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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리츠 오르트만, 생소한 이름이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서인지 작품이 거의 없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는 정식으로 소개된 바 없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제목의 단편이 독일어 전공학생들 틈에서 번역되어 읽혀지면서 알려지고 이를 계기로 출판되었다 하니 그 이력 또한 독특하다. 이 책 속에는 그의 소설집 『럼주차』속의 7편의 작품 -「배는 북서쪽으로」,「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붉은 부표 저편에」, 「두 시절의 만남」, 「양귀비」, 「그가 돌아왔다」, 「럼주차」-에 단편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포함하여 총 8편의 주옥 같은 단편들이 들어있다. 직접 읽어보니 왜 그의 글들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는지 알 것 같다. 요즘 소설들처럼 영화에나 나옴직한 강렬한 장치들은 없지만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오신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하듯이, 삶의 비법 혹은 진수(眞髓)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 나는 결혼하고 아내와 함께 곰스크행 기차에 오른다. 나의 아버지도 항상 꿈꿔 왔던 곳,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 또한 곰스크행을 꿈꾼다. 잠시 정차한 간이역에서 내렸다가 그만 곰스크행 기차를 놓치게 되고, 곰스크행 기차에 다시 타려면 차표값을 마련해야 한다. 차표값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되는 나. 그 사이 아내는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여러 일을 도우면서 안락의자를 얻게 된다. 호텔 일을 도우면서 기차표값을 다 모은 나는 드디어 곰스크행 기차에 오른다. 그런데 안락의자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아내의 완강한 고집. 그러고 보니 아내는 만삭이다. 곰스크행만 생각하다가 아내가 임신한 것도 몰랐다니…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생각들과 싸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싸움을 할 권리가 없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선택한 바로 그 궤도를 달리는 게 인생이라는 주장은 어쩌면 인간에겐 허용되지 않는 교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11쪽) 우리는 누구나 곰스크(꿈, 이상향 혹은 목표)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아내, 아이들, 머물 곳,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 쉴 수 있는 안락의자 등등)은 나에게 곰스크행 기차표를 거저 주지 않는다. 자신이 꿈꾸는 곰스크와 현재 머무는 곳 사이의 거리만큼 나의 갈등은 깊어질 것이다. 다행히도 현실 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이나 혹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큰 사람들에겐 그 갈등이 충분히 수용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외면하고 혹은 버려두고, 곰스크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글쎄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안락의자를 끌고 온 아내를 버리고 곰스크행을 택했더라면 좀더 행복했을까. 주인공의 아내는 말한다.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는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 거죠?” (57쪽) 세상은 불공평한 것 같지만 의외로 공평하다. 내가 원하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보듯이 말이다(다이앤 키튼이 잭 니콜슨을 선택하기 위해 키아누 리브스를 버려야 하다니…). 가끔 우리는 어리석게도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보석의 가치를 잘 모르고, 진열장에 놓여있는 보석을 더 갖고 싶어한다.
“의미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61쪽) 우리는 항상 갈림길에서 어느 하나의 길을 선택해왔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은 항상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묵묵히 간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내가 가보지 못했던 길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목적지에 더 늦게 도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한 걸음들이 모여 나의 인생이라는 여정을 만들어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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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라는 낱말에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어릴 적에는 단지 기차를 타기 위해 낯선 도시로 간 적도 있다. 역에서 역으로 이어지며 덜컹거리는 진동 속에서 아련하게 느껴지는 근원을 모르던 향수. 고향을 떠나본 적도, 그리움을 두고 온 곳도 없으면서 기차역 주변을 서성이며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던 치기어린 행동들. 제주도 사람들은 기차에 대해 남다른 동경이 있다고 한다. 분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다를 그리워하는 심정 같은 거. 그렇게 역사를 서성거리다가 잘 생긴 제주도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는 중이었고, 나와 내 친구는 구내매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 먹고 다시 시내로 나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 길이었다. 잘 생긴데다가 친절한 제주도 청년은 우리에게 주소를 알려주었고,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와 내 친구는 몇 번쯤 그 청년과 편지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련한 기억 속에는 그 청년의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기차에 대한 동경이 있다는 청년의 말은 아직 남아있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을 소풍에 비유했다. 소풍 나온 세상이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 많이 쌓으라고, 나는 그렇게 이 시인의 “귀천”을 읽었다. 우리의 삶이 여행이라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무엇을 보고 들으며 느꼈는지 그 과정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붙잡아 놓고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8편의 단편이 담긴 이 소설집은 내가 평소에 그려보던 독일작가의 집처럼 단정하고 말끔하면서도 소박하고 따뜻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제목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멀리 떠나고 싶은 남자와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배처럼 비행기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가정이 있고, 그 가정은 남자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어버린다. 남자는 자신의 뜻과는 맞지 않게 머물러 있는 현재가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가보지 못한 곰스크에 대한 미련은 시시때때로 그를 외롭게 만든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떠나고 보는 남자의 속성이 작품 곳곳에 배여 있다. 그러면서도 그 끝은 가정으로 돌아와야 비로소 편안하다는 것. 마지막 작품인 「럼주차」를 보아도 그렇다. 남자는 럼주차를 위해 때늦은 출발을 하게 되고, 그 늦은 출발이 남자를 생사의 갈림길에 세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남자의 침착함이 그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밖에서 구할 수 없었던 럼주차를 간신히 돌아온 집에서 마시게 된다. 남자들은 뒤늦게 깨닫는데 선수들이다. 따뜻한 럼주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당분간은 쭉 그렇게 소박하고 다정하게 살아갈 등장인물의 삶이 새벽녘에 들려오는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처럼 아련하다. 이 책의 작가는 교사로 일하다가 1995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전혀 몰랐던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본 듯하다. 작가의 집, 마을, 그리고 작가의 시선이 늘 머물렀을 바닷가. 멀리 날아오르는 갈매기를 보며 더 멀리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다가 결국 자신을 품고 길러 준 고향 마을에 대한 감사로 생을 마쳤을 작가. 가을밤, 안락의자에 앉아 둥실 떠오르는 보름달빛에 의지한 채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 좋을 아름다운 책이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작가의 삶이 부럽다. 그는 떠나도 그의 삶은 이렇게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서 그를 대신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평했던 것처럼 나 역시 좋은 단편을 읽었다는 생각을 한다.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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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돌아갈래~~~" 평화롭게 흔들리는 푸르른 나무 가지들...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 사이를 관통하여 길게 뻗은 철길. 그 위에서 절규하는 한 남자의 한 맺힌 외침.. 순수했던 과거로 회귀하고픈 마음을 담은 회한 서린 외침. 설 경구, 문 소리 주연의 <박하사탕>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세상 풍파에 찌들며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삶을 살아온 한 남자의 추억과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절절함과 공감을 전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현실 속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일게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인생은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별 탈 없이 흘러가주지 않는다. 과거에 꿈꾸었던 '미래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감은 때론 후회를 때로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낸다. 마음 속에 그리던 유토피아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기에,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며 주어진 환경 내에서 새로운 이상향을 그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곰스크'라는 장소가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 무엇이 있는지 어떤 곳인지도 알지 못하는.... 그러나 부모님으로부터 전해져 온, 꼭 가봐야 하는 막연한 인생 목표가 되는 장소... 어린 시절의 순수한 희망을 간직한 운명의 그곳.. 남자는 결혼과 함께 모든 재산을 털어 '곰스크'로 가는기차를 탄다. 신혼의 설렘과 이상향을 향한 출발의 기쁨으로 가득한 남편과 달리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함을 마음에 담고 있는 아내... 두 사람은 잠시 정차하게 된 한적한 시골 마을을 구경하게 된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요한 마을에 매료된 아내... 아내의 사랑스러움에 취해 버린 남편... 필연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기차를 놓치게 되고,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구입한 차표는 기간이 만료되어 버리고, 돈이 없는 그들은 마을에 정착하게 되는데.. 책은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며 살고자 하는 아내와, 인생의 목표를 꺾어 버리고 싶지 않은 남편의 갈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변화되는 남편의 내면 변화.. '곰스크' 행을 포기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니 이 여자 왜 이리 답답하게 구는거야?' 답답함과 짜증스러움... '어서 빨리 곰스크로 가야 할 거 아냐..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밀려드는 조급함. 나는 어느새, 여유만만한 대사들을 던지는 아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남편이 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인지 성격의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울화통이 치민다. 어쩌면, 새로운 삶의 시작을 하게 되고, 가정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모습에서, 현재의 내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이라고 하는 인생의 전환점은 사랑의 충만함과 함께, 사회적인 의무감을 지운다.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할 수 있었던 과거와의 결별을 뜻한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고와 습관을 가지고 살던 두 사람이 한 가족이 되어 같이 산다는 것은 대립과 갈등의 근원을 내포하고 있다. 홀로 결정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으며, 고려해야 될 것들이 많아진 남편은, 아내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곰스크'로 떠나고자 하는 그를 다양한 이유를 들어 잡는 아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갈등하던 남편은 결국 아내의 임신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발목이 잡혀 '곰스크'행을 포기한다.
아...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눈에 보이고 평안함이 넘쳐나는 현재를 유지하고 싶은 아내. 근거없는 긍정에 휩싸여 일을 벌이고자 하는 남편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투영된 우리네 모습이다. 그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선택한 길이 최선인지 최악인지..? 하지만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중요한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아내에게 이끌려 기차에서 내렸던 일. 아내와의 행복한 시간을 선택한 대가로 기차가 떠나버리게 된 것. 수차례 떠나려는 시도가 무산된 이면에는 순간순간 자신이 내린 선택이 있다.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조금은 늦어도 되겠지라는 작은 생각의 무게가 미래의 방향을 바꾼다. 마치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처럼.... 누구에게나 '곰스크'는 존재한다. <박하사탕>의 '영호(설 경구 분')의 '곰스크'는 어디였을까..? 작은 박하사탕 하나에도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던 사랑하는 '순임(문 소리 분)'과의 소소한 일상이 아니었을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변질되어 버린 자신의 순수성을 대면하고, 다시 한번 그리게 되는 영호의 '곰스크'...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다. 열차가 역에 정차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출발하기를 반복하듯.. 인생 열차도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까지 수많은 역에 정차하고, 작은 일로도 철로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다양한 사건들이 내 인생의 열차에 타고 내리면서 변화를 유도한다. 나의 '곰스크'는 어디였었지..? 이미 기억속에서조차 희미해진 나의 '곰스크'... 내 열차의 방향을 바꿔 놓은 수 많은 만남과 결정들..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 새로운 '곰스크'행 노선을 만들면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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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꿈을 꾸었었다.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것도,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날 꿈들을 꾸었었다. 내가 꿈꾸었던 대로의 모습을 지금 하고 있는가. 전혀 아니다. 일상에 젖어 아직도 가슴속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잊었던 옛날의 꿈을 꾸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꿈속에서 나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었지만 나는 그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딘가에 내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지나가는 기차를 향하는 시선을 늘 가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가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곳이 꿈속인양 그렇게 만족하지 못했던 모습 말이다. 꿈 속에서 나는 이 글을 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기차는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기차를 많이 타지 않던 시절에 늘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싶어 했다. 성년이 되어 내가 여행을 갈 때에도 버스를 이용하기 보다는 늘 기차를 이용했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바퀴의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좋았고 창에 기대어 지나치는 풍경들을 바라보기를 즐겼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배는 북서쪽으로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붉은 부표 저편에 두 시절의 만남 양귀비 그가 돌아왔다 럼주차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중 략)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 「곰스크로 가는 기차」 중에서) 대학가에서 개인이 번역한 이 책이 떠돌게 되어 소리소문없이 퍼지게 되어 오르트만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TV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었던 '곰스크' 마니아층을 이루고 있었던 단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 오르트만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 수 없고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애썼던 옮긴이의 노고를 알 수 있었고, 옮긴이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이 나오게 된거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하나의 운명이 아닐련지. 친한 이의 리뷰를 읽고 '곰스크'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이 책을 꼭 읽어야 하겠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내 손으로 책이 들어온 일, 또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거라는 감정까지. 이 책이 나에게로 온 것도 나의 선택에 의해서 운명처럼 내게 다가 온 책이다. 이러한 감동이 있는 책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나는 나의 '곰스크'를 그려본다. 나의 곰스크는 아마도 '프랑스 파리' 쪽일거라 생각이 든다. 늘 가고 싶었고 지금도 늘 마음속에 있는 도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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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p.61) '나'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무릎에 앉히고 해주시던 '곰스크'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비록 지금은 어린시절 꾸었던 곰스크에 대한 희망은 잊어버렸지만, 그에 대한 열정은 남아서 언젠가 내 삶의 클라이막스에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도착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뜻밖의 방해자가 생긴다. 결혼 직후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올랐을 때까지도 몰랐지만 사실 아내는 전혀 즐거워 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모든 것에서 멀어져 간다'며 창백한 얼굴을 할 뿐이다. 여행 둘째 날 두시간 가량 정차하는 기차에서 내려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급기야 산 너머까지 간 부부는 결국 기차를 놓친다. '곰스크'가 환상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이다. '나'는 더할 수 없이 초조해진다. 내 평생의 꿈이, 다른 노력도 아니고 단순히 기차에 앉아서 시간만 지나면 이루어지기 직전인데 마을에 머물고 있다니. 주인공의 초조함은 극에 달하고 어떻게든 작은 마을을 벗어나 기차에 오르고 싶지만 곰스크행은 정해진 시간도 없고 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더구나 부인은 낡은 식당에서 머물러 살 것처럼 일을 도우며 정착하려고 한다. '나'는 그녀의 느긋한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그것은 결국 가시적인 '성과'를 내어야만 한다는 나의 믿음은 항상 소설에서는 배신당했다. 특히 이 소설에서 부인은 참을 수 없이 게을렀으며, 믿을 수 없을만큼 의욕이 없었다. 눈앞의 어떤 것을 보고도 그것은 자기의 몫이 아닌양 그냥 굴려 보냈고, 남편이 그것을 좇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경쟁에서는 이겨야 하고, 목표는 반드시 성취하는 것이 성공이며, 안주하는 것은 도태를 자초한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듯 보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경쟁에서 이기기도 하고, 나름의 목표도 달성하고, 남들보단 나은 것처럼 보여서 우쭐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의 결과물은 더 큰 목표를 끌고 들어오고, 그 목표는 달성되자마자 새로운 경쟁으로 우리를 이끈다. 아내 역시 우리가 언젠가는 곰스크로 가게 될 것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곳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어떤 느낌이나 희망, 걱정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젊은 사람이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것처럼. (p. 34) 부인이 원하는 것은 곰스크 같은 환상, 혹은 꿈이 아니라 지금 여기, 바로 우리집 정원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와 아빠가 함께 노는 것이다. 평생 곰스크행 열차에 타서 목적지가 다가오기만 기다리는 초조한 삶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행복, 손에 잡히는 현실을 공유하자는 말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에는 '안헤도니아'라는 병명이 등장한다. 평생 꿈으로 생각하던 것이 현실로 이뤄졌을 때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를 잃을지도 모르는 공포에서 나오는 병의 이름이다.
우리가 행복을 대하는 태도는 대략 그러하다. 가까운 것들과 손에 잡히는 것들을 일단 제외하고 나면 우리는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급기야 내가 속한 원 밖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삶은 그럴듯 해진다. 왠지 더 의미있어 보이고 당장 눈앞의 기쁨이나 슬픔에 대해 의연해도 되는 변명거리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평생 이런 대답을 되풀이 한다. "나? 응 미안. 나 곰스크로 가야해서 좀 바쁘거든.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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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기차여행
우리의 삶은 여행, 연극 등으로 많이 비유되고 있다. 계획을 하고 가방을 꾸리고 떠나지만 어떤 일들이. 어떤 장애들이 또 어떤 기쁨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설레일수도 있고 불안할 수 있는 여행.. 마치 내 스스로 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발자국만 뒤에서 내 삶을 바라보면 마치 무대위에서 열심을 다하고 있는 주연배우와도 같은 그런 연극... 그런 여행중에서도 평행한 철로를 달리며 퀘도를 이탈 할 수 없는 오로지 한 방향을 향해 같은 속도로 달리는 기차여행은 더욱 더 우리의 삶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우리의 맘속에는 항상 그곳에 대한 열망이 있다. 다만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나에게 주어지는 현실적인 것들을 안고가기에 그 무게에 눌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안주하게되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는 짧은 이야기였다. 곰스크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로 노력하지만 작은 마을에 안주하게된 그에게 아이들과 안정되고 안락한 생활이 그를 붙잡아 놓게 된다. 현실로 대변될 수 있는 아이들,안락의자, 선생님이라는 직업.... 간단하게 꾸려서 떠나려했던 그의 곰스크로 향한 여정은 점점 그 무게를 더해가고 있었고 곰스크로 떠나는 기차의 경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배는 북서쪽으로 우리 삶의 종착지는 우리가 원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 그렇치 않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곳이 될 수도 있다. 각자의 목적지가 다른 승객들 그러나 그 배의 종착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배를 밤을 가르고 망망대해를 떠가고 있다.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철학자는 일상적인 삶을 비웃는다.. 화가는 어찌되었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도해본다. 물론 기쁨과 함께 아픔도 찾아오지만 그리고 고통의 끝에서 듣게된 일곱 곡의 모자르트 변주곡.. 그렇게 그는 다시 '살아 있다'
두시절의 만남 우연히 길에서 차를 태워준 청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되는 한 남자 자신보다 더 나은 시작을 하기 바라며 그에게 돈을 건네지만 그 청년 또한 그 남자의 옛시절과 같은 다짐으로 시작을 결심하는.. 이미 가본 사람은 그 길을 알기에 뒤에 오는 이들에게 암시를 주지만 막상 내가 가보지 않으면 그것은 깨닫기가 힘들다.. 그렇게 그 청년은 그 남자와 같은 미래를 꿈꾸며 한걸음 내딛고 있다.
양귀비 어머니께 선물을 하기 위해 준비한 양귀비 꽃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선물을 내밀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 결국 그 양귀비 꽃는 책갈피속에서 시들어 버리고 만다... 결국 어머니의 무덤속에 그 꽃을 선물하게 되는 그.. 꽃은 빨리 시들고 세월을 그렇게 흐르는 것..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한 남자가 있다..
그가 돌아왔다. 럼주차 작가의 고향인 듯 한 프리슬란트 사람들의 이야기 파이프 담배와. 차 특히 럼주가 한잔들어간 럼주차를 사랑하는 그들 좋은 향의 담배와 차를 마시기 위해 위험을 무릅스로 모래톱을 넘나드는 그 그에게 달 또한 마지막 럼주차를 같이 마시기 위한 동료였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우리를 뒤로하고 멀어져간다. 그리고 저 앞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뒤로 멀어지는 풍경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풍경에 대한 기대도 하게 되는.. 그래서 기차여행은 우리에게 추억과 아쉬움 그리고 기대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삶과도 같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 걸까.. 내가 가고 싶은 곰스크가는 열차에 타긴 탈걸까.. 그리고 그곳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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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그다지 챙겨보는 드라마가 없지만 한때 드라마를 즐겨보던 적이 있었다. 연속극이나 미니시리즈 등 장편 드라마들은 회(回)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맛이 쏠쏠하지만 한 회에 기승전결이 다 담겨 있는, 마치 한편의 영화와 같은 주옥같은 단막극들도 꽤나 즐겨 보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TV문학관(KBS)>과 <베스트셀러극장(MBC)> - 후에 <베스트극장>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었다. 지금도 몇 편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 많았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바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베스트극장 578회/2004.9.12.방영)>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하기도 했고 첫 방영 후 케이블 TV에서 몇 차례 방영해서 본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보는 내내 “영월”이나 “목포” 등 우리 지명이 아닌 정체 불명(?)의 지명인 “곰스크”가 도대체 어디이길래 저렇게 남자 주인공 - 인터넷 검색해보니 엄태웅과 채정안이 주연을 맡았단다 - 이 그렇게 가고자 했는지 영 궁금해서 더욱 인상에 남았던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이 가고자 했던 곰스크가 과연 어떤 곳인지, 결국 곰스크로 가게 되었는지가 불분명해서 언젠 한번 책으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원작소설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원제 Tee mit Rum/프리츠 오르트만/북인더 갭/2010년 12월)을 읽게 되었다. 드라마가 비교적 책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내서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드라마와는 다른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는 표제작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포함해서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곰스크~>가 50여 페이지로 가장 분량이 많고 나머지 단편들은 10 페이지 남짓해서 많아야 40 페이지 내외인데 삽화들도 곁들어져 있어 실제 분량은 더 짧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단편들도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 몇 편 있지만 <곰스크>가 가장 인상적인지라 이 책을 읽을 다른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기고 여기에서는 곰스크만 언급해보기로 한다.
표제작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알려진 대로 곰스크로 떠나려는 남자가 결국 아내와 가족 때문에 중간에 주저앉고야 마는 간단한 줄거리이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 부부가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곰스크는 어릴 적 남자가 아버지에게서 자주 들어오던 일종의 “꿈의 도시”라 할 수 있는데, 어릴 적부터 가고 싶다는 열망을 드디어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가게 되면서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곰스크로 가는 여행길 중간 정착지인 작은 마을에 내리게 된 부부는 그만 열차를 놓치고야 만다. 어쩔 수 없이 마을의 유일한 호텔에 머물게 된 부부는 며칠 후 다시 역으로 향하는 데, 차표의 유효기간이 지나 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마을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 주인은 두 부부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임금을 줄 수 없고, 손님들의 팁으로 생활하라고 제안하고 하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을에 머물게 된다. 남편은 마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반면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하게 된 아내는 곰스크로 가고자 하는 남편이 영 불안하게만 보인다. 드디어 손님들의 팁을 열심히 모아 두 장 티켓을 산 남편은 다시 열차역으로 향하지만 아내가 자신이 일해서 장만한 “안락의자”를 싣고 가야한다고 고집 피우는 바람에 그만 열차를 놓치게 되고, 그 후 다시금 떠날 기회를 잡게 되지만 이번에는 아내의 임신으로 떠나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리고는 마을 학교의 나이든 선생님을 대신해 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결국 마을에 주저앉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처럼 곰스크로 향했다가 마을에 눌러앉았던 전임 선생님이 들려주는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한 삶을 살았다”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 후 아이를 둘이나 갖게 되고 정원 딸린 집에서 살게 된 남편은 모든 걸 체념하고 마을에 정착하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곰스크행 열차 소리에 아직도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전임 선생님이 쓰시던 다락방에 올라가 침대에 얼굴을 묻곤 한다.
역시 원작소설도 곰스크가 어떤 곳이어서 그렇게 남자가 가고 싶어 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예전에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 선배가 역시 여자는 남자 인생에 있어 걸림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너스레를 떨어서 웃은 적이 있는데, 표면적으로야 현실에 안주하려는 아내의 만류와 제지가 결국 이상향(理想鄕)이자 로망일 수 있는 남자의 “곰스크” 행을 막은 셈이니 일견 선배의 말도 일리가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결코 길지 않은 삶을 돌이켜 보면 어릴 적 꿈꿔온 이상과 낭만이 나이가 들고 나면 결국 비현실적인 유치한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듯이 어쩌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내 삶 그 자체야 말로 전임 선생님이 주인공에 들려주던 “내가 원했던 그런 삶”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목표를 이루지 못한 실패자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 수 도 있지만 말이다. 책에서는 곰스크를 여러 번 갈 수 있을 만큼 돈도 벌고 안정된 삶을 살지만 주인공은 결국 자신을 붙잡은 아내와 자식들을 핑계로 가슴 아파할 뿐 결코 다시 열차에 오르지는 않는다. 그의 삶을 올곧이 지배했던 곰스크란 결국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그저 마음 속으로만 꿈 꿔볼 수 있는, 상상속의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주인공이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해본다. 그래도 젊은 날의 꿈을 결코 잊지 않고 열망하는 주인공이 일견 부럽기도 하다. 대학시절 수많은 밤을 새며 친구들과 고민했던 미래가 결코 지금 모습은 아닐진대 까맣게 잊고 사는 나를 비하면 말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내 삶에 있어서 <곰스크>는 과연 어떤 곳이었는지, 지금은 까맣게 잊고 지내지만 아직도 내 가슴 속에는 <곰스크>로 가는 열망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어느날 그 열망이 가슴 속을 벗어나 간절해진다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곳을 향해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여러 생각들로 여운이 오래가던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먼 훗날 죽음을 앞에 두고 내 인생을 돌아보는 그런 나이가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읽어봐도 좋을 책일 것 같다. 그때에는 나는 이미 <곰스크>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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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p.59>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목적지는 곰스크. 남자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들어온 꿈의 장소로 평생에 꼭 한 번 가야할 운명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 중 우연히 내리게 된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와의 갈등 끝에 결국 곰스크로 가는 꿈을 접고 마는 주인공. 의미없는 삶은 아니었다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몰래 곰스크로 갈 때를 대비해 항상 돈을 저축해놓는 그의 이야기.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운명,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꿈. 이것이 이 소설에 담긴 강렬한 역설이자 이 소설의 매력이다. 첨엔 그냥 그랬던 내용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은은한 향을 내뿜고 생각이 꼬리를 잇게 만든다.
<배는 북서쪽으로> 여행가이드인 나는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다. 근데 아무도 이 배의 목적지가 어딘지 모른다. 가이드인 나조차 생각나질 않으니 큰일이다. 배에탄 모든 사랆들이 목적지가 다른, 비정상적인 사건. 승무원은 우리는 어디로든 가면 된다 하고, 선장은 정해진 항로가 있고 그걸 따를 뿐이라는 말만 한다. 그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를 달고 다니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철학자와 뭐든지 몸으로 부딪혀 가며 깨달음을 얻는 화가의 이야기.
<붉은 부표 저편에> 추억거리들을 보관해놓은 서랍속에는 어린시절의 사진첩과 예전에 쓴 일기장, 시 습작노트 등이 들어있는데 그곳엔 뜯지 않은 편지 한통이 있다.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 그 편지는 무려 20년 전, 내가 17살 무렵에 직접 쓴 것. 누렇게 변한 겉봉을 바라보며 한번 뜯어볼까 말까 고민하는데 항상 묘한 부끄러움이 생겨 편지를 뜯지 않은채 다시 캄캄한 서랍에 집어 넣는다. 그러면서 그 편지를 쓰게 된 배경,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 . .
<두 시절의 만남 > 엄청난 계약을 성사시키고 막 도시를 빠져나오는 길 푸른 목도리를 펄럭이며 베낭을 메고 한 손에 양귀비 꽃다발을 든 젊은이와 만나게 되는 나. 그를 보면서 30년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젊은이 역시 멋진 메르체데스를 탄 부유하고 안정된 그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 자신의 모습을 꿈꾸는데 . . .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보여지는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양귀비> 야콥슨 씨네 농장에서 축구를 하다 눈부신 빛을 내뿜는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양귀비를 발견하고 꽃을 매우 좋아하는 어머니께 드리기로한 페터. 하지만 그때에도 기능공 시험에 합격해 3년만에 집으로 돌아간 그때에도 전쟁중 병사로 프랑스로 건너가 전쟁포로가 되어 풀려난 그때에도 결혼해 귀여운 아이들이 생기고 어머니의 새신을 챙겨야 하는 그때에도 어머니께 드리지 못한 그 꽃은 결국 검은 양복을 입고 고향을 내려가야만 했던 그 때 비로소 관 위에 놓이게 된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지금,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찌릿~
<그가 돌아왔다> 북부 연안 프리슬란트 사람들. 일부는 육지에 일부는 큰 섬에 일부는 암룸(독일 북해 지역의 섬) 사는데 암룸에는 인케와 아네 슈티네미 세 자매가 산다. 미국에 건너가 부자가 된 셰트가 한 달 후에 떠나는데 혼자 잘 게 아니라 마을에서 누군가, 그러니까 프리슬란트 여자랑 결혼하러 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세 자매는 그런 녀석한테 마음을 줘선 안된다며 그를 흉보기 바쁘다. 그러면서도 서로 자신을 데려가길 원하는데. . . 마을 사람들도 세 자매중 누가 선택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는데 ~ 셰트가 선택한 여자는 ?
<럼주차> 프리슬란트 사람들은 차를 즐겨 마시며 럼주도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차에 럼주를 곁들인 럼주차다. 키가 큰 보이 엡센은 우터줌에 사는 동생이 미국에서 소포를 하나 받았는데 거기에 담배, 커피, 차가 들었단 소리를 듣고서 모래톱 풀덤불 길을 건너 동생집으로 향한다. 차는 있지만 럼주가 없다는 소리에 밀물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인 보이 엡센. 그곳에서 그는 바닷길이 사라져 바다 한가운데에 갇히고 만다. 마침 집에 있던 아내는 잠에서 깨어 남편이 없는 것을 보고 동생네에서 자고 올 거라며 맘을 가라앉혀보지만 웬만해선 한밤중에 깨지 않는데 일어난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데 . . . 보이 엡센은 차를 들고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이 책을 첨만났을 땐 제목 때문에 여행서적인 줄 알았다. 곰스크는 어느 나라지?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 막상 내가 만나본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삽화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는) 같은 내용인데 나만 몰랐을 뿐 생각외로 굉장히 유명한 책이더라는~ 1992년 독문과 송요섭 교수의 중급독문강독시간. 교생실습으로 수업을 들을 수 없었던 그분(안광복씨)께서 과제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번역하게 된 것. 쉽고 아름다운 문장, 가슴을 아리게 하는 감미로움으로 교생 실습이 끝나 학교에 돌아왔음에도 당시 좋아하던 여학생의 생일선물로 주고 싶다는 맘에 번역하게 되었다는 후일담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로맨틱 한 것 같다. 그 번역본이 대학가를 떠돌고 누군가 PC통신에 번역글을 옮기면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최초 소개자로 세상에 알려지다니~ MBC 베스트 극장에 방영되 화제가 되기도 했고, 황경신님의 책 초콜릿 우체국 안에도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글이다 싶어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초콜릿 우체국을 통해 먼저 만났으니 그럴수밖에 ㅎㅎ (사실 읽은 지 좀 된터라 그랬었나?? 싶은 맘에 초콜릿 우체국을 꺼내 곰스크로 가는 기차편을 다시 읽었더랬다~>.<) 한 사람에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운명처럼 다가올 수가 있을까 !!!
붉은 부표 저편에, 그가 돌아왔다, 럼주차는 프리슬란트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실제 작가는 독일 북부 해안가인 프리슬란트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만 읽어도 다 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나는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양귀비의 내용도 참 좋더라.
무겁고 어려운 내용이 아닌 가볍지만 따뜻한 철학같은 이야기.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내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 . .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목표 자체가 아니다. 인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삶의 순간순간이다. <p.1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