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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평원에 있는 소년과 C는 신기루 같았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철길 뿐인 이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도저히 현실 같지 않았다. C와 소년은 C의 떠나간 애인을 기다리고 있다. 곧 닥쳐올 모래폭풍은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곳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C에게 "애인이 정말 기차를 타고 돌아 온다고 했느냐"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소년이 들려준 오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점점 나의 머릿속에서조차 희미해진다. 다가오는 모래폭풍만이 유일하게 모두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어쩌면 소년에게만 두려움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C는 이곳에서 죽기를 각오한 것 같다. 다만 모른척하고 있을 뿐인 애인이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소년은 이곳에서 죽을 이유가 없다. C의 마음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지만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잊은 소년에겐 C와 함께 도시로 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아니면 혼자라도.
아무도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소년과 C과 있는 이곳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고 간다. 소녀 집배원, 세금징수원 노인, 갑부, 임신부, 개 한마리, 강도, 경찰까지. 이들은 모두 한 가지 사건으로 동쪽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향하지만 이들에 의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것은 소년 뿐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모래뿐인 이곳에도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모래평원의 개미들", 이 책이 끝까지 이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은 모두 이 소년 덕분이다.
소년이 모래 위를 이동하는 개미들을 유심히 바라볼 때 나는 이 개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떠올려 보려 했다. '모래평원의 개미들'속의 주인공이 혹시 우리들이 아닌 개미들이었나 떠올려 보지만 그저 궁금증만 남을 뿐이다. 서쪽으로 간 경찰은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동쪽으로 왔겠지. 혹시 소년의 말을 믿고 세금징수원을 잡아간 것은 아닐까. 아니면 모래더미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다이아몬드를 찾아 모래평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고통스러운 갈증과 더위, 해가 지고 난 후의 추위를 견뎌야 하지만 동쪽과 서쪽을 잇는 이 철길로 인해 사람들은 모래평원에 가는 것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록 기차가 더이상 다니지 않는 길이라 해도 이 철길은 도시와 도시를 잇고 있으니 언제든 그 끝에 닿는다. 그것을 아는 한 이곳으로 언제나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의 결말을 떠올려 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모래폭풍 뒤에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과연 모래폭풍은 올까 생각해보면 의심이 가지만 이 철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게 되는 이유는 소년과 C만이 있었던 이 곳에서 너무나 많은 죽음들을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죽음은 이제 모래속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형태가 변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이조차 남아 있지 않겠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이 철길를 이정표 삼아 동쪽과 서쪽을 오고 갈 것이며 그 속에 모래더미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모두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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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평원의 개미들 리뷰> 고독은 단순히 허무의 한 양태가 아니다. ‘격렬함’으로 표현되는 감정들, 절규로 표현되는 상실감 따위와 비교해서 고독은 표면적으로 더 내향적이며 메마른 것처럼 여겨진다. 고독은 눈물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슬픔보다 약하게, 충동으로 들끓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노보다 무력하게 생각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고독에 대한 이런 통념들은 찢겨나간다. 슬픔에는 동정으로, 분노에는 위로로 반응하는, 그러나 고독한 사람의 감정은 지각하지 못하는 무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글은 소리죽인 항의다. 이 항의는 절규하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다만 읊조린다. 읊조림이 두려운 것이다. 울음과 절규는 해소를 가져오고, 그렇기에 치유로 귀착되지만, 읊조림은 본래의 것을 느리게 부풀려 나갈 뿐이다. 읊조릴수록 고독은 몸피를 불리고, 한 때 자기를 품었던 사람의 육신보다 더 커진다. 고독은 마침내 고독한 사람의 육신을 집어삼킨다. 모래평원은 육신이 집어삼켜진 살해현장, 소멸과 무생물성의 현장,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철길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C의 애인을 발견했을 때 소년은 확신했다. C의 애인은 떠날 것이다. 그녀는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C의 애인은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C도, 소년도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은 느낌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C의 애인은 어리둥절해하는 C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거나 안아준다거나 하지 않았다. C의 애인은 다만 C와 눈을 마주쳤다. 언젠가 기차를 타고 돌아올게.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철길을 따라 떠났다. 그녀가 남긴 말이 C의 굴레가 되었다. C는 철길에 움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 30p 설사 그녀가 무엇을 원했든간에, 오송이의 글쓰기는 치유행위로서 작용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자기와 비슷한 감정을 지닌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어줍잖게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라고 말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이 글쓰기는 오히려 그런 공감과 치유에 대한 적극적 거부행위다. 그녀는 치유하느니 차라리 독자를 괴롭히려 한다. 카타르시스를 일으켜 해소하기는커녕, 질척질척한 질병의 늪으로 독자를 끌어내린다. 하지만 아픔을 나누려는 생각 따위를 처음부터 그녀는 갖고 있지 않았기에, 이 질병조차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에 독자는 질병의 늪에 한쪽 발만을 담그고 중심에서 앓는 이의 허우적거림을 구경해야 하는데, 여기서 작가가 유도하는 감정은 차라리 죄책감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는 죄책감, 그것이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죄책감이다. 무심하게 C를 떠나는 C의 애인처럼 우리는, 언젠가 기차를 타고 돌아올게, 불가능한 이야기를 말하고 다시 어딘가로 향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고독의 본성이기 때문이며, 고독이 그런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더 이상 그것은 고독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있어, C (속표지) 이런 맥락에서, 이 말의 발화자인 C의 애인은 독자일 수 있다. C의 애인은 모래평원의 세계 밖에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내부에 있다. 도시와 모래평원을 잇는 철길. 완전한 타자도 완전한 내부자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우리는 C의 세계에 차 주인처럼 방문한다. 소년과 C는 서로 상반되는 욕망을 갖고 있다. 도시로 가려는 소년의 욕망, 차에 남으려는 C의 욕망이 각 한번 세우지 않고 처절하게 대립한다. 이 처절함은 외적인 양태를 지니지는 않고 각자의 내부에서만 발생한다. 욕망은 밀리고 당겨지는 일을 반복하지만, 누구도 이 끈을 손에 쥐고 있지 않다. 욕망들은 오로지 방문자들에 의해서만 그 길을 얻는데, 그들에게 길이 되어주는 순간 방문자들은 단순히 관람객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현현한 고독이 된다. 고독 속의 나타남은 파멸적이다. 파멸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두 가지 종류로 있었고, 두 가지의 파멸은 함께 실행된다. 고독에는 자비가 없다. 한 가지를 내어주고 한 가지를 얻어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려는 욕망이 작가에겐 없다. 이런 글쓰기는 자학적이기까지 하다. 육신을 집어삼킨 고독은 마지막엔 자기 자신마저 집어삼킨다. 결국엔 모든 게 사라진다. 성석제의 지적대로 이 소설의 문장은 범실이 “적은”데, 이는 바꿔 말해 범실이 얼마쯤 존재한다는 뜻이다. 청소년 소설의 잣대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완성도지만, 특수한 영역의 잣대로 평가될 소설을 작가는 원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나는 이 흠이 거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나는 오송이를 내 서재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로 남겨둘 것이다. 그동안은 “쓰기 위해 쓰여진 소설”의 틈바구니 속에 살아왔는데(이 방식도 전적으로 옳지만), 처음으로 “써야만 하기에 쓰여진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일단 만족한다. C에게는 허기도, 갈증도, 모래평원의 끔찍한 더위와 고통, 원인을 알 수 없는 가려움증 같은 것들도 전부 버텨낼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녀가 돌아오는 순간, 기차가 철길을 달려 단숨에 지평선을 타고 넘어 자신에게 도달하는 그 순간. C는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해 모래평원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모래평원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C는 선택해야 한다. 모래평원에서 애인을 기다리다 죽든가, 도시로 그녀를 찾으러 가든가. 하지만 소년은 C가 결코 도시로 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6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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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모래 평원은 어디일까?
한 소년이 있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고, 친구는 연인이 떠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언젠가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소년은 친구의 곁에서 함께 기다린다. 소년은 친구의 연인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소년은 친구를 떠나지 못한다. 그 친구는 친구일 수도, 형제일 수도, 혹은 소년 자신일 수도 있다. 친구의 몸은 점점 가려움증이 심해지고, 곧 다가올 모래 폭풍의 예감에 소년은 두려워진다. 소년은 끊임없이 친구에게 떠날 것을 간청하지만, 친구는 이제 집으로 가는 길조차 잃었다고 말한다. 그 모래 평원으로 집배원이 오고, 세금 징수원이 오고 강도가 온다. 경찰은 시름에 잠겨 한없이 먼 지평선을 향하여 떠났으며, 임산부는 시막 한 가운데서 비명을 지르며 죽은 아이를 낳는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사막은 있다. 그 황량한 곳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키우고 고독에 물을 준다. 그리고 세상의 거친 비바람에 시달릴 때 그 곳으로 돌아가 조용히 뜨거운 태양 아래의 모래에서 젖은 심장을 말린다. 어쩌면 소년의 모래평원은 소년의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곳에서 소년은 외롭고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 탐욕에 눈을 뜨고 거짓말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또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미지의 그녀를 기다리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모래 평원이 상징하는 것은 소년의 앞에 남아있는 이 거친 세상일 것이다. 그 곳에서 소년은 친구를 배우고 사랑을 알고 이별의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생의 질김을 깨달을 것이다. 또, 인생의 황혼인 사람이나 배가 부른 여자나, 혹은 짐을 들고 다니는 험한 사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소년은 유랑민들이 가르쳐 준 그 별자리를 볼 것이다. 별자리를 따라가면 쭉 뻗은 건조하고 뜨거운 철길과는 다른 곳으로 소년을 데려갈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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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친구랑 같이 책이나 읽으러 교보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게됬습니다ㅋㅋㅋ |
요즘 나오는 신예들은 어찌 그리들 하나같이 다 미모가 뛰어난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런 신예들의 글은 또 얼마나 역량이 뛰어난지 그것은 더 놀랍다. 그런 신예작가의 문학동네 청소년 장편소설 공모 대상박인 [모래평원의 개미들] 역시 절대 뒤지지 않는 놀라운 글을 만났다. 인생을 몇겹을 살아본듯한 그런 생각이 깊은 그리고 고뇌하는 청춘의 암담함을 그려낸 이야기. 묵직하면서 삶에 대핸 뛰어난 통찰력을 만나게 된다.
청소년 시절 누구라도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난 왜사는걸까? 난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거지? 과연 끝은 무엇일까? 어디일까? 그런 의문으로 가득찬 감성을 구성이 꽉찬 이야기로 그려냈다. 모래평원에 c라는 연인에게서 버림받은 한 남자와 남겨진 소년. 그 소년을 모래 평원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마치 걸음마 아이들이 인생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것처럼 그 소년은 앞으로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나아간다.
그 나아감이 결코 기쁘거나 행복하지는 않지만 어쨋든 인생인란 무언가 묵직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콜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얼마나 많은 방부제와 해악이 있는지를, 돈을 향해 쫓아나가는 사람들의 말로가 얼마나 뼈저린 후회를 수반하는 일인지를 하나하나 나열해간다.
그렇게 부를 축저간 아버지는 그 부를 고스란히 자신만을 맹종하는 개에게 주기를 소망하고 그런 결정에 어이없는 아들을 그 부를 자신의 앞으로 돌리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그 부자의 젊은 아내는 자신의 아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써 힘을 다하지만 역시 그녀에게 남는것도 별반 다를것이 없는 후회뿐이다. 사망으로 가는 모든길을 만난듯하다.
도시로 가도 역시 또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쪽 도시에서 저쪽 도시의 희망적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 도시를 찾아 애인을 버리고 떠난 애인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한 남자. 그런 삶의 고통어린 몸부림들이 모래평원에서 그려지고 있다.
작가는 그리 나이가 많지 않은듯한데도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여러가지 발상들을 해냈을까? 그렇게 잔인한 죽음과 죽음의 고통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려냈을까? 놀라운 물음표를 남기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또 다른 저자의 작품이 기대된다. 어떤 류의 삶을 그는 생각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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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발간하는 청소년문학문화잡지 『풋,』에서 상금 천만 원을 걸고 매년 벌이는 공모전이 있다. 원고지 500장 안팎의 장편소설로 우리 문학의 기대주를 앞서 뽑고 그로 하여금 뚜벅뚜벅 자신감을 갖고 문학으로 걸어갈 수 있게끔 독려하는 의미에서 책도 출간해준다. 제1회 대회 때는 필자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간이 무산되었고 지금 여기 2회 수상자의 소설을 선보인다. ~~ 출판사 리뷰중
그렇게 분명히 이책의 저자는 고등학생으로 명기해놓고 있었다. 한데
모래평원의 맥줄은 태양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에 바작하게 말라붙었다. 황량한 지평선은 침묵했다. 씨앗을 뿌릴 수도 없는 메마른 땅은 오랜 가뭄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물길을 낼 수 없을 만큼 딱딱하게 굳은 땅에는 생명이 뿌리내릴 틈이 없었다
p 12본문중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를 몇장 읽어나가면서는 대체 정말 이러한 문장을 구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믿기지가 않았다. 글은 작가가 살아온 세월이고 고민한 흔적이요, 사상이라 생각했는데 열여덟 어린나이에 이렇게 완성도 높은 표현력과 이야기라니....
세상과 단절된채 곧 모래폭풍이 다가올 모래평원에 살고있는 소년과 C가있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돌아온다는 무책임한 말을 남긴채 떠나버린 C의 애인을 기다리는중이다. 사람들이 살고있는 도시와 도시사이 숨어있는 땅, 그곳에서 생존하고있다는 믿지못할 사실만큼이나 자신들의 삶이 흐릿하기만한 그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는것조차 과분한일이 되고마는 땅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찾는이가 있었으니 그들로인해 C와 소년의 삶또한 변화를 맞이했다. 앞으로 모래폭풍이 올거라는 예시를 하고떠난 말을 잘 다루던 집배원소녀, 더 많은것을 누리기위해 욕심을 부리다 총상을 입고 도망쳐온 사내, 오래전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철길을 여전히 관리하고 있던 노인 세금징수원, 총상입고 도망쳐온 사내가 훔친 다이아몬드를 찾아 말을 타고 찾아온 경찰관까지 거기에 죽은아이를 쏟아낸 임신부도 있었고 개를 찾아 죽음의 사막으로 찾아들어온 노인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각각인듯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고, 한곳으로 향했으니 도시를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종착지는 죽음을 부르는 동시에 새로운 희망이 되고있었다. 또한 그들의 탐욕과 욕구는 소년에게 전염되며 우연치않게 손에 들어온 다이아몬드를 통한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게한다.
극복하기 힘든 갈증과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던 강렬한 태양, 도시인들이 살고있는 서쪽과 동쪽을 이어지던 거친땅 모래평원, 그곳을 찾아오고,떠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삶의 의미들을 바라보는 시선, 무심한듯 펼쳐지는 치열함은 거친 모래평원에서도 꿋꿋하게 뿌리내리며 다음의 미래를 꿈꾸게 만든다.
무수히 많은 모래들만큼이나 이야기의 상징성을 생각하게만든 결코 편안하지 않았던 이야기는 불투명한 미래를 내다보는듯도했다. 그속을 질주하던 개미들이 우리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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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C, 익명으로 표시되는 두 주인공들은 모래폭풍이 올 조짐을 보이는 불안한 모래평원에서 떠난 C의 애인을 기다린다. 떠난 C의 애인을 기다리기 위해 철길 옆에서 누군가가 버리고 간 자동차를 집 삼아 몇 날이고 지내면서 모래평원을 거쳐서 도시로 향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집배원소녀, 사내, 세금징수원, 경찰관, 임신부, 짐꾼, 개, 노인 역시 익명으로 불리는 여행자들은 소년에게 도시의 소식들을 하나씩 알려주고 떠나거나 소년의 눈앞에서 죽는다.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소년과 C, 소년은 모래폭풍을 피하고 싶어 도시로 가기를 원하지만 C는 상처까지 입은 터에 애인을 기다리는 갈망만 강해진다. 익명으로 등장하는 여행자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 같지만 이야기들이 모일수록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서로 짜 맞춰지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물질을 향한 욕망의 상징인 다이아몬드가 있다. 사내는 다이아몬드를 훔쳐 달아났고, 임신부는 그 다이아몬드를 훔친 사내를 쫓고 있으며, 노인은 다이아몬드를 훔쳐 달아난 아들과 다이아몬드를 물려주고 싶은 가장 사랑하는 개를 찾아 나선 길이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찾아 모래평원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모래폭풍이 온다는 소문만 무성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모래평원에서 사람들은 오래 지워지지 않을 핏자국을 모래 위에 남기며 죽는다. 도시와 떨어져 산 탓에 총도, 콜라도, 다이아몬드도 모르는 소년에게도 서서히 그들의 욕망이 전염된다. 예쁜 돌이라고 생각해서 주웠던 다이아몬드를 소년은 도시로 가서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모두에게 거짓말을 한다. 경찰에게는 세금징수원이 가져갔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고, 짐꾼에게는 경찰관이 가져갔다고 한다. 모래평원 위의 여행자들이 직업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들을 드러낼 때 나는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여러 별을 여행하며 여러 유형의 인간의 모습을 수집했다면, 소년과 C는 수동적으로 모래평원 위에서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그들의 이야기에서 도시의 정보와, 인간의 모습을 수집한다.: 사람들은 전부 어디론가 떠나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다. 설명할 수 없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공포, 불안, 위협들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표현할 수 없는 스스로를 피해 어딘가로 떠나간다. 평생 동안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가르쳐주거나 납득시켜주기에는 자신조차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기 때문에.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p.150) 작품 전체에 깔깔하게 휘도는 모래바람과 자신의 욕망 때문에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 무심하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 죽음을 목격하는 소년의 시선이 결코 편한 책읽기 분위기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바라볼 수록 낱낱이 반짝이는 모래처럼, 생각할 수록 많은 상징들이 숨겨져 있는 듯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