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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에서 실패하고 사라진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신기하게도 극장에서 막을 내린 뒤 네티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극장에 보급될 때는 몰랐는데 다시 다운받아 보니 굉장히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네티즌들은 이 영화 흥행 실패의 이유로 1) 우스꽝스러운 포스터 2) 이해할 수 없는 제목 을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영화 자체의 세련된 모습이나 깊이에 비해 포스터와 제목은 도저히 '돈 내고 볼 마음'이 들게 하지 않았다. 한윤형의 <안티조선 운동사>도 이와 마찬가지로, 제목을 안티조선 운동사로 지은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정당정치에 관해서는 '중립'과 '무골호인'이라는 자세가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 '안티조선'이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사용한 것은, 대중들의 일반적 프레임으로 인해 '부담스럽고', '편향된' 첫 인상을 갖게 할 것이 뻔해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결점은 제목이 '안티조선 운동사'라는 데에 있다. 사실 이 책은 네티즌들의 전형적으로 인식하는 '조선일보 까는 글'이 아니다. 따라서 나중에 이 책은 몇 년 후에야 한두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책이 걍 묻혔지???'와 같은 반응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특정 사회운동을 넘어서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사회현상과 이슈들에 대해 정확하고 분석을 하고 판단들이다. 따라서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는 싶은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서 따라잡기가 어렵다', '한나라당이 나쁜 것 같긴 한데 그 이유는 모른다' 혹은 '민주당과 노무현은 정말 천사일까?' 하는 의문, '국회의원들은 똑똑하다는데 왜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욕할까?', '선거 후 공약은 왜 안 지켜질까?', '한나라당이니..한나라당을 밀고 일어설 민주당이니.. 하며 시글벅적한 거리..'에 대한 불편한 의문들과 같이 초보적이면서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애매한 질문들에 대한 명백한 답변이 되어준다. 이 책은 최근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 '노무현 찬양 + 이명박 정부 비판' 네러티브의 책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이유도 없이 그저 이미지에 따라 한나라당을 악마로 보고 이명박을 욕하는 행위들에 대한 훌륭한 답안지가 되어준다. 조선일보의 시기별 변화와, 어떤 면에서 '악랄한 점'들이 존재했는지 분석해내는 것도 물론이고, 조중동의 실제 이해관계는 물론, 주요 선거 때마다의 지면 분석을 통해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를 극렬하게 까는 짓도 서슴지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결코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조중동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이미지'상으로만 싫어하긴 했지만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으라고 할 때마다 쩔쩔매던 (이른바) 좌빨들이 '훌륭한 근거'를 가지게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해서, 그들과 관계한 유통사와 채널에서 이 책의 흥행을 최대한 막을 것이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역시 이 책의 발간을 반기기는 할 것이나 동시에 자신들의 죄명(!)들을 명백하게 적어낸 이 책을 '밀어줄'리 만무하다. 냉소적 회의주의의 입장의 작가가 적어낸 이 책은 누구의 빽도 없이, 밀어줄 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광고나 홍보, 혹은 베스트 셀러란에서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이런 논법으로 출판업계의 구조를 단언하는 것은 다소 무리지만, 실제로 매체들을 통한 대형광고 없이 높은 판매부수는 나오기 어렵다.) 한국 현대 정치사를 객관적이고 명백하게 정리한 <안티조선 운동사>는 그 자체로는 이 씬에서 나올 수 없는 '현대의 classic' 정도의 수준에 다다랐다. 하지만 노무현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지금 중요한 상황을 망치고 있다면서 거부할 것이고,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 두려움을 느끼고 일단 이것이 이슈화되는 것을 차단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늘 요구하는 '공정성' , '객관성'은 하나의 텍스트로 완성되었지만 그것이 널리 이야기되고 즐겁게 보면서 토론할 수 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보인다. 때문에 어떻게라도 찾아서 <안티조선 운동기>를 구한 후 , 이야기거리로서 사랑하는 이들과 이 내용들을 대화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공교육의 결핍을 완벽히 보충해내는 '진짜 공부'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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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운동.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민 운동 중 하나이다. 한윤형이 연표에서 짚었듯 1995년 강준만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진중권을 비롯 고종석,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가세하며 널리 알려졌다.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엔 중학생이었던 한윤형이 고등학생 시절, 조선일보 논술 대회에서 대상을 거부하면서 주목받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안티조선운동의 주된 논의를 지켜보며 간간히 참여하기도 했던 그가, 지금 이 책을 낸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다.
또한,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 짜릿함은 물론 안티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까는 시원함은 아니지만, 여러 다른 논점들이 등장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지적 쾌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한윤형은 진수와 닮았지만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닮았다. 조자룡이 유비의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을 뚫으며 여러 장수들의 목을 베는 것과 같이 세세한 안티조선운동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운동의 성공은 인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는 것에서 행동으로 나아가야 실질적으로 타격을 주고, 그들의 태도를 개선시킴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 안티조선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약 15년간의 안티조선운동사를 정리함으로써 다시 한 번 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새로운 운동으로 잇기 위핸 동기가 될 것이다. 강준만과 진중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안티조선'이란 말도 몰랐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10년 넘게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덕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국일보를 보았고, 한국일보를 끊고 경향신문을 보았다. 두꺼운 지면과 문화 방면의 풍부한 읽을거리, 그리고 현금이나 자전거, 무료구독에 혹해 조선일보를 보게 되는 이들이 아직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아직 대학생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윤형은 그간 여러 유명 진보 논객들이 내는 책에 함께 이름을 올려 공저자가 되곤 했다.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보드 워리어 일지>와 <안티조선운동사>를 통해 강준만 못지 않은 놀라운 정리 능력과 글발, 논리력을 보여주었다. 아직 20대인 그가 진중권의 나이쯤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힘차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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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에 대학 몇 년 선배(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으니 선배라 칭하기는 뭐하지만...)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에 '희망버스는 희망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그룹 멤버들의 찬반 논란이 거세졌고 나 역시 며칠 동안 페이스북에 집중하여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에 50% 이상 동의할 수 없었고 일부 동의할 수 있는 주장 역시도 그런 문제를 제기할 시기나 방식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논란이 거세지던 와중에 페이스북에서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주장을 기사로 다루어주겠다는 중앙일보 기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명세를 탔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그 사람의 글에 반응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그룹 멤버들을 초대하여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하면서 나에게도 직접 참석할 것을 요청한 것도 거부하였다. 그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주류언론에 '등장'하고 싶어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변 친구들을 만나다보니 많은 친구들은 그룹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살펴보고 그냥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댓글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 그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학벌로 이야기되는 대학을 나왔고 10년이 넘는 청춘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친 바 있다.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대학에 재입학한 후 졸업하여 대우자동차에 근무하였고 이후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를 차리기도 했다. 책도 몇 권 펴냈으나 별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고 최근에는 동년배들과 모임을 갖고 자신의 주장과 이론을 알리는데 애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책 [안티조선운동사]를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7월 중순이지만 당시에는 공부모임에서 책의 분량이 많아 2부까지만 세미나의 대상이었고 이번 달에 나머지를 토론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주에 3부~6부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나머지 부분을 읽는 동안 지나간 페이스북을 통한 경험과 의문이 계속 머리 속에서 오버랩되었다.
나는 왜 본능적으로 '조중동'을 싫어할까? 지금 시대에 지식인이 자신의 의견을 '조중동'에 표현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언론은 산업인가 아니면 사회적 기능인가?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과점상태를 이룬 '조중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란 무엇인가? 언론이 사회적인 주장의 '공론화'장이라고 하면 언론이 국민들과 소비자에게 부여받은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가? 사적 소유와 사회적 책임에서 언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21세기 언론의 새로운 기능과 책임은 어떻게 변화되었나? 현실에서의 언론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 끝없는 의문과 질문이 계속될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10년 동안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사회를 달군 화두 중 하나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운동에 참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 또한 구체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하여 활동하거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동의하여 언젠가부터 조선일보 구독을 끊었다.
또한 안티조선 운동은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언론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주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그 이외에도 '안티조선 운동'은 이 사회에 많은 것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시작을 15년 전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10년 전이라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안티조선 운동을 과거로 기억하고 다른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 이야기한다.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직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안티조선 운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들이 벌인 '조선일보' 반대 운동이다.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인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행위에는 우리 언론의 어떤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운동인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이, 그리고 [조선일보]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히 언론 운동에 그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언론 환경의 변화로 언론 권력이 분산됐지만 과거, 언론 권력이 몇몇 언론사에 집중됐을 당시에는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따라서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운동임과 동시에 정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 * 한윤형은 누구인가?
대구에서 출생했으나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 진중권과 강준만의 책을 읽으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인터넷에 접속했고 1999년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의 원년 맴버가 되었다. 서울대와 조선일보 주최의 논술경시대회를 나갔다가 대상을 받았고 당시 안타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글을 발표하고 있다. 공저로는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2008)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가 있고, 단독 저서로는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텍스트, 2009)가 있다. ----- 이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담았다. 더불어 저자는 이 운동의 참여자로서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최초로 평가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과 전개, 절정의 과정은 물론이고 안티조선 운동 이전의 언론사와 언론 운동사를 살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총 6부로 구성됐다.
1부 ‘맥락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예비 학습’은 1920년부터 1998년까지의 한국 언론사를 간추렸다. 한국의 언론사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친일과 친미, 기득권의 세대세습으로 이어져왔다. 그 중심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고...
2부 ‘안티조선 운동의 탄생’은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의 상황을 다뤘다. 1995년 강준만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는 안티조선 운동의 맹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9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의도와 사실조작으로 '최장집 교수 사건'을 기획,실행했고 이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안티조선 운동'이 전면에 등장한다.
3부 ‘안티조선 운동의 성장’은 2000년부터 2001년까지의 사건들을 묘사하고 그 맥락과 의미를 짚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와 국민의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옥천전투' 등 안티조선 운동은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이문열의 '홍위병 논란' 등 수구기득권 세력의 도전도 만만치 않게 일어난다. 언론환경의 변화와 세무조사는 그동안 조금씩 달랐던 조중동이 하나의 기득권 집단이자 수구세력으로 결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4부 ‘혼란에 빠진 안티조선 운동’은 안티조선 운동에서 특별히 중요한 해라 할 수 있는 2002년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가 늘어나고 자체가 국민의 정부의 실정과 2002년 대선을 앞두면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조중동과 진보언론의 전쟁이 벌어지고 '언론'이란 세계는 과도한 당파성으로 얼룩진다. 안티조선 운동과 노무현 후보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점점 가까워졌다.
5부 ‘관성에 젖은 안티조선 운동’은 2003년에서 2007년까지의 안티조선 운동 진영의 문제점과 당시 참여정부의 문제점 등을 살폈다. 참여정부의 실정과 여러 세력과의 갈등을 맞이하여 또 다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을 거듭하고 조중동은 이를 틈타 역습을 가한다.
6부 ‘안티조선, 그 이후’는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언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촛불시위를 통해 안티조선의 정신은 다시 다른 주체로 부활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언론환경은 또 다시 변화하고 언론 운동은 기존 과제와 더불어 새로운 과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사를 좇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인 셈이다.
< 책에 대한 평가 >
이 책은 직접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저자의 체험담이자 사실관계를 토대로 10~15년간 한국의 언론개혁운동을 서술했다.
저자는 직업 저술가도 아님에도, 그리고 젊은 나이라고 하기에는 독자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언론의 흐름을 책 속에 담아냈다. '안티조선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언론운동사만 다룬 것이 아니다. 언론운동사에 필요한 일제시대 친일 언론의 사실과 행태, 해방전후사에 대한 인식, 개별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자료들을 책 속에 담아내는 것을 보면 저자의 열정과 실력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사회적 배경, 언론 환경의 배경 속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탄생하고 어떤 계기와 과정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이 탄생했는지 독자들이 충분히 수긍이 갈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리고 초창기 '안티조선 운동'에서 강준만교수의 빼어난 역할과 기여를 밝혀냈다. (그는 스스로 강준만 교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쪽까지 읽은 후 덮고 나면 '안티조선 운동'의 10년 넘는 과정이 파노로마처럼 눈 앞에 펼쳐질 정도로 '안티조선 운동'을 정확하게 다루었다.
뿐 만 아니라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주도세력의 입장과 주장 뿐 아니라 '안티조선 운동'을 거쳐간 수 많은 개인과 단체, 정치권, 세력의 흐름과 주장까지 객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는 박정희 추종론자와 한총련, 민주당 지지자들과 노사모, 유시민과 최문순, 김대중과 노무현, 진중권과 변희재, 언론운동단체, 각 언론사까지 포함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저자가 '안티조선 운동'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평가하는데 있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만이 최선이고 그들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시민들의 의식과 언론의 모습, 각 개인과 집단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1995년에서1999년까지 이어진 기간 속에서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탄생하는 배경과 과정, 참여하는 주체와 구조, 그리고 그들의 운동과정은 '안티조선 운동'의 긍정적인 성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안티조선 운동'은 자연스럽게 운동의 상대인 조선일보와 다른 주류 언론사, 그리고 진보언론과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와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태동했던 '안티조선 운동'은 그 탄생 배경, 논리와 유사했던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면서 급격하게 대중화 되었고 스스로의 한계 속에서 참여정부의 프레임에 발목이 묶여 참여정부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갔다. 그래서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한 저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한 공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2009년 정권의 친위대를 자처했던 검찰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 과정을 통해 언론 운동이 다시 부활하고 그동안 일방적으로 폄하되었던 노무현 대통령 개인과 참여정부의 성과는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재평가의 분위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IMF 이후 사회적 양극화와 노동자, 농민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개선되지 않았다. 두 민주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구기득권 세력의 여론 호도와는 달리 사실 10년 기간 동안 수구기득권 세력과 자본가들의 이익과 권력은 늘어났지만 그 반대편에 존재하던 노동자, 농민, 빈민, 비정규직, 청년, 여성, 아동, 노인들의 권리와 이익은 줄어들었다. 특히 수구기득권 세력과 부패관료, 삼성에 가로막힌 참여정부의 경우 '때 이른 4대 개혁입법'과 한미 FTA 추진 등 실정이 만만치 않았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서술했지만, 그 속에서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 극우/보수/진보를 떠나 한국의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 진보언론의 필요성과 성장 조건에 대한 지적, 언론개혁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고민, 사회적 의견을 담아내는 '공론화'의 장으로서의 다양한 언론의 역할과 관계, 주권자로서의 국민과 소비자로서의 시민의 책임과 역할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하게 조선일보를 반대하고 없애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언론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노력인 것이고 그렇다면 단순히 조선일보만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야만적 극우선동집단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는 '조중동'을 한꺼번에 바라보아야 하고 소위 진보언론에서 나타나는문제점 역시 무시하거나 눈감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문 뿐 아니라 방송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를 모두 포함한 언론매체 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의 소비자이자 주권자인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은 한국 정치계, 관료와 교육부문에서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다른 분야에서의 그것과 비슷한 맥락을 보여주고 있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결국 저자가 1부에서 '예비 학습'으로 서술한 '해방전후사'의 언론의 모습은 한국사회 각 부분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나고 있고 현재의 수준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한 해방, 동족상잔의 비극, 남북의 이념 대결, 친일세력에서 친미세력으로의 지배세력 교체, 독재와 군사정권의 체제 장악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전과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뿐 아니라 언론 속에서도 그대로 녹아들었고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분야에서 '해방전후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민적 운동의 하나일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이기도 한 저자 한윤형은 과감히 안티조선 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던 그 지점에서 새로움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안티조선 운동사]를 통해 지금, 안티조선 운동을 다시금 돌아보며 기록한 이유는 바로 새로운 꿈을 꾸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독자들에게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며 한국 언론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꿈꾸게 해줄 수 있다.
저자는 상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사실 책을 모두 읽고나면 가장 명확한 결과가 하나 도출된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주인이자 언론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시민들이 어떻게 언론을 소비하고 언론운동에 참여하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여 '국민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이고 대통령과 정치인, 언론의 수준'인 것이다.
저자는 실천적인 과제도 몇 가지 제시한다. 진보언론에 대한 적극적 유료 구독과 주간지에 대한 유료구독, 진보언론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질책, 그리고 조중동과 방송 등 제 언론과 관련 제도에 대한 감시와 참여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기존 언론 이외에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소비자이고 국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자가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다하게 되면 어느 사회의 어느 집단도 국민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얻은 것들도 많다.
하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한국 언론의 지형과 역사, 언론의 환경과 구조, 언론운동의 흐름과 과제 등에 대해 많은 정보와 시사점을 얻었다. 이것 만으로도 책 값은 뽑은 셈이다.
둘. 강준만 교수와 진중권 교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에 의존하여 두 사람을 받아들였고 스스로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두 분의 가치와 실력, 주장과 논리를 접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셋.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각각에 대해서 그동안의 그들의 행위와 과정을 통해 각 수구언론의 정체에 대해 내 나름대로 개념과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넷. 한국의 인터넷 소통문화가 초기에 비해 훨씬 '집단극화'와 '사이버 발칸화'의 특징을 보였다는 설명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이는 포탈이나 카페 뿐 아니라 나아가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비슷한 정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고민은 '공론화'에 대한 장기적인 과제를 심각하게 생각토록 만든다.
다섯.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대중적인 세력과 '노사모'의 연결 가능성,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각과의 공통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여섯. 참여정부와 삼성의 '커넥션'에 대해 한 번 더 심증을 굳혔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참모진이 내뱉은 여러 가지 발언은 심증을 넘어서 물증까지 가능한 정도다.
일곱. 개혁당에 대한 유시민씨의 배신, 그동안의 발언과 달리 '당내 민주주의'와 '진성당원체제'에 대한 유시민씨의 이중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시민씨는 앞으로도 오랜 동안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보다 더 오래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저자의 글 중 비판적으로 검토한 부분
- (p.52) 저자는 1970년대 '언론자유 수호'를 외치다가 박정희 정권과 언론사주에 의해 ?겨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를 평가하면서 "그들이 제도권 내부에서 계속 투쟁할 수 있었다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훨씬 더 성숙하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시의 좀 더 구체적인 신문사 상황과 조선투위와 동아투위 주체들 입장에 처하게 되면 이런 가정법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구조 전체를 고려해보고 1988년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대안 언론' 탄생을 되돌아볼 때 역으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가 없었다면 관제언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언론 운동 및 '대안언론' 추진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8장 '한총련의 귀환' (p.152~163) 사실 저자도 그렇고 나고 그렇고 2000년을 전후하여 한총련이 검찰의 공소장대로 '북한의 통일전선' 지침에 추종하여 학생운동을 전개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 한총련이... (중략)... 이미 참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한총련의 불법행위나 북한추종의 이유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이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수구언론 조중동의 사실 왜곡과 극우적 주장을 비판하면서 국가기관의 '주장'을 토대로 학생운동 단체가 반역자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고 생각한다.
* 안티조선 운동의 구조와 연표
[ 2011년 8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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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공에게 드리는 글 [안티조선운동사] 잘 지내셨는지요? 2011년도 벌써 3월입니다. 오늘은 3월 첫날인데 봄 같지 않은 날씨 때문에 바깥나들이 했다가 된통 혼이 났습니다. 바람이 엄청 거세게 분 덕에 더욱더 춥게 느껴졌더군요. 안 그래도 오늘은 몸도 좋지 않아서 토악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고 다행히 좋아졌지만요. 제가 이번 겨울에 읽은 책으로 [안티조선운동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역사서 같기도 하고 모험소설 같기도 하면서 혹은 정치평론집 같은 책입니다. 예전부터 제가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좋아하는 것을 공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 덕에 보게 된 책입니다. 물론 저자의 그 전 책인 [뉴라이트 사용후기]라는 책을 사서 읽었는데 제가 보기에 근현대사에 관해서 초보가 보기에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를 믿고 그 다음번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안티조선운동에 역사에 관해 고스란히 서술을 했습니다. 안티조선운동에 들어가기 전 한국 언론의 역사에 대해 간략한 이야기를 하면서 첫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대한민국의 광복인 1945년부터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맞겠으나 현재 현존하는 언론사들이 나타나게 된 1920년부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안티조선운동이 본격 시작하는 1998년 전까지의 상황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과거 우리 언론의 역사들을 살펴보면 입맛을 다지게 되긴 하더군요. 우리 현대사에는 많은 발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어두운 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확인하게 되니 그 느낌이 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뭐 어찌되었든 아까 이야기 시작한 첫 부분은 사실 이 부분이 없다고 해서 내용이 어렵거나 혹은 이해가 안 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본격적으로 이야기 들어가기 전에 애피타이저 맛보기라고 해야 할까요. 이 맛보기를 통해 훌륭한 코스요리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기대하게 하는 효과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안티조선운동의 탄생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의 공적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강준만이라는 한 지식인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제가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안티조선운동이 본격 발발하기 전에 이미 밭갈이를 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용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누가 수확을 걷었는지는 공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밭을 갈았다고 그 밭에 작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지요. 그 밭에 작물의 씨앗을 뿌린 사건이 바로 “최장집 사건”이었습니다. 저자는 만일 “최장집 사건”이 없었다면 안티조선운동은 없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 주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렸으니 이제 이 작물이 크게 되는 다음 이야기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안티조선운동이 본격 성장하게 된 부분은 주류시민연대들과 보수언론 -뭐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아실 테니 설명을 생략하고자 합니다. -의 갈등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총선시면연대의 낙천, 낙선 운동에 대한 보수언론의 강한 비판(혹은 비난)과 그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발의 격화로 시민단체들이 언론에 대해 반발로 보수언론 반대운동- 물론 그 대표인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게 바로 안티조선운동이었지요. - 으로 점차 안티조선운동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기름을 활활 부은 게 바로 정부였지요. 정부(김대중 정부)는 보수언론과의 타협보다는 강한 세무압박을 하게 되었고 그에 대해 보수언론이 강력반발하면서 이 운동은 점차 친정부 성향의 정치이념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과 반정부 성향의 정치이념을 가진 시민들 간의 격한 대립으로 확대되어 갔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공과는 별개로 하고 이 정부가 애초부터 강한 지지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공도 아실 겁니다. 그 덕에 정부가 시행한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정치적 중립 성향(솔직히 저는 정치적 중립 개념에 꽤 회의감이 많지만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정치적 성향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을 정치적 중립이라 해야 할 듯합니다.)을 가진 사람들도 점차 정부에 대해 반발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보수언론들은 점차 선동조로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명확한 반정부 성향의 시민들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 당초 진보적 성격을 띠기도 했던 동아일보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 같은 강한 보수성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 강하게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안티조선운동에 본격적으로 한 정치인이 누가 보기에는 용감무쌍하고 누가 보기에는 그저 막나가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를 지지하지 않는 진보세력이 본격적으로 확고하게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안티조선운동이 혼돈에 빠지게 되지요. 보수언론들이 아주 무리해서 야당 대선 후보를 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언론들조차 보수언론 못지않게 무리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직접 책을 보시고 공께서 판단하셨으면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많지만 그러면 공이 책을 보시는 즐거움은 없을 것이라 이만 줄입니다. 몸 건강히 지내시고 다음에 뵙고자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1년 3월 1일 asianote 삼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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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운동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어떤 활동가들은 그 출발점을 1970년대의 언론운동에서 찾는다. 반드시 틀린 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본격적인 의미의 안티조선운동은 1998년 조선일보가 시도한 소위 ‘최장집 교수 사상검증기사’에서 촉발되어 1999년 ‘우리모두’ 사이트가 개설된 시기부터 2007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기까지의 기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문좌파의 촉망받는(?) 재원이면서 ‘아흐리만’이라는 닉네임으로 안티조선운동에서 활동했던 한윤형은 이 10여년 동안 펼쳐졌던 역사를 꼼꼼하게 되살려낸다. 여기서 잠깐! 나는 바로 앞 문장에서 저자인 한윤형을 ‘인문좌파’라고 지칭했다. 사실 이건 이택광 교수의 표현을 빌려온 것인데, 그가 정의내린 바, 인문좌파의 특징은 정치지형도 상에서 왼쪽에 속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이념을 모두 회의하고 냉정히 평가하는 사유를 보여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윤형 본인은 ‘인문좌파’라는 나의 멋대로 평가에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안티조선운동사]를 읽으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저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그에게 이런 명칭을 붙여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인문좌파라느니, 치우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을 꺼낸 것은 그게 바로 이 책, [안티조선운동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나만 해도 조선일보, 월간조선 등등 ‘조선’ 형제들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조선일보의 정치적 지향점이 나와 다른 위치라는 점도 그렇지만,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에 서슴없이 사상의 굴레를 씌우고, 기사나 인터뷰를 정치적으로 ‘마사지’하여 교묘하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윤색해 내기 때문이다. 나는 조선일보가 사용하는 ‘좌파’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붙이는 ‘좌파’라는 용어의 이면에는 <좌파=빨갱이>라는 이미지를 부지불식중에 각인시킴으로써 좌파라는 딱지가 붙여진 정치적 입장을 우리 사회에서 매도시키고자 하는 사고방식이 숨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 안티조선 운동의 공과를 판단해 볼 때,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중략)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p.464) 저자의 결론을 내 마음대로 정리하면 이거다. ‘좋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가져야 한다고 믿어지는 불편부당함을 가진 매체가 아니라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온 매체였다. 저급한 보도행태이고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한 잣대는 반대편의 소위 ’진보지‘라고 하는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안티조선운동은 단순한 일개 신문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성공적인 운동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언론 전체에 편향성 극복이라는 메스를 들이대고, ’공론‘이란 것을 형성하기 위한 그릇으로 기능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일면 양비론으로 들릴 수도 있는 주장이지만 자신이 몸담고 참여했던 사회운동에 대한 냉정한 자기 성찰과 새로운 언론운동의 방향성 제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 지점 중 하나는 자신들의 입장에 유/불리한 주장을 구분한 후, 유리한 주장들로 일종의 ‘세력’을 이루고, 그 세력을 통해 불리한 주장들을 배타적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 아프게도 이런 모습은 안티조선운동 내부에서도 있었다. 오히려 좀 더 유치한 방법으로 말이다. 우리모두 사이트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겪은 심각한 내홍은 ‘민노당이건 다른 진보정당이건 민주당 후보(노무현)를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둘러싼 대립이었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진보정당의 희생을 강요하였던 측면이 있었고,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진중권씨가 이 시기 민주당 지지자들을 ‘김대중 광신도’로 거칠게 비판(비난?)하였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론 이런 갈등은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진보진영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안티조선운동에 참여한 사람이라고 해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때문에 안티조선운동이 ‘선명성’을 획득했다는 자화자찬에 있지 않았을까. 선명했었는지는 모르지만 안티조선운동은 그 폭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안티조선운동은 조선일보에 제 몫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가능한 장이었고, 또 계속하여 그런 원칙 하에서 외연을 확장함으로써 우리나라 전체 언론, 나아가 정치행태에 대한 문제게기가 가능했던 운동이었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아간다’라고 했던가. 안티조선운동에서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은 또다른 분열이었고, 또다른 무리짓기였으며,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날선 대립각만을 세운 모습이었다. 3. 전술하였듯이 안티조선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은 조선일보가 최장집 교수의 논문 중 일부를 발췌, 짜깁기 하여 <최장집 교수=국가관에 의심이 가는 좌파>라는 꼬리표를 달아 당시 김대중 정부에 대한 생채기를 내고자 하였던 의도적인 보도행태에서 비롯하였다. 이것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정확한 사실관계는 부차적인 것으로 돌려지고 목적에 따라 기사를 재구성하는 전형적인 ‘세력화’ 행태였다. 따라서 안티조선운동은 일차적으로 특정 정치사상의 시녀로 전락하여 기사를 윤색함으로써 상대방을 견딜 수 없도록 몰아붙이는 보도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어야 했다. 이 점에서 안티조선운동의 성과는 작지 않다. 어쩌면 이후 모든 진보진영의 운동에서 ‘조중동’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아이템이 되었으니 말이다. 안티조선운동이 제기한 문제의 출발점은 옳았다. 그리고 그 대상이 어쨌거나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조선일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를 본격화시키기에 좋았고 대중화시키기에도 좋았다. 그러나 운동 과정에서 안티조선운동은 우리 사회의 언론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하고 새로운 언론의 상을 창조해 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소설가 이문열이 제기한 소위 ‘홍위병’으로 대표하는 보수 진영의 공세 속에서, 그리고 스스로의 운신폭을 좁혀 버린 배타성 속에서 안티조선운동이 원래 가지고 있던 건강한 비판이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런 점에서 저자인 한윤형이 인용하여 지적한 다음 내용은 매우 가슴 아프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한국 언론의 심각한 문제는 이른바 ‘세력화 방식에 의한 여론화’다. 이를테면 언론이 자기주장에 동조하는 지지자에게 아첨하거나 그런 지지자를 규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양적 분석을 통해 볼 때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사설이 ‘세력화 방식에 의한 여론화’를 가장 많이 추구한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지적했다. (p.467)
안티조선운동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래도 안티조선운동은 성과가 많았던 운동이라는 평가 쪽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언론은 불가피하게 현실 정치와 이런저런 관련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을 인정한다면, 사실 다종다양한 이해관계와 성격을 가진 집단의 목소리를 객관적인 틀로 받아 안는 ‘공론화’ 또는 ‘공론장’으로서의 언론은 매우 이상적인 상이다. 그리고 이상적이라는 것은 다분히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시 총선과 대선이 펼쳐질 2012년을 앞두고 있다. ‘보수라는 이름의 야만’, ‘자본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안티조선운동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안티조선운동사]가 과거 참된 언론의 모습을 고민하며 들었던 깃발을 다시 한 번 세우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안티조선운동의 과정은 세련되지 못하였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한계, 상처를 거쳐 ‘일단은’ 실패한 운동으로 나타났지만, 그 경험이 결코 ‘파산’이 아닌 승리의 자양분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