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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 <대지>로 노벨 문학상 받은거 알아해. 그리고 읽었어해. 왕룽이 고생하여 일가를 이루고 그 아내와 아들들의 삶이 광활한 중국 땅을 보여줘해. 그런데 사실 우리 <토지>보다 나은거 없어 해. 당시의 시대상으로 보면 화제작이니 당연히 받을만했겠지만 지금의 눈으로보면 평범이상이지 그렇게 우수한 작품은 아니다해. 하지만 노벨상 이런거 받으면 읽어줘야해. 그게 책읽는이의 기본 예의야. 대지읽으면 눈물 흘리는 이도 있어. 그리고 그거 알어? 원제목은 'The Good Earth'야. 그런데 이 책은 또 뭐야. 자서전? 아니네! 중국 딸아이가 쓴 소설? 맞네. 소개를 보니 뭐~ 문혁 동안에 펄벅을 미국 제국주의자로 고발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네. 무시라... 펄벅의 팬이었구먼. 어쨌거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보다 인간의 삶에 무게를 둔 인권운동가로 기억하고 싶은 펄벅이야. 나 이 책 <펄벅을 좋아하나요?> 한번 읽어주고 싶어. (출판사에서 서평단 모집할 때 적은 글...)
그래서 읽었다. 작중의 주요무대는 중국 양쯔강 하류에 있는 전장(장쑤성 江蘇省에 있다. 鎭江 Zhenjiang)으로, 선교사인 펄벅의 아버지가 중국으로 건너와 자리잡은 지역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펄벅은 생후 3개월에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와 대학입학(미국 버지니아주 랜돌프-메이콘 여대)에 하기까지 이 곳에서 성장한다. 대학 졸업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국민군이 난징을 공격한 사건으로 중국을 떠날때까지, 전장은 그녀의 청춘에서 고향과 같은 의미가 된다.
이책은 펄벅을 중심으로 기술한다기 보다 그녀의 친구 '윌로우'의 인생에서 펄벅을 들여다보고 있다. 처음에는 시대, 장소, 인물 등 모든 것이 실제 사실만 기술한 일대기로 여겨졌다. 책을 다 읽었을 때에야 작중의 중심적 화자 '윌로우'가, 작가가 글을 구성하고 전개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임을 눈치챈다. 그만큼 책 속에서 느껴지는 모든 사건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중국의 근현대사의 굴곡진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가상의 인물 윌로우와 고향의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실존의 인물 펄벅의 무게감이 경중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잘 얽혀있다. (윌로우란 이름의 중국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영문판을 번역해서 그런 모양인데 중국에서는 윌로우라고 하지 않고 아마 양리우 楊柳 나 슈리우 垂柳 였을것이다. 또한 위드는 짜차오 杂草나 후안차오荒草였을것이다. 번역시 이점을 좀 더 현지식 발음으로 번역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윌로우(버드나무)라는 이름을 갖기 전까지 나는 위드(잡초)라고 불렸다. 우리 할머니, 나이나이는 위드라는 이름이 백번 낫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잡초처럼 저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라면 신도 더는 힘들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빠가 강력히 반대했다. "남자라는 족속들은 잡초가 아닌 꽃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어한다고요." 그렇게 팽팽한 언쟁 끝에 마침내 내 이름은 윌로우로 결정되었다. 윌로우는 '가지가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농기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질기고 강인하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항상 궁금했다.(10쪽) 거지같은 삶을 살던 어린 윌로우는 선교사의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훔치다가 펄벅에게 들키면서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출발에 나오는 윌로우의 가정사는 마음이 찹찹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들은 평생의 지기가 되고, 윌로우의 삶에 투영된 펄벅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중국을 향한 애정이 그려진다. 사실 펄벅 여사의 이력이야 노벨상 수상 이후 읽게되는 대지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그녀의 사상적 근저가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고 정립되어져 '대지'라는 거작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서 겪게되는 역정이 세계사적 역사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이 책의 무게를 더한다. 윌로우는 나중에 마우쩌둥의 참모로 일하게되는 딕린(<공산당선언>7쇄본 번역가이자 <상하이 아방가르드 매거진>의 편집자)과 결혼함으로써 중국 근대사의 격변하는 물결에 휩쓸려간다. 의화단 사건, 쑨원(孫文)의 신해혁명,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문화대혁명, 닉슨의 중국 방문 등 굵직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한때는 안락하게, 한때는 감옥에서 보내지만 결국은 고향 전장으로 딸과 함께 쓸쓸히 돌아온다. 펄벅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뒤 농학자와 결혼하여 중국에 대학교수로 정착하지만 정신지체인 딸의 탄생과 남편과의 순탄하지 않은 삶에 직면한다. 이후 시인 쉬즈모와의 사랑과 문학에의 길(소설 집필)이 그려지고 난징사건으로 중국의 모든 이와 이별을 하게 된다. 잠깐 소설에 대한 펄의 생각을 엿보자.
소설 집필은 영혼을 쫓고 포착해내려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소설가는 아름다운 꿈속으로 초대받은 사람이죠. 운이 좋은 사람은 꿈속에 한 번 살았던 사람이고, 최고로 운이 좋은 사람은 계속 꿈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죠.(234쪽)
이 책은 펄벅에 대한 삶과 문학,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선입감만 빼고 보면 윌로우의 삶과 인생에 촛점을 맞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띠지를 보면 "사랑과 미움, 이별과 기다림을 씨실과 날실로 짜낸, 두여인의 눈부신 태피스트리"라고 되어있다. 이 카피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격동기를 관통하는 역사의 흐름에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중국인의 고단한 삶을 씨줄로 하고, 그 시기 중국 민초들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펄벅에 대한 오마쥬(hommage)를 날줄로 짠 얼개로 파악하고 싶다.
사실 이 소설은 높낮이가 별로 없는 구성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통생활에 대한 세밀한 묘사(예를 들어, 솥에 달걀을 넣고 불을 지펴 온도를 맞춰 부화하는 방법이나 두부연회 등의 전통문화생활, '절뚝거리는 당나귀가 무너지는 다리를 건너는 꼴'등의 정감있는 속어) 등 긴 호흡을 갖고 끝까지 읽게하는 필력은 인정할 만 하다. 특히 5부 '사랑하는 펄에게' 편은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과 펄벅의 중국에 대한 애정이 잘 살아나 감동의 여운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펄벅의 무덤 비석과 주변이 진짜로 그러한 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삶에 대한 느낌이 찐하게 울려온다. 그녀의 온실엔 동백나무가 가득했다는 대목(404쪽)에 잠깐 숨을 고른다. 동백!. 중국 남부 지방에도 동백꽃이 많이 피고 거실에 관상용으로 동백꽃으로 장식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이다. 내 또한 동백을 엄청 좋아하여 화분에 많은 종류의 동백을 키우고 있다. 괜히 공감의 울림을 잠시 가져본다. 책은 이렇게 팩션(Faction)의 형식으로 펄벅의 '개인적이면서도 은밀한 삶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함으로써 확실히 '평전이나 전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간간히 나오는 중국시 또한 이 책의 맛있는 양념이다. 그 중에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펄벅이 즐겨 암송했다는 당시(唐詩, 포자만의 노래, 415쪽)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움에 애절함이 절절한 이 시를 소개하면서 책을 덮는다.
나는 양쯔강의 수원 근처에 살죠 당신은 수원에서 가장 먼곳에 살아 당신과 나는 같은 물줄기를 타고 흘러온 물을 마셔요 내 꿈에서 당신의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언제쯤 이 강물이 멈출까요?
언제쯤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될까요,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 두 심장이 하나로 뛰기를 바라요. 그럼 당신을 향한 내 사랑에 실망하지 않을 텐데 출판사에게 : <교정확인 바랍니다.>
168쪽 토마토와 양배추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 양배추가 달려?
201쪽 혁명의 전신으로 만들어진 ==> 정신으로 가 아닐까요? 217쪽 초조해진고 말했다 ==> 초조해진다고 말했다 302쪽 피킹을 사수하던 ==> 피킹? 번역을 하다 말았다. picking? 자금성 사수하던 뜻? 415쪽 당 왕조 시 ==> 송왕조 시
추언 : 위 마지막 시가 많이 익은 시인데도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수원(水源)이란 단어에 너무 신경을 쓴 탓이다. 이시는 당나라의 시가 아니라 송나라(北宋) 이지의(李之儀,1035-1117)의 사(詞)이다. 원어는 다음과 같고 해석은 하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아주장강두'라고 인터넷 서핑하면 다양한 해석을 볼 수 있다) 등려군의 유명한 노래 思君(사군, 님 그리움)이 이 시이다. 듣고 싶은 분을 위해 링크(http://www.youtube.com/watch?v=Cp-WBOxDsns) 해본다.
卜算子 / 李之仪- 我住长江头
我住長江頭(아주장강두, 워쭈창짱터우), 君住長江尾(군주장강미, 쮠쭈창쨩워이) 日日思君不見君(일일사군부견군, 르르쓰쮠부쩬쮠), 共飮長江水(공음장강수, 꿍인창쨩수이) 此水機時休(차수기시휴, 츠수이찌쓰쓔우), 此恨何時已(차한하시이, 츠헌허스이) 只愿君心似我心(지원군심사아심, 즈위엔쮠씬쓰워씬), 定不負相思意(정불부상사의, 띵부푸썅쓰이)
* 복산자(卜算子): 송나라때 유행하였던 가곡의 한 종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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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을 좋아하나요?(안치 민 저/밀리언하우스/2011년 1월)>을 받아들고서 “펄 벅”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自問)해보았다. 그녀의 대표작품인 <대지(大地)>는 청소년 권장 소설로 읽어봤었고, EBS에서 오래전 흑백영화 <대지(1939)>- 수많은 메뚜기 떼가 하늘을 뒤덮는 장면과 책에서도 펄 벅이 잠깐 언급하는데 중국인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서양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해 상당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를 본 정도가 내가 펄 벅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녀가 노벨문학상 탔다는 것도, 실제 중국에서 살았었다는 것도 이 책 첫 부문의 프로필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보니 질문이기도 한 제목에 대한 나의 첫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글쎄”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호한 대답과 함께 펄 벅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중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윌로우는 그 당시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난한 집의 외동딸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날 윌로우는 마을 교회 선교사의 딸인 푸른 눈의 이방인 펄 벅을 알게 되면서 그녀와의 평생에 걸친 우정이 시작된다. 1940년대 중반 “국공내전(國共內戰)”이 시작되면서 펄 벅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공산당원의 아내였던 윌로우는 중국 독립과 “모택동” 공산당의 집권, 문화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온갖 풍상(風霜)들을 온 몸으로 겪어내며 멀리 있는 친구 펄 벅을 그리워한다.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때 다시 중국으로 돌아 오기로 했던 펄 벅은 중국 정부의 거부로 결국 방문이 취소되고, 그녀를 기다리던 오랜 친우 윌로우는 펄 벅이 살았던 마을을 찾아온 닉슨 대통령에게 안부를 전하게 된다. 결국 펄 벅은 자신이 자랐던 마음의 고향인 중국으로 되돌아 오지 못하고 1973년 눈을 감고,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폭압의 정치가 막을 내리게 된 중국 당국은 윌로우에게 미국 방문을 허락하게 되고, 윌로우는 팔 십 노구를 이끌고 드디어 펄 벅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난다. 펄 벅이 잠들어 있는 무덤에 선 윌로우는 자신이 살던 마을에 있는 펄 벅 어머니의 무덤가 흙을 뿌려주고 수십년 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펄 벅 무덤 주변 흙과 화초 씨앗을 담는다.
이 책은 펄 벅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傳記)소설이겠지만 주로 전기소설이 위인(偉人)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업적과 삶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역사 소설”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펄 벅이라는 실존 인물에 펄 벅과 우정을 나눈 인물로 설정된 가공의 인물 “윌로우”를 끼워 넣은, 즉 실제와 가상이 교차되는 “팩션(Faction)"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기존 전기 소설이 작가가 자서전이나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위인의 삶을 전지적(全知的) 작가 시점으로 서술 - 주인공의 생각을 작은 따옴표 형식으로 직접 서술한다 - 한다면, 이 책은 윌로우의 시선으로 펄 벅의 삶을 그려내는 관찰자(觀察者)적 시점 서술 - 윌로우가 펄 벅과 직접 나눈 대화나 주고 받은 편지, 곁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 형식을 띤다. 물론 저자 후기에서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자서전이나 주변 인물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해낸, 실제 펄 벅의 삶에 근거한 구성이겠지만 몇 몇 사건 들 - 펄 벅 아버지의 사망 시기나 펄 벅이 중국을 떠나게 만든 사건 등 - 소설적 전개를 위해 그 시간대를 바꿔놓기도 한다. 또한 문화 혁명 기간 모택동 부인의 펄 벅을 “미국 제국주의자”로 고발하라는 지시로 악의적인 글을 썼었던 경험이 있던 작가는 주인공 윌로우가 자신과 똑같은 지시를 받고서도 친구인 펄 벅을 배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온 몸으로 거부하고 온갖 고초를 겪는 일종의 “자기반성”의 설정을 삽입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윌로우가 함께 보낸 시간들 외의 펄 벅의 삶, 즉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이나 중국을 완전히 떠난 후 미국에서의 삶 등은 단편적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펄 벅 보다는 윌로우의 이야기가 더 다채롭고 흥미로웠는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펄 벅과 그의 가족들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조금씩 자기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팔려가다 시피 한 첫 결혼의 실패 후 상해로 떠나 인텔리 여성으로 극적인 신분 변화를 가져왔지만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중국 독립과 공산당 집권, 문화 대혁명 등 대 격변의 시대에서 모택동의 최측근으로 촉망받던 간부의 아내에서 펄 벅을 비난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탓에 오랜 수감생활을 거쳐 “반동”으로 낙인찍히고 남편 또한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는, 윌로우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일으킨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윌로우”가 아닐까? 물론 윌로우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든 인물로서 펄 벅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펄 벅을 다른 인물로 대체한다 해도 크게 어색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책에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명(人名)에 대한 영어식 표기를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이 “윌로우(버드나무)”라는 이름을 갖기 전에는 “위드(잡초)”로 불렸다던가, 기독교식으로 이름 짓다 보니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린 이웃 아이들의 이름, 펄 벅 가족을 생사의 위험까지 내몰기도 했고 훗날 참회하여 윌로우 아버지 뒤를 이어 선교사에까지 오르는 자주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시골뜨기 황제” 등 이러한 영어식 이름 표기가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 특히 책 후반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닉슨 대통령이 펄 벅이 자란 마을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윌로우가 대자보처럼 걸어놓은 시(詩) - 가로, 세로, 상하 등 읽는 방식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시구 - 만큼은 한자(漢字)가 병기되었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작가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영어권에서 출간하다 보니 서양인들에게는 낯선 한자를 모두 영어식으로 표현해서 그렇게 번역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앞에서 영화 “대지”에서 중국인 역할을 서양인이 한 것처럼 영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혹 이 책의 중국어판(中國語版)이 있었다면 영어판과 비교해보면서 번역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통해서 펄 벅과 윌로우, 두 주인공이 만나게 된 유년기에서 함께 살았던 성인의 세계, 그리고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보냈던 안타까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해가는 긴 여정을 그린 “성장소설”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끝으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난 과연 펄 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내가 중국인이었다면 이 책으로 펄 벅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대답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글쎄”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다. 다만 그녀의 중국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대답이 될 것 이다. 그러면서 중국을 사랑했던 펄 벅과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는 누가 있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우선 우리나라를 ‘새 고향’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하여 수차례 방문을 했고, <한국 찬가>라는 작품마저 썼던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가 우선 떠오르고, 본국인 프랑스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인기 있다는, 그래서 신간 나올 때 마다 꼬박꼬박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최근작에서는 아예 주인공으로 한국인을 등장시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 게오르규에 비해서는 좀 더 상업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 정도가 떠오른다. 물론 펄 벅의 중국 사랑과는 그 정도가 다를 수 도 있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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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난한 소작농의 분투적인 삶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대지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펄벅은 그녀의 작품에 비해 그녀의 생애를 상세히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들이 그녀의 작품 속에서 문득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동양적인 이미지와 정서를 쉽게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문학적인 삶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문학을 통해서 그녀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조금은 엿볼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펄벅재단과 같은 인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사회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며 일생을 마무리한 그녀의 거룩한 발자취를 한층 가까이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이 책은 비록 픽션의 형태로 저자의 의도적인 각색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순수하고 정열적인 삶을 살았던 펄벅의 생애가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한 사람의 전기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치밀한 구성과 생생한 묘사에서 펄벅의 다각적인 면모를 둘러 볼 수 있을듯하며, 더불어 그녀가 살았던 그 당시 격동의 시기에 처해있던 중국의 정치, 사회적인 모습을 상세하게 살펴봄으로서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내용은 나와 펄벅이라는 두 사람 간의 우정의 이야기가 근간이 되지만,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두 여인 겪게 되는 각자의 고통스런 삶의 과정이 유감없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또한 펄벅의 경우 정신지체를 앓는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고달픈 현실적인 상황이 결국 그녀로 하여금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것과, 당시 중국 민중의 고달픈 삶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이 책의 사실적 내용을 담보하기 위해 당시 펄벅과 함께 했던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가급적 여과 없이 담아내는데 노력 했으며, 무엇보다 중국인의 시각에서 그녀의 삶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펄벅 그녀는 중국의 소박한 민중들의 삶을 사랑 했고 그곳에서 힘을 얻었으며 겉과 속이 달랐던 중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의 문학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듯하다. 그녀는 문학으로 부와 명예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았지만, 다시는 중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으며 남은여생은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힘을 쏟은듯하다. 이 작품은 펄벅이라는 한 여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한층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을 읽었던 독자라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일독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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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은 중국 소작농들을 모욕했고 이는 결국 중국을 모욕한 것이다.' '펄 벅은 중국인을 혐오하므로 우리의 적이다.' 라는 문구로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 라고 비판하던 그녀의 삶을 다시 들여다 본다는 작가 자신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작가로서의 삶이 아닌 '인간 펄 벅' 의 삶을 좀더 리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었지 않나싶다. 내가 펄 벅의 <대지>를 읽은 것은 중학교때였다.도서관에 박혀 이해도 잘 하지 못하며 굵디 굵은 책을 손에 들고 소설속에 빠져 들며 읽었던 기억이 나고 그 굵은 무게감과 고전은 다이제스트가 아닌 원서 번역본으로 읽는 맛이 재밌다는 것을 알고는 여고시절 다시 한 번 읽었지만 지금 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왕릉일가의 처절하게 가난했던 삶이 얼핏 생각나기는 하지만 세세하게는 기억을 못하기도 하고 펄 벅에 대하여도 그리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에도 두어번 오고 펄 벅 재단이 설립됐다는 이야기도 들은듯 한데 그녀의 자세한 삶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기에 소설에 좀더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원래 등잔밑이 어둡다고 <대지>를 읽어보지 않고 조국의 명령에 의해 그녀가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 라고 세뇌를 받았던 그녀가 펄 벅 노벨문학상 작가의 삶을 어떻게 그려낼까 했는데 역사와 나름 잘 얽히게 하여 재밌게 풀어냈다. 펄을 좀더 가깝게 들여다보기 위하여 작가는 '윌로우' 라는 한 여자를 창조해 낸다.펄의 삶도 파란만장 하지만 윌로우 삶 또한 펄과 그리고 역사와 함게 얽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조국인 미국에서 산 시간보다 제2의 조국인 중국에서 산 시간이 더 많은 파란눈의 이방인 펄,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위로 아들이었지만 중국인들이 걸리는 병에 걸렸는지 모두 죽고 그녀와 밑으로 여동생만 살아 남는다. 그녀는 먼저 아들들과는 다르게 씩씩하게 자라난다.검은 모자속에 노란 머리를 감추고 언덕을 뛰어 다니고 윌로우와 함께 하며 검은 머리의 중국인이 되는 것이 가장 소원이었던 그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선교사인 아버지의 가정에 무심함 때문에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엄마와는 다르게 펄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좋았다. 그녀가 밟고 있는 땅이 좋고 사람이 좋고 문화가 좋고 그녀는 겉모습은 이방인이었지만 그 내면 깊숙한 뿌리는 온통 중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는 그녀를,아니 외국인을 가만두지 않았다. 유교와 불교가 강한 나라에서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다는 것도 무리였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도 무리가 있었다. 역사의 흔들림은 너무도 강했고 외모와는 다르게 속이 모두 중국인으로 변해버려 중국에서 살고 싶어했던 펄을 급기야 제2의 조국은 쫒아내듯 한다. 하지만 늘 변함없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소장농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살아가려 했던 아버지,그런 아버지와 가족의 마찰은 말없이 시작된듯 하다.펄의 옆에서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처럼 윌로우는 그녀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그녀가 더욱 중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윌로우 아버지 또한 펄의 아버지 압살롬와 함께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도와주다가 그 또한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펄의 가족과 함께 윌로우의 가족 또한 역사와 함께 번성해 나간다. 하지만 펄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첫번째 결혼한 로싱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낳은 딸 또한 정상아가 아니었다. 딸 캐롤의 치료비를 위해서는 남편이 꼭 필요했지만 그와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깨진 상태와 마찬가지인 불행한 삶이었다. 그런 삶의 돌파구를 찾듯 글쓰기를 시작하는 그녀, 하지만 남편은 극구 반대를 한다. 자신과 딸을 돌볼 시간을 글쓰기에 빼앗긴다며 반대를 한다.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비상구를 찾듯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길을 더욱 넓혀 나가고 남편과는 급기야 헤어지게 된다. 그녀의 글값으로도 딸을 치료할 수 있을만큼 그녀의 글은 대단한 힘을 지녔던 것이다. '소설 집필은 영혼을 쫒고 포락해내려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소설가는 아름다운 꿈속으로 초대받은 사람이죠. 운이 좋은 사람은 꿈속에 한 번 살았던 사람이고, 최고로 운이 좋은 사람은 계속 꿈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죠.' 라는 말처럼 그녀의 인생 또한 꿈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이 소설 그 자체는 아니었던가싶다. 한번의 결혼 실패와 자신과 뜻이 잘 맞는 남자인 시인을 만났지만 그 또한 아직 이혼이 성립되지 않아 그녀 곁에서 서성이다 이혼을 하려고 가던 길에 비행기추락사를 당하게 되고 그녀는 큰 아픔을 겪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처럼 여겼던 중국에서 떠나 미국으로 쫒겨가듯 해야 했던 시간, 영영 중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인지도 모르고 향했던 미국에서의 그녀의 성공은 중국공산당에서는 그녀를 꼭두각시처럼 이용하고 싶어했지만 뼛속길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녀를 속인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 그녀의 비웃음 거리로 치부되었던 당은 그녀를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라고 비판하기에 이르고 그녀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을 수도 어머니인 캐리의 무덤을 한번 더 볼 수도 없었지만 친구인 윌로우를 만난다는 것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윌로우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산당의 앞잡이가 되듯 한 남편 딕을 따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그녀에겐 기독교가 뿌리 깊게 내래고 있어 그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 값을 톡톡히 치뤄야만 했다. 펄과 비밀리에 편지왕래를 하던 것 마져 그녀에겐 죄가 되어 감옥생활을 해야만 하는 세상, 이젠 세상이 변해 버린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정을 나누며 이방인이지만 중국에 깊게 뿌리를 내린 펄 곁에서 그녀 또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지만 윌로우 그녀의 눈을 통해 펄의 노벨문학상 작가로서가 아닌 그저 한 인간이고 여자의 삶을 보여주지 않았나생각된다. 펄이 어떻게 하여 <대지>라는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었는지, 어떻게 중국 소작농들의 그 깊은 내면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었는지 너무도 세세하게 알게 해주는 작품으로 좀더 인간 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녀가 작가의 길을 걷게 어쩌면 역사가 내몰지 않았나하면서 그녀의 묘비를 보고는 또 한번 감동, 영어 이름이 아닌 중국이름으로 쓰인 그녀의 묘,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중국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묘에 엄마인 캐리의 묘의 흙을 뿌려줌으로 하여 어쩌면 정부가 못한 일을 윌로우 자신이 그녀의 마지막을 다독이고 있다. 펄의 아버지인 압살롬이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했다면 위대한 작품인 <대지>가 탄생하고 그녀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역사가 만들고 그녀의 인생이 당연하듯 작가의 길을 걷게 하였지만 그녀 또한 그런 작품을 쓰지 않으면 중국에서의 삶에 빚을 지는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키워주고 그녀를 성장하게 한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 <대지>라면 이 작품은 작가의 그녀를 비난한 댓가로 그녀의 인생을, 그녀의 삶을 다시 부활시키는 오마주와 같은 작품이다. 철저히 왜곡되었던 그녀의 삶이 이 작품으로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해도 펄 벅이라는 여인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볼 수 있음이 좋았던 작품이다. 이방인으로 왕따를 당하며 살 수도 있었던 삶인데 모든 것을 자기화시켜 그 속에 융화되고자하고 그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던 펄, 그랬기에 왕릉일가도 탄생되고 했겠지만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니 안쓰럽기도 하다. 모성을 느껴보고 싶었겠지만 자신의 맘과 다른 캐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싸 안으려 한 엄마 펄은 어쩌면 신앙을 위해 가족을 무관심속에 버려두고 목회활동에만 전념한 아버지에게서 냉대를 받았던 그녀 자신이기에 더욱 캐롤을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더욱 사랑을 주고 싶었했고. 그런 맘을 들여다 보면 더욱 가슴이 저미지만 그런 일들을 바탕으로 입양까지 하여 다른 인생까지 거둔것을 보면 그녀 또한 여자이고 엄마였다.중국역사와 함께 두 여자의 끈끈한 우정과 중국에 기독교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지도 보여주고 중국문학까지 잠깐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작가 펄 보다 한 여성 펄에 대하여 좀더 삶의 깊이를 파헤쳐 들어간 작품이지 않았나싶다. 이 기회에 펄 벅의 <대지>를 읽어봐야겠다.너무 오래되어서 잊혀져간 왕릉일가에 대하여 이참에 펄 벅의 삶과 비교하며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며 역사가 펄 벅이라는 대단한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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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작가 펄벅을 그리워하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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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작가 안 치민은 <붉은 진달래>라는 작품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중국작가이다. 작가는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였던 1971년, 펄 벅을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금서 취급을 당했기에 <대지>를 읽을 기회도 없었던 저자는 당국의 지시에 따라 신문 문구를 그대로 인용, “펄 벅은 중국 소작농들을 모욕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시강이 흘러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대지를 읽고 커다란 감명을 받게되었다. 자신을 교육시킨 중국이 얼마만큼이나 펄벅을 혐오하도록 만들었나를 느끼며 후회를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작가의 후회로 인해 쓰여진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 중국 남부 지역을 배경으로 기독교 선교사 부부의 딸인 펄 벅과 가난에 찌든 중국인 소녀 윌로우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작가는 펄 벅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비밀스러운 삶을 조심스레 전해주기 위해 작가가 펄 벅의 오랜 중국인 친구들을 수소문해 하나의 소녀로 재창조해낸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펄벅은 <대지>의 작가며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우리나라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펄벅은 수많은 변화와 혼란 가운데 있던 중국과 중국인들의 다양한 삶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했다. 빈농에서 시작해 대지주가 되는 중국인 왕룽의 이야기를 담은 『대지』라는 소설로 쓴것은 자신의 생애 한부분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펄벅은 유아시절 영어보다 중국어를 먼저 말했을 정도로 서양인으로서 누구보다 중국을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거기서 중국농민의 땀과 노동, 가사, 출산 등의 삶의 방식을 직접체험 하였고 그 경험은 『대지』속에 녹아 들어갈 수 있었다.
땅을 벗삼아, 땅에서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을 대지만큼 뼈저리게 잘 그려낸 작품은 없는 것 같다. 시대가 변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서양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차이가 난다는 점은 두 문명 사이의 두드러진 대조점 가운데 하나이다. 서양과 달리 동양(중국)에서의 인간과 자연은 순응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관계였다. 중국인은 끊임없는 홍수, 가뭄, 한파, 지진 등의 자연재해에 시달려 왔다. 그 속에서 중국인들은 대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삶을 순응하였다. 펄벅은 『대지』를 통해 이러한 동양적 가치관을 서양에 전달하는데 성공하였다. 중국인에게는 대지가 순환하듯이 인간의 삶도 순환하는 것이었다. 왕룽, 왕후 그리고 왕옌의 조그만 토벽집은 바로 흙, 즉 인간이 언젠가 돌아가야 할 대지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소설은 그가 감명을 받고 존경하게죈 펄벅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중국이라는 나라의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가난 때문에 돈에 팔려간 결혼생활, 남편의 학대로 집에서 탈출해 기독교학교에 다니며 중국 개혁에 힘쓰는 활동가로 변해가는 윌로우의 삶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복원해 냈다는 부분에서 다시 한번 펄벅의 작품을 만난듯한 느낌이 들었던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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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대지,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그녀의 이름과 작품명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거라 생각한다. 미국 여 작가로써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같은 작품으로 퓰리처 상까지 수상하였다. 이 책은 그녀가 살았던 중국의 삶, 그 중에서도 빈농이었던 주인공이 부농이 되기까지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무척 유명한 작품이었음에도 제목과 줄거리만 훑고 지나쳤던 기억이 남고, 읽었던 기억이 나지 않아 사실 부끄러웠다. 그러다 최근 몇달전에 읽게된 펄벅의 다른 작품, 여인의 저택. 여자 나이 마흔을 다룬 여인의 저택이라는 책 역시 중국 여인의 자존감을 그려내는 펄벅의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미국 여인이 어떻게 중국의 삶에 대해 이토록 해박한 지식을 갖고 세세히 그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 남았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의 친구 중 하나는 펄 벅이 왜 중국 사람인데 이름이 외국 이름 같을까? 라는 우문까지 던져 주었다. 중국 여인으로 오해받을 만큼 그녀의 작품은 철저히 중국의 삶, 그 자체였다.
나는 펄에게 미국이 그립냐고 물었다. 펄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그리울 수가 있겠어?" 61p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해 알기가어려운 법일까. 아니면 정말 등잔밑이 어두운 법이라 그녀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나또한 그녀가 몹시 궁금해졌다. 그저 선교사의 딸로 중국에서 살았기에 그들의 삶을 잘 알았다라고만 짧게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삶이 궁금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큼 놀라운 사연을 가진 소녀 윌로우와 만나게 되었다.
펄 벅과 평생을 교류한 진정한 벗 윌로우. 엄청나게 가난하여 상상하기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녀의 아버지, 할머니 모두 펄벅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녀의 삶에 가까워진다. 윌로우 역시 펄벅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자라면서도 그녀의 부모의 도움도 얻고, 펄벅의 도움도 많이 얻어 공부도 할 수 있었고, 펄 벅과 함께 우정을 쌓아가며 진정한 사랑 앞에서 고뇌하기도 한다.
이 놀라운 중국 소녀, 윌로우. 그녀는 사실 작가 안치민이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었다. 펄 벅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비밀스러운 삶을 조심스레 전해주기 위해 작가가 펄 벅의 오랜 중국인 친구들을 수소문해 하나의 소녀로 재창조해낸것. 엄청난 대격변기의 중국의 근대사의 이야기까지 윌로우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고, 펄 역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고, 삶의 위기에서 구해졌는지를 상세히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펄은 내게 소설을 쓰는게 구원의 손길과 같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딸에 대한 고뇌를 떨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딸의 병은 고칠 수 없어도 소설 속 인물들은 마음대로 고칠 수 있었으니까. 166p
정말 아무 것도 몰랐던 펄 벅의 삶. 그녀의 결혼 생활부터 로맨스와 재혼등의 여러 이야기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녀가 힘겨워하고 가슴아파했던 하나뿐인 피붙이 캐롤의 이야기까지.. 딱 하나밖에 갖지 못한 자녀가 선천성 대사질환으로 심각한 지체장애를 앓아 자살까지 고민할 정도로 그녀를 힘들게 하였다.
사실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 역시 독특하였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펄벅을 미국 제국 주의자로 비난하라는 지시를 받은 어린 10대 소녀였던 저자는 조국의 부름과 가르침에 세뇌 받아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녀의 책 대지는 읽어보지도 못한채 맹렬히 비난을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미국에 건너가 서점에서 우연히 선물받은 대지를 읽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 반성의 일환으로 이 책을 결심했던 것이다.
진심으로 중국의 소작농을 바라보고, 진정으로 중국을 사랑한, 외모만 미국인이었던 진정한 중국인인 펄벅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그녀는 펄벅의 최고의 친구 윌로우가 되어 소설 속에서 용서를 구했던 것이다.
실제로 많은 펄 벅의 중국 친구들이 어쩌면 그런 고통을 겪었을 지 모른다. 그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마오쩌뚱 아내의 미움을 산, 펄 벅에 대한 화살이 그들을 향해 빗발쳤을지도 모른다. 소녀가 모르고 지나쳤던 중국의 현실, 그리고 펄 벅의 모습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중국에 대한 펄의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중국에 내렸던 뿌리는 죽어야 해!" 라고 울부짖었을 때, 펄이 얼마나 화나고 외로웠을 지 상상해보았다. 396p
펄벅을 좋아하나요?
이 책을 읽으면 펄 벅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의 책이었다. 읽는 내내 놀라웠고, 그녀가 얼마나 중국을 사랑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고, 힘들었던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 (우리나라 역시 순탄치 못한 삶이었음에도 ) 국민들이 느꼈을 고통을 조금은 짐작케 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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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이 물었다. 펄벅을 좋아하냐고?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펄 벅이 누군이지도 모른 그 어린시절(내 기억에는 꽤 오래되었다.)에 대지를 읽었었다. 물론 그 당시에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책을 책꽂이에 고이고이 모셔두었고, 그이후로도 한 3번은 더 읽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쓸수 있을까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왕룽이라는 한 농부의 삶과 함께 그 광대한 중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그렇게나 자세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을 여태 보지 못했다. 그런 만큼 펄 벅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다시한번 대지를 찾아 읽어야겠다. 이 작품은 중국인보다 더 중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중국인이라 칭해지는 펄 벅의 삶을 더 진솔하게, 내면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게끔 윌로우라는 캐릭터를 창조했고, 펄벅과 윌로우가 절대적인 우정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여성의 이야기속에 묻어나는 꿈과 우정! 난 이 책을 읽을무렵에야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펄벅긱념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기필코 봄이 오기전에 꼭 한번 방문해서 살펴보리라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아빠에게 집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곳이야. 그곳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디든 전혀 개의치 않으셔. 그렇지만 엄마는 상처받은 채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셔. 엄마 입장에서는 고립된 인생을 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처럼 선교 일외에는 무관심한 아버지, 그때문에 평생을 우울하게, 불행하다 생각하며 사는 어머니 밑에서 같이 우울했어야 할 그녀. 성장후에라도 그냥 평온한 여인네 삶을 살았더라면 어찌보면 이런 웅장하고, 대서사시 같은 글이 안나왔을수도 있겠으나. 어찌됐든 그녀는 결혼생활에서도 행복할수 없었고, 급기야는 정신지체를 앓는 아이때문에 더 절망스러웠을수도. 그 현실에 대한 돌파구가 글쓰기가 되었을수도 있겠다 싶다. 펄 벅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다는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주독자층인 여성들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다지만, 어찌됐든 어느 작가를 좋아하고, 그를 선망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기에 그런 글귀에는 현혹되지 않는다. 그녀는 글도 글이지만, 그녀가 펼친 인권사회운동은 참으로 존경할만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혼돈된 사회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낸, 그리고 그 안에서 울고 웃고 사랑하며 좌절하며 절망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한 강인한 여성의 삶을 본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낄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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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을 좋아하나요? / 안치 민 지음, 정윤희 옮김 / 밀리언하우스
'펄벅'을 좋아하나요? 의 '펄벅'. 본명은 펄 시던스트라이커 벅
그녀의 <대지>라는 작품은 모두 한 번 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중국 농민의 대서사시로 피와 땀으로 지주가 되고,
이 책을 본 이들의 평가는 반반이 나뉜다.
파란 눈으로 중국의 민중 속에서 살았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대지에 나오는 문제점들을 무지로 몰아갔다는 혹평.
하지만 이 '펄벅을 좋아하나요?'를 읽어 본다면 그 평가는 바뀔 것이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일들을 겪어 왔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대작인 <대지>가 나왔는지 말이다. 19세기 말, 펄벅의 아버지 압솔롬은 기독교 선교 활동을 위해 아내 캐리와 함께 웨스트버지니아 힐스버러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펄~ 그녀는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잠깐을 제외하곤 중국에서 지냈던 펄 벅. 1927년 국민군이 난징을 공격했을 때 펄 벅은 가족이 몰살당할 뻔 한 위기를 겪는다. 그녀는 철저히 중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녀는 중국과 서양 사이 틈이 있는 것을 깨 닫는다. 그런 뼈아픈 자각은 동풍서풍, 대지 등 그녀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난다.
그녀가 보고 듣고 느낀, 전장 중에서 직접 겪은 것 모두 그녀의 작품에서만 녹아드는 것이 아니다. 펄벅은 실제 전쟁고아들을 위해 재단을 세우기도 했고, 7명의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
펄벅에 대해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적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잃어 본다면 펄벅의 저서에서 놓쳤던 부분들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인물이 있다는 반전! 깜짝 놀랐다. ㅎㅎ)
** 참고
= 펄벅 - 인순이 펄벅과 인순이가 무슨 연관이 있나 싶지만 알고보면 인순이와 펄벅재단은 인연이 깊단다. 어린 시절 펄벅재단을 통해 미국인 양부모와 결연을 맺어 소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 펄벅 - 김아중 = 펄벅재단 전쟁 고아와 혼혈아동을 돕기 위해 설립한 재단이다. = 한국펄벅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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