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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성공, 누군가에겐 악담 - 조르주 페렉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누군가에겐 성공, 누군가에겐 악담 - 조르주 페렉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내용보기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조르주 페렉은 <문인-알파벳의 활자들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작가에게 보통 기대하는 창작을 통해 독자와 교감하는 모습은 페렉의 희망사항이 아니었다. 창작에만 뜻이 있다는 소리다. 페렉이 가입한 문학 그룹 <울리포>(1960년 결성)의 주된 관심사도 ‘문학의 형식화’였다. 이들은 현대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을 문학에 적용
"누군가에겐 성공, 누군가에겐 악담 - 조르주 페렉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내용보기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조르주 페렉은 문인-알파벳의 활자들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작가에게 보통 기대하는 창작을 통해 독자와 교감하는 모습은 페렉의 희망사항이 아니었. 창작에만 뜻이 있다는 소리다. 페렉이 가입한 문학 그룹 울리포>(1960 결성)의 주된 관심사도 문학의 형식화였다. 이들은 현대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을 문학에 적용하려 한 실험적인 문학 창작 집단이었다. 1967년 울리포에 가입한 페렉은 동일한 방법으로 소설을 쓴 적이 없다. 이 소설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도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하다. 구두점 하나 없이 미로처럼 이어지다가 단 하나의 마침표로 끝난다. 주인공이 정말 그럴 의향이 있는지 이야기의 개연성을 따지는 건 3~4페이지만 따라가도 포기하게 된다. 과장 사무실에 이제 들어가겠지 기대하면 독자를 저버리겠다는 듯 그는 욜랑드 양의 방에 가서 과장이 오는 걸 기다리겠다거나 당신을 고용한 회사의 전체나 부분을 구성하는 모든 다른 부서들을 한 바퀴 도는시퀀스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의 실행은 회사 생활과 마찬가지로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같다. 화요일에 갈지 수요일에 갈지 목요일에 갈지 금요일에 갈지 월요일에 갈지 어떤 요일을 생각하더라도 실행될 수 없는 이유들이 끼어든다. 과장이 점심 메뉴로 먹은 달걀 요리로 식중독에 걸렸을 수도 안 걸렸을 수도 있고 혹 붉은 반점이 있다면 식중독이 아니더라도 홍역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서 옮은 잠재기 상태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지 모르고 달걀이 아니라 생선 요리를 먹었다면 생선 가시를 삼켰거나 삼키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그런 상태의 과장과 임금 인상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등 만날 수 없는 모든 가능성들이 거론된다. 내가 이 정도 얘기한 걸로도 이 책은 절대 읽지 말아야겠다고 넌더리를 낼 독자가 있을 것이다페렉의 이런 난해한 실험을 단순히 기술적인 작업으로만 보는 건 평가 절하다. 회사와 주인공을 잇는 관계 대명사절은 우리가 회사에서 느끼는 것들을 모조리 다 표현할 기세다.
1) <당신을 고용한
2) <당신의 사용자인
3) <당신을 착취하는
4) <당신을 고용한 아니 그보다 오히려 당신을 착취하는
5) <당신이 가장 뛰어나고 소중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6) <프랑스 전체에서 가장 주요한 한 가지 산업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한 기업의 전체 혹은 부분을 구성하는 모든 다른 부서들을 한 바퀴 돌고 있어도 당신에게 봉급을 주는
8) <박봉을 받으면서 당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망치고 있는
9) <당신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잘못을 범하는
10) <당신을 고용한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는
11) <당신의 시간 대부분을 버리고 있는
12) <생존 수단으로 쥐꼬리만큼만 주는
13) <당신의 유일한 전망인
14) <당신이 고작해야 불쌍한 하수인으로 일할 뿐인
15) <당신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준
16) <당신의 전자동 접합기를 사용하는
17) <당신이 소속해 있다는 데 대해 긍지를 느끼고 있는
18)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었던
19) <당신이 일주일에 45시간 동안 불안에 빠져 지내는
20) <당신 자신을 모두 불사르고 있는
베르나르 마녜의 분석에 의하면 페렉은 320개의 상이한 정의들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전부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320개의 정의를 다 썼다면 이 소설은 몇 배로 늘어났을 거고 독자와도 더 멀어졌을 거다-_-; 유능한 작가라면 이런 눈속임이 깔린 유혹적인 구성 방식에 독자가 의미나 혼란을 감지할 즈음 소설을 끝낸다. 페렉의 치밀한 구성력은 서사 중심으로 읽는 맛을 능가한다. 내가 페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쓰리게 와 닿던 건 말미에서 주인공이 정년퇴직을 18개월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별 강조 없이 제시되는 대목이었다. 주인공은 도대체 언제부터 임금 인상을 요청하고 싶었던 것일까. 3년 전부터? 10년 전부터? 20년 전부터? 아득하다. 화자는 지금으로부터 6개월이 더 지나 희망이 완전히 실망으로 바뀌어 있을 때에도 그가 과장에게 가서 임금 인상에 대해 설득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떤 희망도 없을 거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반어다. 페렉의 활자 실험으로는 성공한 소설이지만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제목 때문에 효용론적인 관심을 가진 독자, 특히나 요즘처럼 설득할 대상이 아예 없는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악담 같은 소설일 수도.

   

g******i 2017.09.25. 신고 공감 8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