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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부터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 되었다. 언젠가 도쿄에 가면 그의 발자취를 찾아가보리라 생각했던바 작년 도쿄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머문 숙소에서 도쿄대학이나 소세키의 산방기념관이 가깝다는 것을 알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찾아가 보았다. 그에 앞서 도쿄대학의 산시로의 연못을 둘러보며 발자국을 먼저 찍은 다음에. 산방기념관은 그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이고 그 서재에서 『우미인초』『산시로』『마음』을 집필했다 한다. 건물 바로 앞 도로는 그 동네 주민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여서 대작가의 집이 멀리 동떨어지지 않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었다.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고 이렇게 족적을 남기고 떠났구나 싶어서 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왜 이렇게 사설이 길었을까 생각해보니, 이 작품은 1915년 그의 사망 1년 반 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며 대표적인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걸 알고 더욱 내밀한 소세키를 마주한 기분이 들어서다.
![]() 도쿄대학 안에 있는 '산시로의 연못'.
주인공 겐조의 일거수일투족에 나쓰메 소세키를 이입하며 읽었다.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말투와 분위기가 외모에서 풍기는 약간 오만한 듯한 -그 느낌마저 멋지다.ㅎ-소세키의 성격이 연상되었고 지식인이었지만 궁핍하고 신경쇠약으로 고생했던 짧은 삶, 고독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도 감동의 여운에 취해서 책장을 뒤적이며 한동안 바라보았다.
대략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면,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겐조가 도쿄의 고마고메에 살림을 차리고 교편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양부였던 시마다와 마주치게 되고 겐조의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현실로 툭 불거져 나온다. 첫 만남 이후 엿새째 되는 날, 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달라붙어 겐조를 괴롭힌다.
‘아무래도 이게 끝이 아닐 것 같다.’(p18)
그렇다. 끝이 아니라 이것이 시작이었다. 누구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얼마 되지 않는 친척들부터 괴짜 취급을 받는다. 고독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사람을 피하고 머릿속에 활자를 채우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형제라고 해야 배다른 누나와 형이 다인데도 별로 친하지도 않아 왕래하지 않았지만 시마다를 떠올리며 누나를 찾아간다. 천식을 달고 사는 수다스런 누나는 물 만난 듯이 자기 얘기를 시작한다. 점점 나이를 먹어 몸도 약해지고, 마누라가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는 남편 이야기 등 이런 몸이라 오래 살 수도 없을 것이라는... 다달이 주는 용돈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로 겐조는 알아차린다. 평생 말단 관리로 살아가며 세 번이나 결혼한 형 조타로, 그렇게 아픈 누나를 외면하는 매형 히다 등 불편한 시선들이 겐조의 삶을 옥죄어오는 것 같다.
누나부터 시작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백 년도 더 전의 이야기나 이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돈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다. 가족과 이렇다 할 유대관계도 없이 어른이 되어 가장이 되었지만 아내와 자녀들과의 유대감도 데면데면하다. 그 시절이니 가부장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감안하더라도. 유학을 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름 출세했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돈을 뜯어내려한다. 하지만 겐조의 현실을 들여다봐도 풍족하다 느껴지는 구석은 없다. 없어서 절약할 수밖에 없는데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비쳐지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 친척 중에서 가장 출세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마다는 처음에 대리인을 겐조의 집에 보내더니 다음에는 직접 찾아오기 시작한다. 정중하게 경어를 쓰다가도 자식에게 말하듯이 말을 놓고 아주 적극적이고 뻔뻔스럽게 돈을 요구한다. 시마다 부부가 이혼하면서 다시 생가로 돌아오고 관계는 정리가 되었는데 왜 찾아와서 옛정을 운운하는 것일까. 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절해도 되는 입장인데 겐조는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고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울분을 참으면서 마지못해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겐조가 답답하기도 하다. 독단적인 남편에게 말붙이기도 힘든 아내는 항상 불만이다. 오죽하면 도둑놈이나 사기꾼이라도 자신을 아껴주기만 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까.
그뿐이 아니다. 시마다에 이어 초라한 행색으로 양모 오쓰네가 겐조를 찾아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일어나면서 겐조에게 5엔을 받고는 이러려고 찾아온 건 아니라며 미안해한다. 두 번이나 그렇게 5엔을 건네고는 세 번째로 올 오쓰네에게 줄 5엔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며 겐조는 어이가 없어진다. 정말이지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처음 받은 원고료에서 나온 돈으로 보인다. 또 한때 번영을 누리던 장인은 영락하여 겐조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을 해온다. 누구 하나 마음 터놓고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성격적으로 그렇기도 하지만.
체면 생각하지 말고 확실하게 거절하라는 아내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식이 많던 겐조의 아버지는 장차 의지하지 않을 자식에겐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하여 양자로 보낸다.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더라도 친부모에게 내쳐진 일은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평판도 좋지 않은 양부모가 겐조에게는 애정을 많이 주었다. 비록 어린 겐조를 그들의 전유물로 각인시키려는 행동이 보여서 싫어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몇 년을 거두어준 양부모였기에 뿌리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체면보다는 측은지심이 앞섰는지도 모른다.
양가에서 생가로 돌아와서도 확실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채 그대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그런 사랑을 나누는 법이 서툴렀을 것이고. 아내와의 긴장감 도는 분위기에서 그것이 읽혀졌다.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P287)
빚쟁이처럼 계속 찾아와서 마지막엔 삼백 엔을 요구하는 시마다에게 백 엔으로 합의하고 증서를 받으며 일단락된다. 안 주어도 될 돈을 깎아서 주는 것도 참 웃긴다. 이제 시달림은 끝난 것일까. 이제 매듭지어져서 다행이라는 아내의 말에 겐조는 이 말을 덧붙인다. 끝난 것 같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일들이 되풀이되는 삶,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에 올리기를 반복해야 했던 시지프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명암』이 미완의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사망 전 마지막 완결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백하고 싶었을까. 양자로 입적되었던 마음의 상처, 원만한 성격이 아닌 고지식함이며 인생을 통해 느낀 고독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남은 삶을 자각하고 지식인의 위선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도 살갑지 못했던 겐조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기뻐하는 아름다운 위안거리(화초 화분)’를 무자비하게 파괴해 놓고, 이런 사람이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자각하면서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아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내 책임이 아니야. 이런 미치광이 같은 짓을 하게 하는 자가 누구냐? 그놈이 나쁜 거다.’(P163)
여기서 ‘그놈’은 겐조의 상처받은 과거겠지. 변명처럼 내뱉는 말이지만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랑을 받고 자랐어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뭐든 억지로는 안 되는 법이지.
‘너는 결국 뭘 하러 세상에 태어난 거냐?’(P271)
‘사람이 오기만 하면 반드시 돈을 빼앗’긴다며 화가 나서 찬바람 부는 거리를 쏘다니다가 또 다시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어릴 때는 친부모의 사랑도 빼앗기더니 어른이 되어서는 과거의 삶이 불쑥 튀어나와 돈도 빼앗아간다. 대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궁핍과 고독한 삶이 절절하게 느껴져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옆에 있다면 이렇게 위로해 주고 싶다. 뭘 하러 태어나다니요. 당신의 훌륭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위안을 주려고 태어난거죠.
![]() 몰래 찍느라고 흔들렸다. 산방기념관. 나쓰메 소세키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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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작품 중 처음 접한 소설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본 유쾌한 만담의 연속 같은 내용이다.(사실 신문에 연재되는 형식으로 이어진터라 치밀한 구조보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자유 분방하게 서술되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그렇지만 이후 접하게 된 마음, 그 후 같은 작품은 완전히 다른 색깔을 띄고 있었다. 과연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겁고 인간의 내면을 파고 들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할까?? 당시 소설의 후기에서는 소세키 선생이 젊은 시절 신경쇠약과 부인과의 불화로 고생했고 양자로 다른 가문에 입양된 적이 있다 정도의 신상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상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던 관계로 소세키 선생에 관해 알고 있는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소설 한눈 팔기는 그런 부분에서 소세키 선생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자서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에 근거한 작품이다.(이런 비교가 가능했던 것은 각 페이지마다 상세하게 달린 주석 덕분이다. 당시 소세키 선생의 상황을 소설 본문과 비교해가며 서술했다.) 신경 쇠약이 심해져 영국 유학 도중 일본으로 귀국, 교편을 잡기 시작한 겐조의 부인은 임신한 상태였고 겐조와는 불화가 계속 되고 있다. 장인은 고위 관료였지만 많은 재산을 잃고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형은 하급 관리로 근근히 살아 가고 있고 누나는 심한 천식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 이런 와중에 양아버지였던 사람이 등장해 돈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좋지 않게 끝난 관계였슴에도 한때 부양을 했으니 어느 정도 도리를 지켜야하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이런 질척거리는 인간 관계속에서 예민한 겐조는 내면에서 타인을 관찰하고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동시에 나름의 논리를 찾으려고 애쓴다. 어쩌면 어린 시절 입양과 파양을 겪으며 인간에 대한 냉소와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키워줬으니 너는 내꺼야라는 식의 양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양부모, 파양이 되어 돌아온 자식을 짐짝 취급하는 친부.양친자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양부와 친부가 보인 좋지 않은 모습들. 이런 와중에 소년은 살아 남으려면 세상으로 나아가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이토록 명민한 소년은 어릴 때부터 인간의 마음을 서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완벽한 이타심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지진에 놀란 자신과 달리 딸을 전적으로 보호하려는 부인과 그것이 당연하다는 부인의 말에 아이와 함께 있어 행복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기에 가능하므로 부인이 오히려 불쌍하다고 여기는 대목을 보면 스스로 인정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얼마나 인간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깊으면 저런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할까 싶을 정도다. 물론 맹목적인 애정과 신뢰보다는 이처럼 인간의 내면과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가 있었기에 "마음"을 비롯한 여러 후기 작품을 서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신경쇠약에 걸릴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이 소설에서 이미 건강이 좋지 않다는 대목이 나온다.) 소세키 선생의 마지막 작품은 미완으로 남은 명암이기에 사실상 완결된 작품은 이 한눈 팔기가 마지막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같은 유쾌한 작품으로 시작해서 마음,한눈팔기같은 작품으로 마무리라니 과연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재밌는 사실은 소세키 선생의 제자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역시 두자춘,코 같은 밝고 유머러스한 단편으로 시작해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처럼 읽기만 해도 신경쇠약 걸릴 것 같은 어둡고 무거운 자전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는 것이다.하지만 스승의 이 자전적인 소설의 마무리는 제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 겐조는 양부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정리하게 되고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태어난 딸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니까. (이 시점에서 연재하기 시작한 소설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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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내준것만해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요즘 책값도 많이 올랐는데 가격도 세문집 수준으로 착하면서도(요즘 문동같은 경우 세문집도 기본 1.5만... 열린이나 민음사도 인상중... ) 디자인까지 깔끔하게 나와서 소장가치까지 만족합니다. 기존 인기작의 경우도 번역을 비교하면 현암사 추천이 대부분이니 고민하지 말고 소세키의 작품을 접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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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결한 작품인 「한눈팔기」는 유학파 영문학자이던 작가가 첫 소설(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을 썼을 때인 1904년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한눈팔기」는 소세키의 소설 쓰기의 기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또한 전근대와 근대사이의 시간을 살았던 동아시아의 한 엘리트 지식인 남성의 삶을 응시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이기도 하다.[한눈팔기」는 1915년 나쓰메 소세키가 사망하기 1년 반 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며 그의 대표적인 자전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세키의 많은 작품이 자전적 모티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눈팔기」의 주인공 겐조의 삶은 작가와 유난히 닮아 있다. 영국 유학을 마친 후 대학 강사로 활동한 점, 유년기에 남에게 수양아들로 보내졌다 본가로 되돌아왔다는 점, 가족 관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작가의 실제 경험과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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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쓰메 소세키의 11번째 책 <한눈팔기> 2. 분홍색 색깔의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표지에 노란색때?같은게 있습니다. 3. 이게 원래있는건지 모르고, 먼지인줄 알아서 물티슈로 닦다가 약간 상한듯해요. 가슴아프네요. 4. 물티슈는 절대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5.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모으는 사람들 모두 행복하세요. 모두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지금은 비가옵니다. 비 조심하시구요. 장마끝나면 좋은일이 일어나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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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그의 다른 소설들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 생각엔 역시.. 이 책이 최고같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음... 좀 내 생각엔 그 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읽어야햘 책이 많아면..굳이 지금에 와서 소세키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같다. 왜냐면 세상에 책은 널렸으니까.. 다만 새로운 분위기.. 이 시대상에 젖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도 좋을 듯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그의 다른 소설들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 생각엔 역시.. 이 책이 최고같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음... 좀 내 생각엔 그 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읽어야햘 책이 많아면..굳이 지금에 와서 소세키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같다. 왜냐면 세상에 책은 널렸으니까.. 다만 새로운 분위기.. 이 시대상에 젖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도 좋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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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은 과거와 현재의 문제가 곳곳에 즐비하지만, 해결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업을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살아온 생을 스스로 반성하며 이 글을 썼을 것 같다. 감정 표현에 서툰 그 시대의 가장이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겠느냐고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