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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너무 허술하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너무 거칠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런던에 가는 개연성이 너무 빈약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너무 산만하다. 처음에 사랑 이야기가 나중에는 테러리스트의 공작과 연결된다. 이쯤 되면 현대 정통 소설이 아니라 판타지 만화쯤으로 생각된다. 차라리 성장 소설로 쭈욱 가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피리부는 사나이의 테러리즘으로 가는 게 훨씬 나은 걸로 생각된다. 결론 적으로 말하자면 겨우 이만한 작품이 문학동네 소설상이라는 큰 상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다. 그 전에 나왔던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라던지 김연수 작가의 캐비닛 또 천명관 작가의 고래 등과 비교 했을 때 이 작품은 너무나 조악하고 유치할 뿐이다. 책을 덮으면서도 어이없는 사건 전개에 조소를 짓게 된다. 문학동네 소설상의 수준이 낮아졌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점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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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을 '피리부는 사나이를 읽고'라고 붙였지만 나는 책이야기 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구가 종말할꺼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오움질리교의 테러, 김일성의 죽음은 내가 기억하는 십대의 내가 지나쳐온 이상한 세상의 모습이었다. 어느날은 나도 호들갑을 떨며 이런 일에 흥분하고 뭔가 이야기하려 입을 오물조물 댔지만 학교가는 시간 밥먹는 시간 수업시간은 꼬박꼬박 챙겨 일상생활을 했었고 사실 이런일들은 이상하게도 그 크기와 심각함과는 관계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법한 일들도 아홉시 뉴스가 끝나고 드라마시간이오면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 바로 잊혀지기 시작했다.
세계와 사람, 사람과 역사, 사람과 사람의 역사, 사람과 사람, 어제의 사람과 오늘의 사람. 이 모든것들에 지금은 물음만 남아있다.
십대가 지나고 이십대, 그때와 다를것이 없었다. 더 혼란스러웠다. 세계와 사회는 이해할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고 생각해보면 별일아닌일에 길거리에 주저 앉아 세상이 끝난것처럼 울었다. 이해할수 없다가 먼저인지 관심이 없다가 먼저인지 모르게 나는 내 일상안에서도 무기력했고 그러면서도 격동의 이십대를 보냈다. 서른으로 막 접어들자 지나온 날들은 '모르겠다'로만 설명됬다. 개연성, 필연성은 어디에도 없었고 운명이나 우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없이 '문을 두드린것' 같았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이 '문을 두드린것'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계가 무엇이고 그걸 깨뜨린다는 것은 무엇인지 모든것이 모호하다.
나는 이 책을 세번째 읽고 있다. 아마 다 읽고 나면 더 할말이 없어질꺼 같아 부랴부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무슨말을 써야 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모르겠다'.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과 많은 리뷰들, 심사평들도 나름대로 이글을 말하고 있겠지만 나는 이 글 안에서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젊은이로 나를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수연과 같이 책을 보던 도서관에도 있었고, 우진과 책을 바꿔보면 생각을 나누기도 하였으며, 이반형과 말없이 노래를 들으며 술을마시다 오열하며 울기도 했다. 왜 이렇게 된지 모르게 어떤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던거 같고 그냥 그 사건의 크기가 작은지 큰지도 가늠하지 못하기도 (안하기도) 했던거 같다.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안다손 치더라고 '어찌할수 없다'라는 느낌으로 이십대를 지나왔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읽고'라고 썼지만 사실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읽으며' 라고 쓰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다른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같이 다시 읽어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야기를 '나눈다' 라는 표현이 쓰면서 가슴한구석을 찌릿하다) 마지막으로 작가를 만난다면 같이 Fragile에가서 작은 종이에 듣고 싶은 노래를 잔뜩써서 이반형에게 건넨뒤 맥주나 실컷 마시자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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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에 발 들여놓을 수 있는 건 아직 그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야.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음미하는 거야. 막 책장을 넘기기 직전의 설렘과 기대, 한 발짝씩 내디뎌 갈 때의 즐거움 같은 걸 말이지. 정복의 쾌감만을 생각하는 건 수집가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리고 시간의 힘을 이기고 살아남은 진짜 책들은 각 분야에 그리 많지 않아. 그러니까 이미 넘겨버린 페이지들을 아쉬워하면서 천천히 읽으라구.” _ P105-106
가지고 있는 책들 중 선물받은 책들과,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제한 후 몇 권의 책을 팔고, 오랜만에 책구입도 할 겸해서 알라딘 중고서점을 찾았다. 참 오랜만에 가는 서점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금세 포근해져온다. ‘내가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책을 많이 찾는구나. 내가 그동안 너무 책을 등한시했었네.’하는 자괴감을 가진 채로 책들을 훑었다. 그 중 저자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마주했고, 책장을 뒤적거리는데 쳐져있는 형광펜. 얼마나 좋으면 형광펜을 다 그었을까,하며 읽었고, 순식간에 그 문장이 가슴께에 콕 박혀버렸다. 어느 순간 나는 책을 읽을 때 형광펜보다 포스트잇 플래그를 더 애용하게 되었다. 금세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하지만 그것은, 그저 책에 낙서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변명하는 말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읽으며 긋고싶어,라는 때아닌 욕심으로 형광펜이 그어져있지 않은 다른 책을 찾아서 구매했다. 이 책과의 인연은 그러했다.
수연,은 ‘나’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런 수연을 위해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찾아나서고, 이야기의 무대가 런던으로 바뀌면서 ‘나’의 발걸음이 전보다 빨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나,도 조급해했다. 런던으로 간 후 ‘피리부는 사나이’를 찾는 일에 헛걸음치는, 반복되는 이야기들에 루즈하다, 느껴질 즈음 ‘나’는 헉씨를 만나고 니콜라스를 만나게 된다.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한 김기홍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태동되었다. 작품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내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이렇게까지 쌩뚱맞을 수가 없다. 달짝 지근한 연애가 살짝 담궈져있는 성장소설인줄 알았다가, 추리소설인줄 알았다가. 끝끝내 책의 성질을 꼬집지 못하고 나는 이 책을 ‘김기홍’이라 부르기에 이른다. 우회적이지 않으면서 우회적인 그의 문장들은 내게 우호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그것은 매력적이다,에 미친다. 작가의 사색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이 책은, 내가 이렇게까지 아껴가며 읽은 책이 언제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여유를 부렸지만, 그러면서도 조급해했다. 그저 작가의 템포에 맞춰 같이 걸어가면 될텐데 나는 여유로운 척,을 해댔으니 말이다. 이야기일줄 알았던 남은 페이지가 심사평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깨닫는 순간이었으며, 이야기 결말에서의 아쉬움이 아닌,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 남은 페이지가 심사평이라는 사실에 배신감까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말을 두어 번 더 읽은 후에 이야기가 어디까지 더 전개되길 바랐던 것인지. 남은 페이지가 고작 심사평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좀 더 야금야금 읽을 수 있었을까,하는 아쉬움일 게다. 또한 심사평의 몇 줄을 읽으며, 책을 덮고 표지의 ‘제15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을 발견했고, 놀라서 옆에 있던 J에게 “이게 이 작가 당선작이래!”라며 쫑알쫑알거렸다. 이후에 기대감으로 다른 작품이 있었는가 찾아보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최신작이라는 사실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 책 괜찮은가요?”라고 묻는 이에게는, 장르가 확실한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라면 “당신의 혹평을 기대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에는 문학, 철학, 미술,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서 조금은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내겐 참 괜찮았던, 괜찮은 책,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라고 마무리해본다. 이보다 더 주관적일 수는 없으니까.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를 향해 걷기 시작한 ‘나’의 발을, 참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나, 수연, 우진, 정현, 이반. 그리고, 피리부는 사나이. 안녕. 나는 이제 내 안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만나러 가야겠다. 어쩐지, 나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들려주는 연주는 요람에서 빽빽거리며 울고 있는 아기가 금세 잠이 들 정도로 평화로웠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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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대화의 구도, 우리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이루는 삼각형의 구도가 내겐 더할나위없이 아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마치 생활의 번잡한 일들 따위는 전부 사라져버린 것처럼 한없이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_ P73
수연과 나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비할 데 없이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거대한 망각의 바다로 흘러가버린 대화가 있는가 하면,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섬처럼 남는 대화도 있었다. 시간이 쌓여가며 깨닫게 된 것은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지금은 대부분 잊혀져버렸다. 어쩌면 그중 일부는 기억하고 있되, 그것을 중요하게 느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 반복되는 말버릇, 사소한 몸짓이나 표정 같은 것들이 시간의 파괴력을 이기고 살아남아 수연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의 웃는 방식, 이따금 내게 눈을 맞출 때의 표정, 그녀의 말이 갖는 독특한 리듬, 그런 것들. _ P83
“버렸다는 말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형은 그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거니까.” _ P113
“사람들은 대개 공통점보다 차이점에 신경쓰니까. 차이점들이 하나하나 벽으로 변하는 거지” _ P117
“오해받는 것도 싫지만 오해를 내 입으로 해명하는 일은 더 싫어. 해명이란 건 하면 할수록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꼭 믿어주는 것도 아니잖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고.” _ P136
혼자있을 때 인간은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다른 누구도. 어쩌면 우리가 외로운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_ P139
“너는 부재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이해해야 해. 우진이는 너에게 어떤 존재였지? 이제 우진이는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해. 그걸 이해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야.” _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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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서양 동화 속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이야기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설을 통해 만들어진 동화 속 이야기를 판타지로 해석한 소설도 있고, 현대적 의미로 새롭게 쓴 글도 있다.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작가들의 관심을 끌까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한 작가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들고 나왔다. 그는 환상과 현실을 교차시키면서 한 대학생의 사랑과 성장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처음 소개 글에서 설정을 보았을 때부터 시선을 끌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실행될 것을 두려워한 한 중학생이 있다. 그 두려움은 실재적이었다. 충동에 휩싸여 누구나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이런 그가 밀레니엄을 맞이했을 때 허탈함은 대단했을 것이다. 자신을 충동으로 내몰았던 심장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도 시들해졌다.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이때부터 그는 귀마개를 가지고 다녔다. 하루 종일 귀마개를 한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머니 속의 귀마개를 만졌을 뿐인데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상이 생긴다. 소리 없는 기억이 그를 채우기 시작한다. 소리 없는 기억을 가진 그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묘하게 다가온다. 첫 사랑인 수연의 이야기 속에서 나타난다. 처음엔 그냥 수연의 기이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커진다. 처음엔 풋풋한 새내기 대학생활을 다루고, 소문의 무서움과 무거움을 나타낸다. 술에 취해 함께 잔(정말 잠만 잔) 정현과의 일은 같은 학생들의 질투와 오해로 뒤틀린 학창생활을 하게 만든다. 이 때문인지 그는 같은 하숙생이자 동급생인 우진과 연상의 여자이자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수연과의 관계에 더 집착한다. 이 둘과의 관계는 학창시절 어쩌면 가장 찬란하고 멋진 경험일 수 있다. 다른 사건들만 없다면 말이다. 삶 속에 자주 발생하는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시에 현실 속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테러와 실종이 그 사이사이를 채운다. 처음 그 시절에 발생했던 수많은 실종들을 단순히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소품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실들을 작가는 뒤로 가면서 하나의 전설과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설정으로 만든다. 그 전설이 바로 피리 부는 사나이다. 그의 피리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그 신묘한 연주에 매혹되고 자신도 모르는 끌림에 빠진다. 이 끌림은 실종과 테러라는 현실로 이어진다. 왜 이런 테러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데 그 답이 해석자에 따라 갈릴 수 있다. 전설을 현실 속 부조리와 부패 속에 부활시킨 것이다. 흡입력이 좋은 소설이다. 나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과 사람들은 흥미롭고 풋풋하고 그립다. 평범하지 않은 그들이지만 젊음 속에 뭉치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성장한다. 중반 이후 갑작스런 비약처럼 보이는 피리 부는 사나이와 테러의 연관성은 당혹스럽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가진다. 처음에 소리를 잃은 그와 매혹적인 피리 소리가 이어지고 겹쳐지면서 현실의 상황들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책 마지막에 와서 그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지겨운 반복은 삶의 무거움과 그리움을 덜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만나게 될 신세계는 어쩌면 성장통 끝에 그 앞에 펼쳐질 현실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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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은 남자 대학생이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는 극히 적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날 수연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수연은 그보다 2살 연상으로,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수연과는 편안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지만, 이 남자에게는 고민이 한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과동기 정현과 하룻밤을 함꼐 보냈다는 것인데, 비록 아무런 일은 없었지만, 대학 1년생이 여학생과 단둘이 하룻밤을 지냈다는 이유로 그는 과에서 배척을 받는 존재가 되고, 수연이외에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외에 그가 교류를 하는 사람은 같은 하숙집의 우진이란 학생과 이반이란 사람, 그리고 카페 fragile의 사장 정도랄까. 하지만, 그런 인연을 통해 그는 조금씩 자신의 벽의 깨(fragile) 나간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학교 축제 기간에 우연히 본 타로점에 나타난 점괘. 수연은 자신의 뒤집은 카드인 DEVIL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그후 다시 연락해 온 수연에게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일단 주인공 남자의 성장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가 자신의 벽을 깨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부분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진과의 만남으로 인해 소설만을 읽던 그가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고, 수연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던 그는 카페 fragile에서 이반이나 개구리 사장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의 폭을 넓혀 나간다. 20대. 그리고 대학 신입생이란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에게서 독립을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를 맛보게 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기이다. 무절제하고 방종으로 치닫기 쉬운 나이이기도 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설게를 할 나이도 바로 이즈음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신의 사고의 틀,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좀더 성숙하게 되는 게기를 시기를 묘사한 것이므로 성장소설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연의 이상한 행동과 수연이 겪었던 일 - 피리부는 사나이-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 소설은 급격하게 회전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짐작대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이다. 쥐떼를 피리로 유인해 쥐를 없애 주었지만, 정작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한 그가 피리 소리로 아이들을 유혹해 사라져 버린다는 이야기. 바로 그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세계 각국의 여성들의 실종과도 관련이 있으며, 수연과도 관련이 있다. 수연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그후 묘한 일을 겪었으며, 지금도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 소설은 무대가 유럽으로 넒어진다. 게다가 재벌의 딸인 이유리를 비롯해, 테러조직과 테러를 막기 위한 조직들이 등장하는데, 피리 부는 사나이와 관련있는 이유리라는 여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미묘해져 간다. 갑자기 무대가 한국의 서울에서 영국의 런던으로 바뀌는데, 순간 나는 주인공이 시공간 타임 리프라도 한 듯 느껴졌다. 왜 평범한 대학생이 갑자기 테러조직을 쫓게 되는 거지?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지? 그가 여성들을 납치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일까... 수많은 궁금증이 책 후반부로 가면서 내 머릿속을 둥실 떠다녔다. 평범한 대학생 이야기가 갑자기 국제적인 테러조직과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난 이 부분에서 아연실색 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의 과정이 너무 간단하게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부터 숲길에 조금씩 빵조각을 떨어 뜨리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약간이 복선이 깔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런 변화에 미처 내 마음은 이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속시원한 대답을 주지도 않았다. 왜 수연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가야만 하는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없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작품의 주인공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꿈을 꾸고, 다시 길을 나서는 것으로 끝난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란 것일까. 사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테러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하기에 주인공이 수연과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는 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가 되어버렸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좀더 작게 생각해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세계의 변혁을 가져올 인물이 아니라 개개인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방식은 폭력성을 띄는 것이라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주인공이 자신만의 세상을 박차고 나와 더 큰 세상과 접촉하게 된다는 계기를 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주인공은 착실하게 정신적 성장을 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2004년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테러, 자연재해, 살인, 실종 사건 등 여러가직 국제적 사건이나 사회적 문제등을 묘사하고 있다. 확실한 이름은 거론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 아,, 이사건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또한 문학, 그림, 음악등 예술등에 관한 토론이나 이야기도 이 책을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란 동화, 그리고 대학생 주인공의 이야기를 적절히 접목시켜 김기홍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탄생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일상과 비일상을 교묘히 접목시켜 한 남자의 정신적 성장과 사랑과 우정 등 청춘의 빛나는 시기를 매끄럽게 잘 표현해냈다는 것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페이지가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난 한번도 손을 떼지 않고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설이다. 지금, 당신에게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가 들려 오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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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사나이'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SF 미스터리 소설? 판타지? 이 책이 어떤 장르에 속하든 그것은 이 책을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그저 이 책을 읽은 느낌이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내 느낌만을 말하고 싶은데 자꾸만 생각이 왔다갔다 한다. 이 책은 어떤 느낌으로 읽느냐에 따라, 어떤 관점과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피리부는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달라져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피리부는 사나이를 읽은 느낌에 대해 딱 하나의 흐름을 끄집어 내어 이야기할 수가 없다. 어쩌면 정말 피리부는 사나이의 피리소리에 홀려 그저 정신없이 글자들을 따라가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조금은 엉뚱한 이야기지만, 어머니가 보시던 TV에서 송창식이라는 가수의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기때문이다. 딱히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순간적인 충동으로 여러권의 책들 밑에 깔려있던 이 책을 어렵게 끄집어 내어 그저 한번 훑어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피리소리에 홀리기 시작하고 있었던 거야. 책을 잡은 그 순간부터 마지막장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김기홍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어떤 책인지 살펴보고 읽기 시작했다면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이 재미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저 감으로, 누군가가 부르는 피리소리에 홀려 그를 따라가듯이 글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다. 그 피리소리는 그저 단순한 리듬이 아니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듯 즐겁고 시간의 흐름을 잊고 빠져들게 만드는 매혹적이고 탄탄한 구성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다. 우리는 피리부는 소년에 대한 동화같은 전설이야기를 대부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기홍의 피리부는 사사나이는 그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속에 신비로움과 미스터리한 요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굳이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것이 이 이야기의 끝부분에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인과관계를 비현실적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기도 한 느낌을 지울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이 피리소리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며 '나'와 관계되어 있는 인물들의 비밀이 무엇인지 상상할 여지를 남겨두며 더욱 재미있는 글읽기를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나'는 관계의 폭이 넓지 못한데다 약간의 오해로 완전히 왕따를 당한다. 그에게는 우진과 수연이라는 친구가 전부이며 그들과의 관계에서 우정과 사랑을 알게 되며 또한 자기 자신과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된다. 전해져오는 피리부는 사나이에 대한 전설과 이야기들은 그가 마을을 구해낸 영웅이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의 원수가 되기도 하는 악마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인 '나'가 겪는 의문의 일들이 그런 양면성을 담고 있음을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것이, 순식간에 한번 읽은 것으로는 이 책의 느낌을 딱히 끄집어 낼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두번째 읽을때는 또 다른 느낌이 있을 것만 같은데... 언제 또 읽어보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언젠가 또다시 내 안에서 피리소리가 들려오는 그때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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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문학동네 소설상이란다. 피리부는 사나이...... 흡사 십몇년전 내 대학생활을 다시 보는 듯하다. 그렇게 이 소설은 내게 너무나 멀어져버린 20대 초반 청춘의 한자락을 다시금 꺼내 되새김질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너무 멀어져버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지만 그래도 내 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옛 기억과의 풋풋한 재회...
물론 요즘 대세인 글로벌리제이션에 따른 건지.. 3분의 2지점부터 무대가 영국으로 옮겨지고 거대 음모론에 대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약간은 엉뚱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피리부는 사나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끌고 갈 수 있도록, 두근두근 약간의 긴장감을 쥐고 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끌고가는 작가의 힘은 그의 나이와 첫 소설임을 감안할때 참으로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훈훈하게 잘 생긴 김기홍...이라는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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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프로 한 소설 두 가지를 최근에 읽은 셈이다. 써틴과 이 책. 사실 어릴 적 이 동화를 읽고서 묘한 두려움을 느끼기는 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속은 피리 부는 사나이는 가장 처절한 복수를 한 셈인데, 그들의 자식들을 데려가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납치됐다기에는 뭣한, 홀려서 제발로 그를 따라간 것이 아니었던가. 그는 정말 아이들을 어디로 데리고 간 걸까? 어린이에서 별반 성장하지 못한 우리가 진정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런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음이 일련의 책으로 증명된 거랄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이 책의 작가 김기홍 씨도 그 중 한 명이었던가 보았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상당했다. 작가 만큼이나 소설도 젊었다. 뭐가 젊었던 것이냐고 물으면 대목대목 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읽으며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젊은이만 쓸 수 있는 소설이구나 하는. 별 것 아닌 걸 대단한 것인 양 느끼는 확대해석, 비약 등등이 느껴졌지만 싫지 않고 귀엽다고나 할까, 그랬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도 등장하고, 음악 이야기도 등장하고, 타로점도 등장하고, 테러도 등장하고, 주인공은 예기치 않은 일로 런던까지 날아간다. 스케일도 크다.^^ 모네나 마네나 고흐 등의 등장 대목을 읽으면서 "또 인상파야!"하고 지청구를 늘어놓을 이웃도 떠올랐다.
주인공은 대학 신입생. 이름이 나왔던가? 암튼 소리에 대한 울렁증이 있는 주인공에게는 대학 와서 사귄 친구가 단 두 명이다. 수연과 우진. 셋 모두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자 대학생 정현. 그들의 관계에서 분명한 것은 정현이 주인공을 좋아했다는 것 뿐이고, 나머지는 여느 대학생과 다름, 꽤 복잡함을 과시하며 관계의 분명성에 모호함으로 칠을 한다. 수연의 행방불명에는 현대판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얽혀 있다. 그녀 역시 하멜른의 아이처럼 제발로 그를 따라나선다. 그리고 주인공이 수연을 찾으러 나선다. 이야기는 급격히 세계적인 테러와 우리 사는 세상의 위험으로 확대되고, 결국 찾으러 나선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세계는 모호하고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찾으려는 노력뿐이라는 이야기.
실은 재미있게 읽혀서 하루만에 끝을 냈다. 작가의 다음 책에서는 어떤 성장이 보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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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도 잘 알고 있는 동화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하여 우리들 일상에 드리워져 있는 거대한 음모(?), 그리고 이 음모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젊고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특히 안정적인 문체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소설의 시작이 굉장히 유연하고 매끄러운 반면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는 의욕이 과하였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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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주나, 노래에 매혹되면 한동안 그 음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해서, 블로그의 배경음악이나 CD를 구매해서 반복해서 듣곤 한다. 몹시 화가 났을 때, 울적할 때,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음악은 큰 위로가 된다. 음악은 감성의 자극 이상으로 영혼까지 흔드는 힘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이유는, 소설 <피리부는 사나이>때문이다. 쥐를 몰아내기 위한 피리 소리를 듣고 어디론가 사라진 아이들. 무엇이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까?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소설은 주인공 ‘나’가 2004년 대학에 입학하고 새로운 만남과 일상에서 시작한다. 스무 살, 대학 신입생의 일상은 잦은 환영회와 술자리로 이어진다. 대학은 새로운 세계라 할 수 있다. 어느 세계든 그 곳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하여, 하숙집 친구인 ‘우진’과 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수연’과 어울렸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술자리로 하룻밤 신세를 진 같은 과 동기 정현과 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이게 된다. 드러내 놓고, 해명을 하지 않았기에 소문은 더 커지고 결국 정현을 비롯하여 동기들과의 관계는 멀어진다. 그럴수록 수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축제 때 우연하게 타로 점을 보게 되고, 수연은 자신이 뽑은 카드를 보고 놀라며 그 이후로 소식을 끊는다. 수연에 대해 하는 것이 없었던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다시 만난 수연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지배하는 듯한 운명적인 피리 소리에 대해, 그 이후의 삶에 대해. 피리를 불던 남자를 잊지 못한다고. 나는 점점 그 남자가 궁금하고, 그러던 차에 묘한 기타 연주를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정현의 연주였다. 불편한 사이였던 정현에게 기타 연주를 배우면서 그 음악을 만든 정현의 오빠, 여행에서 돌아온 하숙집 형 이반에 대해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레 친하게 지낸다. 방학을 맞아 우진은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수연은 휴식을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난다. 정현은 수연이 잊지 못하는 피리부는 남자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수연이 피리 소리를 들었던 파티 장소를 시작으로 그 남자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하며 소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자의 정체와 배후에 세계를 무력으로 변화시키려는 테러집단이 있었다. 수연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나는 수연을 찾으러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에선 놀랍고도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소설은 아주 섬세하고 차분하게 나의 일상의 변화를 그렸으나, 다소 지루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비밀스런 수연이 이야기를 잘 이끌고 있다. 수연이 들었던 피리소리는 아이들을 사라지게 한 피리소리와 같은지 그 진위를 확인하고 싶게 한다. 더불어 정현의 기타 연주도 그러하다. 또한 소설은 나와 맺어지는 관계의 확장으로 인한 내면의 성장과 ‘피리 소리’란 문을 통해 새로운 변화된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작가는 ‘피리 소리’를 몽환적인 상징으로 그 소리가 열어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 옷을 챙겨입고, 운동화 끈을 꽉 묶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아직은 멀리 있는 그들을 향해.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를 향해. p 319 주인공이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는 과연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세계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계가 아닐까.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2004년을 전후로 세계엔 폭탄 테러와 자연 재해가 있었던 해로, 작가는 주인공 나의 개인적인 시선과 경험을 통해 사회,더 나가 세계적인 폭력과 무력의 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만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비해,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만남과 관계에 있어 작위적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젊은 작가가 긴 호흡으로 다채로운 스토리를 엮어내고자 했음은 대단하다. 해서, 다음엔 더 탄탄한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