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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아끼는 존재를 들라면 단연 나무를 고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나무를 사랑했으니 첫 번째 기억은 고향마을로 달려간다. 우리 가족의 생명줄이기도 했던 텃밭에 있던 감나무. 어른 세 명이 손잡아야 겨우 손이 닿을 정도로 밑둥치가 넓고 커다란 감나무는 나뭇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열매를 맺어 열 섬의 익은 감을 너끈히 딸 수 있었다. 딸과 함께 아내의 고향에 심은 나무도 각별하다. 딸아이가 여섯 살 때 처가 담 옆에 심은 감나무와 매실나무는 지금은 이웃에게 나눠 줘도 남을 정도로 열매를 많이 맺는데 딸아이의 첫 시작품이 탄생하도록 이끈 나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산에 있는 느티나무. 당산할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나무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경건하질 정도로 웅장하고 너그러워 절 세 번을 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 지상에서 만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상의 축복을 또 하나 꼽으라면 책을 들겠다. 책의 재료가 나무이니 책은 나무의 확장이지 않은가 하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사실 그렇다. 책은 나무다. 책은 즐거움의 새싹이 돋아나게 하고 잎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뿌린다. 책은 나무일뿐더러 나무도 책이다. 나무는 새싹이 돋아나고 잎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뿌린다. 그러니 나무는 책이고 책은 나무다.
김성희의 『책나무』는 책이 나무임을, 그리고 나무가 책임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글 없는 그림책인 이 책 속에는 무수한 책이 등장하지만 마치 모든 책은 제 나름의 값어치가 있다는 듯 책 제목조차 없다. 글이 전혀 없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 아이는 받침대에 올라 책장에서 책을 뽑는다. 주황색 책장이 우줄우줄 서 있고 책들은 대부분 꼽혀 있거나 일부는 바닥에 놓여져 있다. 작은 거북은 등에 책을 얹고 아이에게 다가간다. 다음 장면은 아이와 작은 거북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다. 신비함은 다음 장면부터다. 이들이 읽는 책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새싹에 물을 주자 나무로 자라며, 나무에서는 다시 새싹이 돋아나고, 책 이파리가 무성하게 열린다. 아이와 작은 거북은 나무에 올라 책 속 주인공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가을이 되자 아파리들은 떨어지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 뒤 열매가 터져 화면 가득 책 씨앗이 퍼져 나가니 책 읽는 즐거움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이후 씨앗들은 다시 새싹이 돋고 아이와 작은 거북은 책이 가득 꽂힌 방에서 책 속 주인공들과 책을 즐긴다.
이와 같이 이 그림책은 책이 나무임을 그리고 나무가 책임을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책 자체를 즐기며 책 속 주인공들과 함께 놀 정도로 책에 깊숙하게 빠져있는 인물을 창조했다. 작은 거북은 이야기를 단조롭지 않게 하는 조연과 같다. 주황과 연두와 갈색만으로 소박하게 그려진 그림은 글 없는 그림책의 장점이라 할 상상력을 한껏 더 풍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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