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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유명해지기 전에 아주 멋진 서재를 갖기를 꿈꾸었다. 특히 거대한 책상을 갖기를 원했는데 『캐리』이후 연이은 히트에 힘입어 자신이 꿈꾸던 서재와 책상을 갖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큰 책상에서 글이 더 잘 써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서재의 반을 차지했던 책상을 버리고 가난했던 시절보다는 약간 큰 책상을 쓰고 있다. 디드로는 우아하고 멋진 붉은 색의 외투를 친구로부터 선물 받았다. 그러고 나서 거기에 어울리는 책상으로 바꾸었다. 당연하게도 그 다음에는 벽걸이와 가구, 그리고 모든 인테리어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는 느꼈다. 자신이 물건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행복이란 물건들에서 오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건을 필요에 의해 구입하지 않고 사회적 위치나 체면을 고려해 사는 행위를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이 효과가 극대화되면 사람이 물건의 주인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의 주인이 된다. 이번 구제역 사태로 많은 차량들이 이동할 때 소위 방역테러(?)를 당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방역에 협조했고 일반 차량 운전자들은 공무원들의 노고와 농민들의 시름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외제차를 비롯한 고급 차량 소유자들은 이 방역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차가 상한다며 오히려 공무원들을 훈계까지 하는 살뜰함(?)을 보여 주었다. 아마도 소독액이 자신의 차에 접촉하는 순간 흡사 자기 몸에 뜨거운 물이 닿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을 우리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저 멀리 보이는 것들 중 단연 두드러진 크기로 보아 왜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는지 짐작이 갔다. 속속들이 철저하게 쇠붙이인 이 기중기에 어떻게 눈물이라는 단어가 붙여진 걸까. 이 기중기는 원래 스웨덴의 말메란 곳에 있었다고 한다. H조선소는 이 기중기를 단돈 1달러에 구입했다. 그 거대한 기중기를 어떻게 운반했는지 생각만 해도 고단하다. 스웨덴에서 울산까지 멀고 험난했을 여정이었을 것이다. 운반 비용에만 막대한 금액이 들었을 것이다. 그 기중기가 떠나던 날, 말메의 모든 시민들이 그곳에 나와 그 기중기를 환송했다. 많은 이들이 울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말메의 눈물.」 〈말메의 눈물〉『왈왈』 하성란은 〈말메의 눈물〉같은 이야기를 2009년 일 년 내내 신문에 연재했다. 나는 그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보기 전까지 그녀의 글을 보지는 못했지만 650자로 이루어진 글을 날마다 연재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지는 직접 보지 않고도 눈에 선하다. 물론 모든 글이 전부 다 훌륭하지는 않지만 거의 날마다 일기처럼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퀄리티가 있다. 아! 우리의 2009년이 이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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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후 하성란 작가의 첫 산문집. 그러니까 14년만이겠다. 왈왈(曰曰)이란 제목에, 자필 사인과 함께 귀여운 개 한 마리가 왈왈 짖고 있다. 2009년, 그녀가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왈왈>. 예전부터 이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내 기억으론 성석제 작가를 시작으로 김영하, 이기호, 김종광 작가 등이 연재했던 칼럼이다. 650자라는 정해진 분량에, 하루하루 단상을 담는다는 게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터. 이 책에 실린 278편의 글이 내겐 색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누가 듣든 듣지 않든 개의치 않고 쉬고 작은 목소리나마 제 목소리를 내려 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쉽게 씌여졌다. 지금껏 소설을 통해 만난 하성란 작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연인 하성란에 가까운 글인셈. '길 위의 이야기'라는 칼럼 특성상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편에 실린 '딱딱해진 말들에게'에서 친정 엄마가 작가에게 묻는다.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작가, 맏딸로 태어나 12살 터울의 남매를 키우는 가정 주부, 출판기획사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는 커리어우먼... 하성란 작가의 2009년, 일상의 단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꽤나 세밀하게, 진중하게 펼쳐질 그녀의 글들을 준비하고 있다가, 온몸이, 머릿속이 편안하게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좋은 배신감이랄까? 으레 소설가의 산문집하면, 김훈, 김연수, 윤대녕 작가에게서 보듯이 생의 통찰과 자연인으로서 일상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김연수 작가가 말했듯이, 소설적 자아와 자연적 자아의 분리라고나 할까? 난 이러한 작가가 부려놓는 일상의 단상이 더욱 따뜻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왈왈>은 한발 더 나아간다.
여타 작가들의 산문집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650자라는 한정된 분량에 일상의 단상을 담아야 하고, 나름의 통찰을 적시해야 하며, 또 본능적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왈왈>은 쉽게 씌여졌지만, 결코 쉽게 쓸 수 없는 글들의 조합이며, 자연인 하성란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통찰을 담고 있다. 유해사이트에 몰래 접속한 남편 이야기며, 급격하게 변모한 홍대의 일상이며, 다양한 작가들(특히 김별아, 박성원 작가가 자주 등장한다. 김주영 작가도...)과의 만남과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그것이다.
남편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삶, 해외 심포지엄이나 문학 답사길에서 만났던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자로서의 삶, 큰 딸과 교감하는 학부모로서의 삶, 그리고 여전히 핸드폰 메시지로 '연락 바랍니다'를 보내는 아버지와 넉넉한 풍채와 마음씨를 자랑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살아가는 맏딸로서의 삶이 들어있다. 또한 한 해의 이슈가 될만한 내용들(세태, 트렌드,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책과 작가, 주택과 교육 문제 등)도 특유의 넉넉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 TV 프로그램의 책 관련 진행자(소설가가 소설가에게 들어보는 작품 이야기?)로서도 활동한 그녀. 군대 도서관을 오가며 손때를 묻혔던 소설 속 그녀의 사진은 절로 '미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특히 최승자 시인과 하성란 작가에 열광했던 군대 동기가 있어, 진지하게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내 '미인이 쓴 글이라 역시 달라'라는 진부한 농담으로 삼천포행을 달려갔었다. '루빈의 술잔', '식사의 즐거움', '웨하스 의자'를 읽으며 하성란만의 세련된 문체랄까?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색다른 글맛을 전해주는 작가란 인상이 굳어졌다.
아직까지 A는 내게 오지 않았다.
얼마 전 오랫만에 장편을 발표한 그녀. 사실 난 출발부터 기분이 좀 상했다. 어쩌면 내게 Must have에 해당하는 그녀의 작품인데, 온라인 서점에서 이벤트 상품으로 뿌려지는 것이 못마땅했다. 물론 구입은 해놓았지만, 그녀가 잊혀질 때 즈음 꺼내 읽으려 나름 간직하고 있는 책이 바로 <A>다. <왈왈>이 출간되어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지만...
누구에게나 의미있을 법한...
기록의 힘을 누구보다 믿는 1인이다. 요즘 들어 관음증적 호기심이 아닌, 한 인간의 삶(아니 작가의 삶)을 기록한 일기가 끌린다. 김연수 작가는 정말 실패한 인생이란 가짜로 산 인생을 꼽는다. "소설가의 관점이라서인지 몰라도 제가 제일 경멸하는 책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에요. 그들은 실제로도 자기가 자서전에 써 있는 대로 살았다고 믿어요."<진심의 탐닉, P27>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란게 대부분 대필이고, 작가의 성향에 따라(거의 100%에 가깝지만) 허풍과 과장이 가미될 수 있다. 허나 팩트까지 거짓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물론 과정을 중시하는 김연수 작가 특유의 성향이라곤 하지만...
각설하고, 최근에 읽었던 열린책들 대표인 홍지웅의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2004년 한 해 동안의 일기 모음)와 같이 한 해에 대한 일기를 정리하는 것. 물론 형식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스스로의 잣대에서 하루하루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반성을 담보한다는 속성에서 볼 때 일기가 좋겠지만, 시시콜콜한 개인의 단상이라도 그 안엔 오롯이 자신만이 살아온 생이 있는 법이니까.
650자의 본능적인 짖음을 따라가며
일상의 단상이란 이름으로 시작하겠지만, 나 또한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싶다. 가식적이지 않은,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글 말이다. 하성란 작가가 거닐던 거리, 그 속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 기억에 대한 기록이 탐스럽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기억의 총합이다'란 경구가 있듯, 나도 지금 두 발 내딛고 선 이 자리에서 스쳐가듯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내 생각을 감히 짖고 싶다. 물론 650자의 본능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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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을 통해 여성작가 하성란을 처음 만났다. 나름 책을 많이 읽는 축이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이 책의 표지를 여는 순간부터 절망했다. 하성란 작가는 어늘 날 우연히 나타난 작가가 아니라 무려 15년 동안 끈임없이 활동을 해온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작가중의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산문집을 읽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아무리 창조력이 뛰어난 작가라도 산문집에는 작가가 쓴 소설과는 또다른 참된 진실이 숨겨져있고 작가의 일상과 깊은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왈왈]이라는 하성란 작가의 산문집도 이런 의미에서 무척이나 읽고 싶었고,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지루함이란 없었다. 산문집은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지루한 면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작가의 650자 본능 때문이었는지 짧으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들로 담겨져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것은 마치 큰 언니와 쉴새없이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것이다. 작가라서 너무나 특별한 경험담을 담아놓은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또한 나이가 든 여자로서의 삶을 언니가 동생에게 우스게소리처럼 들려주지만 결코 쉽게 지나칠수 없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듣는 감정이었다.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슬프지만 결코 절망할 수 없게 만드는 마치 세레라자드의 천일야화 처럼 지루하지 않고 너무나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2009년 한해 동안 하루하루 썼던 것처럼 하루 하루 이야기를 읽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언니를 만나것 같은 기분이 드는것은 그만큼 책속에 솔직한 작가의 감정과 일상이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속에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가족이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못하는 사는 우리들처럼 작가 또한 그런 이야기들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릴정도로 언니와 수다를 떨고 난 느낌이다. 그래서 왠지 더욱더 기운이 셈솟는 그런 책이다. 650자 속에 담겨져 있는 따뜻한 이야기는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내가 읽어본 650자중에 가장 의미있는 650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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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작가의 글은 처음 읽어본다. 표지와 표지 뒷쪽의 긴머리의 귀여운 인상의 사진이 바로 작가 하성란인가 보다. 표지에서 수줍게 웃고있는 긴머리 여성을 누가 중년으로 볼까. 얼핏보면 아직 삼십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도 사십대 중년 여성이다.
글에서도 그녀가 중년임을 느낄수 있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여자로서.. 자신이 구상한 작품(소설)이 아닌, 산문에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아주 진솔하게 쓴것이다. <등단 15년 만에 내놓는 하성란의 첫 산문집> 이라는 부제에 끌려 책을 선택한 사람중에는 혹여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별 가식없이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드러내기가 더 어려운일 아닐까. 소설을 화장기 있는 얼굴이라고 한다면 하성란의 <왈왈>은 화장기 없는, 요즘말로 쌩얼이라고 할수 있겠다. 사실 쌩얼은 자신의 피부에 웬만큼 자신있어야 남들앞에 내놓게 되는것이다. 그런점을 생각한다면 하성란의 <왈왈>은 바로 작가의 개인적인,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보여준다고 할수있겠다.
아이가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는데도 아이에게 더 이상 네일이 아니면 끼어들지 말라고 말한 저자는 그저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어두운 강남의 밤거리에서 젊은이 전용 클럽의 전단지를 받고 뛸듯이 기뻤다는 그녀는 누가 무어라 해도 젊어보이고 싶은 중년여성일 뿐이고.. 라면집에서 라면이 나오기를기다리면서 벽에 붙여진 메모지에 대한 얘기도 재미있다. 메모지에 써있는 가장많은 내용이 <사랑> 에 대한 것이었다는데..그 자리에서 저자는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을뿐 바람 빠지는 풍선 같은 소리를 냈다고 하였다. 자신도 한때 사랑으로 가슴 셀레던 날들이 있었고,예전 같으면 끼적끼적 어딘가에 낙서를 붙이고 왔을거라고.
하성란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 이 책에서 저자는 소소한 일상외에 중년 여성 작가인 자신의 정신세계도 솔직히 드러냈다고 보여진다. 너무 달착지근하지 않은 하성란 특유의 문체가 자꾸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 있다. 웬지 전에 내가 빠져들었던 작가 박** 선생님의 글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자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면서 작가도 우리와 같은 생활을 하고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오래전부터 하성란 작가와 친근한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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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여 오랜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끄집어내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그러다보니 깊숙한 마음, 조심스레 다 내어놓고 서로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 웃고 인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어느정도 거리낌이 있던 동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네들의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을 듣고 내 이야기를 꺼내는 도중 혹시라도 남아 있었던 부끄럽고 솔직하지 못한 마음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친구들이 더 좋아졌다. 솔직하고 서로 친하지 못해서 더욱 즐거운 이야기자리였다. 어느 날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좋아할 수 있었던 소설가 하성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즉, 하성란 산문집 ’왈왈’을 통해서 그녀의 일상적인 소소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는데, 친구들과 오랜 수다를 떨었는 것처럼 너무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생각을 엿보는 것 같아 장난꾸러기마냥 웃었다. 그녀의 이야기 중에 ’관음증’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 단어가 꼭 내 행동을 가리키는 것 같아 뜨끔했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서 하성란 작가 역시 독자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 드러난 생각을 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편히 내쉴 수 있었다. 한쪽짜리 이야기들이 그렇게 작게 내 머릿속을 건드리고 있었다. 하성란의 왈왈은 개가 짓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중간쯤이었는데 소설 전체를 대표하는 듯한 소리가 덜컥 개소리로 전락(?)해버리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 작은 에피소드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은 하성란의 왈(曰) 소리를 담아 진행되었는데, 소설가로서의 그녀의 삶과 아내와 어머니 또는 여자로서의 그녀의 삶이 한데 뒤섞이어 전개되니 그녀의 이야기가 매우 진솔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가다가도 한 토막, 공부하다가 지루해 눈이 감길 때도 한 토막씩 주워주워 그녀의 이야기를 다 읽었다. 라디오의 한자락을 들은 것 처럼 내 머릿 속은 그녀의 사연 천지다. 하성란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했다.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작은 단편들을 통해서였고, 그 다음은 프랑스 동화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다. 그녀는 이를 소재로 그녀만의 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를 썼다. 그 다음이 최근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된 ’A’를 통해서였는데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달리 나는 그 소설을 굉장히 인상깊게 보게 되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그녀의 소설이 느리게 혹은 빠르게 읽히는 점이 너무 재미있었고 이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유려하고 풍부하게 써냈다는 점이 멋지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하성란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이렇게 그녀의 생각과 삶의 일부를 솔직하게 담은 산문집을 읽게 되어 좋았다. 차츰 그녀의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소설가 하성란의 진면목을 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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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성란의 글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다. 최민식 작가와 같이한 사진책에 실린 짧은 글들에서 받은 강렬함이 상당히 인상 깊게 느껴졌기에 그 후로 그의 작품들을 읽어오고 있다. 그래봤자 단편 소설 몇 편을 읽었을 뿐이고, 얼마전 발표한 장편 A는 구입만 해 놓은채 아직까지 펼쳐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던중, 그녀의 첫 번째 산문집이라는 왈왈을 접하게 됬다. 曰曰이라는 제목에서 작가의 소소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의미도 있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개가 짓는 소리를 뜻하는 왈왈 이기도 했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2009년 1월 19일부터 1년 가까이 한국일보에 '길 위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묶은 책이다. 1년 이라는 시간동안 매일매일 신문에 써온 글이기 때문에 중간 중간 중복되는 표현과 시리즈 형식의 글들에서는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되어지기는 하지만 연재물이라는 특성을 빌리자면 어쩔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담하고 가벼운 책의 느낌이 좋았고 책의 절반쯤을 읽어서야 비로서 알게된 글자 색의 배합이었다. 두가지 색으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글자의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편집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요즘은 정말 내용도 중요하지만 포장도 그에 뒤지지 않게 중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평범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 이기에 꽤나 특별하고 독특할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칫 실망하기도 쉽다. 그저 나와 비슷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그 평범함이 편안함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한번 정도는 내가 겪었을 일들과, 내가 고민하는 부분들에 대해 공통적인 것들을 만나게 되면 반가워지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 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가장 좋았던 부분은 크게 포장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평범함 때문이다. 요즘 민낯 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화장발에 반대되는 표현으로 민낯이 고운 연예인들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작가 또한 크게 포장하지 않은 채 자신의 민낯을 과감히 공개하는 모습이 때로는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다. 일간지에 매일 실린 글의 특성상 650자 안팎이라는 지면의 제약을 받는다. 하고자 하는 말들을 충분히 할수는 없었겠지만 정해진 틀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은 작가의 권한이자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650자의 압박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지하철에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멀쑥해졌던 일들. 츄리닝에 모자를 눌러쓴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이엑 본의 아니게 유괴범으로 몰렸던 일들. 작가 김별아 와의 조금은 특별한 관계. 흡연으로 인한 가족과 주변인으로부터의 압박등.. 신변잡기에 가까운 글들에서 작품속에 투영된 하성란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하성란의 모습을 글로 느낄수 있었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에대한 애도. 하루가 다르게 솓아오르는 초고층 건축물로 인한 환경파괴의 우려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작지만 뚜렷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년전 연재되었던 글들이기에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2009년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 이었는지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마치 지나간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쭉 읽어보는 듯한 느낌과도 같으며, 지난 일기장을 펼쳐보는 듯한 감회도 느낀다. 그저 빠르게 읽는 것이 능사가 아닌,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며 읽는다면 그 담백한 맛이 더욱 뛰어날 것 같다.
소설이라는 것을 통해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아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과감히 보여주는 것. 그것또한 작가로써의 커다란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드라마나 영화속에 나타난 배우의 모습도 좋아하지만, 다큐멘터리나 대담프로에 등장해서 보여주는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에도 우리는 충분히 열광하고 박수는 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또다른 그녀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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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느해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제목만큼이나 그때 내 주위 친구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가 되었던 소설인[삿뽀로 여인숙]을 나또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제목이 주는 조금은 선정적 이미지 때문에 약간의 외설스런 소설일거란 착각을 하며 읽었기 때문인지,,지금까지도 웃음어린 기억이 또렷하다. 그때 그책으로 난 하성란이란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성작가의 느낌을 제대로 잘 살려낸 감성 풍부한 작가란 생각이 지금까지의 내 느낌이다. 소설이란 분야를 즐겨읽지는 않지만 왠지 끌리는 제목이나 작가를 대할때면 아무 거리낌 없이 읽게 되는것 또한 나의 책편식 없는 좋은 습관이란 생각이 든다. 그 좋은 습관덕에 이번 에세이도 불연듯 호기심이 일어 읽게 되었다. 단지 오래전 그 기억속의 하성란 이란 작가의 느낌만으로... 제목이 왈왈 이라 처음에는 이게 도무지 무슨 내용일지 어떤 책일지 감이 감히지 않았다. 그저 한여자의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수다를 적은 기록 쯤으로 생각했다. 2009년 1월 19일부터 그해 연말까지 한국일보의 '길 위의 이야기'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어찌보면 일기 같고 ,또 다르게 보면 한여자의 살아가는 이야기 인듯 세세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생각의 단편들을 모아 650자 정도의 글로 표현해낸 짧은 단상같은 글들.... 그래서 아줌마인 내개 읽기에 더욱 편안하게 읽혔던듯 하다. 작가 특유의 습성인 글로 수다를 짖어내려는 본능을 이책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하성란,그녀를 작가이기 보다는 내가 아는 친한 언니가 나에게 하루하루 일상을 전화통화 하듯 때론 은밀한법한 이야기들도 아주 자연스런 글들로 이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촌철살인이 아닌,,,촌철활인... 정말 이책을 표현한 말중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요즘 세상은 마음대로 추리닝도 못입는 세상이라 표현한 작가의 말에 왠지 공감어린 미소가 지어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을 그녀는 역시 작가답게 내가 미처 표현해 내지 못하고 머뭇거릴 말들도 글로 맛갈스럽게 표현해내고 있으니...놀라울 따름이다. 무심코 이책을 읽다보면 어릴적 언니의 일기장을 무심코 발견해 내어 몰래 숨겨 놓고 읽는 기분이다. 남의 일기를 훔쳐읽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다 알것이다. 바로 이책이 그런 쏠쏠한 재미를 주고 때론 '아! 하성란도 한 여자이자 엄마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일상을 이야기한 책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치부가 될수도 있을 법한데... 그녀는 과감히 자신의 일기장을 선뜻 우리에게 공개해 주고있다. 난 일기를 쓰려면 소재거리가 없이 매일매일이 똑같은데... 작가 하성란은 어찌도 이리 소재거리가 많은지....역시나 작가다운 감성과 특유의 본능이 부럽게 느껴진다. 시아버지의 수난과 택시기사와의 잠깐의 만남능 글로 이어 쓸수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자극시킨다. 그동안 소설가이자 작가라는 시선으로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녀를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책을 통해 내가 잘아는 절친 언니를 한명 만들어 놓은듯 느끼게 될것이다. 내가 전화하면 언제든 내 고민을 주저없이 들어줄듯한 그런 사람 말이다.. 읽는내내 참으로 편하게 보낸 책읽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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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하성란 작가님의 책 <A+>를 읽었었는데, 내용도 흥미로웠고, 이야기의 전개가 전혀 무리가 없어서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감정에 푹빠져 허우적거리는 책을 읽고 싶을 때가 그다지 없는 나에겐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여서 더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 산문집이 있다기에 그다지 망설임없이 읽어보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 그의 수필집이 더 좋다고 항상 이야기해 오던 차라 수필가의 수필집보다 오히려 소설가의 수필집에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러던 중에 기대에 못미치는 책도 있었고, 눈이 반짝 뜨여지는 책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본 하성란 산문집 <왈왈>은 전혀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완전 주관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글이었다는데서 무척 반가웠다. 2009년 1월 19일부터 그해 연말까지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것이라 이런저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 거의 비슷한 길이의 글로 실려있는데,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정색을 한 글도 아니라서 읽기 편한 글이어서 더 좋았다.
2009년의 글이라 내용도 시대적으로 바로 1년~2년 정도 이전의 글인데다 대형마트의 카트기에 넣는 100원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한 내용이라든지, 박태환 선수와 수영대회에 관한 내용이라든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는 버킷 리스트와 동명의 영화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에 들었던 루왁 커피 마시기에 관한 단상같은 내용의 글들은 각각의 글마다 갖고 있는 소재의 이야기들과 내 주변의 일들을 연결시켜서 나는 그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함께 떠올릴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의 한권을 쭉 관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소설보다 이런 류의 짧은 산문집들이 갖는 이점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고작 한페이지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그에 관해 하는 생각은 짧지 않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다 적으면 오히려 방금 읽은 산문보다 더 길지 않을까 싶은 내용들도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주제에 관한 작가의 생각, 주변인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비교도 해보고 과연 무엇이 옳을까, 무엇이 더 이시대를 살아가는데 더 적절한 행동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산문집류의 책을 계속 읽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펴서 몇장씩 읽어도 좋은 담담하니 참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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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딸애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갑자기 "여러분들은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언제 아셨나요?"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역시나 딸애는 "어, 산타클로스가 없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딸애 나이에 산타클로스를 믿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숙한 아이로 보일런지는 모르나 엄마 입장에서는 지켜주고 싶은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딸애가 커가면서 산타클로스를 무조건 믿기에는 여러가지 미심쩍은 증거들을 흘리는 실수가 있었지만 꿋꿋하게 우겨왔었다. 그런데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산타클로스는 당연히 없다는 식으로 단정짓는 진행자의 얘기는 조금 화가 났다. 왜 어른들은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자신의 사랑스런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산타를 믿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속이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일 년 동안 착한 행동을 하면서 내심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기도 하고 나쁜 행동을 할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한다. 갈수록 크리스마스의 원래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동심처럼 지켜주고 싶은 것이 산타클로스의 추억이었다. 상술적인 이미지의 산타클로스는 믿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러가지 모습의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이 모은 둔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분들이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사는 분들을 보면 그 분들이 바로 산타클로스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산타클로스는 천사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믿는 어른들에게 화가 난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처럼 착하게 살면 선물을 받는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매일매일을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만큼 아름답고 멋진 선물이 또 있을까.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가끔은 누군가와 이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데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다시 끄집어내기가 힘들고 자연히 잊혀진다. 매일 우리가 겪는 일상의 생각과 느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거나 글로 적어놓으면 소중한 추억 혹은 값진 교훈을 줄 때가 있다. 하성란 작가님의 첫 산문집 <왈왈>을 읽으면서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은 그 때문이다. 650자라는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을 읽으면서 편안하고 친근했다. 흔히 여자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서로 다른 주제로 이야기해도 결국에는 공감하고 맞장구치며 끝나는 묘미가 있다. 왈왈, 거침없이 꾸밈없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서 좋았다. 그냥 읽기만해도 서로 마주한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왈왈>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