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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국어시간에 동시 짓기 수업이 있었다. 한참을 궁리 끝에 "아가"라는 제목의 동시를 만들었는데 선생님께서 반 친구들 앞에서 동시를 잘 지었다고 이야기 하실 정도로 칭찬해 주셨다. 아가의 모습을 의성어를 넣어서 동시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가 생각나지 않는다.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이후 한동안 동시를 읽으며 잠시나마 시인도 꿈꿨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시 한편 제대로 읽지 않는 메마른 감성의 어른이 된 나를 흔들은 동시를 만났으니 신현득 시인의 <몽당 연필도 주소가 있다>이다. 첫째 아이 권장도서라 사 준 후 무심코 읽었는데 단순히 아이들만 읽는 동시로 치부하기에는 어른에게도 여운이 있는 동시이다.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할 말 '반갑다'를 낱말 그릇에 담을 수 있다 '고맙다'를 그릇에 담을 수 있지 그릇에 담긴다면 봉지에 쌀 수도 있지 좋기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게 젤이야 '예쁘다', '귀엽다'도 지닐 만할 말 이걸 가지고 다니다가 반가운 동무 만나면 '반갑다'를 내어서 쓰지 "반갑다, 얘" 고마운 동무에게는 '고맙다'를 내어 쓰는 거야 아기에게는 '예쁘다'. '귀엽다'를 내어 쓰지 "아이, 예뻐라, 귀여워라." 지니고 다녀야 할 말 마음속 그릇 아니더라도 내 주머니에 담고 다님 돼 헤프게, 헤프게 손에 잡히는 대로 막 뿌리고 다니는 게 좋아 꼭 아이만 아니더라도 어른들도 삶을 살아가면서 좋은 말을 헤프게 뿌리고 다니면 어떨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좋은 말을 헤프게 뿌리는 사람은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삶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부터 마음 속 주머니에 좋은 말들을 듬뿍 담고 다니며 헤프게 뿌려봐야겠다.
할머니 돋보기 내 발가락에 가시가 박혔을 때 할머니가 돋보기를 내어 끼셨어 아프잖게 찬찬히 가시를 빼 주셨지 "우리 손주 저고리에 단추가 떨어졌네." 돋보길 끼시고 단추도 달아 주셨지 할머니가 또 언제 돋보기를 끼셨나? 군대 간 막내 삼촌 편지 왔을 때 돋보기로 읽는 편지 첫 줄부터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보였어 군대에 다녀온 성인 남자라면 다 느끼는 거지만 훈련소에서 입고 온 사복을 군복으로 갈아입은 후 사복을 다시 집으로 소포를 보내면 그 소포를 받은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을거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마 "할머니 돋보기"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 같다. 저자가 어릴 적 할머니께서 군대 간 막내 삼촌의 편지가 왔을 때 돋보기로 읽으며 눈가에 눈물이 보였던 그 모습을 저자는 잊지 않고 가족의 사랑을 동시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에는 퍼부어 더위에 물 퍼붓기 그게 소나기다 가랑비는, 물뿌리개로 뿌리는 감질나는 비 "그거론 안 돼." 그래서 퍼붓는 소나기다 "어이구 시원해!" 모두가 목말라했거든 숲과 들이 목말랐거든 오막살이 담 밑에 몇 포기 봉숭아도 목말랐거든 그래서 퍼붓는 소나기다 비 그친 뒤에는 퍼붓는 햇볕 "맴맴 맴맴 맴맴...." 비 그친 뒤 퍼붓는 매미 소리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 읽기에 어울리는 동시 같다. 오늘 아침에도 가랑비가 좀 내렸지만 시인의 눈으로 만든 가랑비와 소나기는 우리가 느끼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퍼붓다"는 문장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까? 비 그친 뒤 퍼붓는 매미소리가 기다려진다.
계절의 시간표 -뻐꾸기 울거든 깨를 심어라 -소쩍새 울걸랑 논을 메어라 -고추잠자리 날 때부터 고추가 익느니라 계절이 시간표를 짜 둔걸요 낙엽이 뒹굴면서 소리치지요 "김장 서둘러요, 서둘러!" 뒤따라 펑펑 눈이 오지요 시간표 안 지켰다간 큰일 나요 짧은 동시지만 그냥 스치듯 지나갈 계절의 변화를 시인은 그것을 발견하고 재미를 담아 시로 말하고 있다. 뻐꾸기랑 소쩍새가 어느 시기에 우는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 때랑 낙엽이 뒹굴때는 계절의 시간표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곧 가을이 오고 낙엽이 떨어지면 집집마다 김장 준비로 분주해지겠지... 무심히 지나쳤던 계절의 시간표를 이제라도 귀 기울이고 느끼며 보내야겠다. 신현득 시, 전미화 그림의 <몽당 연필도 주소가 있다>는 시인의 경험과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을 토대로 가족에 대한 사랑, 검소한 삶, 자연의 이치, 따듯한 시선 등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동시로 특히 몽당연필, 열쇠, 프라이펜 등 모든 사물들이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랑을 노래한 동시집이다. 한창 상상력과 동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 뿐만아니라 동심을 잃은 어른들에게 읽어보기를 추천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