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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인왕제색도는
수능시험이나 한국사 능력시험에 “다음 그림 중 시대가 다른 그림은?”혹은 “다음 그림 중 중국화와 다른 우리나라 독자적인 화풍을 표현한 그림은?”하는 식의 문제에 종종 등장한다.
<인왕제색도>는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비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138.2㎝, 세로 79.2㎝이다.”라고 설명한다. ![]() -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
“궁리출판사”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레리 고닉이 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의 번역본을 보게 되면서였다. 원저자의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 풍부한 지식을 잘 살린 그 책을 보면서 책을 낸 사람들도 괜찮은 감각을 지니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의 번역가 이야기가 “청국장 집을 찾아서”에 잠깐 나온다.-
그렇다면...
“궁리”출판사에서 펴낸 <신인왕제색도>는 어떻게 인왕산을 그려내고 어떤 감각이 담겨있을까?
세상 바깥의 안부를 묻다
“1751년 겸재 정선이 인왕산을 그린 이후, 260년이 흘렀습니다. <인왕제색도>를 펼쳐들고 실제의 인왕산과 번갈아보면 유장한 세월의 흐름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인왕산은 하늘의 한 입구이니 문득 세상 바깥이 궁금하실 양이면 이 문을 통해서 저 너머의 안부를 물어보심이 어떨는지요?” -31p-
호랑이가 마지막을 보낸다는 인왕산, 위 내용처럼 세상 바깥을 연결하는 문이 될 만한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진 속의 인왕산은 그 모습이 웅장하되 현대 문명의 시멘트 건물에 가려 빛이 바랬다. 그 시멘트 건물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눈앞을 가리는 인간들을 미워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는 그 “세상 바깥의 문”과 소통하면서 하늘을 바라다보고 버거운 세상살이에서 숨구멍을 찾고 숨을 쉰다. 글쓴이가 인왕을 올라가서 달맞이를 하면서 그랬고 글쓴이가 만난 더덕을 파는 할머니도 그랬다. 세상 사람들은, 특히 삭막한 서울 하늘 아래 사람들은 인왕을 통해서 세상 바깥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빛의 기록이며, 세상살이 이야기이다.
“사무실에서 보이는 인왕산의 매일 매일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어떨까”하는 제안에서 시작된 이 책의 기록은 같은 모습의 인왕산이 같은 자리에서 찍힌 채로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계속 등장한다. 처음엔 대략 난감이다. ‘불친절한 책이 아닌가, 같은 사진만 계속 나오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신인왕제색도>라고 하면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경지를 이룩한 겸재와 같이 뭔가 기존의 것과 색다른 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모습을 계속 찍어서 어쩌라는 것일까? <신인왕제색도>라는 제목 위에 “빛으로 그리는”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그랬다. 사진을 찍은 장소도 변함없고 그 모델도 변함없되 그곳을 지나가는 빛은 매일매일 변하고 있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구름에 가려 약하게, 혹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비추면서 빛이 변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빛의 기록이다. “사진은 기록이다” 라는 말처럼 이 책의 사진은 인왕산의 빛의 기록이며 그 인왕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글쓴이와 그 사람 주변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속에 ‘경주의 사라진 길손다방’도 나오며 ‘더덕할머니’와 ‘폐지 줍는 할머니’처럼 우리의 어려운 생활상을 반영하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진미횟집’을 시장에서 23년간 운영한 노부부는 가게를 유지하지 못하고 시장을 떠나기도 한다. ‘통인시장’의 야채가게, 건어물 가게처럼 우리 주변의 시장 이야기, 시장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정지용의 시 “바다”처럼 파도와 같이 몰려오던 인왕산이, 이수익의 시 “애월” (239p) 처럼 가을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시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농부로 변신한 전직 대통령이 고향 뒷산 바위에서 몸을 날렸다는’ 충격적인 세상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렇듯 <신인왕제색도>는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우리네 세상살이 이야기이다.
순간의 느낌을 포착하여 그리다
직접 인왕산을 보고 그렸는데, 비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상적 순간을 포착하여 그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산 아래에는 나무와 숲, 그리고 자욱한 안개를 표현하고 위쪽으로 인왕산의 바위를 가득 배치하였다. 산 아래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리고, 산 위쪽은 멀리서 위로 쳐다보는 시선으로 그려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주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
같은 장소에서 계속해서 찍은 변함없는 인왕산에서 그 느낌을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글쓴이는 그런 “느낌”을 계속해서 잡아내어 글을 쓰고 있다.
“영점사미리가 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의 인왕은 안개에 가려 있다. 그 사이로 부슬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부슬비를 “봄비”라 하기도 하고 혹은 “나문비, 잎비”등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어쨌든 그때 그 비는 딱 영점사미리(!)이다. - 2009.11.27일 - “비만 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에 끄달리는” 글쓴이는 인왕산의 비오는 느낌을 그대로 포착하여 자신의 영점사미리 비오는 생일날에 집어넣었다.
우리의 것을 그리다
겸재의 인왕제색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 영조 27년(1751)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이제까지의 산수화가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그린 것에 반하여 직접 경치를 보고 그린 실경산수화일 뿐만 아니라 그 화법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산수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의 400여점의 유작 가운데 가장 크고 그의 화법이 잘 나타난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
“효자동이발사”라는 제목에서 나오는 이발사는 실제 영화 속의 모델은 아니다. 그러나 비슷하다. 그 이발소-“형제이발소”이다. - 에서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영화에서처럼 오랜 세월을 그곳을 지키며 살아왔다. “사직분식”이라는 가게에서는 구수한 청국장 냄새를 풀풀 풍긴다. 그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를 번역한 번역가와 식사를 하면서 청국장 맛을 음미한다. 인사동 어느 골목, 옛날 분위기를 낸다며 이런저런 오래된 물건들을 갖다 놓고 가게를 꾸며놓은 찻집처럼, <신인왕제색도>에서도 우리가 살아온 오래된 것들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하기는 글쓴이 본인이 세상을 오래 살아 옛것에 더 정감이 가는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인왕산 아래서 일하는 글쓴이는 예전 겸재가 그렸던 그 그림처럼 우리 삶의 모습을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하루하루 그려나가며 인왕산과 소통하고 있었다.
인왕산과 같이 변하는 더덕 할머니
10월 가을부터 시작한 <신인왕제색도는> “세상의 모든 퇴근”이란 제목의 글을 끝으로 마무리 할 때도 가을이다. <신인왕제색도>는 인왕산의 매일 모습을 사진에 담아 그 변화를 찬찬히 관찰했다. 그리고... 나는 <신인왕제색도>에서 “더덕 파는 할머니”의 모습을 내 머릿속의 사진기에 담아 관찰해냈다.
우선 “더덕 파는 할머니”의 가게는 단순한 구조이다.
건널목의 신호등 옆에는 더덕 파는 가게가 있다. 이 가게는 따로 가게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가게 주인이 곧 가게이다. 주인은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머리에 흰 테니스 모자를 쓰고서 하루 종일 앉아서 더덕을 깐다. 가게 구조를 본다. 우선 야외 나갈 때 흔히 쓰는 금색의 작은 돗자리가 있다. 그게 곧 가게의 전체 평수이다. 가게 옆에는 신통하게도 빨간 우체통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길가 화단에는 무궁화 한 그루가 있어 가게하고 잘 어울린다.
- 196p, “할머니 더덕 가게”-
할머니도 인왕산, 혹은 하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지내신다.
할머니가 보는 신호등은 따로 있다. 할머니가 보는 신호등은 하늘에 있다. 그 신호등은 건널목 신호등처럼 깜빡깜빡거리지도 않고 사람을 재촉하는 법이 없다. 하루에 한 번 바뀐다. 그렇게 신호등이 바뀌고 모든 세상에 저녁이 찾아온다. 그렇게 신호등이 바뀌면 할머니는 그제야 천천히 빨간 우체통을 잡고 일어난다. 문없는 가게가 비로소 문을 닫는 것이다. - 2010.4.26, 196p -
할머니도 인왕산처럼 변한다. 비가 오기도 하고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 눈이 오기도 한다. 특히나 이번에는 모자가 바뀌었다. 화사한 봄처럼...
한편 할머니의 더덕 가게를 떠나면서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더덕 껍질로 수북한 할머니의 더덕 가게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새로 생겼다. 그것은 모자이다. 할며니는 여름을 맞아 겨우내 쓰던 테니스 모자를 벗고 새 모자를 장만하셨다. 짙은 보라색 줄무늬에 꽃레이스가 눈에 확 들어온다. 영화<시>에서 배우 윤정희, 그러니까 미자 할머니가 쓴 것만큼이나 예쁜 모자였다. -2010.6.18, 235p-
그렇지만 할머니는 사람이라서 인왕산과 달리 퇴근도 한다. 하긴 인왕산도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그때 무렵은, 하늘과 세상과의 소통을 잠시 중단하고 퇴근해서 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나는 일부러 더덕 가게에 들렀다. 할머니의 퇴근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할머니도 준비를 마치셨는가 보다.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두 봉지의 더덕을 떨이로 팔고 있었다. 할머니의 더덕 한 봉지는 내가 샀다. 나머지 남은 한 봉지도 주인을 찾아갈 것이다. 이제 곧 할머니는 모자를 벗으실 것이다. 그리고 퇴근을 하실 것이다. 나도 이제 진짜로 퇴근한다. - 2010. 9.30, “세상의 모든 퇴근”, 353p -
지하철에서 더덕 파는 할머니들을 출퇴근하면서 종종 보곤 했다. 가끔 지하철에서 풍기는 더덕 냄새가 반갑기도 했는데 무척 고생하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 더덕 "까고 있는" 할머니들은 허리가 구부정하고 얼굴에 주름이 많아 고생의 세월이 역력했다. 한편으로 이 더덕들을 할머니가 직접 기른 것이 아니라니 약간은 허탈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 "더덕파는 할머니"를 글쓴이는 범상치 않은 눈으로 집어 내었다. <신인왕제색도>에서는 인왕산이란 움직이지 않는 산을 “빛의 기록”으로 잡아냈다. 다음에 내게 여유가 된다면 나는, “더덕 파는 할머니”처럼 사람의 모습을 “빛의 기록”으로 한번 잡아보고 싶기도 하다.
인왕산을 통해 “나의 길”을 생각하다
문득 윤동주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하늘, 별, 구름, 바람, 길, 잎새 등의 소재가 인왕산과 전혀 무관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예사롭지 않은 감정을 느꼈다. 돌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심사와 숙고의 걸음들이었다. 한참이나 늦은 시간, 70여년의 시차를 두고 대시인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 2010. 9.27,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350p -
사진만 계속 보여준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담아서도 느낌이 살지 않는다. 여기에 글쓴이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한테 주어진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글쓴이는 “궁리”란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풍부한 문학적 소양을 보여준다. 국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만 특히나 윤동주 시인을 비롯, 황지우, 황동규, 기형도 시인 등등 시인과 시가 많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이 언뜻언뜻 남긴 시의 구절을 통해서 나도 글쓴이처럼 “나의 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책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인왕산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 아니면 그 인왕산 아래 더덕 냄새와 같은 사람 냄새라도 한번 맡아보고 싶다.
사진 찍은 그 자리에 가면, 혹은 인왕산에 올라가 보면 글쓴이의 그 느낌을 살려낼 수 있을까? 아마도 조금은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산을 올라가면서 “나의 길”을 생각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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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을 보는 사람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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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진 작가의 사진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에 사진작가는 같은 피사체를 정해놓고, 똑같은 앵글로 사진을 찍어 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햇살이 따스한 날, 안개가 낀 날.... 아니, 그 보다도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도 다른 빛깔의 사진이 나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가끔은 작은 디카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 사진 속의 모습은 같은 장소인데도 다른 느낌으로 나타나곤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궁리출판사는 인왕산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건물의 2층이지만 건물에 유리창이 많아서 항상 인왕산을 마주 보고 있다고 한다. ![]() 어느날, 농담처럼 시작된 말 " 사무실에서 보이는 인왕산의 매일 매일의 모습으 사진으로 남기면 어떨까?" 그래서 이리 저리 사진을 찍기 위한 앵그를 잡다 보니 앵글이 가장 좋은 곳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겸재의 집터였다고 한다. 겸재 정선은 인왕산 자락의 유란동에서 태어나 인왕산을 항상 보면서 자랐는데, 그의 평생의 벗이 세상을 뜨자 그를 그리워하면서 단숨에 그린 그림이 <인왕제색도>이다. ![]() 1751 년에 겸재가 비가 개고 난 맑은 모습의 인왕산을 수묵담채화로 나타냈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260년이 지난 지금에는 인왕산의 모습을 매주 3번씩 같은 장소에서 같은 앵글에 빛으로 담아내기로 한 것이다. ![]() ![]() ![]() 인왕산에 오르내리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통인동 사람들, 이발소, 청국장집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 가는 통인동 골목길이야기. 효자동이야기, 통인시장 사람들 이야기.
그러나, 가끔은 인왕산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곳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인왕산에 자신의 나무라고 생각하고 눈여겨 보던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가 어느날은 산길을 가는 사람에 의해서 툭 꺾어지기도 하고, 그 꺾어진 나뭇가지를 들고 사무실에 오기도 하지만 결국에 서울성곽 복원 사업때문에 아예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인왕산의 해골바위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면 책 속에 그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근래에는 시인의 언덕 조성으로 윤동주 시인의 언덕도 생기고, 시비도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의 감성적 표현은 내리는 비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으니... 나무비, 잎비 란 단어를 들어 보셨나요? 그런데, 빛으로 표현된 <신인왕제색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할텐데, 이 책이 한 장의 인왕산 사진과 그와 함께 간단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사진은 책 속의 사진이어서 그런지 거기에서 거기인 사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가끔 안개가 낀 모습이거나, 흐른 날의 모습, 파란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떠 있는 모습의 인왕산.
그리고, 밤 풍경과 해질녘의 모습이 몇 장. ![]() ![]() 역시,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신인왕제색도>가 <인왕제색도>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그런 시도만으로도 색다르고, 인왕산의 모습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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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 제색도라니 마치 탁구왕 김탁구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그래서 맨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는 한심하게도 소설책인줄 알았다. 겸재 정선의 명작 중 〈인왕제색도〉란 작품이 있는데 비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상적 순간을 포착하여 인왕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이 그림은 먼저 세상을 떠난 평생의 벗을 그리워 하며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그러니 신인왕제색도(Yes24에는 이렇게 표기 되어있다)는 신인왕 제색도가 아닌 新 인왕제색도로 결국 새로운 인왕제색도란 의미일거다. 신인왕제색도는 일종의 사진 에세이집이다.요즘 에세이 집에 시선이 꽂혀서 꼬닥 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이란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는 편이다.보통 사진 에세이집은 저자가 여러군데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과 더불어 여러 가지 글을 풀어놓은 것이 전형적인데 반해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오로지 서울 인왕산을 한곳에서만 시간과 계절을 달리해서 찍은 사진에세이 집인 것이다. 책머리에서 궁리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한 저자는 출판사 회의시간에 우연히 한 말인 “사무실에서 보이는 인왕산의 매일 매일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어떨까”하는 한마디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 곳이 바로 겸재 정선의 집터에 세워진 건물이었다는 기연에 놀라와 했다고 한다. 신인왕제색도는 겸재 정선이 < 인왕제색도 > 를 그렸다는 장소('인곡정사'가 있던 자리는 현재 옥인동 군인아파트이다)를 찾아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라는 노래 가사처럼 궁리 출판사의 영업 부장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 자리에 찍은 인왕산 사진은 매번 동일해서 일견 단조롭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화각을 약간씩 달리하고 찍은 시간과 계절에 따른 다른 색감을 나타내는 데다가 1년간 하루 걸러 인왕산을 찍었기에 어느날은 맑고,어느날은 비오고,어느날은 안개 자욱하고, 어느날은 단풍이 들고,또 어느날은 흰눈에 덮이기도 하면서 같은 앵글의 다채로운 인왕의 모습이 수십장 펼쳐져서 지루하다는 생각보다는 인왕산의 사계절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 인왕산의 사계절이 매우 지루하도 여길 수도 있기에 저자는 매일 인왕산을 보면선 느낀 감상과 인왕산 인근 서민들과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아주 맛깔나게 펼치고 있다. 예를 들면 출판사 인근 효자동 통인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데 예를 들면 똥막대기처럼 꼿꼿하게 앉아 낮잠을 즐겨서 '장좌불와(長坐不臥)의 큰스님'에 비유되는 개성상회 아저씨라든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 전속 이발사로 오라는 제의를 가게를 버릴 수 없어서 거절했다는 '형제이발소' 주인 아저씨의 이야기는 인왕산 사진을 보면서 읽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또한 인왕산 부근의 맛집들도 소개하는데 국보급 청국장 맛으로 인근 주민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사직분식,술먹는 이들에게 인기있는 옥호대로 감자탕집,칼칼한 조개탕이 유명한 다래와 만선 쭈꾸미집 등등 요즘 흔한 맛집 파워 블로거들은 찾아 보지 않을 지역내 음식점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 신인왕제색도는 사진 에세이이고 어찌보면 여행기라고 할 수 있지만 별나거나 신기한 것을 쫒는 흔한 여행기가 아니라 일년이란 시간을 두고 한곳에서 진득하게 제자라에 앉아 인왕산을 관조하면서 인왕산 부근들이 서민들 삶을 그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책머리에 웨인 왕의 스모크란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그 영화속에 13년동안 자신의 담배가게 앞에 가는 손님들의 사진을 찍은 오기란 인물이 나오는데 아무리 재주 없는 이가 찍은 사진이라도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찍는다면 그것 자체가 역사가 되고 작품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많은 이들이 디카를 찍으면서 포샵등을 많이 이용하는데 사진이란 원래 기록을 하기 위한 것이다.비록 거칠고 생것의 느낌일지라도 원래 있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후대에 역사의 기록을 남겨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적에 아버지의 낡은 카메라를 가지고 여기 저기 사진을 찍으면서 신기하고 여겼던 기억이 나는데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술 먹기 바쁘고 인생의 이것 저것에 대해 고만 하다보니 더 이상 카메라를 손에 잡지 않으면서 내 개인적인 역사도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 같다.이 책을 읽으니 어쩐지 장롱 한구석에 박혀있는 필카에 필름 한통을 집어넣고 갑자기 인왕산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꿀뚝같이 드는 것은 왜인가 싶은데 내일이라도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목에 카메라를 걸고 기운차게 밖으로 나가 봐야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