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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이든 무심코 습관적으로 내 뱉는 말이든, 또는 그렇게 세상에 잘못 훈육되어 당연한 것으로 알고 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언어 습관이든, 우리는 도처에서 이러한 왜곡된 논리에 포위되어 살고 있다는 주장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이 재치 넘치고 예리한 통찰의 저술에서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신문, 방송 등 매스컴, 정치판, 종교론자들, 각종 주장을 담고 있는 책들에서 무수히 이러한 거짓 논리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기 일쑤인 것인 현실이다. 더구나 시간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오류임을 알기는 어렵지 않으나 그 순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을 에워싸고 우리 삶의 이해에 직결하는 이런 오류들을 구별하는 것은 진정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터무니없거나 말도 안 되는 오류와 거짓 논리를 식별함으로써 우리의“지적 면역체계를 튼튼히 하는데”충분할 정도의 식견을 제공해 주는 이 저술의 가치는 오늘의 혼란스런 사회를 조금은 현명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크게 12가지의 논리적, 인지적 오류를 중심으로 우리들의 사고를 속이는 나쁜 생각들을 속속들이 드러내주고 있다. 극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저질러지는 하찮지만 감정을 상하게 하는 오류에서부터 정치적인 술책으로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하는 파렴치한 오류, 진실과 믿음을 혼동시키는 종교론자들의 기만적 오류, 허영과 위선을 숨기기 위한 반계몽적 오류 등 사실과 진리를 호도하고 본질을 회피하는 비열한 술책들이 숨 막히게 우리를 포위한 채 기만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접하게 되는‘나쁜 생각(bad thoughts)' 중에 종종 우리의 견해가 틀렸음을 입증하지 않은 채 황당한 반박으로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더 잘할 수 있어?”, “당신이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라던가, “그렇게 말 할 줄 알았어!”와 같은 폭력적 논박을 한 번쯤은 당해 봤을 것이다. 이러한 아무런 논리적 입증도 없는 논박들은 악질적이고 비뚤어진 생각임에 불과하다. 더 잘할 수 없다고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니며, 어떤 의견에 일관성을 가진다고 비판당할 이유도 없다. 또한 똥 묻었다고 겨 묻은 개에게 겨를 털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진실과는 무관한 “시끄러워! 입 다물라!”하는 식의 상대와 진리를 얘기하는 것은 물 건너간 얘기인데, 정치에서는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이것은 OO당의 트집잡기 입니다!’라던가, 상대 정당의 발표 중에‘이미 충분히 듣지 않았습니까?’라고 차단하는 행태가 곧 이러한 악질적 실례라 할 수 있다. 한편, 정치에 가장 난무하는 대표적인 논리적 오류로‘동기의 오류’를 들 수 있는데, 어떤 의견을 뒷받침하는 숨은 동기가 있다고 해서 그 의견이 마치 틀린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한국 의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조금만 유심히 바라봐도 그네들에게서 진지한 정책적 논의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의 장점에 대한 논의 대신 그 정책을 발표한 정치인의 동기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무성한 억측을 내놓는 것이 그것인데, 정책이 미칠 결과보다는 그것을 내놓은 원인을 조사하는데 더 관심을 가지는 기현상, 즉 정략적 이기심에만 눈이 팔려, 정작 민생이나 국가 경제와 외교적 현실에 무능한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책에는 아주 재밌는 예가 등장하는데, 형사소송에 고용된 원고와 피고의 총잡이들(변호사)의 일화다. 사실 이들은 살인자가 되었든 사기꾼이 되었든 돈만 주면 대변하는 자들이다. 아마 이기적이라고 치면 이들만큼 심각한 자들도 없을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둘 중의 한 쪽은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자, 어떤 변호사가 더 많은 수임료를 받았는가하는 동기를 알아내는 것이 판결, 즉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가? 결코 변호사의 동기를 밝혀내봤자 사건의 진실을 판결하는데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명확한 증거를 찾는데 열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기의 오류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한국정당의 실상이다. 끝으로 허위로 가득한 우리 세상의 웃기는 현상을 말하는 지적 허영이란 반계몽적 논리의 오류가 얼마나 우리의 언어를 훼손하고, 세상을 공허하게 하는지를 보자. 정말 쓸데없는 자들이 쓰레기 같은 말로 먹고사는지 관찰의 기회를 갖게 되는데, 아마 이 문장을 보면 늘 보던 것이란 생각이 들것이다. “미국의 금리가 기준 금리 3퍼센트 미만에 머물고 시장 심리도 긍정적이라면 금값은 단기간 내에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우리의 고위 경제 관료나 경제학자, 금융전문가라는 자들이 통상 교활하게 뱉어내는 말이다. 조건이 있다. 기준금리가 3퍼센트 미만에 머물러야 하고, 시장심리도 긍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게다가 애매하기조차 한 단기간이란 조건이 또 붙는다. 시장심리가 긍정적으로 유지되고 금리가 낮은 상태로 계속되면 당연히 금값이 오른다. 더구나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으면 금값이 내릴 터이니 이 문장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완전 사기꾼의 말 아닌가! 교묘한 말을 끼워 넣어 교활하게 실수를 면하려 하고, 어떤 정보도 없는 말. 이런 예는 ‘친서민’정책을 표방한다고 선전하는 지금의 정부가 도대체 무엇이 친서민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단지 서민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겠다는 국민에게 아첨하는 공허한 소리이상이 아니다. 아무런 정보를 갖지 않는 말. 이것이 바로 반계몽적 논리의 오류이다. 오늘의 세상에 가득 찬 위선과 거짓, 헛소리인 논리의 오류들을 소개하여 우리들이 이러한 논리들을 이겨내고 정당한 진실과 진리를 발견케 하여 보다 낳은 삶을 구현할 수 있도록 거침없는 통찰을 쏟아내는 이 저술을 읽는 내내 그 단순한 성찰에 담긴 이면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파스칼의 내기 논증방법’이나‘신비책략’의 논리적 허위의 구멍을 공략하고, 전이(轉移)된 전문성과 같은‘권위의 혼동’에서부터 일반화의 자가당착이나 금지와 관련한 논쟁에서의‘논점회피’술책, “어떤 일이 일어난 일을 보고 전자를 원인이라고 생각하는‘이다음에 그러므로 이 때문에 오류’”나, 통계, 도덕병에 이르는 거짓과 진실을 혼동시키는 다양하고 풍부한 오류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씩 웃게 만드는 비판에서부터 명쾌함으로 후련한 기분을 느끼게도 해주고, 사뭇 진지함의 눈으로 정치와 종교 세계의 허위도 보게 해 주는 저자의 논리적인 비판사고에서 한 동안 흐뭇한 지적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거짓을 알아차리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내 긴요하고 중대한 지혜일 것이다. 이 뻔한 진부한 말은 진실이기에 지겹지만 진리란 본디 우리에게 익숙해서 지루하단다. 정말이지 우리의 구멍난 논리를 말짱하게 메워주는 쾌작(快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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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오류가 가끔 기억난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것 중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순환 논법의 오류, 권위에의 호소 등이 있다. 너무 복잡한 것이라 다 외우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대충 발음하기 재미있는 것 위주로만 기억나는데 이 책을 보다 보니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오류를 배우는 시간처럼, 순전히 그런 내용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고 그러고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는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지 다양한 실례를 들어 설파해준다. 학교 다닐 때는 이런 것 굳이 필요없을 것 같았는데 이 책을 보니까 전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어떤 오류보다 더 구체적이고 여러 유형을 알려주기 때문에 찬찬히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애매어의 오류, 동기의 오류, 권위의 오류, 편견, 논박, 반계몽주의, 불일치, 애매한 말, 논점 회피, 우연, 통계, 도덕병까지 총 12가지 항목으로 진행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오류를 철저히 분해해준다. 두 사람이 어떤 주제를 놓고 제 주장을 펼칠 때 한 사람이 “나도 내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어!”라고 하곤 모든 이야기를 끝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람이 제 의견을 가져 한 가지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의 주장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꼭 상대방에게 제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만 대뜸 말하고는 이야기를 끝내 버리니, 가슴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상대방은 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다른 사람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그저 그 의견을 서로에게 설명해준다고만 생각하면 될 텐데 괜히 과민반응을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제 주장을 관철시킬만한 논거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뭐, 이것은 정확히 확인된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보통 그런 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나도 내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어!”라는 말은 어떤 문제에서 권리 문제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겨버리는 아주 희한한 대응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고 황당한 말을 실생활에서 쉴새없이 한다는 것이다.
간혹 토론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항상 먼저 정리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용어의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인데, 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같은 단어라도 그 상황과 제 의도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도 맞고 다른 식으로 표현해도 그 단어의 의미가 맞다고 할 때, 한 가지로 통일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전에 ‘홍길동의 의적활동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런데 찬성팀과 반대팀에서 똑같은 ‘양반’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쓴 적이 있었다. 찬성팀에서는 ‘양반’을 ‘탐관오리’로 사용했고, 반대팀에서는 그저 그 의미대로 사용해버려서 토론의 마무리가 없고 계속 빙빙 돌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면 사람들이 얼마나 생각이 주관적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은 악한 의도에 따라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하는 행동인데, 그것이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이라는 것이 실제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추상적이고 기호적인 기능을 위주로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이런 오류도 간혹, 아니 항상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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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생각
보는 내내 이건 뭐야...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책
독자를 위한 글이라기 보다는 읽는 내내 자기불만토로라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아 거부감이 들었던 독자는 나뿐만은 아닐것같습니다..
우선 1인칭 주어 '나'가 결정적이었던듯
'나는 ~~'부터 작가의 남을 깔보고 무시하고 본인은 항상 옳다는식의 거만한 태도가 계속 거슬려서 책을 읽는게 고역이었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예시들의 연속에 ....
당신은 자기 의견을 가질 권리를 없다라...
영,한 문화차이인가.... 실생활에서 저런식으로 말하는건 여태 한번도 듣도보도못했고...
뭐라는지 하나도 이해못하겠고
내용도 예상하고 구매했던것보다 전문성도 기대치 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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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하겠다.(물론 말이 길어질 수도 있다.) 이 책 <나쁜생각>이 난 너무 너무 재미있다. 실은 아직 다 읽지도 못했다. 이 책 <나쁜생각>은 급하게 읽고 싶은 책이 아니다.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해 가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유머집을 읽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봤다. 어제 읽었던 부분을 오늘 또 봐도 재미있다. 그래서 다 읽기도 전에 이렇게 서평도 쓴다. 이렇게 유쾌한 기분이 실로 오랫만이기 때문에 같이 나누고 싶다.
이 책 <나쁜생각>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내가 삐딱해서 일까. 이 책은 '좋은생각'과 완벽하게 대치되는 '나쁜생각'이라는 제목부터 심상치않았다. 대통령 조차도 긍정적으로 살라고 한마디 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나올 수 없는 제목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나쁜 생각'이란 상대방의 의도를 곡해하고 삐딱하게 보라는 것이 아니다. 위선, 엉터리 통계, 헛소리, 여론, 거짓 논리 등의 '나쁜 생각' 속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법을 알라는 것이다. 논리적 오류를 알아채고 대처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초등학교 무상급식에 대해서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한 것도 이런 '나쁜 생각'에 포함되지 않을까.
이 책 <나쁜생각>을 쓴 제이미 화이트는 거침없다. 그래서 읽는 내내 속이 다 시원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몰입할 것이라고는 처음 책을 선택할 당시에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특이한 제목이라는 생각에 한번 읽어볼려 했을 뿐이다.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표지에 쓰인 파란색도 너무 예뻐 보인다. 단순히 차가운 것 이상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흐른다.(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이며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안내서 '나쁜생각'은 모두 12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애매어의 오류, 동기의 오류, 권위의 오류, 편견, 논박, 반계몽주의, 불일치, 애매한 말, 논점 회피, 우연, 통계, 도덕병 이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도 되고, 중간 중간 읽고 싶은 부분 부터 읽어도 된다. 결국 마지막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논리적 오류'에 속지 않게 될 것이다. 정치인이나 권위있는 학자들이 하는 말 속의 숨은 의도를 찾는데 주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대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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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만 쉽지않은것이 사람의 생각이다. 얼핏 보면 사람의 생각은 견고하고 잘 흔들리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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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생각 이라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않게 접하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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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와 언론등 실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있는 눈에는 잘 띄지 않는 모든 권력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독재도 없고 겉으로 보면 아주 민주적인 것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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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되고 과장되기 쉬운 모든 자료들, 애매한 표현이나 출처가 권위있는 곳이라는 등의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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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대충의 짐작으로 시작되는 독서들이 꼭 있다.
'정치적 취향이 강한 글들이 많이 담겨 있으려나...'
약간은 복잡하게 시작된 이 파란색 표지의 책읽기는
우리나라에선 철수나 영희정도의 이름이 될
제일 중요한 것 하나!
그 다음 중요한 또 한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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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라는 법언보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종교적 수사를 더 좋아한다. 현세적 성격이 강한 나로서는 낮은 데로 임할 구체적인 대상이 권리였으면 한다. 자신의 권리를 알라. 왜? 권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권리는 늘 충돌하기 마련이라 억눌리기도 쉽다. 권리를 모른다면 억압과 부조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권리의 해석은 곧 사회에 대한 이해다. 이는 사회의 어떤 면에 관용의 정신을 보여야 하고 어떤 면에 강력한 감시를 해야 하는지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권리를 알면 더 나이 든 사람,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좀 특이하게 <나쁜 생각>이다. 생각은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으로 나누어 진다. 좋은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타나고, 나쁜 생각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접하게 되는 것들을 논리상의 오류, 나쁜 의도를 숨기려고 하는 교묘한 술책, 엉터리 통계를 인용하는 뉴스 기사 등 논리를 위반하는 것들 즉, ‘나쁜 생각’들을 재치 있게 그리고 가차 없이 폭로하고 있다. 저자 제이미 화이트는 젊은 철학자로서 논리를 무시하는 세상을 향해 무조건 냉소로 무시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다양한 거짓 논리들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12가지 접하기 쉬운 논리적 오류들 즉, 애매어의 오류, 동기의 오류, 권위의 오류, 편견, 논박, 반계몽주의, 불일치, 애매한 말, 논점 회피, 우연, 통계, 도덕병 등을 쉬운 예를 들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에서만 그 권위를 인정받을 뿐이며,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애매한 말을 늘어놓아 헷갈리게 하는 위선에 가득 찬 학자들, 우연한 일치일 뿐인 것을 뭔가 특별한 일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통계를 교묘히 이용해 객관성을 높이려는 정치가ㆍ저널리스트의 속셈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고, 우리를 ‘나쁜 생각’에 속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 준다.
정치가들은 왜 여론을 들먹이는가?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궁극적으로 국민이 정치적 권위자이다. 국민은 정부를 선택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국민은 경제, 법체계, 국제관계 등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야 말로 ‘권위의 오류’이다.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 알기위해서 여론조사를 하거나 투표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부분은 진정한 전문가에 맡겨야 한다. 국민이 반대한다고 나쁜 생각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은 사교육을 질색해 반대하고 어떤 정치인은 나라가 교육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양측 모두가 국민의 뜻이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누가 옳은지를 결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민이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있지도 않다.
이 책을 처음 부분을 읽을 때는 솔직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나 자신이 이런 류의 책을 대하기는 처음이었던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읽다가 보니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를 알게 되었다. 때로는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후련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고, 저자의 깊은 통찰력을 통해 지적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읽어보아야 할 가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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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것도 최근에 들어서다. 감정적인 사람은 나 자신을 구체적으로 알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뭐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최근에 대부분의 여자들이 감정적인데 여자이면서도 이성적인 한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생겼다. 그때 내가 감정적인 사람이란걸 알게 되었고 그런 내가 논리적이거나 비판적이지 않다는 흑백논리 그런걸 주장하려는건 아니지만.. 나는 논리적, 비판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단 누군가와 시비가 걸리면 회피하고 도망가기 때문이다. 따지고 드는 누군가에게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생각>을 집어들게 되었다. 논리적이며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쁜 기대감으로 말이다.
작가의 나이는 잘 모르지만 어린 나이에 이미 굉장히 많은 지식을 책을 쓰는데 사용한 유망주인듯 하다. 그런 작가의 지적 능력은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었다^^;;;
작가는 참 지금까지 내가 만난 작가중에 가장 못된 성격인거 같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가 분노하고 있다는걸 느꼈다. 분노때문에 못된 성격이라고 결론짓는 중이다. ㅋ
예를 들면 기독교^^;;를 강요당한거 같았다. 그런 작가에게 진리라고 주장하는 기독교는 반감을 살만한 충분한 그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진리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수많은 이야기들, 예시들, 단어들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비판하려고 할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어쩌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예시가 때로는 너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이 깊은 책의 뜻들을 이해해보려고 집중하고 머리를 마구마구 굴렸다. 예시들도 한글자 한글자 짚어가며 읽었다.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는 대부분 작가만의 비판 스타일로 결론지어졌고 나는 대부분의 작가의 의견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 솔직한 이 영국 작가는 자신을 너무나 많이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작가가 드러낸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할 것 일수도 있다. 아무튼 이 작가의 수많은 비판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것들이다. 너무 의외의 것에서 새로운 비판을 해내는 작가의 능력에 말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수많은 진리를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수많은 예시와 단어를 제시해내는 작가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
무언가 새로운 생각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읽어도 좋을 책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책 제목처럼 비판은 나쁜생각이다. 그냥 믿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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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생각>은 사회에 만연하여 당연하게 여기게되는 논리적 오류들을 꼬집고 있다.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나이를 벼슬로하여 내세워지는 비논리적 언행들이 횡행하고 있는데, 이는 옳고 그름의 인식유무를 떠나 기득권층의 판단을 받아들여야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라 논리적인 사람이라고해도 반박의 힘을 내기 힘들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사고한다고해서 사회에 그 논리를 타진할 수 있거나 가시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보다 현명한 눈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수많은 논리적 오류를 동반한 선동에 눈을 뜨기 위해 필요한 도서이고, 지배층이라면 평소 간과했던 논리적 모순들을 점검해보는 차원에서 읽을만하겠다.
위정자들과 언론들은 수없는 논리적 모순들을 일삼아가며 대중들을 선동하고 현혹시킨다. 그들이 시민들에게 바라는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해 보도하는 정보의 자료나 통계들이 얼마나 확실하고 신빙성있는 내용인지 확인할 길이 없기에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은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논리적인 오류들이 눈에 띄어도 워낙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 자체가 모호하고 막연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다가가 비판하기가 힘들기도 하기 때문에 비판의식에 대한 의욕도 나이가 들면 점차 사그라드는게 현실이다.
우리나라같은 경우엔 특히나 먹고살기 급급했던 세대에서 문화적 풍요를 누린지 긴 시간이 지난게 아닌 탓에 국가에서 내려오는 지침대로 그저 따르기만했지 냉철한 시선으로 사회적 모순을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상식이 부족하다. 지금이야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나 이번엔 왜곡된 경제문화로 책임의식과 도덕적 결여에 대한 문제에 머리아파하고 있느라 정치적인 문제에까지 신경쓰기 어려워졌다. 결국 어떤 시대에도 본인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는데 급급할 뿐 사회적인 정의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한때는 대중들의 눈과 귀를 트여주는 존재였던 매스미디어였지만 지금은 대중의 성향을 성형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불평과 불만을 갖지않게 하기위한 흐름 속에서 상식있는 지도계층들의 계몽선도가 있을지라도 생계유지에 더 비중이 큰 일반사람들은 결국 사회적모순을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생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위처럼 사회지도자계층과 언론매체만이 논리적 모순을 일삼는건 아니다. <나쁜생각>에선 그 외 판촉영업사원이나 종교인들, 상대적인 연장자들이 일삼는 폭압에 가까운 억지등이 갖는 논리적 오류들을 규탄한다. 우리가 평소 받아온 교육이나 상식선에서는 잘못을 알아차릴 순 있을지 몰라도 논리적인 오류를 추론하기란 어려운데, 그런 생활과 밀접한 부분까지 예로 들어가며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논박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교육수준이 높아진 지금에서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까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사고방식을 강요받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다양한 사고의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에서 역으로 민주주의사회가 지향하는 국민상으로 살기위해 아둥바둥하는 것은 아닌지? 언론과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비판적 사고의식이 자우되지는 않는지? 지금까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왔던 사고방식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앞으로도 지금 의무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은 입시를 목적으로 공부하느라 논리적인 사고들을 체계화 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대학입시에서나 만나게 될 논술에서조차 입시에 맞는 형식을 익히느라 정형화 된 논리들을 갖게 될 텐데, <나쁜생각>과 같은 인문서적들이 대중화되어 사회구성원 각각이 다양한 사고와 비판적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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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관련 서적으로 딱딱하지않아 좋다. 특히나 여기저기 베껴쓴 흔적이 없어서 좋다 자기만의 시각과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도 신선해서 좋다. 읽어보고 권해보고, 좋다
고급 내용이야 없지만 술술 읽힌다. 변호사의 논증법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