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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보행을 살피며 현재의 보행을 설정하고 미래의 보행을 짐작해보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과거의 보행을 살피며 현재의 보행을 설정하고 미래의 보행을 짐작해보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내용보기
“... 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 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
"과거의 보행을 살피며 현재의 보행을 설정하고 미래의 보행을 짐작해보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내용보기

  “... 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 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 할까...” (p.20)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은 그만 몇 권의 책에 추월당했다. 나는 《걷기의 인문학》을 김솔의 소설, 전성원의 서평집, 철지난 EBS의 지식e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등과 겹쳐 읽었고, 《걷기의 인문학》은 그 모두에게 추월당했다. 《걷기의 인문학》을 그만큼 느리게 독서한 결과였다면 그나마 낫겠으나, 어쩌면 다른 책들을 너무 빨리 읽은 결과일런지도 모르겠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은 그곳의 풍경을 지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한 앞사람의 해석이다.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는 것, 학자나 탐정이나 순례자처럼 먼저 간 사람의 뒤를 밟는다는 것이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을 똑같이 따라 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을 같은 방식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하는 방법, 같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pp.116~117)


  걷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학시절의 한 83학번 선배이다. 그는 주로 등산화를 신고 다녔는데, 그것은 언제든지 오래 걸을 수 있기 위한 준비였다. 그는 때때로 마포에 있는 학교에서 술을 마시고, 사당 근처의 집까지 걸어서 가곤 했다. 어느 땐가 나는 선배의 귀갓길에 동행한 적이 있는데, 이태원 해밀턴 호텔의 화장실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남은 술기운으로 그곳까지 가서 이제 한강 다리를 건너기 전에 선배는 마지막 화장실일 수 있다며 그곳을 이용하기를 권했다. 태어나서 호텔이라는 곳에 처음 들어가(서 일을)본 날이었다.


  “보행 수필은 육체적, 정신적 자유를 찬양하는 장르였을 뿐, 자유로운 세계를 혁명적으로 열어 보이는 장르는 아니었다. 그 혁명은 이미 일어난 후였다. 보행 수필이 한 일은 자유가 얼마나 허용될 수 있는가를 서술함으로써 그 혁명을 길들이는 것이었다...” (p.200)


  최근에 걷기, 하면 떠오르는 이 또한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87학번 선배다. 그녀는 내가 알기로 어지간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다. 날씨가 좋으면 보다 많이 걷고, 정처 없이 걸을 때도 있지만 목적지를 정해 놓고 걷기도 하는 것 같다. 그녀는 대학시절 술자리에서 종종 뛰쳐나가고, 쫓아오는 이들을 뿌리쳐 달아나고는 했는데, 아마도 지금의 걷는 속도는 그것보다는 느릴 것이다.


  “... 소유가 땅을 여러 조각으로 구분하는 경계선에 주목한다면, 보행은 유기체 전체를 이리저리 연결하는 일종의 순환계로서의 길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소유와는 상반된다. 보행은 땅을 소유하는 대신 땅을 경험한다. 움직이는 중의 경험,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경험,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경험이다...” (p.264)


  나는 서른 넘어 결혼을 하고 직장을 그만둔 후 한동안, 책에 나오는 개념에 어울리는 보행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삼전동에 살던 나는 느지막히 일어나 신문을 챙겨들고 집에서 가까운 뚝방을 넘어 탄천으로 그리고 내처 한강까지 걸어가곤 했다.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모여든 낚시꾼들 옆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내처 걸어 잠실대교 아래까지 걷고는 했다. 그렇게 다시 집에 돌아오면 해는 저물었고 아내가 퇴근할 즈음이었다.


  “보행을 위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이상하다. 실제로 보행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자주 언급하는 독립, 고독, 자유는 조직과 통솔이 없는 데서 온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롭게 걸을 장소, 질병이나 사회적 속박에서 자유로운 육체가 그것이다. 이 기본적 자유는 무수한 투쟁의 목적이 되어왔다...” (p.273)


  나는 자동차를 구매할 의사가 없었지만 운전면허는 있었고 자궁근종 수술을 앞두고 있던 아내는 자신이 우리의 차로 이동하면 좋겠다고 했다. 십년 전쯤의 일이다. 그 후로 나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것을 모르는 도둑처럼 길들여졌다. 더 이상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고, 걷는 일에 소홀해졌다. 차를 운전하며 이동하는 중에 보게 되는 풍경을 풍경이라고 할 수는 없고, 여태 나는 풍경에 눈 감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도시는 언제나 익명성, 다양성, 혼합성(걸을 때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속성들)을 제공해왔다. 빵집이나 점집을 마주치면 지금은 그냥 지나가더라도 나중에 들어가볼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자기가 사는 도시의 모든 것을 알기는 불가능하다. 대도시의 미지와 가능성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p.278)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의 원제는 ‘Wanderlust: A History of Walking’이다. 방랑벽:, 보행의 역사‘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책에는 루소를 필두로 하여 여러 철학가들과 문학가들 그리고 순례자들을 비롯한 걷기의 선각자들이 등장한다. 책은 그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보행의 역사‘를, 우리에게 DNA처럼 각인되어 있는 어쩔 수 없는 ’방랑벽‘을 끄집어내어 우리들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 이동 기계화가 여가를 늘리기보다는 속도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는 것은 대부분의 ‘시간 절약형’ 기술력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인이 30년 전보다 시간이 더 모자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공장이 생산 속도를 높였다고 해서 사람들이 차를 타는 시간이 단축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수시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게 됐다.(예를 들어 현재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날마다 서너 시간을 출퇴근 운전에 소비한다.) 사람들이 안 걷게 된 것은 걸을 만한 장소가 없어져서이기도 하지만 걸을 시간이 없어져서이기도 하다. 생각과 연애와 몽상과 구경이 펼쳐지던 자유분방한 사색의 시공간이 이제 없어졌다. 기계는 더 빨라지고 있고, 삶은 열심히 기계를 따라가고 있다.” (p.414)


  책을 읽는 동안 책 읽기를 멈추고 몇 차례 홍제천으로 나아갔다. 길 잃은 잉어들이 손 그림자를 딸라 우우 몰려다니는 다리 아래를 바라보며, 오후의 오수를 즐기려 모여서 날갯죽지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비둘기들이 점령한 낮은 다리 위를 걸었다. 전동 휠체어가 막 지나간 자리를 노란 트레이닝 슈트가 뛰어가고, 무릎 높이의 아이가 뒤뚱거리는 사이 목줄에 가해지는 힘에 반려인이 휘청거렸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장소는 상상력의 풀밭이다. 이 풀밭은 상상력 가운데서도 아직 경작되지 않은 장소,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장소, 당장 써먹기는 힘든 장소다. 나비, 초원, 강변 나무숲은 시장에 내다팔 곡물을 산출하지는 않지만 크게 보면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환경주의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상상력의 풀밭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척박해지고 아둔해지고 길들여진다. 길들여지지 않은 장소와 공공장소라는 자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는 그 공간을 거닐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상상력이라는 풀밭은 당장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들, 자극적인 실제 범죄 이야기들과 유명인의 위기에 소문들만을 파는 체인점 아웃렛만 잔뜩 들어선 땅으로 개간될 것이다...” (pp.463~464)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낮이든 밤이든, 그러나 가능하기도 하였고 가능하지 않기도 하였든 보행의 역사를 읽는 일이 느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거나 누릴 수 있는데 누리지 않고 있거나 누릴 수 없어 누리지 못하고 있는 보행의 양태들을 떠올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획득된 현재, 그리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보행의 미래를 생각해볼 일이다.


  “보행은 인간 문화라는 밤하늘의 성좌로 자리 잡았다. 그 성좌는 육체, 상상력, 드넓은 세상이라는 세 별로 이루어져 있다. 세 별은 각각 따로 존재하지만, 보행의 문화적 의미라는 하나의 선이 별들을 이어 성좌로 만든다. 성좌는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설정이다. 별과 별을 잇는 선, 곧 성좌는 과거 사람들의 상상력이 지나간 길이다. 보행이라는 성좌에는 역사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시인들과 철학자들과 반란자들, 무단횡단자들과 호객 창녀들과 순례자들과 관광객들과 정글 탐험가들과 등산가들이 두 발로 디뎌서 만든 역사다. 다만 이 역사에 미래가 있는가 여부는 아직 그 길들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pp.465~466)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 김정아 역 / 걷기의 인문학: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Wanderlust: A History of Walking) / 반비 / 510쪽 / 2017 (2000)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8.06.2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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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16-4월] 걷기의 인문학
"[파블16-4월] 걷기의 인문학" 내용보기
걷기와 산책,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다. 그렇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니다.걷기(보행)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류의 기원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두 발로 걸어다니며 손을 땅에서 떼었으며 간단한 도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인간이란 의미의 곧 선 사람 '호모 에렉투스'는 불과 언어를 사용했다.인류의 출발점이 두 발로 걸어다닌 것에서 의미가 중요하게 와닿는다. 걷는
"[파블16-4월] 걷기의 인문학" 내용보기

걷기와 산책,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다. 그렇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니다.

걷기(보행)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류의 기원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두 발로 걸어다니며 손을 땅에서 떼었으며 간단한 도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인간이란 의미의 곧 선 사람 '호모 에렉투스'는 불과 언어를 사용했다.

인류의 출발점이 두 발로 걸어다닌 것에서 의미가 중요하게 와닿는다. 걷는다는 것은 생존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고 세상밖으로 나오고 한참동안 누워있고 호기심 가득지닌 채 기어다니고,

비로소 무언가를 잡으며 일어선다. 걷기가 시작되고 아이는 자유다. 걷는다는 것은 또다른 선물이다.

걷기(보행)의 역사가 이토록 오래되었다. 그 역사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작가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이다. 읽는데 어려워 식겁했다^^

너무 긴 시간동안 읽은 책이라 내용도 생각나지않고 뒤죽박죽이지만 읽기를 끝냈음에 짓눌린 마음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다.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 '걷기'에 대해 이토록

방대한 통찰을 자랑하는 책은 오랫만이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와 독서에 대한 앎의 깊이가 놀라웠다.

'걷기(보행)'행위가 문학, 사회, 문화, 정치, 역사, 예술적...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첫 행위가 가장 중요한 지적 여정이었음을 생각했다.

'걷기' 라는 행위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 사람을 규정한다. 철학자, 예술가, 환경운동가, 페미니스트...

의미있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를 넘지않는 어쩌면 퍽 신사적인 행위였다. 그 행위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알렸다. 차별을 없애고, 차이를 메우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조용한 행위였지만 그 파급력은 강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걷기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촛불집회가 있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 추모집회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

반대 집회를 거치며 집단시위의 주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역대 최대규모로 열렸고, 2009년에는 용산 참사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재가, 2011년에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값등록금 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에

항의하는 촛불시위가 열렸으며 2014년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진행되었다.' 비폭력 평화시위' 라는게 촛불집회의 특징이다. 그리고, 헌정사에 남을만한

촛불집회는 역시 2016년 11월 12일 서울 광장에서의 대규모 촛불집회는 잊을 수 없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단체가 연대하였으며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들이 모여 대통령의 퇴진과 '최순실 게이트' 의혹에 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같은 날 서울 이외에도 부산과 광주, 전주, 제주, 울산, 강원 등에서 촛불집회가 열렸으며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daum 백과 참조)

 

걷기(보행)는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너무 사적이면서 공적이었다. 갈급함이었다.

여행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때도 있었다. 성지순례나 자아성찰을 위한 여정은 그 자체로 수고스러움과 고생스러움을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한다. 지금은 걷는 여행 그 자체가 자연을 감상하는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지만 18세기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걷기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나는 '걷기' 대신 산책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미술 평론가 루시 리파드의 말이 지금 가장 와닿는다.

"일종의 육체 이탈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날씨를 느끼고, 질감을 느끼고, 풍경을 느끼고, 계절을 느끼고, 야생의 것들을 만났다"

 

바람이 스쳐가고 그 내음을 느낀다는 것은 산책을 즐기는 묘미다.

일정한 시간을 내어 습관처럼 걷기를 하지 않는 이유다. 매번 이런 류의 걷기는 작심삼일이지만....

학교를 출근할때마다 마트를 갈때마다 느껴지는 평범함이 좋다.

이제 5월 되면 이팝나무의 멋스러움과 그늘이 걷기를 더욱 행복하게 해줄테니깐^^

 

혼자 걷는 사람은 주변 세계와 함께 있으면서도 주변 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다.

걷는 일 자체가 이 가벼운 소외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혼자 걷는 사람이 혼자인 것은 걷고 있기 때문이지 친구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신에 긴장이 심한 나 같은 사람은 이완이 필요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이완에 도움이 된다. 몇몇 사람과 따로 만나는 일은 이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위가 소란스러울 때 생각이 잘 되고, 주변이 조용할 때보다는 주변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해 애쓸 때 집중이 더 잘 된다고 키에르케고르는 주장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p48,49 中에서)

걷는 일 자체를 즐기는 철학자답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혼자다. 그 혼자인 것을 감당하지 못해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는 혼자인 것을 즐기는데..... 방법이란 없고, 단지 내 마음이다.

때로는 의도적인 사람의 만남에는 피로감이 쌓이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서 젊은이들이 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적당한 소음은 경직된 우리의 뇌를 이완시키기도 한다.

사소하고 우연한 것을 만나기엔 걷는 일 만큼이나 좋은게 있을까?!!!

 

요즘은 아주 짧은 거리도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 차가 우리의 발이다. 편함이 길들여졌다.

걷기는 건강과 운동을 위한 소기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의『고백론』에 나오는 말인데, 오늘날 바삐 움직이는 시대에 회복해야 될 과제라 생각된다.

 

 

 

l*****5 2019.04.08.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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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원제로 했으면 더 좋았을.
"제목을 원제로 했으면 더 좋았을." 내용보기
번역의 문제일까 문체의 문제일까아니면 단순히 겨울잠이 오는 시즌이라서일까..읽는 내내 많이 졸렸던 것도 사실. 그리고 1장에서는 솔까말. “아. 잘못 샀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2장을 넘어가면서 책의 구조가 그제사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흥미진진해진다.그리하여. 1장만 읽다말고 중고서점으로 갈 뻔 했던 이 책은, 내방 책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그나저나
"제목을 원제로 했으면 더 좋았을." 내용보기
번역의 문제일까 문체의 문제일까
아니면 단순히 겨울잠이 오는 시즌이라서일까..
읽는 내내 많이 졸렸던 것도 사실.
그리고 1장에서는 솔까말. “아. 잘못 샀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2장을 넘어가면서 책의 구조가 그제사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흥미진진해진다.
그리하여. 1장만 읽다말고 중고서점으로 갈 뻔 했던 이 책은,
내방 책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

그나저나. 이 책은 책 제목이 ... 왜 하필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어야만 했던걸까..
그냥 원제의 부제만 직역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A history of walking “ 이라고.
그것이 가장 적당했을 것 같은데.
a******m 2017.12.1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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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일은 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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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사람은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은 실입니다. 그러므로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그래서 걷는다는 것은 짲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걷기와 사유의 방법은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순례로서 종교와의 연관을 다룹니다. 걷기가 축소되어가는 오늘날의 변화로 뭘 앚고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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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사람은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은 실입니다. 그러므로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그래서 걷는다는 것은 짲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걷기와 사유의 방법은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순례로서 종교와의 연관을 다룹니다. 걷기가 축소되어가는 오늘날의 변화로 뭘 앚고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며,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 풍경의 한 부분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a 2022.09.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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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인문학을 걸어서, 『걷기의 인문학』 독서후담
"오늘도 인문학을 걸어서, 『걷기의 인문학』 독서후담" 내용보기
"몸은 돌아다니기에 알맞게 생겼다."    p.29  걷기에 대한 상념을 읽게 되려니 했었다. 흙길을, 숲길을, 호숫가를, 해변을 거닐며 품고, 키우고, 바라고, 버릴 수 있었던 여러 생각, 그것을 읽고 공감하고 갸웃하고 질투하게 되려니 했었다. 리베카 솔닛이 어떻게 책을 엮었는지 (출판사에서 어떤 배짱으로 『걷기의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보자. 인류의 직립보행을 탐색한다.
"오늘도 인문학을 걸어서, 『걷기의 인문학』 독서후담" 내용보기

"몸은 돌아다니기에 알맞게 생겼다."    p.29

 

걷기에 대한 상념을 읽게 되려니 했었다.

흙길을, 숲길을, 호숫가를, 해변을 거닐며 품고, 키우고, 바라고, 버릴 수 있었던 여러 생각, 그것을 읽고 공감하고 갸웃하고 질투하게 되려니 했었다.

리베카 솔닛이 어떻게 책을 엮었는지 (출판사에서 어떤 배짱으로 『걷기의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보자.

인류의 직립보행을 탐색한다. 먼 옛날 사람들의 성지순례를 추적한다. 귀족들의 정원과 미로를 구경하고, 루소와

키르케고르와 윌리엄 워즈워스를 불러낸다. 걸음으로 만들어진 문학과 예술을 탐하고, 광장과 혁명을 기억하며, 밤거리의 여자들을 호명한다.

자, 호젓한 산책, 이국적인 풍경을 기대하셨는가. 그렇다면 조금 더 가벼운 책으로 다시 찾아보시는 게 좋겠다.

그런 기대가 아니었다면, 혹은 (나처럼) 모른 채 고르긴 했지만 이참에 ‘걷는 세상’을 흘깃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다.

‘인문학’이라는, 독자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마땅한 단어를 제목으로 붙인 자신감에 공감한다. (원제는 Wanderlust: A History of Walking로 wanderlust는 방랑벽을 뜻한다. 좋은 단어다.) 걷기의 역사, 철학, 인물, 문학, 정치, 성性적 폭압까지를 담고 있으니 가히 그럴법하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인간의 직립부터 살펴본다. 1991년 파리에서 열린 ‘이족보행의 기원 컨퍼런스’에서 학자들로부터 제기된 직립보행설이 흥미롭다. 배달 가설, 까꿍 가설, 바바리맨 가설, 꽁무니 졸졸 가설, 뜨거워도 좋아 가설 등.

독서의 명백히 선한 기능, 똘똘한 독자를 길러낸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까꿍, 뜨거워도 좋아가 마음에 든다.

밤거리의 여자들, 같은 곳의 남자들에게 붙여진 이름들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해서 이전의 삶으로부터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행동하지 않는다 해도 ‘알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 ‘알게 된 것’들은 방향을 일러준다. 다른 용감한 이들, 정의로운 이들이 향해있는 곳을 조용하게, 하지만 결코 사라지는 법 없이 계속하여 보여줄 것이고 독자는 책을 읽게 되어 버린 순간부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구속감과 책임감과 의무감에 이끌려 나는 계속하여 책을 읽는다. 그럼에도 행동하지 않는 자책감은 온전히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지식과 정보만으로 엮인 것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어찌나 많던지, 접어둔 모서리가 많아 듬직하니 맵시 있던 책의 몸매가 기형적으로 변해버렸다.

- 두 발로 걸을 때 시간 감각이 더 품위 있어진다는 것, 두 발로 걸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공간의 감각이 있다는 것, 걷는 사람에게는 모든 곳이 연결돼 있다는 것(p.26)

 

-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한다는 것이 보행과 생산적 노동의 공통점이라는 것(p.57)

 

- 글을 쓰는 일은 상상의 영토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 혹은 익숙한 길 위에서 새로운 면들을 가리켜 보이는 일이라는 것, 그리하여 한 편의 이야기와 한 번의 여행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p.121)

 

- 보행은 소유와는 상반된다는 것, 아무것도 가져지지 않는 경험이라는 것(p.264)

 

- 나란히 걷는다는 이 섬세한 행위는 두 사람이 감정적, 육체적으로 한 편이 되는 방법이라는 것, 함께 걷는 행위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는 다르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가장 비슷하여 (…) 함께 있음을 한껏 누릴 수 있다는 것(p.372)

 

- 사람들이 안 걷게 됨으로써 생각과 연애와 몽상과 구경이 펼쳐지던 자유분방한 사색의 시공간이 이제 없어져버렸다는 것(p.414)

몇 번을 되읽은 문장이 있다. 루소의 것.

“나를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지게 해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많은 유려한 문장들, 파동을 일으키는 상념들 중 어찌하여 저 한 줄에 사로잡히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가 될까.

내가 홀로 걷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동의나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 그저 길 위로 올라 걸으면 되는 것이다.

곁에 누구도 없으니 리듬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 말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그러니까 홀로 걷는다는 것은 내게 안전한 시간,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인 것이다.

고로, 걸음으로써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질 수 있다는 루소의 만족은 나에게는 상관되지 않는 문장인 것이다. 존재들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것, 걸음이 놓이는 순간순간의 작은 공간에 발 딛는 것, 그것이 걷기로부터 내가 얻는 만족과 위안이니 어찌하여 저 문장에 자꾸만 메이게 되는 것인지 알지를 못하겠다.

이유가 있겠으나, 애써 찾아 나서지는 않기로 한다. 후에, 곁의 존재들이 안전함이 되는 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일단 지금은 그냥 길 위를 홀로 걸으며 ‘안전하군’ 하는 것으로 안전하지 않은 마음을 토닥이기로 한다. 어느 날, 루소의 저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 될지라도.

 

 

 

m******6 2020.03.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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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취미라 처음으로 읽은 리베카 솔닛 책입니다. 걷기란 무엇인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통찰하고 걷기에 부수되는 거리라는 공간을 통찰하며 사유를 이끌어내는 리베카 솔닛 특유의 글쓰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종종 다시 읽어보는데 여전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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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취미라 처음으로 읽은 리베카 솔닛 책입니다. 걷기란 무엇인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통찰하고 걷기에 부수되는 거리라는 공간을 통찰하며 사유를 이끌어내는 리베카 솔닛 특유의 글쓰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종종 다시 읽어보는데 여전히 좋아요.
b********7 2024.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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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이 생명을 가진 것처럼 한없이 뻗어나간다. 이 책도 걷기를 주제로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솔닛의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솔닛이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한국 이야기를 다뤄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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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이 생명을 가진 것처럼 한없이 뻗어나간다. 이 책도 걷기를 주제로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솔닛의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솔닛이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한국 이야기를 다뤄주면 좋을 텐데.
p*****7 2023.1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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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다. 노래의 작은 패시지, 노상의 작은 패시지, 인생 사의 작은 패시지, 그리고 책 속의 작은 패시지에서 그 역사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육체적 보행의 역사는 직립보행과 인체 해부의 역사다. (-17-)         조이스의 소설 『율리우스』 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부인』 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 뒤죽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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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다. 노래의 작은 패시지, 노상의 작은 패시지, 인생 사의 작은 패시지, 그리고 책 속의 작은 패시지에서 그 역사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육체적 보행의 역사는 직립보행과 인체 해부의 역사다. (-17-)

 

 

 

 

조이스의 소설 『율리우스』 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부인』 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뭉쳐 있는 생각들, 기억들은 그들이 길을 걸을 때 가장 잘 풀려나온다. 바꾸어 말하면,보행이라는 비 분석적, 즉흥적 행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유는 이런 비체계적, 연상적 유형의 사유다. (-44-)

 

 

 

 

핵전쟁과 공산주의의 공포가 대부분의 미국인을 순응과 탄압의 참호로 몰아넣던 시대,미국 역사에서 가장 음산했던 시대, 평화에 찬성을 표시하는 것도 영웅적 용기가 필요하던 시대였다.길을 떠난다는 것, 1953년 첫날의 평화 순례자처럼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주머니의 "빗, 접는 칫솔, 볼펜, 자기 글, 쓰던 편지" 외에는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녀가 화폐 경제에서 이탈한 것은 경제 호황의 시대, 자본주의가 자유의 성체(聖體) 로 모셔지던 시대였다. (-99-)

 

 

 

 

자기가 걸어가는 곳과 자신의 상상을 겹쳐봄으로써 그야말로 상상 속 영토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미국 목사이자 보행광 존핀레이(John Finlay) 가 친구에게 쓴 편지를 보아도 알 수 있다."내가 혼자 하는 놀이가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매일 이곳을 걸으면서 그 거리만큼 지구상의 어딘가를 걷는 놀이입니다.지난 6년 동안 거의 3만 2000 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지구의 육지 부분을 한 바퀴 돈 셈입니다. 1934년 1월 1일부터 어젯밤까지는 약 32,000킬로미터를 걸었으니,북극에서 밴쿠버까지 걸어간 셈입니다. 나치 건축가 알베르트슈페어는 키르케고르와 그의 아버지처럼 교도소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상상으로 세계를 한 바퀴 돌았다. 잉글랜드 시골에서 1년 간 살다가 맨해튼으로 돌아온 미술 평론가 루시리파드는 자기 생활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과였던 산책을 맨해튼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나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일종의 육체 이탈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날씨를 느끼고,질감을 느끼고, 풍경을 느끼고,계절을 느끼고, 야생의 것들을 만났다. " (-129-)

 

 

 

 

떠돌이 인물은 워즈워스와 같은 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작품에서 걷기는 재미와 모험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과 생존을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공유지를 제공했다. 잉글랜드 문화에서 걸어가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모두에게 대체로 평등하게 환영받는,흔치 않은 무계급적 활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잉글랜드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184-)

 

 

 

 

캠벨이 걷는 이유는 많은 경우 명분 있는 모금을 위해서였다. 그 점에서는 걷기 마라톤 참가자들과 비슷한 데가 있다.(캠벨이 스태프 인건비, 홍보비 등 종종 크게 불어나는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서 명분을 물색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하루에 80키로미터를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또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음습한 날씨에 황량한 도로를 날마다 그렇게 걸어서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을 도파한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다.그 일을 캠벨은 해냈다. 95일 만에 5000키로미터 오스트레일리아 횡단에 성공한 것은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녀의 두 다리는 목표를 향해서 가차 없이 매진하지만, 그렇게 걸은 후에 남는 것은 걸었다는 사실 밖에 없다. 아름다운 풍경도, 즐거움도 업소, 사람들과의 만남도 거의 없다.12만 80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그녀의 목표는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두 발로 털어내고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지만, 그녀가 자기의 가치를 설파하는 대목들은 걱정스러우리만치 불투명하다. (-216-)

 

 

 

 

처음부터 시에라클럽에는 여러 가지 내재적 모순이 있었다. 뮤어를 비롯한 창립자 일부는 산에 가다 보면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산을 사랑하다 보면 산을 보호하는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에서 시에라클럽은 등산과 자연 보호가 결합된 단체로 출범했다. (-246-)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보행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나서는 역사이자 즐거움의 의미를 정의하는 역사였다.그러나 시골에서의 보행은 자연을 행한 사람을 도덕적 당위로 삼으면서 시골 땅을 보호하고 시골 땅의 울타리를 부술 수 있었던 반면에, 도시에서의 보행은 언제나 비교적 그늘진 행동이었다. 도시 보행은 호객, 크루징, 산책, 쇼핑, 폭동, 시위,도망, 배회 등, 아무리 즐거워도 자연을 향한 사랑 같은 고고한 도덕적 울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행동들로 쉽게 바뀐다. 그러니 도시 공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런 주장을 펴는 얼마 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도시 이론가들조차 보행이 공공장소를 사용하고 공공장소에서 거주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라는 점을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281-)

 

 

 

 

실비아플레스(Salvia Plath) 가 그 이유를 일기에 적은 것도 열아홉 살 때였다."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길에서 일하는 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 습격 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74-)

 

 

 

 

여자들은 공공장소에 있는 동안 사적인 부분(private parts) 을 침해당하는 일이 놀라울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 영어에도 여자의 걷기를 성별화하는 표현이 많다. 창녀를 뜻하는 표현으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streetwalker),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ssts),도심의 여자 (woman on the town),공공의 여자(public woman)등이 있다. (-375-)

 

 

 

 

라스베이거스 도심은 한때 철도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기차로 도착한 사람들은 카지노와 호텔이 밀집해 있는 지역인 '반짝이는 협곡(Glitter Gulch)'까지 걸어간다는 생각에서였다. 미국 여행자들이 기차 대신 자동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도심의 초점이 이동했다. 1941년,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91번 고속도로 변(지금의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최초로 카지노 호텔 단지가 들어섰다. 오래 전에 그곳을 지나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연례 반핵 집회에 참여하라고 네바다핵실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잠이 들었다가 우리가 탄 자동차가 스트립에서 정지 신호에 걸리는 바람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네온의 꽃밭, 네온의 덩굴 숲이 펼쳐져 있었고,네온사인 글자들이 춤을 추기도 하고 방울방울 흐르기고 하고 폭발하기도 했다. (-445-)

 

 

 

 

리베카솔닛(영어: Rebecca Solnit, 1961년 6월 24일 ~ )은 미국의 저술가, 비평가, 역사가, 여권 운동가이다. 1980년대부터 환경, 반핵, 인권 방면으로 다양한 사회적 운동에 참여해왔다. 그녀의 특별한 저서 『걷기의 인문학』 는 1990년대에 쓰여진 책이며, 지금처럼 걷기 열풍이 대한민국에 불기 전에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걷기를 통해서,철학과 사유,사색과 평화를 얻는다.걷기 순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걷기는 800km 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이 책에는 걷기의 효용가치 뿐만 아니라 걷는 문화 속에 숨겨진 사회적 차별과 혐오,여성 인권까지 훑어 나가고 있었다.여기서 걷기는 단순히 직립 보행하여,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시골길은 자연 속에서 걷는 숭고하고, 경이로운 변화,활동이다.자유와 고독,평화는 걷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걷고 싶다고 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걸으려면, 목적과 의도가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 여성의 걷기는 타인에게 시선이자. 차별과 혐오,유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빌게이츠는 걷기 주간을 적극 이용하여, 다음 해 사업을 구상하였으며, 칸트는 정기적으로 걷기를실행함으로서, 철학적 사유를 얻었다. 즉 걷기는 느리지만 깊은 생각하고, 생각을 비우는 동시에 철학적 사유와 영감을 얻는다. 소설가 무라카미하루키가 마라톤과 걷기예찬론자인 이유도 그러하다. 21세기 현대에 들어와서 걷기는 적극적 사회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걷기를 통해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면서, 공동체 간의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만든다.걷는 것이 단순하게 서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평화를 적극 홍보하는 동시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피오나 캠벨(Flyona Campbell)은 5000km이상의 걷기를 통해서,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으며, 6년 동안 32,000km의 거리를 걸은 이도 있다. 걷기의 역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이며,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인간의 도시는 걷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도시가 설계될 수 있었다.

이달의 사락 k*******2 2023.05.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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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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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들었던 10년 전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불안이 떨쳐질까 해서였다. 그 후로도 나는 자꾸 이 길로 돌아왔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도 아무것도 생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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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들었던 10년 전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불안이 떨쳐질까 해서였다. 그 후로도 나는 자꾸 이 길로 돌아왔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도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고 할까. 수년간 걷기를 다른 일의 수단으로 삼아왔던 내가 걷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에베레스트 산 초기 등반자 둥 하나였던 존 노엘(John Noel) 대장이 기록해놓은 티베트의 한 순례 방식은 그것보다도 훨씬 힘들다. "이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때로 중국과 몽골에서부터 찾아온다. 3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몸으로 재는 방식, 바닥에 완전히 엎드린 상태로 손라락으로 머리 위쪽에 표시를 하고, 몸을 일으켜 표시된 자리에 발가락을 갖다놓고, 다시 바닥에 얼굴을 대고 양팔을 뻗으면서 이미 100만 번은 읊조렸을 기도문을 다시 한 번 읊조린다.

 

"순례자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를 느끼는 방식 몇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는데, 그 변화는 여정 내내 이어진다. 시간 감각이 바뀌고, 오감이 예민해지고, 자기 몸과 자기 몸을 둘러싼 자연경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다. 그것을 한 독일 청년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걷는 경험 속에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순례길에 나선다는 것은 가족 관계, 애착 관계, 지위, 의무와 같은 자신의 복잡한 세속적 자리를 뒤로하고 일개 순례자로 걸어간다는 뜻이다. 순례자들 사이에는 서열이 없다. 은총과 헌신의 서열이 있을 뿐이다. 터너 부부는 순례를 경계선 상태(Liminality)라 말한다. 과거 정체성과 미래 정체성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상태, 따라서 기성 질서 밖에 있는 상태이자 가능성의 상태이다.

 

그 뒤로 28년 동안 온갖 날씨 속을 걸으면서 미국 모든 주와 캐나다 모든 도와 멕시코 일부를 지났다. 순례를 시작할 당시에 이미 중년의 나이였던 그녀는 항상 군청색 바지와 셔츠에 테니스화 차림이었다. 그녀는 순례하는 내내 그 간소한 복장으로 분보라와 비바람, 혹독한 모래 폭풍, 뙤약볕에 맞닥뜨리면서 공동묘지나 도떼기시장이나 건물 바닥에서 잤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파에서 잠을 청한 날도 수없이 많았다. 길을 떠난다는 것, 1953년 첫날의 평화 순례자처럼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주머니이 ", 접는 칫솔, 볼펜, 자기 글, 쓰던 편지"외에는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녀가 화폐 경제에서 이탈한 것은 경제 호황의 시대, 자본주의가 자유의 성체로 모셔지던 시대였다. 그녀는 일평생 돈을 들고 다닌 적도 없었도, 돈을 사용한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물질적 소유라는 것이 없다. "나는 참 자유롭습니다! 떠나고 싶으면 일어서서 걸어 나가면 됩니다. 나를 한자리에 묶어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갔다. 가끔 누가 차를 태워주면 탔고, 모르는 사람이 집에서 재워주면 잤다. 여관에서 자기도 했고, 헛간에서 자기도 했고, 전시용 이동식 주택에 몰래 들거가 자기도 했다. 걸은 일, 고생, 소소한 만남, 풍경의 파편 등을 띄엄띄엄 적은 이 글에는 그 자체로 헤어초크 영화의 줄거리 같은 정교한 판타지들이 고생스러운 여정 묘사에 섞여 들어가 있다. 길을 나선 지 나흘째 되는 날, "똥을 누고 있었는데 아무 사전 경고 업시 팔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산토끼가 나타났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페일 브랜디가 사타구니에서 왼쪽 허벅지로 흘러내려 쓰라리다. 걷는 것은 왜 이토록 비통한 것인가?"

 

믿을 만한 자료를 토대로 계산해 본 결과 워즈워스는 바로 이 다리로 282000~29만 킬로미터를 답파했다. 포도주나 독주 같은 것으로 혈기를 얻는 다름 사람들과 달리 워즈워스는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혈기를 얻었다. 워즈워스 자신이 구름 한 점 없이 행복한 인생을 영위해온 것도, 우리 독자들이 워즈워스의 글 중에서도 아주 탁월한 글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사람들은 워즈워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걸었다. 다른 낭만주의 시인들 중에서도 걸어서 여행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워즈워스만큼 걷은 일을 인생과 예술의 중심에 놓은 이는 그 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결코 짧지 않은 인생에서 그가 걷지 않고 보낸 날은 거의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보행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인 동시에 시를 쓰는 방식이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50년 동안은 시를 쓰기 위해 작은 정원 테라스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언제자 걸었다. 밤에도 걸었고, 아침에 학교를 가기 전에 한 친구와 함께 근처에 있는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5~10킬로미터를 걷는 날도 많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0.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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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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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책의 부제처럼 걷는다는 것은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책값이 비싸지만 리베카 솔닛의 글이라 읽지 않을 수 없어 구입했다 솔닛의 다른 책도 다 읽었다 걷는 데는 계급이 없다는 구절이 참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걸을 땅을 확보하는 일은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어왔다는 구절이 나온더 그리고나서 다음엔 이런 말도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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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책의 부제처럼 걷는다는 것은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책값이 비싸지만 리베카 솔닛의 글이라 읽지 않을 수 없어 구입했다 솔닛의 다른 책도 다 읽었다 걷는 데는 계급이 없다는 구절이 참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걸을 땅을 확보하는 일은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어왔다는 구절이 나온더 그리고나서 다음엔 이런 말도 나온다 보행은 땅을 소유하는 대신 땅을 경험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읽는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5*****h 2019.07.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