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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에 모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남의 것을 베끼는 짓'이라고 어렵지않게 풀어 이해하는 이 모방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아리스토델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예술은 모방을 거쳐 만들어진다'.. 얼핏 들으면 이른바 '창조적' 작업에 몰두하는 직업을 가진 예술인들을 모조리 싸잡아 짝퉁으로 치부하는 듯 공격적인 느낌으로 이 말을 해석할 수도 있지만, 기실은 모든 예술작품은 자연과 삶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옳다. 그렇다. 무릇 창작활동이라는 것도 결국 세상과 삶의 모습을 약간의 채색을 통해 변형하여 담든 모방의 행위이다. 우리 삶의 현실과 과리된 창작물은 결국 현실의 삶속에 발을 딛은 이들의 감동을 담보할 수 없기에 그 모방은 필연적이고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비슷한 모티브를 경험한다는 건, 세상의 넘치는 문학작품의 종류와 양을 생각할 때, 어지간히 많은 작품을 섭렵하지 않고서는 쉽게 맞을 수 있는 일은 아닐터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와 양의 문학작품들이 존재한다면, 그 중 비슷한 모티브를 가진 문학작품들이 상존할 것이라는 것에 상당한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다. 세상에 아무리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중 남들에게 들려줄만한 그럴 듯한 것들을 추려내면, 결국 유한할 것이기에 그 모방인 문학작품 또한 우연히 닮은 경우가 생길 수 있음은 충분히 인정할 만 하다.
때로는, 선배 작가가 이미 세상으로부터 차용한 모티브에 입힌 색깔이 영 마음에 안들어 동일한 모티브에 자신만의 다른 색을 입혀내거나(패러디), 반대로 너무 마음에 들어 돋보이라는 의미로 덧칠을 해 주위를 환기시키는 작업(오마주)이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패러디건, 오마주건 이런 류의 작품활동 또한 활동의 당사자들간의 감정적 문제를 떠나면, 일반적으로 너그러이 용인되는 엄연한 문학작품의 하나다.
이 책은 어느 문학전문기자가 다양한 책들을 접하다 발견한 일부 작품들 사이의 놀라울 정도의 닮은꼴에 대한 흥미로부터 시작되었다. 웹진 나비에 격주간 두개의 닮은 작품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연재된 기획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그 발단부터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이 이러한 닮은 꼴의 전부는 아니겠으나, 소개된 일부 작품들만을 통해서도 우리는 오랜세월에 걸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서로의 그림자를 사뿐히 즈려밟고 자신안에 녹여내가고 있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저자는 총 스므개의 장을 할애해 다양한 작품들의 서로간 공명(共鳴)의 방식을 설명했지만, 자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몇개의 범주로 구분지어질 수 있지 싶다.
범주 1.. 사랑과 우정의 변주곡 신경숙 작가의 단편소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와 남진우 시인의 「겨울 저녁의 방문객」은 소설과 시라는 다른 형식이지만, 같은 소재를 가지고 쓰여졌다. '대화적 관계'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한 두 작품의 관계는 어린 딸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아픔을 서로의 관점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이 두 작품이야말로 서로의 그림자를 공유함으로써 홀로 서 있을 때보다 휠씬 더 강한 포스를 발산하는 문학작품간 시너지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와 임철우 작가의 「사평역」은 두 작가의 인연만큼이나 서로 닮은 작품이다. 같은 대학(전남대) 동창사이면서 같은 해(1981년) 나란히 신춘문예에 당선한 이들은 그 인연으로 각별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두 작품 중 곽재구 시인의 시가 먼저 발표된 것으로 봐서, 임철우 작가의 소설을 곽재구 시인의 시를 모티브로 차용해 쓴 우정의 변주곡, 즉 '오마주 소설'이 분명해 보인다. 시의 절제된 언어를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풀어 쓴 이 소설은 마치 시에 대한 해설서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본래 시가 가진 본연의 정서를 그대로 살려 재현한다. 마치 데자뷰처럼.. 범주 2.. 세상이 바뀌어도 삶은 변하지 않는다 거문도의 생계형 낚시꾼 한창훈 작가의 단편 「1996년 겨울」과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 작가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은 겨울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서로 다른 시대,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놀랍도록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결코 주류라고 말할 수 없는 청-장년 3명이 우연히 초면에 만나 나누는 대화가 주요 소재인 이 작품이 닮은 이유는 그런 우연한 만남이라는 설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근저에 깔린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에 있다. 일제침략기에 발표된 박태원 작가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처럼 후배작가에 의해 오마주가 많이 만들어진 경우는 없지 싶다.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는 장르를 뛰어넘어 시로도 쓰여지는데, 보통 시가 소설로 변주되는 경우는 많아도 그 반대의 경우는 적은 문학계의 불가역성을 고려하면 이 또한 재미있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최인훈으로부터 시작된 오마주는 주인석과 오규원 등 다양한 작가에 의해 계승되는데, 이는 원작이 가진 무국적-무시대적인 모더놀로지의 독특한 매력 때문이지 싶다. 읽어본 적이 없어도 제목만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시 중의 하나가 유하 시인의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이다. 이 연작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밝음과 화려함을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경구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가 쓴 비유는 오징어. 오징어는 화려한 불빛을 향해 몰려들지만, 결국 그 불빛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유혹의 빛이라는 것.. 그런데 한 10여년 쯤 후배작가가 그 오징어 컨셉에 감응해 비슷한 메세지를 담은 소설을 세상에 내 놓는다. 이신조 작가의 「오징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속초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오징어를 구워 팔던 한 여인이, 마른오징어 타는 냄새에 질려, 또 서울 불빛의 화려함에 끌려 무작정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씁쓸하게 다룬 작품이다.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이나 오징어들이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인지를 진지하게 묻는 이 작품의 결말은 가볍게 책을 덮기 힘들게 만든다. 범주 3.. 사는 건 다 마찬가지야 이인성 작가의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은」은 광기의 힘을 빌어서라도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벋어나고자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다. 과거 살면서 받은 어떤 고통스러운 기억이 자신의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미래에까지도 암울한 장막을 드리운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작건 크건 그런 일이 찾아들어 그 이의 삶을 잠식해 갈 개연성은 너무나도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그런 설정을 다룬 여러 시들.. 즉, 이성복 시인의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최승자 시인의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유하 시인의 「그 옛날의 어린 눈빛」, 박남철 시인의 「다시 거울 앞에서」, 최두석 시인의 「누에이야기」 등이 조합된 몽타주와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안정효 작가의 중편 「낭만파 남편의 편지」와 밀란 쿤데라의 장편 「정체성」은 완전히 똑같은 모티브에 의존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권태기에 빠진 아내에게 신선한 자극을 제공하고자 시작한 익명의 편지 장난에 아내가 의외로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 남편으로서의 자아가 익명의 자아를 질투한다는 설정은 표절에 가깝다 싶을 만큼 비슷한 전개로 진행된다. 안정효 작가가 작품을 먼저 발표했으니, 밀란 쿤데라가 안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가 한글에 까막눈일꺼라는 확신에 가까운 짐작으로 비추어 이는 가능성이 희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 그러니.. 결국 그들은 각기 닮아있는 삶의 모습을 표절한 것으로 봐야할 듯..
황석영 작가의 「아우를 위하여」라는 작품과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서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황석영 작가의 작품이 먼저니 이문열 작가가 표절을 했다는 시비도 세간에 일 만 한데, 제3자는 물론 당사자들까지도 이 문제에 관해 일체 침묵을 유지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며, 이 책에서는 둘 다 일본의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 「먼 길」에 대한 표절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두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학창시절을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비슷하게나마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흔한 학창시절의 경험을 소재한 작품이 서로 닮은 모습을 할 수 밖에 없는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는 교육환경이 비슷한 일본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니, 누구든 이 문제에 대해 표절.. 운운하기 전에 본인의 학창시절을 먼저 떠올려볼 일이다.
범주 4.. 선배님.. 너무하세요 vs 존경합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 「꾿빠이 이상」은 이상 시인의 「오감도」를 모티브로 한 창작소설이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오감도'가 '미친 광인의 헛소리'라는 독자들의 항의에 못이겨 연작 15호를 마지막으로 중단되면서, 이상이 자신이 2,000여점 중에서 30점을 엄선했는데, 시대를 앞선 자신의 시도를 미친 짓으로 치부하것이야말로 진정 한심한 짓이라고 불만을 토로한 글이 이 작품의 발단이 된다. 현재 15호까지밖에 알려지지 않은 이상의 오감도 나머지 작품들은 대체 어디 있을까.. 오감도 제16호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이 작품이 거울나라 목록에 낀 이유는 소설 속에 포커스가 맞추어지는 인물 서혁민이 이상 김해경을 모방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상의 창조적 삶 전체를 모방한 인물의 창작물은 창작일까.. 모방일까?
김동인 작가의 「김연실전」에 대한 정이현 작가의 「이십세기 모단걸-신 김연실전」은 '선배님.. 너무하세요' 컨셉의 패러디다. 격동의 20세기를 살아간 제1세대 여류작가 김명순을 실제 모델로 한 이 작품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김연실(김명순)을 평가한다. 김동인의 시각이 다소 편견에 쌓인 조소에 가까운 그것이라면 정이현은 같은 여성으로서 억울함을 느낀 건지.. 김명순이라는 인물의 삶을 재조명하며 그녀의 명예회복을 시도한다.
송경아 작가의 단편 「치숙」은 채만식의 근대소설 「치숙」의 오마주라고 볼 수 있다. 어린 조카의 눈에 비친 바보같은 숙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60년의 시차가 무색할 정도로 서로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어리석은 이의 눈에는 세상 만물이 어리석게만 보인다는 단순한 주제를 가졌음에도 두 작품이 관심을 사는 이유는 60여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삶의 형식은 변하게 했을지언정 삶의 내용상에는 별 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위의 김승옥 작가와 한창훈 작가의 작품비교와 매우 비슷한 시사점이어서 동일 범주로 묶을 수도 있으나, 송경아 작가가 확연히 다시쓰기(오마주)의 의도적 보여주기를 참작해 이 범주에 넣어 본다.
이순원 작가의 단편소설 「말을 찾아서」 역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오마주로 보아도 무방하다 싶다. 일련의 서사가 공교롭게도 봉평이라는 고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이외에도 일상적이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애매한 관계를 묘사하며 둘 사이의 갈들을 굵은 줄기로 다루고 있어 이 소설은 마치 서로 마주보는 거울과 같은 모양을 하고있다 하겠다. 두 작품이 모두 메밀꽃이 흐드러진 봉평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그 메밀꽃의 풋풋하고 소박한 향훈이 문학의 소재가 되는 우리 삶의 한 줄기에 깊게 배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괜히 넘겨짚어본다.
구효서 작가의 단편 「나그네의 꽃다발」 은 서정주 시인의 시 「나그네의 꽃다발」 에서 그 착상을 따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서정주 시인의 시가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돌고도는 인생에 대한 단상 정도라면, 구효서 작가의 작품은 그 '돌고 돌아감'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소재를 가미해 한 편의 비극으로 승화시킨다. 두 작품은 같은 제목에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각 작품에서 배어나는 향기는 완연히 다른 것이 특징. 서정주 시인의 꽃다발이 그저 '들풀이나 허브정도의 향'을 풍긴다면, 구효서 작가의 꽃다발은 '죽음을 연상케하는 진한 장미향'이 난다.
범주 5.. 같은 곳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신석정 시인의 시 「작은 짐승」과 안도현 시인의 시 「저물 무렵」은 동일한 설정을 모티브로 창작된 시다. 한 시는 산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두 남녀(젊다는 것 이외에는 연령미상)의 정경과 둘 사이에 흐르는 애잔한 공기를 그린 시고, 다른 시는 강둑에 앉아 지는 해 아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과 불안하고 떨리는 첫사랑의 느낌을 묘사한 시다. 둘 다 사내(아이)의 관점에서 묘사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순수한 사랑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 두 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 짝짓기에는 어딘지 턱없이 근거가 부족하다. 세상엔 그런 모습과 느낌을 그린 시들로 넘쳐나니까.. 신석정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난(蘭)' 이라는 여인의 이름이 안도현 시인의 아내의 이름 끝 글자와 같은 우연으로, 안도현 시인은 이 시를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것처럼 그녀앞에서 읽어준 적이 있다 한다. 그녀는 이 시를 안시인의 작품이라 은근히 믿는 눈치임에도 본인은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하니, 그가 이 시를 쓸 당시, 신석정 시인의 시를 염두에 두었다고 감히 의심(?)해도 그다지 미안할 필요는 없지 싶다.
조지훈 시인의 시집 「풀잎 단장」에 실린 시 「석문」과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에 실린 「신부」는 둘 다 당신들 고을에서 전해 내려온 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공통점을 넘어 그 설화가 아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우연이 곂쳐 거울을 마주하고 양 끝에 선 경우다. 오해로 떠난 신랑을 기다리자 그 자리에서 주검이 된 첫날밤도 못 지낸 신부의 한으로 채 썩지도 않고 그대로 밀랍인형처럼 오랜기간 그 자태를 유지했다는 같은 내용을 놓고 둘은 서로 다른 시선에서 이 상황을 서술한다. 먼저 쓴 조지훈 시인이 맺힌 한으로 그대로 굳어버린 여인의 입을 빌었다면, 서정주 시인은 제3자의 관점에서 거리를 두고 그 문제를 다룬다.
최인훈 작가의 연작소설 「총독의 소리」와 복거일 작가의 장편 「비명을 찾아서」는 둘다 역사적 사실을 틀어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구성해나간다는 특징에서 닮은꼴이다. 「총독의 소리」가 일본의 패전 이후 한반도 내에 비밀리에 활동을 지속하는 조선총독부의 후신 조선총독부지하부의 암약과 그들의 성명서를 통해 현재 실재의 역사가 가진 부조리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입장이라면, 「비명을 찾아서」는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 중립국 지위를 지켜냄으로서 한반도와 만주를 여전히 자신의 지배하에 둔 세계 제3의 군사강대국으로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설정을 통해 한 개인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가정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일제침략기에서 모티브를 따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대체 역사(Alternative History)'를 기술했다는 측면에서 겨울나라 안에서 서로 모른체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범주 6.. 고전의 재해석.. 그것은 화려한 리바이벌
고종석은 흥미로운 작가다. 그의 첫 소설집 「제망매」에는 관심을 끄는 제목을 가진 작품 세 편이 들어있는데.. 표제작인 「제망매」, 「찬 기 파랑」, 「서유기」가 각각 그것이다. 제목만 들으면 마치 고전을 현대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겠거니.. 생각하기 쉬운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올시다..다. 일단 「제망매」라는 제목을 접하면,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월명사의 향가 「제망매가」를 연상하게 되는데, 실제 여동생(소설에서는 이종사촌여동생)이 죽은 것만 같을 뿐, 그 이외의 내용은 완전히 딴 판이다. 「찬 기 파랑」의 경우도 기파랑이라는 화랑을 찬양하는 충담사의 향가 「찬기파랑가」를 떠 올리겠지만, 미안하게도 기 파랑(Guy Parent)은 가상의 프랑스인의 이름이다. 물론 고종석 작가의 「서유기」에도 손오공은 나오지 않는다. 「서유기(西遊記)」 역시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 중 주인공이 파리에 체류하면서 알게된 망명한 한국인 정태하(실제 인물은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와의 인연을 다룬 작품이다. 이 정도면 그의 작품명을 지어내는 기지에 경의를 표할 만 하다.
윤대녕 작가의 단편소설 「신라의 푸른 길」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헌화가의 설화를 바탕으로 해서 풀어간 한편의 잔잔한 피아노음악같은 로맨스다. 헌화가는 해당 편의 여주인공 수로부인이 지금의 7번국도를 따라 경주에서 강릉으로 가던 중, 절벽에 절묘하게 핀 철축꽃을 꺾어 바친 노인이 즉석에서 읊은 시를 일컫는다. 윤대녕 작가의 작품 중 주인공 역시 시외버스를 타고 7번국도를 따라해 경주에서 강릉으로 가던 중 옆자리에 앉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느끼는 작은 설레임에서 시작한다. 그는 헌화가의 이야기를 들추어 그녀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둘은 결국 목적지인 강릉에서 내려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함께한 시간과 함께나눈 대화보다 더 큰 추억이 자리잡게 된다. 고전의 재해석이라기 보다는 고전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거울관계를 설명하기엔 다소 설득력이 약하기는 하나, 헌화가라는 고전이 없었더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거울나라에 끼어주어도 될 듯..
최인훈 작가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와 황석영의 「심청」은 고전 「심청전」의 패러디물이다. 둘 다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중국의 술집에 팔려나간 것으로 묘사된다. 술집이름은 용궁루.. 결국 두 작품에 등장하는 심청 모두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여 죽을 고생을 하고 늙어가지만, 두 이야기의 결말이 암시하는 뉘앙스는 다소 상반되다. 재미있는 것은 두 작품 모두 왕비가 되거나, 아버지가 눈을 뜨거나 하는 원작의 희극적 요소는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 원작과 비슷한 건 팔려간다는데까지.. 그게 세상이야..라고 두 작가는 입을 모아 말하고 싶언던 건가..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역시 후대 작가들에 의해 여러차례 패러디된다. 과거 이광수와 채만식에 의해 근대적 관점으로, 다시 김종광 작가에 의해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이 여러차례 이루어졌으나, 이 책에서는 그런 재해석이 아닌 허생전을 소재로 차용하기만 한 다른 서사의 작품 두 편을 소개한다. 전교조 선생님의 문제를 다룬 최시한 작가의 연작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에 들어있는 단편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과 허생의 아내의 시선을 빌어 페미니즘 관점에서 허생을 삶을 조명한 이남희 작가의 「허생의 처」라는 단편이다.
리뷰를 접어가며..
이 책은 치명적 매력과 또 그에 상당하는 치명적 약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먼저 매력을 말하면, 그간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누구든 한 번쯤은 느껴봄직한 막연한 데자뷰에 대해 상당히 섬세하고 명쾌한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 이는 작품 하나하나에 단선적으로 노출된 독자가 흔히 경험하는 고립된 일대 일의 교감을, 복수의 작품 간 관계속에서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함으로써 일대 다수의 교감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이는 필수가 아닌 옵션이니 읽는 이의 취향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도 가능하다.
반면, 치명적 약점은 스포일링.. 좋은 작품이지만, 아직 못 읽어본 작품의 전체 얼개를 대책없이 읽게 만듬으로써, 그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묘미를 은근슬쩍 앗아간다는 것이다. 이미 소개된 작품을 다 읽어보았거나, 읽지 않았더라도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전혀 없다면 모르겠지만, 만일 소개된 작품 중 꼭 읽고 싶다고 점찍어둔 작품이 있다면, 그 장(章)은 통째로 건너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싶다. 웹진의 연재물이었던 덕에 이야기는 각 장별로 연결고리가 없어 한 두 장쯤 그냥 패스한다고 해서 이후의 과정에 불편함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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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있는 그대로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즉 모든 것을 독립적이고 부분적인 단절의 그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상호 연결된 구조로서 이해한다면 사실 우리들의 생각이 서로 닮은꼴을 하고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어느 순간부터 고작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란 한계를 가지고 분석하고 짜깁기하는데 익숙해져 정작 진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학 작품을 접하는 우리네에게 저자가 발견케 해주는 서로 다른 작품들의 다채로운 방식의 연결의 드러냄을 통해 알지 못했던, 또한 알려지지 않았던 의미의 발굴과 소개는 가려졌던 진실을 그의 말대로 “조금은 넓고 깊어지게”해준다. 선행자로부터 후행자에게 꽃다발이 전해지는 축적됨의 문학사적 의의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구조와 본질을 보다 넓고 깊게 전체적인 형상으로 볼 수 있게 하여주는 의미 깊은 시도라 하여야 할 것이다. 단지 문학적 영감의 일치라 볼 수밖에 없는 동일성에서부터 선배 문인(文人)에 대한 존경의 뜻을 가득 품은 오마주, 때론 원작을 비비꼬고 조롱하는 다시쓰기, 그리고 동일한 모티프나 서로의 작품에 우정과 사랑, 경외로 소통하는 작품의 형태까지 그 거울의 모습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 대화의 질이 어떻든 그 소통의 변주들에서 우리네 심성의 보다 풍부한 전경을 읽게 되는 것은 이 저작의 진짜 힘이라 할 수 있다. 20여 쌍의 거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 거울의 상(像)은 사랑이고 존경이며 공감이기도 하지만 저항과 뒤틀림, 적대감이기도 하다. 바로 이렇게 흥미로운 연결을 지닌 작품들을 대함으로서 미쳐 보지 못했던 의미를 비로소 보게 되고 앎의 지평이 넓어진다. 복제된, 독자적 하루로서 의미를 지닐 수 없는 반복의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모티프는 아마 국경과 거리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형상일 것이다.‘안정효’와 ‘밀란 쿤데라’의 오묘한 영감의 일치처럼 말이다. 그리고 분명 같은 인물을 소설화하였음에도‘김동인’의 「김연실 전」은 ‘정이현’의 「이십세기 모단걸 - 신 김연실 전」에 와서 심하게 공격당하고 일약 창부에서 세대와 투쟁한 여성전사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채만식’의 「치숙」은 존경을 그득 담은‘송경아’의 「치숙」으로 더욱 빛나고,‘최인훈’은‘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를 거의 일반명사화 시키는데 공헌하기조차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내면은 무릇 수많은 방해작용으로 제한된 대상만을 인식하지만 이들 작가들의 누적된 관점을 통해 보다 원형에 가까운 세상의 이해에 근접하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거울 작품들이란 존재 자체가 두 세계의 본질이 여전히 바뀐 것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할 때 어쩜 동일함의 반복은 그리 달가운 현상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존재의 확인은 분명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신석정’의 「작은 짐승」과 ‘안도현’의 「저물 무렵」에서 발하는‘蘭이와 나’ 또는 ‘그 애와 나’처럼 말이다. 우리 문학작품을 새삼 넓게 열리고 깊이있게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저작이다. 저자의 기대를 넘는 문학의 영감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 문학의 이해를 높여 독자의 지평을 넓히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저작이라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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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나라의 작가들]은 처음 읽기 시작할때부터 조금 어려운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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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책표지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1주일에 걸쳐, 생각했던 것 보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냐하면 책에 사용된 단어들이 제법 지뢰밭 같은 ㅎㅎㅎ이해하는데 조금 어려웠다. 일상어에 익숙해서 그런지 애매하게 의미가 헷갈리는 단어도 많았고 처음 접해본 고사성어나 용어도 많아서 읽으면서 학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전자사전이 아니었다면 읽다가 포기할 뻔했다. 그래도 뭔가 모르는 단어 공부도 하면서 과거의 시대상도 엿보고 다양한 작가와 책을 접해 본 유용한 시간이었다. 책에 소개된 작품들중 아는 작품도 있었지만 모르는 생소한 작가들과 작품들이 많이 소개 되었는데, 그 작품들을 다 읽지 않아도 일부 그 속에 담긴 작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렇다~재밌기 때문에 끝까지 읽었다. 작품의 모티브, 오마주, 어떤 문학적 연결과 변형 풍성하고 다양한 창작의 세계를 느낄 수 있어, 뭔가 확장된 문학의 의미가 느껴졌다. 또한 저자님의 어떤 독서의 혜안을 엿본 것 같아서 놀랍고, 꾸준한 독서생활로 나도 이런 혜안을 갖고 싶다. 읽으면서 소설 작법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상상력도 자극 되었고, 책에 거론된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싶은 독서욕구도 자극되어 소중한 책이다. 일부 표절의혹도 있지만 기존작품의 일부만 가져와 전혀 다른 작품으로 뒤집기도 하고, 비틀고, 늘리기도 하고, 시대를 건너뛰기도 하고, 다양한 삶을 조명하면서 본질을 꿰뚫는 문학 활동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역사적인 사건과 신화적 이야기도 거론 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면서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역시 암기식 또는 시험 대비용 어떤 문학 공부로 접했다면 금방 흥미를 잃고 뇌리에서 금방 잊힐 것이다. 자발적 독서를 통해 읽으니 지적 호기심은 물론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자극제가 되어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뭔가 이런 문학의 흐름이 단순 모방에 그치지 않고 비빔밥처럼 영양가가 있어 작품을 쓰는 작가를 자극하고 독자를 자극하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생기 있는 흐름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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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이란 평지돌출 식으로 뜬금없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대 작품들의 영향과 그늘 아래에서 생장하는 것이라는 사실'(196쪽)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책이 있다. 바로 <거울나라의 작가들> (2010, 최재봉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이다. 한겨레신문에서 문학 담당 기자로 재직 중인 저자는, 지금까지 책 세 권을 쓰고 여러 권을 번역하여 옮기는 등 책과 아주 가까운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그간 읽은 많은 글들을 이리저리 짝지워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거울은 앞에 선 존재를 세세하게 비춰주기는 하지만 좌우가 거꾸로이기 때문에 '거울상'이라는 말이 생겼다. 거울 속의 나는 왼손으로 능숙하게 양치질을 하고 오른쪽 가르마를 타고 있으나, 현실의 나는 왼손으로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철저한 오른손잡이에다 왼쪽 가르마를 타고 있으니 말이다. 글에서도 이런 거울상이 존재한다. 꼭 닮은 글, 그러나 그 뜻은 전혀 다를 수 있는 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의도적으로 닮도록 쓰인 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의도적으로 비판하도록 쓰인 글, '거울나라의 작가들'이 쓴 글에는 참 다양한 거울상들이 존재했다.
저자는 문학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작가의 상상력, 사회적 맥락, 선행 작품들의 모방과 극복이 그것이다. 이중 세 번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여 만든 것을 '거울 관계'라고 이야기했고, <거울나라의 작가들>에는 이런 거울 관계의 사례가 총 20개 묘사된다. 오래되기로는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시작하여 가깝게는 정이현의 <이십세기 모단걸-신김연실전>(2003)까지, 멀게는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과 안정효의 <낭만파 남편의 편지>까지 시간과 공간을 폭넓게 가졌다. 그러나 주된 비교대상은 한국의 근현대 소설과 시이다.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에서 이상의 <오감도>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이인성의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의 각 매듭을 여는 싯구는 내용을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채만식의 1938년작 <치숙>과 송경아의 2002년작 <치숙>은 60여 년의 간격을 통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복거일의 1987년작 <비명을 찾아서>에서 드러나는 거울 속의 거울은 어떤 모습인지,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1972)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은 얼마나 유사하고 얼마나 다른지, 저자는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책 내용을 곳곳에 인용하며 설명하는 터라, 지금과는 사뭇 다른 원전의 말투와 맞춤법 등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작품들의 비교 설명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삶에 대해서까지 통찰을 넓히고 있으므로 그 깊이가 더하다.
정치가들이 시류를 좇아 철새처럼 당을 옮겨다니듯 작가도 일생에 걸쳐 글을 쓰면서 당시의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주제를 택해 어떤 내용의 글을 쓰고 어떻게 결론 내리는가를 보며 작가의 생각과 변화를 유추할 수 있었다.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가족관계와 교우관계 등을 두루 평가하는 것과 같은 이치'(8쪽)로 거울 관계에 놓인 둘 이상의 작품을 함께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발터 뫼어스의 <밤> (2003, 문학동네)이라는 책은, 19세기 프랑스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귀스타브 도레의 목판화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쓰인 글이라는 설명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혔다. 이제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음악, 사물에 대한 대화로도 책을 바라보는 관심을 가져야겠다. 한 눈만으로 사물을 보면 거리감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두 눈으로 보면 형태와 더불어 원근감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대화적 관계로 본 문학 이야기'를 통해 한 차원 더 나아간 책읽기를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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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젊은 치기로 방황했지만 문학은 나의 모든 것이었고 그때는 나름 행복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열정을 잃은 채, 전혀 작가 지망생답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읽는 책들도 문학에서 점점 멀어지고 비문학을 주로 읽고 있다. 나는 정말로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잠시 한 구석에 문학을 내려놓고 있는 것일까. 계속 이런 식으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도 괜찮을까. 최재봉의 <거울 나라의 작가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이다. 이 책은 웹진 나비에 연재되었던 칼럼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으로, 서로 연관성이 있는 문학 작품들을 엮어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각의 문학 작품은 독립적인 실체로서 존재하면서도 시대와 형태를 뛰어넘어 모티프를 주고받고 있다.
이 책에서는 총 20가지 테마로 각각 2~3개의 작품들을 엮어서 다루고 있다. 개중에는 처음 접하는 것도 있지만 오래 전에 읽었던, 그리고 잊고 있었던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들도 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등장 인물들의 허무하고 씁쓸한 인생의 맛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한창훈의 <1996 겨울>은 약 30년의 시차를 두고 여전히 황량한 주변부 인물들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은 겨울의 추위와 막연한 불만과 불안감을 통해 사회 전체의 병증을 증거하고 고발하고 있다. 이상의 <오감도> 연작과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 역시 거울상에 놓여있는 작품들로, 당시 독자들의 항의로 인해 15호를 끝으로 연재 중단된 오감도 연작에 대한 오마주로써 <꾿빠이, 이상>이 쓰여졌다. 오감도 시 제16호는 현존하는 이상 작품집 어디에도 실려있지 않지만 <꾿빠이, 이상>에는 작중 인물의 가상의 작품으로써 오감도 16호가 인용되어 있다. 그 외에도 오감도 시 제3호나 <날개> 등을 오마주한 부분이 눈에 띈다.
또한 황석영의 단편 <아우를 위하여>와 이문열의 단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전상국의 단편 <우상의 눈물>의 유사한 서사구조 역시 흥미롭다. <아우를 위하여>가 폭군의 횡포와 몰락을 비교적 단순하게 나타냈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한층 복잡한 궤적을 그려 보인다. 또한 <우상의 눈물>은 <아우를 위하여>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사이를 잇는 매개와도 같은 작품이다. 세 소설 모두 학교를 무대로 삼아서 권력의 형성과 몰락, 그리고 그 바탕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알레고리적 수법으로 그리고 있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 외에도 채만식의 <치숙>에 대한 오마주로서 쓰여진 송경아의 <치숙> 역시 흥미롭다. 세속적 성공에 집착하지 않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씁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와 임철우의 <사평역>이라던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최인훈의 동명의 작품 등 상호텍스트성이 돋보이는, 서로 거울상에 놓여있는 작품들에 대한 접근과 분석이 꽤 흥미로웠다. 국문과 재학 시절에 배웠던, 작품에 대한 여러 접근법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또한 잊고 있었던 문학에의 열정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되살아났다. 오랫동안 나는 문학을 잊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문학으로 돌아갈 때가 아닐까.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무명의 글쟁이로서 즐겁게 살고 싶다. 여러모로 이 책은 모든 것에 시들해진 나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펴 주었다. 책의 표지를 보고 생각했던, 이상의 시 <거울>을 덧붙인다.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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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흔히 '1인 공화국'으로 불리고, 그들이 창작한 문학 작품 역시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를 지닌 독립적 실체라 보아야 옳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작품들이 순전히 독립적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작품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작품을 발견하기도 하고, 비교가능한 인물을 찾기도 하며, 처음 읽는 글인데도 언젠가 이미 접했던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을 받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고전을 패러디한 작품을 접하거나 오마주로 재탄생된 작품을 만나는 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각자 자신이 접한 작품 세계 속에서 문학 작품에 접근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어떤 기준을 마련한다. 글로써 풀어내지 않아도 암암리에 자리잡는 그러한 접근방식은 작품 속에 감추어졌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오랜 시간 문학을 담당한 기자 최재봉은 <거울나라의 작가들>을 통해 우리 시대 몇몇 소설과 시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사회적 맥락이 아닌 '선행 작품들의 모방과 극복'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하나의 문학작품이 다른 작품과 대화적 관계에 놓인 경우를 찾는다. 문학사에 대한 의식이 민감한 작가일수록 선행 작품을 대화 상대로 삼아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빚어내는 일이 잦다고 생각하는 그는 의도적으로 흉내내거나 비틀어서 새로운 효과를 내는 패러디의 경우를 포함해서 작품 간의 암시적인 관계를 '거울 관계'라 명명하고 거울 관계에 놓인 작품들 사이에서 어떤 대화적 관계가 맺어지는지, 그 결과 탄생한 작품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이렇게 문학작품 속에 놓인 내용과 형식 상의 관계를 찾는 일은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도 한결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만든다. 여기에 실린 것들 중에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정효의 <낭만파 남편의 편지>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의 쏙 빼닮은 스토리에 대한 비교, 서정주의 <신부>와 조지훈의 <석문>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해석이다. 심청전을 비튼 현대소설들에 대한 해설도 무척 흥미로웠고, 윤대녕의 <신라의 푸른 길>도 읽어보고픈 마음이 생겼다.
본보기로 제시되는 소설이나 시들 가운데 이미 접해본 작품이 지극히 드물었지만 저자의 관점으로 살펴본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각각의 테마를 충분히 풀어서 설명한 덕분이기도 하고, 누구나 책을 읽으며 정리하게 마련인 머릿 속 작업이 익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는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인물에 가까이 가기 위해 부단히 그런 관계를 두루 파악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이런 시도가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깊이 있게 문학이야기를 풀어낸 저자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문학작품, 더 나아가 모든 상상력의 산물을 바라보는 데 관계를 찾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에 확신을 얻었다. 그러니까 블로그에서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경우에도 끊임없이 다른 작품과의 관계를 찾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보는 일이 그 작품과 작품이 놓인 시대를 더욱 깊이있게 이해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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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신선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된 문학에 대해, 그것은 선입견이라고 하는 이 책은 무척 독특한 시선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효과일 것이다. 문학가는 당대의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너무 막연하고 관념적이다. 도대체 어떻게 영향 받는가 하는 것이 사실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영향 받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제목이 ‘거울나라의 작가들’이란 것은 그 사회적 조건에 착안을 둔 것이 아니라 작가들 자신이 봤음 직한 혹은 봤던 작품들에 영향을 받아 문학을 썼던 이들의 묶음을 이르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관계’이다. 바로 ‘관계’다. 시대를 넘든 동시대이든 큰 인상을 준 작품들에 대해 작가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앞서의 작품에 대한 유사성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또한 앞서의 작품과 주제의식이 유사하던가 아니면 비판의 입장에서 쓰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시대 상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고, 또한 독특한 작가들의 세계관이 한 판 전쟁을 치르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이런 반응을 통해 왕성한 창작의욕이 분출하고 거침없는 필력이 작용하고, 그래서 한 번 볼만한 문학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작가는 물론 독자들에겐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에세이에선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는 작품들을 연결한 경우도 있지만 시공을 초월하다 보니 지은이의 상상력으로 연결한 내용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상력도 책을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다. 새로운 창작이 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다만 주제의식이 충돌할 경우, 앞서의 작품을 비판하는 이후의 작품에 대해 앞서의 작품의 작가가 반론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허생전’과 ‘허생의 처’ 사이에 있는 간격을 더욱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도록 연암 선생과 이남희가 함께 논쟁을 벌였으면 했지만 불가능은 언제나 고전과 현대작품 사이에 놓여있는 슬픈 바다인 것이다. 고전은 후대의 작가들을 위한 거름이 된다. 하지만 과연 이후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상과 방식이 언제나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고전인 ‘심청이’에 대한 최인훈과 황석영의 현대판 해석은 동화 속에 숨겨진 각박한 세상살이를 간파한 지성인의 인식 같기도 하다. 사실 심청이란 캐릭터가 나온 당대인들이 전래동화 속에 숨어 있던 낭만과 환상을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더 잘 알았을 수 있다. 지금도 낭만을 쫓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의 심리인 현실도피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엄존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엔 현실에서의 능력이 없다는 것 역시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위안을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란 엄중한 경고인 것인지에 대한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고전이 취한 동화가 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작부로서의 심청이가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는 있어도 불행한 인간사를 겪고,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현실의 자신을 유추할 수 있어서 괴로울 수 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본 문학이 고통을 시간을 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공교롭다고 할까? 비슷한 구성과 내용, 그리고 주제의식, 이런 것들이 다른 작품에서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누구의 작품을 베꼈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들의 보편적 속성의 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적 소유권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문제의식은 시공간을 넘어 언제나 비슷했고, 현실의 인간 역시 과거 어느 시점의 고민을 유사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말이다. 그래서 과거를 보고, 현실의 우리를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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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님의 「도가니」를 읽은 후에야 김승옥님의「무진기행」을 읽었었다. 솔직히 소설 제목은 읽히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무진기행」은 쉬이 손이 가지 않았었다. 작품에서 언급된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 되기도 하지만, 한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도 강렬하게 다른 책을 찾아보게 된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도가니 작품 이후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공지영씨는 "강인호가 떠나버린 것은 『무진기행』의 그 암울한 결과를 답습한 것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강인호가 편지를 쓰고 떠나는 것은 『무진기행』에 대한 오마주이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정의롭고 싶고 올바른 일을 하고 싶지만 몸은 이기심을 쫓아가는 것을 강인호를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서유진의 마지막 편지는 『무진기행』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 거예요. 부끄러움을 느끼고 도망가는 강인호를 기다려 주고, ‘다음’이라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라고 답한 걸 보았다. 책과 인터뷰를 보면서 따로따로인 개별적인 작품들이 확대 재생산되어 현실로 들어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도가니」와 「무진기행」은 읽으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문학사에 대해 어찌보면 고등학교 이후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는 내게 최재봉님의 「거울나라의 작가들」은 읽고 싶다는 자극을 심어주었다. 도가니를 읽으며 설레었지만, 잊고 있었던 문학의 얼개를 떠올리게 해주어 감사했다.
이문열님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읽었지만, 황석영님의 「아우를 위하여」는 모르는 내게, 구보씨는 문학 시간에만 듣고 흘려버려 그리도 많은 구보씨의 하루들이 있는 줄 몰랐던 내게, 채만식의 「치숙」은 알면서 송경아님의 「치숙」은 모르는 내게, 정이현님의 「신김연실전」은 재밌게 읽었지만, 정작 「김연실전」은 찾아 읽으려 안한 내개 지나쳤던 이 책들을 읽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켜 주었다.
장르문학에 치중하고, 지금 새롭게 나오는 작품에만 열을 올리던 내게 정말 글 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다른 시선과 자극을 준 책이어서 2011년 독서의 첫발을 잘 내딛어 뿌듯하기 이를데 없다.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점 : 1. 책 표지는 살짝 무서운 느낌이 듭니다. 잠시 응시하니 더 그런...북커버를 활용하는 것도 좋을 듯. 2. 활자가 의외로 커서 첫장을 펼쳐들었을 때 살짝 당황스럽지만, 내용은 실합니다. 3. 어떤 분도 리뷰에 쓰셨던데 스포일러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세히 기술된 부분 및 저자의 생각들도 많이 적혀 있으니 각 언급되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 책과 자신의 느낌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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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문학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도 한다. 근원적으로 따져보자면 왜 책을 읽는가? 어떻게 읽고 있는가? 얼마나 함께 하는가? 어떤 책을 읽는가 등도 따져보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런 질문은 그리 고민할 필요는 없다. 마치 평론집 같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문학이란, 아니 작품이 이렇게 서로서로 잘 엮어져 있으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 어떤 묘미가 분명히 있다. 꽤 딱딱하리라 짐작하였지만 오히려 읽을수록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