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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시인! 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으시단다. 나도 그렇게 불러드리고 싶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불리면 부끄럽다고 말씀하신다. 책 안에 들어있는 몇 편 시들을 보니 왜 부끄럽다고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얼핏 알 것도 같다. 저자의 시뿐만 아니라 농사짓던 이웃 아저씨의 시도 있고 9살짜리 꼬마친구의 시도 들어있다. 아, 이런게 진짜 시구나 싶어진다. 나도 시를 써보고 싶다. 시상이 문득 떠올랐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만 가라앉아 버렸다. 아쉽다.
저자가 글로만, 입으로만 떠들다가 진짜배기가 되어 황매산 자락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생생하게 전해주는 시골 농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그냥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을 아프게도 하고 뜨끔하게도 하고 푸근하게도 하고 웃음짓게도 하는 여러가지 상황과 제안과 가르침이 두루 다 들어있다.
동네의 제일 젊은이였던 저자의 집에 더 젊은 청년이 들어와서 지내다가 따로 살림을 나가고 또 아가씨가 들어와서 연결되어 새로운 삶을 꾸미는 이야기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잘 살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화려한 도시의 불빛 아래서 제 몸을 말려가며 버티지말고 더 너른 자연의 품속에서 일궈내는 삶의 기쁨에 투신하면 좋겠다. 머리를 길게 묶어 따내려 여자아이로 오해받는 9살 소년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상의 틀을 깨고 다르게 사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떤 게 참살이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않은가.
나도 이제 시골생활 4년차, 농사라고 흉내도 내보고있고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 자연에 대한 생각들이 하나 둘 갖춰지기 시작하는데 저자가 알려주는 삶의 방향이나 이웃들에 대한 태도는 따라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깨어있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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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누구나 자유를 동경하고 자연을 사모하고 있지만 사회적 존재라는 이유를 빌미로 자신을 포장하며 위안을 삼기에 충분한 존재이다. 그래서 현대적 삶은 편리라는 이유로 사회문명을 자신에게 구속하는 도구로 자연스레 삼는 것이다. 서정홍 선생님의 부끄럽지 않은 밥상은 독자에게 어떤 삶이 아름답고 자유롭고 화평한 것인지를 자각하게 한다. 농민운동을 했던 저자는 어느날 구호를 외침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고 생태적 삶을 선택한다. 그후 시골에 터를 잡고 집을 짓는 이야기가 책의 시작이 된다.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만나는 감동과 회의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공동체를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때론 암울하게 때로는 희망적으로 풀어간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이젠 노인들만 지키고 있는 농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많은 젊은 세대들이 농촌에 관심을 갖고 생명농업을 지키는 호소를 강하게 전하고 있다. 지금도 찾아오는 희망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생명을 지켜가는 소중한 사명을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함을 자각하게 한다. 농사를 짓는 분들의 밥상은 결코 부끄럽지 않다. 다만 아무런 생각 없이 받는 우리의 자세가 밥상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농촌을 폐허로 몰아가는 우리의 밥상이 이제 변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어렵게 농촌을 지켜가고 있는 많은 분들은 경제적 풍요를 바래서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밥상이라는 제목은 그들의 신성한 노동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거룩한 가치관을 느끼게 한다. 농부의 신성한 자세를 느끼게 한다. 쌀 한톨에 깃든 거룩한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농부의 고단함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살리는 농산물을 지켜가는 농촌에 우리의 감사가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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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순간부터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들면서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 같다. 먹는것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때는 피와 땀으로 일구신 농부 아저씨께 감사드린다고 기도도 하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순간 그때의 마음은 없어지고 그저 정당한 가치(돈)을 내고 사먹는 것이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게된 것 같다. 실제로 도시에서는 어디를 가도 음식이 넘친다. 돈 몇푼만 주면 산해진미라는 것들도 먹어볼 수 있고 한겨울에도 한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저자는 시인이면서 농사를 하고있는 농부이다. 그는 6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이 한권의 책에 담아냈다. 읽고있으면 소박하면서도 자연의 냄새가 나는 그런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생활을 반성해보게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따뜻한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와는 달리 시골은 동네의 수저까지 모두 알고있는 정이있다. 최근 남자의 자격 방송을 보다보니 귀농생활을 주제로 시골에 간 제작진을 윗집 할머니가 밥솥째 밥을 해서 가져다준 것을 본 적이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이웃이라는 이유 하나로 인심을 쓰는 모습! 그것이 바로 귀농생활일 것이다. 우리는 은퇴후 농사나 짓지뭐~ 라고 막연히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보람된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면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먹는 쌀 한톨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책이었다. 값이 조금 비싸도 우리쌀을 사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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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사꾼의 딸이다. 엄마는 아직도 농사를 짓고 계신다. 하지만 한번도 자라면 농부가 되어야지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나 뿐 아니라 어릴적 나와 했던 모든 이들이 농부가 꿈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 중학교 시절의 사회선생님은 너희들 이렇게 공부 못하면 니네 부모처럼 농사나 지어야 한다며 멸시의 기색이 역력한 표정과 말투로 우리와 우리 부모를 한꺼번에 무시하곤 했다. 그 선생님이 못견디게 싫었지만 보란듯이 커서 멋진 농부가 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안했다.
귀하디 귀한 아들이 귀농을 하겠다며 실행을 했을 때 엄마는 어찌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그러냐며 긴 한숨을 쉬셨고 2년을 못채운 채 다시 서울로 가는 아들을 보며 안도를 하셨다.
여전히 농부란 직업은 처자식 먹여 살리기 어려운 직업일 뿐이다.
전혀 다르게 농부를 생각하는 사람이 시인이자 농부인 '서정홍' 선생님이시다. 서정홍 선생님은 농부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생각하신다.
세상을 더럽히지 않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른 먹거리로 다른 이를 건강하게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다는 것이다.
하여 그는 자신의 아들이 농부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다.
농부인게 자랑스럽고 진정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굳게 믿으므로 자기 자식도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자기 자식이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농부시인과 닮은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그들 이야기를 읽는데 엄청 부끄러웠다. 나는 나이가 들면 농사를 지으러 갈 계획을 갖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마음으로 지어야지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친정 마을에서 칠순이 넘고, 팔순이 넘어도 여전히 농사일을 하시는 그 분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울엄마도 포함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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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면 또 모르는 대로 수치심을 잊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농부 시인 서정홍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냐고. 1992년, 우리 농촌에 대한 신문 기사를 접하기 전까지 시인 서정홍은 ‘내가 먹는 밥상이 어떻게 차려지는지’ 관심이 없었다. 우연히 접한 기사를 통해 우리 밥상이 온통 농약으로 버무려진 수입 농산물로 차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부끄러움은 이후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산골 마을에서 보낸 6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부끄럽지 않은 밥상》은 오랜시간 동안 농민 운동을 해 온 시인이며, 운동가였던 서정홍님이 산골 마을에 들어가 ‘농부 시인’으로 살았던 6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경남 합천군 황매산 자락에 집터를 마련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된다. 서정홍이 적은 돈으로 흙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지인과 이웃이 함께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이후 이 집에는 생태 귀농에 관심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 대안학교 학생들은 물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수많은 이들이 다녀간다. 자신을 농부라고 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농부 시인’ 서정홍은 “하늘과 땅이 하나이고, 자연과 사람이 하나이고, 삶과 죽음이 하나인데, 어느 하늘 아래 내 것이 있고 네 것이 있겠냐.”며 이 집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묵었다 가기를 권한다.
농부로 살아가는 하루하루,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 각기 다른 이유로 산골 마을을 찾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각박한 세상에서 소박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통해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더불어 흙을 만지며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으며, 고되고 힘든 농사일에도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서정홍의 모습이 그려진다.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서 귀농 후의 삶이 어떤지 알려준다.
그는 부끄럽지 않은 밥상 이외에도 <농부시인의 행복론>, <내가 가장 착해질 때>,<우리 집 밥상>(동시집), <58년 개띠>등 많은 책들을 출간하였다.
각 챕터마다 시작되는 부분에 마음을 애잔하게 하며 운율이 있는 느낌이 있는 시들이 참 인상적이다 그중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부끄러운 밥상 우리가 죽고나면 끝나는 거지 가난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 막걸리 한잔 드시지요 당신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어요 천하에 몹쓸 놈들 농부, 이시대의 성직 이놈들아, 너희들 살리자고 그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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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몇 번 접했던 터라 어떤 책일지는 어느정도 감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책은 항상 나의 정서를 긍정적으로 건드려주곤 했다. 항상 나를 숙연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어쩌면 이런 삶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살려고 결단하거나 실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음 따뜻하게 만들어주기에 제격인 책이었다. 시인이면서 농사꾼인 저자의 책, 제목은 부끄럽지 않은 밥상이지만, 밥상에 초점이 맞춰진 책은 아니고 소소한 시골 생활의 일상이 담겨진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책들 속에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마음에 남는 그런 글들이 많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마음에 울림, 여운이 길게 남는 그런 책이었다.
총 4장인데 1장은 자신에 대해, 2장은 이웃에 대해, 3장은 아픔과 죽은, 4장에서 이 땅에서 만나는 예수와 같은 이웃의 모습들을 다뤄주고 있다. 진짜 농사꾼의 모습이 베어져있는 인동할머니도 기억에 남고 가난에 대한 저자의 철학도 특이한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가난을 좋아하고, 부를 경멸하는 그런 편은 아니라서 가난에 대한 예찬이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유도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저자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내게 필요없는 것인데도 움켜지려 하는 우리네 모습을 깨우칠 수 있도록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과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이런 책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우리 정서를 순화시켜주는 데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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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 나는 길들이 어느새 새까만 아스팔트로 변했다. 돌담길이 어디에 있었던지, 내가 사는 지역엔 돌과 흙으로 만들어낸 돌담길도 없다. 그래서 돌담 사이에 풀한포기 자라는 것도 못봤다. 언젠가 시골에 갔을 때 기왓집이면서 대문없는 담벼락에 왠 풀한포기가 나 있는 걸 봤을때가 생각난다. 그땐 그 모습을 보면서 풀이 참 아무데나 잘 자란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젠 그런 광경이 희귀해져 버렸으니..... 도시 속에서 빙글빙글 돌듯이 살아가는 우리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중에서 고층건물로 가는 사람이 없듯이, 우리들은 시골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내 몸이 휴식이라는 명목으로 발걸음을 떼어내면 흙을, 푸른 산을 찾는다. 우리는 흙에서 났다. 흙이 주는 양분을 먹고 자라고 결국엔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살이. 100년도 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아 책으로 엮어도 63빌딩이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처럼 복잡하다면 최고로 복잡할텐데,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가다니..... 이 단순한 원리를 알면서도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도데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을까?
성공, 명예를 위해? 아니면 우리 가족의 건강? 결국 모든 것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행복을 이루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이지 돈을 위해 행복을 쫓는 방정식은 없다. 그러면 행복을 위한 조건들을 좀 달리 생각해 보면 어떨까??? 여기 농부시인 서정홍이 이야기하는 <부끄럽지 않은 밥상>속에서 소박하면서도 진실된 행복을 볼 수 있다. 행복이라는 것이 로또처럼 당첨되는 것이라면 매일매일 로또를 구매하면 된다. 아니면 행복이 지구 반대편 어느 박물관에 있는 것이라면 그곳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고 행복을 모르고 살았다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보면 웃는 일이 반드시 하나 이상은 있다. 결국 행복이라는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고, 쉽고, 간단하다는 것.
농부시인이 무슨 말이지? 의야했다. 농부면 농부고 시인이면 시인이지 농부 시인은 뭔지..... 시인도 농부와 도시인 따로 있나? 곧이어 나는 책을 바삐 읽어 나갔다. 시인 서정홍은 사람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란 걸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되었다고 한다.
자연이 없는 교육은 죽음의 교육이고, 자연을 떠난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이다.
그는 1996년 1월 ’생명공동체운동’에 첫발을 내딛고, ’우리말살리기운동’과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함께 하면서 ’경남생태귀농학교’를 만들었다. 2005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그의 아내와 함께 황매산 기슭 작은 산골 마을에 작은 흙집을 짓는다. 적은 돈으로 집을 짓는다는게 쉽지 않았겠지만 아니, 집을 가진다는게 사치스러울 수도 있겠다 고민했지만 집한채 갖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 흙집을 정성스럽게 지었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먹거리를 도와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많은 사람에게 도움받아 지은 흙집. 그는 집을 짓고보니 사람은 혼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존재라는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크고 작은 돌과 흙으로 담을 쌓은 그의 집을 보고 있자니, 소박한 삶이라지만 왠지모르게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란 소단락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농사지으며 ’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하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때부터 시를 쓴다는 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누가 시인이라고 불러주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십 년 남짓 세상이 어쩌니 양심이 어쩌니 하면서 시를 쓰며 살았는데, 세상은 날이 갈수록 메말라 가고 아이들은 한없이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틀거리며 살고 있으니까요. (P. 49)
농사지으며 눈도 귀도 없는 지렁이가 땅을 일구고, 물과 거름만 주었을 뿐인데 주인에게 커다란 결실을 주는 고추들. 심어 놓으면 저절로 쑥쑥 자라는 해바라기 같은 옥수수들은 어느새 영글어 알알이 노란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옥수수가 자기 옆의 고추밭의 고춧대들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모습을 바라보니 감동적이였나보다. 나도, 베란다에 채소를 키워보니 초보라도 너무 어설픈 내 손길에도 불구하고 주먹만한 피망을 선사하는 녀석들에게 감사했으며 감격했었다. 그래서 나는 농사가 제격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말하곤 한다. 농작물은 나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사람보다 더 존경스러운 것이 농작물일 수도 있다는 과한 생각도 해본다.
저자가 어느날, 강연회에 초청받았다. 여성들 앞에서 무엇이 소중하냐고 질문을 던지는 페이지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우리나라 모든 은행의 돈과 지금의 남편과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대답했고 많은 사람들 웃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웃지 못했다. 돈에 노예라는 말. 어질고 착한 남자보단 능력있는 남자. 돈이 더 좋다는 것이 안타까운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돈에 연연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해 봐도, 결국 마트에서 좀 더 싸면서 좋은 물건을 고르고 조금만 손해를 보는 일이 있어도 울컥 화가 오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착한 사람을 만나야 잘 산다는 어른의 충고에 선뜻 착하고 성실한 농촌 총각에게 시집 갈 수는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농촌이 사라지면 우리의 먹거리가 당장 어려울텐데.... 공급자가 없는데 수요자만 늘어난다. 저자의 <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읽으면 농촌의 어려운 삶이 다 보인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귀농에 대한 강의는 읽는 내내 감동적이니..... 귀농한 사람의 이야기가 가십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난다.
"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의사 천명이 나오는게 좋습니까? 농약 안 치고 농사짓는 농부 한명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판검사 천 명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죄 안 짓고 살아가는 착한 사람 한 명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까? " 농부 시인 서정홍이 사람들에게 한 질문이다. 어떤가? 당신들의 생각은? 머리로 하는 말과 가슴으로 하는 말이 다른 것을 느끼는가....... 의사와 판검사가 좋지만, 가슴으로는 정직한 농부와 착한 사람이 더 좋은 거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정의와 진리가 머리와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그날, 그런 사람이 많아질 수록 우리의 세상은 아름다워 질 것 같다. 서정홍이 말하는 올곧고 약간 고지식하지만 아름다운 그런 인생이야기 한번 들어봄이 어떨지..... 읽고 나면 자기력 강한 도시 굴레에서 튕겨나갈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되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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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에 사는 김장일 농부가 쓴시.... [미친놈처럼]
미친놈처럼 미친놈처럼 울고 싶은 밤이 있다 농사철도 끝나 서리도 내리고 사방 첫눈에 얼음 얼어 오면 미친놈처럼 갚아야 할 농자금에 차곡차곡 쌓인 공과금하며 그동안 밀린 교육비하며
미친놈처럼 벽에 기대 울고 싶은 밤이 있다 방문 걸어 잠그고 사대강 삽질에 수십조 원을 쏟아붓든 뭉턱뭉턱 부자들 세금 깎아 주든 세종시가 뒤집어지든 미디어법이 통과됐다 안 됐다 결코 넘겨다보지 말자고 벌건 대낮에 사람이 죽든지 말든지 더는 신문 잡지 뒤적거리지 말자고
미친놈처럼 미친놈처럼 내 몸부터 챙기고 내 가족만 우선 생각하자고 가슴 쥐어뜯으며 울고 싶은 밤이 있다
마음이 살아있는 그런 글이다. 모든 사람들이 완벽할수는 없지만 그나마 아주 귀한 마음을 지닌 사람의 글을 만나니 내 마음도 덕분에 귀해지는 그런 느낌이다. 농부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는 말에 그럼 왜 소중한 농부일을 하지 않느냐는 제자의 말에 농부가 되었다는 학교 선생님이야기.
농사꾼이 되어보고자 시인이 내려가서 농사꾼이 되는 이야기. 이 책은 그런 농사꾼이 된 시인의 글이다. 그의 삶속에는 따사로운 천국의 은은함이 베어있다. 천국이란 무엇일까? 가고 싶은 곳이 천국이 아닐까? 서정홍 시인이 사는 그곳이 바로 모두가 꿈꾸는 천국일 것이다.
아는 사람들 중 가끔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짓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힘든 일을 왜 하고 싶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갖고 의아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하는지 알겠다.
우리 어머님 이야기도 나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주 작고 연약한 몸으로 8남매의 먹을거리를 직접 대주시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머님. 자식들이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허리 아픈데 좋다는 식물을 키워서 보내주시고 또 어디가 아픈데 그에 맞는 것을 보내달라하시면 해서 기어서라도 해서 보내주시는 어머님.
그런 어머님이 아프다고 하면 그 소리에 그러니까 일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어머님이 추수때 이것저것 주시면 하나라도 빠칠세라 열심히 챙기는 우리 며느리들. 그런 나의 모습이 이 책속에는 부끄럽게 담겨있다. 그렇게 애쓰고 노고를 서슴치 않고 단행하는 사람들의 부끄럽지 않은 밥상이 너무나 감사하기만 하다. 그러게 항상 애쓰시는 어머님이 요즘 미국 큰딸네 집에 가 계신다. 형님이 어머님에게 놀러오라고 하셔서 어머님 가셨는데 시골에서 이리저리 부지런히 일하시던 어머님은 한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던 시골을 그리워하시고 계신다. 어서 누구든 와서 데리고 가기를 바라는 어머님 이야기를 서정홍시인이 어찌 알았을까? 싶은 살아있는 농민들의 소리. 그리고 갖지 못한 자들의 아픈 신음소리를 이 책을 통해 들을수 있다. 그들의 고통의 신음이 잦아들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그들이 빚어낸 고통의 결실이 곧 우리의 안락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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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자 시인인 서정홍 저자는 이 책에서 농촌에 대한 강한 그의 신념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나오고 있는 주제는 바로 농촌, 농업, 생명, 땅이다. 이 주제들은 저자에게 있어 하나와 같은 것으로 저자는 농촌이 희망이며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정직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다. 농촌이 쇠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농업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다수의 농가들은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수입농산물과 겨뤄야 하기 때문에 가격만 보면 경쟁력이 매우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이 희망이라는 저자의 말은 왠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내 생각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나 역시도 자본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포섭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우리나라 헌법은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있으며 사람들 대다수가 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나쁠 것이야 없다. 문제는 이를 넘어서 재산을 불리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집중을 하는데 최적인 제도이며 또한 이러한 행동을 부채질하고 정당화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부채질과 정당화가 인간이란 존재를 한없이 추락시킨다는데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과거의 봉건적 신분제는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속박은 해결되지 않았다.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라는 말로 대변되는 경제적 계급이 생겨난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주의가 이를 허용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일어난 백혈병 환자나 쌍용차의 경우만 봐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격차가 사실상 과거 봉건적 신분제와 별 다를 바 없음은 분명하다. 아니, 사람들이 그 격차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신과 비슷한 계급에 있는 사람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더 최악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의 최고 근본인 땅까지 사유화시킴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집 문제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땅이란 다른 물건과는 다르게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품목(?)이다. 필요하다고 더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독점이 쉽게 가능하고 가격 역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나라 인구 17%가 60%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을 팔면 미국도 살 수 있을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환경이다. 자본주의의 철학에서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은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념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현실과 들어맞는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 이념이 자연의 유한함을 간과하고 있다고 본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받아줄 만큼 강인하지 못했다. 인간의 지속적인 개발과 성장은 자연이 소화하기 힘들 정도였고 그 결과 지구 환경은 파괴되고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있다.(아메리카에서 셰일 가스 층이 터졌다고 하니 이야기가 좀 다를 수 있겠다.) 자본주의가 비록 공산주의를 이겼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난점들이 산재해 있는 이상 완전한 제도라고 볼 수 없으며 비인간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사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농부이자 시인인 서정홍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그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아는 사람이다. 도시에서부터 농업과 관련된 사회운동을 해온 그는 직접 농사지어 얻은 작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를 잘 역설한다. 그에게 있어 땅은 생명과 같은 것이고 그 땅을 경작하는 농부는 성직자다. 땅과 하늘은 거짓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농부는 정직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몸을 부단히 움직이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쁜 생각을 먹을 겨를도 없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미친 돈바람으로 인해 농촌이 붕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확실히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이는 국가적 위기로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관여해야할 문제다. 저자의 말만 따라 수입농산품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건강을 떠나서 식량주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불리하며 제대로 된 주권국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농촌이 가지는 존재의미와 그 필요성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결심이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겠지만 저자와 다르게 현대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다수고 나는 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인류가 이룩한 진보를 누리는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면 과거 수렵채취 생활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극단적 결론까지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60억이 넘는 인구가 농업에만 종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 책의 근본 목적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대안적 길을 제시하는 것이고 저자가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러한 나의 아쉬움은 투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저자의 생각에 동조한다 하더라도 과연 이를 행동으로 옮길 사람이 몇이나 될지 회의적이다. 그리고 농촌과 도시를 도식적으로 이분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력적이다. 자신의 여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편한 길을 버린 농부로서 느끼는 감정을 글로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저자의 모습은 너무 편한 길만 가고 있는 나에게 왠지 열등감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