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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테스 ㅡ 파스칼 키냐르 , 송의경 옮김 , 문학과 지성사
이 책을 접한 곳은 페이스북을 통해 팟빵 네시 이십분 라디오에 소개 되고 시인 오은이 ' 분무의 책 ' 라는 제목으로 리뷰한 것을 통해서 였다 . 네시 이십분 라디오에서 게스트 ( 강윤정, 편집자) 도 언급을 하지만 이 작가는 지난 문학 잡지인 악스트 Axt 에서 황정은과 정용준과 키냐르의 대담 형식으로 우리와 만난 적 있다 .
네시 이십분 라디오도 좋았지만 오은 시인의 리뷰는 제목부터 , 온 몸으로 내가 젖어드는 것을 체감케하는 글이었기 때문에 책을 읽고도 그 제목 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을 먼저 하지 않고는 오롯하게 ' 부테스' 를 나만의 " 부테스" 로 가져오긴 몹시 벅찬 일이었고 그래서 힘이 들었다 .
하지만 이번엔 이 책을 떠내보내고 싶단 생각에 어쨌거나 한번은 리뷰를 않고는 그냥 보낼 수 없겠기에 오늘 , 이 부테스를 오은 시인이 말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으로 ' 부테스 ' 가 아닌 내가 절벽에서 투신되는 (?) 포즈가 되서 읽어보려고 한다 . 물론 오은 시인의 부테스는 물로 직접 뛰 어 드는 한 인물로 부각 시킨다 . 처음의 투신이 거기에서 비롯되므로 . 허나 , 나는 다시 큐프리스' : 그리스 신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 로 인 해 내던져지는 허공 중의 " 부테스 " 를 잡아 채고 싶다 .
단면이 날카롭고 위태로워 보이는 절벽을 바라보는 청춘들이 있다 .그들 은 산으로 그 절벽으로 갔다 . 아래에서 위에 도착한 한 인물을향해 소리 친다 . ' 뭐하는거야! 위험하잖아 !' 아래를 굽어보는 한 청춘은 시니컬하게 대답한다 . ' 뛰어 내리고 싶어서 그래 . ' 아찔한 높이에선 청춘이 한숨을 섞어 말하기를 " 뛰어 내리고 싶어서 그래 ." 란다 . 그 다음 장면에 망연 자실한 광경으로 우릴 부르지는 않는다 . 그 청춘은 그저 내려다 보며 떨 어짐의 다시 말해 추락의 고통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 이 기억은 온다 리쿠의 소설 [ '흑과 다의 환상 ' , 상 ,하 , 북폴리오 ] 으로 부터 온 것이다 .
나는 물로 뛰어드는 부테스가 아닌 베릴리 곶 ' 에서 내던져지는 부테스 를 순간 구하고 싶을 뿐이니 추락의 장면을 어디서 가져오는가 하는 것에서 자유롭다 . 물은 자연계의 원초적 환경이고 산 높이 절벽은 인간이 올라서 야만 그 높이를 실감할 수있는 위치이기에 이 두 장소는 의미가 다를 수밖 에 없다 .
처음의 부테스는 있는 그대로도 괜찮은지 모른다 . 그렇다면 그는 키냐르 로 부터 해석되는 행운 따위는 없었을텐데 . 키냐르로 인해 악보 상태의 원음을 해석한 원곡을 듣다가 , 가 닿지 못하는 절망까지를 맛본 후에 나는 비로소 내 귀를 거치는 다른 음악가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
물로 뛰어드는 욕망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 자신을 사로잡은 것 속으로 잠수하려는 욕망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 위험을 무릅쓰는 결단을 내리는 데는 ? 만사 제치고 과감하게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데는 ? ( 본문 29 , 30 쪽 )
이 책에서 부테스는 자멸을 택하는 인물이지만 , 뛰어듦으로 인해 사랑의 신에게 한번 구해진다 . 그리고 곧 다시 시칠리아 섬의 곶에서 내던져짐 으로 절망적 사랑을 체험하는 인물이다 . 고통이 없이는 무엇도 통과할 수 없는 지점으로 회귀하다 절망하는 인간을 거기에서 나는 본 것이다 .
애초에 포세이돈은 신이었던 존재이다 . 그는 무엇이든 누려도 좋은 상태 를 어쩌면 가졌을 것이다 . 신과 같은 존재에서 인간으로 떨쳐지는 환기 ' 같이 . 신적 인물의 첫 입수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은 없이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부테스는 시시했을지 모른다 . 하지만 구해졌다가 다시 내던져지 는 부테스는 자유를 가졌으나 온갖 것의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부테스로 다시 탄생한다 . 신성이 한번 걷혀진 존재로의 부테스 로 말이다 .
이쯤해선 원론적 문제를 꺼내 그가 신인데 , 왜 노를 젖는 중에 뛰어드는 가 질문할 수도 있겠다 . 우리가 음악을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에는 첫 해석자의 곡도 중요하지만 , 때론 재해석된 음반을 통해 원래의 곡까지 가는 길을 좁히게 되곤 하는 경험을 환기 " 시킬 수 있겠다고 말하고 싶다 .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 한번 빠져 본 후에 그 깊이를 맛보곤 몸서리치면서 다시 한번 빠지게 되길 갈구하게 되는 게 사랑이고 중독이고 음악이며 인생이라면 ... 하는 가정을 놓고 말이다 .
부테스는 신에서 음악으로 나아가는 해석과 무수히 많은 재해석의 위치에 놓인 감미로운 추락의 책이다 . 비교적 짧은 내용이지만 한번만 읽고 덮기엔 아쉬 움이 생기고 거듭해서 리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싶어지는 그런 곡 같다고 느낀다 .
시인이 말한 부테스에서 멀리 떨어져 보려고 애를 쓸 수록 결과는 같은 빠져듦으로 매듭지어 지는 것이 안타깝기 까지 하다 . 왜 , 하필 음악의 바다 한가운데서 노를 저어가지고 ... 하며 투덜대는 내가 있다 . 세이렌의 매력에선 나도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
키냐르의 부테스 , 오은 시인의 부테스 , 그리고 내가 읽는 부테스는 공기 중에 흩어지는 중이랄까 . 소리로서 다시 되돌려지는 근사한 경험이었다 . 그렇게 키냐르의 부테스로 인해 " 당신이 나를 버린 현장으로 ' 되 ' 돌아 왔다 " ( 본문 96 쪽) 이제 다시 나는 자유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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