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권리 작가의 첫 소설집<폭식 광대>를 산지니를 통해서 만나본다. 제목도 표지 그림도 특색이 강해서 책 속에 어떤 강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을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단편들은 그다지 강한 충격을 주는 이야기들은 아니다. 오히려 충격보다는 슬픈 미소를 띠게 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들을 통해서 만나보는 네 편의 이야기는 정말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책이다. 대부분의 단편 작품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해서 읽기도 어려움을 주는 듯한데 이 작품집 속의 이야기들은 상상 속의 동화를 들려주는 듯해서 단편 소설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 장곡도라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서 예술계의 진실성을 이야기하면서 양면성을 보이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괴리를 우리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 작품인듯하다. 괴짜 포머먼스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고 그 유명세를 등에 지고 대중 앞에 섰던 예술가의 이야기에서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는 주위에 몇몇 사람들을 떠오르게 된다. '해파리' 작가는 인천 앞바다에 해파리를 등장시켜서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김부겸이라는 가정에서 소외된 아버지와 마닐라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는 허드렛일을 하는 필리핀 청년 토니의 대화를 통해서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위치를 찾아보려고 토니와 함께 나선 해파리 사냥은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구멍' 사회의 근원을 어머니의 생명력에서 찾는다면 우선 여성의 자궁을 떠올리게 되고 그 연결선상에서 떠오르게 되는 단어가 구멍인듯하다. 모든 생명의 근원. 하지만 이 작품 속 구멍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아버리는 커다란 천체의 '블랙홀' 같은 존재이다. 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가는 블랙홀은 거대 자본의 그릇된 권력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 그릇된 권력에 맞서는 공권력은 너무나 미약하지만 그나마 퇴직한 늙은 소방관이 '소녀'의 꿈을 지켜주고 있다. '폭식 광대' 제목부터 너무나 끌리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라는 재개발 현장에서 말을 듣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판타지 소설의 영웅처럼 등장한 폭식 광대는 한순간 괴물로 변하게 된다. 폭식 광대 자신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를 대하는 사회가 변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식욕에 견주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듯하다. 돈을 향한 욕망이 커질수록 많은 냄새나는 비리들이 사방에서 악취를 더하는 게 되는데 폭식 광대의 욕망의 끝은 순조로울지 ... 네 편의 이야기 모두 너무나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주제가 무겁다고 해서 읽기도 무거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일수록 가볍고 위트 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위트와 재미가 있는 작품집인 듯하다. 소외된 이주노동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많은 재개발 지역의 서민들, 어렵게 하루를 버텨가는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까지 많은 사회 문제들을 함축해서 보여주면서도 너무 무겁게 흐르지 않은 이야기 흐름이 너무 좋았다. |
|
제목부터 강렬하게 다가왔다. <폭식광대>라니. 처음부터 갈피를 잡기 힘든 책 제목부터 단편소설들의 제목들이 얼른 읽어보고 싶게끔 궁금증을 자아냈다. 보통의 이런 기괴한 소설들은 그 기괴함에 맞서 굉장한 사회적 비판을 담아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사회의 덜 떨어진듯한 부분을 기괴하게, 참신하게 나타낸다.
모든 소설에서는 그 작가가 담아내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정답을 찾아내는 것과는 다르듯 다양한 생각과 의미 발견하기 나름이다. 이 책은 모든 소설이 그렇듯 정확하게 사회의 모순적인 부분을 꼬집기도 하지만 모호하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비판적인 시각을 기괴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1장 광인을 위한 해학곡에서는 나름의 마케팅이라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면 조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을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가장 떠올랐던 생각은 같은 예술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피카소의 이야기였다. 과거 피카소의 그림은 그 가치를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이름을 날릴 있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카더리 일지도 모르는 얘기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였는데,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을 직접 상점마다 돌아다니면서 구매를 했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그림이 걸려 있는 상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인 척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그림에 대해 평가하고 찬사를 날리며 그림을 구매하거나 칭찬을 마구 날렸다고 하는데.(사실 이야기의 진실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광인의 해학곡에서 미술협회 사람들이 일부러 작품을 파괴하여 매체에 이름을 올리게 하는 등 상술로 그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 그렇다. 물론 예술 분야에 대한 평가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2장 해파리 medusa에서는 제목에서 알아낼 수 있듯이 해파리가 주 소재로 나온다. 왜 해파리를 소재로 해서 나타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2장 해파리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을 비판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판 외에도 더 많은 의미가 있지만 아직 찾아내지 못한 나는 더 열심히 읽고 또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처음에 해파리 옆에 붙어 있는 영어 단어 medusa가 해파리를 뜻한다는 또 다른 단어임을 알게 되어 구글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해파리는 분명 jelllyfish인데 medusa라는 학명은 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어서 굳이 작가가 해파리소설이라는 제목 옆에 붙여놓은 것 일까. 사실은 jellyfish와 medusa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 두 개의 단어 중 소설에 붙일 단어를 고른다고 한다면 당연히 medusa일 것 같다. 소설의 임팩트 있는 제목을 위해..!
3장 구멍에도 역시 사회문제가 잘 나타나 있다. 타워 팰리스와 판자촌 사이의 구분. 그런데 아이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이 있기에 색다르게 감정을 이입해서 읽어볼 수 있었다. 결국 그래서 그 구멍이 커지다 못해 마을을 다 삼켜버렸을까 어디까지 삼켜버렸을까 마지막엔 괜히 궁금해졌다. 이번 이야기에서 부의 경계를 지어 정부기관과 마을사람들과의 갈등도 나타내고 했는데 그것도 물론 화가 났었지만 나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감정이 뒤숭숭했다. 물론 이건 우리나라 사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의심하고 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괜한 한 사람의 진위 여부가 파악되지 않은 말로 인해서 한 사람이 정말 돌을 맞아야 할 정도의 죄인이 되었다. 일종의 마녀사냥과 같은 것인데, 이 작은 국가에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구분선을 긋고 하는 것이 정말 불편했다. 정작 결말에서는 생각이 바뀌어 한 순간에 태도가 바뀌는데 참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4장 폭식광대 대망의 마지막 장이자 이 책의 제목 그리고 이 책의 클라이막스. 이 장을 읽고 있을 당시에 갈비찜에 볶음밥에 너무나도 배부른 상태였기에 잠시 책 읽기를 중단하고 말았다. 엄청나게 먹어댄 음식 메뉴를 줄줄 나열하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내용에 집중이 잘 되었다. 이 내용이야말로 이 소설집에서 제일 기괴한 내용이고 대체 뭐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역시 돈이 되는 것들은 종류 불문하고 다 연결이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아 돈이 되는 것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폭식광대를 일종의 브랜드로 만들어서 행사에 초대하여 돈을 벌고, 관련 굿즈를 만들어서 돈을 벌고, 이벤트를 해서 돈을 벌고. 참 여기저기서 돈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폭식광대를 트렌드로 만들어서 또 다른 트렌드를 탄생하게끔 만들고. 물론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트렌드도 상업적으로 순식간에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상업적인 이벤트, 브랜드의 광고가 많은 지금 사회에서 잘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불편한 부분을 잘 꼬집어 낸 것 같다.
기괴하다, 기괴하다 입소문만 들었지 책을 접했는데 정말 그 이상으로 기괴했다. 기괴하다는 단어말고는 형용할 수 있는 단어가 생각이 나질 않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기괴함 속에서 날카롭게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그 비판하는 시각을 진정한 블랙코미디 장르로 소화한 소설이지 싶다.
|
|
작가의 뇌구조가 궁금해지는 책
소설가 이름도, 제목도 참 독특한 책을 만났다.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작고 얇아서 금방 읽었는데 마음에 뭔가 ‘툭’ 하고 던지는 힘은 은근히 강하다. 그래서일까, 소설에 관해 잘 모르면서도 나에겐 낯선 표현, ‘이거, 문제적 소설 같아’ 하는 말을 저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시작부터 하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바람에.
오늘날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영감님이 오셨다.”(9쪽)
책 맨 앞에 나오는 ‘광인을 위한 해학곡’의 첫 문장이다. 갑자기 웬 영감님?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궁금증 잔뜩 안고 죽 읽어 보니 영감님이라 함은 예술로 세상을 연출하고 싶었다던, 독특하고 기이하다 못해 광인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 ‘장곡도’를 이르는 말이었다. 어디 주인공만 그런가? 글 흐름도 완전 독특하고 기이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장곡도 자신도 풀지 못한 삶의 미스터리를 우리가 풀 수 있을까? (장곡도가 남긴) 이 시가 미스터리를 푸는 일말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여러분의 뇌와 심장의 활동에 달려 있다. (52쪽)
글 끝자락에서 만난, 독자까지 글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런 문장, 낯설다. 하지만 흥미롭다. 저 글 바로 밑에 이어진 장곡도의 다음 시 또한.
건방진 소녀소년이 될 준비를 하라.
‘비광인’보다 ‘광인’이 훨씬 멋지게 느껴지게 만드는 시. ‘광인’처럼 7개의 눈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일어나는 시. 장곡도의 미스터리는 작가의 미스터리이기도 했을까? 그렇다면 작가도 광인의 눈을?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 아리송한데도 빨려 들어가듯 ‘광인을 위한 해학곡’을 보고 나니 작가의 다음 미스테리가 막 궁금해진다. 냅다 나머지 소설들로 달려 보기.
소설 ‘해파리’는 동물 해파리가 주인공인 듯 비치지만 실은 외국인 노동자들 삶을 그려내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홀로 짐작해 보고. 도심 속 어느 외딴 마을이 야금야금 땅속 구멍으로 사라져 버리는 내용인 ‘구멍’은 강남 어느 부촌과 그 옆에 딸린(?) 판자촌을 생각나게 한다. 주제는 이렇듯 ‘사회의식’이 뚜렷해 보이는데, 글은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마치 SF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에는 이상하게도 자꾸 빠져든다. 거참, 기이한 일.
드디어 마지막 소설, 책 제목이기도 한 ‘폭식광대.’ 인류 최대의 식성을 자랑했던 한 남자의 일대기라는데. 처음 읽었을 때 하도 괴기스럽고 이상하고 좀 무섭기도 해서 내용이 잘 스며들지 않았다. 두 번째로 보고 나니, 뭔가 느낌이 온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에서 작가가 ‘광인의 시’를 빗대어 괴기한 이 시대에, 이 시대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이 소설에서 비로소 찾은 기분마저 들었다.
“세상에는 저를 우스꽝스럽게 보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통해 자신들의 내면의 악마를 마주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음식을 먹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안고 있는 고민들, 즉 자신의 탐욕스러움, 사회에 대한 불복종, 무조건적인 의지 등과 같은 추한 기분 따위를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연극적이고 악마적인 행위를 보이게 함으로써 저는 잠시 잠깐이나마 그런 고민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저를 보고 죄책감을 건너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저는 이 행위를 하고 있음을 남에게 알림으로써, 이 행위 자체의 부도덕함, 부조리, 비인간성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등 뒤에서 그들의 그림자가 되어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먹는 것을 거부하여, 이것이 이러저러한 형태로 배설된다면 아주 무서운 효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 저는 이를 막기 위해 기꺼이 여러분을 위한 탐욕의 악마가 되겠습니다. 저의 희생이 여러분의 행복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150~151쪽)
사실 책을 읽는 내내, 현실과 상상을 마구 넘나드는 기이한 이야기들 때문인지 작가의 정신세계가 많이 궁금하던 차였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마음속보다는 머릿속에 지닌, ‘사차원’스런 뇌구조를 가졌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폭식광대’의 주인공 남자가 폭식 대회를 앞두고 길게 남긴 저 말을 보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소설의 형식은 독특하되 생각만큼은 낮은 곳, 아픈 데로 향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솔솔 생겨났다. 아니나 다를까.
1. 13년
2. ‘여기 사람이 있어요.’
책 끝에 짧게 나오는, 작가의 말 1번과 2번을 연이어 보면서 그냥 좀 기뻤다. 내 생각이 조금은 들어맞은 듯해서. 그래도 여전히 신기하다. 주제의식은 자못 심각한데 소설 전개는 어쩌면 이리도 (어둡긴 하나) 판타스틱 분위기로 끌어냈을까나. 작가의 뇌구조가, 아니 예술세계가 다시금, 아주 많이 궁금해진다. 소설집을 다시금 주르륵 훑다가 내 마음과 꼭 닮은 문장을 찾았다!
재밌다고만 말하고 끝내기에는 뭔가 아쉬웠던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작가의 예술혼이 담겨 있을 저 문장을, 짧은 단편집 하나로 ‘문제적 소설’이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말을 저절로 이끌어낸 작가한테 고대로 돌려주고프다.
‘권리 씨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가? 당신에게 영향을 준 위대한 영감은 과연 무엇인가?’
나를 특별한 소설 세계로 안내해 준 기이하게 재미난 글과 작가를 만난 기념으로, 새로운 의식 하나를 삶에 보태 볼까나.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면 광인 장곡도를 생각하며 “영감님이 오셨다!” 하고 외치기. 이 생각도 꽤 좋은 것 같으네. 아마 지금 나에게 영감님이 오신 듯!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