조성한 연못이다. 일본의 지천회유식 정원을 염두에 두고 연목을 판 것이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임금이 농사를 경험하기 위해 만든 11개의 내농포 논이 있었고 안쪽의 작은 춘당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내농포 한쪽에는 ‘풍년을 본다’는 뜻을 지닌 관풍각이라는 정자가 있어 권농 행사장으로 쓰이곤 했다.
창경궁에 갈 때마다 어릴 적 여행으로 간 동물원과 식물원의 기억이 자꾸 되살아난다. 그뿐만 아니라 첫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 나들이 갔던 창경원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씁쓸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야생화를 좋아하여 여러 번 찾게 된 창덕궁 후원이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좀 더 넓은 시야로 우리의 정원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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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실 속에 산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야기 속의 존재였고, 이야기 속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이야기로 남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현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설명해주는 서사다. - 문강형준 <감각의 제국> 10쪽 '서론 이야기에 대하여'에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에서 저자 유홍준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선왕조의 시작과 마지막을 담고 있다. 머리글에서 "... 서울은 궁궐의 도시이다."라고 명명하는 만큼 그 궁궐이 조성되는 조선왕조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9권은 종묘,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의 이야기를 한다. 종묘를 읽을 때는 2011년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혼자서 종묘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법궁이라는 경복궁 보다 앞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선조를 모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일게다. 저자는 종묘에 얽힌 왕들의 이야기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 이야기를 들려주며 종묘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이면서도 극대화하여 전하고 있다. 나는 그 가을 홀로 종묘를 방문해 관람객도 없는 시간에 정전 앞을 거닐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는 종묘의 '월대'라는 개념도 모르면서도 월대 밑에서, 위에서 여러 각도로 정전을 음미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겠지만, 종묘의 구조는, 뭔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종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이기 위해 인도하는 그런 건축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정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뒷산 너머에 있는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화이불치(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면 종묘의 단풍은 '검이불루(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 할 만하다.-53~54쪽 저자는 이렇게 종묘의 가을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정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는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꼈던 것을 떠올렸다. 문을 닫기 전까지 40분 정도 관람을 혼자서 했지만, 전혀 혼자여서 외롭거나 쓸쓸하다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그저 그 아름다움에 홀려서 오히려 혼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관람이었다. 종묘에 대한 이야기에서 종묘 제례악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중계하듯 전해주는데 사실 그래서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한국인이지만 너무나 생소하고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정성을 들여 한번 참관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도록 유혹했다는 것이다. 고궁을 방문하면 의상을 갖춰입고 역사 속의 의식의 한 장면을 시연하는 것을 종종 보았었는데 너무도 길고, 우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본 중에 기억나는 것은 누구누구의 혼례식 장면 같은 것이었는데, 왕도 없이 신부만 복장을 갖추고 내명부 윗전 앞에 서서 길고 긴 의식을 행하던 것이다.) 10분 쯤 보다가 자리를 떴었는데 이 종묘 제례악은 이 9권을 들고 가서 한번은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제례악을 마치면 창덕궁으로 넘어간다. 2004년 7월의 돈화문 부용정 애련정 좋은 사진이 아니어서 많이는 못올리겠다. 2004년 7월에 혼자서 9시30분에 진행하는 한국어 해설사를 따를 창덕궁을 관람했었다. 저자는 돈화문 월대에서 시작해서 관람 루트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내가 따랐던 그 길을 따라가며 각 건축에 얽힌 조선왕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낙선재에 이르른다. 어느 촌로 집안의 비극과 몰락이라도 아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물며 500년을 내려온 왕가의 몰락이었다. 저자가 창덕궁의 낙선재를 말할 때, 마지막 이구의 죽음에서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시신경을 죄며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자가 읽는 이에게 울어라, 울어라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서술해가고 있었음에도 감정의 깊은 동요가 일어나서 주체할 수 없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읽으며 가장 감정이 요동친 대목이었다. 낙선재는, 창덕궁은 역사 속에 남겨진 궁일텐데 21세기 초(2005년 7월 24일 이구 황세손의 장례를 9일장으로 치름)까지 그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간까지 현실과 함께 한 살아있는 장소였다는 것이 그리고 그들의 몰락이 나를 울게 했다. 일제강점기의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울었다. 종묘를 읽을 때는 종묘에, 창덕궁을 읽을 때는 창덕궁에 창경궁을 읽을 때는 창경궁에 마음을 빼앗기며 감동했지만, 책을 읽으며, 이런 감정을 경험한 것을 처음이었다. 낙선재 이야기 다음으로 창덕궁의 후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임금이 마시던 물이라고 해설사가 전하며 보호해야 하니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도 함께 관람하던 사람들 중 몇은 이 물맛을 보았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곳이 창덕궁의 후원의 마지막 종착점이었다. 이 책의 부제는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이다. 관람정을 지나 존덕정에 와서 이 주인옹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데 정조가 [만천명월 주인옹 자서]를 썼다고 한다. 저자는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의 글에 대해 요체를 압축해서 들려준다. 드라마에서 정조는 항시 죽음의 위협을 느꼈고 마지막은 결국 독살일 가능성이 높게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성군으로 불리는 정조의 인간에 대한 고뇌를 담은 글인데 저자가 압축한 내용을 전부 옮겨 적고 싶을 정도로 가르침이 많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 301쪽 부분은 특히 더 내가 타인을 대할 때 어찌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경궁으로 간다. 창경궁은 영조, 사도세자, 정조, 혜경궁 홍씨 이야기와 장희빈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고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의 창경원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사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창경원이었던 창경궁은 어릴적에는 많이 갔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기억이 없다. 창경궁으로 회복한 1986년 8월 23일 나도 동네 어린이들 둘을 데리고 동생과 함께 찾았었다. 그 때가 마지막이었을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창경궁을 가보고 싶다. 울기도 하고, 감동도 하고, 기억을 떠올리며 음미도 하고, 각 건축물마다 얽힌 조선왕조의 이야기에 안타까워도 하며 한 권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음 서울편 2도 어떤 감동을 줄지 기대하며 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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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나는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인이 되기 전에 읽으면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도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은 도통 관심이 없다. 사실 학창시절에 진학을 위해 억지로 공부하는데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역사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적거니와 선생님들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성인이 되어서 일에 치여서 살지만 학업에 대한 압박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져서 - 학창 시절 돈이 없어서 못했을 수도 있고 다른 공부하느라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된다. 남자가 나이들었다고 느낄때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때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을 보고 역사를 생각하게 될때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서울은 주로 일때문에 가기 때문에 많은 곳을 둘러보지는 않지만 많이 다니다보니 대략적으로 지리는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서울을 면접이나 시험을 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가족들과 여행으로 갔을때 한양 도성과 궁궐의 차이점에 대해 처음으로다. 사극을 열심히 보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역사시간에 열심히 필기만 하고 암기하느라 놓친 것인지 모르겠으나 4대 궁전을 돌아보면서 서울에도 고층 빌딩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쉴 수 있는 녹지 공간도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시사 상식처럼 서울의 4대 궁궐에 대해 암기는 하고 있지만 어떤 목적으로 설계하고 건축하였으며 어떤 왕들이 거주했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일반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왕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창경궁을 처음 들어가서 가이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 곳이 내가 어릴적에 왔던 창경원이라는 사실을 듣고 무지했던 나 자신을 탓 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궁궐들은 크고 화려한데 우리나라의 궁궐은 왜 이렇게 규모가 작을까라는 생각도 하였지만 일제 시대때 90%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를 왜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의 경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지만 그게 서민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전쟁으로 토지가 폐허가 되고 국민들이 적군에 의해 목숨을 잃고 포로로 잡혀가는데도 국가의 종묘 사직만을 지키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물론 그렇게 지켜왔기에 지금 우리가 문화 유산이라고 내세울만한 유적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조상을 잘둔 탓에 관과산업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는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국가들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았었나. 그런 나라들도 과거에는 평민들의 안위보다는 귀족들과 같은 일부 부유층들만 잘 살았지 않았던가.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고 내가 그 시절에 살지 않았기에 옳다 그르다 판단은 온전히 주관적이지만 분명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문명을 발달 시켰고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다. 물론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불운한 과거를 겪기도 했지만 오랜 역사가 지나고 보면 지금처럼 다시 과거의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남들지 모른다.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과거의 문화 유산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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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창덕궁 존덕정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된 분들께는 양해의 말씀드리며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올리겠습니다~
이번 책은 읽는내내 저 개인에게 여러모로 많은 자극을 줬고 지금도 그 여운이 남게 합니다. 올해 관광통역안내사 취득을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끝난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의무감에 암기하려고만 애썼던, 관광자원해설 분야에서 알게 됐던 조선시대 문화유산들(종묘, 종묘제례, 창덕궁, 창경궁)을 다시 알게 되었고 그만큼 직접 보고 싶어지게 만든 책입니다. 누군가 말하길 아는만큼 보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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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종묘에 갔다. 신이 다닌다는 길을 걷다가 애인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비가 내려 불편하다 생각했는데 비가 와서 좋다는 말에 기분이 나아졌다. 눈이 내렸으면 훨씬 아름다웠겠지. 그래도 사람이 없어서 공간의 아름다움이 더 잘 느껴졌다. 나를 고요하게 앉힌다는 기분이 들었다. * 다음에는 창경궁과 후원에 가볼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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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예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을 사놓고 조금 읽다 말았다. 이 책도 다 읽지는 못했다. 나는 이런 책이 유독 읽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같은 건물도 다르게 보이고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이 좋다.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서울편이니 시간 날 때 한군데씩 방문해 보면 좋을 듯하다. 이전에는 그냥 '예쁘다'라고 느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일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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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비 내리던 주말 종묘에 다녀왔다
* 종묘의 길들은 걷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멈추기 위한 것이고, 곧게 뻗기 보다는 꺾이고 갈라지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너무 빨라지면 걸음을 멈추도록 제어하며 멈추어 서면 다시 움직임을 유도하는 길들이 계속된다. 엄숙한 건물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마치 길들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종묘의 길들은 그 자체가 건축적 질서이며 의례이고 움직임이며 행위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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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버전이 있는데도 유일하게 종이책을 사는 시리즈. 처음에 1권부터 시작한 컬렉션 때문인지 유독 이 시리즈는 전체 세트를 종이 책으로 책장에 갖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 평생 삼국지와 더불어 가장 여러번 읽은 책이었고 나의 휴가는 대부분 이 책에서 소개된 루트를 따라 답사하는 것이었다. 서울편이라니, 책을 읽으면서도 이미 답사를 염두해 두고 읽는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살면서 그렇게 많이 지나치고도 들어가보지도 않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라고 작가가 1권인가, 2권에서 했던 인용구. 그 문구가 어느 때 보다 더 와닿는 편이 바로 이 서울 편이 아닐까 싶다. 앞으론 외국인 친구들이 오면 서울의 고궁을 데리고 가서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 주말에 당일로 아들과 함께 가서 산 역사 공부를 시켜주기 위해, 또 읽고, 또 읽어야 겠다. P.S. 막상 답사를 다닐 땐 전자책이 편해서 일부 몇권은 전자책으로도 또 샀다. 서울편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종이책사고 전자책도 사면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은 없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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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모으면서 가끔 안타까울때가 있는데 머물고 있는, 혹은 머물렀던 지역에 있던 명소들을 모르고 지나쳤을 때입니다. 주위에 있기 때문에 더 다음을 기약하게 되고, 오히려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서울이라는 곳은 특히나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자랐고, 정착했지만 서울에서 몇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는 서울의 이런 장소들을 알지 못했었어요. 그 때 알았더라면 더 다양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그런 부분은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책으로라도 그런 부분들을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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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조선왕조의 상징적 문화유산인 종묘를 시작으로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의 구석구석 살피며 조선 건축의 아름다움, 왕족들의 삶과 애환, 전각마다 서린 수많은 사연 등을 그윽하게 풀어낸다. 여기서는 특히 미(美)를 보는 저자만의 안목에 우리 문화유산에 쏟아진 세계인들의 찬탄을 더하여 사찰의 도시 교토, 정원의 도시 쑤저우에 견줄 궁궐의 도시 서울의 매력을 총체적으로 집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