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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 대한 추억, 그 단편적 실존의 끈질김
"한 사람에 대한 추억, 그 단편적 실존의 끈질김" 내용보기
나는 기형도를 알지 못한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가난하고 혹독했던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신문기자로 있으면서 시인이었다는 것과, 그의 시가 어려운 형이상학이라는 것과, 그가 게이극장으로 알려진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늦은 밤에 객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형식에 대한 아주 무성의한 케리커쳐에 불과할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추억, 그 단편적 실존의 끈질김" 내용보기
나는 기형도를 알지 못한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가난하고 혹독했던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신문기자로 있으면서 시인이었다는 것과, 그의 시가 어려운 형이상학이라는 것과, 그가 게이극장으로 알려진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늦은 밤에 객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형식에 대한 아주 무성의한 케리커쳐에 불과할 뿐이다. 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그 외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애가 그런 것처럼, 급기야는 그의 내면과 머리속으로 관심은 확장되어 나가게 마련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를 만날 수도 없다. 결국 나는 그의 지인들이 펼쳐낸 글들에서 그의 몽타쥬를 그린다. 먼저 그의 시들은 모두가 고립된 실존, 혹은 단절된 실존에 의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은 결국 공중처럼 가볍고도 무미하고 간결한 죽음으로 이어져 나간다. 유년에 대한 시들에서 조차 그는 단절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한 인간의 실존은 철학적 깊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즉 자아가 심도 깊은 형이상학을 관통한다하더라도, 자아가 느끼는 '부조리'는 기어코 세상과 사회와 우리 삶이 가지는 형태로 귀환되어질 수 없다는 측면에서, 나는 기형도의 삶과 시들이 가지는 실존의 부조리성이 어디에서 출발되어진 것인가가 궁금하다. 이유는, 그는 자신의 실존의 근원에보다 현상에 골몰하고 있어보인다는 것이다. 하긴 여기 존재하는 한 '실존'이 그 뿌리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되물어간다는 것은 고고학이나 생물학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의의를 가지겠는가. 다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똑바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 자신이 똑바로 바라본 자신의 삶과 실존은 그의 시에 고스란이 녹아져 나온다. 물론 시를 이해하는 것은 시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더 좋은 방법은 시인이 자리잡은 터를 이해하는 것도 시에서 얼마간의 추상을 벗겨내고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는 "기형도 전집"만큼이나 그와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얼마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 기형도를 알고 지내던 주위의 문인들이 그에 대한 추모를 담아낸 낸 책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인 때문이다. 어둡던 80년대 한국사회와, 암울하고 공허한 실존이 마주 부딛으며 일구어낸 그의 천재적 시심들이 신화를 벗고 우리 삶에 대한 고뇌에 찬 신음으로 읽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책에는 그의 미발표시들과 지인들의 추모시, 소설, 그리고 그의 시와 삶에 대한 회고, 그리고 깊은 평론들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인상깊은구절]
그리하여 내 정든 포도밭에서 어느 하루 한 알 새파란 소스라침으로 떨어져 촛농처럼 누운 밤이면 어둠도, 숙주인 희망도 내게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네. 기억한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가을도 가고 몇잎 안남은 친구들마저 천천히 힘을 잃어갈 때 친구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空中을 만났네
d***0 2001.12.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형도가 잘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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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형도의 미발표시와 여러 시인들의 추모시, 소설가들의 추모 소설, 그리고 그를 기리며 쓴 산문과 평문들을 모은 책이다. 추모시를 쓴 시인으로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 고형렬, 이문재, 이상희, 조병준 등이 있는데, 대뜸 '자지' 운운하는, 처음엔 폭소를 유발하나 묘한 진정성을 느끼게끔 하는 것도 같은 김영승의 시도 실려 있다. 소설은 원재길의 작품과 신경숙의 작품
"기형도가 잘 죽었다?!" 내용보기
이 책은 기형도의 미발표시와 여러 시인들의 추모시, 소설가들의 추모 소설, 그리고 그를 기리며 쓴 산문과 평문들을 모은 책이다. 추모시를 쓴 시인으로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 고형렬, 이문재, 이상희, 조병준 등이 있는데, 대뜸 '자지' 운운하는, 처음엔 폭소를 유발하나 묘한 진정성을 느끼게끔 하는 것도 같은 김영승의 시도 실려 있다. 소설은 원재길의 작품과 신경숙의 작품이 실려있다. 원재길의 소설은 기형도가 죽은 후, 꿈속에서든 실제로든 그를 다시 만났다는 사람들의 체험담을 들려준다. (웬 식스센스? 할만한 내용이다.) 읽을만한 글로 장정일의 기형도론 '기억할만한 질주, 혹은 용기'와 성석제의 기형도 연보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이 있다. 장정일은 자신의 독서일기에서, 리버 피닉스와 아이다호, 기형도를 비교하는 평문을 (기형도 추모 문집에 싣기 위해) 쓰겠노라 말했던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이 글에 리버 피닉스나 아이다호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글은 재치있게 기형도 시의 한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고 생각했다. 성석제가 기형도의 다른 지인들의 이야기까지 정리해서 쓴 기형도 연보는, 성석제의 다른 글들만큼 능청스럽고 재미있다.

[인상깊은구절]
희망 913 기형도가 죽었다. 기형도는 시인이다. 기형도가 묻혔다. 기형도를 땅속 깊이 묻었다. 곧 많은 열매가 맺히리라. 기형도는 땅에 떨어졌고 묻혔고, 썩었다. 그 첫열매의 얼굴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형도는 자지가 있었다. 기형도의 자지는 내 자지다. 자지가 썩었다. 어머니말고 기형도 자지를 본 여자가 보고 싶다.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가 달고 있는 자지 반대도 썩을 것이다. 기형도가 벌떡 일어나 걸어다닌다. 문학이 어떻고 시가 뭐고 하고 싶다고 하다가 한 많은 이 세상을 부르고 있다. 기형도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묻힌다. 터질 듯한 유방과 엉덩이가 찢어질 듯 발기한 자지가 묻힌다. 더럽고 또 더럽고 세 번 더러운 서울이 내 고향 경기도 안성의 한 구릉에 묻힌다. 폼페이처럼 베수비오스 화산처럼. 기형도에 묻힌다. 기형도가 괜히 죽었다. 기형도가 멋있다. 기형도를 제외한 그 모든 놈들은 다 나쁜 놈이다. 기형도가 제일 착하다. 조금은 착한 나는 또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고 나는 싼다. 이 자지 반대 같은 세상에 기형도가 찍 싸진다. 기형도
c******r 2001.02.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