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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오두막...심판 & 치유 VS 용서 윌리암 폴 영의 원작 소설 ‘오두막’을 영화로 만든 기독교 영화다. 종교적 색체가 짙긴 하지만 일반인이 보아도 무난한 내용이다. 우연히 찾아온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여정을 다룬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란 구절을 접하면서 예수님 역시 여호와를 원망한 걸로 보았으나 이 영화에선 달리 해석한다. “내 아들이 선택한 일이 우리에게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나요? 사랑은 언제나 커다란 흔적을 남기죠. 그때 우리는 함께 있었어요. 당시 예수가 무엇을 느꼈건 간에 난 절대로 그를 떠나지 않았어요”. 여호와의 이 한 마디로 오해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맥(샘 워싱턴)은 가족여행으로 캠핑을 떠났다. 그곳에서 애들이 탄 보트가 뒤집히는 사고를 수습하는 사이 막내딸 케이트 필립스(메건 카펜티어)가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가족은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딸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딸을 죽인 살인범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폐인이 되다시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을 치우던 중 발자국도 없이 우체통에 들어있는 편지를 발견한다. 이웃인 윌리(팀 맥그로우)로부터 차를 빌려 복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차, 편지의 발신지인 오두막으로 향한다. 오두막은 바로 살인범에 의해 죽은 케이트의 ‘피 묻은 원피스’가 발견된 곳이다. 오두막에 도착한 샘은 딸의 흔적만 있을 뿐 편지 주인은 찾을 수 없어 분노한다. 사방을 헤매다 맞닥뜨린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예수다. 의외의 인물과 조우한 맥, 편지 보낸 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에 의아해 하면서 오두막에 들어간다. 어느새 오두막은 엄동설한이 아닌 꽃피는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하나님은 샘이 알던 분이 아니다. 수염이 덥수룩하던 교회에 걸린 초상화와는 딴판이다. 하나님은 여기서도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깬다. ‘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다보니 남녀 구분이 실은 의미가 없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오두막은 단란한 하나님의 가족이 모여산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성자 예수님(아브라함 아비브 알루쉬), 성령 하나님 사라유(스미레)와 오두막 주인인 성부 여호와 하나님 파파(옥타비아 스펜서). 샘은 하나님께 살인범에 대해 심판할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오히려 용서를 하라신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샘은 분노와 증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난다. 지혜의 하나님을 만나 심판해 줄 것을 요청한다. 아니 본인이 직접 심판석에 앉는다. 그러나 불려온 영혼은 다름 아닌 샘의 자녀이다. 아들은 거짓말을 일삼아 부모를 속였고, 딸 역시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은 둘 중 하나는 지옥에 보내야 한다고 심판을 주문한다. 과연 샘은 심판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이 떠오르고, 딸을 잃은 슬픔은 욥이 생각난다. 영화 장면마다 성경적 색체가 다분하다. 예수의 물위를 걷는 모습은 베드로를 연상시키고, 치유 사역을 담당하는 사라유는 샘의 눈물을 모은다. 눈물은 회개의 영이다. 이를 통해 생명수가 자라는 광경은 장엄하게 다가온다. 하나님은 전통적인 신의 권위에서 탈피한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따뜻하고 순수한 사랑의 화신이다. 두려운 존재이기보단 다정한 이웃, 혹은 가족 같은 이미지다. 자연스럽게 심판, 무서움, 혹독함은 찾을 수 없고 단란한 가정의 여주인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로 보여진다. 연쇄살인범조차 ‘미워도 내 자녀’라는 하나님의 마음가짐은 여지껏 겪어보지 못한 전지전능하신 분의 모습이다. 커피마시는 하나님, 반죽하는 하나님, 그리고 산책하는 하나님, 정원을 가꾸는 하나님.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온유함이 느껴진다. 결국 샘은 복수 대신 용서를 택했고, 치유받아 다시 의식이 돌아온다. 막판 이야기는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하나님과 만난 걸로 정리되지만 온전히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이다. 아픈 상처를 치료하고 미운 자식도 살피시는 고뇌하는 하나님의 감동적인 여정도 함께 지켜볼 수 있다. 결국 선악의 판단은 하나님이 언급한 것처럼 내 기준에 맞춰진 것이어서 남의 기준으로 보았을 땐 달라질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 따라서 심판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권한이다. 심판 대신 인간은 용서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은 치유되고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이든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게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일일이 심판하기 보단 스스로 용서하길 기다리신다. 샘은 딸이 어린애라 잘못이 없는 선한 존재라고 강변하지만 자신은 이미 아이 때 패륜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고개를 떨군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입맛대로 선악을 구분해 심판해서는 안된다. 심판은 오로지 공의의 하나님만의 전유물이다. 소설로 만나도 반가운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