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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을 전후하여 인간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하는 전환의 시기에는 항상 인간을 분열적인 존재로 비치게 하는 그 무엇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모양이다. 20세기를 전후하여 독일사상의 한 축을 차지하는 프로이트, 말러, 클림트, 호프만슈탈, 베어호프만 등과 함께‘청년 빈파’의 일원이었던 슈니츨러의 작품들은 그래서 왠지 모를 수치심과 분노, 무력감이 교차한다. 두 편의 소설이 수록된 슈니츨러의 이 작품집은 젊고 자유분방한 욕망의 화신으로서의 카사노바가 아니라 노회하고 영락한 카사노바를 그리고 있는가하면, 제도적 결혼의 내밀한 분열을 도덕적 편견과 숨겨진 욕망의 갈등이라는 꿈의 환상을 통해 심리적 일탈을 겪는 부부의 내면을 쫓고 있다. 카사노바의 귀향(Casanovas Heimfahrt)에 대해서 중노년기에 접어든 카사노바, 한 때의 광채가 서서히 꺼져가는 모험가의 누추한 모습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사랑의 보금자리를 위한 하룻밤 동안에는 현세의 온갖 명예와 저세상의 온갖 지복도” 관심 밖이었던 사람, “열망에서 욕망으로, 욕망에서 열망”을 추구하던 영원한 젊음의 심벌같기만 한 카사노바의 늙고 낙망하여 실존의 위기에 처한 모습은 아주 낯섦, 그것이다. 추방당하여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가기만을 고대하던 차에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부유한 중산층으로 일어난 추종자의 초대를 받게 되고, 그 저택에 기거하는‘마르콜리나’라는 처녀에 대한 욕망으로 포위된다. “욕망의 온갖 격정과 청춘의 모든 활력이 혈관을 통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나는 그 당시의 카사노바가 아닌가?”더구나 “그 보잘것없는 늙음의 법칙이 왜 내게도 적용돼야 하는가.”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인은 교활하고 기만적인 사건을 만들어낸다. 카사노바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심드렁한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그녀의 애인인 청년장교 로렌초의 노름 빛을 대신 청산하여 주기로 하고 캄캄한 밤에 로렌초로 변장하여 침실로 잠입한다는 거래를 성사시킨다. 격렬한 정사를 치루고 성취에 취하여 깊은 잠에 빠져 날이 밝기 전에 내뺀다는 계획은 그르치고 만다. 수치심과 경악에 빠진 마르콜리나의 눈길에서 그는 “도둑놈, 난봉꾼, 악당”이란 분노를 본 것이 아니라 그 눈이 하는 말은‘늙은이’라는 것이었으니, 이만큼 그의 정체성, 존재를 명료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말처럼“늙음이 젊음을 형용키 어려울 만큼 속죄할 수 없는 능욕”이상임을 의미한다. 이‘에로스적 합일’의 파렴치하고 기만적 연출은 오히려 젊음과 남성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아니라 신화의 파괴, 정체성의 상실, 도덕적, 인간적 몰락이란 자기파멸의 재촉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에 더해 수치심으로 도피하다 마주친 로렌초를 죽이게 함으로써 젊음을 동일시한 카사노바의 신화적 정체성을 완벽하게 제거해 버리고, 이것도 부족했던지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와 여관방에 피로해진 몸을 누이는 카사노바를 꿈도 꾸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한 채 그저 잠들게 한다. 아마 이처럼 철저하게 신화를 파괴하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결국 죽어서야 영속성을 얻는 자연의 순리가 이렇게 엄숙할 줄이야. 늙음, 늙은이가 되는 것에 저항할 길은 없다. 저항할수록 수치심만 깊어질지니... 꿈의 노벨레(Die Traumnovelle)에 대해서 이 작품은 니콜키드만과 톰크루즈가 열연한 영화 '아이즈 와이드 샷(Eyes Wide Shut, 1999)'의 원작이다. 내면의 심리적 묘사로 이루어진 소설이다보니 영화도 꽤나 몽환적으로 그려졌다는 기억이 든다. 가장무도회, 일탈, 에로티즘, 꿈과 현실, 현실과 꿈의 미묘한 교차와 혼동이 불러내는 은폐된 갈망의 모습들이란 언어만으로도 이미 선명함을 거부하는 내밀한 무엇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내 ‘알베르티네’의 꿈으로 은폐된 현실의 욕망, 남편인 의사‘프리돌린’의 현실 속 욕망의 꿈에서 우린 포장된 거짓 환상이라는 위험한 심리적 위기를 읽게 된다. 꿈속의 에로스적 희구와 심리적 일탈을 고백하는 아내, 이와는 달리 현실에서 이중적 삶을 꿈꾸는 남자의 행로는 부부이지만 “우리 사이를 가르는 칼 한 자루”가 놓여있는 것처럼 각자 서로 낯선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소설의 제목에 있는‘노벨레(Novelle)'란, 본디“하나의 갈등구조를 정점까지 고조시키는 드라마적 구조를 갖는 산문이나 운문”을 의미한다고 한다. 특히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이“이중 노벨레 (Doppel-Novelle)”였다고 하는 것은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의 에로스적 모험을 고조시키는 이중구조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평범한 우리네들의 내면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인데, 우린 사회의“금지령과 규정, 성적인 터부와 명예에 관한 불문율” 때문에 마치 모든 것이 안정된 것처럼 질서와 균형을 잡아가며 살고 있지만, 열정적 포옹과 애무에서도 예정된 고난에 대한 예감 때문에 몹시 우울한 느낌이라는 아내나, 늦은 밤 돌아와 아내의 몸에 닿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그 멀고 낯선 감정의 세계와 같이 내면의 세상은 비밀스럽고 위선적이기도 하다. 부부 사이에 드러낼 수 없는 숨겨진 욕망과 잠재된 갈등이 사회적 안정의 욕구와 에로스적 일탈의 심리를 반복하며 환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종국에는 양자 모두 에로스에 대한 기대의 포기로 위기를 극복하고 제도와 규범, 안정을 선택하지만 내적 결속에까지 이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일면 외관상의 행복이 찾아온 것 같지만 침실에 나란히 누워있는 부부가 꿈을 꾸지 않고 있다는 작가의 짓궂음에서 왠지 쉽사리 깨질듯 한 유리병을 상기시킨다. 규범, 제도, 정체성,...이러한 모든 것들, 즉 사회적 장치에 얽매여 놓칠 수밖에 없는 많은 것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꿈이나 꾸어야 할까? 아니면 좀 냉소적으로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내면의 흐름이 돋보이는 뛰어난 심리극이라 해야 할 것 같다. 30~40대의 부부들이 한 번쯤 읽어 볼 만 한 작품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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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세기말의 빈의 모더니즘 형성에 기여한 ‘청년 빈파’를 대표하는 인물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노벨레의 두 편입니다. 유럽의 문학사에 대해 얇고 가느다랗게 알고 있어 아르투어 슈니츨러라는 작가보다 그의 노벨레의 등장인물이기도 한 카사노바가 더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아르투어 슈니츨러라는 작가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노벨레”가 과연 무엇일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소설(novel)의 독일어나 다른 언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뒤편의 해설을 참고하면 하나의 갈등 구조를 정점까지 고조시키는 드라마적 구조를 갖는 산문이나 운문을 말한다고 합니다. 역시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이리저리 드나든(?) 결과 신기하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예술적 구성으로 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로 재현한 비교적 짧은 산문 또는 운문 작품으로 내용의 전개는 소설과는 반대로 어떤 갈등에 집중시켜 그것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 종말로 유도되는 점이 희곡과 흡사하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런 노벨레가 두 편이 실려 있는 <카사노바의 귀향>과 <꿈의 노벨레>는 중편소설 두 편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길지 않은 분량이라 읽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먼저 <카사노바의 귀향>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카사노바가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전성기(?)가 지난 듯 한 쉰 세 살의 카사노바가 정치적인 문제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으로의 귀향을 베네치아의 귀족들에게 애원하고 늙어가는 자신을 부정하고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모습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가진 것을 다 쓰고, 세월로 매력이 많이 반감했음에도 “그는 그 누구 못지 않게 자기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기식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의 여정 어디에나 여자들이 있었다. 설령 예전처럼 여자들이 좋아서 미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p. 67)”라는 구절처럼 제 버릇 개 못 주는 카사노바는 자신이 중매를 선 올리보의 조카딸 마르콜리나에 빠집니다. 하지만 고등수학을 전공한 지적인 여성인 그녀는 카사노바를 외면하고 급기야 그는 그녀의 애인인 로렌치의 곤경을 이용해 그녀를 차지하려는 계략을 세웁니다. 그 일로 로렌치와 결투를 하고 그를 살해한 카사노바가 베네치아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세월과 자신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년의 생갈의 기사, 카사노바가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노벨레의 흐름과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카사노바는 처음부터 볼테르를 반박하는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볼테르가 무신론자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면서 그것을 이용하여 마르콜리나와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 등 볼테르와는 학문적, 사상적으로 반대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다음에는 볼테르의 책을 읽을 것 같습니다. ^^
다음은 <꿈의 노벨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카사노바의 귀향>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와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이라고 합니다. 아직 영화를 못 보아서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말입니다. ^^;; 어린 딸아이의 책 읽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꿈의 노벨레>는 금슬이 좋아 보이는 의사 프리돌린과 그의 아내 알베르티네의 이야기입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지난 가면무도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과거 덴마크 해안에서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숨겨진 욕망 및 비밀에 대해 밝히며 아슬아슬한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러던 중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소식에 밤에 왕진을 가는 프리돌린은 이미 사망한 환자의 딸에게 고백을 듣고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는 등 자기 삶의 익숙한 영역에서 멀고 낯선 그 어떤 다른 세계로 계속 밀러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연히 동창 나흐티갈을 만난 프리돌린은 그를 통해서 성적 일탈의 비밀적인 모임인 가장무도회까지 출입을 하게 됩니다. 어느 한 여인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 나온 프리돌린은 집에서 알베르티네의 악묭에 대해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가 경험한 꿈 같은 현실과 그것에 비견할 만한 그녀의 생생한 꿈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화해를 하게 됩니다. 서로의 욕망을 잠시 접어둠으로써 결혼의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하룻밤의 현실은 물론이고, 어떤 한 인생 전체의 현실조차 바로 그 인간의 가장 내적인 지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아니까요.(p. 263)”라는 알베르티네의 말과 함께 말입니다. 결국 이 노벨레는 어린 딸아이의 책 읽는 소리로 시작하여 어린 아이의 낭랑한 웃음소리로 끝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카사노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작용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노년의 카사노바를 통해 상실과 몰락을 이야기한 <카사노바의 귀향>도 재미있었지만, 욕망으로 발현된 부부의 위기를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꿈의 노벨레>가 좀 더 잘 읽혔던 것 같습니다. 노벨레라는 처음 접해보는 작품이어서 더 뜻 깊은 아르투어 슈니츨러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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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에서 언급된 아르투어 슈니츨러라는 이름을 알게된 후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자 주문한 책 2권 중 첫번째 <윤무>라는 희곡을 읽고나서 이번이 그 나머지 책이다.
빈 지역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세기의 시작, 그리고 정신분석의 빛(혹은 그림자) 속에서 의사 출신인 아르투어 슈니츨러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흥미롭다. <카사노바의 귀향>과 <꿈의 노벨레>라는 두 단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있다.
<카사노바의 귀향>은 그 유명한 카사노바가 나이들고 돈도 없는 처지에서 어느 싸구려 여관에 묵으며 베네치아의 대평의회 의원들에게 귀향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고 그 답변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우연히 만난 오래전 인연이 있던 젊은이의 집에 초대받아 그 집에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과 섞어 마치 진짜이야기처럼 그려낸다.
자신이 가진 남성으로서의 매력을 인정받고 싶은 카사노바는 그 집의 똑똑하고 학문이 뛰어나며 자유롭고 아름다운 그 집 처제에게 눈독을 들이지만 거절당한 후 그녀의 애인인 젊은 장교의 경제적 곤란을 빌미 삼아 그 젊은 장교로 위장하고 숨어들어 성관계를 가지지만 새벽빛에 구차한 모습을 들킨 후 그 장교와 결투를 벌이다 죽이고나서 도망쳐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이미 늙어버린 카사노바는 전설이 되어버린 여성편력과 재기 넘치던 시절의 그림자 속에 사는, 그저 옛영광을 아쉬워하는 늙은이다. 심지어는 베네치아 대평의회의 노회한 의원이 귀향의 조건으로 건 간첩활동까지 받아들이는 카사노바의 모습이 실감나면서도 씁쓸하다.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보다 옛날 자기 모습을 부풀려 말하면서 젊은 여자에게 자기 매력이 먹히지 않자 한밤중에 위장하여 결국 강간을 하는 비루한 늙은이.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늙어가며 자기 옛 광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책 속에 늙어버린 카사노바의 생각과 표정 혹은 자세가 눈에 보일 듯 잘 그려져있지만, 나는 읽으면서 종종 불편했다. 이 책이 백 여 년 전에 씌어진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나름 시대에 앞선 슈니츨러가 남성의 성의식 혹은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을 따라가다보면, 카사노바가 주인집 15살 딸아이를 성추행하는 장면이나 그 집 처제에게 음흉한 수작을 거는 장면, 집주인의 젊은 처제를 강간(위장하여 어둠을 틈타 그 애인인 척 했다고는 해도) 하는 등 자기 성적 판타지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면서 '소설이니까' 라고만 하기엔 너무 불편했다.
<꿈의 노벨레>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혼 전)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찍은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이라고 하여 책을 읽는 내내 그 이미지가 어른거렸다.
젊은 의사가 밤에 왕진 갔다가 우연히 숨어 들어간 가장무도회에서 성적 판타지를 실제로 엿본 후 추방되었다가 자기 대신 책임을 지겠다는 묘령의 여성을 찾아 이튿날 다시 그 곳을 가는 과정에서 그 여성으로 짐작되는 시체를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인데, 그 와중에 호기심은 있지만 막상 그 책임은 지지 않는 부르주아의 내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꿈 이야기인듯 말하지만, 남 보기에 더할나위 없이 다정한 중산층 부부지만 알고보면 다른 욕망을 갖고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도 또 그걸 슬쩍 덮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걸친 옷차림이나 마차 대신 차를 타는 등 생활에 변화는 있다고 하더라도 안락한 현재 갖고있는 것들을 버리고 싶지는 않으면서도 일탈에 대한(특히 성적인 면에서) 갈구도 놓지 못하고, 막상 위험을 감수하면서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는 뒷걸음치는 겁 많은 중산층의 모습이다.
"비로소 그는 이 모든 질서, 이 모든 균형, 자기 삶의 이 모든 안정이 허상과 거짓을 의미할 뿐임을 다시 깨달았다. ...... 그러니까 신랑에 대한 배신이 그에게는 오히려 일종의 자극을 의미했다. 그래, 배신하고 기만하고 거짓말하고 코미디를 연출하는 거야. .... 온 세상 앞에서 말이야. 일종의 이중적인 삶을 영위하는 거야."
노벨레(Novelle)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단편 소설 양식{이탈리아어}이라고 한다. 미리 확인하지 않고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다니 나의 이 게으름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