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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예수가 만들어지기 시작 했다. 예수에 관한 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성혈과 성배', '예수는 신화다', '다빈치 코드' 등을 중심으로 하여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예수를 왜곡하기 시작 했다. 급기야 학자들, 바트 어만의 경우 그의 책 '예수 왜곡의 역사'에서 예수에 대한 회의적인 시작을 견지한다. 일단의 신학자들은 신인인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여 연구하기 시작 했다. 신이자 인간인 예수가 아니라 신 혹은 인간 예수로 나누어 연구하여 예수를 훼손하기 시작 했다. 예수는 복음서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어떤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그를 그리도 갈가리 찢어 놓을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2000년 전 이 세상을 살다 간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배고픔과 피곤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었다. 동시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는 하나님이었다.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왜곡했고, 모략 했다. 신인 예수를 인간 예수 혹은 그리스도로 나누어 그를 욕보였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예수께서 그런 인간들의 행태를 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 누가 뭐라 해도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다. 이것은 불편의 진리이고,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따라서 예수를 말 할 때 어느 한 쪽으로만 말해서는 안 되고, 한 측면만 강조해서도 안 된다. 예수를 이야기 할 때는 신인 그대로를 이야기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분리된 예수는 진정한 예수가 아니라 그저 허구의 인물 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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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 우리 잘 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 그냥 “그럴꺼야.”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부분을 시원하게 꼬집어 주는 책이다.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사실 하나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큰 감동과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예수님의 인성이다. 예수님이야 말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 두 가지 중에서도 예수님의 인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히 인간인 우리로써는 신성과 인성이 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성만을 가지고 있어 신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정말 큰 착각 또는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것이다. 인성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떠한 것인지 대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신성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어떤 느낌인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성과 신성이 같이 존재하는 것을 착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신성이 강할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받으셨을 고난과 시험, 이 세상에서의 생활이 달랐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사실 그분의 삶이 특별하고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 누가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로써 신성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그런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이시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시다. 그렇지만 그분은 이 땅 가운데서는 정확히 인성을 가지신 인간의 모습을 가지신 분이셨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아픔과 슬픔 등 모든 감정을 느끼시는 분이셨으며 우리가 겪는 유혹과 시험을 받으셨던 분이시다. 그분에게 신성이 있다고 해도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그분은 우리와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냥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아니라 사복음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는 우리에게 그분이 어떤 고난을 겪으시고 어떤 시련과 고난을 겪으셨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다루는 이야기는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음서 안에서 그분이 겪으신 고난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겪는 굶주림, 피곤함, 정신적 고통, 십자가의 고통, 사람들로부터의 따돌림 등을 이야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셨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유혹에 관한 것들이다. 인간이 겪는 물욕, 권력욕 등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께 유혹한다. 이러한 시험 또한 우리와 똑같다. 우리도 역시 언제나 이러한 시험을 겪는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우리가 다른 것은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을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셔 우리와 같은 고난을 겪으셨고 우리와 같은 유혹을 받으셨다. 그러한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셨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모든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니까 그러실 수 있으시겠지!”, “예수님이니까 그것쯤이야!”라는 잘못된 생각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렇게 정말 인간으로 오시어서 우리의 모범이 되시었고 우리의 고난과 고통, 유혹을 몸소 체험하시고 모든 것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자니 눈물이 안 날수야 안 날수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다시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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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다. 그러나 이 교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해하기 힘든 이 교리로 인해 초대 교회 때부터 많은 오해와 이단들이 발생했다. 오늘날에는 적어도 교회 내에서는 이 교리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없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인이라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교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 예수님이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고백하지만, 우리의 이성이 한계로 인해, 예수를 신적인 측면을 더 크게 바라보던지 혹은 인간적인 측면을 더 크게 바라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소위 자유주의 신학 계통해서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더 크게 부각한다. 인간이 따라야할 모범으로서의 예수의 삶과 인격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 예수를 강조하게 된다. 반면에 복음주의 혹은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훨씬 더 강조하게 된다. 그 이유는 죄악으로 부패한 인간 실존의 위기에서 구원할 이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신 예수여야 하기 때문이다. 구원자 예수를 강조하다보니 당연히 신인 예수를 강조하게 된다.
복음주의가 강할수록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이 약화되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복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크엘륄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은 이러한 문제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오늘날 교회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가 가진 풍성한 의미를 놓쳐버리고 있다. 엘뢸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의 모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특별이 이 책은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 전 광야에서 받으신 3가지 시험을 통해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죄와 부패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예수가 받은 3가지 시험은 모든 인간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유혹을 대표하고 있다. 즉 예수가 받은 시험은 인류가 받은(혹은 받고 있고, 받게 될) 모든 시험을 대표해서 받는 것이며, 따라서 예수가 받은 이 시험은 바로 철저히 한 인간으로서 받은 시험이다. 엘륄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비록 예수가 인간으로 이 시험을 받았다할지라도, 예수가 과연 이러한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 탐구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신학과 엘륄간의 미묘한 딜레마와 긴장이 있다. 엘륄은 인격적인 사단(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예수의 3가지 시험은 인간 내부에 있는 유혹의 상징인데, 예수 안에 어떻게 이러한 유혹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이 시험이 사단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엘륄은 사단(인격적인)의 존재를 믿지 않고, 사단은 인간 내부의 악의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기에, 어떻게 예수의 인격안에 이런 악이 자리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몰론 엘륄은 성공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단은 반드시 인격적인 악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엘륄의 말대로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과 생각들을 지칭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격적인 사단의 존재 역시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두 사이에 균형 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창세기 3창의 뱀의 유혹과의 관련성을 볼 때, 예수를 시험한 자는 인격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시험한 것이 사단이 아니라 인간의 인격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혹은 악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예수의 시험을 고찰한 엘륄의 결론은 (인류의 대표로서 받은) 예수의 시험에 대한 보다 탁월하고 심오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예수의 인간되심”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져들기 쉬운 오늘날의 신앙 환경에서, 엘륄의 외침은 우리의 신앙을 깨워주는 경고의 나팔 소리라 할 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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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우리 성도들에게 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하는 식으로 우리의 신분을 흔들고,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어 보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우리의 약점과 연약함을 파고들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수치심과 좌절을 불러 일으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자끄 엘륄은 이 책에서 인간예수가 겪었을 참담함의 고통과 그의 영혼이 가닥가닥 아픔으로 치렀을 고뇌의 편린들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는 우리의 무딘 지각에 성경의 말씀을 보는 눈을 열어주어 예수에 관한 인식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음을 일깨워주며, 그의 영혼을 통하여 우리의 흐릿한 의식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예수님이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들과 그들의 내부에 도사린 악으로 부터 받았던 질문들은 여전히 오늘 우리에게도 날마다 던져지고 있어 뾰족한 화살촉처럼 우리를 쏘고 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방패를 가지지 아니하면 언제라도 촉에 묻은 독에 영혼을 빼앗길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난 받는 종’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가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으며, 우리의 슬픔을 맡으셨다”(사53:4). 즉,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은 예수님과 상관이 있다. 고통을 변화 시키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혼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하신다. 둘째는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형벌처럼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제는 믿음을 통해서 모든 정죄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경험하게 된다. 고난의 원인이 되는 정죄를 예수님이 대신해서 받으시므로 고난의 뿌리가 뽑힌 것이다.
예수님이 받은 가장 비참한 고난들은 굶주림이었다. 40일동안 사막에서 금식하시고 나서 배고픔을 겪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배고픔 속에서도 기적을 일으켜 허기를 채우는 것을 거절한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허기를 해결해주는 것은 거절하지 아니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겪는 배고픔에 대해 사람은 단지 “빵만으로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수님이 사막에서 받은 세 가지 시험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로 예수를 사막으로 인도한 영을 누가는 성령이라고 말한다. 사막은 ‘영들’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희생양을 보내는 장소이고, 훌륭한 시련의 장소이다. 예수님은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사막으로 가셨다. 사막에 가셔서 사십 일을 금식하시고 난 후에 시장하셔서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에 “사람은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살것이라”하면서 물리치셨다.
두 번째로 악마는 좀더 교활한, 다른 제안을 내놓는다. 악마는 그를 높은 데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주면서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분 만을 섬겨라”(눅4:5-8)고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껶었던 시험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우리들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깨어 마귀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평신도들이 읽기에는 좀 어려운, 평범한 책은 아니고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