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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사소한 걱정거리조차 없는 것 같은데 왈칵 울음이 쏟아질 때. 내 목구멍에서는 연신 "나 왜 이러지."와 같은 말만 하염없이 되뇌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일도 없었고 딱히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도 아니었으므로 잠시 잠깐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인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단 하나의 의문은,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이 범주에서 벗어날 때가 잦다는 거다. 살아가는 사람 대다수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의 온갖 거센 폭풍우와 비바람이 내게만 집중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삶에 있어 해가 쨍한 날은 드물고 비만 추적추적 내리는 날만 지속되는 때만 빈번하다고 말이다. 이런 때는 세상 사람 누구든지, 아니면 유형이라는 이름으로 버티고 있는 어떤 것이라도 나에게 쏟아지는 비를 대신 맞아주든지 아니면 우산이라도 씌워줬으면 싶다. 내리는 비를 피하지도 못한 채 온몸을 마구 때려대는 빗줄기에 몸을 맡길 때, 자신을 향한 애처로움과 허무, 상실, 자괴감 같은 온갖 감정들이 부유하게 마련이다. 흩어져있는 삶의 편린, 그것들이 내 머리 위에서 나를 압박해올 때, 아마 그런 때에 삶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드는 것 같다. 제목이 좋았다. 이날이 어떠한 날일까,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대면하기 전까지는 단지, 나에게도 우산을 좀 빌려줬으면, 내 삶에도 찢어진 비닐우산일지라도 건네주었으면 싶은 심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참 더디게도 눈에 담았다.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인 그의 삶이 꼭 나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회색빛이 자욱한 도시를 떠도는 방랑자이지만 그 또한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자세.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면 그게 어떠한 삶이더라도 진행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다.
삶은 동의 없이 진행된다. 그러니까 전혀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우연과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입자가 빈번하게 상충하며 진행되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다. 반대로 삶은 어디까지나 나의 동의로 진행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책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육체는 점점 쇠락해가지만, 세상을 향한 시선만은 점점 또렷해지는 주인공이 삶에 임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나의 동의라는 건 어디까지나 사회적 동물의 수순일뿐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유형에서 무형의 존재로 사라라진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더 의미 없는 '나'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우려 때문이다. 삶이란 무수한 입자들, 그러니까 기억이란 화제로 똘똘 뭉친 녀석이다. 이 입자들은 유에서 무가 되는 순간까지 복잡하게 뒤엉킨 컴퓨터회로처럼 삶을 점령한다. 그는 마흔여섯이라는 나이에 변변한 직장도 없고 사랑도 잃었으며 유일한 수입원은 간헐적으로 의뢰받는 수제화 테스트 작업을 통해서 뿐이다. 구두 테스터, 조금은 생소했고 조금은 특별하게까지 느껴지는 직업이다. 신어보고 걷고 착용감을 끄적이고, 그가 하는 일은 그게 다다. 아니 그것뿐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구두 테스터로 일하며 진정으로 얻게 되는 건 얼마 되지 않는 금전이 아니었다. 삶의 면면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였다.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강변을 산책하고 마찬가지로 하릴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이런 사소한 삶의 모습이 어떤 이의 눈에는 정말이지 하릴없어 보이는 시시한 인생일 테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타인과 사회를 향한 시선은 절대 시시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는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움직이는 사람이다. 가진 건 노쇠한 육체뿐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자의식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이 말은 조금 모순적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므로, 주인공의 삶이 통속적 흐름과는 역방향으로 흘러간다 해도 본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또 다른 시각 안에서 존재하므로, 세상의 잣대와는 다르게 그의 삶은 자신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어쩌면 삶은, 아니 모든 건 사소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게는 자신을 비롯해 세상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거리를 걷는 연인들,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인,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 직업적 교유로 이어진 사람, 흘러가는 강물, 음식, 바닥을 뒹구는 낙엽 등, 나의 삶 주위를 부유하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그에게는 기이하면서 특별한 존재가 된다. 과연 한 사람이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서 이렇게나 많은 의문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심심할 겨를이 없는, 신기한 인간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향한 불만만을 토로하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라. 삶에 대한 열의가 없다면 어떤 대상을 보고 단어 하나조차 떠올리기 힘겨운 법이다. 인생은 그런 거다. 인생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넉넉한 자리 하나 내어주지 않는다. 반대로 힘겹고 초라하며 비루함 투성이의 삶일지라도 애정이 충만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것 하나라도 내어준다. 만약 그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삶을 비관했다면 그의 인생은 분명 달라졌으리라.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최고급 수제화를 신고 강변을 거니는 것조차 무의미해졌을 테고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주변의 모든 상황이 그저, 지나가는 사소한 것들, 그 이상은 아니지 않았을까...
살아감에의 동의, 내 삶을 받쳐줄 단 하나의 우산을 향한 진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정말 재미없는 삶일 수도 있고, 의미 있는 삶일 수도 있는 게 우리 각자의 인생이다. 참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무척 힘겨울 때는 나보다 더 삶이 힘겨운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아주 약간의 희망이 생성된다. 또 나는 그렇게 하루를 버틴다. 하루가 며칠이 되고 몇 달이 되고, 이런 날들의 연속이라 해도 난 참 고맙다.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인생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살아가는데 무슨 낙이 있을까 싶었는데, 세상의 온갖 것들로부터 삶의 기운을 얻는 그였다. 그런 그를 어찌 낙오자라 비웃을 수 있겠는가. 시종일관 저자가 대단하다 싶었던 건, 물론 글맛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소한 삶의 지점들을 포착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평범한 것들에서도 영감을 얻고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환기하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였다. 저자가 묘사한 인물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사람의 숨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추고 싶은 것, 그래서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겨놓은 기이하고도 사소한 지점을 소위 말해 실패한 인생의 전형이라 해도 반박하기 어려운 인물에게 투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시간 이후로 사람들의 발, 정확히는 구두를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모두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는 걸음이지만, 구두를 통해 그들의 삶의 힘겨움을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한층 따뜻한 시선으로 예쁜 우산을 씌워줄 수 있을 것도 같다. 형체가 없는 가상의, 오색 창연한 색으로 물든 가상의 우산으로 말이다. 나는 내 삶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감에의 동의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 아닌 진실이 되어버렸으니, 살아가기 위해서는 때때로 우산을 받쳐가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초라한 행색일지라도 남들이 뭐라 하든 그가 자신의 삶에 우산을 받쳐주며 살아가듯이, 내 삶을 받쳐줄 단 하나의 우산도 오직 나라는 건 변한 없는 진실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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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190페이지 분량의 경장편 속에 이렇듯 기이하고, 디테일하며, 날카로운 삶의 통찰이 들어있을 수 있을까? 독일 작가 빌헬름 게나치노의 2001년작 <이날을 위한 우산>을 읽고, 한동안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나를, 내 주위 삶을 관찰하기에 이르렀다. 극에 달한 한파가 물러가고 한줄기 볕이 내려쬐던 주차장 골목에 고양이 세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를 경계한다. 주인공이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먼지 보푸라기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랑 약간은 비슷한, 삶의 비의가 느껴진다.
언제나 구박받는 존재, 환영받지 못한 골목의 악동들. 내게 '보풀이 인다'는 곧 '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와 등가값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46살, 구두 테스터란 직업을 가진 중년 사내다. 학교 선생이던 애인 리자와 헤어진 후, 하루하루 연명하듯 시간을 흘러보내는 도시 방랑자다. 그의 직업에서 볼 수 있듯, 그는 항상 도시를 배회한다. '걷는' 행위가 곧 직업의 연장선이겠지만, 그에게 걷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방랑이자 배회다. 삶이자 사색이다.
절망스럽고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과연 그는 불행할까? 그렇지 않다. 그냥 살아낸다. 길을 걷다 오도카니 서서 바라보는 대상들은 삶의 소소한 것들이다. 다양한 인물 군상의 행위, 생각 들을 읽어내며 상상하길 즐겨하는 주인공. 과할 정도의 상상이다. 이러한 상상은 그의 치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관찰은 삶의 애정보다는 숨겨진 진실, 즉 삶의 비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데 있다.
소설 도처에 도시 방랑자, 그만의 특별한 사색이 면면을 채워간다. 수잔네의 저녁 초대에서 만난 발크하우젠 부인에게 말을 건네는 주인공. 발크하우젠 부인에게 주인공은 자신이 체험술, 기억술에 관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말하는 연구소에는,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 저희를 찾아옵니다." -P116~117
지극히 독일스러운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독일이 갖는 특징적인 표정인 '규격화', '공업화'에 대한 소극적인 반항이랄까? 주인공이 그려내는 도시의 표정은 무미건조하다. 지극히 무기력하고, 톤 다운된 잿빛 콘크리트 건물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삶의 질량이 극도로 압축된 것 같은 섬세한 묘사가 황량함이 아닌 따뜻한 시선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삶에 명확성, 명료함을 대입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비록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덤덤히 자신을 우산 삼아 살아간다. 간만에 뒷맛 개운하고, 여운 진하게 남는 소설 한 편을 만났다. 헤리타 뮐러가 참혹한 시적 서정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게나치노는 삶에 대한 회의와 우울을 나름의 경쾌함으로 치환시키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명료하고 매혹적인 소설', '빌헬름 게나치노는 하찮을 정도로 작은 사물들의 변호사이다'란 대다수의 평가에 기꺼이 공감하며, 그의 또 다른 소설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현재까지 번역된 그의 작품은 없다. 아쉽다. 그 아쉬움을 달래며, 밑줄 그어가며 읽어냈던 소설의 구절들을 떠올려본다. 삶의 진중한 단면을 엿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짧은 행간에 담긴 사색의 깊이에 빠져보고 싶은 이들에게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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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먼지 보푸라기를 관찰한다. 먼지는 기이하리만치 은밀하게 증가해간다! 보풀이 인다는 말이 어쩌면 내 삶의 현 상태를 적당히 표현해줄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먼지 보푸라기와 똑같이 나 또한 속이 거의 들여다보이고, 안은 연약하고, 밖으로는 쉽게 휘어지고,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매달릴 뿐만 아니라 말도 없다. 최근에 난 내가 아는 혹은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침묵의 시간표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P49
섹스의 중단으로 마르고트는 이전보다 내게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우리의 불행한 실패담에 전혀 야단법석을 떨지 않는다. 내가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이 얼마나 기이한가! 우리가 정상일 수 있다면, 그땐 낯선 것이 종종 인간적인 것이 될 테지. 하지만 우리가 정상인 경우는 아주 드물어, 이런 말을 난 마르고트에게 해주고 싶다. -P62~63
수잔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기에 난 부족함이 없을까. 이런 나의 민밍한 생각을 쫓아줄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즉 내 교육 수준으로 보자면 나는 중요한 사람일 수 있고 내 지위를 보자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진짜로 중요한 사람들이란 오직 자신들의 학식과 지위를 삶 속에서 서로 융화시켜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단지 교육만 많이 받은 나 같은 아웃사이더들은 어디에 몸을 숨겨야 할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현대판 거지에 불과하다. -P84
나는 나무 벤치에 앉아 옆에 있는 관목덤불을 바라본다. 오직 참고 견디는 자신의 인내만을 보여주는 관목덤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나도 저 관목덤불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그것은 매일 저 자리에 있고, 도망치지 않고 저항하며, 한탄하지 않고 말이 없으며,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강하다. 재킷을 벗어 저 관목덤불 속으로 높이 던져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난 관목덤불의 인내력을 함께 나누게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관목덤불이라는 단어가 벌써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찾고 있던, 모든 삶의 총체적인 기이함을 표현해줄 바로 그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관목덤불은 내가 별로 애쓰지 않아도 내 고통을 표현해준다. -P103
기다려보세요, 나는 말한다. 언젠가 더는 저항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 예감하면서도 그 사람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이상 들지 않는다면, 그게 사랑입니다. ...(중략)... 현재의 사랑을 통해 이전에 갖고 있던 사랑에 대한 견해가 모두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나는 말한다. 그때 그 사람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겁니다. -P111~112
우리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잠시 후 수잔네의 기분은 더 나빠질 것이다. 왜냐하면 울먹한 상태라는 말을 만든 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연히 그녀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될 테니까. 나는 지레 겁을 먹고는 그 말이 리자가 내게 남긴 몇 가지 것들(돈을 제외하고 말이다. 난 돈 얘기는 안 할 것이다.) 중 하나라는 것을 시인해버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한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싶어지면 늘 그전에 알던 다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너무 비슷비슷하다는 사실을 난 나중에서야 인정했다. 그전엔 사람들이 너무나 다르게 생겼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P151
언젠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끝없이 세상과 타협하는 내 모습을 보여줘야만 할 것이라는 게 내가 늘 갖고 있던 가장 큰 공포였다. -P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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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때때로 경이롭다.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기이한 정도로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을 누구나 겪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제외한 삶에만 적용되는 듯 보여 절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같은 행위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은 하루는 행복한 것이며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소망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빌헬름 게나치노의 『이날을 위한 우산』속 인물들도 그렇다.
소설의 화자인 ‘나’ 는 마흔 여섯 살의 남자로 수제화를 신고 걸으며 테스터를 하는 직업을 가졌다. 과거에는 인터뷰 진행자로 활동했고 신문에 글을 쓰기도 했지만 모두 과거일 뿐이다. 현재는 구두 테스터로 받는 비용이 긴축재정이라는 이유로 줄어들고 일자리를 잃을 위기며, 진정 사랑하는 연인 리자는 약간의 생활비를 남기고 떠났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구두를 신고 거리를 걸으며 이웃을 관찰하는 일이다. 같은 시각에 만나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옛 친구나 동료가 전부다. 거리를 청소하는 내외, 말의 털을 빗질하는 여자,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노무자의 아내나,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제와 다른 어떤 사소한 변화나 발견에 놀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나와 마주하는 그들도 역시나 유명했던 과거 이력을 지녔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삶을 꿈꾼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오랜 친구 수잔네는 여전히 연극 무대를, 한때 사진작가였던 힘멜스바흐는 재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현재 자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수잔네의 말처럼 말이다.
‘대중의 고통은 말이야, 수잔네는 말한다(그녀가 정말로 대중의 고통이라는 말을 쓰다니 놀랍다),불쌍하기 그지없는 그들 모두가 일생 동안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해, 이해하겠어?’ 78쪽
정말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그런 생각으로 위안을 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와 인연을 맺는 사람이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누구와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까. 소설에서 어쩔 수 없이 구두 테스터를 계속해야 하고, 벼룩시장에 구두를 팔아야 하는 주인공이 힘멜스바흐의 부탁으로 신문사에 연락을 했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되고 수잔네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실패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한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삶을 계속 이어간다.’ 158쪽
우리는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산다. 그러니까 내일을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과거의 화려한 시절에 발을 담그고 살기도 할 것이다. 때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넘어졌기에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럴 때 누구나 삶을 원망할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날을 위한 우산』은 그런 멋진 풍경을 선물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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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한 밤에 스탠드 불빛 하나 달랑 켜놓고, tv와 라디오도 끈 채, "지속적인 침묵"에 쌓여 이 책을 읽었었다. 명절연휴에서 싸들고 갈 만큼 나는 이 남자의 기이한 삶에 빠졌더랬다. 그리고 오늘 밤도. 쉽지 않으리라는 건 짐작하지만...이 남자가 궁금하다. "하찮을 정도로 작은 사물들의 변호사"라는 별칭답게 세심하고 집요하며 날카로운 관찰자의 눈을 가지고 있는 빌헬름 게나치노. 그래서인지 오늘의 나는 그 모든 하찮은 것들에 관심이 간다. 방바닥을 기어가는 가느다란 거미와 모서리가 구겨진 내 스무권...도 넘는 일기장같은 스케치북과, 몽땅몽땅 짧아진 주황색 파버카스텔 보닌자 연필들과, 침대맡에 쌓인 <파리대왕>, <언더그라운드>, <포스터를 훔쳐라 +3>과 <이날을 위한 우산>...그리고...휴지로 꼭 눌러 죽인 거미의 사체까지도.
이 남자의 기이함이 나에게 전염이라도 된듯. ![]()
내 일상까지도 기이하게 느껴지는 그런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얌전한 앙고라 모자를 쓰고 모피코트를 그럴싸하게 걸친 노부인은 길가의 화단에 검은 색 봉지를 쑤셔넣고 새침한 뒷모습으로 우아하게 사라지고. 나는 지금도 검은 색 봉지 안에 어떤 기이한 것이 들어있었던 건지 아직도 궁금하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이 얼마나 기이한가!"
![]() 오늘은 겨울비가 촉촉히 내렸고, 지금도 내리고 있고, 개인적인 권태인지 집단적인 권태인지 알 수 없는 권태에 쌓여 있지만 나는 모든 것은 비때문이라고 되뇌인다. 그러니 비가 그치면 괜찮아 질거라고. 다 괜찮아 질거라고... "나는 자신감 없이 그러나 동시에 노련하게 대답한다.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 저희를 찾아옵니다." 나는 오늘 밤 이날을 위한 우산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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