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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지만 클래식은 그렇게 자주 오래 들어보지 못했다. 우연히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 연주곡을 들으면 좋다 여기기도 하는데, 더 알려 하지 않다니. 그건 왜인지 모르겠다. 알고 싶은 때도 있었던가. 예전에 음악을 들어보려고 CD를 산 적 있다. CD 열장에서 들어본 건 몇장 안 된다. 클래식에 아주 조금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는 게 어딘가. 나만 그런 건 아니겠구나. 그건 자주 오래 들어야 귀에 익을 거다. 대중음악은 몇번 들으면 익숙해지는데. 음악이나 운동은 듣고 보기보다 자신이 하는 게 더 재미있다. 클래식을 오래 자주 듣지 못하는 건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피아노를 오래 배웠다면 나았을까. 여기에서 마사루는 음악과 운동은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언젠가 내가 피아노 배우는 건 돈이 많이 드니 타자를 배웠다고 했는데, 여기 나오는 어떤 소설가(온다 리쿠 생각이기도 하겠지)는 치아노 치는 것과 컴퓨터 키보드 치는 걸 비슷하게 여겼다. 재미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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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ㅡ 온다 리쿠 ,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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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많지만, 어떤 특정한 이에게 꼭 추천하고 싶고, 선물하고 책을 만나는 게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꿀벌과 천둥』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읽으며 누군가를 떠올렸고, 그래서 책을 더 주문하게 되었다. 좋은 책이다, 아니다를 떠난 문제다.
사실 내용을 알고 읽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2017년에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연달아 수상한 작품이라는 ‘광고’에 현혹되어 읽게 된 것일 뿐이었다. 제목도 한 몫을 했다.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내용을 연상시키는 제목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술과 음악을 비교하면, 음악은, 적어도
최근의 대중적 클래식은 별로 창의성에서는 평가받기가 힘든 것 아닌가 하는. 대체로 연주가 눈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그 연주는 그저 지난 300년 동안의 음악을 반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음악을 이 사람도 연주하고, 저
사람도 연주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건, 미술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이 사람도 그리고, 저 사람도 그리면서도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음악에서
창의성은 거의 대부분은 연주가 아니라 작곡이고, 그래서 연주자들을 조금 밑으로 본 것도 부인할 수 없다(소설에서 마사루가 현대의 클래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갖는다는 건,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는 걸 반영한다고 본다). 사실 미술과 음악에서의 창의성 문제가 어떻게
다른 건지 이해도가 깊지 않았다.
『꿀벌과 천둥』은 음악의 창의성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의 가지마 진, 에이덴 아야,
마사루, 다카시마 아카시의 연주에 대한 감상은 다소 호들갑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만큼의 상상력을 가지고 연주할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거대하고도 구체적인 연상이 그리 쉽게 떠오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이제 콩쿠르에 입문하는, 말하자면 아직은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서, 비록 그들이 천재적이라고 할 지라도 그런 느낌을 갖는 게, 혹은
그렇게 평가하는 게 다소 호들갑스런 일본인스럽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러나 적어도 음악을 통해서 위안을 받고, 서로 고양되고, 감동하는 모습은, 음악이 표현하는 게 구체적일 수 있구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구나, 그게
음악에서 창의성의 요체구나, 하는 걸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소설은 음악이, 음악 연주가 창의성을 갖추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소설은 세 명의 천재와 한 명의 늦깎이 피아니스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꿀벌을
치는 가정에서, 피아노도 없지만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소년 가자마 진,
어릴 적부터 천재소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무대에서 도망쳐버린 에이덴 아야, 어린
시절 어느 소녀에 이끌려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그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려 계속 피아노를 쳐온, 천재 피아니스트 마사루,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피아노에서
멀어졌었지만, 마지막으로 꿈꾸던 길을 다시 걷게 되는 다카시마 아카시.
이들은 콩쿠르에서 경쟁하는 관계지만, 절대 그런 느낌을 갖지 못한다. 특히 가자마 진과 에이덴 아야, 마사루의 경우를 보면, 이들이 각자 자신의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합주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자마 진은 자신의 길을 가고, 에이덴 아야는 가자마 진과 마사루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음악을 찾아가고, 마사루도 에이덴 아야를 통해서 음악의 진정성을 느끼고 한층 성숙한
모습을 갖추어 간다. 말하자면, 이들은 각자 천재지만, 누군가 사라지면 그 느낌도 사라져버릴, 어쩌면 합체 같은 느낌이다. 온다 리쿠가 창조해낸 이 인물들은 사실 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여러 음악을 직접 들으며 읽었다.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그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는 없었지만(가자마 진이, 에이덴 아야, 마사루가 연주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그래도 그 음악이 무엇을 표현하려고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내 수준에서는 된 것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책을 선물로 누군가에게 주지만, 나 역시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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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처럼 음악이 조미료가 되는, 아니 가끔 음악으로 인해 작품이 촉발되는 작품이 있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행간부터 책장을 덮고, 아니 그 후까지도 음악이 전부인 작품이다 (장의 이름들 모두 재즈부터 클래식까지 모두 음악곡 제목들이다. 근데 가끔은 그 곡들과 그 곡이 장으로 쓰인 내용들이 그닥 일치하지않는 듯한 부분도 있었다)
마치 만화 [신의 물방울]이 와인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해주었지만, 가끔 그 시각적인 표현이 만화적으로 희화화되는 부분도 있는 것처럼, 이 작품도 특유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이 연상되는 부분도 없지않았다. 하지만, 음악을, 클래식 음악을 대하는, 4명의 다른 성별, 인종, 국적, 개성, 사연의 연주자, 그들을 가르치는 음악교사, 그리고 청중으로 돌아와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감상하는 연주자들, 그리고 그 연주자들의 가족들, 그리고 심지어 음악계 소식에 파삭한 음대생이나 팬들 뿐만 아니라 그외 사람들까지, 음악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서, 음악이 얼마나 삶을 채우고 있었는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일본의,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계회사들이 모여있는 요시가와시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피아노콩쿨. 파리, 뉴욕등 부터 오디션이 시작되고, 4명의 유력한 우승후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타계하였지만, 그 영향력과 인격 등으로 아직까지도 그들의 제자 뿐만 아니라 음악계를 흔드는 이름, 유지 폰 호프만을 5살때부터 사사한, 자유로운 영혼의 가자마 진 (그의 진은, 대개의 일본인이 쓰는 仁이 아닌, 먼지 티끌을 의미하는 塵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아마도 우주에서 티끌을 뺀 나머지를 흔든다), 천재소녀였지만 스승과 어머니의 잇다른 사망으로 음악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에이덴 아야, 그리고 일본에서의 이방인이던 시절 음악의 자유로음에 빠져들었던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그리고 뛰어났으나 충분히 뛰어나지 못해 음대졸업후 악기점 직원으로 결혼와 아이의 탄생 뒤 다시 콩클에 뛰어는 다카시마 아카시.
책을 잠시 놓았다가 다시 들어도 기억할 수 있었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말처럼, 나는 시종일관 읽는 내내 가자마는 폭풍, 바람, 풍요함을 모두 갖춘 거대한 자연을, 에이덴 아야는 대지에 내리는 비, 마사루는 해가 찬란히 빛나는 광할한 바다, 그리고 아카시는 따뜻하고 풍요롭게 가을의 곳간을 가득채운 벼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서는 다카시마 아카시,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가자마 진, 에이덴 아야의 순서이다)
처음엔 이 음악들을 따라서 읽는다는게 꽤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나중에 가선 이들 4명의 개성이 다르고 또 같은 곡들을 연주하는 이들 또한 다른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니, 책을 읽는 흐름을 깨뜨리면서 따라 듣지않아도 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이 곡들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계속 들을 것이고, 1차, 2차, 3차 예선으로 가면서, 이것은 콩쿨에서 누가 우승하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음악을 받아들이고, 내 안의 음악을 끌어내고, 또 나를 어떻게 오픈하고 어떻게 외부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간의 경쟁이 아니라, 가자마의 음악을 듣고 자신 속의 음악을 되살리고 이에 답하는 아야의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음악이 전부인, 그 이상의 작품이기는 했으나, 또 작곡가의 의도나 정통적인 해석은 그닥 중요하지않았음에도 자꾸만 [신의 물방울]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특히 리스트 작품 소개 부분) 음악 자체가 아닌, 입체적인 아닌 2차적 인물들의 이야기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곡들을 다시 들을땐 나는 어떤 이미지와 이야기를 떠올릴지, 같은 곡이라도 에이덴 아야처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시도해보려고 한다.
참, 콩쿨의 결과는 꽤 마음에 들었다. 누가 우승하고 몇등이고가 마음에 들었다는게 아니라, 각자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주었다는, 그 누구도 (음, 제니퍼 챈은 불만을 가지려나) 서운하지않을 결과였던거 같아서. ^^
p.s: 온다 리쿠 (恩田陸)
도노코 이야기
1992 여섯번째 사요코 六番目の小夜子 오후 1시에 움츠러들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긴 처음이다 1994 구형의 계절 球形の季節 불안한 동화 不安な童話 불안한 결말 1997 삼월은 붉은 구렁을 三月は深き紅の淵を 온다여사의 환타지 삼부작 1번째 빛의 제국 光の帝国 常野物語 ==> 후속작 : 민들레 공책 1999 코끼리와 귀울음 象と耳鳴り 온다 리쿠의 본격추리물 단편집, 이 가족의 활약이 기대된다 목요조곡 木曜組曲 2000 달의 뒷면 月の裏側 전설이 되지못할 순응이 안타깝다 네버랜드 ネバーランド 보리의 바다에 가라앚는 열매 麦の海に沈む果実 2001 上と外 舎文庫 puzzle[パズル] ライオンハート 메이즈 MAZE[メイズ] 도미노 ドミノ 흑과 다의 환상 黒と茶の幻想 2002 독서실의 바다 図書室の海 劫尽童女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ロミオとロミオは永遠に ねじの回転 굽이치는 강가에서 蛇行する川のほとり 겉과 속의 의도가 다른 인간의 무서움 2003 한낮의 달을 좇다 まひるの月を追いかけて 온다 리쿠 여사, 그녀는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クレオパトラの夢 2004 황혼녁 백합의 뼈 黄昏の百合の骨 禁じられた楽園 Q&A 인간내면을 가지고 노는, 장르문학의 화학자 온다 여사 밤의 피크닉 夜のピクニック 여름의 마지막 장미 夏の名殘りの薔薇 2005 유지니아 ユージニア 일본의 '기'와 시각적 강렬함이 더해져서 그녀의 소설은 언제나 춥다 민들레 공책 蒲公英草紙 常野物語 ==> 빛의 제국 후속작 2006 네크로폴리스 ネクロポリス 엔드게임 エンドゲーム 常野物語 ==> 민들레 공책 후속작 초콜릿 코스모스 チョコレートコスモス 中庭の出来事 2007 1001초 살인사건 조금 범상치않은 꿈일기 정도 朝日のようにさわやかに 木洩れ日に泳ぐ魚 나비 いのちのパレード 2008 불연속의 세계 不連続の世界 어제의 세계 きのうの世界 2009 ブラザー・サン シスター・ムーン 訪問者 六月の夜と昼のあわいに 2010 私の家では何も起こらない 2011 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 夢違 2012 나와 춤을 私と踊って 2013 夜の底は柔らかな幻 雪月花黙示録 2014 かがみのなか 2015 EPITAPH 東京 ブラック・ベルベット 消滅 VANISHING POINT 2016 タマゴマジック 꿀벌과 천둥 蜜蜂と遠雷 七月に流れる花 八月は冷たい城 2017 終りなき夜に生れつく 失われた地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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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세 번째 곡 <비 내리는 정원> 비가 내릴 듯한 정원, 나무들이 우거진 오후의 정원으로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축축한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츰 거칠어진 바람이 나무들을 변덕스럽게 뒤흔들고 나뭇잎과 꽃은 비를 맞고 자꾸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이들은 비를 피해 뛰어간다. 개도 함께 달린다. 아아. 비가 내린다 관객들은 넋을 놓고 무대를 올려다보면 비가 내리치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작은 물웅덩이가 생긴다. 처마 밑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길모퉁이 돌바닥위에 작은 물줄기가 생겨 잿빛 강이 비탈을 바삐 흘러간다.
음악을 듣고 이런 아름다운 묘사를 할수 있고 느낄수 있는 사람은 정말 작가만이 가능한 것 같다. 귀로 듣는 음악을 어떻게 눈으로 보는 음악으로 묘사할 수 있는지.... 온다 리쿠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피아노보단 바이올린이나 첼로 곡을 더 좋아했는데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읽고나서는 이 작품에 소개된 피아노 곡을 즐겨듣고 있다. 온다 리쿠 그녀가 다음 번에 쓸 차기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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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작가의 이름은 들어왔고 자주 서점가에서 작품들이 보이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작가를 꼽는다면 아마도 요시모토 바나나와 온다 리쿠가 그런 사람들에 속하지 아닐까 싶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냥 굳이 꼽자면 이름이 어딘가 꾸밈이 많게 느껴진다고 할까? 아무튼 별 이유 같은 것도 없이 유명함을 알겠는데 책을 읽어보질 못했다. 작가 온다 리쿠 같은 경우에는 지난번 우연한 기회에 정가 할인 도서로 나왔던 싸다는 이유로 읽어본 유지니아 한 권이며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경우에는 단 한 권도 읽어보지를 못하였다. 아무튼 이상할 정도로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던 작가 온다 리쿠의 작품이 관심이 생긴 것은 클래식 음악을 다룬 소설이란 점이었으며, 피아노 콩쿠르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하니 굉장한 흥미가 생겼으며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쉽고 간편하게 말하자면 벌꿀과 천둥은 아주 재미난 소설이며 아주 잘 읽히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초반에는 그랬다. 작가가 던져주는 호기심과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들은 어딘가 탐탁지 않게 흘러간다고 느껴지는 순간부터 솔직히 읽기에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의 찌푸림 들이 따라다녔다. 그냥 소설이니까 하고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긴 한데, 나란 사람에게 소설의 즐거움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이라 즐거울 때 많다. 그 말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사람다운 이야기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나는 판타지에 아주아주 약하다. 허무맹랑한 소설들은 어딘지 공감하게 되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걱정해주며 함께 감정을 겪는 부분들이 약하게 다가와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덮어놓고 만화라는 느낌의 글들은 그다지 끌리지 않는 것 같다. 벌꿀과 천둥이 만화 같은 소설이냐 하면, 나에게는 그렇다. 판타지 같은 소설이며 판타지 만화 같은 소설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소설은 신화 같은 느낌의 소설 같기도 하다. 인간이 아닌 신의 능력을 겸비한 피아니스트들. 인간으로서 느낄 법한 고단함들이 사라진 자리에 스스로 진화하는 그 모습들은 마치 일본의 생체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신동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천재 연주자들은 그에 준하게 부단히 노력하고 눈물 흘리며 고통스럽게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인간적 고통 없이 일류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어쩌다 정말, 수백 년에 한 명 정도 있을까 말까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 세계의 룰일지 모르겠다. 왜냐면 그런 사람들이 너무 자주 나타나고 같은 시대에 많이 나타난다면, 그럼 나 같은 사람들은 재주 없이 사는 삶이 참으로 미천하기만 할 테니 말이다. 세계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은 어떤 식으로 일본인의 피가 흐르거나 연결되어 있거나 한다는 건 뭐 일본 소설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만하지만, 작가에 의해 탄생된 피아니스트들의 삶은 인간적 고뇌가 빠져있다 보니 그냥 신들의 이야기 같다. 일본의 만화 정도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 소설을 쓰는데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콩쿠르에 필요한 피아노 곡과 그 곡들에 대한 충분한 끌림을 글로 표현하려 했다면 분명 굉장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분명 피아노 곡들에 대한 느낌과 설명 들은 굉장하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음악을 찾아서 다 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노다메 칸타빌레도 이만큼 판타지적일까? 인간적인 음모와 인간적인 고뇌가 빠져 있는 꿀벌과 천둥은 글쎄 이야기적 구성으로는 나에게 베토벤 바이러스보다 못하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매력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소설이라고 할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매력은 분명 다르겠지만 소설 속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적 고뇌와 갈등들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변하는지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그리스 신화 속 신들도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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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작가의 꿀벌과 천둥은 요시가에 국제 피나오 콩쿠르에 참가하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로, 둘 중 하나도 받기 힘들다고 알려진 서점 대상과 나오키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으로도 잘 알려진 책이기도 합니다. 아직 이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한 상태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그야말로 700페이지가 넘는 이 책 속 이야기에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 말해보라고 한다면 저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힘을 뽑고 싶습니다. 꿀벌과 천둥 속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요 인물은 총 네 명인데요. 남들과 달리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 흔한 연주 활동 경력이 전무하지만,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가자마 진이라던가 일본계 3세 페루인인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과 같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에이덴 아야와 같은 경우 국내외 주니어 콩쿠르를 제패하며 일명 천재 소녀로 불렸으나, 자신이 연주하던 유일한 이유라고 볼 수 있던 인물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고 있다가 무려 7년간의 공백을 뚫고 다시 한번 무대로 복귀하게 된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들에 비하자면 경력도 일천하고 나이 차이도 꽤나 나기는 하지만 피아노는 천재 소년 소녀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말리라를 일념으로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되는 다카시마 아카시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이들 중 누군가를 조금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네 사람 모두에게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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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p. 이번에 눈길을 끄는 것음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이 눈부신 한국 참가자들이다. 그들에게서 올곧은 정열과 일종의 처연함을 느낀다. 그들이 민족적으로 갖는 격렬함과 처연함은 드라마틱한 클래식 음악과 궁합이 좋다. ㅡㅡㅡㅡㅡ 이 책에서는 ‘한국’ 연주자나 ‘한국’의 국가적 문화지원 등 ‘한국’ 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나오는데 일본작가의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예민하게 읽히기도 한다. 온다리쿠 책이 유독 한국에서 많이 팔리니 한국 독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어쨋든 일본 사람이 보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생각은 내심 편하지만은 않다. 어쨋든 불편하고 자시고 다 차치하고 책은 술술 잘 읽힌다. 다만, 피아노 연주에 대한 감상평은 바다같다느니, 뿌리가 내린것 같다느니.. 이런건 공감하긴 어렵다 ㅋㅋ 연주도 많이 들어보고 훈련하면 공감이 되려나? 이 책을 읽고 유튜브로 연주동영상도 찾아보고 30년만에 쇼팽의 왈츠를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잘 쓰여진 책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나를 움직이게 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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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밤의 피크닉' 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온다 리쿠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책 소개도 보도 줄거리도 봤는데, 역시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는 책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잠깐 배운 피아노 지식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음악들을 찾아가면서 읽는데, 음악 감상하고, 내용 생각하고, 음악 감상하고, 내용 생각하고 몇 번을 멈추고 다시 읽고 했는지 모른다.
금방 빠져들게 하고 쉽게 나오지 못하게 하는 꿀벌과 천둥은 오랜 시간 두고두고 읽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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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줄평에 이렇게 쓰셨다.
요리왕비룡의 콩쿠르버전이라고.
이처럼 온다 리쿠는 들리지 않는 음악을 글로 나타내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현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온다 리쿠는 내게 어쩐지 환상문학 작가로 인식되어 있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던가 흑과 다의 환상같은 책들이 너무나 강렬한 프레임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온다리쿠가 피아노 콩쿠르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고 해서 처음에는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에 대한 인식, 이미 알고 있던 곡까지 다시금 더 풍성하게 감상하게 만들어주는 묘사력까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달랐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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