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시간 만에 끝나버리지만 이 두 시간 안에 응축되어진 삶의 파장은 한 번의 삶을 경험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정여울은 <시네필 다이어리 1>에서 ‘1인분의 삶’ 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삶’속에 스며들어가는 통로를 영화라고 표현했다. 참 멋드러진 표현같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이렇게 영화에서 철학이라는 실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은 정여울의 타고난 능력인 것 같다. 1편에서 받았던 그 감동 그대로 2권도 블록버스터들의 영화들로 구성되어 있어 낯설게 느껴지던 철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철학과 영화의 조합은 다음과 같다. ―미셸 푸코와〈본 아이덴티티〉 ―미르치아 엘리아데와 〈매트릭스〉 ―줄리아 크리스테바와〈슈렉〉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아바타〉 ―미하엘 바흐친과 〈의형제〉 ―한나 아렌트와 〈타인의 삶〉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발터 벤야민과〈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위에서 타인의 삶 속에 스며들어가는 통로라고 하였던 것처럼 정여울은 영화의 주인공들의 삶에 스며들어 철학, 그러니까 ‘나’‘와 ’타인‘의 삶 속에서 인문학의 근원적인 성찰인 ’자아찾기‘와 ’타인과의 관계맺기‘와 같은 철학적 사유를 뽑아낸다. <미셀 푸코와 본 아이덴티티>에서는 서구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자기자신‘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주인공 제이슨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며 미셀 푸코가 자신의 철학을 통해 이 근대성의 탄생 지점을 공략하여 그 확실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던 것처럼 제이슨의 뿌리찾기를 통해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을 시도하는 것이다.
온몸의 세포가 기억한 삶의 흔적, 그 엄청난 분량의 메시지를, ‘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의식에게로 송신한다. 그는 그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수많은 여권과 엄청난 돈을 지녔지만 어딜 가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보이지 않는 감방 안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주어진 과제가 매트릭스 안에서 지금까지 가져온 시공간의 감각이 ‘절대적이고 유일하다’라는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라면 이러한 것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는 철학적 사유의 주제는 마르치아 엘리아데의 ‘신화’이다. 폴 리쾨르가 유한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하고 본질적인 욕망을 신화라고 하였듯이 매트릭스의 네오를 통해 보게 되는 신화적 모험은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적 욕망은 <아바타>로 이어져 제이크 설리를 통해 실현된다. 신화적 사유는 인간 조건을 침해하는 시간의 불가역성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것, 타자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각자의 판도라를, 우리가 가진 모든 사유의 재료를 동원해 리메이크해내는 영혼의 교감 능력이 아닐까.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이 능력을, 우리 주변의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재료들 속에서 우리 무의식에 여전히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신화적 사유를 발견해내는 힘을 ‘브리콜라주’라고 불렀다.
정여울의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누군가가 옆에서 속삭여주는 기분도 들고,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 것인양 영화읽기가 곧 삶읽기가 되곤 한다. 과거에는 책만이 타인의 삶을 엿보게 해주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미디어가 책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만큼 영화역시도 책 못지 않게 우리의 인생을 이해하게 해주는 매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한 영화를 사색하게 할 수 있는 안내서로서 정여울의 시네필 다이어리는 좋은 길라잡이다. 인문학적 통찰 , 뭐 별거 있나. 남을 알고 나를 알면 인생 끝.
우리가 버린 아브젝트를 우리 안의 창조적 혼돈으로 바꾸는 기술. 그것이야말로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여성적 힘, 바로 ‘사랑’의 기술일 것이다. 영원히 너의 사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금은 네가 나를 사랑하지만 내 얼굴이 주름살로 뒤덮이거나 나보다 더 매혹적인 대상이 나타나면 네가 나를 떠날 것이 분명하다는 불안감, 나의 선천적인 결핍이 너의 밝은 미래에 어둠을 드리울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런 것들은 사랑의 ‘아브젝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브젝트를 끌어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고수들이 지향하는 ’커플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서로의 결핍을 통해, 타자의 고통을 내 것처럼 앓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동키처럼,슈렉처럼, 피오나처럼, 그 어떤 결핍이나 단점도 끝내 ’사랑의 구실‘로 변신시키는 연애의 기술을 배운다. 사랑이 원초적으로 품은 불안과 우울, 그 자체가 삶을 아름답게 요리하는 상상력의 에너지원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나의 결핍이 도드라질수록, 너의 결점이 유난히 눈에 띌수록, 이상하게도 더욱 완전해지는 즐거운 신비다. 우리는 스스로의 시야에 갇힌 타인을 바라보며 그것이 그의 ‘전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나 자신이 타인에게 비치는 인상에 자주 불만을 가지며 ’난 네가 생가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라고 변명하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우리는 정말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우리가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또는 ’우리가 그의 행동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 것인가‘같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경험적이며 편파적인 기준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정말 개개인의 이해타산을 넘어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직 지구에 거주하지만 여전히 지구의 이방인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지구를 죽이지 않고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 아니 지구를 비롯한 이 세계 전체의 거대한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고 그것과 교신하는 방식을 찾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미하엘 바흐친과 의형제 우리는 스스로의 시야에 갇힌 타인을 바라보며 그것이 그의 ‘전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나 자신이 타인에게 비치는 인상에 자주 불만을 가지며 ’난 네가 생가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라고 변명하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우리는 정말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ㅇ벗다고 해서 그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우리가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또는 ’우리가 그의 행동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 것인가‘같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경험적이며 편파적인 기준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정말 개개인의 이해타산을 넘어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
|
시네필 다이어리2 영화라는 것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간접적 경험을 극대화하고 훔쳐보기의 짜릿한 추억과 많은 캐릭터를 통한 대리 만족적 감정 공유를 할수있다는 것이 아주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진심으로 장면에 대한 지문과 호기심을 중족할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만들게 된다, 철학은 어려운것이 아닌 재미적 요소를 가진 생각을 달리 하는 법을 느끼게 하다는 것이 이책의 핵심이다.
|
|
타인은 지옥이다. 하지만 타인없는 삶은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꼭 이 말 정도일 것이다. 더 더하거나 더 뺄 것도 없이. 그렇다보니 우리는 나의 삶을 살면서도 평생 타인을 삶을 구경하며 살아가는 이방인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삶보다 더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이런 타인에 대한 시선과 이해를 긍정적인 방향에서 뭉클한 감동과 함께 풀어낸 영화가 바로 [의형제]였다. 흥행보증수표 송강호와 대세 배우 강동원의 만남은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탄탄한 스토리의 후원탄력을 받아 영화는 아주 멋지게 한 해를 장식했었다. 이 의형제뿐만이 아니라 책에는 1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촌철살인"적인 영화평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딱 한 편만 제외하고는 다 보았던 영화라 무엇보다 공감지수가 높았던 책이었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시기에 예술가들의 삶을 보여주었다는 [타인의 삶]을 제외하고, "지금의 나"로 만족할 수 없는 나가 등장하는 [매트릭스], 빌려 살고 있는 지구의 이방인인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던 [아바타], 날조된 동화의 세상 밖으로 나온 [슈렉], 내가 누구인지 알수록 나는 위험해졌던 [본 아이덴티티], 바람직한 이별이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비정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소년들이 인상적이었던 [원스 어 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 까지 상영 당시 무척이나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들이었다. 누군가는 "재미있다.","재미없다" 정도로만 평할 이야기를 두고 한 페이지도 아닌 여러 페이지에 거쳐 그 이야깃 거리를 만들어내는 저자에 대한 놀라움과 영화 본연의 재미에 잘했다 잘못되었다가 아닌 창작처럼 가미된 재미난 평들이 붙여져 [시네필 다이어리2]는 누구에게나 환영받으며 읽음직한 읽을거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10대 시절엔 "똑똑한 사람", 20대 시절엔 "훌륭한 사람", 30대 시절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던 저자는 이제 행복한 사람이 되어 그녀의 행복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화 이야기로.
|
|
시네필 다이어리 1이 나에게는 흡족하였다면, 이 책은 조금 더 넓은 주제를 말하지만 조금은 동어반복으로 들린다. 그래서 1편에서 느낀 감정의 기대치만큼을 동일하게 느끼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철학과 영화를 절묘하게, 솜씨있고 흡인력 있는 글 솜씨로 이어가는 저자의 능력만큼은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번에 느낀 것은 저자의 영화선택과 다소 생소한 사상가의 이론도 만날 수 있는 새로움이 역시 적절하게 어우러진 듯 하다. 1편에서 느낀 감정을 왜 못느꼈을까 생각해보면 수많은 인상깊은 구절이 아마 내 삶과는 다소 다른 분야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다양한 면을 찾는 1편의 주제와는 달리, 2편은 좀 더 다양한 삶을 찾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1편에서 거의 다 찾았다. 이번 2편에서 공감을 얻었던 것은 자아를 잃어버렸지만 자신의 몸을 통해 그 강렬한 메시지를 다시 찾아내고 고뇌하는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의 이야기였다. 기억속에 있는 자아를 찾기를 원하지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과거와의 연결보다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직면해야 한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 내게 기억에 남는 것은 이 구절이었다. '기억 상실'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속 주인공들 곁에는 '그들이 잃어버린 바로 그 기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타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 혹은 방해 긑에 '잃어버린 자아'를 찾게 된다. 즉, 기억 자체를 찾지 못해도 기억에 상응하는 '타인'이 그 기억의 빈자리를 메워준다. 기억, 혹은 기억의 대체제를 찾을수록 주인공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p.25 나만의 고독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그 잃어버린 공간은 타자로 인해 새롭게 구성되어지고 창조되어진다. 홀로 마주하는 것보다 타인과의 부딪힘, 감정의 공유, 함께함이 풀어놓는 다양한, 이 세상에 존재할 법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한 권의 책보다 더 강하게 기억되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술의 창조적 파괴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두 미디어가 가지는 양가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절묘하게 보여주는 시도를 이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