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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누구나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특히나 시골에서 자랐다면 마당에 묶인 똥강아지들과 오랫동안 생활을 했을것이다. 그런 늘 우리곁에서 묵묵히 우리를 쳐다보는 강아지.. 우리가 다가가면 너무 좋아서 배를 보이기도 하고 오줌을 지리기도 하는 그들은 늘 우리의 손길과 사랑을 좆아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게 하루의 절반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자동차에 치인 자신의 친구 곁을 묵묵히 지키던 개의 동영상이 화재가 됐었던 적이 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뭉글 뭉글 올라와서 나를 울먹이게 했던 동영상이다. 그렇다. 이렇게 늘 우리 곁에서 우리만 바라보는 녀석들이지만 우리 사람보다 더 훌륭한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릴때 너무 이뻐서 키우다가 아이가 커버리면 감당하지 못해서 갖다 버리기도 하고, 시끄럽게 짖어댄다는 항의에 조용히 키우기 위해 성대수술을 해서 영영 아이의 목소리를 뺏어버리기도 한다. 어떤때는 중절 수술을 해버리기도 한다. 그 아이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그저 우리 편하고 좋자고 아이들에게 지울수 없는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것이다. 그러다가도 키우기가 질리면 이사다 뭐다 핑계를 대며 아이들을 고속도로 휴게소, 산속, 심지어 섬에 갖다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너무나 한생명에대한 무책임이다.
네 발의 천사.. 책 속에는.. 그런 우리의 무책임을 꾸짖고 그들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사람보다 더한 깊이를 가진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자신의 친구를 살피는 반려견들에 대해 적어놓고 있다.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실어놓아 더욱더 마음에 와 닿는 내용. 늘 주인이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며 매를 들고 다스리던 강아지. 못된 강아지라며 늘 매질을 하고 욕을 들어야 했던 그 개를 자신이 우연히 잠시동안 맡게 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담고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과 배려를 갖고 기다리고 이해해준다면 분명 변화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고, 진짜 나 아니면 안된다는 그런 마음도 필요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힘든 일이다. 겁이 많아서 주인이 외출만 하려면 오줌을 싸는 강아지도, 엄마가 키우게 된 강아지가 엄마의 부고를 지키고 함께 슬퍼하고,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이겨낼때도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주고 위로해주던 모습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책임은 배우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쉽게 키우고 쉽게 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이였다. 아무리 춥고 힘들고 배고파도 자신을 버린 그 자리에서 몇년을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들..
최근 남자의 자격을 통해 김국진과 그의 반려견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너무나 크게 흔들었다. 진정 누군가를.. 혹은 어떤 생명을 반려로 받아들인다면 김국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나 사랑하고 배려하는게 눈에 보이는 모습.. 늘 그런 김국진의 옆을 지키는 강아지.. 우리는 잊고 지내고 있는건 아닌지.. 그들은 늘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켜주고 있는데, 우리는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된 책이다.
어릴때 나도 강아지집에서 강아지와 자면서 강아지 한수저 나 한수저 하며 한숟가락으로 나눠 먹었다고 하는데... 이젠 가물가물하다.. 내 아이가 언젠가 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사랑과 함께 꼭 의무와 책임감도 함께 키워줘야겠다. 동물을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하는 동물을 쉽게 버리고 학대하고 괴롭힌다면.. 그 아이가 커서 과연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한번더 생각해보게 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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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네 발의 천사
우리집에도 네 발의 천사가 있다. 처음 우리집에 왔을때는 이 아이가 내게 이런 존재가 될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나는 개한테 쓰는 돈이 너무 아까웠고 왜 이 개한테 이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지 이해 할 수 조차 없었다.
털은 왜 그리도 빨리 자라는지 강아지 이발이 내머리 컷트보다 헐배 비싸고 개사료에 게다가 간식까지 가끔 자짱면도 주문해서 먹는 돈 잡아먹는... 존재 하지만 그냥 내칠 수도 없는.. 그래서 가족아닌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살기 시작했는데
이 놀라운 존재는 내맘을 바꾸기 시작했다.
귀엽고 큰 눈으로 아무런 조건없이 내게 다가왔다 물론 간식냄새를 맡고는 더 잘 오지만 간식이 없어도 내가 밖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식구 누구보다도 날 더 반겨준다
놀라운건 내가 아무도 모르게 울때면 귀신 같이 알고 내 주변을 맴돌다 내눈물을 햝아준다. 입냄새는 좀 나지만 그래도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이 아이 앞에서는 속시원하게 울 수 있다
아픈 나에게 반응해주는 존재 아무런 댓가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 머리 굴릴줄도 사람을 속일 할 줄도 모르는 존재
우리집에 있는 네 발의 천사다.
얼마전 이 아이가 아팠다. 정말 강아지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의료보험도 안되고 수술이라도 하면 아주 간단한것도 사람보다 엄청비싸다
전 같으면(그러니까 이 아이를 만나기 전) 이렇게 많은 돈이 든다며 당연히 개를 버리고 새로 사지 싶었다(애견인들이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애견샾에서 몇십만원 주면 이쁘고 귀여운 강아지를 살 수 있는데 그보다 몇배 더 들이는 수술비를 감당하면서 개를 키울 생각이 나한테는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 아이가 아픈 상황에 나는 정신줄을 놓는줄 알았다 이 아이를 잃는다면 어쪄나 생각에 나는 그 비싼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제발 수술만 잘 되길 바랄 뿐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비틀거리는 이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졸여지던지 다 회복되는 몇주동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명이라는 것은 뭘로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 아이를 통해 배웠다
나라는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몰랐던 한 인간이 네 발의 천사를 통해 나 또한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알게 된것이다
울 몽실이를 어떤개도 대신 할 수 없듯이 나도 어떤 사람으로 대신 할 수 없다고..
내가 잘났던 못났던 내가 돈을 많이 벌던 못벌던 내가 착하던 그렇지 않던 말이다.
울 몽실이는 말썽쟁이다 대단한 식탐에 시츄고 자존심도 무지 세다
하지만 난 이아이가 참 사랑 스럽다 몽실이라서...........
이 책은 우리 몽실이 같은 네 발의 천사 이야기 애견인이라면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래는 제가 울 강쥐로 만든거예요..ㅋㅋ 그냥 재미로 만든건데 살짝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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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를 너무 싫어한다. 우선 내가 비염이 심해서 털달린 동물들은 딱 질색이다. 심지어는 앙고라 티나 모피 고트도 입지 못하는 나이기에 ....게다가 반려견들의 특유의 냄새 - 이는 아무리 목욕을 자주 시켜도 어쩔 수 없는 비린내(?) - 역시 비염을 더욱 악화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제아무리 배변 훌련이 된 반려견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네들의 배설물을 치워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또, 아프기라도 할라치면 병원에 데려가 그네들보다 굵은 주사를 다리에 놓는 걸 본다는 정말 가슴 아픈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슬픈 건 반려견들의 죽음이다. 내가 이렇게 반려견들을 싫어하는 이유에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나 - 우리집엔 애완견의 범위를 뛰어넘은 변견부터 시작해서 족보있는 진돗개, 아뀌다(일본 투기견이라고 했다)까지 주로 마당에서 키우는 덩치가 나 만큼이나 큰 개들만 키웠다. 다 자란 변견은 좀 무섭기도 하지만 어릴적에는 그 어떤 애완견보다 예쁜 아이들이 바로 얘네들이다. 어릴적 회상을 해보면 내밥까지 개들에게 먹일정도로 개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꼬마였다. 그리고 대학때도 개를 키우기 위해서 기숙사를 나와 자취를 감행하기도 했던 나였다. 좁은 자취방에는 포메리안 한 마리, 요크셔 한 마리, 발바리 한 마리, 그리고 변견까지 해서 모두 네마리를 키웠다. 처음 우연히 발바리 한 마리를 학교 운동장에서 만났다. 때는 바야흐로 대동제였고 축하 연설로 지방출신의 국회의원 한 분이 오셨는데...그 분들 일행중 한 분이 어미를 떠난 발바리 한 마리를 차에서 놓쳐버렸고, 난 그녀석을 발견하였다. 아니 학교 운동장에서 배회하는 그 녀석을 주웠던 것이다. 우유를 먹이고 잠시 데리고 있었던 그 녀석은 주인이 나타났음에도 내 품을 떠나지 않으려 하여 주인도 어쩔 수없이 그 아이를 내게 준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당시 그때 나는 기숙사 생활로 그녀석을 동아리 방에 입주시켰다. 다행히 여학생 기숙사와 동아리방은 가까워서 자주 돌볼수가 있었다. 하지만 난 요 녀석 때문에 기숙사를 나와서 학교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애견사료와 애견 샴푸 등으로 발바리는 아주 기품있는 아이로 자랐다.(솔직히 발바리는 애완견보다는 변견쪽에 좀 가까운 그러니깐 애완견과 변견 그 중간 어디쯤이다^^) 수업이 있는 날은 강의실로,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날은 그 약속장소까지 - 그 곳이 커피숍이던, 호프집이던.... 그렇게 내가 가는 곳마다 해치고 다녀서 그 녀석의 이름은 '해치'였고, 해치는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동행했었다. 그런 해치가 가출을 하게 되었다. 발바리(?)라서 그런것이다라고 친구들이 얘기 해 주었는데, 아무래도 그러했던거 같다. 해치의 긴 외출이 잦아지자 난 다른 애완견을 찾게 되었다. 바로 그래서 만난 아이가 갈색털의 포메리안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또치'라 불렀다. 첫 아이 해치의 돌림을 따서 또치라 불렀고, 해치보다 더 영리하였기에 딱 맞는 닉네임이였다. 이렇게 난 두 녀석과 동거가 시작되었고, 내가 자주 가던 단골 미용실 언니가 아이를 낳으면서 요크셔 녀석을 내게 주었다. 요크셔는 '요치'란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이렇게 우린 둘에서 셋에서 넷으로 이어졌다. 여대생이 한달에 받는 용돈으로 세 녀석을 부양하기엔 벅찼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녀석들은 아낌없는 사랑을 내게 주었기에...친구랑 싸운날은 그녀석들이 친구다 생각하고 마구 욕을 퍼부었고, 기분이 좋은날은 하루종일 그녀석들과 뒹굴었고, 훈련이다라는 목적아래 두발로 벌주기를 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그렇게 그녀석들은 정말 반려견이 아니라 나의 아이들같았다. 그럴즈음, 갑작스레 떨어진 애견샴퓨. 내가 쓰는 샴푸 소량으로 목욕을 시킨 것이 화근이 되어 또치의 피부병이 생겼다. 자주 병원을 드나들었고, 또치의 병원비로 내 용돈은 거의 다 소비되었다. 그렇게 내 용돈 90%이상을 까먹던 또치의 병이 너무 악화되었고(피부병 외에 장염까지 겹쳐....) 결국 수의사는 내게 또치를 편하게 보내 줄것을 권했다. 그렇게 또치가 떠나고 자주 아프고 병약한 애완견보다는 튼튼한 변견을 키워야겠단 맘을 먹고 장이 서는 날 꼬리 끝부분만 흰색이고 온통 검은색 물감을 뒤집어 쓴듯한 변견 하나를 데려왔다. 그 아이의 먹성은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은 '먹치'였다. 먹성뿐만 아니라 멍청하기도 해서 '멍치'라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집에 온지 2주도 안되어서 교통사고로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해치도 가출을 한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한달새 갑자기 세마리나 내곁을 떠났고 남은 녀석은 요치 하나 뿐이였다. 그때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을 하게 되었고,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요치를 키울 수가 없어 요치를 다시 원래 주인 미용실 언니에게 맡기고 왔다. 그 뒤로 전혀 개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못키우는걸 넘어서서 개를 너무 무서워하기까지 한다. 반면에 신랑은 개를 너무 좋아한다. 나중에 신랑을 위해서라도 개를 한 번 키워볼까하는 맘이 약간 생겼다. 이 책을 통해서 말이다. 그동안 내가 개 키우는 걸 무서워했던 이유는 보내는 법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키웠던 개들 - 해치, 또치, 먹치, 요치 - 로부터 나는 보내는 법과 계속 잡고 있는 법을 알려주었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왜 사람들은 반려견을 원할까? 그건 아마도 되돌아오는 사랑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기르는 개에게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은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들은 채 말로 표현되지 못한 요구들, 도움이나 위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 등의 필요를 끊임없이 채운다. 우리가 최악일 때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사랑으로 옆에 있어 주려하는 것이 바로 반려견이기에~ 개를 키우기로 마음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개가 아닌 자신에게 필요한 개를 만나게 된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는 내게 필요한 개를 만나게 될 거 같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개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열쇠는 개를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보다 인간이 어느 정도 개와 닮아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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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강아지를 처음 키울때는 작고 귀여운 동물을 길러보고 싶어서 키운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덩치가 커지면 어느새 골치아파하는 경우도 있어서 몰래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그냥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강아지들을 입양하는 경우도 있어서 또다른 가정에 주인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반려견들을 보면서 동물들이 어쩌면 우리 사람들보다 더 나을때가 많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동물학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말을 못하는 동물이라고 옆에 있는 가운데서도 할말 안 할말 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니 앞으로는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어떤 개들은 주인의 말을 다 알아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주인과 한 몸이 되어 위기를 넘기는 경우도 있고 죽은 주인을 그리워 하면서 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것은 너무 대단한것 같습니다. 사람이 그리워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네발 달린 동물이 주인을 그리워 하는경우는 드물었기에 더 신기한것 같습니다. 이런 네발달린 천사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나니 내 주위에 있는 강아지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앞으로도 동물들은 우리 사람들과 늘 함께 있을거라 믿습니다. 서로 돕고 도와주면서 공생관계를 유지한다면 비록 동물이지만 가족처럼 받아들여도 충분할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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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은 사람에게서 최고를 이끌어 내는 존재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넘어서 더 무기력한 존재들을 보호하도록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혼,질병,경제적인 어려움과 같은 큰 슬픔이 닥쳤을 때에도 개는 충실한 벗이 되어준다. 개들의 헌신은 눈짓과 몸짓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 해 주려는 강렬한 열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기고 그런 개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히 변화시킨다.(p213)
그들과의 교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벅차고 행복한 일인지. 얼마나 따뜻하고 감동적인 것인지.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고 위로인지.
나에게 엄마와 동물은 눈물과 가장 가까운 단어이다. 아마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아낌없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이며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누군가는 그들과 함께 장애를 이겨냈고 누군가는 시련을 극복했으며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했던 자살 충동으로부터 보호받기도 했다. 세상과 소통의 통로가 되어 주기도 하고 암흑의 세상을 밝혀 주기도 한다.
하루치 사료, 매일의 눈인사, 가끔의 산책이 내가 그들에게 해 주는 전부인데 반해 반려견들에게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이라던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으로 한층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할 기회 부여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들에게 받기만 하는 것이 많다. 사실 산책도 그들을 위한 것인 동시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좋은 운동의 습관을 만들어 주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득 되는 것이 어디 있을까? 절대 실패 없는 절대 밑지지 않는 투자가 하고 싶다면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입양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이 기르는 개에게 적절한 관심과 사람을 주면 그 사랑은 반드시 돌아온다. 또한, 주인의 가정이 어려움을 겪으면 본능적으로 개는 가정을 어려움에서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노력한다. 개는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영리한데도 과소평가 받을 때가 있다. (p50)
인간들이 동물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들을 해하며 느낄 죄책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기심에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음식으로 즐길 수 없을 테고 그렇게 쉽게 버릴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그들과의 이별을 통해 배운다. 또한, 그 아픔을 이겨내는 법도 그들을 통해 배운다. 자신의 것이나 한순간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그들의 삶은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향해 있는 것이다. 신의 선물인 네 발의 천사 덕분에 오늘도 어김없이 어두운 마음에 불은 켜지고 따뜻한 온기가 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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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좋은 친구, 반려견! 나도 7년동안 키웠던 강아지가 있었다. 요크 종류였고, 이름이 그냥 ' 이쁜이'였다. 이름 지어주기가 고민스러울 때 엄마가 이쁜이라고 불러보니 쪼르를 달려오더란다. 그래서 그녀석 이름은 이쁜이였다. 7년동안 참 다사다난했는데, 녀석이 대소변을 제대로 못 가리게 되면서 엄마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한 채 녀석이 아무대나 실례를 하면 속상해서 야단을 치곤 했다. 그런데 요크라는 개종족은 외로움을 상당히 탄다고 한다. 그래서 외로워서 주인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으로 대소변의 실례를 한다고 말이다. 그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더 잘 키울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그 7년동안 키운 강아지가 우리집을 떠나고서야 알게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른 집에 사는 강아지와 즐겁게 지내면서 대소변도 잘 가린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은 섭섭했었다.
반려견 키우면서 참 다양한 일이 많았다고 앞서 말했지만, 어떤 동물을 키우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우리집은 웃고, 가족이 모이고 하나의 주제로 대화를 하는 집안 분위기가 생겨났다. 퇴근후의 아버지는 자식들과 함께 둘러앉아 티비를 시청하는 것 외에 그 어떤 대화도 오고가지 않았고, 무뚝뚝한 아버지는 웃음이 있는 분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강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 무릎까지 점프하며 격하게 환영을 하니, 힘들었던 고단함이 거센 바람에 밀려나듯 사라지더라고 말하셨던 아빠. 그래서 강아지는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 마지막 가족 일원이였는데, 그런 녀석을 떠나보내는 그 심정이 찢어지듯 아팠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다시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녀석의 임종까지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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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생각에서 <네발의 천사>가 출간되었다. 네발의 천사라는 제목이 딱! 알맞은 반려견의 이야기가 스물아홉편 실려있다.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이고, 따뜻하고 기적같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서 반려견을 키워본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스물아홉편의 이야기 중에서 펑펑 울면서 읽었던 글이 있다. 소제목이 ' 함께 치유되다'였는데,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어 무릎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채 절둑거리는 아들을 위해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 그런데 데려온 강아지가 하필이면 굶어 죽은 강아지 형제중 살아남은 녀석인데다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던 강아지였다. 그런 강아지를 데려다 치료해서 잘 키워보리라 마음먹은 엄마는 아이에게 선물하게 되고, 기뻐하는 아이의 마음이 읽는 나에게도 전달되어 가슴이 쿵쿵거렸다. 이름은 '스트라이커'. 그런데 데려온 다음날 스트라이커가 발작을 일으켰다. 그런 강아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천달러가량 되는 돈을 들인 후 치료했다. 그리고 관절염을 앓는 아들도 뒤이어 수술하게 되고 스트라이커가 아들과 함께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이 감동적인 7페이지의 글이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스트라이커는 재활치료하는 아들과 함께 걷고 넘어지고 또 부축해주는 친구였다. 그렇게 그 둘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아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선물한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글을 더 진실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키워보지 않은 것과 키워본 차이는 엄청나다고 본다. 그렇지만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읽게 된다면 이 해피 바이러스에 정신이 혼미해질지도 모른다. 강력한 사랑의 무기, 반려동물과 나누는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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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의 천사>에서 등장하는 29마리의 강아지들. 이들은 이 가족을 만난 동기부터 그 반려견으로 인해 생겨난 뜨겁고 행복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스물아홉의 가족이야기를 읽으면서 때론 우끼고 때론 슬펐다. 영리하다 못해 가족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아는 강아지들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반려견은 우리에게 가장 충직한 친구다. 그런 반려견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죽기전에 반드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을 해 보길 권한다. 얼마전 읽은 <멋지게 나이드는 법>이란 책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것을 말했다. 내가 살면서 해 봐야할 것들 중에서 반려동물을 만나보는 기쁨을 놓치는 일이 없었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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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어머니가 워낙 개를 좋아하셔서 집에서 개를 키우는것은 당연한 일이였고 내가 어렸을때부터 항상 개들과 함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개들과도 1~2년 이상을 함께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병들어 죽거나 도망치거나 누가 훔쳐가기 때문이였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우리의 잘못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땐 우리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서인지 개는 당연히 대문옆 개집에서 키우는 것이고 어머니와 달리 개를 싫어하시는 아버지로 인해 어린 강아지라도 집안에서 키우는건 불가능한 일이였다. 한마디로 개는 키우는 동물일뿐 가족은 아니였던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고 항상 개줄에 묶여있어 답답해하던 개들은 기회를 틈타 도망갔으며 여름철 복날쯔음을 해서 개잘수가 동네한바퀴를 돌고가면 그동네 개들이 싹 사라지곤 하였던 것이다. 그런중에 우연히도 토토라는 태어난지 한달도 안된 코카스파니엘이 우리집메 오게 되었다. 항상 잡종견만 키우던 우리집에 그당시 상당히 고가였던 집안에서 키우는 애완견이 집에들어오자 아버지느 물론이거니와 그렇게 개를 사랑하시던 어머니까지 반대를 하시였다. 집안에서 개를 키울순 없다고.. 하지만 애완견이 주는 기쁨이 너무나도 컸기에 어느덧 토토는 그렇게 우리품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항상 우리집에 오래머물지 못했던 다른 개들과는 달리 거의 5년 넘게 우리집에 샇게되었다. 다들 알다싶이 코카는 피부병이 참 많은 종이다. 우리토토또한 피부가 너무나도 약해 항상 병을 달고살았는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그런 토토를 위해 동물병원엘 데려가기 시작하셨고 극진히 보살펴 주셨다. 집안 최고의 대장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토토는 그 방자함이 날이 갈수록 가관이였지만 또 한편으론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넘치도록 가져다 주었다. 어렸을때부터 수많은 개들을 키워봤지만 나에겐 토토가 처음으로 개를 동물이 아닌 내동생 가족같은 개였던 것이다. 결국엔 3년전 심장에 이상이 생겨 큰 동물병원에 가서 수술도 시켜보았지만..우리곁을 떠나 보낼수밖에 없었다. 토토가 떠난 자리는 너무나도 커 너무도 속상해하시고 슬퍼하시던 어머니옆에 이젠 깜토라는 슈나우저 우리집 막내가 있다. 깜토는 유기견으로 주인이 버린건지 길을 잃어버린건지.. 알수는 없지만 깜토를 발견하고서 주인을 찾아주려 많이 애써보고 동물보호센타에도 연락해 보았지만 어떨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 우리가 키우게 된 개이다. 처음에는 다 큰 개를 키우게 되어 걱정도 되었지만 워낙 영리하고 훈련을 잘 받은 개여서인지 우리가족과도 잘 어울릴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예전의 토토만큼이나 오만 방자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자식들도 다 출가하고 홀로되신 어머니옆에 없어서는 안될 아주귀한 존재가 되었다. 자식들보다 더 소중하고 귀하게 된 우리 깜토가 오랫동안 어머니옆에서 함께해주길 기도해본다. 내동생 깜토야!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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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의 천사』를 읽고 이 세상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다. 각자 나름대로의 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리 인간과는 다르게 주어진 본능대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생활모습들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동물들은 나름대로 존재하면서 우리 인간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물론 해를 끼치는 동물도 있는가 하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동물들도 있다. 다만 차이점은 네 발로 걷는다는 점이다. 이 네 발의 동물 중 역시 최고으뜸은 개(犬)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동 ․ 서양 모든 지역에서 개에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모두 다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이고 반려자로서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고향이 시골이기 때문에 개를 몇 마리 씩 키웠던 때가 그립다. 마치 한 가족처럼 지냈던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생활 기반이 도시로, 주거 기반이 아파트 공동주택으로 옮기는 바람에 개를 키우기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인데도 강아지를 키우는지 심심찮게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강아지들이 바로 사람의 몫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적은 자녀들이 다 출가하녀 노인네 두 분만 거주한다든지, 한 명의 자녀에게 친구로서 강아지를 키우게 하는 등의 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개(강아지)는 우리 인간 곁에서 가장 충실하게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반려 견들이 인간들과 마음을 열고 나눈 우정과 사랑 속에서 피어나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다. 개들이 사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모습을 보면 감동 그 자체인 것이다. 지금도 매스컴을 통해서 간간히 대하고 있는 화산이나 지진 등의 피해 현장에서 인명 구조의 최 일선에서 앞장을 서고, 시각이나 청각 장애인을 돕고 보조하는 훈련을 받는 개들의 희생적인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런데 개들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 화재를 진화하면서 주인을 구한다든지, 옛 주인을 찾아서 그 먼 거리를 다시 돌아온다든지 하는 개들의 감동적인 실행과 충직함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29편의 실제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 인간과의 소통은 한이 없이 열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절망인 사람에겐 희망으로 꽃을 피우게 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작고 큰 교훈들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객지와 대도시 아파트 생활에 젖어든 내 자신도 많이 소원해진 개들과의 소통과 교감이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인간 곁에 하나의 진정한 천사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개들에게 진심어린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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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반려견들의 이야기 /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애완동물 중의 하나가 '개'다. 애완동물로 길들어져 있는 개들은 온순하고 말을 잘 듣는다. 하지만 전 주인에게 버림을 받고 사람들에 대한 힘든 상처가 있는 개들은 사람을 멀리하려 한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사랑은 개들의 상처를 치유해 줄수 있다. 사랑은 개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행복해 하도록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난폭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발의 천사에 나온 '제크'는 항상 주인에게 맞고 있었다. '제크'는 항상 기회를 엿보며 기회만 생기면 도망을 쳤고, 도망을 칠 때면 살아났다. '제크'는 새 주인의 사랑을 받고 '훌륭한 개'로 다시 태어났다. 사랑을 받기 전에는 '더럽고 못된 개'였던 '제크'는 사랑을 받자 '훌륭한 개'가 되었다.
이 일화를 보더라도 생명체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랑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도 볼 수 있다. 사랑을 받는 개들은 난폭해지지 않으며, 그 개를 볼 때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개들은 점점 난폭해지거나 우울해지며, 그 개를 볼 때 '못된 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러 일화에서는 사랑으로 달라지는 개들을 보여주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키바는 아름다운 여자 안내견이었다. 키바는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과 마음이 통했으며, 주인이 생각하는 그대로 실천을 할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이 통하는 개였다. 주인과 주인의 부인이 첫키스를 할 때 당연히 자신도 함께라며 뛰어들었으며, 안내견에서 은퇴를 하게 되고 다른 안내견이 들어 왔어도 몇일간은 힘들었지만 인정을 하고 주인이 돌아 올때면 반기며 산책을 나갔다. 키바 그녀는 주인의 '영원한 연인'이었다.
이렇듯이 주인의 충실한 안내견 역할을 하면서 한평생을 같이 살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사는 개들도 있다. 이들은 아픈 사람들의 옆에서 연인이 되주기도 하고 동반자가 되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들의 눈이 되주고 그들의 귀가 되준다. 몇몇 일화에서 안내견과 치료견들이 주인을 보살펴 주고 주인은 그들과 마음을 통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런 일화들을 보면 새삼 마음이 따뜻해 졌다.
총 29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편 한편마다 따스한 느낌과 우리가 개를 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 옆집의 개는 매일 같이 짖으며 사람을 경계한다. 그 개에게도 따끔한 매가 아닌 사람을 준다면 그 개는 애교를 부리며 사람을 보아도 경계를 안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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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장을 다 읽은 순간, 내 옆에서 코골며 자고있는 울 강쥐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날씨춥다고 미루고미뤄왔던 산책까지 다녀왔다. 영문을 알 턱 없는 울 강쥐는 갑작스러운 나의 넘치는 사랑에 놀란 눈치였지만 좋아라 했다. 추운 날씨속에서도 신나게 뛰는 강쥐를 보며 그동안 내 무심함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구절은 '인간이 강아지를 돌보는 것과 같이 강아지도 인간을 돌본다.'는 구절이다. 6년째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나는 첨 이 구절을 읽고 (저자께 죄송하게도) 콧방귀를 뀌었더랬다. 그도 그럴것이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강아지에게 손이 많이 가는지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강아지가 날 키우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울 강쥐가 내게 오게 된 이유가 문득 생각났고, 점차 마음이 바뀌었다.
15살, 한창 사춘기를 앓으면서 삐뚤어지던 나를 위해 엄마께서는 울 강쥐를 데려오셨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힘들고, 슬퍼하던 순간에 강쥐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강쥐는 내가 슬픈영화를 보면서 펑펑울면 그저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정도로 위로하지만, 내가 정말 속상한 일로 훌쩍이면 내 무릎에 올라앉아 속시원히 다 울때까지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봐주었다. 마치 내 마음을 읽는 것처럼, 내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는 듯 보였다. 강쥐의 그런 모습에서 얼마나 위안을 얻었는지 다른사람은 모른다.
강아지는 가족이다. 울 강쥐는 이제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내 동생으로(물론 사람나이로 계산하면 삼촌뻘이지만) 대접받고 있다. 밥먹을때 자기만 안준다고 삐지는 것을 보면 강쥐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 이세상에 강아지만큼 사람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존재가 있을까. 한없이 사랑스럽고 작은 강쥐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가슴한켠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인지 강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따라서 이 책이 널리 읽히는 것을 가장 바라는 이는 강아지들이지 싶다. 주인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을 더 예뻐해줄 것이 분명하니까!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