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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자유분방할 것 같은 차림새지만 미모마저도 단연 돋보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하는 표지.
<이책은> 서평 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책 읽고 느낀 바> 연애 따로 결혼 따로 라는 말을 경멸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좀더 유연한 생각을 한다. 고지식한 편이고 완고한 편에 속하는 내가 말이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사회성이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분야가 연애라면 그 면에서는 박사(?)가 됨이 당연한 것 아닌가. 보통의 사람은 공부하랴 이미지 관리하랴 등등을 하느라 연애를 대놓고 하지 않는데 다른 것이 뒷전이고 연애가 더 먼저인 사람이라면 연애에 있어서의 기술은 더 잘 아는게 진리지 싶다.
대개는 호감이 가서 만남이 이뤄지고 그렇게 속궁합까지 잘 맞는다면 금실좋은 부부로 애낳고 알콩달콩 잘 산다. 결혼 전에 만나다 헤어지거나, 헤어진 사람을 가슴에 묻으며 다른 사람과 살거나, 이도저도 아닌 상태인 최악의 대상자와 마지 못해 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동화책의 결말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에서 끝난다. 결혼한 후의 생활은 현실이기에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의 연속이기에 굳이 글감이 되지 못하나 싶다. 누구나 첫사랑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게 첫 번째자 처음인 감정이었기에 순수함이 오래 자리해서가 아닐까.
매들린은 많은 문학 서적을 섭렵했다. 왈패인 언니를 두고 있어선지 그녀는 조신했으며 유복한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이해와 배려심 많은 부모님은 가족 서재에 자신의 장르를 따로 둘만치 책장이 있다. 책과 친한 그녀의 내면은 알찬데 진정한 대화가 통하는 친구는 없는 편. 기호학 수업에 참석하며 공대생 레너드를 알게 되고 점차 사랑으로 발전한다. 반듯하게 살아온 그녀가 명석하지만 뭔가 불안정한 레너드에게 끌리고 흡수되듯 빠진 건 우연이 아니다.
매들린은 늘 방향제를 좋아했다. 레너드가 그것이 불쾌한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중략. "어떤 방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면 어떻게 그 방에서 고약한 냄새까지 계속 날 수 있겠어?" 그러자 레너드가 대꾸했다. "저런, 틀림없이 그 방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계속 나고 있어. 넌 특성과 실체를 착각하는 거야." P311 그녀와 레너드는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를 그토록 좋아한 여러 이유 가운데 일부였다. 어디에 가건, 무엇을 하건, 방향제 하나가 소규모 학술 토론회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P312
문학적 정서가 강한 그녀는 감성적인 면이 강한데 반해 공대생 레너드는 분석적이고 그가 가진 결코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 알콜중독에다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난 레너드는 특유의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비하를 통해 매들린의 동정을 이끌어냈다. 레너드가 작정하고 유발한 감정은 아니지만 매들린처럼 밝은 처자는 레너드의 처지가 한없이 연민으로 느껴진다. 자신이라면 그의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믿으며 헌신하는 기폭제가 된다.
레너드는 졸업을 앞두고 갈 곳이 정해진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그 곳에 같이 가리라 꿈에 부푼 매들린은 진심으로 행복하다 느낀 순간에 사랑해 라는 고백을 한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순간에 자연스레 나온 고백이건만 레너드는 그녀가 읽던 책의 귀절을 읽어대며 평가절하한다. 모욕으로 받아들인 매들린은 책을 레너드에게 던지며 그대로 결별이 된다. 실연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들린 앞에 졸업은 다가오고 레너드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담고서 부모님이 오신다.
미첼은 늘 매들린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녀를 생각하지 않는 날들은 없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가 그녀의 부모님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그녀와 첫경험을 할뻔한 기회가 있었다. 그걸 지나쳤기에 예고된 엇나감이라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다. 미첼은 착하고 사려깊은 청년이기에 매들린에게 실수처럼 보이는 그 짓을 섣불리 하고 싶지 않았을뿐인데 매들린은 자신을 덜 좋아해 미첼이 거부한 걸로 여긴거다. 그들은 물론 어렸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레너드만 진로가 정해졌고 매들린은 실연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대학원 진학은 합격통지를 받지 못했고, 미첼은 단짝 래리와 1년여 간의 순례를 떠난다. 평소 종교에 관심이 깊은 미첼이지만 그가 성욕이 없는 건 아니다. 매들린처럼 자신을 휘어잡은 사람이 없음이라. 매들린을 끝없이 해바라기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매들린은 미첼이 싫지는 않으나 레너드만큼 강렬하게 끌리지 않음이라.
사람이 좋아서 끌리는 것과 그런 사람이기에 결혼할까 라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 좋은 사람이 꼭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레너드를 사랑하는 매들린의 마음은 진심이나 레너드의 우울증이 깊어져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그게 복용한 약들의 부작용이 성욕감퇴를 가져온다. 심리 치료사도 아니건만 모든 걸 받아주는 매들린과 다시 재결합한 그들.
레너드의 능력을 인정받아 이사한 그 곳에서 매들린은 레너드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며 그녀의 문학적 소양을 발산할 친구들을 만난다. 여러모로 그녀에게 유용하고 유익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이어진다. 그런 반면에 레너드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와 함께 했던 잠자리가 그리워지고 욕구불만 상태임을 문득 문득 깨닫는다. 건강한 남녀라면 당연한 일이 레너드가 건강하지 못함으로써의 위축된 동거는 사뭇 불안하다.
순례 중에 받은 두 통의 편지는 어머니와 매들린 헤나가 보냈다. 매들린의 편지를 여러 날을 두고 고민한 끝에 펼치니 그건 고백이자 결별의 편지다. 어린 날에 그가 자신을 범하지 않아서 엇나감부터 이어진 기회상실의 시간들이 야속하기만 한 미첼은 너무나 비통하게 울음을 터트린다. 미숙한 미첼은 마음만 컸지 매들린을 사로잡는 기술이 부족한건지, 매들린의 마음에는 결격사유가 있는 레너드가 더 들어갔으니 말이다.
감성이 많은 사람은 자신식의 해석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레너드는 감성이 발달한 사람은 아닌데 분석적이다보니 매들린 편에서 끌리는 게 당연. 자신과 달라서 끌리며 더구나 그의 불우한 유년 시절의 결핍을 자신이 채워주고 싶은 열망이 컸으니 말이다. 매들린이 더 좋아해 시작한 케이스니 할만치 다하고 제풀에 지치면 나가떨어질 승산이 크다. 더구나 레너드가 건강할 때 이미 알아버린 몸사랑이다. 그걸 누르고 참는것에도 한계가 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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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 1. 2 제프리 유제니디스(지음) | 김희용(옮김) | 민음사 | 2017 원제 The Marriage pilt (2011)
"마흔 다섯 명의 손님 가운데 대다수는 매들린과 레너드의 대학 친구들로, 그들은 예식을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환호성을 지르고 큰 소리로 야유를 보내는 행사 정도로 취급했다(<결혼이라는 소설 2>, 307쪽).
1980년대, 브라운 대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진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결혼이라는 소설>(민음사, 2017)은 총 2권(<결혼이라는 소설 1> / <결혼이라는 소설 2>)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주인공 ‘매들린’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텍스트 전반에 걸쳐 유기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들은 '친구, 우정, 사랑, 연애, 결혼, 취업''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속살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여기서 매들린을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이 대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의 플롯은 낭만적 서정성이 철저하게 배제된 채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 속에서 ‘연애’나 ‘결혼’ 따위의 제재는 한낱 허울 좋은 사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막막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것은 곧 불투명한 미래와 대치對峙한다. 즉 현실적 불안은 자존감이 결여된 채, 미래의 두려움을 불러들인다. 그 순간, 30여 년 전에 보여준 브라운 대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듯 빠른 오버랩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마치 쌍둥이별처럼 닮았다. 타임머신을 타기 전에는 접근이 불가능한 시간적, 물리적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브라운 대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그대로 복사된 듯 현재 우리 대학가의 풍경과 수시로 겹쳤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서 또 다른 삶의 단편들을 유추해보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랬다. 즉 브라운 대학교 학생들의 '졸업 전'과 '졸업 후'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우리 대학가의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예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논문은 제인 오스틴으로 시작할 계획이었다. 매들린은 본질적으로 모두 결혼으로 끝나는 희극인 <오만과 편견>, <설득>, <이성과 감성>에 대해 짧게 고찰한 다음 빅토리아 여왕 시대 소설로 넘어가려 했는데, 그 시대 소설은 상황이 더 복잡하고 훨씬 암울했다. <미들마치>와 <여인의 초상>은 결혼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결혼 플롯이라는 전통적 움직임(구혼자, 청혼, 오해)으로 시작되지만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소설들은 생기 넘치고 총명한 여주인공 도러시아 브룩과 이사벨 아처를 따라가며 그들의 실망스러운 결혼 생활을 들여다보는데, 바로 이 지침에서 결혼 플롯이 예술적 표현의 정점에 이르렀다. 1900년 무렵에는 결혼 플롯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매들린은 그러한 소설에 대해 짧게 논하며 논문을 마무리하려 했다(<결혼이라는 소설 1>, 63쪽)."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 볼만한 대목은 브라운 대학교 학생들에게 익숙해진 1980년대의 무미건조하고 까칠한 대학가 풍경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다채로운 모습에서 무엇보다 공감대를 크게 불러일으킨 것은 뚜렷한 목표의식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결혼을 단지 어려운 현실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비상탈출구 쯤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설령,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결국 '매들린'과 '레너드'와 '미첼'을 졸업 후까지도 방황과 갈등 구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도록 한다. 이는 매들린이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기호학 시간에 만난 레너드와 연애를 하고, 동거를 하고, 결혼을 약속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을 집요하게 따라붙은 건 불안한 미래였으니까 말이다.
<결혼이라는 소설>의 행간을 하나하나 들춰보면 젊음의 열기가 훅훅 묻어난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를 낭만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대학생이라는 신분증(학생증)을 소유한 이상, ‘현실과 미래’의 삶에 대해서 보다 큰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의식은 동서양 어느 대학에서나 절실하고 절박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인 '매들린, 레너드, 미첼'이 홍역을 앓듯 자신들의 삶에서 열꽃 화르르 피어오르는 경험을 한 후에 비로소 성숙해진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험난하다는 것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쉬운 인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2017.09.03(일). ⓒ 심은유
이 리뷰는 민음사에서 상품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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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경제적인 현실로 인하여 이제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말은 결혼을 넘어서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여성을 느끼게 된다. 사랑 역시 현실보다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게 된 것은 아닐까? 왠지 우리의 삶 속에서 버팀목과 같은 역할을 하던 사랑의 변질되는 과정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결혼이라는 소설>은 바로 이러한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시각을 통하여 더이상 낭만적인 결혼이 없음을 매들린, 레너드, 미첼의 모습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캠퍼스 내의 연애 과정들은 우선 사랑에 대한 여전한 설레임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문학도인 매들린은 '결혼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하여 사랑과 결혼에 대한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매들린 뿐이겠는가? 공학도이자 다방면에 매력을 뽐내는 레너드라든지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종교학도 미첼은 적어도 초반에는 사랑에 대한 순수함을 간직한 인물로 그려진다. 아직까지는 이들에게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러한 결실을 쟁취하기 위하여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그들의 전공과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매들린은 제인 오스틴이라든지 샬럿 브론테와 같이 빅토리아 시대에 활약한 여류 작가들에게 빠지면서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결혼 플롯과 함께 그 절정에 도달했으며, 결혼 플롯이 사라지면서 다시는 원래의 위치를 되찾지 못했다는 것이 손더스의 견해였다. 인생의 성공이 결혼에 달려 있고 결혼은 돈에 달려 있던 시대에 소설가들은 글을 쓸 만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던 셈이다. 장대한 서사시는 전쟁을, 소설은 결혼을 찬미했다. - p. 61 中에서 - 손더스의 견해와 더불어 이전 소설의 플롯이 결국 결혼을 종착지로 선택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매들린 역시 자신만의 결혼 플롯이 비로소 결혼으로 완성된다고 여기게 된다. 바로 낭만적인 사랑의 결말로서 말이다. 레너드와의 만남 역시 기호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는 점도 몹시 흥미롭다. 공학도인 레너드와 영문학도인 매들린의 첫 만남이 기호학을 함께 수강하면서 이루어진다는 설정은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호의 기능과 본성, 나아가서 의사소통과 관련된 다양한 체계를 연구하는 기호학은 레너드와 매들린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암시를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대한 문구를 인용하면서 서로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짧은 이별을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템 / 사랑해 이 문형은 사랑에 대한 선언, 즉 고백이 아니라 사랑을 갈구하는 반복적인 발화를 나타낸다. 일단 첫 고백을 하고나면 "사랑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며... - p. 177 ~ 178 中에서 - "그 책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그게 사랑에 대한 해체처럼 보인다는 거야. 사실은 모든 낭만적인 일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던지는 거잖아? 그런데도 그 책은 마치 일기장처럼 읽힌다고." - p. 230 中에서 - <사랑의 단상>의 '사랑해'에 대한 인용 문구를 통하여 매들린의 고백을 순식간에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매들린의 모습이라든지 레너드와의 이별 이후 그와의 사랑에 대한 여지를 보여주는 것 역시 <사랑의 단상>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매들린과 레너드가 이전의 소설들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연애의 과정을 보여주는 가운데 미첼은 삼각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왠지 배제된 느낌이다. 종교학도로서 매들린의 부모는 오히려 미첼을 마음에 들어하지만, 매들린은 미첼에 대하여 너무나 무심해 보인다. 미첼은 레너드와 사귀는 매들린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역시 괴로워하는 자신을 위하여 한동안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단순한 방관자가 아닌 종교적인 봉사를 통하여 그러한 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정 중에 매들린에게 편지로 레너드와 결혼하지 말라고 외치는 그는 그 여행을 통하여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기란 왠지 요원해 보인다. 실제로 그는 애초에 목표로 하였던 자원 봉사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레너드의 조울증이 심각해지면서 매들린의 사랑은 이제 예전의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사랑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둘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레너드의 약물 복용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급작스런 청혼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혼으로 해소될 것처럼 보여진다. <결혼이라는 소설>이 아니라 예전의 소설이었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낭만적인 사랑의 끝이 바로 결혼이었으니까. 그러나,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낭만적인 결혼이라는 결말이 아닌 선택의 수단으로 결혼을 이야기한다. 신혼 여행을 간 유럽에서 레너드의 조울증은 더욱 심각해지면서 그들의 결혼 생활은 곧바로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레너드가 떠나간 상황에서 홀로 남은 매들린의 곁에 미첼이 있었지만, 미첼은 매들린의 또 다른 사랑이 아니라 홀로서기를 위한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비참함으로 다시금 그려진다. 저자는 끝까지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해피엔딩의 모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의 레빈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미첼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대우가 아닌가도 싶지만, 미첼 역시 그러한 매들린을 이해하는 것으로서 자신 역시 그동안의 사랑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으로써 나름의 보상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결혼이라는 소설>은 결혼을 사랑의 종착지가 아닌 삶의 과정 중 선택적인 단계라는 설정을 통하여 기존의 결혼 플롯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작품 속의 매들린이 그러한 기존의 플롯을 끝없이 갈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결혼의 지속 여부에 대하여 선택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통하여 단순한 선택지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매들린과 레너드의 사랑이 조울증이라는 정신 이상 증세를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도 기존의 사랑을 통하여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내용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즉,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눈에 닥친 사랑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 보여진다. 이 작품이 결혼과 사랑에 대하여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음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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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엉겁결에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것저것 조건을 따져서 계획적으로 결혼에 성공한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반면, 그런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어떤 책을 읽었는데, 이런 결혼이 있었다. 그 책의 저자인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남자의 상을 버킷리스트처럼 작성을 했다. 그 사람의 성격은 물론이고, 취미, 삶의 철학, 가치관, 술과 담배는 하지 않을 것 등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하였다가, 그 기준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 교제를 하다가 결혼에 골인한 사람이었다. 와! 이런 결혼관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세상에 흔한 조건을 따지는, 이를테면 무조건 재산은 많아야 하고 학력을 따지는 등의 결혼은 아니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러한 노력도 필요하겠구나 하고 새삼 느꼈었다. 이런 경우라면 얼결에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이라는 틀에 묶이는 경우보다는 삶의 질이 훨씬 낫지 않을까.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도 세간에 떠도는 진리 같은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진리이기만 할까. 이 작품은 여대생 매들린이 19세기 문학으로 ‘결혼 플롯’을 연구하며 연애를 배우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몹시 심취해 있다. 글쎄 상상과 현실은 다른데, 공부하는 공식처럼 연애와 결혼을 대입할 수 있을까.
기호학 강의에서 만난 레드너, 미첼, 주인공인 매들린의 대학생활과 삼각구도의 연애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틀은 좀 약하다. 211번 기호학 강의실의 분위기는 제법 열기가 느껴진다. 페터 한트케의 『희망 없는 슬픔』(한국어판은 『소망 없는 불행』이라고 함.) 등 여러 명작과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며 토론이 진행된다. 마치 대학 강의실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초반의 분위기는 뭐랄까, 학생들이 수업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마음같이 좀 지루하게 여겨질 정도로 잘 안 읽힌다.
이제는 더 이상『오만과 편견』『제인 에어』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으로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는 좀 낯선 이야기가 되었다. 그만큼 남녀의 사회적인 이분법적인 역할도 무너진 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변화, 급변화된 시대상의 반영으로 이른바 결혼, 취업, 연애 등을 포기하는 삼포, 오포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미국의 80년대 캠퍼스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의 현실 풍속도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결혼은 필수라는 시절이 있었다. 과년한 딸이 있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중매쟁이들을 내세워 결혼이라는 인륜지사에 사활을 걸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이다. 지금의 현실은 과연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깊어지고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는 생각에 표심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미첼은 매들린을 좋아하지만, 매들린은 레너드를 좋아한다. 미첼은 몰래 매들린과의 결혼을 꿈꿀 정도로 좋아했지만, 그의 연애에 대한 적극성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결국 교수의 권유로 종교학에 관심을 보인다. 래리와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인도에는 혼자 들어간다. 콜카타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많은 노력을 하지만(매들린을 잊어보려는 노력까지도 포함하여) 결국은 도망치게 된다. 그곳에서 본 많은 부조리,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숭고한 삶 속에 제대로 동화되지는 못한다. 레너드와 결혼하지 말라는 편지 답장을 쓴다. 마음속에 아직 매들린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매들린은 원래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또 부모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는 교제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신이 불안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레너드에게 점점 빠져든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이혼한 부모를 둔 가난한 이공대생 레너드에게. 소문난 바람둥인데도, 여자들은 그와 잠자리를 못해서 안달이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판단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반대를 하면 할수록 둘은 더욱 결속하게 된다. 평생의 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이미 연정으로 가득한 마음은 그가 리튬을 복용하는 조울증 환자라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매들린의 언니의 말대로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게 되었다.
레너드는 자신의 병을 자각하고, 약 복용의 양을 조절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거기서 떨치고 나오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한다. 약을 복용함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폐해도 알 수 있었다. 의사들에게 환자는 어쩌면 임상실험용이었다. 갑자기 사라지거나,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서 매들린을 불안에 떨게 한다. 청혼을 하고 결혼을 했다가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혼하자는 뜻을 내비쳐도, 그렇게 된 상황에 후회도 하지만, 매들린은 그러지 못한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라면 거의 그러지 않을까. 이미 사랑하고 있는데, 차마 그러지 못함은 인간의 기본 심리에 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결국 미첼이 종교학에 관심을 두고 자원봉사를 경험했던 것도 매들린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도피를 시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정신적인 병증과 경제적으로 가난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묘수’로 매들린에게 청혼을 레너드, 앞날을 계획하며 실천하기보다는 사랑에 탐닉하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매들린은 모두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연애와 결혼은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인류의 불완전한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책임을 감수하든 못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삶의 과정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협조정신과 배려 없이는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평생 해로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하다. 가족과 많은 지인들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지만, 도중에 헤어지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마지못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예전에 다소 파격적인 제목의『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소설이 있었다. 아마도 결혼생활의 이런저런 부조리를 대변해주는 스토리는 아니었을까. 인생은 연습이 없다. 결혼도 물론 연습할 수 없다. 삶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사는 것이 맞거나,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결혼을 하면 반드시 불협화음이 생긴다. 환경이나 성장 배경이 다르고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의견의 합치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연예인 중 누가 이혼을 하면 성격차이 때문에 헤어졌다는 말이 자주 나왔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에이, 그건 아니겠지, 하며 색안경을 끼고 딴죽을 걸곤 했다. 하지만, 그 ‘성격’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마음이 착한 것 외에도,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 위기에 대처하고 극복하는 능력, 좋은 삶으로 마무리 하려는 능력 등. 물론 이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겠지. 어쩌면 그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이나 교육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사생활이나 학교생활만 교육과 계획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는 결혼생활은 더욱 더 소중한 삶이므로, 둘이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그게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이 스스로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삶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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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이라는 소설 】 1, 2 _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은이) | 김희용 (옮긴이) | 민음사 원제 : The Marriage Plot
누가 그랬나? 남녀 간의 사랑은 나머지 반쪽을 찾는 과정이라고..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반쪽마저도 수시로 변하는데, 나머지 반쪽을 어찌 찾는가. 영화에서처럼 둘로 분리된 거울이나 장신구가 합체되는 짜릿함을 기대하지 말일이다. 그냥 대충 맞으면 사는 거다. 아니 오히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던 반쪽들끼리도 잘 만 살더라. 결국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것은 나를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그 중에서 어떤 캐릭터가 진정한 나의 모습인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온전히 나 자신이 드러나는가? 내가 매우 흡족해하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각설하고,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 미국이다. 미국 동부 명문대 졸업생인 매들린, 레너드, 미첼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중 여주인공 매들린이 중심인물이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진학 또는 취업 전선에 나가기 전에 갖춰야 할 것은 많고, 갖춘 것은 미미한 이들에게 ‘사랑’조차도 스펙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매들린, 레너드, 미첼은 소설 속 삼각관계이다. 단지 레너드와 미첼은 서로 모르는 사이일 뿐이다. 레너드와 미첼은 성품은 완연히 다르다. 매들린은 이 둘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레너드가 조금 적극적인 기질이라면, 미첼은 사랑에서만큼은 매우 소극적이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가? 이 소설의 결말이기도 하다.
소설이 대부분 그렇지만, 좌충우돌 매들린의 사랑 찾기, 사랑 세우기 과정을 작가는 그저 무심히 그려가고 있을 뿐이다. 마치 예능프로에서 아이들끼리 무엇인가 미션을 부여받고 달려가는 길을, 설령 길을 잘못 들었을지라도 전담 비디오맨은 그저 묵묵히 찍어대기만 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려주고 있다. 안쓰럽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들을 보면서 아마도 독자 자신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질척대는 매들린의 연애담보다도 매들린이 영문학과 3,4학년 재학 중에 들었던 강의나 지도교수가 과제로 내주었던 필독서들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리 친숙하진 않으나, 낯설지 않은 이름들, 작품들에서 우선멈춤이었다. 데리다, 에코, 바르트 같은 기호학계의 거물들. 발자크, 시오랑, 로베르트 발저, 레비스트로스, 페터 한트케, 칼 밴 벡터 등과 롱펠로, 쿠퍼, 마퀸드, 오스틴과 엘리엇, 모비딕은 e-book으로 읽다말았는데, 모비딕 이야기도 나온다. 내가 어디까지 봤더라? 옛 선원이었던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하는데 까지 봤던가? 마저 한참 읽어야겠다.
연애소설의 대부분은 남자가 주인공 아니었던가? 이 소설은 오로지 매들린을 축으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연애소설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사랑은 살아가며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중한 감성이다, 감정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내 모습도 당신의 모습도 보일 것이다. 실패한 사랑조차도 독자에겐 훌륭한 스승이다.
“결혼의 현실적 문제를 반영한 책으로 『마담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가 있었다면, 가장 최근엔 『결혼이라는 소설』이 있다.”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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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전2권)
매력적이지만 불안한 남자와 착하지만 평범한 남자 사이에 선 여자! 연애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대학원 전형에 떨어진다. 알코올의존증 부모 밑에서 감정적 불안을 겪으며 자랐다. 소용돌이 같은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매들린의 부모에게 인정받는 모범생. 유럽과 인도로 여행을 떠나 성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결혼'을 방법으로 삼고자 하는데...
제프리 유제니디스(Jeffrey Eugen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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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 1, 결혼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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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이지만 불안한 남자와 착하지만 평범한 남자 사이에 선 여자!
빛나는 지성과 함께 우울한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레너드, 매들린의 절친이자 순진한 심성의 종교학도 미첼은 매들린의 부모에게 인정받는 모범생. 그 와중에 매들린-레너드 커플은 답을 찾지 못한 막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방법으로 삼고자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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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은 나와 전혀 다른 부류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나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결혼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세 인물 모두에서 독자들은 자기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나와 닮은 캐릭터가 아님에도 그의 어떤 부분에서는 깊은 동질감을, 그러니까 문학이 주는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이러한 쾌감에 가까운 감동이 평균 열 페이지마다 나를 후려친다. 치기 어리고 외롭고 또 열정적이던 젊은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세 인물의 사고방식, 언행, 선택에 한 번은 눈물 짓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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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주황색 태양, 하얀색 구름. 토요일 아침. 밥 해먹기 싫다며, 나가자는 엄마. 먹고 싶은건 없지만. 날씨가 좋으니, 돌아다니다 보면 있겠지. Bus 정류장 도착 알림 전광판을 보니, 곧 도착한다. Bus의 Tire는, Break와 Curling 한판. 과연 정거장에, 얼마나 근접할지. 서 있는 우리 앞에, 바로 도착! 문이 열리고, Tire가 숨을 헥헥거리며. 먼지를 엄마에게 뿜어댔다. 인상을 쓰며, 입을 오므리고 타는 엄마. "두 명이요." 기사 아저씨는 흰색 장갑을 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button을 삑삑 누른다. "다인승입니다." 2,500이 감았던 눈을 뜬다. 인간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자리를 잡아 앉으려는데. 기사 아저씨가, 엄마를 부른다. 안 찍고 지나갔으니, 다시 찍으라며. 아닌데? 분명히 소리 났는데? 다시 찍고,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다가 덮었다. 가을이 여름에게 견습을 받으며. 하늘과 땅을 하나씩, 문지르고 살피는 중이다. 놓치면 안되지. 15분 후. 목표지에 거의 도착. 엄마가 교통Card를 단말기에 갖다댔는데. 단말기가 그새 쌍꺼풀 수술을 했다. 5,000?????????? "아니 아저씨. 아까 2명 찍었잖아요. 삐 소리 났는데, 왜 또 찍어요?" 엄마의 목과 얼굴은 빨강. -_-;;;;;;;; 기사 아저씨는, 어떻게 5천원이 나오냐며. 밭에서 캐낸 흙감자빛으로, 얼굴을 물들였다. 각자 찍으시라?? 대부분 각자 찍지만, 언제나 그러나?? 승객들이 앞쪽을 지켜봤다. 기사 아저씨가, 두번 찍었구나. 그러니 5,000이 나오지. 다인승이라는 message가 나오면 맞는데. 그걸 못 들으셨는지, 한번 더 찍으셨구나. 그러면 하차시, 교통card를 안 찍은 상황으로 정리되고. 2명으로 다시 찍었다라... 요금이 강남 갈 기세-_-; 기사 아저씨는 button을 연이어 눌렀다. 100원짜리 동전 25개가 미끄럼틀을 타고, Bus요금함을 나왔다. 동전을 챙겨서, 지갑에 넣은 엄마. 둘이 타면 꼭 이렇다며, 툴툴대고 내리는 엄마. 우리에게 욕 많이 하겠구나. 엄마가 자주 타는 Bus인데. 걱정+짜증이 두뇌에 철퍼덕 눕는다. 이때. 뒤편 상가로 연결된, 나무 계단 위에. 연둣빛의 길쭉한 물체가 날아오르더니. 앞쪽으로 두발자국 정도의, 계단 위에 착지했다. 방아깨비! 빨대 끝을 가위로 잘라 들어올린듯. 날개를 좌우 약 80도로 펼친후, 위아래로 펄럭인다. 갈색으로 물들진 않았네. 풋마늘처럼 단단한, 초록빛의 길쭉한 뒷다리는. 수맥을 찾는 L-Rod처럼, 곧게 세웠다. 황금빛 벼 낱알을 꼬운 듯, 오돌도돌하고 바짝 세운 더듬이. 움직이지 않는, 볶은참깨 크기의 caramel빛 눈. MBC 사장이었던, 김재철 씨의 안경이 생각나는구나-_-; 엄마가 정거장에서 씩씩거리는 사이. 다리를 굽혀 쪼그린 후, 오른손을 오그려 피고. 방아깨비에게 다가갔다. 거기 가만히 있어봐. 잠깐 보고 놔줄게. 여긴 차가 많아서 위험하니까, 풀숲에 놔줄게. 몇년만에 널 보는지 모른단다. 마음을 알아줬음 좋겠는데. 방아깨비는 계단 옆 소나무 밑으로, 날라가버렸다. 쩝... 그사이 엄마는, 빨리 가자며 재촉했고. 엄마를 따라 가면서, 풀숲을 계속 뒤돌아봤다. 땅위에서 인간들도, 짜증과 분노로 고통스러운데. 온갖 사냥꾼들이 판치는 풀숲에서 버티니. 방아깨비가 얼마나 힘들지. 다시 못 보겠지만.. 잘 살아야 돼! 오랜만에 나타나, 잠깐의 여유를 선물해준 방아깨비처럼. "결혼이라는 소설"은 청춘들의 삶을 통해 희망을 주는, 오랜만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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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스스로가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요즘들어 부쩍 결혼과 관련된 소설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급변하는 결혼관에 따라 오히려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인지, 주변에 맞춰 유독 많이 접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3포세대, 초식남, 비혼, 졸혼 같은 말들이 시대를 아우르는 와중에 결혼과 관련된 내용의 소설들이 등장한다는 게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결혼은 현실'임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때, 제목에 결혼과 소설을 매치시킨 점도 현대의 나날을 살아가는 이들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애매하게 보였다. 게다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지금 우리가 읽고 공감하기에 충분한가 되짚어보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기 싫어 결혼을 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만큼 '결혼이라는 소설'은 현시대의 고민과 현실을 자극하는 요소를 충분히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약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무색하리만큼 곳곳의 문장들에서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매들린, 레너드, 미첼의 관계가 다소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류의 느낌을 주지만 그들의 각자의 개성을 각기 다른 전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은 꽤 흥미로운 장치이다. 매들린의 전공인 영문학을 통해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보이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시선이 매들린에게까지 연결되고, 종교학을 전공하는 미첼이 '착하지만 쉬운', 그리하여 매들린으로부터 하여금 매력을 느낄 수 없도록 그려지는 점들이 캐릭터와 그들의 성향에 따른 전공까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 현실성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가장 즐거웠던 점은 어떤 지점에서 정확히 마음에 걸리는 문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첼이 클레어에게 느끼는 분노는 부분적으로 잘못 겨냥된 것일 수도 있었다. 진짜로 그를 미칠 듯이 화나게 한 여자는 매들린일지도 몰랐다. 디트로이트에서 지낸 여름 내내 미첼은 매들린이 다시 애인 없이 혼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뱅크헤드가 버림받고 고통스러워한다는 생각이 미첼의 사기를 북돋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심지어 매들린이 뱅크헤드와 사귀었던건 잘된 일이라고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인간관계망에서 레너드 같은 녀석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하기 전에 그녀는 철이 들어야 했고, 그 점은 미첼도 마찬가였다. -p.367 순례자들 /결혼이라는 소설 1"
그 첫번째로 미첼의 태도를 통한 남성적인 시선- 남성의 시선에 담긴 오류를 발견한 장면이었다. 그가 클레어와 래리를 피해 나오면서 그가 느낀 불편함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가 대상화 한 여성으로 하여금 느낀, 충족되지 못한 욕망에 대한 분노가 다른 화살을 통해 제 삼의 여성에게 돌려져 표출됐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그가 개별적으로 선택하여 만들어간 관계에 대해 자신과 '함께하기 전에' 거쳤어야 할 과정처럼 합리화 했다는 점이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온 부분이었다. 매들린-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원치 않는 상대로부터의 불필요한 관심과 대상화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가치 평가 당하기까지 한 것이다. 때문에 매들린을 향한 미첼의 감정이 단지 매력없이 착한 청년의 순수한 감정으로만 여겨지지 않게 된 부분이다.
"그 후에 그들은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숨을 돌렸다. 매들린이 장난스럽게, 행복하게 말했다. "내 짐작에는 네가 나아진 것 같아." 그 말에 레너드는 일어나 앉았다. 그의 머리는 더이상 온갖 생각으로 들끓지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침대 아래로 굴러 내려가 무릎을 꿇은 채 레너드는 커다란 그의 두 손으로 매들린의 두 손을 잡았다. 자신의 모든 문제, 그러니까 연애, 재정, 전략상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막 알아낸 참이었다. 하나의 묘수는 마땅히 또 다른 묘수로 이어지는 법이다. "나랑 결혼해 줘." 그가 말했다. -p.169 묘수 /결혼이라는 소설 2"
이 부분에서 가장 큰 낙담을 하게 되었는데, 현실로 표출되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마치 결혼하고 싶은 이유로 '생활이 안정되기 때문에'를 꼽는 이들에게 심신의 안정을 원한다면 차라리 클래식을 들으세요'하고 충고해주는 실전 Q&A의 답변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가진 현실적인 문제들을 덮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부정적인 입장이라 더욱 그러했다. 결혼은 내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생활로 나를 차원이동 시켜줄 도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로 나를 차원이동 시켜줄 퀘스트가 된다면 몰라도. 물론, 저런 순간의 강렬한 열망 혹은 착각 없이 결혼을 결심할 수 없다는 면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무모하고 실재적으로 충동적인 저 결정은 묘수가 아닌 악수가 되어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토록 곱씹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결혼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가장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대목이 저 레너드의 청혼 장면이었다.
그 뒤를 잇는 부분은 매들린이 겪게 되는 '결혼의 현실'이 굉장히 생생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앞서 꼽았던 장면이 그대로 그들 결혼생활을 좀먹고 끈끈하고 어둡게 뒤덮어버리는 문제덩어리가 되어 잠식해나간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미첼이 매들린을 두고 "그녀는 철이 들어야 했"다고 평한 부분이 주제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물론 그녀 뿐 아니라 레너드 역시 같은 실수를 만들어간 공범인 것이다.
"레너드와 함께 냉방이 되지 않는 그의 아파트에서 보낸 길고 무더운 여름과 그 후 필그림 레이크의 숙소에서 보낸 두 달은 매들린에게 "조울증 환자와 결혼했다."라는 게 어떤 것일지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게 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화해가 모든 어려움을 보이지 않게 가려 버렸다. 레너드가 그녀를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일종의 쾌감을 주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레너드가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으면서, 그리고 특히 그들이 케이프 코드로 옮기고 나서 오히려 악화된 것처럼 보이면서, 매들린은 질식할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레너드가 그의 무덥고 후텁지근한 원룸형 아파트까지 함께 가져온 것 같았고, 그곳이야말로 그가 정서적으로 살고 있는 곳이서 그와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그 무더운 심리적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레너드를 완전히 사랑하려면 매들린도 그가 길을 잃고 헤매는 캄캄한 숲 속으로 들어가 똑같이 헤매야 할 것 같았다. -p.283 그리고 이따금 그들은 몹시 슬퍼했다 /결혼이라는 소설 2"
사랑은 달콤한데 사랑해서 한 결혼은 왜 달콤하기만 하지 않은 것일까. 에 대한 답이 바로 이 문장 속에 들어있다. 미성숙 혹은 완전히 해결되거나 이해되지 않은 문제들로부터의 도피로 인한 관계의 종말. 사랑이나 사랑의 종착지로 그려지는 결혼이 문제의 답이 되지 않음을, 되려 문제를 수면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 삶은 계속되고 각자의 인생은 저마다의 궤를 그리며 살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문득 "같이 울기 위해서 나는 너를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울 때 너는 왜 없을까?" 하던 신달자의 싯구가 떠오른다. '결혼이라는 소설'과 함께 '내가 울 때 너는 왜 없을까'를 읽어본다면 이들의 관계가 좀 더 함축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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