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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문집을 읽었다. 그것도 감성이 푹푹 묻어나는 책을. 나는 정호승의 시를 좋아한다. 애틋하면서도 희망적인 그의 시들은 늘 감동이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가슴이 아리고 시간을 잊게되고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누군가 보고 싶어지게 된다. 그런 그가 쓴 산문집 <위안> 역시 나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요사이 사는 것이 콩나물시루같은 지하철처럼 빽빽해서 산문집을 읽을 생각도 못했었다. 산문집을 읽으며 감정에 젖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을 택했다. 제목이 주는 끌림 때문이다. 물론 작가도 매력적이었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위안>이 필요했다. 설연휴 틈틈히 읽으면서 책속으로 빠져들었다. 뭐그리 나쁠 것도 없는 현실이지만 불만투성이 였던 나에게 뭐가 중요하고 뭐가 소중한지 잔잔히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눠져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1="">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2="">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인은 인생은 고통이고 상처이지만 그 고통속에서 인간은 성숙해지고 감사하는 법을 배울수 있다고 조용히 타이르고 있었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고통과 절망들이 이 책을 읽다보면 감사로 바뀌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2="">에서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사랑이란 거창하고 요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만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20대의 만남은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시가 왜 그렇게 애뜻하고 눈물기가 어려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어린시절과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기도 했고, 정채봉 선생님과의 우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올해는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라는 말을 기억하며 힘차게 살아야 겠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매일 밥을 먹으면서 살지만 실은 상처의 밥과 국을 먹고 산다. 상처는 친밀감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친하고 가까운 사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아내는 남편한테 남편은 아내한테. 오늘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 바로 그 상처에서 오는 고통의 독소때문이다. 그 독소에서 오는 고통을 부여 안고 어떻게 할 것인가 괴로워하다가 마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생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남을 용서하기전에 나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 -만남을 위해 기도하라.20대의 젊은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다. 인생을 계절로 치면 20대의 계절은 봄이다. 어느 하루 민들레가 피어나는 들길을 걸으며 만남에 대해 간절히 기도해보라. 봄비가 오면 고요히 빗소리를 들으며 진실된 만남에 대한 꿈을 키워 보라.삶의 크기는 꿈의 크기다. 늘 노력이 뒤따른다면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그 무엇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라. 잘못된 만남은 고치고 다듬고, 내팽개쳐버린 채 돌보지 않는 만남이 있으면 다시 돌아보고 돌보아야한다.삶이란>사랑이>길이>사랑이>길이>위안>위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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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산문 〈위안〉이다. 언젠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집에 매료되어 정호승 시인의 펜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정호승 시인의 직업이 목수라고 알고 있었을까? 정호승 시인을 대충 띄엄띄엄 아는 펜이었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시인의 시를 좋아했을 뿐, 기질적으로 그의 직업에는 무관심한 탓일 거다. 오랫동안 케케 묶은 오해와 선입관을 시인의 산문 〈위안〉으로 풀고 넘어간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시인이며 월간조선에서 일했고 소설가로도 활동하다 다시 시를 쓰셨다고 한다. 산문 〈위안〉에 시인은 솔직 담백하다. 꼭 시인의 마음을 보듯, 또한 나를 우물에서 퍼 내여 비친 나를 들여다본다. 요즘 나의 글을 보고 누군가 그런 표현을 하였다. 사실 나도 시인의 산문처럼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아팠다. 그런데 산문 〈위안〉을 읽고 우습지만 마음과 영혼에 위안받았다. 참으로 내가 싫어하는 표현인데 산문의 끝까지 읽고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위안’이란 표현이 아주 지극히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이 산문을 집었다면 나와 같은 느낌을 마음과 영혼으로 느껴보길 소망한다.
○ 실은 누구의 인생이든 그 안에는 황량한 사막이 하나씩 존재해 있다. 다만 두려워 그 사막에 가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그곳에는 사랑의 부재, 이해의 부재, 용서의 부재 등 온통 부재의 덩어리가 모래만큼 쌓여있다. 그 사막을 걸어가 봄으로써 비로소 삶의 절대적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절대적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그 사막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_P33
○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안거나 품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면 그것은 고통이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가면 그것은 곧 포옹이자 기쁨이라고 말한다._P37
○ 욕심이 많으면 급류를 타고, 욕심이 적으면 인생은 냇물이 되어 완만히 들판을 흘러간다. (…)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고, 빠름은 부지런함이 아니다. 느림은 여유요 안식이요 성찰이요 평화이며, 빠름은 불안이자 위기이며 오만이자 이기이며 무한경쟁이다._P97
○ 시인은 죽어서도 사랑받는다.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쓴다. 시인은 죽어도 시는 영원하다._P135
○ 향기는 사라지기 때문에 향기다. 만약 사라지지 않는 향기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역한 냄새다._P218
○ 매화나무나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먼저 보여준다. 참으로 순수한 열정이다. 나뭇가지의 어디에 그런 꽃이 숨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_P235
○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다. 마치 씨앗 속에 꽃과 잎이 들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다 가슴속에 시가 들어 있다. 그 시를 가끔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_P298
○ 인생의 몇 가지 비밀 중에서 이별의 비밀을 엿보게 된 나는, 이별이라는 게 거창하거나 달콤한 그 무엇이 아니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죽음의 세계라는 것을 겨우 깨닫게 된 것이다._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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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게 생각하고 읽는다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혹은 좋아하는 사람의 글을 읽는 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까. 정호승 작가의 <위안>이라는 산문집은 그의 절판된 산문집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을 모태로 쓰여진 책이다.
정호승 작가를 믿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펴며, 나는 또 내 나이보다 더 많이 한걸음 디딘다. 나는 본질적으로 좋은 사람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성무선악설을 믿는다고 해놓고 어쩌면, 성악설이 먼저일거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실은 타인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아니까. 봉사라는 감투로 내가 해왔던 해악들이 무르기를 바라고, 책을 읽으며 오만과 자만을 ‘모두 다’ 느끼는 것이라며 씹어 삼키기도 한다. 그래도 인간이지라, 옳게 또는 바르게 세상을 보고자 하는 사람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고 정호승의 <위안>을 읽으며 나를 달래본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내가 속한 것들의 행위는 정당화 되고 타인의 것은 손가락 질을 하게 됐던 나를 반성해본다. 많은 부분들을 이해하며 살고자 하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 간혹, 에세이는 잘 안 읽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이해는 한다. 내 삶이 더 녹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누군가의 삶을 볼 만큼 여유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친구와 하루 종일 수다 떠는 마음으로 에세이를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떨까? 하며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하면서 조바심이 났다. 내년에 접수 할 것을 올해로 당기면서 급할 것도 아닌데 조급해하며 그에게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내뱉었다. 왠지 워킹홀리데이를 가려는 그의 태도가 나보다 덜 한 것 같은 마음에 그를 채찍질 하고 말았던 거다. 그러고 나니 일이 잘 되지 않아, 해야 할 일을 일찍 접고 퇴근을 했다. 퇴근 길, 정호승 작가의 책을 읽는데 ‘아차’하고 말았다.
“어째 나무들이 많이 굵어지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동행한 친구가 말했다. “나무들은 그리 급할 게 없잖아.” 나는 친구의 말에 마음이 뜨끔했다. (……) 나무들이 그리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동안 나무들은 나처럼 급하게 서두르며 살아오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이 보기에는 자라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겸손하게 속으로 나이테를 그으며 내면을 키우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나무들은 볼수록 느긋하고 행복해 보였다. 반면에 나는 초라하고 불행해 보였다.
당장 올해 아니면 못 가는 여건도 아니고 원래 내년에 할 것을 당긴 것인데 뭐가 그리 급해 그에게 신경질을 부려가며 조급해 했단 말인가. 하는 순간이었다. 목적은 잃은 채, 시간에 급급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내 모습에 나 또한 뜨끔했다. 바로 이 문장을 사진으로 찍어 그에게 보냈다.
‘조급하게 마음 먹지 않을게,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되는 거지. 아까 성질 부려서 미안해’ 라고.
어찌나 책에게 고마운지, 나와 같이 흔들린 정호승 작가에게 또 얼마나 고마운지. 하마터면, 사과하지 않고 밤새 부질없는 조급함에 애태울 뻔 했다.친구에게 속내를 말하다 나의 이기적인 모습을 들킨 냥, 부끄러웠지만 이내 고마웠다. 무릎을 탁- 치고, 뭔가 해결이 보인다며 웃어 보일 수 있던 대목이다.
이렇게 나는 또 책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반성하며, <위안>을 얻는다. 그 책이 에세이던, 소설이던 그리고 자기계발서던 한 방향으로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지. 이렇게 작지만 크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책은 쉽게 놓지 못할 것이다. 나이를 긁어낼수록 더 배워야 하고, 더 보아야 할 것이 많은데 그 것을 늘 채워주는 어른들의 놀이터는 책 이상의 것은 없을 것이라는 걸 이제 조금 알겠다.
늦게 피어난 꽃보다 빨리 피어난 꽃이 먼저 시든다. 어제 아침에 피어난 꽃들이 오늘 저녁에 이리저리 흩날린다. 꽃은 아름답게 낙화함으로써 존재적 완결성을 드러내지만, 인간은 꽃처럼 낙화하지 못하면서도 빨리 피어나고 빨리 이루고 싶어한다. (_95)
"인간이니까 병에 걸리는 겁니다. 병에 걸리면 나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게 인간입니다. 건강한 외부인들이 우리 환자들을 볼 때 저게 인간이냐, 저렇게 살 바에야 아예 죽고 말지 아등바등 살 필요가 뭐 있겠느냐 하겠지만, 저것이 바로 인간의 진실된 삶의 모습입니다. 생명을 부여한 절대자가 허락할 때까지는 운명에 순종하고 살아가야 하는 게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_103)
책은 인간이다. 책에도 운명이 있다. 시대는 급속히 과학화되고 정보화되어 책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제 곧 이 지상에서 종이책이라는 매체의 한 형태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고, 또 전자종이와 전자책의 등장으로 그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책이 사라진 세상, 책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게 될까. 책 읽는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는 날이 오게 될까. (_152)
자신이 무척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지금 서울 교대역에 모이는 맹인들을 한번 찾아가보라. 그들은 우리를 위안하는 위안의 성자다.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의 불행이 남을 위로하는 일보다 남의 불행이 나를 위로하는 일이 더 많았다. 불행한 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셈이다. (_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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