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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저자 박준 님은 83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그리고 태어난 곳을 보니 '서울'이다. 나도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이런 '동질감'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낳았다. 과연,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저자는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살고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와는 참 많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냥 저만치 떨어져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분명히 '동질감'이 존재했다. 아!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라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에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제목을 보고 저자가 여자일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몇 장을 읽으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지만, 어떻게 남자에게서 이런 감성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편견'적 시선으로 바로보았다. 물론 곧 그 편견이 정말 편견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저자의 살아온 인생을 '그냥'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코 끝 시린 겨울,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추위를 견디며 걷다. 눈에 보이는 포장마차에 들어가자마자 느끼는 눈물날 것 같은 따스함에 어쩌면 진짜로 울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느끼는 책 인 것 같다.
저자와 나의 삶이 가장 많이 다르다고 느낀 건. 그가 늘 여행 중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회사'라는 시스템 속에 갇혀 살아온 나로써는 그렇게 자주 타지역에서 긴 시간을 있기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의 자유로움이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다. 그가 책속에 그려 놓은 그해 인천, 경주, 여수, 협재, 화암, 묵호, 혜화동, 행신, 삼척, 연화리 등은 내가 가본 곳도 있지만 내가 전혀 가보지 못한 곳도 있다. 그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지역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 지역마다 특색이 느껴진다. 일상도 '시'가 될 수 있음을 배운다. ![]() 수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나에게,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긴 돌아보니 나에게 '죽음'은 여전히 멀리 있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 돌아가신 분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말고는 아직 가까운 분들중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아직은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장례식장'과 가까운 삶을 살아서 인지 그 마지막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책 속에는 "장례식장'이 참 많이 나온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P19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中] 사람의 마지막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밥 한번 먹자"로 헤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해주는 '고독과 외로움'의 이야기도 참 맘에 와닿았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P50 [고독과 외로움 中]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는 '외로움'인줄 알았는데 그건 실상 '고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쇼미더머니9'을 즐겨보는데 '머쉬베놈'이 늘 이야기하는 '고독하구먼'이 새롭게 다가온다. '머쉬베놈'은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갔던 부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힘들게 했을 때 가지는 그 감정. 그 감정을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해서 진짜 놀랐다. 다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만은 잘 알고 있다.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P57 [내가 좋아지는 시간 中] 같은 나이, 같은 장소, 같은 시대를 살아간 저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때로는 공감되고 때로는 이질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책 속에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냥 아무생각 없이 울어도 괜찮치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처럼 나도 살아온 날들을 더 많이 후회하면서 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맘 것 울어도 되! 그동안 잘 살아왔자나! 라고 내 삶에 말해주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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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기억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던 날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 노트 한 귀퉁이에 짧은 시를 적었을 것이다. 얼마 후 그녀가 떠나 갔을 때 시인은 노트의 몇 페이지를 찢어 날리며 속으로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시인은 더이상 그녀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를 잊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싶다면 결국 그녀가 머릿속에서 걸어 나와 글자로 드러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p.70)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울음 같은 이야기들이 모인 에세이집이다. 큰 강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들이 결국 큰 바다로 모여들듯이, 이 책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각자의 경로를 거친 후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시인은 그녀와 섬으로 떠난 적이 있다. 4일의 시간 동안 일출과 일몰은 잦은 일이었지만 내일이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한 번도 해를 보지 못했다. 마지막 날 짙은 안개와 강한 비가 계속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알게 되었다. 그 어떤 행복도 인간만큼 게으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행복을 유예했다는 벌로 행복을 유폐하여야 하는 고통을 선물 받게 되었다. 한참 후에 시인은 다시 그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있었지만, 그의 곁에 그녀가 없었으므로 그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후회는 항상 더디 오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랑했던 시간보다 결코 짧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을 것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한 때 감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내가 주는만큼은 돌려 받을 수 없었으며 상대가 준 만큼 되돌려줄 수도 없었다. 내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러한 '감정의 불균형'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약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사랑뿐이었다. 어떤 자본주의적 계산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공평한 스토리들. 시인은 그것을 알고 싶어서 자꾸 사랑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었다. 시간은 풍화처럼 과거를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문처럼 나를 객관화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주었던 사랑 혹은 받았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나의 한 부분이 되어 나에게 남겨져 있었고 아주 오랜 후에 그것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그 순간에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모든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에세이다. 삶이 빈한하다고 생각될 때는 가지고 있는 것들의 수를 세는 것보다 하나씩 버리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소하게 느껴졌던 것들이지만 머릿속에서 삭제되는 상상을 하는 순간 참을 수 없게 공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 하는' 일들을 빼버리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삶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지 알게 된다. 시인은 시를 쓸 수 있으므로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잡아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서 시를 만들었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모든 걸 쏟아 낼 수 있어서 부럽다. 그래서 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지 못하는 사람은 안다. 그것이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지기 전까지 어떤 아픔도 내 속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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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시인의 산문집을 다시 꾸며 내놓은 것이라 합니다. 책을 고른 이유 두 가지 중 하나는 여행길에 가볍게 읽기 좋은 산문집이라는 점과 ‘운다는 것’었습니다. 책은 아부다비공항에서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두어 시간 남짓 되는 사이에 모두 읽어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시인이 살아낸 나날들이 울음으로 점철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울음을 주제로 쓴 글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낚였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책읽기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마치고 별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열심히 읽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의미는 시를 쓰거나 산문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길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일상에서 생각하는 바나 책을 읽다 만나는 귀중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블로그에 보관해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야 될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글머리는 일상에서나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책읽기에서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그해’라는 제목에 장소만 인천, 경주, 여수, 협재, 화암, 묵호, 혜화동, 행신, 삼척 등의 지명을 붙인 아홉 꼭지의 글은 짧아 두 줄 길어 여섯 줄을 넘지 앓습니다. 글이 짧으며 짧을수록 생각을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시인은 글다듬기를 반복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뜸합니다만 예전에는 저도 가끔 글을 청탁받기도 했습니다. 청탁받은 글을 쓰려면 나름 준비를 꽤나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자료조사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저자의 경우는 취재도 열심히 다니는 모양입니다. 사실 글쓰기는 자료와의 절충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조사한 자료를 어느 수준으로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학술적인 글 같으면 근거가 있는 글이라면 모두 담아내야 하겠습니다만 일반인이 읽는 책을 그렇게 썼다간 전문가 만들 일 있느냐고 퉁을 먹을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글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풀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환절기’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아마도 독감이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흔히 감기는 약을 먹으면 7일 그냥 두면 1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감기를 약을 먹어 고통을 경감하려 했던 스스로가 못마땅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생긴 대로 아프다보면 뭔가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또한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다’라는 구절은 아부다비의 사막에서 숨 막히도록 예쁜 해넘이를 보고는 새겨볼 요량으로 여행기에도 적어두었습니다. 어떻게 변주를 할 것인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살았던 화전의 폐가에서의 꿈 경험을 읽으면서도 젊었을 적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과의 추억도 글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하여는 아직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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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집과 산문을 읽어보자며 구입만 해놓았다가 이번에 꺼내 읽게 되었다. 시집 같은 산문. 산문 같은 시라고 해야 하나. 짧은 에세이임에도 느끼는 바는 달랐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 시인이 바라보는 시각.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느꼈달까. 마치 한 편의 긴 시집 같은 산문이었다.
어느 커다란 무덤 앞에서 당신이 내 손바닥을 펴더니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손바닥을 접어주었다. 나는 무엇이 적힌 줄도 모르면서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14페이지)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18페이지)
천천히 읽자고 했다가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다 읽어버려서 안타까운 글들 이랄까. 시 같은 산문을 읽다보니 그의 시가 못내 읽고 싶어졌다.
가끔씩 에세이를 멀리하지만, 이처럼 시인의 산문은 시 같아서 좋다. 예고도 없이 불쑥 마음을 훔친달까. 산문도 이럴진대 시는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52페이지)
그를 가리켜 '시인 아이돌'이라고 한다지. 그의 시집이 궁금할 정도로 좋은 산문이었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문장들의 조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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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제목이라는 책 설명에 깊이 공감합니다. 아주 보편적인 문장이지만 미처 끝맺지 않은 그 말을 이어 듣고 싶은 마음에 사게 됐습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한동안 타인과의 대화가 버겁기만 하고 부담스럽기만 했던 제가 누군가와의 대화에 의미를 두고 그 사람에게 죽지 않고 오래 남을 말을 해주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던 책이에요.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지쳐있을 마음에 함께하는 말을 해주고 싶도록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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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는 요즘 마음에 와닿는 글이였어요 책의 내용이 참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글이 많아서 위로가 되는 책이였어요 읽으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공감이 많이 되었고 미소를 잃었지만 눈빛만은 따뜻함을 잃지않기를 바래봅니다 무엇보다 제목처럼 운다고 달라지는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이 나고 그러겠지요 이 글이 참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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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그 당시 스무살 초반이었던 나는 알듯 모를듯,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하고 넘겨 짚기 쉬운 말이었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쌓이고 쌓인 시간이 늘어갈수록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곱씹어야만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아야 했고, 내 소신을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으며 나의 이야기 또한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준의 수필집은 내게 다소 낯설지만은 않은 거리감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내린 글자 하나하나에, 나는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또는 못했던, 글쓴이의 진심을 대신 전해 받았기 때문이었다.
글쓴이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음으로써 내면으로, 또는 외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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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매하게 되었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 지 궁금했다. 처음 페이지를 읽는 순간 좋은 구절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말들이 가슴깊게 다가왔다. 어딘가 과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는 구절들이었다. 한 마디씩 가슴 깊게 새겨졌었다. 한 번 읽는 것보다 여러번 읽게 되었다. 그만큼 내용도 좋았고 책 소재도 좋았다. 종이의 느낌이 옛날 책 같다라는 느낌이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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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해본 박준 작가님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라는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너무 끌렸다.
저런 문구라니...
책을 읽고 나서고 제일 생각나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라는..
그래 .. 속상하면 나오는 눈물이지만 막상 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뭐 .. 마음이 조금 후련해 지는 정도? 그래도 맘속에 있는 상처와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지만 누군가 같이 울어준다면 위로는 되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이 쓰신 시집도 있다고 하던데 찾아서 읽어보고 싶었다. 필력이 좋으신 작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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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란 게 지극히 하찮은, 혹은 시시한 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거기부터가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 거지." - <<상실의 시대>> 130쪽 / - p.88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치열하기만 하다. 그 삶은 과연 불행할까? 아니면, 행복할까? 겉보기로는 행복한지 불행한지 모른다.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치열한 삶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한 사람은 과연, 인생이 불행하기만 했을까? 마지막 순간에는 불행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인생이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계기란, 불행도 행복도 시시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삶의 어떤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도 어떤 책의 한 구절인 경우가 많다. 때로는 시시한 게 시시한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p.157
책을 읽어가다 보면,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때로는 굉장히 큰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준 적은 없다. 다만, 나를 위해 누군가가 울어주고 걱정해 준 적은 있으며, 그로 인해 나는 누군가를 걱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그와 함께 울어줄 자신은 없지만, 그 사람의 옆에 가만히 있을 마음은 있으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즈음.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고,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쓰는 목적은 무엇이고, 읽는 목적은 무엇인가. 나를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어쩌면, 그 해답은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이라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로 인해 위로 받고, 누군가로 인해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또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또 힘이 되는, 그런 글쓰기. 그런 독서.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말한다. 좀더 치열하게 살아보지 않으련. 치열한 삶으로 행복하다면, 그 삶은 의미있지 않을까. 피해의식이 낳은 경쟁의식이나, 상대에 대한 이유업는 질투심, 그런 거 말고, 내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치열함. 그런 치열함으로 글을 써보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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