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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왜 기록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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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에 의해서 쓰여진 『사기』는 총 52만 6,500자로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한다는, 중국 ‘25사’ 정사 가운데 최고의 역사서로 꼽힌다. 기전체로 서술된 『사기』는 모두 다섯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총 130편으로 본기(12편), 표(10편), 서(8편), 세가(30편), 열전(7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기』는 ‘통사’라는 점에서 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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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에 의해서 쓰여진 사기는 총 526,500자로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한다는, 중국 ‘25정사 가운데 최고의 역사서로 꼽힌다. 기전체로 서술된 사기는 모두 다섯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총 130편으로 본기(12), (10), (8), 세가(30), 열전(70)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기통사라는 점에서 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단대사인 다른 정사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전설시대 제왕들인 오제로부터 아래로는 사마천 자신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5,000년 중국사의 5분의 3을 다룬 3,000년 통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 문화와 중국인을 알려면사기를 건너뛸 순 없다.

 

  《사기의 팩트(fact)는 사마천이 일곱차례에 걸쳐 역사현장을 직접 발로 밟아가며 확보한 것이다. 사마천은 스무 살을 전후로 약 2.3년에 걸쳐 천하를 다녔다. 그러한 답사가 사기의 공간성을 확장하고 사실성을 더했다. 42, 19,376킬로미터, 이 수치는 옮긴이 김영수가 본기현장을 답사하는 데 투자한 총 시간과 거리다. 하지만 이는 사마천의 여정의 10%정도의 거리다. 옮긴이는 역사의 진실과 그에 함축된 드라마를 확인하기 위해 15년 넘게, 100여 차례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이 과정을 통해 확보한 생생한 현장 사진과 사마천의 현장답사를 되짚어보는 천하유력도(사마천의 답사 지도), 역사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상세한 상황별 지도를 이 책에 실었다. 사기 완역본의 대장정에 나선 옮긴이는 지난 20여년간 사기와 사마천에 대해 꾸준한 연구를 통해 이 시리즈를 완성했다.

 

  본기 12권은 기본적으로 제왕의 기록이다. 황제로부터 한 무제에 이르는 약 3,000년 역사의 중대한 사건을 기록한 체제다. 한서이후로 본기는 한사람의 제왕만을 다루는 체제로 정착했지만, 사기는 그런 경색된 원칙을 고집하지 않는다. 첫 권인 오제본기는 전설 속 다섯 제왕의 사적이고, 향우본기여태후본기는 제왕이 아님에도 본기에 편입시켰다. 사마천은 천하형세를 장악한 주체라면 누구든 본기에 편입하는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융통성을 가진 역사학자였다. 이것이 사기의 창조성이고 매력이다. 기계적인 중립이나 소신 없이 그저 답습한 역사서가 아니라 시세대세를 주도한 자의 기록 이것이 바로 본기이다.

 

  옮긴이의 완역본 시리즈는 본기 2, 1, 1, 세가 3, 열전 8권으로 구성될 예정이며, 그 첫 권으로 본기 1권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시된 본기 의 1권에는 총서문격인 보임안서와 사기열전에 실린 태사공자서 두 편의 글과 본기 중 첫 5편이 실려 있다.

 

  보임안서 즉 임안에게 드리는 답장은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글이 아니다. 이는 한서》 「62 사마천전에 실린 편지글로, 궁형(죄인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을 당한 사마천이 감옥에서 나와 황제의 신변에서 기밀이나 문서를 담당하는 중서령으로 있을 때, 친구인 임안에게 보낸 답장이다. 사마천의 정신세계와 그간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으며, 집념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명문이다.

130 태사공자서사기의 맨 마지막 편으로, 사기를 저술하게 된 경위와 나머지 총 129편의 취지와 개략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기의 총 서문 격의 글인 셈이다. 따라서 김영수의 완역본에서는 글의 성격상 이 두 편을 묶어 완역본의 총서문으로 삼았다 

  이외에 완역본기 1권에는 사기본기 총 12편 가운데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 5편을 실었다. 이는 춘추전국시대를 기준으로 중국역사의 큰 변화가 있음을 사마천이 판단하여 역사고찰의 방향을 바꾼 것과 같은 맥락으로 옮긴이도 구별을 한 듯 하다.

 

 〈오제본기5,000년 중국 역사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사기의 첫 편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사마천의 시각과 역사관이 함축되어 있어 사기 전체의 총서문의 성격을 띤다. 5(황제. 전욱. 제곡. . )의 공덕을 찬미하여 천추만대에 전할 것과 조상. 도덕. 인간사. 제도. 세계관. 역사학의 방법을 밝히고 있는 사기의 첫 편으로 제위의 선양 전통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사마천이 직접 현지답사와 여러 학술을 수집, 검토하여 합리적인 부분을 택하여 서술한 본기의 총체적 서문 형식을 띄고 있다. 특히 오제본기를 통하여 훗날 중화주의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대일통(大一統)관념을 수립하는데 결정적 원인과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또한 황제로부터 순에 이르는 오제의 계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이후 하. . 주 삼대에 시조들도 모두 황제에게서 나왔음을 강조한다.

 

하본기는 중국사 최초의 왕조로 그 실체를 인정받고 있는 하의시조 하우(대우)의 공덕과 하 일대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본기다. 우순과 하우 때부터 공물과 조세제도가 정비되고 왕의 계승이 선양에서 부자계승으로 전환된 시기이기도 하다. 하본기를 통해 ’ ‘화하는 중화대일통의 중요한 표지이자 이로부터 중국이라는 개념이 정식으로 형성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하나라와 관련하여 중요한 고고학 유지들로는 하남성 언사(偃師) 이리두 유지를 비롯하여 하남 용산문화 유지 및 하남성 등봉(登封) 왕성강, 산서성 하현(夏縣) 동하풍 유지 등이 있다. 특히 이리두 유지에 대한 발굴로 소위 이리두 문화가 확인되었으며, 이 문화에 대한 탄소14 연대 측정에 따라 이리두 유지는 대략 기원전 1900년에서 기원전 1400년 사이에 걸쳐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연대는 문헌 기록상 하나라의 연대 범주에 든다. 발굴된 주요 유물로는 동작(동술잔), 옥과(옥으로 만든 창), 녹송석을 상감한 짐승 얼굴 모양의 동으로 만든 장식 등이 있다.

 

은본기는 상의 건국으로부터 성왕까지, 그리고 제신의 멸망까지를 흥망성쇠의 논리로 서술한 본기이다. 전편을 흥망성쇠와 덕치의 유무로 꿰뚫어 서술하는 사마천의 통시적 사관이 엿보이는 본기이다. 은의 갑골문의 발굴로 여기에 기록된 은의 왕계 및 기록의 정확성이 증명되었다.은본기시경》〈상송으로부터 시조 설의 자료를 취하였고, 탕 이후는 기본적으로 상서시경의 기록을 취하였다. 이 밖에도 내용을 분석해 보면, 국어》《좌전》《세본世本》《대대례大戴禮》《일주서》《묵자》《맹자》《여씨춘추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다양한 고서들을 참고하고 인용하되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 대목에서는 사마천이 당시 통용되던 문어체로 치환하여 자신의 문장으로 융합시켰다.

 

은본기는 대량의 문자를 기록한 갑골이 나온 은나라의 마지막 수도 은허(殷墟)발굴을 계기로 공백이 많은 중국 상고대사의 위아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한 예로 갑골문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인 왕국유(王國維)은대 복사에 보이는 선왕 선공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과 그 속편에서 은본기, 삼대세표와 갑골문에 기록된 은대 제왕의 이름과 세계를 비교 고찰한 결과, 모든 인물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사마천이 인용하거나 참고한 자료가 대부분 진실되고 정확한 것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주본기는 주의 흥기. 발전. 쇠퇴. 천도와 멸망의 역사 과정을 소위 대세의 흐름으로 파악한 본기이다. 주의 초기 도읍지가 종래학자들의 주장대로 낙읍이 아니라 풍호라고 주장한 사마천의 탁월한 고증이 돋보이는 본기이다. 군주와 대신의 자질을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이런 주의 봉건제도를 현대의 기업에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비유하는 학자도 있다. 체인점(제후)은 본사(주 왕실)의 햄버거나 커피 같은 특정 상품(주 왕실의 제도와 문화)을 반드시 팔되 본사에 권리를 위임하고 간판을 사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주의 봉건제도와 흡사하다고 본 것이다(쉬저윈, CEO를 위한 중국사 강의참고).

 

진본기는 천하를 통일한 진의 역사를 초기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춘추전국시대까지 상황을 단계적으로 서술하였다. 복잡한 역사적 사실들 중에서 진보에 영향을 준 관건이 되는 몇 단계를 탁월한 식견과 용기로 부각시킨 점이 눈길을 끈다. 어떤 교조나 틀에 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으로 역사발전의 대세를 기술하였다. 진시황 본기 전편의 성격을 띤다. 사마천이 진본기와 진시황 본기를 합하지 않고 따로 떼어 기술한 것은 천하통일 이전의 오제---주에서 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진의 역사적 위치와 역할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덕으로 다스리는 통치방식을 중시하던 시대에서 힘을 중시하는 시대로의 변화를 파악한 사마천은 서슴없이진본기를 따로 떼어 배치했다.

 

  연구에 따르면 진에 재상직이 마련된 이후 이름이 남은 25명의 재상들 중 국외 출신이 17명에 평민 출신이 9명이나 되었다. 본국 출신은 단 한 명의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는 타국과 비교해볼 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놀라운 수치다. 이렇듯 적극적이고 대외 개방적인 문화 풍토가 있었기에 효공과 상앙의 전면 개혁이 가능하였고, 나아가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중략) 이 때문에 진본기는 인물 묘사에서 뛰어난 서술 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본기를 대하면서 사기의 행간에 어린 사마천의 한과 핏자국의 선연함이 비쳐왔다..사마천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그의 치열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리고 그의 역사서의 첫 시작이 왜 제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본기일까?

 

  사마천 개인으로는 어릴 때부터 역사학자로서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의 유언도 있었으니 꼭해야 하는 책임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 흉노에게 투항한 이릉을 변호한 죄로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죽을 상황에서 궁형(성기를 자르는 형벌)을 자청할 정도로사기의 완성을 위해 치욕을 감내했다. 또한 사마천은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끝에 결국 사기의 내용을 수정했다. 지배계층이나 황제를 찬양하는 게 아니라 부당한 권력을 비판했고, 정의롭지 못한 인물에게 칼날을 들이 댄 셈이다. 대신 역사를 움직였던 수많은 보통 사람을 주인공으로 끌어들였다. 개인적인 원한과 울분을 보편적인 가치로, 역사서로 승화시키는 것은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다.

 

  사마천은 태사공 저서를 통해 사기저술에 대한 그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시나 서의 뜻이 함축적인 것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표출하고, 싶어서였다. 문왕은 갇힌 상태에서 주역을 풀이하였고, 공자는 곤경에 빠져 춘추를 지었다. 굴원은 쫒겨나서 이소를 썼고, 좌구명은 눈을 잃은 뒤에 국어를 지었다. 손빈은 발이 잘리는 민각을 당하고도 병법을 남겼으며, 여불위는 촉으로 쫒겨 났지만 세상에 여람을 남겼다. 한비는 진나라에 갇혀 재난고분편을 저술하였다. 시경 300편의 시들도 대개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 사람들은 마음속에 맺힌 것을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일을 서술하여 후세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보게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역시 삶에 있어서 고난은 업적을 이루기 위한 통과의례인 듯 하다. 그러한 고난을 통해 배운 게 없고 깨달은 바가 없으면 그저 그 고난은 운수 탓일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마천은 이릉의 난으로 인해 본인이 받았던 궁형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군주로써의 참된 정치가 어디에 있음을 사기를 통해 무제에게 애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의 마음속에 한을 풀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도를 한 무제는 느꼈기 때문에 사마천의 사기가 당대에는 금서로 묶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기술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것은 그르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증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저지른 잘못이 후세에 대대손손 좋지 않은 이름으로 전해지는 것을 위정자들은 깨닫고 느껴야 한다. 그게 역사의 본질이고 우리가 역사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러기에 역사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이 아마도 일제에 의해 국권을 잃어버린 일제 36년일 듯하다. 하지만 해방된 지 60여년이 다되어 가지만 그에 대한 철저한 반성의 기록과 사실관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전무하다 시피 하다. 더군다나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도왔던 친일파에 대한 단죄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에 있어 이 나라의 기득권을 가진 권력층으로 탈바꿈 되어 있다. 과거에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단죄하고 역사 속에 그 이름이 치욕으로 기억된다는 진실을 전해주지 않는 한 현실 속에서 힘 있는 자들의 잘못은 계속되어 질것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대하면서 자국의 역사에 대해 등한시 하고. 역사가 단죄해야 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서 위장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그들이 역사를 두려워한다면 절대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를 수 없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우리의 교육제도에서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도 미약한 것은 역사를 통해 밝혀질 그들의 잘못이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h*****o 2012.04.27. 신고 공감 12 댓글 29
리뷰 총점 종이책
더 이상 사기에 대해 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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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2000여년전에 탄생한 사마천의 <사기> 만큼 오랫동안 많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역사서는 드물 것이다. 특히 우리에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비견할 정도로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알려져 있는 저서이다. 삼국지연의가 역사소설이라는 대중성으로 인해 인기가 식지 않고 꾸준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사서인 <사기>의 폭넓은 독자층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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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2000여년전에 탄생한 사마천의 <사기> 만큼 오랫동안 많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역사서는 드물 것이다. 특히 우리에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비견할 정도로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알려져 있는 저서이다. 삼국지연의가 역사소설이라는 대중성으로 인해 인기가 식지 않고 꾸준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사서인 <사기>의 폭넓은 독자층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설시대인 오제시대부터 시작하여 고대사를 다루고 있기에 역사적 이해가 어느 정도 선행되지 않고서는 쉬이 접근하기 곤란한 책임에 틀림없으나 꾸준하게 읽혀 나가는데는 뭔가 <사기>많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매력은 아마도 <사기>라는 책의 탄생과정과 저자인 태사공 사마천의 삶속에 묻어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일어난다.사마천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중국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매진하였고 억울하게도 사형을 면했지만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처했던 이유가 바로 자신과 아버지의 뜻을 피력하기 위해 <사기>의 완성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알려진 대로 사기는 그 질적인 내용만큼이 방대한 양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 힘들며 그 해석이나 번역에 따라 천차만별적인 이미지를 전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어떠한 번역서를 통해서 사기를 접하는냐에 따라 사기에 대한 진면목을 제대로 보느냐 아니면 그저 따분하고 어려운 책으로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 덮어버리느냐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국내에 수 많은 학자들을 통해서 <사기>번역본이 출간되었고 일본학자들의 <사기>번역본등이 선을 보였다. 그러나 기존의 이러한 번역본들의 공통점은 거의 <사기> 중 그나마 흥미롭다는 <열전>편에 가장 집중되었고 <본기><세가><표><서>등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던게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너무 사서를 흥미위주로 몰고갔다는 점도 있다. 더구나 거의 비슷한 번역과 편집방식으로 인해 실상 <사기>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었고 상당히 따분한 역사서로만 인식 되었던 것 역시 현실이다. 그저 책장에 두꺼운 <사기>한권쯤은 간직하고 있어야 제대로된 지성인으로서의 겉치레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이번 국내학자중 <사기>에 가장 권위자인 역자의 <사기> 완역작업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역자는 전작중 <난세에 답하다>에서 그동안 사기가 가지고 있어던 다소 무겁고 지루한 사서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사마천의 집필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게 풀어가는 <사기>전반에 대한 해제는 그야말로 멋진 강의를 보는 듯하게 술술 사기에 대한 매력속으로 이끌어갔다.


이번 완역 <사기본기 1>편 역시 역자만의 사기에 대한 특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겁고 지루하게 느껴질 사서에 대해서 그동안의 편집방식에서 벗어나 각종 사진자료와 왕조의 계보도 그리고 왕조별 인명표와 지명표, 사마천이 참고했던 관련 서명 일람표를 추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각 본기 서두에 해제만으로도 전체를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다가온다. 특히 단락별 주요내용을 간단 명료하게 집약하여 자칫 방만하게 흘러갈 수 있는 내용들을 바로 잡아준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본기 각 부분별로 <주요사건>을 별도의 주석으로 추가했다는 점이다. 역자는 각 본기중에 발생했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시한번 정리하고 해제를 덧붙여 한번 읽었던 내용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이러한 유니크한 편집방식으로 인해 제대로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도 새롭게 다가오게 한다. 대표적으로 춘추오패중에 하나였던 秦목공의 백리해 영입과정과 그로 인한 晉문공과 그 아들 양공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복날과 보신탕의 공식적인 기원을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제공하게 된다. 이렇듯 이번 <사기본기>는 기존 번역서와는 상당히 혁신적인 방식과 편집으로 <사기>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보기드문 완역본이다. 이는 역자가 그동안 사기에 대한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기도 했겠지만 <사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왔을 것이다.


그동안 <사기>는 중국역사서나 우리의 역사서등 한자권 국가의 역사서 기술방식의 표준이 되어왔다. 본기, 세가, 표, 서, 열전으로 구성되는 기전체는 정례화되고 부동의 방정식과도 같이 보편화되어 왔다. 하지만 사마천 이후의 사가들은 진정한 역사기술방식을 곡해해왔다. 단지 사기의 형식상 분류방식과 방법론에만 집착을 했을뿐 사마천의 혁신적인 역사적 인식과 시각만큼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 본기에 진본기와 진시황본기를 별도편으로 기술했고, 비록 황제라는 칭호는 받지 못했지만 항우와 여태후를 본기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역사인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유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 진시황은 폭군으로 낙인찍혀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했으나 사마천은 가감히 본기 특히 진본기와 별도로 기술했던 것은 진시황이나 항우, 여태후가 한시대를 풍미했고 한획을 긋었던 혁신적인 인물임을 제대로 인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이는 사기를 집필하는 방식과 전제로서 사마천의 역사인식과 인물평가방식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사기>는 비록 역사서이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어찌보면 인물백과사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각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에 대한 평가 남다르게 기술되었있다. 사마천은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심성자체에 대한 그만의 의지를 가지고 역사를 인물과 더불어 평가하고 기술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한치앞을 예견할 수 없는 시대를 이른바 난세라고 칭한다. 사기의 주무대인 춘추전국시대 역시 난세였고 우리는 <사기>를 통해서 난세를 살아가는 법을 엿볼 수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사기>는 특히 지금처럼 가치관의 아노미 상태와 더불어 인간 본연에 대한 가치판단 상실의 시대에 어쩌면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책중에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데자뷰처럼 되풀이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하고 우리는 그 수레바퀴를 어떠한 방향으로 돌릴 힘을 가지고 있다. <사기>는 바로 우리에게 수레바퀴를 어떤 방향으로 돌려야할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는지 모른다. 

l******e 2011.01.1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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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사마천, 슈퍼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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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고전이 아직까지 살아 숨 쉴 수밖에 벗는 이유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인류와 함께 해온 그 생명력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하다.   사실 중국고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홍신문화사의 「한비자」를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특별히 중국고전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자가 많고 양이 워낙 방대해서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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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고전이 아직까지 살아 숨 쉴 수밖에 벗는 이유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인류와 함께 해온 그 생명력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하다.

 

사실 중국고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홍신문화사의 「한비자」를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특별히 중국고전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자가 많고 양이 워낙 방대해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리고 아무리 유명한 고전이라해도 번역본이 너무 오래전인 것이 많아 읽기가 버겁다.

중국고전을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 내에서 내 나름의 언어와 사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기」라는 Text는 변하지 않지만 시대와 역사를 통해 일어나는 Context들은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같은 Text에서도 나름의 해석을 해내는 것이 책을 읽는 독자의 중요한 의무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세 가지를 생각했다. 옮긴이사마천, 슈퍼차이나이다. 리뷰를 읽으시며 확인해 보시라.

 

 

 

첫 번째는 옮긴이다.

 

“42일, 1만 9,376킬로미터, 역자가 본기(本紀)의 현장을 답사하는 데 투자한 총 시간과 거리. 하루 평균 약 461킬로미터를 이동한 셈.”

“어지러운 책이란 뜻의 ‘난서(亂書)’라는 야유부터 어려운 책이라는 뜻의 ‘난서(難書)’에 이르기까지 많은 별명을 갖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완역본을 15년 넘게 고민하게 구상해 옴.” (p.35)

 

먼저 책을 번역한 김영수씨의 노력과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방대한 역사서를 한국어로 다시 옮긴다는 일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 텐데 단지 책상 앞에 앉아 검색하고 책 찾아가며 번역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사마천의 역사루트를 따라 「사기」에 등장하는 지명을 따라 발품을 팔았다. 사진을 찍고 기록하며 최대한 「사기」의 날 것. 그대로를 한국어로 옮기려 한 사명감에 감탄했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후 남은 삶의 전부를 <사기>의 완성에 쏟았다.” (p.53)

 

 

억울한 누명에 의해 남자에게는 치욕스러운 형벌인 궁형을 당하면서도 온 몸을 불태워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의 사명감과 오버랩 된다.

또한 나와 같은 중국고전에 대해 문외한이고 ‘중국고전은 어렵다~. 재미없다~.’라는 선입견을 가진 독자가 이 책 「완역 사기」를 볼 때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책을 구성했다.

 

 

“<사기>는 12편의 ‘본기’, 10편의 ‘표’, 8편의 ‘서’, 30편의 ‘세가’, 70편의 ‘열전’으로 다섯 체제, 총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p.88)

 

 

입이 떡 벌어지는 방대한 책인 「사기」는 더욱 독자를 주눅 들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옮긴이의 지극정성으로 꽤나 이해가기 쉽다.

먼저 각 ‘편’의 가장 앞부분에 ‘해제’를 배치한다. 각 ‘편’이 쓰여진 배경과 역사적 상황 등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한국어 번역문’이 온다. 앞서도 말했듯이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원문은 볼 필요가 없다. 그 다음에는 ‘명언·명구 풀이’, ‘관련 인명표’, ‘관련 서명 인명표’가 배치된다.

그리고 각 구성의 곳곳에는 옮긴이가 직접 사기루트를 따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 삽입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두 번째로 사마천이다.

 

황제에 대한 충정으로 올린 직언이 황제의 노를 사 사형을 선고 받는다. 사마천은 억울했지만 평생의 명(命)으로 삼았던 「사기」집필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남자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을 자청하여 사형을 면했다. 그 때 사마천의 나이 49세였다고 한다. 목숨보다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시 했던 고대 문인들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하지만 사마천은 살아남아 죽음의 수치를 글로 대신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석 자와 그의 책은 수천 년을 아로새기며 아직도 살아 있다.

 

사마천은 이전의 수많은 역사서의 집필 방향과 집필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사기」를 집필했다. 새로운 역사서술체인 기전체를 창조해 냈고 인간군상에 대한 관심이 가장 우선이었으며 사회적 소수자와 비주류 계층에 대한 차별함이 없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표상이 아닌 사실을 중시하였는데, 항우와 여후가 본기에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다. 사마천은 본기를 통하여 그 사람이 제왕이든 아니든 천하대세를 주도했다고 판단하면 그를 역사 사건의중심인물로 삼아 논술을 덧붙였다.” (p.174)

 

사람의 출신 성분이 어떠하고 배경이 어떠한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주목받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면 그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열전(70권)’은 <사기>에서 가장 중요한 체제다…….사회적 비주류 계층이었던 상인, 자객, 유협, 동성애자, 점술가 등 실로 다양한 계층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생동감 넘치는 인간학 보고서이다.” (p.27)

“열전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포함되어 있다. 특정한 시대나 시기에 그 나름 역사적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한 사람은 누구나 포함시켰다. 정치가, 학자, 군사가, 문학가, 관리 등 주류 계층은 물론 유협, 자객, 연예인, 장사꾼, 점쟁이 등 비주류 계층이나 천민들까지 두루 망라하는, 말 그대로 적나라한 인간 시장이 펼쳐진다.” (p.102)

 

 

사실 아직도 <열전>에 실린 사회적 소수자들은 여전한 차별 속에 살아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분명한 차별법과 사회적 제도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사회적 통념은 더욱 단단하고 경직되었다고 본다.

사마천의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더 적나라한 차별과 실제적인 위협과 처벌을 가했을 계층에게까지 눈길을 담았다는 것은 역사가로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관점이다. 역사라는 것은 늘 승리한 개인과 집단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서술에 있어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와 집필방식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당시 많이 읽히고 가치를 평가받던 역사서들을 모두 망라해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하여 「사기」를 집필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왕조들에 대한 계보와 주요사건들을 계통적으로 서술했다.

최초 중국의 설화와 중세 중국의 왕조의 중간기에 존재했던 공백을 메우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 중국, 슈퍼차이나의 ‘역사 소프트 파워 전략’이 되리라고는 사마천은 당연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슈퍼차이나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제목이기도 한데, 경제적·군사적으로 힘이 강해진 ‘슈퍼’가 아니라 수많은 소수민족과 동북아시아 타국가와의 역사격론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슈퍼’를 말하는 것이다.

 

 

“<사기>의 첫 편인 <오제본기>는 상고시대 다섯 제왕의 덕과 공적 그리고 계보를 기록. 특히 사마천은 자신이 주로 참고하였던 문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중화민족의 시조를 만들어냄으로써 훗날 중화주의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대일통(大一統)’ 관념을 만들어 냄.” (p.187)

“우의 공적을 집중적으로 수록한 <하본기>는 중화(中華)의 원형질로 거듭나고, 우의 구주는 천하의 개념이자 중국의 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夏)’는 중국이요, 중국인을 가리키는 단어로 발전하였다. 이런 점에서 <하본기>는 처음부터 정치논리와 이데올로기에 휘둘릴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p.251)

“이런 위험성은 최근 중국이 의욕적으로 전개하는 ‘역사 새로 쓰기’공정에 의하여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전 세계를 향한 중국의 ‘소프트 파워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p.251)

 

 

이 책 「완역 사기 본기」 1권이다. 전체 사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전체 「사기」에 대한 평가를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후세의 개인과 집단·국가·정권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기」의 일부 내용을 전도하여 이용한다면 이것은 꽤나 심각한 일이다.

 

<오제본기>와 <하본기>는 쉽게 얘기하면 고대 중국의 왕조에 대한 이야기다. 상고시대와 중세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는 역사의 단추를 찾지 못하던 중국에게는 「사기」야말로 딱 들어맞는 역사책인 것이다. 「사기」에 실린 고대 왕조의 기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관변·어용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더해지면 금세 강력한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수많은 소수민족과 주변국들과의 역사문제들에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연속성을 확보하여 한족의 발상지인 중원 지역에 둥지를 틀었던 하·상·주의 건국 연도와 주요 사건들의 연대를 확정하는 것은 향후 이어질 55개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프로젝트의 방향타를 설정하는 일이며,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한족 중심의 역사관 확립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수립하겠다는 의미다.” (p.253)

 

 

그것은 다름 아닌 ‘중화주의의 부활’이다. 중국이 최고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슈퍼차이나다. 어차피 현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2대 파워로 자리 잡았고 국제무대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과 중국 내 인권·여론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특히 미국)의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별한 사고와 사안이 있어도 중국 정부의 대변인이 나와 ‘내정간섭이니 조용들 해라!!!’라고 얘기하면 아무 말 하지 못한다.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하고 정치적 파워도 급속히 높아져 가는 시점에서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고 봉합해야 할 문제는 ‘역사문제’이다.

 

‘중화, 중화’ 떠드는 것이 단순한 중국 민족의 자존심이나 인구 수, 경제 성장력 따위가 아닌 ‘고대 역사책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라는 인증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기」에 대한 재평가와 특히 <본기>에 실린 <오제본기>와 <하본기> 등에 대한 집착이라 할 수 있다.

옮긴이는 이러한 문제의 시급성과 중대성에 대해 분명히 강조하고 경고하고 있다. 어차피 <오제본기>, <하본기>는 한국의 고대 역사와도 맞물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양국이 협력해서 함께 연구하고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 조차 역사를 배우지 않는 한국에서 이런 옮긴이의 주장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 확신한다.

 

그냥 손 놓고 있다가 슈퍼차이나에게 역사마저 통째로 뺏기게 된 후에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슈퍼차이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이러한 역사문제에 대해 예산을 편성하고 조직을 구성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치밀함이 무섭기도 하다. 단순히 경제만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마저도 새롭게 재편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닌 존재가 이미 되어버렸다.

 

한국도 준비를 해야 할 텐데 걱정만 앞선다. 준비를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출간된 「사기 본기 2권」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옮긴이가 「사기」전체를 번역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명감에 대한 열정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느라 고생한 나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방수지구심어방수(防民之口甚於防水)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은 물을 막는 일보다 심각합니다- 소공(召公) (p.363)

 

 

 

 



l****h 2012.04.30. 신고 공감 5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사마천의 사기를 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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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어 본 사마천 그리고 사기 그런데 정확히 물어보면 머라고 대답을 못하겠다. 이상하게 생긴 중국분? 나의 역사 실력은 완전 제로이다. 머 한 거지? 학교 다닐 때? 난쏘공 도서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에 책을 보고 완전 거부감 백배. 책을 펼치기가 무서워 책꽂이에 고이 모셔놓았다. 일주일전에 책을 읽어보기 시작하였는데 어 신기하다. 이거 그리 어렵지 많은 아니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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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어 본 사마천 그리고 사기 그런데 정확히 물어보면 머라고 대답을 못하겠다. 이상하게 생긴 중국분? 나의 역사 실력은 완전 제로이다. 머 한 거지? 학교 다닐 때? 난쏘공 도서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에 책을 보고 완전 거부감 백배. 책을 펼치기가 무서워 책꽂이에 고이 모셔놓았다. 일주일전에 책을 읽어보기 시작하였는데 어 신기하다. 이거 그리 어렵지 많은 아니하잖아!! 나 혼자만의 감탄을 하게 되었다. 사마천이 물론 책을 잘 섰지만 역자가 우리가 읽기 수비고 이해하기 쉽게 잘 서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먹은 나에게 충고를 한다. 다음부터는 미리 움츠려 들지 않을 거야하고 말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도전해본 다음에 겁을 먹지 미리 겁먹지 말자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 오늘날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 서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으로 역사학자 30대에 태사령, 40대에 기원전 98황제를 무고 하였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궁형(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으로 죽음을 면하고 사기를 저술하였다. 인간과 세상, 권력과 권력자,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가 를 둘러싼 근원적 질문을 통해 사기완성. 궁형은 그에게 불행이지만 인류에게는 값진 선물을 선사하게 만든 역설적 악역이다.

 

사기본기는 다섯 체제이다(이 책은 총 15섯 권의 <사기본기>중에 본기의 일부분만 나온다.)

2,000년 동안 중국과 동양의 역사 서술에서 기본체제이다. 구성된 역사 서술체계가 기전체(紀傳體)라 부른다.사기의 형식으로 수천년 중국과 동양 역사 서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본기(12)’-제왕의 기록. <오제본기는 전설 속 다섯 제왕, <항우본기>,<여태후본기는 제왕이 아님에도 본기에 편입됨, 천하형세를 장악한 주체라면 누구든 본기에 편입하는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융통성을 보인다.

(10)’-역사의 시간적인 연표다. 혹자는 사마천의 천재성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이표를 꼽기도 하며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의 엑셀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시대(세표), (연표), (월표)로 세분하여 사건을 기록

(8)’-국가의 대체(大體)를 기록한 것. 국가의 중요한 제도에 대한 전문적인 논술 동기의 기본이 되는 예악을 비롯하여 군사, 역법, 천문, 종교, 수리, 경제에 이르기까지 여덟 방면의 국가 운영 시스템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체제이다.

세가(30)’-일반적으로 제후의 기록이지만 본기와 마찬가지로 인물 구성에서 융통성을 보여준다, 사마천은 천하 존망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역할을 했는가하는 원칙에 따라 세가에 편입한 인물을 설정하였다.

열전(70)’-<사기에서 가장 중요한 체제다. 사회적 비주류 계층이었던 상인, 자객, 유협, 동성애자, 점술가등 실로 다양한 계층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생동감 넘치는 인간학 보고서다.

 

사기본기의 명칭의 변천과 52만 6,500자에 대한 시비

 

 

 

사기의 글자 수는 555,660자다. 사마천 자신이 말한 526,500자보다 약 3만 자가 늘어난 셈이다. 현존하는 사기> 555,660자 중 약 97퍼센트 51440자가 온전하게 보존 결손이 약 3퍼센트 16,060자 후세에 보안 된 것은 45,220자 약 3퍼센트 정도만 원문과 다르다. 명칭은 처음에 ,태사공서>에서 <사기>로 바뀌었다.

 

 

 

역자인 김형수는 42, 19,376 킬로미터는 역자가 사기130편중 12(9퍼센트)을 차지하는 본기의 현장을 답사한 시간과 거리이다. 역자가 15년 넘게 고민하고 구상하여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사기완역본은 2,100년 전 사마천이 보여준 저술 동기와 의도를 충분히 살리는데 가장 큰 역점을 두었다.

첫째-<사기의 문장이 당시로서는 파격이라 할 정도로 통속적이고 속담과 경언 그리고 생생한 고사성어가 곳곳에 아로 새겨져 있어 원문 텍스트 100페센트 한글로 옮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사기의 팩트(fact)는 역사적 현장을 발로 밟아가며 확보하였다.

셋째-<사기는 사마천의 피를 먹고 탄생하였다.

넷째-현재 중국이 벌이고 있는 가공할 소프트 파워 전략의 중심에 사기가 있다.

다섯째-<사기는 중국사 5,000년 중 5분의 3을 다루는 방대한 통사다.

여섯째-<사기는 인문학의 교과서, 인서(人書)’로 불러야 할 만큼 인간의 속성과 본질을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고생과 그의 노력으로 첫 권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보임안서(報任安書)는 임안에게 드리는 답장이다. 늦게 답장을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임안이 사마천에게 인재를 추천해 달라는 말에 사마천은 임금인 무제가 이릉이 전쟁에 나가 패하여 낙심하는 모습을 보고 이릉를 두둔했다가 이릉이 역적으로 몰려 이릉이 화를 당하여 사마천도 사형이 떨어지니 아버지의 유언으로 사마천은 역사서를 쓰기위해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궁형으로 목숨을 건져 이런 신세이니 어떻게 자기가 누구를 추천하느냐 하는 내용과, 이릉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사기저술의 동기와 목적을 말한다. 그렇기에 본기의 내용을 알리기 전에 보임안서(報任安書) 먼저 쓰는 목적을 말한다. 이렇게 치욕스러운 욕을 당하면서도 우리에게 사기본기라는 대단한 책을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13 태사 공자서(太史公自序)- 태사공 사마천의 총 서문을 말한다.

서에 등장하는 제후들 중 한 사람을 빼거나, 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기록에서 사건을 빼거나 하면 사기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하나가 들어가고 나오는 데 있어 글자 하나가 천금과 같다.”   p103 <사기연구가 하량준은 열전의 인물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남겼다.

아버지 사마담까지의 사마씨 집안의 내력이 나오고 아버지 사마담의 학문과 논육가요지를 말한다. <논육가요지는 음양가, 유가, 묵가, 법가, 명가, 도가가 있다.(인간의 정신이란 너무 많이 사용하면 말라 버리고, 육체 또한 지나치게 혹사시키면 지쳐서 병이 나는 법이다. 육체의 정신을 못살게 굴면서 천지와 더불어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바라는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도가 중에서) 사마천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소자가 비록 못났지만 아버지께서 정리하고 보존하여 온 중요한 기록들을 빠짐없이 다 정리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사기의 저술 동기를 밝 힌다. 호수와의 대화로 더욱 굳혀 진다. 사기를 저술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7년 뒤 이릉의 화로 감옥에 들어간다. ‘본기’ 12편의 요지를 밝힌다. <오제, , , , , 진시황, 항우, 고조, 여태후, 효문, 효경, 금상본기이렇게 본기를 밝히고, ‘’10, ‘’8, ‘세가’30, ‘열전’69편의 요지를 밝힌다.<사기저술의 시대적 배경과 사기체제 및 자서의 요지를 밝히다. 이 글을 먼저 서술하는 이유는 마지막 부분이지만 앞으로 역자가 사기본기를 만들어내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먼저 앞에다 실어본다. 이글이 먼저 나오니 사기본기에 대한 이해력이 더 앞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다. 역자가 읽는 이에 대한 배려라 생각이 든다.

 

 

 

  (도표는 사기대일통 역사관 구조도이다- 1본기부터 제5본기까지 잘 설명이 되어 있다)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다섯 제왕의 기록이다. 황제의 치적(천하게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황제가 나서서 정벌하였는데 평정하면 바로 떠났다. 산을 개척하고 길을 내느라 편히 쉬어 본적이 없었다), 제전욱의 치적, 제요의 치적, 제요의 후계자선정, 제순의 후계자 수업, 제순의 실적과 즉위(요는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천하를 물려받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정권을 순에게 넘겨주기로 하였다. 순에게 넘겨주면 천하가 이롭고 단주만 손해를 보면 되지만, 단주에게 넘겨주면 천하가 손해를 보고 단주 한 사람만 득을 보기 때문이었다), 제순의 내력과 인품, 제순의 악독한 가족들, 제순의 덕과 교화, 제순과 22인의 인재(“노력하여 요의 사업을 크게 빛낼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자리를 주어 내 일을 돕도록 할 것이오.”), 인재들의 업적과 제순의 죽음(순은 스무 살 때 효성으로 명성을 얻었고, 서른에 요에게 발탁되었다. 순에 천자의 일을 설정하게 되었고, 쉰여덟에 요가 세상을 뜨자 예순한 살에 요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제위에 오른 지 39년째 남쪽지방을 순시하다가 창오라는 들에서 죽었다. 강남의 구의산에 장사를 지내니 바로 영릉이다), 사마천의 논평 호학심사(好學深思),심지기의(心知其意)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그 뜻을 알다.’ 사마천의 학문하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으로,<오제본기를 저술하는 자세와 자신의 저술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2  하본기(夏本紀)- 하나라의 기록으로 하 왕조 제왕의 계보 및 주요 사건들을 계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의 내력, 우의 치수사업-노심초사(우는 아버지 곤이 공을 세우지 못하고 죽은 것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노심초사 13년을 밖에서 살면서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만큼 우는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우의 치수사업-구주의 확정(, , , , , , , , 옹주로 구주를 확정하였다), 우의 치수사업-구산의 개통, 치수사업의 완료와 통치구역의 확정, 고요와의 통치 담론, 우에게로 넘어간 대권, 부자계승의 하 왕조(우의 아들 계가 실력으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마침내 부자계승을 기초로 한 권력계승 방식이 자리를 잡는다), 사마천의 논평

 

3 은본기(殷本紀)-은나라의 기록 설이 상을 일으켜 성탕에 와서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태갑은 동으로 쫓겨났으나 개과천선하고, 아형 이윤의 도움으로 공덕이 빛나게 되었다. 무정은 부열을 얻음으로써 고종으로 일컬어졌다. 제신은 술과 여자에 빠져 제후들로부터 공납을 받지 못함으로써 나라가 끊겼다. 이에 제3<은본기를 마련하였다.” (130<태사공자서에서)

1899년 갑골(甲骨)의 발견으로 중국사 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 ‘갑골문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은나라의 실체가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시조 설과 선왕계보, 탕과 이윤, 걸의 폭정과 탕의 역성혁명, 탕의 죽음과 그 후계자들, 반경과 무정의 중흥, 은의 쇠퇴와 멸망, 사마천의 논평, 은본기를 통해서 다섯번의 흥쇠를 언급한다. 은나라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 두 글자로 요약한다.

 

4 주본기(周本紀)-주나라의 기록기는 농업을 창시하여 후직이 되었고, 서백 문왕 때 공덕이 융성하였다. 무왕이 목야에서 승리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되었다. 유왕과 여왕이 어리석고 난폭하여, 풍과 호를 잃었다. 이후 점점 쇠락하더니 난왕에 이르러 낙읍의 제사가 끊어졌다. 이에 제4<주본기를 지었다.”(130<태사공자서에서). 주본기는 800년 주나라 역사의 시말을 한 편에 갖춘 방대한 체제의 기록이다. 주의 기원과 고공단보의 덕행, 태백과 우중의 양보와 서백의 처적, 무왕의 상 정벌(“그대들의 사람을 모두 집합시키고 배를 잘 정돈하시오! 늦게 오는 자는 목을 벨 것이오!”마침내 군대를 일으킨다), 무왕의 통치, 주공의 섭정과 성왕. 강왕의 치세, 목왕의 통치(왕도가 쇠락하자 목왕은 문왕과 무왕의 대업에 흠이 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여 백경을 태복에 임명하고 국정에 만전을 기하도록 주의를 주고 경명을 지었다. 천하가 다시 안녕을 찾았다), 여왕의 폭정과 국인반정, 서주의 멸망, 동주(춘추)의 시작과 쇠퇴, 전국시대의 시작과 주의 멸망(정왕 16(기원전 453) 삼진이 지백을 죽이고 그의 땅을 나누어 차지하였다., 사마천의 논평 주본기에는 아주 많은 왕들이 죽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정신이 심란한 주본기를 본 것 같다. 내 머릿속에 먼가 들어오는지 까마득해지는 그런 주본기 였다. 천천히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5 진본기(秦本紀)- 진나라의 기록 배운 자들이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에 얽매여서 ls 왕조의 통치 기간이 짧은 것만 보고 그 처음과 끝을 살피지 않은 채 그것으로 진을 조롱할 줄만 알앗지 진지하게 살피지도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귀로 음식을 먹으려는 것이다. 서글프다!”(15<육국연표서문) 중국 고대사의 시대 구분에서 가장 큰 기준은 기원전 221, 최초로 통일한 대업을 이룬 진제국이다. 그래서 진을 기점으로 이전을 뭉뚱그려 선진시대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진 선조의 계보, 제후국이 된 진-중권과의 접촉, 목공의 외부 인재 기용과 진의 발전 , 춘추 후기부터 전국 중기까지 진의 부침, 효공과 상앙의 전면 개혁, 통일을 위한 외교 책략 마련, 천하통일을 향하여, 사마천의 논평.

 

 

처음에 어렵기만 한 사기본기는 읽으면서 점점 재미를 더해간다. 그런대 너무 많은 왕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나의 머릿속은 어안이 벙벙하다. 솔직히 나에게는 어렵다. 물론 역사를 알고자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료일 것이다. 나도 사기본기를 읽음으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많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내 머리에 들어오기에는 많은 양을 외워야 해서 힘들었다. 그래도 역자가 재미나게 서술해 주어서 좋았다, 어려운 한자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알기 쉽게 한글로 표현을 해준 점은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곳을 찾아가서 직접 사진을 직접 설명해준 점 또한 많은 도움이 된다. 중국 역사를 알고자하는 분에게 정말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다. 사기본기를 이렇게 요약형식으로 리뷰를 써서 다시 한번 나의 무능함을 본것 같다.

 

k*****7 2012.04.30. 신고 공감 4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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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영혼을 담은 절대 역사서 -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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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본기 1/사마천/김영수/알마 고조선이나 발해 등 고대사 연구에 주로 인용된 문헌들은 중국 사서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고대사가 중국 역사와 뒤섞여 있기도 하지만 고대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 때문이다. 그러한 《사기》가 지닌 역사적 위치는 중국 역사서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서의 출발점은 모두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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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본기 1/사마천/김영수/알마


고조선이나 발해 등 고대사 연구에 주로 인용된 문헌들은 중국 사서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고대사가 중국 역사와 뒤섞여 있기도 하지만 고대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 때문이다.


그러한 《사기》가 지닌 역사적 위치는 중국 역사서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서의 출발점은 모두 《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전 7권으로 이루어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일컬어,

교통사고를 당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입원하거나 감옥에라도 들어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일독해 내기 어려운 책이라고 말하지만

사마천의 《사기》는 평생을 다해도 일독하기 어려운 책이라 할 수 있다.

12편의 본기, 10편의 표, 8편의 서, 30편의 세가, 70편의 열전으로 이루어진 총 1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마천이 이 책을 통해서 개발한 ‘기전체’는 이후 중국 사서 기술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사형 대신 인간의 가장 치욕적인 형벌인 궁형을 자처한 후 평생을 이 역사서 완성에 바친 사마천의 집념은 보통 사람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궁형은 사마천 개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수치요 고통이었지만, 그 때문에 인류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을 받게 된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사마천의 영혼을 담은 《사기》와 사마천의 연구를 위해 20여년을 바쳐왔으며

사마천이 중국의 거의 모든 지역을 답사하며 《사기》를 완성한 것과 같이

사마천의 고향과 역사 속 현장을 수차례 방문하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벌여왔다.

그 어떤 역사서보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쉽게 일독할 수 없었던 책을 15년 넘게 고민하고 연구해온 집대성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단순히 《사기》의 내용을 읽는 것을 넘어 사마천의 피를 먹고 탄생한 이 책의 편찬 방향과 의의를 이해시키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본기 12편 중에서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를 싣고 있으며

사마천 자신이 ‘이릉의 화’로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후 50만전의 돈을 구하지 못해서 궁형을 자처하여 목숨을 부지한 처지를 회상하며 착찹하고 억울한 심경을 임안의 편지에 답장 형식으로 쓴 ‘보임안서’와

《사기》의 전체적인 서문이며 사마천 가문의 내력과 간략한 이력 등을 첨부한 <태자공자서>를 실어 놓았다.


세부 내용은 최초의 인물로부터 그 자손들의 태어남과 왕위 계승 과정 및 간략한 단문 형식으로 주요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내용만으로는 쉽지 않은 이해를 저자의 적절한 해설이 도와주고 있다.


‘천하 역사의 존망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역할을 했는가’의 원칙에 따라 각각의 분야에 적절히 안배를 한 것이 《사기》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진본기>나 <진시황본기>를 본기에 따로 마련한 것이나 제왕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항우나 여태후를 본기에 편입시킨 것, 제후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공자나 진승의 기록인 <공자세가>와 <진섭세가>를 세가편에 실은 것 또한 모두 그러한 원칙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저자는 사마천의 위대한 사서의 의미를 크게 평가하면서도

최근 중국 정부 주도하에 전설시대인 오제와 하, 은, 주를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대규모 연구와 발굴 등에 사마천의 《사기》가 악용되고 있음을 우려한다.

관변 학자들의 연구와 유적 발굴 등은 우리 고대사인 고구려와 발해를 왜곡하고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힘이 두려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계파의 이해에 따라 주관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으로 헤게모니 쟁탈에만 골몰하는 우리 사학계를 보면서 실망을 금치 못한다.

우리 정부 역시 현안마다 대응하는 일회적 방식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역사 연구와 대응 방식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5 2012.04.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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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피를 먹고 태어난 절대 역사서,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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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고 완성시킨 중국의 역사서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기>가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의 총 130편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고는 먼저 그 방대한 양에 놀랐습니다. 역자가 52만 6500자 하나하나가 사마천의 피를 먹고 탄생했다고 언급한 것이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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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고 완성시킨 중국의 역사서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기>가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의 총 130편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고는 먼저 그 방대한 양에 놀랐습니다. 역자가 52만 6500자 하나하나가 사마천의 피를 먹고 탄생했다고 언급한 것이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중 이 책에는 제왕들의 기록이라는 본기 12편 중 처음 5편인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가 실려 있습니다. 누구든 대세를 단절시키지 않고 천하 형세를 장악하였다면 본기에 편입시킨 합리적인 융통성의 역사관으로 후대에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었다는 <항우본기>, <여태후본기>는 빠져있어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사마천은 스무 살을 전후로 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중국 전역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자는 시간과 공간의 학문이라는 역사의 생생함을 전하기 위해서 시간의 흐름은 돌이킬 수 없지만, 공간의 영역 속에서 시간을 뛰어넘어 간직하고 있던 흔적을 찾아 놓치지 않은 그의 열정을 높이 평가합니다.

 

 또한 임안에게 드리는 답장이라는 <보임안서>와 사기의 마지막 130권인 <태사공자서>를 서문으로 맨 앞장에 위치시킴으로 먼저 사마천의 역사관과 그가 왜 사기를 쓸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게 합니다. 사기를 처음 접해본 저로서는 그래서인지 조금이나마 쉽게 본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긴해도 어려운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입니다. ^^) 특히나 <보임안서>에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문장을 이루고자 한다.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p.72)’ 라는 문장은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게 된 연유를 알 수 있게 해 주었고,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也, p. 68)’ 라는 저조차도 한번쯤 들어봄직한 글이 있어 짧지만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각각의 본기에는 먼저 역자의 해제가 있고, 본기의 한국어 번역문, 마지막으로 명언·명구·용어 풀이 및 주요사건, 관련 인명·지명으로 마무리를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어 본기를 읽기전의 예습과 읽고 난 후의 복습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해제에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과 같이 사기도 물론 사마천이 직접 탐방을 통해 알아내고 서술한 것이 있지만, 많은 참고자료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본편의 시작 전 설명해 주어 그가 참고한 자료들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 9월 완성된 ‘하상주단대공정’의 결과로 발생한 ‘동북공정’등 현 중국정부의 정체성 확립에 사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면서 상고시대사의 연표하나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 역사의 현실에 미칠 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정작 본기의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하였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다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대부분이 몇 년에 누군가가 죽었고, 그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제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누구이다라는 형식으로 쓰여 있어 자칫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사기의 큰 특징으로 많은 이들이 꼽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인간중심의 역사관으로 인간의 특성과 본질을 분석한다는 것인데, <은본기>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마천은 은의 흥쇠를 반복적으로 서술하는데 그 중심에 어떤 인재를 기용했느냐가 있었습니다. 즉 이윤, 이척, 무함, 부열, 조기 등의 인재를 등용했을 때에는 은왕조가 흥할 수 있었다고 기술함으로써 유능하고 현명한 인재의 기용을 통한 현인정치를 강조하였습니다.

 

 고전에는 짧은 글이지만 큰 울림을 가진 문장이 많은데, 사기 역시 그러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은본기>‘사람은 물에 자신의 형상을 비추어 볼 수 있고, 백성들은 살펴보면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人視水見形, 視民知治不 p.320)’라는 탕의 명언이나 <주본기>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은 물을 막는 것보다 심각하다. (防民之口甚於防水 p.406) 막힌 물이 터지면 피해가 엄청난 것처럼 백성들 또한 같다 따라서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길을 터주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말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여왕에게 간한 소공의 대답은 자리문제로 시끄러운 우리네 지도자들도 꼭 한번 곱씹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고등학교때 국사선생님은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서 바로 우리 아버지, 할어버지들의 이야기라고 친근하게 접근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또 안철수 교수는 언젠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의 우리는 고대 로마시대의 사람들 보다 훨씬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해온 일을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역사속에서 배워야 할 것을 강조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옆나라의 역사서이긴 하지만 같은 문화권인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기에 21세기를 사는 현재 <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는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야 겠습니다.

y********a 2012.04.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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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역사책, 사기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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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님의 <사기> 특강을 EBS에서 본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그럼에도 깊은 인상이 남아있다. EBS강의가 끝나고 이를 요약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나왔었는데 <난세에 답하다>로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엮어낸 멋진 책이었다. 그래도 한편에선 아쉬움이 남았다.  <사기>에 담겨있는 그 풍부하고도 입체적인 역사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기> 원작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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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님의 <사기> 특강을 EBS에서 본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그럼에도 깊은 인상이 남아있다. EBS강의가 끝나고 이를 요약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나왔었는데 <난세에 답하다>로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엮어낸 멋진 책이었다. 그래도 한편에선 아쉬움이 남았다.  <사기>에 담겨있는 그 풍부하고도 입체적인 역사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기> 원작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물론 <사기열전>정도는 갖추고 있고 한 번 정도는 읽었다. 가장 대중적이고 흥미롭다는 <사기열전>, 2권으로 되어 있고 각 권이 꽤 두껍다. 간혹은 고사 성어나 널리 알려진 역사 이야기를 책을 통해 다시 만나면 반갑긴 했지만 고전들이 대개 그렇듯 재미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단편적이고 무미건조한 내용들만을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EBS강의는 이런 인상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강의 동안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이 오자서인데 <오자서열전>만을 통해 본 오자서란 인물은 평면적일 뿐이다. 그런데 사기 각 부분에 흩어져 있는 여러 정황을 모으면 오자서란 인물의 그림자가 초와 오, 월에 걸쳐 있으며 그가 처했던 정치 상황과 그를 에워싼 사회, 문화, 주변 인물들이 각기 개성을 부여받고 살아나면서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가 구성된다. 비로소 <사기>의 깊이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본기, 세가, 열전, 서, 표 등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 거대한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그 전체적인 조망을 얻어낼 수 있을까? <사기>는 역사를 기록한 글이라 재미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 않다.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롭다고 해도 단편들이 모여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성을 완성하지 않는 한 단편적으로 보이기 쉽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진다. 강의와 한 권의 책으로 요약할 수 없는 그 폭과 넓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결국 <사기>원전에 접해야 하지만 그 과정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야 하고 생생해야 할 뿐 아니라 사실적이고 현대적 고증도 거친 종합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사기 전체를 구성하는 첫 번째 시도로서 본기를 처음으로 내세웠고 그 서문으로 원래 <사기>의 맨 마지막에 있던 사마천이 자신에 관해 쓴 글을 맨 앞으로 옮겼으며 사마천의 삶과 정신, 태도 등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가 친구 임안에게 보냈던 편지를 덧붙였다. 이 편지는 사기에 있던 것은 아니고 후에 다른 역사서에 실렸던 것이라 한다. 이런 일련의 서문을 통해 사기를 구성하는 철학과 시대적 의미를 조망하고 중국사 5천년의 시작부터 진시황이 통일을 이루는 시기, 즉 춘추전국 시기까지의 역사가 담겨있다.


본기란 역사를 개괄하는 부분이라 다소 딱딱하다. 각 시대의 강력한 세력, 나라들을 연대기 순으로 기록했으며 특기할 만한 사건이나 업적에 한 해 간단히 서술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기를 읽음으로써 역사의 중요한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무로 치자면 줄기인 셈인데 줄기 자체에서 열매가 맺진 않지만 그 토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설의 삼황오제에 대한 간략한 비평에서 최근의 발굴 성과를 통해 실체가 드러난 하은주 시대, 즉 유교적 태평성대로 여겨지는 요순시대, 그리고 치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구어 군주에 오른 우와 그의 후손들, 그리고 군주의 덕행이 악덕으로 바뀌고 이로써 나라가 쇠하고 이는 반복되는 나라의 교체로 이어진다. 갑골문 연구는 사마천의 <사기>가 고대사에 대해서도 퍽 일관성이 있고 정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본기란 보통 한 권으로 충분한데 해제와 각종 설명, 지도, 그림, 김영수님이 수많은 현지답사를 통해 모은 사진과 자료들이 더해져 매우 풍성할 뿐만 아니라 자칫 무미건조하기 쉬운 본문을 보다 유기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해준다. 또한 중국의 고대사는 우리의 고대사와 맞닿아있어 역사적으로 미묘하고 쟁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에 대한 최근의 흐름을 전하고 비판하고 있다. 


본기의 겨우 절반을 다루면서 그 분량이 500여 페이지가 훌쩍 넘어 버려서 읽기 어렵지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이 경우엔 역설적으로 읽기에 더 쉬웠던 것 같다. 이제 본기를 시작으로 거대한 사기의 본 모습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벌써 본기 2권이 기다려진다.

z***a 2011.01.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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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병기 없이 한글로 기술한 사기 완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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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모든 역사서 중에서 단 한권의 역사서를 들라고 하면 거의 이론의 여지없이 '사마천'의 <사기>를 꼽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 이런 <사기>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무래도 난해하다는(난해 할 거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쩍 펼쳐보기만 해도 순식간에 고문서 감정가가 된 듯한 기분에 둘러쌓일 것 같은 한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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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모든 역사서 중에서 단 한권의 역사서를 들라고 하면 거의 이론의 여지없이 '사마천'의 <사기>를 꼽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 이런 <사기>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무래도 난해하다는(난해 할 거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쩍 펼쳐보기만 해도 순식간에 고문서 감정가가 된 듯한 기분에 둘러쌓일 것 같은 한자의 압박, 그리고 대체로 딱딱한 표지나 번역은 왜 이렇게 위압감이 느껴지는지. 그렇다고 저연령층을 타겟으로 쉽게 풀어낸 버전을 읽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결국에는 까짓거 안읽으면 어떠랴 하는 심정으로 오랫동안 방관자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한자 병기 없이 한글로 기술한 사기 완역본이다. 외국인 최초의 사마천 학회 정식회원이라는 저자의 20년 연구결과가 집약된 해재, 사마천의 현장답사를 되집어보는 천하유력도, 사마천의 생애를 상세히 기술한 연보와 일람표, 해설을 돕기위한 각시대 사건별 지도, 삽화, 자료사진,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게 만드는 생생한 현장사진, 각 왕조들의 세계도, 명언, 명구 풀이, 인명, 지명, 서명을 정리한 표, 인명표, 용어풀이 등 단순한 사기의 번역서가 아니라 이쯤되면 대략 한글판 사기의 종결서쯤 되겠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디자인과 편집에 상당히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어려운 기운이 맥반석의 뜨거운 열기처럼 솟구쳐 올라오는 여느 책과는 그 친밀감에서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쉽게 읽히거나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무겁고 지루한 사서의 이미지를 중화시켜서 접근성을 높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사기 완역본을 꼭 접해보고 싶은데 적당한 책이 없어서 미뤄오던 사람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1권인 이책에서는 제왕의 기록에 해당하는 <사기 본기> 12편 중에서 우선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그리고 진본기의 다섯 편을 다루고 있다.

<사기>는 통사라는 점에서 다른 정사들과는 다르다. 다른 정사들은 모두 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단대사인데 비해, 사마천이 죽음보다 치욕스럽다는 궁형을 당한 뒤 비웃음과 지옥같은 고독을 이겨내고 완성했다는 이<사기>는 전설시대의 제왕들인 오제로부터 사마천 자신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5000년의 중국 역사 중 무려 3000년을 다루고 있는 거대한 통사다. 특히, 같은 역사서라도 인간 중심의, 인물에 대한 평가에 큰 비중을 두고 기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 뿐만이 아니다. 역사는 돌고돈다 하지 않는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교훈과 통찰력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역사가 단순히 지적호기심이나 도전욕을 충족시켜주는 어려운 무엇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지침이 되어주는 거울이자 스승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면 생각보다도 훨씬 이책은 (나같이 역사에 무지한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읽힌다.

p********a 2011.03.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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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 본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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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 본기』는 사마천이 기록한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의 각 시대별 제왕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건들을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책이다. 원문 내용 외에도 당시의 명언, 용어 풀이, 인명표, 지명표, 각 왕조별 세계도, 당시의 참고 지도 등까지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각각의 지도, 각종 표 등 관련 정보가 다양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중국 역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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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 본기』는 사마천이 기록한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의 각 시대별 제왕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건들을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책이다. 원문 내용 외에도 당시의 명언, 용어 풀이, 인명표, 지명표, 각 왕조별 세계도, 당시의 참고 지도 등까지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각각의 지도, 각종 표 등 관련 정보가 다양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중국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은 물론, 중국 역사를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더없이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1권 내용이 딱딱한데다 본문을 읽는 중간 중간 용어풀이, 인명표 등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내용 자체에 몰입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우선 그 방대한 양에 입이 벌어진다. 컴퓨터 자판기도 없고 타자기도 없고 연필이나 볼펜도 없는 그 시대에, 한 사람이 이 많은 역사서를 기록하는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의아할 정도다. 아무튼 사기는 본기() 12편, 세가() 30편, 서() 8편, 표() 10편, 열전() 70편,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본기는 왕들의 연대기이다. 이번에 알마출판사에서 나오는 김영수 완역본은 총 15권으로 나온다고 한다. 사기 본기는 2권으로 나눠져 나왔다.

 

이번『완역 사기 본기1』를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설명해보면,

 

첫째, 중국의 ‘고대’로부터 ‘한나라’까지의 시대적 사건들이 정리가 잘 되어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동안 우리가(내가) 부분 부분 알고 있었던 전설의 ‘오제본기(요ㆍ순 시대)’부터 ‘하본기(고요의 구덕: 왕의 통치 철학, 뒤에 구체적으로 설명)’, 폭군으로 유명한 ‘은본기(상왕조)의 주왕(주지육림: ‘술로 연못을 채우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이루고’ 라는 고사가 유래, 포락지형: 기름 바른 쇠기둥에 숯을 달궈 죄인들로하여금 그 기둥을 건너게 하여 죽게함)’, 그리고 ‘주본기의 무왕(태공망: 세월을 낚는 어부로 잘 알려진 강태공으로 무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다짐)’, 주나라의 쇠퇴와 함께 제후들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본기(각 제후국들의 ‘합종, 연횡’을 통한 전쟁 속에서 최후의 승자인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게 된다)’ 등, 중국 역사의 큰 흐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흐름을 알면 중국과 관련된 철학서나 소설 등을 접할 때 시대적 배경과 당시 상황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보다 재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둘째, ‘하본기’ 중 ‘고요와 통치에 대하여 담론을 나누다(p.271)’라는 단원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관점 에서도 마음에 담아두면 좋을 것 같아 옮겨본다.

 

제순(순임금)때 여러 신하들과 담론을 나누는 중, ‘고요’라는 신하가 구덕(9가지의 덕)에 대하여 말하였다. “하는 일을 살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①너그러우면서도 엄격하고, ②부드러우면서도 주관이 뚜렷하고, ③사람과 잘 지내면서도 장중하고, ④다스릴 재능이 있으면서도 신중하고, ⑤순종하면서도 견고하고, ⑥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⑦간결하면서도 구차하지 않고, ⑧굳세면서도 착실하고, ⑨강하면서도 도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 구덕을 제대로 꾸준히 실천하면 대단히 좋습니다, 이 가운데 세 가지 덕을 실천한다면 경대부는 자기 집안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섯 가지 덕을 경건하게 실천할 수 있다면 나라를 잘 관리하는 좋은 제후가 될 것입니다, 널리 힘을 모아 매일 아홉 가지를 두루 실천할 수 있다면 뛰어난 인제를 관직에 기용할 수 있고, 백관은 나랏일에 온 마음을 다할 것입니다."

 

셋째,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동안 막연히 위대한 인물(억울한 일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으나, 치욕스러운 궁형을 감수하면서 까지 중국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이 책의 첫 번째 단락인 ‘보임안서(막역한 친구사이인 ‘임안’이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답장형식의 글)’를 통하여 다시 보게된 사마천은 그 시대에 대한 원망과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등에 많이 시달렸다고 생각되며,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더욱 더 중국역사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사기의 분류(본기: 제왕의 기록, 세가: 제후의 기록, 열전:그 시대의 주요인물 등)를 자기 중심적 개념에서 정리(제왕의 기록인 ‘본기’에 제왕이 아닌 ‘항우’ 나 유방의 황후였던 ‘여태후’를 포함시킴)하여, 역사 속에서나마 현실의 불만을 해소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보임안서’의 편지 중에 좋은 문구가 있어 옮겨본다.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也

인고유일사   혹중우태산   혹경우홍모   용지소추이야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 앞서 말했듯 본기 1권은 이런 저런 배경 지식을 공부하는 부분이 있어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그렇게 확 빠져들긴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책값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1권을 다 읽기도 전에 2권을 주문해서 대기시켜놓았고, 1권을 다 읽은 지금은 그렇게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일은 노동절이다. 다행히(?) 내일도 비가 내린다고 한다. 삼여(三餘) 가운데 하나를 얻었으니 사기 본기 2권을 읽어야겠다.



n*******0 2012.04.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원문을 한자병기 없이 완전한 한글로 옮긴 완역 사기본기
"원문을 한자병기 없이 완전한 한글로 옮긴 완역 사기본기" 내용보기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이다. 사마천은 사기 저술의 동기르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원문을 한자병기 없이 완전한 한글로 옮긴 완역 사기본기" 내용보기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이다. 사마천은 사기 저술의 동기르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으로 각각 설명하였다고 한다. 이 사기 본기1권은 는 ‘오제본기’ 부터 ‘효무본기’에 이르는 12편의 본기 중 그 권1 오제본기부터 권5 진본기까지의 내용을 담고있다.
 
역자는 사기를 절대 역사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평하며 그 이유에 대해 전설시대의 제왕들인 ‘오제(誤帝)’로부터 사마천 자신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장장 3,000년의 통사를 일목요연하고 입체적으로 기술하였고 그를 위해 ‘기전체(紀傳體)’라는 새로운 역사 서술체제를 창안해 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은 한나라 초기 명장 이광의 손자인 이릉이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항복하여 포로로 잡힌 일에 대하여 사마천이 충정 어린 변호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무제로부터 사형을 언도 받게 되지만 미처 완성하지 못한 <사기>를 끝내기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처하여 사형을 면하는 ‘이릉의 화’라는 사건이후 그와 입사 동기인 익주자사 임안이 태자 유거의 무고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 받고 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처지를 회상하며 착잡한 심경으로 3,000여자에 이르는 임안에게 보내는 답장인 ‘보임안서’를 필두로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고유일사 人固有一死, 혹중우태산 惑重于泰山, 혹경우홍모 惑經于鴻毛, 용지소추이야 用之所趨異也
- p.68
 
사기> 전편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명언 가운데 하나인 이 대목은 바로 ‘보임안서’에서 나온 말이었다. 사마천은 ‘보임안서’에 자신이 치욕스런 궁형을 자청할 수밖에 없던 처지를 이야기하고 <사기>의 완성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다. 이 글에서는 물론이고 각 권들마다 중국의 역사와 함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고사성어들이 생생하게 글들의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완역본 사기는 원문을 한자병기 없이 완전한 한글로 옮겨놨다. 덕분에 명언▪명구, 용어 풀이 부분을 읽고서야 고사성어를 떠올리는 경우도 있어 좀 아쉽기는 했지만 글을 읽는데는 오히려 그 편이 더 좋기는 하더라.
 
이 책은 글들만으로 빽빽이 채워져 있지는 않다. 글들은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으로 차분히 읽을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모르는 단어들이나 인명 및 지명들이 많았다. 하지만 각 권이 끝나는 부분마다 명언▪명구, 용어 풀이를 따로 두고 주요 사건에 대해 따로 간략히 설명해주고 관련된 왕국의 계보나 인명표나 지명표 등을 자료로 첨부하여 책을 읽기 위해 따로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등의 수고를 줄여주고 있다. 그리고 각 권의 주요 내용들에 관련된 문헌이나 역사적 자료 사진들을 첨부함으로 볼거리도 많다.
 
물론 쉽게 읽거나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방대한 중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만큼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의 고대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뺄 수 없는 책이며 수많은 사자성어들의 보고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번쯤은 꼭 읽어보기를 권유하고 싶은 책이다.


n******5 2011.01.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