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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치유자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진정한 치유자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보기
“몸이 아프거나 아플 것 같은 징조를 보이면 우리는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의사를 대할 것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몸이 불편한 것도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언젠가 경험했던 불친절함이나 냉랭한 태도, 권위의식은 우리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디에 ‘좋은’ 의사가 있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의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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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거나 아플 것 같은 징조를 보이면 우리는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의사를 대할 것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몸이 불편한 것도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언젠가 경험했던 불친절함이나 냉랭한 태도, 권위의식은 우리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디에 ‘좋은’ 의사가 있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의사는 물론 자신이 맡은 분야에 실력이 있어서 우리를 낫게 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아픈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주어서 아픈 몸이더라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일일 것이다.”

 

출판사에서 올려놓은 리뷰의 첫 부분을 읽으면서 의학을 공부한 의료인으로 참담한 심경을 가지게 됩니다. ‘언젠가~’라는 단서를 달아놓기는 했지만 분명 어느 시절까지는 그와 같은 행태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의료현장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의료를 서비스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자리잡은지 이미 오래인 탓에 리뷰에서 지적한 의사는 매우 예외적일 것이라는 변명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의사, 인간을 어루만지다>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셔윈 눌랜드 박사의 의료에 관련된 에세이집입니다. 전작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와 <사람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11890008>에서 죽음과 나이듦에 대한 그의 통찰을 살펴볼 수 있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선택한 책입니다.

 

<의사, 인간을 어루만지다>에 담은 다양한 소재, 특히 고백하기에 쉽지 않은 의료의 비윤리적인 사건들을 인용한 에세이를 통해서 눌랜드교수는 “진정한 의사는 무엇보다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눌랜드교수는 20세기 들어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의학은 지난 세기와 비교해 볼 때 불확실성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일 뿐 아직은 완벽하게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이런 생각 때문에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심장이식 대기자로부터 온 편지’를 소개하였는지도 모릅니다. 1987년 9월부터 기다려왔던 심장이식수술을 거의 받을 뻔하다가 조직적합성검사에서 위험요소가 발견되면서 취소되고 결국은 1988년 8월에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면서 죽음에 이른 심근염환자의 기다림의 미학이 결국은 죽음으로 마감하게된 의학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짚어내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첫 번째 글을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은 짧고 예술(의술)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오류가 많으며, 판단은 어렵다. 의사는 그 자신이 올바른 일을 할 준비뿐만 아니라 환자와 간병인, 의부 여건을 치료에 협력하게 만들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첫번째 아포리즘’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의술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의 천직에 대하여 겸손해야 한다는 경계의 뜻을 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의과대학과 종합대학’, ‘진정한 치유자’를 통해서 미국의 의학교육이 의료기술자를 만들어내는데 그치고 있고, 보다 넓은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진정한 치유자로서의 의사의 길이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람인가, 타이밍인가’에서는 최근에 읽은 피터 디어교수의 <과학혁명>에서도 단정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던 사실입니다만, 과학적 발견에는 문화적 필연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1543년에 발표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코페르니쿠스가 제창한 지동설 역시 코페르니쿠스의 존재 유무에 상관없이 지동설이 정설로 대두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문화적 여건이 만들어져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코페르니쿠스가 아니었다면 다소 늦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더해서 말입니다. 심지어는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설이나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가설 역시 그 분들은 경쟁자들보다 조금 일찍 결승테이프를 끊은 행운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누구 의사 없나요?’라는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는 지적에 공감을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의사도 있다는 고백을 합니다. 비행기를 예약할 적에 의사라는 신분을 밝힌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 비행기에서 환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심각한 증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습니다만, 임상을 전공하지 않은 의사로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옳을까 하는 생각에 그 다음 여행부터는 신분을 밝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무의식을 믿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 무의식은 길을 찾아주고 심지어는 쓰는 내용이 주제와 결합되도록 이끌어준다. 내가 구조 전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변함없는 습관이다.”라고 적은 눌랜드교수의 글쓰기에 대한 답변에 은근히 화도 나고 부럽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글을 써야 하는 경우 전체의 틀과 인용할 비유 등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으면 첫줄이 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줄을 쓰기 시작하면 필요한 분량을 단숨에 마무리하게 됩니다.

 

사족입니다만, 우리나라에는 <리아의 나라>로 소개된 엔 패디먼의 책을 원제(The Spirit Catches You and You Fall Down)대로 해석해서, <정령에 씌면 쓰러져요>라고 번역하고, 라오스 산간에 사는 원주민(Hmong)을 멍족 혹은 몽족으로 불러왔는데 위키디피아에는 흐멍 부족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y*****2 2011.02.22. 신고 공감 9 댓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