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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서예시간은 내겐 고역이었다. 남들은 다 학교앞 문방구에서 작은 어린이 용 붓과 벼루,먹물을 가지고 등교할때 나는 태교때부터 취미생활로 서예를 배우신 엄마 탓에 도구들을 제대로 갖춰가야한다며 책가방보다 더 무겁고 큰 벼루, 연적, 팔뚝보다 큰 먹들을 들고 학교를 오가야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그냥 먹물을 부어 지우개만큼 작은 먹으로 몇번 휘휘 젓다가 글씨를 쓰는데, 나는 연적에 담긴 물을 부어 일일이 알맞은 농도가 될때까지 두 손으로 큰 먹을 들고 갈아야했고 다 쓴 글씨는 집에 가져와 엄마에게 검사맡으며 맨날 혼나야 했으니 결코 즐거워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서예 근처에도 가지 않게된 이유는 거기에 있다. 사실 주변지인 중에는 서예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많다. 몇년 전 전시회를 여신 큰 외숙모님의 글씨는 아직 외가에 걸려 있을 정도였고 꼬맹이 사촌들도 서예를 기본으로 배우고 있다. 하지만 내게 서예는 무거운(?) 기억이 있는 예술이었다.
내게도 좋은 추억이 있었다면 즐길 수 있었을까. 나와 달리 서예가 좋아서 40여년을 서예가로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 선물로 받은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라는 책의 주인공이 그러했다. "서예를 하면 사람과의 만남이 더 격조있게 변한다"고 말하는 그는 법학과 학사, 국문학 석사를 거쳐 서예,전각,한학을 사사받았고 정동에 석곡실이라는 창작공간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서예란 그저 글씨를 쓰는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인터뷰 형식으로 이어진 책의 내용으로 보자면 역사를 염두에 두고 써야하는 예술이며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과 마음의 수양을 통해 일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했고 붓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것으로 정의내리고 있었기에 서예는 그에게 고급예술이었다. 작가는 자기가 아는 만큼, 느끼는 만큼 쓸 수 있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온종일 버티는게 중요한데 그는 매일 3시간은 꼭 작업하는데 사용한다고 하니....꾸준히 이어온 40여년의 세월을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바로 여기에서 장인 정신이 묻어나는 것이리라.
2004년 [집시]라는 작품은 특이한 글씨체로 보이는 갑골문이 담겨 있었고 2007년 붉은 바탕에 네모 4개가 합쳐진 것 같은 글씨는 전서로 쓰여진 [옹]이라고 했다. 그저 그림처럼보이기도 낙서처럼 보이기도 한 글씨체들이 서예의 한 일부분이었다니...나는 그동안 과거의 불편함 때문에 멋진 예술을 등지고 살아왔던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서예는 사실 대중화 되어 있지 않은 예술이다. 작가의 말처럼 대중화가 쉽지 않은 장르이며 결코 대중적일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한참을 노력해서 마음에 들때까지 써야 하는 것이 서예이기에 그 멋스러움에 감동한다면 대중도 한 명, 한 명 모이게 되지 않을까. 4년 14년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이 ....말이다.
한 서예가의 서예에 받친 애정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가 잊고 살았던 그 무언가를 발견해 낸 듯 싶어졌다. 잊어 버리기 전에 일기장에 그 마음을 옮겨놓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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