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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볼 시간이 많아져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자주 훑어보곤 한다. 며칠 전부터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천천히 조금씩 읽었다. 이 책은 아룬다티 로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룬다티 로이가 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온갖 큰 것들이 판을 치는 인도 케랄라의 아예메넴에서 살아간 아무, 라헬, 에스타, 벨루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만 바꾼다면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 그 곳에서도 벌어진다.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읽어가면서 문장을 그림으로 그려보곤 했다. 아름다운 묘사로 풍경처럼 그림이 그려지고, 그 풍경은 때로는 내 몸 깊숙한 곳에 있는 그리움으로 채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원인모를 불안함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결국 작은 것들은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작은 몸짓들은, 작은 것들의 신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무렵 이어서 읽었던 <생존의 비용>과 <9월이여, 오라>가 떠올랐다. 책꽂이에서 꺼내 펼쳐보니 오래된 책냄새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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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에 대해 말하기 앞서 사설부터. 그 동안 '놀스페이스'의 짝퉁으로 생각한 '레드페이스'가 TV광고를 시작했다. 그것도 정우성님이. TV광고에 노출되다 보니 이제는 레드페이스를 입은 이들이 달리 보인다. 브랜드로 승격화 된 레드페이스. 그리고 브랜드로 인식하자 입은 사람까지 달리보이는 시선.
상품의 브랜드화가 사람들에게 보다 넓게 적용되면 계급의식으로 바뀐다. 눈으로 증명되는 좋은 차, 좋은 집, 악세사리 등에 사람들은 스스로 계급을 나누게 된다. 미국의 힐러리 장관과 개발도상국 시골마을의 한 여성을 똑같은 시선으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시선.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 문제삼으려고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그 시선, 우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작은 것들의 신'에서 적나라하게 대면하게 된다. 현실의 어느 귀퉁이에서는 바로 그 시각 때문에 누군가가 소멸될 수도 있다는 것을. 소설은 여전히 카스트 제도 아래 있는 인도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다. '작은 것들의 신'은 성인이 된 라헬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현재의 시점과, 사촌 소피 몰의 장례식에 관련된 사건을 회상하는 과거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상상해 보자. 저명한 집안의 따님이 외국인과 결혼하여 이란성 쌍둥이를 낳았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녀는 이혼녀였다. 엄마와 고모, 유학파 오빠에게 무시를 당하고 사람들의 입에 불경하게 오르락내린다. 그런 그녀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는 인도 카스트제도 최하위 층에도 들지 못하는, 카스트 계층에 존재하지 않는 불가촉천민인 파라반이었다. 둘 만의 밀애는 곧 발각이 되었고 불운하게도 유학파 오빠의 딸, 소피 몰의 죽음과 얽힌다. 불가촉천민과 정을 통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여자의 집에서는 파라반인 벨루타에게 살인과 유기, 강간 미수의 죄를 뒤집어 씌어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결국 여자 또한 집에서 쫓겨나고 머지 않아 죽음을 맞이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너무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여자의 이란성 아들과 딸의 시선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큰 신이 열풍처럼 울부짖으며 복종을 요구하면 작은 신(포근하고 조심스럽고 사사롭고 제한적인)은 움찔 놀라서 자신의 무모한 만용을 슬며시 비웃으며 가버린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 자신의 모순을 확인하는 데 길이 들어서 작은 신은 곧 다시 쾌할해지고 정말로 무관심해졌다. 아무것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제가 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떠나온 나라에서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평화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 항상 균형이 이루어졌고 계속해서 더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본문 34-35p [첨부1] 인도의 카스트제도 [첨부2] 카스트 아래의 카스트, 파리아 (Paraiyar, 불가촉천민) 이들은 악의 구현으로 악마,악귀 등 사회악으로서 다른 계층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힘든 일을 하거나 가죽을 다루는 일(무두장이), 시체를 다루는 일, 구식 화장실의 변을 정리하는 일 등의 더러운 일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파리아들은 인도에서 엄청난 차별대우를 받기 때문에 사회적인 것을 포함, 모든면에서 격리 수용되어 생활을 한다. 파리아는 다른 일반의 인도인과는 다르게 모든 종류의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는 파리아가 잘해서가 아니라 '파리아는 이제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 때까지 타락했고 더러울 수 없을 때까지 더러워진 저주받은 카스트'라는 인식이 인도인들의 머릿속에 깊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아는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격리 수용되고 사는 지역도 격리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사용하는 우물조차 격리되어 있는데 파리아 전용 우물은 동물의 뼈로 그 주위를 둘러쌓아 표시해둔다. 만약 파리아가 다른 카스트와 신체적 접촉이 발생될 경우(심지어는 인도의 4대 카스트 중 최하위라는 수드라와 신체적으로 접촉해도 마찬가지) 큰 죄로 다스리게 되고 심지어 이 사유로 파리아를 죽일 수 있다. <출처: 위키백과> [첨부3] 채널예스 관련기사 "인도의 여성작가 아룬다티-로이" http://ch.yes24.com/Article/View/12446 "소설이 복잡한 세상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이 소설은 저의 세상이며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작은 것들의 신'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말이다. 그녀의 말대로 이 책에는 현실의 세상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인도의 카스트 계급 제도, 남녀의 차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위에 선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같이 대비되는 두 개의 객체가 엇갈려 이야기를 엮어간다. 그러나 결국 '작은 것들의 신'에서 말하는 주제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처럼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사랑의 법칙이 아닐까. 인위적인 계급과 그로 인한 선입견, 차별 등을 초월한 인간 본성에서 일깨우는 사랑의 관능. 색안경없이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상처받은 자들의 작은 희망, 그것이 '작은 것들의 신'이었다. 11/29에 개봉한 영화 '26년'을 보고 나서 다시 리뷰를 잇는다. 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전쟁보다 더 무서운 상처를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서 찾아본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해서 '빨갱이'라는 명분으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눈 앞에서 제 가족을 도륙하는 세상. 그러나 약한 자들은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지 못한다. 많은 국가가 과도기에서 한 세대를 제물로 삼아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에 주목해 본다. 그리고 잊고 있었지만 그 세대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영화를 보며 슬픔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평화가 과연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이 들면서. '작은 것들의 신'은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 파라반인 벨루타와, 계급사회에 자본이 침투하면서 자본으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라헬의 집안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그리고 있다. 한 가정을 빗대었지만 이것은 인도 사회 전체를 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세대를 제물로 삼았음에도 여전히 카스트제도를 가지고 있는 인도의 현주소 향해 호소한다.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 소설 중간에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 레몬쥬스 한잔에 어린아이를 성추행하는 어른, 노동운동에 가담하면서도 회사 여직원들을 겁탈하는 사장, 남자는 그래도 된다면서 모른 척 눈감아 주는 사장의 어머니, 벨루타가 도와달라고 찾아왔을 때 같이 노동운동을 하는 당원이면서도 매몰차게 거절했던 남자, 완전히 천민계급에 빙의되어 라헬과 벨루타의 관계를 밀고하며 죄를 묻는 벨루타의 아버지. 이런 사건을 보면서 '정의'라는 커다란 명제보다 앞서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라헬과 벨루타와 도망쳐 아름다운 낙원에 정착하길 소망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해피엔딩이 드물이 때문에 '현실'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가. 적나라한 이 현실에서는 여전히 작은 것들의 신은 복종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도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것이며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연합하여 '큰 신'에 대항할 때 이상이 현실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희망을 가진다. 세상은 바뀔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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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어젯밤에 이 책을 다 읽고 먹먹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카스트제도, 여성과 남성의 너무나 당연한 차별, 사대주의, 혼란한 사회상 이러한 여러 배경들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 내는 이야기. 사회적 제약이 존재하고 그 제약 안에서만 살아야만 명예를 지키는 거라고 생각하는 상류층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이야기, 어린시절의 한마디 대답-예- 때문에 영영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죄책감의 죄를 지고 살아는가 쌍둥이의 이야기.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작가는 아주 세밀하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마치 직조하듯, 촘촘하게.
사회적 제약이 당연시 되고 그 제약을 목숨보다 더욱 소중히 지키는 결과로 그들은 상류층의 도덕성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하고 쌍둥이 아이를 달고 본래 집으로 돌아온 ‘아무’와 그녀의 쌍둥이 아이들은 그 집안에서 변방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 도덕성과 사랑은 삐걱대듯 일치할 수 없는 가치였고 그 안에서 모든 사회적 제약를 뒤로한 채 사랑을 선택한 아무와 그녀의 자식들은 상류층 사회에서 쫓겨나듯 떠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카스트,차별,사대주의,혼란. 이러한 것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며 사람을 옥죄는 거대한 신이라면 아무가 선택한 사랑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섹스, 그리고 그 섹스 후 할 수 있는 작은 약속, 쌍둥이 남매가 선택한 가족보다 더욱 -계급을 벗어나-믿을 수 있었던 불가촉민인 벨루타.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작은것들의 신이었다. 거대한 신에게 억눌릴 것을 잘 알면서도 선택한 소중한 것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사랑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이 책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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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배경이 된 소설 <파이 이야기> 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탓에 그와 함께 소개된 인도의 7대 소설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은 것들의 신>을 읽었다.
얼마 전에 출간된 소설인줄 알았는데 1997년에 초판된 역사 있는 소설이었다. 2012년까지 살아남아 회자될 책이니 의심 없이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구매를 할까 했지만, 소설분야는 잘 사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 고민이 되었다.
도서관가서 빌리려 해도 매번 대출중인 인기 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읽고 싶다는 열망하나로 한 달 넘게 기다린 끝에 읽게 된 작품이다. 거의 두 달 동안 나의 기대가 불어난 탓인지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이게 이런 작품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며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책 말머리에도 역자가 언급한 말이 어쩌면 내 흥을 죽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오래된 유명한 소설은 번역을 하는 데서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작가는 외국의 독자들을 위해 주석을 달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인도 문화에 생소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난해한 작품일 수도 있다는 염려. 그런 언급에도 막상 읽어내려 가니 잘 모르는 인도문화는 흐름상 이해하며 넘어가고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언어의 묘미인 것이 절절히 느껴졌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 중 여동생인 라헬이 화자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서른하나.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 그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이에 있는 그들과 어렸을 적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간을 이동하며 전개되는 형식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암시하는 글 뒤에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하여 한장 한장 조급한 맘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비극을 알려주는 책을 읽으며 도대체 그 장막 속에 무엇이 있는지 온갖 끔찍하고 거대한 괴물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상상한 나의 의문들이 책의 끝으로 다다를때쯤 설마를 연발하며 이것은 아니겠지 하는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처음부터 사랑받은 아이 소피 몰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누구도 가해자가 아닌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 끝이 난다. 가해자라 치면 가해자인 경멸감을 일게 한 어떤 인물만 뺀다면.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웠던 사람이 죽음을 맞는 장면은 너무나 처량하고 비참해서 가슴이 아팠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 아파 더 안타까웠다.
결국엔 신분제도가 심한 인도의 사회를 비판하며 비극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끝이 난다. 사고로 끝내야 할 것을 뿌리박힌 사회의 고정관념과 이기심으로 가해자를 만들어 공모하고 피해자를 만들어 더 괴로운 사건으로 만들어 버린 사랑이야기가 소박해서 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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