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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해야 될 상황이라서, 다른 동네로 집을 구하러 다녔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춰 집을 구하려고 이곳 저곳 돌아다녔는데, 말도 안되게 후진 집들이 높은 가격에 거래 되고 있음에 뜨악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태양 및 적당한 넓이의 주거 공간을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움을 실감했다. 너무 비싸다. 일자리는 서울에서만 생기고 서울로 인구는 계속적으로 유입되는 상황에서 집은 부족하고 지방은 말라가고 서울에 사는 사람은 좁아 터진 곳에서 조금이라도 넓은 공간 빛을 얻으려고 발악한다.
『어디 사세요?』는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취재를 하여 실제 경향신문에 실린 특집 기사들을 엮어 만든 책이다. 대단하다. 경향신문. 한국 언론의 구조상 광고비로 운영비를 충당해야 할텐데 신문의 최대 광고주중 하나인 건설 자본을 까는 기사를 2010년 3월부터 5월까지 총 19회에 걸쳐 연재 했으니 말이다.
재개발을 하면 돈 없고 힘 없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1부에서는 집 없고 힘 없는 이들을 둘러싼 집 이야기를 한다. 주택 가격은 상승하고 임금은 잘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이웃들은 이사를 갈 수 밖에 없다. 전세를 전전하다 월세로 빠지고 반지하로 그리고 옥탑, 고시원으로 들어간다. 이사를 자주 하다 보니 동네에 정 붙이기가 힘들다. 이런 이들 중에는 원래 고향이 지방일 사람이 많을텐데 서울이라는 동네를 떠나고 싶지만 또 그러기는 힘들다.
재개발을 하면,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상가 세입자들은 수평 이동이 불가능하다. 가재울 뉴타운에 살던 상가 세입자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4,50대 이상의 이들은 직업을 잃거나 좀더 벌이가 변변찮은 직업이 된다. 수익도 떨어지고 사는 집도 더 안 좋은 곳으로 간다. 뉴타운 개발전에도 하루하루 먹고 살기 빠듯했던 이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용산 참사 사건. 그들도 이렇게 될 것을 뻔히 알았기 때문에 그 춥고 높은 망루에서 내려오지 못했던것 같다.
집 값이 오르면서 하우스 푸어가 늘어났다. 결혼 비용 중 집값 비율이 2000년 55.9%에서 2009년 72.5%로 늘어났다. 청년 실업이 문제가 되고, 취업 연령도 점점 늦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 연령도 자연히 늦춰졌다. 엄청난 집값의 부담으로 결혼을 하더라도 휘청거린다. 이 상황에서 애를 낳는건 정말 힘들다. 애를 둘 이상 낳는건 무모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기쁜 이들이 있으니
건설불패의 신화, 건설 자본이다.
이대로 집값아 올라만 다오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 토건 비율, 즉 GDP에서 건설, 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높아, 토건공화국으로 까지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집이 주거의 개념이기 보다는 상품의 가치이기 떄문일 거다.
일단, 집값이 너무 비싼데, 첫 분양가부터 장난이 아니다. 분양 원가 공개를 하지 않는다. 경기도 고양의 한 곳을 조사했는데 1가구당 5000만원 이상의 폭리를 취한것으로 알려졌다. 짓는 꼬라지도 맘에 안든다. 집을 짓기도 전에 선분양해서 돈을 받는다. 그리고 은행에서는 대기업이라 대출도 잘해준다. 이 돈으로 뚝딱 집을 짓는다. 많이 지으면 이득이다. 미분양 상태가 발생하면? 정부가 구입해준다. 선대인은 이 상황을 "건설업체의 미분양 물량을 정부 재정으로 매입하는 조치는 정상적인 시장경제를 운영하는 나라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조치"라며 "정부가 나서서 투기를 조장하고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부동산 버블을 떠받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부동산 버블을 통해 돈을 엄청 벌고 있는 건설자본. 건설자본을 중심으로 한 투기 동맹이 있다. 건설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로 구성된 '부동산 5적'이 바로 그들이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건설 자본 구미에 맞는 입법을 한다. 그러면 건설자본이 정치자금을 대준다. 언론은 조작/왜곡을 통해 집값을 펌프질 시킨다. 조중동의 경우 12%의 광고 수익을 부동산 광고가 차지하며 지방신문은 최대 47%를 넘는 곳도 있단다.
부동산을 통해 대물림 되는 빈부 격차
3부는 집의 정치학이다. 좋은 동네 좋은 아파트 사는게 잘남의 척도로 작용하고, 사람들은 이를 부러워한다. 부동산을 통해 얻는 불로소득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 많을 수록, 성실하게 일하는 이들의 노동은 평가 절하된다. 일할맛 안나게 된다. 집가진 이들은 더 잘살게 되고, 없는 이들은 점점 밖으로 몰리거나 지하로 가는 현실. 빈부격차가 부동산을 통해 심해진다. 경제적 민주화가 부동산에도 절실한 현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서울 거주19세 이상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해결책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충분한 임대 주택공급 2. 고가 부동산을 소유한 부유층 과세 강화 3. 신규 주택의 분양가 인하 4.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제재 강화
이 4가지만 충실히 수행되면 정말 좋아 질 것 같다. 여기에 플러스 지방 발전을 통해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입을 줄이는 것도 필요 할 것이다.
양귀자의 한 단편소설에서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고 묻힌 후에야 그토록 원하던 햇볕을 봤다는 내용이 있다. 이게 20년전? 소설 같은데, 해결 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집으로 한 몫 잡아보겠다는 이들이 줄어들때, 여유로운 삶이 가능한 도시가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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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족부터 가축까지. 대한민국 내 사람들은 소유 부동산에 따라 계급이 갈린단다. 인터넷에 떠돌던 다소 어처구니 없는 계급표는 그저 웃어넘기기엔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물론 이는 내 자신이 노비 혹은 가축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한낱 어디에 집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첨예하게 갈릴 수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사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대손손, 몇 백 년에 걸쳐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 그렇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가난이 숙명인 줄로만 알 정도로 헐벗었던 지난 날이다 보니 부정부패 없이는 지금의 부를 이루기 힘겨웠음을 잘 알다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각종 탈세, 부동산 투기 등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집을 기거하는 공간이기 보단 제 물질을 증식시키는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우리 사회의 문제점인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고발이 뒤따랐다. 정부가 온갖 대책들을 언급하며 집값 낮추기에 혈안이 된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언가 제동을 걸기만 하면 집값은 더더욱 상승했다. 심지어 계속해서 아파트를 신축해댔는데도 집 한 채를 가지지 못해 서러워하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최근에는 자가 주택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전세라도 마음편히 구해보고파 하는 목소리가 잦다. 그러나 매달 목돈을 퍼부어야 하는 월세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전세를 찾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혹독할 따름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경향신문에 재직중인 기자들이 만든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뒤틀린 부동산 현실이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었다. 왜 지난 날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부의 정책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 읽고 있자니 갑갑한 기분을 떨쳐낼 길이 없다. 물론 나라고 해서 혜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정치인의 판단 못지 않게 지금의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태도임을 알 것도 같았다. 각종 비리로 인해 선거 때면 입에 오르내리는 정당일지라도 이 땅에서 생존하기란 참 쉽다. 서민들이 가진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을 언급하는 순간 그 정당의 수명은 연장된다. 실제로 지난 선거에서의 가장 큰 화두는 재건축이었고 뉴타운이었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실낱 같은 기대를 품은 사람들은 보수적이라 할 만한 집단에 표를 던졌다. 그들은 재개발의 혜택이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님을 진정 몰랐던 것일까. 어쩌면 이미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이 그에 동하지 아니했던 것도 같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끌렸던 셈이다. 지난 정권에 대한 회의감 역시 이러한 선택을 하는 데에 한몫했다. 적어도 그들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더 깊은 생각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작이었으니, 집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없고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은 외려 재산 증식에 탄력이 붙은 듯하다. 서울에 살던 사람들조차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급기야 서울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이다. 실패한 사람들만이 모인다는 남양주시 어딘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토박이인 지금의 내 삶이 알게 모르게 치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 물정 몰라서 그냥 살아지나보다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마땅히 언급할 만한 소득이 없으신 부모님 밑에서 운 좋게 직장생활을 하며 조금의 생활비를 내어놓는 게 전부인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운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행운을 놓치는 순간 나는 내 삶 전부가 창조되어온 이 공간을 잃게 된단다.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경험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 땅엔 너무나 많다. 수시로 이사를 하는 사람들에게선 이웃에 대한 배려나 열린 마음 따위를 찾아볼 수 없음이 당연하다. 친하게 지내봐야 소용이 없다는, 조만간 또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이 그들을 하루하루 신랄하게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탓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어디에 사는지를 묻고 특정 아파트 이름으로 제 정체성을 표현한다. 심지어 그들은 네 집 평수는 너무 작아서 나와 놀아서는 아니된다거나 저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과는 엄마가 절대 어울리지 말라 하였다는 식의 설명을 달아가며 우정의 무게를 잰다. 뒤틀린 이 인간관계의 패턴을 오래도록 지속하며 한 아이가 성장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아이들이 수십, 수백 모여 만든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겠는가 모든 사회문제가 그렇듯 지금의 이 문제 역시 결국에는 ‘의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성공적으로 집값을 통제하는데 우리만 그게 불가능하단 말인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 하기 싫기 때문은 아닐까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각종 특혜의 뒤에 숨어 있는 건축 시공업체들과 재건축, 재개발의 물결 속에서 떼돈을 벌어들인 소수의 사람들. 그들이 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에,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한 움직임의 결과가 빚어낸 것이 오늘날 부동산 정책이 아닐까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공간이다. 과도한 빈부의 격차는 위화감을 조성하며 결과적으로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따름이다. 무엇이 사회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득이고 손해인지, 보다 넓은 시선으로 현 문제를 바라보아야만 그에 대한 현명한 대책의 도출이 가능하다. 난 내 자신이 집이 없어 이리저리 떠도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내 자녀가 거주하는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멸시당하고 친구마저 사귀지 못하는 세상은 꿈도 꾸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자꾸만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 서글픔에 맘껏 젖어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는 건 무능력의 증명에 지나지 아니한다. 당신은 무능력한가? 우리 모두는 뭔가 모자란가? 절대 아닐 것이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보려 노력하는 건 우리 자신의 능력을 아직은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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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도 내쫒기는 재개발(길음뉴타운) 2001년 당시만 해도 이곳에 살던 주민의 71%가 향후 이 지역에 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7년이 지난 현재 가옥주의 재정착률이 다섯 명 중 한 명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남은 가옥주 가운데 '원주민(54가구)들은 주로 1980년대(20가구)와 1990년대(22가구)에 이곳에서 땅이나 집을 구입해 보유해온 사람들이다. 외지인(2001년 9월 24일 이후 소유권 등기가 된 가구)이 가장 많이 들어온 시기는 2002년이다. 195가구 중 56가구가 2002년 동안 길음5구역에 있는 토지나 건축물을 구입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32가구가 들어왔다. 길음 5구역의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마련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의 이익을 얻을 목표로 들어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2년은 사업시행 인가(3월 21일)가 나고 서울시가 길음 등 세곳을 뉴타운 시범지구로 발표(10월 23일)한 해로, 2001년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외지인 195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46.7%가 2001년 10월~2003년 말 사이에 들어왔다. 길음 5구역 뉴타운에 입주한 이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이익을 누렸다. 하지만 현재의 개발 구조에서는 그만한 분양가 또는 분담금을 낼 수 있는 중산층 이상만이 아파트를 차지할 수 있었다. 뉴타운 지정의 혜택은 원주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관련법은 임대주택에 대한 의무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의무 비율(전체 가구수의 17%)이 없었다. 길음 5구역의 경우 90가구의 임대아파트가 공급되었지만 이것마저 세입자 308가구 모두의 몫이 아니었다. 그때는 서울시 조례 개정 전이라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129가구는 거주 기간이나 소득 등이 법적 기준에 미달해 세입자 주거대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결국 이들을 제외한 40가구만이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길음 5구역 세입자의 임대주택 정착률은 12.9%로 308가구 중 40가구에 불과했다. 2003년 2~3월 길음 뉴타운 구역 저너체를 대상으로 한 주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세입자의 75%가 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했다. 임대아파트의 적정 규모에 대해선 세입자의 45%가 18~25평형을 원했다. 18평 미만의 아파트를 원하는 세입자는 31%, 25평 이상은 24%였다. 그러나 실제 길음SH빌에 들어선 90가구는 모두 15평의 단일평형으로 지어졌다. 수요자의 요구와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작은 평수로 결정한 것이다. 위 조사 결과는 길음 뉴타운 9개 구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긴 했지만 임대아파트에 대한 세입자들의 수요와 실제 공급 간의 괴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다.
통계청의 <저축목적 1+2순위> 2008년 자료에 따르면, 자기 소유 집에 거주하는 경우 절반 이상이 노후 대비를 하고 13.2%가 자녀주택, 결혼 자금 마련에 돈을 붓는 반면, 세입자의 경우 33%가 노후 대비를 하고 7.8%만이 자녀 주택에 대비하고 있었다. '무주택자'라는 주택시장의 지위가 대물림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나는 2년에 한 번씩 경기도 쪽으로 2km씩 가까워지고 있다."
턴키방식: 설계, 시공 일괄입찰 (단점: 상위권 업체들이 공사 독식. 따라서 대기업만 이득 얻음)
미분양 아파트: 시민사회는 마구잡이로 아파트를 지어온 건설사들이 '자연도태'되도록 해야 아파트 거품이 빠지고 지역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현재의 재개발 방식을 주거 약자인 원주민들의 터전을 보호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장기적으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도 살아날 것.
랜드마크: 건설사들은 초고층 건물을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시켜 이미지 광고 효과를 얻고, 주택가격의 '프리미엄'도 챙길 수 있다. ex)도곡동 타워팰리스(69층), 목동 하이페리온(69층), 경기 일산 두산 위브더제니스(54층,책에는59층) 40층 이상이 될 경우 10~20km 밖의 도시경관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타워팰리스의 경우 평당 전기세가 1만원 꼴로 일반 가구를 크게 웃돈다. 이처럼 초고층 주택이 많이 채용해온 '커튼월' 방식이 에너지 과소비가 심각함을 인식한 서울시는 2009년 6월부터 신축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주택정책의 일관성 부재이다. "주택정책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해야 한다. 나쁜 정책보다 더 나쁜 것은 일관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주택시장 활성화를 '스테로이드'처럼 남용하면서 부동산 경기에 의존적인 경제 체질은 되려 약화되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선진국에 비해 건설 경기에 의존하는 비율이 2~3배 높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1998~2005년 6월 전국 신문사 광고수익 자료에 따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전체 광고 수익의 11~12%를 부동산 광고가 차지했다. 지방신문들은 부동산 광고 비중이 최고 47%를 넘는 등 의존도가 더욱 높았다. 또 '조,중,동'의 경우 광고 지면의 20% 이상을 부동산 광고로 채웠다. 신문사로선 광고주인 건설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이는 광고성 기사 게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기호의 소비'에 해당한다. 건축가 정기용은 저서 <사람 건축 도시>를 통해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살며, 그 친구는 대우에 살고, 저 친구는 우성에 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동네가 아니라 대기업체의 이름 속에 당당하게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집이라는)상품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선망하는 집은 '아파트'가 아니었고 '아파트'는 질 낮은 주택으로 분류되었다. 1970년에 시민아파트인 '와우아파트'가 준공 4개월 만에 날림 공사로 붕괴되는 참변이 발생하자 정부가 중산층의 고급 주거형태로 아파트 건축계획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1970년대 말에는 '아파트-중산층'의 공식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이유는 과거 정책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강남을 '계획 신도시'의 일환으로 개발하면서 서울 중심부의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하기 위해 각종 특혜를 주었던 것이다. 1960~1970년대에 지방에서 서울 강북 지역으로 인구 집중이 이뤄지면서 사회기반 시설과 주택 부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자 강남을 개발해 인구를 분산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강남 지역에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했다. 현재의 한남대교인 제3한강교가 1969년에 준공되었고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대에 강남에 터미널을 두고 개통되었다. 강남 개발은 서울 내에서 유일하다시피 '계획'적으로 이뤄졌다. 교육열이 강한 국민정서를 감안한 인구분산 정책 중 하나는 강북의 명문 고등학교들을 반강제로 강남에 이전시킨 것이다. 1976~1980년 사이에 경기고, 휘문고, 숙명여고와 서울고, 정신여고, 경기여고 등이 이사를 갔다. 공무원과 엘리트들을 강남에 이주시키기 위한 조치도 이어졌다.
봉천동이란 이름이 달동네 이미지를 풍긴다는 주민들 민원이 이어져 2008년 보라매동, 청림동, 은천동, 중앙동으로 개명했다.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은 개발로 집값 상승을 노려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독일: 독일 주민들이 공청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자신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뭔헨 시청 도시계획국 동부 총괄자 보임러는 "독일의 도시계획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주민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주민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계획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개발에 따른 이익을 일부 환수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분배하는 것 역시 독일 도시개발의 원칙. 사회적 합의에 의한 토지사용, 즉 '소본'(SoBoN:Sozialgerechte Bodennutzung)이 바로 그것이다.
적정한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도시가 슬럼화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시설 확충 부담금이 3분의 2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규모를 넘으면 개발할 가치가 없어지거나 개발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개발 면적 일부를 떼어줄 수도 있고 현금으로 납부할 수도 있으며, 두 가지 방법을 절충해서 하는 방법도 있다. 이 제도는 시행 초기 '빨갱이들의 망상'이나 '약탈세'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일본: 주민들의 복지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한다. 마치즈쿠리= 주민들이 주체가 된 커뮤니티 형성 운동. 현재 일본에는 마치즈쿠리를 위한 비영리단체(NPO)가 1500여 개에 달하며,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갖추고 있다. 1966년 일본 정부는 교토, 가마쿠라, 나라 등 문화재가 많고, 경관보존의 필요성이 높은 도시를 대상으로 '고도보존법'을 제정했다. 역사적 풍토보존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개발 행위를 제한하기 위해서다. 2004년에는 '경관법'을 제정해 문화재 보존이나 건물 높이 제한뿐 아니라 마을 분위기 와 자연풍경 등도 보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경관보호 조례를 제정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도시 경관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전진삼 건축평론가는 "2020~2025년에는 인구 감소로 세대수가 줄어들고 1인 가구와 노령화가 심화되기 때문에 기존의 중대형 아파트보다는 소형,원룸주택 수요가 더 많아질 것"이라며 "'공공공간'이 넓은 집이 좋은 좋은 주거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는 내용이 있는 심오한 책이었다. 기존봤던 책들은 어떤 지역 어느 아파트가 재산 증식에 도움이 되는지 하는 투자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을 넘어 후일에 모두가 한정된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굉장이 인상적이고 좋았다. 아무래도 자료를 많이 참고하다 보니 내용이 딱딱해질 수 밖에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좋았다. 소유욕이 강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재산이 스스로 늘어나 주면 너무나 기쁘겠지만 반대로 내가 서민이라 집을 사기도 힘들다면 그것이 대물림된다면 이것은 분명히 다시 생각해서 고쳐 나가야 할 우리의 모습일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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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경향신문은 진보적인 신문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좀 무의미할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 진보라고 하는 민주당이 외국의 관점에서는 보수이기 때문이다. 외국은 과거부터 민주주의라는 것이 차곡 차곡 쌓여 토대를 이룬 끝에 발전하여 유럽같은 경우에는 현재 우리나라 관점에서 보면 빨갱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빨간색에 대한 아우라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측면도 있고, 의도적으로 조장한 측면도 있다.
진보가 꼭 부정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내 주관점인 관점이겠지만 대체로 명확한 팩트보다 부정적인 논조로 경제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조중동이라는 메이저 신문들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사실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 것이 더 문제기는 하다.
이 책은 경향신문에서 특집 씨리즈로 연재되었던 기사들을 묶어 책으로 펴 낸 것이다. 읽으면서 '꼭 그런 것은 아닐텐데'라며 생각한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면들은 잘 전달되었다. 집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의식주'라는 것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집이라고 하면 어느 순간부터 '아파트'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국은 빈민층이 엄청 많구나'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서양에서 아파트는 대체로 중산층보다는 빈민층이 사는 공간으로 정의되었다. 처음에는 서양에서도 중산층이 사는 공간이였지만 좁은 공간에서 위 아래로 다닥다닥 사는 것 보다는 단독주택을 더 선호하여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록 아파트를 선망의 대상이지만 모든 사람들의 로망은 단독주택이라고 본다. 문제는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편의시설을 아파트에 집중하고 국가에서 각종 편의 시설과 공공시설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하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다. 아파트이든 주택이든 똑같이 국가에서 같은 조건으로 이용 시설을 만들어 준다면 지금과 같이 아파트에 몰리는 현상은 어느 정도 극복되었을 것 같다.
도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한정된 땅덩어리로 효율적인 부분이 강조되다보니 아파트가 가장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 된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 한번도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살아 본 적이 없어 아파트의 편리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잠을 자 본적도 없고 아주 잠시 몇 시간 머문적이 전부라 아파트에 대해 잘 모른다.
주택은 부정하려 하여도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될 수 밖에 없다. 책에서는 잘사는 중산층의 아파트, 부와 권력의 상징인 강남이라는 표현이 점점 일반 서민들을 힘들게 하고 지방에도 이제는 '여기가 무슨 도시의 강남'이라는 표현 될 정도로 거주 자체의 측면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아주 태고에 모든 인류가 동굴에서 살았던 당시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인류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부터 이미 집은 단순하게 거주의 공간은 아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신분의 고하여부에 따라 - 과거에는 부라는 것이 신분을 갖지 못하면 얻을 수 없는 물질이라 - 그가 살고 있는 주택이 달라진다. 극단적으로 거지는 거리에서 잠을 자고 임금은 궁궐이라고 표현되는 장소에서 잔다. 과거부터 이렇게 신분에 따라 거주공간이 달랐다. 현대에 와서 신분이라는 제도가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음성적으로는 있다고 할 수 있고, 신분이라는 용어대신 부자라는 용어가 대체했을 뿐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과거는 한번 고착된 신분은 죽었다 깨어나도 변경할 수 없는 운명이였다면, 지금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의 신분상승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분상승이라는 효과가 래미안에 산다. 푸르지오에 산다. 힐스테이에 산다는 식으로 천민 자본주의가 되어 버린 측면이 있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이라는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부에 대해 바라보는 감정이 이율배반적이고 왜곡된 측며이 있고, 공산당을 싫어하고 저주하면서도 외국보다 더 평등한 것을 무조건 추구하는 왜곡된 시선과 사상으로 인해 주택이라는 공간에 대해 신분상승의 효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정해 줘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책의 3분의 2가 현 문제점에 대해 고발하는 측면이 강했다면 나머지 3분의 1이 개선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특히 외국 사례는 참고할만하고 우리나라가 나갈 방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본다. 특히, 독일 사례는 많은 시사점이 있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민간 임대시장이 활기를 띄었지만 국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택은 거주의 공간으로 굳이 주택을 보유하지 않아도 되었고 재개발을 하더라도 무조건 밀어 부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을 하나 하나 받아들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민간없자들이 모든 것을 전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함께 전체적인 상황을 보며 주택을 새롭게 조성하다보니 우리나라처럼 재개발을 한다고 현지인의 단지 20~30%만 재 정착하는 폐단이 사라졌다고 한다.
굳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도 아파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일반 주택도 똑같이 국가에서 조금씩 조금씩 해 준다면 굳이 아파트를 선호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무조건 밀어부치기식 재개발에서 이제는 현지인들과 공생하는 재개발로 턴을 하는 정책으로 변하고 있는데 - 갑자기 1~2억이 생길리가 없기 때문에 - 이런 외국사례를 참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심지어 일본 사례에서는 단 한 주택이 도로 수용을 포기하자 아예 도로를 우회하게끔 만들었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떤 현상과 주목과 토론이 펴쳐질 지 사뭇 궁금하다. 불행히도 그 주택의 주인을 욕하는 결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한다. 개개인의 선택과 행복이 중요한데 군사 잔재인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너무 개인보다는 전체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우스 푸어'같은 책이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선점을 설명하기 보다는 약간 선동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이 책은 차분하게 하나 하나씩 - 아무래도 방송보다는 신문이 좀 더 전문적이고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개선점과 나갈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저 부동산 투자의 관점에서 읽는 것보다는 주택에 대한 사회적인 고찰을 위해 읽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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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뭘까?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 대립? 남북 문제? 세대간의 첨예한 대립? 이 책 <어디 사세요?: 부동산에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단연 '집'이야말로 한국인의 행복을 발목 잡는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新)유목민' 사회의 주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 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프롤로그
이책은 경향신문사에서 2010년 3월부터 5월까지 19회 걸쳐 한국사회의 주거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한 기획기사를 묶어낸 책이다. 비록 5년 전 이야기이지만, 하나도 달라진 건 없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집이란 뭘까? 먹고 잠잘 수 있는, 그러면서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면 충분히 나의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우리는 2년 마다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 해 이사를 해야하며, 집이 있더라도 더 큰 집, 돈이 될 집, 자식 교육에 필요한 집을 찾아 또 이사를 하는 것일까? 20대에는 20평,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의 집을 소유하고 있어야 정상이라는데, 언제부터 우린 집의 넓이로 인생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게 됐을까? 세입자와 주택 보유자를 불문하고 전 인구의 19%가 해마다 이사를 다닌다고 하니,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인 셈이다. 모두가 이방인으로 뿌리 없는 삶을 사니 애향심은 커녕 무관심이 우리 사회의 주된 정서가 된다. 해마다 투표율이 낮아지는 이유? 투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텐데, 내고장 내일꾼을 뽑는다는 생각이 들기나 하겠나?
임금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주택비용은 소득과 고용의 불안정과 더불어 미래 세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되고, 무리해서 집을 사더라도 하우스푸어가 되어 곤궁한 삶을 살게 된다. 2년에 한번씩 서울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우스갯소리는 처절하게 들린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렇게 토건 공화국이 되었을까? 사실상 대한민국은 건설사의 낙원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제도인 아파트 선분양제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남겨 왔다. 아파트를 다 짓기도 전에 분양하면서 분양가를 주변 시세에 맞춰 수익을 남긴다. 택지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구입하고, 건축비는 분양대금을 미리 받아 충당한다. 여기에다 공사기간에 발생하는 세금과 이자는 모두 분양가에 반영한다."
하지만 건설사가 낙원의 잇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뒤를 봐주는 세력들이 있어야 한다. 건설 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로 구성된 '부동산 5적'이 투기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막대한 수익을 나눠먹기 위해 부동산 5적이 똘똘 뭉쳐 '아파트를 사야만 부자가 될 수 있고, 부동산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부자가 된다'는 환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다. 특히 집값 펌프질하는 언론의 보도는 건설사와 부동산업자의 입장에 편향되어 있다. 신문사 수입의 절대량을 대기업(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서너개 쯤의 건설사를 갖고 있다) 광고에 의존하고 있으니 건설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수준의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마치 건설업체들을 살려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식의 보도도 매정권마다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심심치 않게 부동산 투자로 부자가 됐다는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는 대한민국의 신화가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거주형태인 아파트 단지는 도시 맥락으로 볼때 '섬'과도 같다. 주변 건물, 도로나 보행자 동선 등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장소로서 배려가 이뤄지기 전에 최대 용적률과 건폐율의 '이익'과 '효율성'만이 공간을 지배한다. 풍경의 공공성은 상실한지 오래다.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그 아파트의 브랜드가 과시하는 차별적인 신분을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파트 단지 자체가 군사문화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규칙적 간격으로 늘어선 건물들, 위병소처럼 내부 출입을 통제하는 입구는 폐쇄적인 공간의 심상을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야간에는 이들 아파트를 지은 대기업의 '브랜드'를 과시하는 조명을 밝히며 주변 지역과 차별화가 시도된다. 광고 속 아파트는 언제나 궁전이다.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언젠가 그들만의 리그에 낄 수 있는 어떤 날을 꿈꾸며 동경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주택 문제로 인해 정치지도마저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원래 서울은 전통적으로 진보개혁진영의 당선 비율이 (14대 56.8%, 15대 41.3%, 16대 62.2%, 17대 66.7%) 높은 편이었으나 18대 총선에서는 48개 선거구 중 40개를 한나당이 가져갔다. 당시 한나라당은 재개발과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몰표를 가져갔다. 당시 유세를 하던 한나라당 후보들은 거리 곳곳마다 뉴타운 도면을 걸어 놓고 주민들의 몰표를 얻어갔다고 한다. 물론 그 이후, 재개발과 뉴타운 공약이 서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지만, 이미 화살은 떠난 상태였다. 자, 그럼 이렇게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주택 문제,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주택의 탈상품화에 해결방안이 있다고 한다. 주택의 소유권과 임대권 전반을 공공이 갖고 있는 이른바 탈상품화 주택의 비율을 전체 주택에서 20~30%까지 늘려야 한다. 또한 아파트 위주의 공공 임대주택 패러다임도 변화가 요구된다. 임대주택을 아파트로 지으면 비용이 많이 들어 많은 가구를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된 다가구주택을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바꾸는 방법도 유용하다. 그밖에도 이익 중심의 재개발이 아닌, 지역 주민 중심의 '도시 재생'으로의 패러다임 변화, '수익권은 공공에, 이용권과 처분권은 개인에게 두는 시장친화적인 토지 공개념의 도입 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물론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을 갖고 덤벼야 할 정도로 첩첩산중의 문제들이다. 부동산 5적이 다 달려들테니 어디 쉬운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그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문제인 것도 명백하다. 한번뿐인 인생을 부동산에 저당 잡혀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우리들의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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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에서 박수를 보낸다. 어느 신문사에서도 보기 힘든 한국부동산의 문제점을 이 처럼 잘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니 무척 반갑다.특히 부동산 광고등은 신문사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문사에서는 부동산을 비판하는 기획물들은 거의 다루지 않는 편인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에서는 용감하게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사기만 하면 한 없이 오를것만 같았던 대한민국 부동산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부동산 개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과없이 잘 보여주는데. 이 책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모두 꼭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 책은 2010년 3월 부터 5월까지 경향신문에 19회에 걸쳐 연재된 기획물 '어디사에요? - 주거의 사회학'을 단행본으로 재구성 한것이라고 하는데 신문에서는 미처 실지 못했던 내용들을 추가했다고 한다. 이 기획보도는 많은 호평과 함게 한국기자 협회 선정 '이달의 기자상'기획 보도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정말 책을 보면 찬사를 받을만 하다는 것을 알수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하우스푸어들의 사례는 내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사례다. 금융위기이전 부동산 대선과 한나라당의 뉴타운 총선으로 시장은 정말 사기만 해두면 오를거라고 다들 그렇게 예상을 했다. 자기돈일부와 최대한 많은 대출을 받아 분양후 입주할 시점이 되면 집값상승으로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면된다는 공식아닌 공식이 널리 퍼져있었다. 아는분도 그열기에 동참하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아 분양시장에 뛰어들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분양을 받으면서 무척이나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했었는데 지금은 그때를 후회하면서 분양받은집 쳐다보기도 싫다고 하신다. 나역시도 그당시 그분과 함께 분양을 받을려고 했다가 감당하지 못할거 같은 대출때문에 포기했었는데 만약 분양을 받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책 후반에 가서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데 과연 앞으로의 한국의 집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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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본문의 내용 중 언급된 설문조사에서 "집은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약 85%로 "집은 재산투자의 대상이다"라고 응답한 15%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슬프게도 주택을 이용해 재테크를 하려는 15%의 투기세력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최소한의 주거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여기저기로 쫓겨가고, '집 마련'이라는 버거운 짐을 언제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르는 고통속에서 살아간다.
집의 의미는 단순히 주거공간 마련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거불안정 문제는 내 이웃이나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대해 무관심을 낳게되며 이는 더 나아가 정치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금방 떠날 동네에서 누가 뽑히든 내가 무슨 상관이랴.
또한 집, 정확히는 집이 위치한 동네는 법적, 제도적으로는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회의 계층을 규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남 3구에 사는 사람들은 '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를 힘주어 나타내려 하는 반면, '가난하고 후지다'라고 인식된 동네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동네를 언급하기 꺼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막상 들어가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강남동네에 어떻게든 입성하려고 기를쓰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집의 기능이나 집의 의미가, 한탕하려는 투기자본과 건설세력, 표를 얻고자 혈안이 된 정치세력, 광고수주만 하면 그만인 언론 등에 의해 어떻게 철저히 왜곡되고 그러한 왜곡이 대부분의 소박한 소시민을 어떤 고통으로 짓누르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제발! 집은 '주거를 위한 공간이다'라고 생각하는 소시민들에게 그 공간 좀 갖게해 주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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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가면서 주위의 친구와 직장 동료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결혼 비용의 대부분은 집을 마련하는데 들어갔다.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대출을 억단위로 받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전세를 마련했다. 직장이 서울 근처라 더욱 전세값이 비싸서 그런지 평균 2억에 가까운 돈이 든 것 같아 보였다. 나도 머지않은 장래에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면서 이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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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읽은 내용을 친구에게 이야기 해주려고 하니 이야기도 채 꺼내기도 전에 친구가 한 말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어느 동네에, 무슨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긴 했지만,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죠.
이 책은 왜 이렇게 집값이 오르는지, 아파트 건축을 위한 재개발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다루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진보적인 성향의 언론을 많이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미 많이 친숙한 내용입니다.
보수적인 언론만 보신 분들이라면, 오르는 집값에 불만을 가지고는 있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시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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