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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여자이름이 들어간 제목의 소설들을 눈여겨 보았다. 얼마나 대단한 여자들이길래 제목까지 이름일까하는 부러움과 나도 이젠 충분히 여자이니까 그녀들의 이야기를 한번쯤 읽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 때가 아마도 중학교 2학년때였던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여인시리즈와 부인시리즈로 정리되는 목록이 있었는데 [빨강머리 앤]을 기점으로 [마담 보바리]와 [차탈리 부인의 사랑]쯤에서 끝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 중간에 제인 에어, 스칼렛 오하라, 쟌느, 노라, 캐서린, 테스, 테레즈 데께루, 엘리자베스 베넷같은 이름의 여인들이 있었고 내겐 가장 고귀하고 우아한 이름이었던 안나 카레니나가 있었다. 여인시리즈는 생각보다 작은 글씨에 기대이상으로 길게 펼쳐지던 지리한 묘사때문에 눈이 저절로 감기던 일이 수없이 일어났다. 아! 도대체 나는 뭘 기대한걸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그들의 연애담은 언제 제대로 나올건지 앞뒤로 책장을 넘기며 전체를 이해하기보다는 한 줄의 오그라드는 문장을 찾느라 시간을 보낸 탓에 주인공 여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녀들을 알 것도 같다. 기억의 힘은 어리숙한 여학생에게 세월이 더해준 경험까지 포함하여 한층 원숙하고 성실하게 문장을 보도록 이끌었으며 작가가 마법의 가루를 뿌려서 생생한 옷을 입혀놓은 캐릭터들은 나의 상상과 현실속에서 존재할 만한 인물들로 되살아났다. 세월이 흘러서 다시 만난 고귀한 이름 [안나 카레니나]는 더욱 우아해졌을까, 아니면 이젠 어느 정도 만만한 상대일까. 적어도 책의 분량만큼은 만만치가 않았다. 그만큼 내용도 길고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과 사회적 분위기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뭐하러 이렇게 심사숙고하여 책을 읽어야만 하는지 그런 의구심을 마지막 책장이 눈 앞에 들어왔을 때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가 세상 사람들에게 안나를 제발 이해해달라고 그토록 길게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안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연애소설로 읽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열 네살의 나는 그저 서양 여자들의 연애담을 찾아다녔을 뿐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제목만 던져도 알아주는 책들을 이제는 심사숙고하여 읽고 느끼지 못하면 읽은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일 뿐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앞으로의 나의 독서체험도 이래야 한다는 다짐을 해보는 부분이다. 상상력이 극도로 부족했던 엠마 보바리란 여자는 속수무책으로 결혼을 해놓고 덧없이 그 상황을 후회한다. 그러면서 지루한 자신의 일상을 피해보려고 바람을 피우는데 그녀의 불륜행각은 참으로 밉상이어서 얼른 들키거나 아니면 정신을 차리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불륜시리즈에 속하기는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그런 보바리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사회적 입지가 두드러진 남자와 결혼상태인 안나는 스무살의 나이차와 감성이 거의 부족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아들 세료자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다. 그녀가 존재감을 갖는 이유는 바로 아들이 곁에 있어서였다. 그 어느 날만 아니었어도 안나는 그게 자신의 삶인 것을 의심치 않으며 한 생을 살았을텐데, 하지만 그 어느 날의 운명은 찾아오고야 말았다. 모스크바역에서 브론스키와의 스치는 만남은 손끝을 저리며 짜릿하게 불꽃이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날 이후 억압된 욕망은 어김없이 해제되었고 그들의 섬씽은 사교계 가쉽거리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타인의 사생활이야말로 사교계 파티의 안주거리요, 그들의 불행이 나의 즐길거리임을 가감없이 뱉어내는 야비함을 문장속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외모가 성격을 규정짓고 부적절한 관계가 대부분이었던 러시아 귀족들의 위선적인 분위기를 읽어낸다면 안나가 얼마나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과 사랑에 충실했는지 알게 된다. 그런 안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너무도 철저하게 사랑에 올인한 점이다. 남편은 물론 아들까지 버린 그녀에게 있어야만 하는 존재감은 바로 브론스키, 사랑밖에 없었으니 그 사랑이 의심되고 심지어 질투와 분노가 극도에 달하는 순간 안나의 자아는 분열되고 만다. 이는 그녀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 이유이며 자신을 던짐으로 그 사랑에게 최후까지 복수하려는 의도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그렇다면 안나의 운명인 브론스키는 어떤가. 그는 백작부인 안나의 아름답고 우아한 풍모에 홀딱 반한다. 안나와의 사이에 딸을 낳고 유럽여행을 떠나며 안나와 카레닌의 이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글쎄, 그의 진심은 사랑을 이루고 그 속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었나싶다. 백작이나 장교직에서도 별 흥미를 못느끼고 어머니의 유산만이 유일한 벌이인 이 남자가 안나의 마음을 절대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속에서 만난 브론스키들은 한결같이 잘생겨서 내게 한 인물을 탐구할 만한 여지를 주지 못했는데 글속에서는 그게 보였다. 이제라도 달콤한 미남자가 던지는 추파에서 깨어났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도 세월에 감사할 일이다. 나는 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감정과 이성의 추를 비교하며 여기에 서 있다는 거. 이게 중요한 포인트이다. 돌리라는 여자는 안나의 올케로 모든 이들이 안나의 애정행각을 자신들의 속마음과 도덕성은 제쳐두고 보고싶은 대로만 볼 때 그녀를 이해하고 심지어 공감까지 하게 된다. 돌리 또한 남편의 바람기로 여러차례 심적 고통을 당한 바 있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안나의 운명적인 사랑찾기에 일정기간 마음이 가는데, 나는 그녀의 마음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녀의 지난 15년간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는 문장이다. 임신, 입덧, 지혜의 둔화,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모의 변화, 그 젊고 아름다운 키티도 그렇게 보기 싫게 되어버렸는데 내가 임신하면 정말 볼 만 할거야. 나도 알아. 출산, 그 끔찍한 고통, 그리고 마지막 순간....그리고 수유, 잠 못 이루는 숱한 밤들, 그 무시무시한 고통.... 여자들이 읽으면 슬픈 문장이다. 목놓아 우는 슬픈 사슴같은 한 여자의 울부짖는 침묵에 밑줄을 그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캐릭터는 바로 콘스탄틴 레빈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도 아니면서 톨스토이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이 한 사람에게 모조리 투영되어 있다고 할까.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그게 안보이지만 갈수록 변화되어 가는 사람의 감정과 이성적 경험들이 레빈의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드러난다. 그가 사랑한 여인 키티는 예전에 브론스키를 짝사랑했다. 그걸 알기에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이 자칫 상처받는 일이 되어 자신에게 비수로 돌아올 것을 염려하고 그녀의 진심을 알고 난 후 결혼을 해서도 약간의 의심과 질투를 범하는 유약한 남자의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자신과 키티가 공통의 관심사인 자연속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삶을 영위하고 주변의 농노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며 인정을 사게 된다. 가난과 핍박의 농노들이 한 지혜로운 사람과 협조하여 도시의 퇴폐적인 사교계와는 다른 인간적이며 자연적인 일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레빈의 가치, 아니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눈치챌 수 있다. 레빈은 시시각각 자신의 삶에 물음표를 던진다. 철학과 종교에 심취된 레빈은 땅을 일구고 그 땅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법을 고민한다. 몰론 중간에 형의 죽음으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한 회의가 들어 자살에의 충동을 일순간 느끼기도 한다. 매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상대를 의심하며 화도 내지만 결국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남자로 돌아간다. 1861년 당시 러시아는 농노해방의 시기로 크림전쟁이후 거칠어진 사회 분위기와 무분별하고 쾌락적인 사교계, 지방 자치제의 무능력한 인사 기용에 따른 질타가 이어진다. 카레닌이 수장으로 있는 위원회의 탁상공론에 빠지기만 하는 활동이나 빚이 천지인데도 경제적 능력과는 상관없이 화려한 삶을 누리려는 상류사회의 무책임한 행동이 자아낸 몰락이 당시의 분위기이다. 톨스토이는 바로 이런 러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를 장편의 소설에 담아내고 있다. 그가 마법의 가루를 뿌려 창조한 불완전한 인물들의 일상에 위기의 러시아 사회가 있었음을, 안나를 통해서, 브론스키를 통해서, 레빈과 키티를 통해서, 행복의 가치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아 있고 불행한 가정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다르다는 첫 문장에 던진 날카로운 진실을 살아가는 동안 매번 돌아보게 될 것 같다. 요즘 삶에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지론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