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2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7%
  • 리뷰 총점8 20%
  • 리뷰 총점6 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9.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7)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 내용보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 서울편 2 유홍준 창비/2022.12.7. sanbaram   서울 시내가 고층 빌딩숲으로 변한 요즘은 남대문을 지날 때도 예전처럼 우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에서는 먼저 조선이 한양도성으로 천도하게 된 사연부터 도성을 어떻게 짧은 시간에 쌓고 개축하였으며 관리하였는지를 설명한다. 북한 무장공비의 1.21사태로 인해 북악산 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 내용보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

서울편 2

유홍준

창비/2022.12.7.

sanbaram

 

서울 시내가 고층 빌딩숲으로 변한 요즘은 남대문을 지날 때도 예전처럼 우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에서는 먼저 조선이 한양도성으로 천도하게 된 사연부터 도성을 어떻게 짧은 시간에 쌓고 개축하였으며 관리하였는지를 설명한다. 북한 무장공비의 1.21사태로 인해 북악산 구역이 출입금지 되었다가 개방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설명한다. 이어서 자문밖으로 불리던 서북문인 창의문밖의 골짜기 옛별서지역의 시대적 변천과 의미도 짚어본다. 그리고 근대화시기의 우리 역사를 덕수궁을 중심으로 하여 되돌아보며 유명무실해진 경희궁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어서 동대문밖에 있는 동묘로 알려진 동관왕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성균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 유홍준은 서울대 미학과, 홍대 미술사학과 석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를 졸업했다. 미술평론가와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화인열전>, <추사 김정희등 다수가 있다.

 

서울의 자랑은 이처럼 자연과 인공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탁월한 로케이션에 있다. (p.18)”고 말하며 산과 강 그리고 도시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어우러진 서울이 조선의 도성으로 정해진 사연과 그 변화에 대해 고찰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왕조의 신도읍 건설이라는 대역사에 필요한 인력을 농번기를 피해 동원했으며, 전국의 승려들을 동원해 핵심 기술자를 충당하였다. 한양 도성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총 길이 59,500(18.6킬로미터)에 평지는 토성, 산지는 석성으로 축조하기로 계획되었다. 한양도성의 성곽 축조 공사는 600(180미터)씩 모두 97구역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성곽 전체를 600척으로 나누면 97구역하고 1,300척이 남는데 이는 인왕산 자락의 자연 암반과 절벽을 성곽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각 구역을 지방별로 배정하고 책임자를 성벽의 돌에 새겨 실명제를 통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여 짧은 공기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도성이 되도록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도성은 전쟁을 위한 성이 아니라 평상시 도읍의 울타리 역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해자와 같은 방어시설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 4, 세종대왕은 한양도성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공사를 단행했다. 이때 세종대왕은 토성을 없애고 성곽 전체를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역사를 다시 벌였다.(p.41)” 인력은 역시 농번기를 피해 1월과 2월 농한기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동원했다. 이때 전국에서 동원된 인부는 1차 공사 때의 3배에 달하는 약 32만 명이었고, 기술자만 2,200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한양도성의 북쪽문인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도성 동서남북에 사대문의 격식을 갖추면서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었다. 그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도 마찬가지여서 조선 초에는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문루도 없었으며 숙종 때 당춘대성이 축조된 뒤에야 총융청 등 군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성가퀴의 기본 구조는 낮은 맞배지붕에 3개의 총구멍을 낸 것이다. 하나의 성가퀴를 1타라 부르며 1타에는 3개의 총 쏘는 구멍이 있다.(p.74)” 가까운 곳을 쏘는 근총안 1개가 한 가운데 있고, 양옆에는 먼 데를 쏘는 원총안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원총안은 대개 구멍을 수평으로 뚫은 반면 근총안은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고 설명하여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우리나라 성곽과 문루는 전란에 대비한 것이라기보다 도성의 울타리다. 이 점은 중국이나 일본과 전혀 다르다. 만약 전쟁을 고려했다면 벽체를 높이 쌓고 성곽 둘레에 해자를 깊게 파놓아 탄탄한 방어시설을 구축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격적으로 실록 편찬 작업에 들어가면 초초, 중초, 정초 세 단계를 거쳐 실록이 완성되었다. 이렇데 완성된 실록은 사고에 봉안하고 실록의 초본인 초초와 중초, 그리고 사관이 개인적으로 제출한 사초는 기밀 누설을 방지하기 위하여 종이를 물로 흔적 없이 씻어냈다, 이를 세초라고 했다.(p.133)” 태우지 않고 물로 씻어낸 것은 종이를 재생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 세초가 세검정 계곡에서 이루어졌다. 조지서가 가까이 있는 데다 계곡의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암동이라는 동네 이름은 부침바위라 불리는 부암(付岩)에서 비롯되었다. 이 부침바위는 소원을 빌면서 돌을 붙였던 기복신앙의 대상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잔 자갈돌을 계속 비비면 마찰 효과로 돌이 얹힐 수 없었을 것 같은 가파른 면에 달라붙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간에서 전해오는 풍습이나 동 이름이 생겨나게 된 배경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덕수궁이라 불리기 훨씬 전에 이미 이곳엔 경운궁이라는 궁궐이 있었고 경운궁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p.195)”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궁궐을 철저히 파괴하기 시작해 경복궁에 총독부 건물을 짓고, 덕수궁은 궁궐이 아니라 공원으로 꾸몄다. 훗날 경기여고와 덕수초등학교가 들어선 선원전 구역을 매각하고 덕수궁과 오늘날의 미국대사관저 사이에 길을 만들면서 궁궐의 일부 영역이 도로 서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광해군은 선조와 마찬가지로 석어당에 기거하고 즉조당에서 청정(聽政)’했다. 청정이란 조선시대 임금이 정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한 것은 재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경덕궁은 서궐로 이궁 역할을 단단히 했다. 숙종은 경덕궁에서 태어나 재위 19년에는 궁궐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궁궐지를 편찬했으며, 영조는 재위 36년 이곳으로 이어한 뒤 16년 가까이 기거했다. 그때 영조는 궁궐 이름인 경덕이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음이 같다며 경희궁(慶熙宮)’으로 고쳤고 이곳 집경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의 덕수궁은 18천 평을 둘러싼 돌담 안에 10여 채의 전각들이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서양식 건물들이 모인 석조전 구역이고 또 하나는 정전인 중화전, 침전인 함녕전 등이 있는 전통 궁궐 구역이다.(p.259)” 그러나 원래의 덕수궁은 현재보다 3배 이상 넓어 돌담 밖 북쪽의 옛 경기여고 터에는 역대 임금의 초상을 모신 선원전 구역이 있었고, 서족 정동 극장과 예원학교 자리에는 황실의 생활공간인 수옥헌 구역이 있었다. 대한제국이 불과 13년 만에 막을 내리고 일제강점기로 넘어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쓸쓸한 마지막만 떠올릴 뿐 대한제국의 실체를 역사의 기억으로 거의 간직하지 못한 채 흔히 구한말이라고 칭하면서 조선왕조는 1910년 일제의 국권 침탈로 막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조선왕조는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와 함께 끝났고 그때부터 대한제국의 13년 역사가 이어졌다고 저자는 첨언한다.

 

동묘는 동관왕묘의 준말이다.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가 사후에 점점 신격화되어 관왕으로 받들어지면서 사당보다 격이 높은 묘가 된 것이다.(p.308)” 본래 조선왕조엔 관왕묘가 없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 조선에 파병 온 명나라 장수들이 주둔지에 관왕묘를 세우면서 등장했다. 관왕묘에 있는 일월오봉도는 같은 문화권이라 해도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의 독창적인 그림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 경전의 어좌 뒤에 장식되어 있고, 옥외 행사 때도 임금의 자리 뒤에 반드시 놓였다. 관우도 왕으로 승격하여 관왕이 되었기 때문에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세운 것이다.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는 염색을 하면서 궁핍하게 살면서도 세조가 내려주는 그 무엇도 받지 않았고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까지 다섯 임금의 시대를 더 살다 중종 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중종은 단종의 묘소를 찾게 하면서 서서히 복권을 시도했던바 정순왕후의 장례 또한 대군부인격으로 치르도록 각별히 배려했다. 왕비가 살았던 정업원 터에는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는 청룡사가 들어서 있다. 청룡사는 비구니 사찰로 아주 깔끔하다고 한다.

 

성균관의 기본 구조는 강학 공간인 성균관(명륜당)과 향사 공간인 문묘(대성전)를 양대 축으로 이루어졌다. 교학이 분리되지 않아 유학이면서 동시에 유교였다. 대성전에는 공자와 역대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p.382)” 우리나라 성현은 모두 열여덟 분이어서 동국 문묘 18이라고 하는데 조선 국초 까지는 설총, 최치원, 안향 세 분의 위패만 동무와 서무에 모셔져 있었다. 한편 유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무명자 윤기라는 분이 성균관 유생들의 생활상을 무려 220수로 읊은 반중잡영이라는 장편시가 근래에 알려지면서 비로소 소상히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정위로 해 가운데에 모시고 좌우로 첫째 줄에는 4대 성인, 둘째 줄에는 공문 10철과 송조 6, 셋째 줄에는 동국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4대 성인은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이고, 공문 10철은 공자의 10대 제자이며, 송조 6현은 송나라 때 성리학을 완성한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등 6인이고 동국 18현은 우리나라의 신라, 고려, 조선의 명현 18인이라고 설명한다.

 

탕평채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영조의 탕평책 이후에 쓰인 송남잡지>, <경도잡지>, <동국세시기등 세시풍속에 관한 책에 나오는 공통된 요리가 삼짇날의 계절 음식 중 하나로 대래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먹는 녹두묵무침이다.(p.478)”라고 소개하면서 탕평채에 들어가는 재료의 색은 각 붕당을 상징했는데,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을, 쇠고기의 붉은색은 남인을,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을, 김의 검은색은 북인을 각각 뜻했다고 한다. 다른 색깔과 향의 재료들이 서로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는 요리가 탕평채라고 소개한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문화 융성기를 일으켰던 영, 정조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8세기 3분기 석굴암, 불국사, 에밀레종으로 상징되는 신라 경덕왕 때, 12세기 2분기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고려 인종 때, 15세기 2분기 한글을 창제하고 종묘제례악을 정비한 세종대왕 때, 그리고 18세기 후반기 영, 정조 시대가 문예부흥기였다고 부언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우리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달의 사락 k******4 2023.01.31. 신고 공감 1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 내용보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1 유홍준 창비/2022.12.22. sanbaram   서울을 역사의 도시라 하지만 현대화 된 서울을 생각하면 쉽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문물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0년 동안 수도였던 서울이기에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섯 개의 궁궐과 성곽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도시다. 그러나 늘 자주 접하는 곳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 내용보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1

유홍준

창비/2022.12.22.

sanbaram

 

서울을 역사의 도시라 하지만 현대화 된 서울을 생각하면 쉽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문물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0년 동안 수도였던 서울이기에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섯 개의 궁궐과 성곽을 비롯한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도시다. 그러나 늘 자주 접하는 곳이지만 제대로 그 문화유산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서울편 1)에서는 종묘와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을 다루고 있다. 여러 차례 들렸던 곳이기에 나름대로 익숙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문화유산의 진가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유홍준은 서울대 미학과, 홍대 미술사학과 석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화인열전>, <추사 김정희등 다수가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9>(서울편 1)에서 설명하고 있는 종묘는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와 우리 선조들의 문화인식까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궁궐 중에서 창덕궁을 먼저 설명하는 것은 조선시대 대다수의 왕들이 정사를 돌보고 생활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궁궐 중 가장 한국적인 특색을 갖춘 궁궐이기도 하다. 창덕궁 후원 설명을 통해 우리의 정원문화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 드라마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창경궁을 통해 우리 역사의 명암과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기에 독지들에게도 꼭 한번 읽고 현장답사를 다시 해 볼 것을 권한다.

 

종묘

종묘는 일반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조선왕조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궁궐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죽음의 공간이자 일종의 신전이다. 세계 모든 민족은 제각기 어떤 형태로든 고유한 신전을 갖고 있고 그 신전들은 한결같이 성스러움의 건축적 표현이라고 한다. 우리의 종묘는 동양의 목조건물 중 가장 길다는 정전을 보면서 그는 민주적이라고 했다.(p.26)” 똑같이 생긴 정교한 공간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에서 권위적이지 않고 무한한 우주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한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고 저자는 말한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정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하기 때문이란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p.53)”라고 안내한다.

 

창덕궁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5개의 궁궐이 있다. 세계 어느 역사도시에도 한 도성 안에 법궁이 5개나 있는 곳은 없다고 한다.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태조 4(1395)이고 창덕궁이 창건된 것은 태종 5(1405)이었다.(p.104)” 조선 개국 1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두 궁궐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비극의 소산이었지만 결국 우리 문화유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궁의 구조는 3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3조란 외조, 치조, 연조를 말한다. 외조는 의례를 치르는 인정전, 치조는 임금이 정무를 보는 선정전, 연조는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이 주 건물이다. 경복궁에서는 이 3조가 남북 일직선상에 있지만 창덕궁에는 산자락을 따라가며 어깨를 맞대듯 나란히 배치되었다. 그래서 경복궁에 중국식의 의례적인 긴장감이 있다면 창덕궁은 편안한 한국식 공간으로 인간적 체취가 풍긴다고 하는 것이다.(p.129)” 그리고 규장각에는 헌종 때 작성한 승화루 서목이 있어 여기 소장되었던 책, 그림, 글씨의 내용을 알 수 있는데 9104,555점이나 되며, 목록만 총 103쪽이라고 한다. <승화루 서목을 통해 조선의 왕과 왕세자들 교양의 샘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창덕궁 후원

비원이라고도 불렀던 창덕궁 후원은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나아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정원의 미학이라고 강조한다. 중국과 일본의 정원도 자연과의 어우러짐을 중시했다. 그런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부른다. 원림을 경영하는 데는 울타리 바깥의 자연 경관을 정원으로 끌어들이는 차경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그러나 우리 원림에서는 자연 경관을 빌려오는 차경 정도가 아니라 자연 경관 자체가 정원의 뼈대를 이룬다. 인공적인 조원이 아니라 자연을 경영하는 것이다.(p.217)” 산자락과 계곡의 즐비한 자연 지형에서 나온 우리만의 독특한 정원 형식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원에서 건물은 마치 자연이라는 거실에 배치된 가구 같아서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경관이 생기고 건물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고 우리의 정원을 설명한다.

 

첫 번째 골짜기에는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 규장각, 영화당, 비각이 거실의 가구처럼 배치되어 있는 모양과 그 기능을 설명한다. 두 번째 골짜기에는 불로문, 애련지, 애련정, 연경당, 선향재, 농수정 등이 있으며 각각의 역할과 역사적 사실 등을 안내한다. 그리고 세 번째 골짜기에는 관람지를 중심으로 폄우사, 관람정, 승재정, 존덕정 등의 위치와 모양, 특징을 설명하고 예전과 달라진 점을 이야기 한다. 골짜기에서 올라 등성이에 있는 취규정과 내려 가는 길가의 취한정을 지나면 네 번째 골짜기를 흐르는 옥류천가에 있는 소요정, 유상곡수, 농산정, 태극정, 청의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골짜기마다 정자를 곳곳에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겼는데, 정자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보다 거기에 앉아 밖을 바라볼 때가 더 의미 있다. 관람객이 아니라 사용자 입장이 중요한 것이다.(p.264)”라고 정자의 정취를 느끼는 방법을 설명한다. 중국의 정원에는 괴석이 없으면 안 된다. 얼마나 좋은 괴석을 갖고 있느냐가 정원의 수준을 좌우하기도 한다. 일본 정원에서는 연못이 없으면 안 된다. 오죽하면 지천회유식이라고 하겠는가. 이에 반해 우리나라 정원에선 정자 하나가 있는 것으로 골격이 갖추어진다.(p.293)”고 한다. 그윽한 골짜기가 정자 하나로 인해 정원으로 바뀌고, 언덕 위에 오롯이 올라앉아 있음으로 해서 자연 풍광에 인간적 체취를 불어넣는다고 그 정자의 정취를 설명한다.

 

창경궁

한때 동물원과 식물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여 창경원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임란 후 광해군 8(1616)에 지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5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p.329)”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드라마로 가장 많이 재현되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장희빈 사건이 모두 이곳 창경궁에서 일어났으니, 이곳은 그야말로 숱한 궁중비사의 현장이다. 세종은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창덕궁 곁에 수강궁을 지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뒤 성종은 무려 세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인 세조 비, 작은 어머니인 예종 계비, 생어머니인 덕종 비 등이다. 이에 성종은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창경궁이라 했다. 창경궁이란 빛나는 경사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춘당지는 1907년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 식물원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면서 우선 우리 궁궐을 일본식 정원으로 꾸미기 위해 조성한 연못이다. 일본의 지천회유식 정원을 염두에 두고 연목을 판 것이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임금이 농사를 경험하기 위해 만든 11개의 내농포 논이 있었고 안쪽의 작은 춘당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내농포 한쪽에는 풍년을 본다는 뜻을 지닌 관풍각이라는 정자가 있어 권농 행사장으로 쓰이곤 했다.

 

창경궁에 갈 때마다 어릴 적 여행으로 간 동물원과 식물원의 기억이 자꾸 되살아난다. 그뿐만 아니라 첫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 나들이 갔던 창경원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씁쓸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야생화를 좋아하여 여러 번 찾게 된 창덕궁 후원이었는데, 이 책을 통하여 좀 더 넓은 시야로 우리의 정원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달의 사락 k******4 2023.01.27. 신고 공감 1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내용보기
우리는 현실 속에 산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야기 속의 존재였고, 이야기 속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이야기로 남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현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설명해주는 서사다. - 문강형준 <감각의 제국> 10쪽 '서론 이야기에 대하여'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내용보기

우리는 현실 속에 산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야기 속의 존재였고, 이야기 속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이야기로 남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현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설명해주는 서사다. - 문강형준 <감각의 제국> 10쪽 '서론 이야기에 대하여'에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에서 저자 유홍준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선왕조의 시작과 마지막을 담고 있다. 머리글에서 "... 서울은 궁궐의 도시이다."라고 명명하는 만큼 그 궁궐이 조성되는 조선왕조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9권은 종묘,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의 이야기를 한다.

종묘를 읽을 때는 2011년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혼자서 종묘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법궁이라는 경복궁 보다 앞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선조를 모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일게다. 저자는 종묘에 얽힌 왕들의 이야기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 이야기를 들려주며 종묘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이면서도 극대화하여 전하고 있다. 나는 그 가을 홀로 종묘를 방문해 관람객도 없는 시간에 정전 앞을 거닐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는 종묘의 '월대'라는 개념도 모르면서도 월대 밑에서, 위에서 여러 각도로 정전을 음미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겠지만, 종묘의 구조는, 뭔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종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이기 위해 인도하는 그런 건축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정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뒷산 너머에 있는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화이불치(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면 종묘의 단풍은 '검이불루(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 할 만하다.-53~54쪽

저자는 이렇게 종묘의 가을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정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는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꼈던 것을 떠올렸다. 문을 닫기 전까지 40분 정도 관람을 혼자서 했지만, 전혀 혼자여서 외롭거나 쓸쓸하다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그저 그 아름다움에 홀려서 오히려 혼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관람이었다.

종묘에 대한 이야기에서 종묘 제례악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중계하듯 전해주는데 사실 그래서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한국인이지만 너무나 생소하고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정성을 들여 한번 참관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도록 유혹했다는 것이다. 고궁을 방문하면 의상을 갖춰입고 역사 속의 의식의 한 장면을 시연하는 것을 종종 보았었는데 너무도 길고, 우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본 중에 기억나는 것은 누구누구의 혼례식 장면 같은 것이었는데, 왕도 없이 신부만 복장을 갖추고 내명부 윗전 앞에 서서 길고 긴 의식을 행하던 것이다.) 10분 쯤 보다가 자리를 떴었는데 이 종묘 제례악은 이 9권을 들고 가서 한번은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제례악을 마치면 창덕궁으로 넘어간다.

2004년 7월의 돈화문

부용정

애련정

좋은 사진이 아니어서 많이는 못올리겠다. 2004년 7월에 혼자서 9시30분에 진행하는 한국어 해설사를 따를 창덕궁을 관람했었다.

저자는 돈화문 월대에서 시작해서 관람 루트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내가 따랐던 그 길을 따라가며 각 건축에 얽힌 조선왕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낙선재에 이르른다.

어느 촌로 집안의 비극과 몰락이라도 아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물며 500년을 내려온 왕가의 몰락이었다. 저자가 창덕궁의 낙선재를 말할 때, 마지막 이구의 죽음에서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시신경을 죄며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자가 읽는 이에게 울어라, 울어라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서술해가고 있었음에도 감정의 깊은 동요가 일어나서 주체할 수 없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읽으며 가장 감정이 요동친 대목이었다. 낙선재는, 창덕궁은 역사 속에 남겨진 궁일텐데 21세기 초(2005년 7월 24일 이구 황세손의 장례를 9일장으로 치름)까지 그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간까지 현실과 함께 한 살아있는 장소였다는 것이 그리고 그들의 몰락이 나를 울게 했다. 일제강점기의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울었다. 종묘를 읽을 때는 종묘에, 창덕궁을 읽을 때는 창덕궁에 창경궁을 읽을 때는 창경궁에 마음을 빼앗기며 감동했지만, 책을 읽으며, 이런 감정을 경험한 것을 처음이었다.

낙선재 이야기 다음으로 창덕궁의 후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임금이 마시던 물이라고 해설사가 전하며 보호해야 하니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도

함께 관람하던 사람들 중 몇은 이 물맛을 보았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곳이 창덕궁의 후원의 마지막 종착점이었다.

이 책의 부제는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이다. 관람정을 지나 존덕정에 와서 이 주인옹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데 정조가 [만천명월 주인옹 자서]를 썼다고 한다. 저자는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의 글에 대해 요체를 압축해서 들려준다. 드라마에서 정조는 항시 죽음의 위협을 느꼈고 마지막은 결국 독살일 가능성이 높게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성군으로 불리는 정조의 인간에 대한 고뇌를 담은 글인데 저자가 압축한 내용을 전부 옮겨 적고 싶을 정도로 가르침이 많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 301쪽 부분은 특히 더 내가 타인을 대할 때 어찌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경궁으로 간다. 창경궁은 영조, 사도세자, 정조, 혜경궁 홍씨 이야기와 장희빈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고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의 창경원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사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창경원이었던 창경궁은 어릴적에는 많이 갔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기억이 없다. 창경궁으로 회복한 1986년 8월 23일 나도 동네 어린이들 둘을 데리고 동생과 함께 찾았었다. 그 때가 마지막이었을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창경궁을 가보고 싶다.

울기도 하고, 감동도 하고, 기억을 떠올리며 음미도 하고, 각 건축물마다 얽힌 조선왕조의 이야기에 안타까워도 하며 한 권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음 서울편 2도 어떤 감동을 줄지 기대하며 넘어간다.

o********o 2018.02.22. 신고 공감 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 내용보기
10권에서는 총 5부로 한양도성, 자문밖, 덕수궁, 동관왕묘, 성균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중에서 덕수궁을 가보았던 것 빼고는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성균관은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정은궐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읽어 생소함을 면한 정도다. 덕수궁을 여러 번 가보았다고는 해도 덕수궁이 가진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해서 덕수궁도 안다고는 못하겠다. 다른 지역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 내용보기

10권에서는 총 5부로 한양도성, 자문밖, 덕수궁, 동관왕묘, 성균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중에서 덕수궁을 가보았던 것 빼고는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성균관은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정은궐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읽어 생소함을 면한 정도다. 덕수궁을 여러 번 가보았다고는 해도 덕수궁이 가진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해서 덕수궁도 안다고는 못하겠다. 다른 지역의 문화유산을 담을 전편들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서울편에서도 느끼고 있다.

이야기의 처음 태조가 수도를 정하는 과정부터 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사숙고 끝에 내려진 결정인지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내가 살고 있는 옆동네인 신촌과 연희동 일대가 검토되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무학대사의 말이 결정적이었다고 저자는 전하는데 그 말을 '도성을 쌓아 도읍으로서 격식을 갖추라'는 것이라고 한다. 이로서 수도 한양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편 1에서 말하고 있는 종묘와 경복궁 등의 건축이 이루어진다. 기본 설계가 3개월만에 이루어졌고, 10개월 뒤에는 공사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공사가 완료된 9월의 다음 달인 윤9월에 한양도성 축성에 들어갔는데 조선 팔도에서 인원을 동원했고 공사 실명제로 성벽 돌에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남한산성을 갔다가 성벽 돌에 한글로 이름이 새겨 있는 것을 보고 '아니, 이런 글을 왜 새겨놨데?' 하고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성벽 공사 실명제에 유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실 낙서인줄 알았답니다.ㅠ.ㅠ;;;) 이 한양 도성의 공사도 1년 정도 걸려 완성을 시켰으니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세종 대에 전면적인 보수공사로 성곽 전체를 성석으로 수축한다. "한양도성은 전란을 대비해 쌓은 성곽이 아니라 수도 한양의 권위와 품위를 위해 두른 울타리다. 집에 담장이 있고, 읍에 읍성이 있듯이 수도 서울에 두른 도성이다.(48쪽)" 그러나 전란을 겪은 뒤, 숙종 대에 수도 방어체제의 하나로 보강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까지 전쟁은 없었다고 한다. 대신 성곽 순례인 순성놀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도시계획으로 평지의 성곽이 모두 헐려 총 길이 18.627킬로미터 중 10.5킬로미터만 남기에 이르렀고, 복원사업을 벌여 2016년 기준 13.1킬로미터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북악산 개방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반갑고 재미있었다.

두번째 이야기는 자문밖으로 부암동, 신영동, 구기동, 평창동, 홍지동을 말한다.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의 별칭이 자하문이고 자하문 밖을 줄여 '자문밖'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게는 전혀 생소한 지명인데 그 중심이라는 세검정은 지나는 봤다. 저자는 지금은 사라진 장의사와 조지서, 연산군의 탕춘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숙종대에 지은 탕춘대성과 홍지문을 이야기한다. 그 일대의 변모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홍지문, 오간수문, 탕춘대성의 아름다움과 그윽함은 변함이 없고 풍광 자체가 워낙에 수려해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116쪽)'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곳곳의 아름다움 유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척에 두고도 한 곳도 가보지를 못하였으니 정말 서울 촌놈이 바로 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세번째 이야기는 덕수궁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곳이지만,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되고 순종은 즉위 후 창덕궁으로 이어하고 고종이 쓸쓸하게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대한제국은 결코 맥없이 쓰러진 나라가 아니었다. 비록 일제의 강압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외세에서 독립된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안간힘을 썼던 그 몸부림을 덕수궁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300쪽)'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뼈아픈 자기반성은 이미 늦었고 실효성도 없었다. 외세의 강압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백성을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지키지 못한 무능력을 조선왕조 말의 왕은 사과하지 않았다.

네번째는 동관왕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세검정은 이름이라도 들어보고 지나가기라도 해봤지만 동관왕묘는 정말 생소한 곳이다. 뭐 난 천주교인으로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니 할 말은 없지만 우리나라의 유명한 장군들이 많을텐데 그런 장군들의 사당이 아닌 관우를 신격화하면서까지 모셨다는 것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중국인 관광객 유커들을 유치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라고 하니 조상이 남겨준 것은 무엇이라고 좋은 거겠지... 음...

마지막은 성균관이다. 읽는 내내 정은궐 작가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생각이 났고, 그래서 가보지 못했어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은행나무 단풍이 드는 11월의 첫째주 일요일이나 둘째주 일요일에 이 책을 끼고 찾고 싶다. 그러면 존경하는 저자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o********o 2018.03.25.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서울편]내가 모르고 있던 서울의 모습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서울편]내가 모르고 있던 서울의 모습들" 내용보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나는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인이 되기 전에 읽으면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도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은 도통 관심이 없다. 사실 학창시절에 진학을 위해 억지로 공부하는데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역사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적거니와 선생님들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서울편]내가 모르고 있던 서울의 모습들" 내용보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나는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인이 되기 전에 읽으면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도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은 도통 관심이 없다. 사실 학창시절에 진학을 위해 억지로 공부하는데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역사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적거니와 선생님들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성인이 되어서 일에 치여서 살지만 학업에 대한 압박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져서  - 학창 시절 돈이 없어서 못했을 수도 있고 다른 공부하느라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된다. 남자가 나이들었다고 느낄때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때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을 보고 역사를 생각하게 될때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서울은 주로 일때문에 가기 때문에 많은 곳을 둘러보지는 않지만 많이 다니다보니 대략적으로 지리는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서울을 면접이나 시험을 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가족들과 여행으로 갔을때 한양 도성과 궁궐의 차이점에 대해 처음으로다. 사극을 열심히 보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역사시간에 열심히 필기만 하고 암기하느라 놓친 것인지 모르겠으나 4대 궁전을 돌아보면서 서울에도 고층 빌딩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쉴 수 있는 녹지 공간도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시사 상식처럼 서울의 4대 궁궐에 대해 암기는 하고 있지만 어떤 목적으로 설계하고 건축하였으며 어떤 왕들이 거주했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일반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왕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창경궁을 처음 들어가서 가이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 곳이 내가 어릴적에 왔던 창경원이라는 사실을 듣고 무지했던 나 자신을 탓 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궁궐들은 크고 화려한데 우리나라의 궁궐은 왜 이렇게 규모가 작을까라는 생각도 하였지만 일제 시대때 90%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를 왜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의 경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지만 그게 서민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전쟁으로 토지가 폐허가 되고 국민들이 적군에 의해 목숨을 잃고 포로로 잡혀가는데도 국가의 종묘 사직만을 지키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물론 그렇게 지켜왔기에 지금 우리가 문화 유산이라고 내세울만한 유적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조상을 잘둔 탓에 관과산업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는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국가들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았었나. 그런 나라들도 과거에는 평민들의 안위보다는 귀족들과 같은 일부 부유층들만 잘 살았지 않았던가.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고 내가 그 시절에 살지 않았기에 옳다 그르다 판단은 온전히 주관적이지만 분명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문명을 발달 시켰고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다. 물론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불운한 과거를 겪기도 했지만 오랜 역사가 지나고 보면 지금처럼 다시 과거의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남들지 모른다.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과거의 문화 유산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s******5 2019.08.1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만천명월 주인옹을 만나고 싶다면...
"만천명월 주인옹을 만나고 싶다면..." 내용보기
우선 창덕궁 존덕정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된 분들께는 양해의 말씀드리며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올리겠습니다~이번 추석연휴에 명절나기와 육아 중 틈틈이 읽다가 방금 완독하고, 중학생 시절 처음 구매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 옆에 이번에 발간된 서울 2부작 중 1권인 9편을 꽂으며 계속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꼭 서울에 꼭 가보고 싶다, 정확
"만천명월 주인옹을 만나고 싶다면..." 내용보기

 

우선 창덕궁 존덕정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된 분들께는 양해의 말씀드리며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올리겠습니다~

이번 추석연휴에 명절나기와 육아 중 틈틈이 읽다가 방금 완독하고, 중학생 시절 처음 구매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 옆에 이번에 발간된 서울 2부작 중 1권인 9편을 꽂으며 계속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꼭 서울에 꼭 가보고 싶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선시대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에 가서 이번 기회에 알게 된만큼 보고 느껴보고 싶다는 겁니다!



이번 책은 읽는내내 저 개인에게 여러모로 많은 자극을 줬고 지금도 그 여운이 남게 합니다. 올해 관광통역안내사 취득을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끝난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의무감에 암기하려고만 애썼던, 관광자원해설 분야에서 알게 됐던 조선시대 문화유산들(종묘, 종묘제례, 창덕궁, 창경궁)을 다시 알게 되었고 그만큼 직접 보고 싶어지게 만든 책입니다. 누군가 말하길 아는만큼 보인다고....^^;

"만천명월 주인옹(창덕궁 존덕정 관련 인물: 정조대왕)이 말하다"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답사기는 서울에 있는 종묘와 궁궐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건축물과 그에 관련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있습니다. 관련 사진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 사진 한컷과 본문을 대조하며 음미해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의 창덕궁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으뜸 궁궐하면 경복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저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창덕궁의 진면목을 잘 전달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한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창덕궁은 늦가을에 만난다면 가장 좋다는 저자의 추천도 아울러 기억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과 함께 창덕궁 후원을 거니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끝으로 알쓸신명(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한 명소) 사전이 있다면 꼭 등재되어야할 서울 5대 궁궐 모두가 저자의 바람대로 하루 빨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길 기원하며, 이만 두서없었던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이달의 사락 k*****o 2017.10.0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내용보기
*책을 읽고 종묘에 갔다. 신이 다닌다는 길을 걷다가 애인에게 잔소리를 들었다.비가 내려 불편하다 생각했는데 비가 와서 좋다는 말에 기분이 나아졌다.눈이 내렸으면 훨씬 아름다웠겠지. 그래도 사람이 없어서 공간의 아름다움이 더 잘 느껴졌다.나를 고요하게 앉힌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는 창경궁과 후원에 가볼 것이다.이것이야 말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아니겠는가.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내용보기

*

책을 읽고 종묘에 갔다. 

신이 다닌다는 길을 걷다가 애인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비가 내려 불편하다 생각했는데 비가 와서 좋다는 말에 기분이 나아졌다.

눈이 내렸으면 훨씬 아름다웠겠지. 

그래도 사람이 없어서 공간의 아름다움이 더 잘 느껴졌다.

나를 고요하게 앉힌다는 기분이 들었다. 


*

다음에는 창경궁과 후원에 가볼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아니겠는가.







YES마니아 : 로얄 t****j 2017.11.30.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1]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1]유홍준" 내용보기
사실은 예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을 사놓고 조금 읽다 말았다. 이 책도 다 읽지는 못했다. 나는 이런 책이 유독 읽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같은 건물도 다르게 보이고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이 좋다.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서울편이니 시간 날 때 한군데씩 방문해 보면 좋을 듯하다. 이전에는 그냥 '예쁘다'라고 느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일테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1]유홍준" 내용보기

사실은 예전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을 사놓고 조금 읽다 말았다. 이 책도 다 읽지는 못했다. 나는 이런 책이 유독 읽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같은 건물도 다르게 보이고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이 좋다.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서울편이니 시간 날 때 한군데씩 방문해 보면 좋을 듯하다. 이전에는 그냥 '예쁘다'라고 느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일테니.

YES마니아 : 로얄 k***j 2018.10.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유홍준" 내용보기
*책을 읽고비 내리던 주말종묘에 다녀왔다 *종묘의 길들은 걷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멈추기 위한 것이고, 곧게 뻗기 보다는 꺾이고 갈라지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너무 빨라지면 걸음을 멈추도록 제어하며 멈추어 서면 다시 움직임을 유도하는 길들이 계속된다. 엄숙한 건물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마치 길들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종묘의 길들은 그 자체가 건축적 질서이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유홍준" 내용보기

*

책을 읽고

비 내리던 주말

종묘에 다녀왔다

 

*

종묘의 길들은 걷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멈추기 위한 것이고, 곧게 뻗기 보다는 꺾이고 갈라지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너무 빨라지면 걸음을 멈추도록 제어하며 멈추어 서면 다시 움직임을 유도하는 길들이 계속된다. 엄숙한 건물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마치 길들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종묘의 길들은 그 자체가 건축적 질서이며 의례이고 움직임이며 행위가 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l 2017.11.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내용보기
ebook 버전이 있는데도 유일하게 종이책을 사는 시리즈. 처음에 1권부터 시작한 컬렉션 때문인지 유독 이 시리즈는 전체 세트를 종이 책으로 책장에 갖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 평생 삼국지와 더불어 가장 여러번 읽은 책이었고 나의 휴가는 대부분 이 책에서 소개된 루트를 따라 답사하는 것이었다. 서울편이라니, 책을 읽으면서도 이미 답사를 염두해 두고 읽는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내용보기
ebook 버전이 있는데도 유일하게 종이책을 사는 시리즈. 처음에 1권부터 시작한 컬렉션 때문인지 유독 이 시리즈는 전체 세트를 종이 책으로 책장에 갖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 평생 삼국지와 더불어 가장 여러번 읽은 책이었고 나의 휴가는 대부분 이 책에서 소개된 루트를 따라 답사하는 것이었다.
서울편이라니, 책을 읽으면서도 이미 답사를 염두해 두고 읽는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살면서 그렇게 많이 지나치고도 들어가보지도 않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라고 작가가 1권인가, 2권에서 했던 인용구. 그 문구가 어느 때 보다 더 와닿는 편이 바로 이 서울 편이 아닐까 싶다.
앞으론 외국인 친구들이 오면 서울의 고궁을 데리고 가서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 주말에 당일로 아들과 함께 가서 산 역사 공부를 시켜주기 위해, 또 읽고, 또 읽어야 겠다.

P.S. 막상 답사를 다닐 땐 전자책이 편해서 일부 몇권은 전자책으로도 또 샀다. 서울편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종이책사고 전자책도 사면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은 없나?
c******j 2019.01.03.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