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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쓷다는 것이 의미학는 것은 무엇일까? 잘 쓴 글이 한결같이 유사한 스타일의 어투나 정서를 담고 있지는 분명 아닐 터.. 그렇다면 잘 쓴 글의 정의란 누군가 '이것이다' 라고 정의하기 힘든 비정형성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허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잘 쓴 '소설'이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몰입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독자의 감동이 한결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베스트셀러라도 더러는 별 감흥을 못 받는 사람도, 또 감동을 받는 경우에도 시점이나 감동의 깊이가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는 건 독자의 과거의 경험이나 잠재된 정서가 소설을 매개로 투영되어 나타나는 바가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그저 별로라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저자의 첫번째 작품이라는 점을, 그리고 그가 영화나 문학에 대한 평론을 써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소설이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다양한 지식, 그리고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특이한 관점 등은 작가 자신이 좋은 소설을 쓰고도 남을 정도의 재치와 입담,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게 만들기는 하나,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작가의 재능이 잔재주식으로 간혹 묻어나기만 할 뿐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읽으면서 가장 껄끄러웠던 부분은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부분이었다. 사물의 형태나 어떤 사람의 외모나 감정상태를 지나치게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말이 아니라,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 나름대로 받아야 할 감정의 피드백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지나치게 섬세한 배려(?)가 오히려 읽기를 지루하고 무미하게 만들었던거 같다.
간간히 나타나는 재기 넘치는 표현 및 묘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초반의 설정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결과 중반 이후의 흐름이 유연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결국 약간은 억지스러운 반전(?)으로 끝을 맺은 부분도 아쉽다. 굵직한 스토리의 흐름 속에 독자를 빠지게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자잘한 주변에 지나친 배려가 되어 중요한 것을 오히려 소홀히 보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
| 평소 책을 빨리 읽어 치우는 편인데, 이 책은 읽다, 말다를 몇번씩이나 반복하다 마지막 장을 꼭 넘기겠다는 오기(?)까지 발동해가며 읽었다. 처음엔 제목만으로도 내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었다. 게다가 내게는 다소 진부한 소재인 소설내의 '소설쓰기' 조차도 이 책을 읽기에 그다지 큰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또한 김화영교수가 문제점으로 지적한 구어체와 신조어 등의 남발이 오히려 이 소설 중반까지를 참 재밌게 읽게끔 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얘기의 흐름을 놓친듯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독백의 이야기 전개가 그만 책장을 덮게끔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역시 책 읽기의 재미는 마지막 장을 덮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몇 번의 중도 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이 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게 됐으니 말이다. 소설 후반부는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갈등의 요인이 되었던 '소설쓰기'의 어려움의 원인을 밝혀주며 이야기 전개의 반전을 가져 온다. 따라서 이전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이 책 읽기의 답답함에 반기를 들듯 다시 이 책을 읽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힘들게(?) 읽어서 그런지 끝까지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체험한 작가의 고백을 소설로 덧입힌 듯해서 새삼 글쓰기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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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려는 남자가 있다. 스스로 원해서?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떄문이다.
만년 대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아내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잘 되었다며 소설을 써 볼 것을 권유한다. 고등학교 교지에 실린 동명의 소설을 아내가 인상깊게 읽어서다. 자신의 글이 아니라고 딱히 부정하지 않아 아내는 아직도 자신이 쓴 줄 안다. 실제 그 글은 고교동창 M이 썼다. M은 지금 회사를 관두고 소설을 쓰려 한다. 친구도 쓴다고 하고 아내의 요청도 있어 소설을 쓰기로 한다.
아내는 거창하게 노트북을 선물한다. 목수가 연장 탓을 못하게 하듯이. 그것을 들고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소설이 쉽게 써지랴. 왔다갔다 교통비만 버리고 있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가 소설을 쓰고 싶다 한다. 노트북을 빌려 주며 한 번 써보라고 해본다.
그녀가 쓴 소설을 아내가 읽었다.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또 부정하지 않는다. 감탄한 아내는 자신의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 소설을 몰래 올려 평을 들어본다. 기대 이상의 호평 일색이다. 익명의 한 네티즌은 출판하라면서 자신의 지인이 소설과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다며 신기해 한다. 소설은 이렇게 꼬이고 꼬인 실타래같다.
도서관을 맨 처음 출입할 떄 주인공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린다. A가 B를 좋아하고 B가 C를 좋아하며 C는 A를 좋아하는 트라이앵글의 로맨스다. 결국 모두가 새드엔딩을 맞는 이야기다. 남자가 쓰지 않은 소설이 기막힌 소설로 둔갑하는 과정에 소설 속 주인공인 실제 인물은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는 그런 이상한 뫼비우스의 띠같다. 문체가 마찬가지다. 마치 말장난 하는 것처럼 이상한 상황이 펼쳐지고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은 낯설지 않으면서 조소를 자아낸다.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는 제목처럼 정작 실제 주인공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 인물들이 그 주인공의 이야기를 가지고 떠들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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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먼저 문체에서 한번 놀랐다. 그리고 포복절도할 사건들의 전개에서 또 한번 놀랐다. 그리고 소설 안의 소설이라는 구성에 놀랐다. |
| 몇 년만에 퍼올린 문학동네 신인상의 수상작... 아, 문학동네에서 이런 소설을 길러내느라 수상작을 내지 못했구나, 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은 좋다. 물론 작가가 배배꼬고 있는 스토리와 등장인물, 등장인물들의 관계만큼이나 삐딱한 문체들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내공과 몰두에의 집념, 기타 등등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몰두, 집념하지 못했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꽤 몰염치한 짓이 되었다, 라고 지적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 몰염치한 김에 한술 더떠서 한마디로 이 소설의 성격을 이야기하자면 결국은 소설에 대한 소설,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영하의『아랑은 왜』,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으나, 앞의 두 작품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이야기의 생성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이해경의 본작은 소설의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소설의 구조를 낱낱히 토로함으로써 소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영화평론가라는 작가의 전직(내지는 숨겨진 현직)은 이런 부분에서 빛을 발휘한다. "...이럴 때 소설이라면 이하 생략하고 훌쩍 건너뛰어 저녁의 술자리로 넘어가면 그만일 텐데…… 그는 불현듯, 소설처럼 살 수는 없을까…… 실없는 생각까지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아씨 영화라면 이럴 때 당연히 이렇게 될텐데, 라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이 소설로 고스란히 옮겨진 것이다. 이처럼 소설에 대한 간섭은 스토리 전체의 든든한 축이자 유일무이한 전제이기도 한데,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소설을 쓰고 싶거나, 소설을 쓰고 있거나, 소설을 쓰고 있는 등장인물의 소설에 토를 달거나, 소설로 쓰면 딱 알맞은 이상한 삶을 살고 있거나, 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 위에 작가가 보여주는 시니컬한 유머 또한 만만치 않은데, 이것은 또 요즘의 젊은 작가들의 주요한 특질들 중 하나로서, 여자 작가들(물론 몇몇 작가들은 제외해야 하겠지만)이 사적인 심경의 감상적이고도 유려한 표현에 치중한다면, 남자 작가들이 물컹물컹한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냉소적으로 드러내는데 치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프루스트는 자기 소설에 대한 논문을 써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하려다가, 글이 형편없어서 프루스트 씨에게 야단맞겠다는 편집자의 걱정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 와 같은 익히 알려진 사실을 이용하거나, "...절체절명의 위기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스위트 홈의 안식만을 갈망하여 힘겹게 전진하는 그를 생각하노라니 그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고 말하고 싶지만 주마등을 본적이 없어서 애석할 뿐이다..." 고 점잖빼고 앉아 책읽는 독자의 독서 흐름과는 상관없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혼을 빼놓는 수법을 이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단(따로 이단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으니 이또한 어줍잖지만) 소설에 대한 소설쓰기, 특유의 유머라는 두 가지 특질만을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에는 이외에도 말줄임표의 부단한 사용, 구어체와 문어체 사용의 경계없음 등 다양한 특질을 보이는 바, 근래에 나온 소설 중에 그 구성의 특이성으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새로운 시도의 전형으로 삼아 도전해볼만하고, 대저 소설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갖고 있다면 간간히 밑줄 그어가며 볼만하고, 그저 재밌는 소설이 읽고 싶었다면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낄낄거리며 따라가면 될 것이다. 뭐 사실 단점이 아예 없다고 하기는 뭣하지만 장점을 말하다보니 이제 지쳤다. 단점은 다음 기회에 짚어보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혹여 이 편파적인 감상문에 반기를 들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알아서 혼자 분기탱천, 깃발 휘날리시면 되겠다. |
| 이 소설 ''그녀는 조용히 살고있다'' 이해경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대학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회사생활도 했다고 한다. 좀 다양하지만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작가의 소설쓰기에 관한 소설이다. 내용 곳곳에 ''소설은 이렇게 쓰세요''라는 작가의 친절함과 ''이런분들은 소설을 써보세요''라는 글쓰기에 대한 당위성이 담겨져있다. 다소 복잡하고, 자칫 지루해 질만한 풀롯을 정하고도 주제를 향하여 나아가려는 작가의 지구력이 실로 대단해(?) 보이는 소설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고민 역시, 우연한 기회로라도 좋으니 부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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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보아 분명히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다시 한번 책을 한번 뒤적이며 발견한 단어는..'소설쓰기'였다. 더할나위 없이 바로 이것이라며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삼분의 일쯤 읽고서 한 문장을 발견하고는 또다시 책을 덮어버렸다. 내가 하고싶었던 말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국문과를 나왔고 다시 연극영화과를 공부하고는 영화평을 쓰던 경력을 가진 작가가 써서 상까지 받은 수상작이다. 글의 분량은 장편 소설답게 좀 많다는 느낌이 난다. 전반적으로 말하고자 함은 '소설쓰기'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혹시 저자의 실제 내용을 적은것은 아닌가,허구와 실제를 자유롭게 섞은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조금이라도 글을 써본답시고 끄적여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완전 허구는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쓰다보면 허무맹랑한 이런걸 왜 쓰고 있을까 스스로도 흥미가 없어지고 만다.경험을 토대로 혹은 주변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소재를 가지고 나름대로 살을 붙여보는 재미에 글을 이어나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사실은 정말 사람들 사는거나 생각하는건 똑같단 것이다.다만 그것을 누군가는 글로 표현해냈고 누군가는 그림으로 나타내며 또 누군가는 철학자로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결국 우리의 화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다.물론 이 책의 저자는 그것에 관점을 두고 쓴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읽는 자의 입장에서는 표면적인 재미는 소설쓰기 과정을 들여다보는것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결국 주인공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글로 써보리란 결론을 내린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나 역시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소설쓰기에 대한것을 소설을 통해서나마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나 알고싶어서였지만,다 읽고 난후 내가 글을 쓰고 싶어했던 근본적 이유는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꾸만 글쓰기에 대한 미련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책을 보면서의 세세한 재미는 읽는 이들마다 각기 다를 것이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욱 서평의 역할같다고 여겨진다.
다만 작가의 문체 특성중에 영어와 콩글리쉬가 마구 섞여져 마치 영화평에서 쓰여지듯 보이는 문체는 신세대적이긴 하지만 문학 순수의 우리말 고유성이 드높여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이 점은 다른 분의 평론 부분에도 언급되어진 점이다. 그리고 소제목들이 전체 글과 너무 연결이 안 되게 붙여져서 오히려 제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내용만 읽게되었다는 것이다.제목들이 글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그런 점은 호응을 할 수 없었다.패션의 완성은 맨밑의 구두이듯이 글도 몸통인 내용이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모든걸 한눈에 나타내는 제목이 중요하다고 본다.
끝으로 글을 쓰는 것에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나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씩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여겨진다.아무런 추천없이 손에 잡혀 읽은 책이지만 좋은 생각을 많이 해본 매개체였다.나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져서 더욱 그러했다. 책 제목도 무척이나 맘에 든다...나는(원제: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내가글을쓰게된것은남편덕분이었다... |
| 이 소설을 발견하고 몹시 기뻤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제목으로... (이런 썰렁한 제목으로!) 책을 쓰는 소설가가 있다니! 그리고 그의 거침없는 문체를 접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인터넷으로 별 주저없이 구입하게 된 것은 '엄청 똑똑한 이 땅의 인문 지식인'들의 요람인 컬티즌이라는 사이트에서 작가의 짧은 글을 읽고 나서이다. 링크 걸어 두었으니, 관심 있으시면 가서 읽으시라... 음... 이 사람의 글이 흡인력이 있었던 것은... 내가 '당구'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컬티즌이라는 공간에 어쩐지 안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그저 재밌는 글이기도 해서이다. 약간 빈 듯한 느낌... 공허한 느낌... 이것은 내게 매력있는 소설들이 풍기는 냄새들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쓸쓸함'이 관통하는 글쓰기. 처음에 너무 재밌어서 웃다가, 나중에 슬펐다. 힘이 쭈욱 빠져버렸다. 역시 직급은 대리가 최고라는 엉뚱한 깨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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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ce 와 change' episOde,2 이해경_그녀는 조용히 살고있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 왔으나 많은 것이 닮아 있고 그래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완전한 허구라는 건 어떤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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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소설에 관한 이야기. 이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품 속 '그'와의 어떤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던 것일까. 한 때 나도 꿈 꿔본 적이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일까.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작품을 들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면 나 스스로 거의 체념한 상태였다. 아니, 어쩌면 이 작품을 계기로 다시 '소설 쓰기'에 대한 열망의 불꽃이 살아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도 한 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 땐 나도 정말이지 잘 쓸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속의 나날을 보냈던 것 같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지금 돌이켜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어쩌자고 그런 꿈을 가졌던가. 그럼 지금은? 지금은 '쓰기'가 아닌 '읽기'에 매진하고 있다. '읽기'에 매진하면 할수록, 수 많은 작품들을 만날수록, '쓰기'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든다. 지금은 그 불씨도 남아있지 않다.
그 불씨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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