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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블랙 유머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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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책장 한켠에 올려놓고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있다가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갑자기 너무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읽게 된 책이다. 걸작 코미디라는 홍보와 또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해서 굉장히 웃길 거리는 코미디 영화를 기대했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가 틀리기 때문에 코미디로 느끼는 바가 틀리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책의 이그네이셔스의 캐릭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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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책장 한켠에 올려놓고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있다가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갑자기 너무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읽게 된 책이다. 걸작 코미디라는 홍보와 또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해서 굉장히 웃길 거리는 코미디 영화를 기대했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가 틀리기 때문에 코미디로 느끼는 바가 틀리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책의 이그네이셔스의 캐릭터가 굉장히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결코 미워할수 없는 캐릭터로 다가왔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다가도 그렇게 행동할수 밖에 없는 이그네이셔스를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걸작 코미디라고 하기 보다는 마음껏 웃지 못할 블랙 유머에 관한 책이라고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도 공부를 했지만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방에 들어 앉아서 어머니에 기대어 살고 있는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는 움직이기도 힘든 거대하고 뚱뚱한 몸짓으로 게으르고, 거만하고, 남에게 호통치기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가 쓰고 다니는 초록빛 모자와 함께 파랗고 노란 눈을 가진 그의 외모는 정말이지 좋아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연방 트림까지 해대는 모습 또한 '앗, 드러'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거리에서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있던 그에게 경찰이 체포하려 하자 이상한 논리를 펴며 시비조로 반박을 하고 그때 나타난 노인을 뒤로하고 어머니와 함께 빠져 나온다. 

어머니의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이그네이셔스가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기고 그는 '리바이 팬츠'라는 회사에 서류정리 직원으로 채용이 된다. 그곳에서 퇴직할 나이가 진작에 지난 경리보조인 미스 트릭시는 자주 넘어지고 말귀도 못알아듣는 팔십 대의 할머니로 소원이 직장에서 퇴직하는 것이다. 그 곳의 사무실 책임자 곤잘레스 또한 평생을 '리바이 팬츠'에서 근무해 온 직원이다.
 
이들과 함께 어리버리한 순찰경관 멘큐소와 술집 '기쁨의 밤'의 사장인 엘리나 리의 의심스러운 행보, 앵무새와 함께 스트립쇼를 하고 싶어하는 달린, 흑인 부랑자 존스등 다양한 인물들의 우울한  모습들이 1960년대 미국 뉴올리언스의 복잡한 상황과 함께 이 인물들의 역할과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전개된다. 1960년대의 미국 사회를 보자면 인종 및 성 차별 철폐와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을 부르짖는 운동이 끓이질 않고, 일자리를 얻지 못해 거리에 부랑자들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자궁 속 같은 그 집에서 나와. 산책을 해, 이그네이셔스. 나무도 보고 새도 봐. 생명이 온통 네 주위에서 요동치고 있다는 걸 느껴보란 말이야. 유문이 닫히는 건 유문 스스로가 죽은 생물체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마을을 열어, 이그네이셔스. 그럼 유문도 열릴거야.
                                       ~~~~~  309 페이지 중에서    

이 글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를 보니 작가 존 케네디 툴의 삶과 겹쳐보였다.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힘들어했던 작가와 이그네이셔스의 모습이 겹쳐 어쩌면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말이다. 

늘 집 밖으로 나오라고 얘기를 했던 여자 친구 니나 민코프의 편지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어쩌면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더 넓게 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민코프의 등장이 이그네이셔스에게 조금은 희망을 알려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우울한 내용들과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그러나 미워할 수도 없는 이그네이셔스의 이 한바탕 소동은 블랙 유머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1.04.05. 신고 공감 4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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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대로 좀 읊어봐, 이 멍청한 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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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대로 좀 읊어봐, 이 멍청한 것아]   세상에 진정한 천재가 나타났음은 바보들이 모조리 결탁하여 그에게 맞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 조너선 스위프트   1976년,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1969년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들이 남긴 소설 한 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어떤 고난이라도 겪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출판사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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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대로 좀 읊어봐, 이 멍청한 것아]

 

세상에 진정한 천재가 나타났음은 바보들이 모조리 결탁하여 그에게 맞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 조너선 스위프트

 

1976년,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1969년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들이 남긴 소설 한 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어떤 고난이라도 겪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던 중 뉴올리언스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던 작가 워커 퍼시에게 아들의 원고를 소개했다.

 

얼떨결에 묵직한 원고 뭉치를 건네받은 워커 퍼시는 첫 몇 페이지를 읽고 글이 형편없다면 더 읽을 필요도 없이 정중히 죽은 소설가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려 했다. 출판이 어렵겠다고 말이다. 양심에 꺼릴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작가가 직접 홍보할 수도, 후속작이 나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여타 출판사들과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이 원고의 경우는 계속 읽었다.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처음에는 그만 읽어도 될 만큼 형편없는 원고가 아니어서 낙심한 채로,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짜릿한 흥미를 느끼면서, 그러다 점차 강도를 더해가는 흥분상태로, 급기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나는 읽고 있었다. 이렇게 훌륭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눈물 나는 노력과 작품의 비범함을 알아본 퍼시의 중재로, 결국 작가의 사후 11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소설. 바로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이다. 1980년 출판된 이 작품은 코믹 소설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981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2006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25년 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 소설’에 여섯 번째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이제 이 작품은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저자 존 케네디 툴은 조용한 외톨이었다. 문학적 재능이 넘치는 천재였지만, 가난과 고독,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절망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지나치게 기대를 걸었던 어머니와의 갈등도 그를 힘들게 했다. 사람들이 분명 인정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바보들의 결탁>은 그 어느 출판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이런저런 수많은 절망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바보들의 결탁>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워커 퍼시나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김선형 교수가 모두 인정하는 바, 그 어떤 장르로도 구분이 불가능하며, 그 어떤 작품과도 다른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특징이다. 그 어떤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독히 지독한(!) 캐릭터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소동을 따라가다 보면 당신 역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나 역시 기존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정한 기준이랄까, 그것이 사정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해야만 했다. 솔직히 이렇게 불쾌하고도, 유쾌하게 읽은 소설이 있었나 싶다. 장담하건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시를 배경무대로 삼고 있다. 존 케네디 툴의 고향이다. 툴은 자신의 고향이 가진 수많은 매력과 어둠 그리고 사람들의 삶 그 자체를 지독히도 세밀히 묘사한다. 오직 뉴올리언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 문화, 방언을 생생히 전달한다. 역자가 도저히 옮길 수 없었던 뉴올리언스 특유의 사투리도 이 작품의 커다란 성과 중 하나다. 이를테면 우리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매우 성실하고 완벽하게 작품 속에 녹여낸 것과 같다고 할까. 작품을 읽으면 1960년대 뉴올리언스의 밑바닥 인생들, 그들의 치열하고도 가난한, 그리고 뜨겁고도 축축한 삶들을 느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 세상의 모든 악과 외로이 투쟁을 벌여나가는 우리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 라일리. 중세를 흠모하고 타락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장문의 고발장을 쓰며, 동시에 만년 백수로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우리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 참다못한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드디어 취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드디어 타락한 자본주의 체제와의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과연 이 대책 없는 뚱보는 이 사회를 무너뜨릴 것인가!

 

책은 분명 어처구니없는 소동과 소극으로 범벅이 된 코미디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씁쓸함과 쓸쓸함이 함께 이어진다. 가슴이 저릿한 먹먹함도 느닷없이 덮쳐온다. 물론 이는 저자 존 케네디 툴의 쓸쓸했던 짧은 생이 작품과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었던 지난 해 8월이 아닌,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의 심정으로 다시 바라본 <바보들의 결탁>은 결코 같은 느낌으로 바라볼 수 없다.

 

온갖 소동을 일으키며, 뉴올리언스를 떠들썩하게 만들고자 했지만, 결국 하나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이그네이셔스. 그와 함께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 속에서, 그들의 대화와 행동과 사건과 사건들 속에서, 나는 우습고도 슬픈 우리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슬픈 난장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벌어지는, 그렇지만 무엇 하나 마음대로 화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뜯어 고쳐야 하는지, 난감하고 어지럽기만 한 이 세상.

 

빤한 미래에 신물이 올라오려 한다. 어찌어찌 덮고 어찌어찌 달래고 어찌어찌 윽박질러, 지금의 비극도 잊혀질 것이다. 사람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일어서겠지만, 그로 인해 큰 손실을 입는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은 다시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줄 것이다. 그것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이 어찌 슬픈 난장판이 아니겠나.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모르는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에게 온갖 아부를 떨며 연명하고 있는 벼슬아치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어찌 우습고도 슬프지 않겠는가. 언론은 더 이상 썩을 수 없을 정도로 썩었고,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국민들의 남은 피 한 방울까지 짜내려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국제화, 경쟁력, 국민행복시대를 말하고 있는데, 이 어찌 우습고도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무능하고 거기에다 부패하기까지 한 권력, 그 권력의 찌꺼기를 받아먹으며 기생하는 언론, 지식인. 그리고 자식을 잃고 자신도 잃어버린 부모들.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죄인처럼 가슴 뜯으며 유가족들을 위해, 먼저 간 아이들을 위해 울고 기도하고 숨죽이고 있는 국민들.

 

지금 대한민국은 기가 막히게 우습고도 억장이 무너지게 슬픈, 개판, 난장판, 지옥이다. 이런 놀라운 시대에 <바보들의 결탁>은 어찌 보면 그저 무난한 코미디 한 편일 수도 있겠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4.04.2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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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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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천재적인 감각으로 써낸 이 소설이 출판사에서 외면 받자 어머니와의 불화와 우울증, 편집증으로 자살해 버린 작가의 이야기는 너무나 비극이지만 스페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읽으며 작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그 속에서 살짝 죄책감마저 느끼며 읽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반항하며 중세를 동경하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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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천재적인 감각으로 써낸 이 소설이 출판사에서 외면 받자 어머니와의 불화와 우울증, 편집증으로 자살해 버린 작가의 이야기는 너무나 비극이지만 스페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읽으며 작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그 속에서 살짝 죄책감마저 느끼며 읽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반항하며 중세를 동경하는 교만하고 거만한 불평불만쟁이지자 뚱땡이 이그네이셔스는 어머니를 등처먹으며 사는 한 마디로 한심한 백수다. 침대 뒤에서 뒹굴며 아래 위로 가스를 배출해대는 것이 특기이고 유문 어쩌구 하며 독설에 궤변을 늘어놓는 그가 어머니의 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등떠밀려 일자리를 찾아 사회로 나간 이 이야기는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약간의 과장된 캐릭터와 설정 속에서 시대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마음껏 드러내며 우리를 유쾌하게 만든다...이그네이셔스가 서서히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이나 어이없는 상황들, 평화당 건설...마지막 한방에도 웃었지만 그를 보조하듯 사건사고 일으켜주시는 어설픈 경찰관, 한없이 애처로운 엄마, 부랑아 존스 등 주변인물들까지 한 몫 더해 이 소설을 읽는 시종일관 낄낄댔다.

돈키호테 버금가는 독창적인 캐릭터의 향연과 우스꽝스러운 대사들이 난무한 와중에 흑인노동자들의 비애와 부랑아들의 이야기와 동성애를 다루었고 이그네이셔스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근해나가는 모습이나 얽히고 섥힌 군상들을 통해 펼쳐지는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게 만든다. 엄청난 분량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읽는 내내 괴팍하기 짝이 없는 이그네이셔스이지만 작가가 바꾸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이나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 자신이 느꼈을 강한 확신이 전해질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빨리 죽어버린 작가, 존 케네디 툴의 이름이 더욱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t*****8 2011.02.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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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천재인 척 하는 분들에게 보내는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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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유쾌 통쾌한 촌철살인의 문장들로 가득한 소설 한편을 만났다. 소설이란 것이 본래 현실보다 어느 정도 과장되기는 마련이지만 그 정도를 정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정말이지 이 작품은 이그네이셔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딱 감탄할 정도의 과장과 독특함과 유머를 포함하고 있는 대단한 소설이다.   배경은 1960년대 초 뉴올리언스. 우리의 1980년대의 상황처럼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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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유쾌 통쾌한 촌철살인의 문장들로 가득한 소설 한편을 만났다. 소설이란 것이 본래 현실보다 어느 정도 과장되기는 마련이지만 그 정도를 정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정말이지 이 작품은 이그네이셔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딱 감탄할 정도의 과장과 독특함과 유머를 포함하고 있는 대단한 소설이다.

 

배경은 1960년대 초 뉴올리언스. 우리의 1980년대의 상황처럼 1960년대의 뉴올리언스는 외모가 약간 떨어진다 싶으면 잡혀가고 없는 죄를 뒤집어쓰고 심문받던 그런 시대였다. 특히 히피나 흑인들의 경우에는 무조건 감시받고 멸시받았던 그런 시대이고 자본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공장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던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타락한 자본주의를 배척하고 중세의 엄격한 법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는 세계관을 가진 이그네이셔스. 그는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생김새와 행동과 언어도단으로 인해 경찰로부터 감시대상으로 주목받고 가는 곳마다 기피 인물로 낙인찍힌 전혀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적 주인공다운 면모와는 거리가 먼 주인공이다. 이 괴짜 주인공을 탄생시킨 작가의 기구한 일생은 우리를 더욱 이그네이셔스에 동정표를 던지게 만든다. 지금이야 소설의 형식이 다양해지고 작가의 개성이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때만해도 이야기의 줄거리와 교훈 등이 꼭 소설에 포함되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나보다. 이렇게 기발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쓰고서도 요점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해야만 했던 작가는 결국 어머니와의 불화가 겹쳐 32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그네이셔스라는 인물이 표방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는 책의 첫장에 나오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한마디가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 세상에 진정한 천재가 나타났음은 바보들이 모조리 결탁하여 그에게 맞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 계실 때 이휘호 여사가 한국어 해적판으로 이 책을 전달했다고도 하는데, 그만큼 여러면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면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읽지 않으면 그 어떤 말로도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제대로 전달받을 수 없을만큼 마음을 휘어잡는 문장들로 가득차있다. 자신을 시대착오적 존재라 말하는 이그네이셔스만큼 시대착오적이지 않는 인물이 또 있을까. 상처받은 영혼을 이렇게 희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캐릭터가 과거 어떤 소설 속에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옮긴이가 인정했듯이 1960년대 뉴올리언스 특유의 방언까지 우리말로 정확히 표현해 내는 것이 가능했다면 정말 더욱 대단한 작품이 되었을텐데 이 어쩔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감탄하게 하고 공감하게 했던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l********d 2011.0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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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바보들의 결탁 : 이그네이셔스의 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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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러운 옷차림에, 밉상에, 신학이니 기하학이니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정신세계를 가진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가 주인공인 <바보들의 결탁>은 일하기를 거부하는 이그네이셔스가 손해배상금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초록색 사냥꾼 모자, 부풀어 오른 통통한 살덩어리들, 그리고 그놈의 까칠한 ‘유문’까지!

 

정말 전무후무한 이 괴짜 캐릭터는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켜 주위 사람들의 골머리를 앓게 합니다. 밉살스런 말투와 행동을 하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괴상한 매력을 가진 이그네이셔스.

 

책 속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뉴올리언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60년대 당시 흑인인권에 관한 시대적인 상황을 잘 반영하였고,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을 내세워 사회를 비판하며,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이 돋보입니다.

 

특히 첫 장에서부터 벌어지는 사건들이 얽히고 얽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는 점이 굉장히 흥미진진합니다. 그 사건 속에서 이그네이셔스와 마주치는 각양각색의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밌고, 유쾌합니다.

 

출판 이후 1년 만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 ‘존 케네디 툴’은 <바보들의 결탁>을 출판하기 위해 애썼지만 퇴짜를 맞아 우울증과 편집증에 시달리다 서른둘의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합니다. 저자 사후 11년, 저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마침내 우리 곁에 <바보들의 결탁>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보들의 결탁>을 읽고 난 뒤에 알게 된 저자의 죽음은, 다시는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다채로운 개성을 가진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안타까운 마음을 남깁니다.

v****3 2016.08.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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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파라다이스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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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건 의지가 아니었고, 살아야 하기에 사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어제는 이렇게 하는 게 옳다더니 오늘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내 안에는 욕심이 없는데, 그걸 불어넣는 건 늘 바깥의 무언가였다. 정체모를 압박에 종종 숨막혔지만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해야 했다. 죽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하기만 하면 괜찮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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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건 의지가 아니었고, 살아야 하기에 사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어제는 이렇게 하는 게 옳다더니 오늘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내 안에는 욕심이 없는데, 그걸 불어넣는 건 늘 바깥의 무언가였다. 정체모를 압박에 종종 숨막혔지만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해야 했다. 죽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하기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반드시 무언가가 되기도 해야 했다. 그래야 대접을 받고, 대접받는 게 성공이며, 성공해야 잘 사는 거라는 걸 자연스럽게 학습했기 때문이다. 더 먼 훗날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선택받은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란 걸 알았고, 나는 바보였다는 걸 깨달았다. 주인공 이그네이셔스도 알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칭찬을, 어떻게 하면 비난을 듣는지를. 학벌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질 리 없고, 읽고 쓰는 수준에 있어 천재적 소양을 자랑하는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괴짜로 불리는 바보가 되었다. 어째서? 똑같은 세상에 사는데 어느 누가 어떤 근거로 누군가를 '바보'라 부를 수 있나. 그럼 누가 '바보'고 또 누가 '바보'가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이미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이 우스꽝스럽고 독특한 소설을 읽어내려면 이그네이셔스에게 빙의해야 했다. 코드 안 맞는 미국식 유머에 오롯이 녹아들 순 없어도 그가 어떻게 제도권에 반기를 들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하지만 세상이 어째서 바뀌지 않을 수밖에 없는지 알았기에 설령 깔깔거리게 만드는 장면을 만난다 해도 시원하게 웃어제끼지 못했다. 이그네이셔스를 포함한 '바보'들의 삶은 우리네 그리고 내 삶이기도 했기에. 내게 이 소설은 웃고 나면 허무감이, 허무감과 동시에 비애가 찾아드는, 웃음과 눈물의 궁극적 지점에 살포시 얹혀있는 작품이었다. 

 

1960년대 초, 뉴올리언스. 옮긴이에 의하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비극과 재즈의 도시로 알려졌고, 미국의 그 어떤 도시와도 다른 특유의 매혹적이면서도 불길한 문화와 분위기를 풍기는 곳. 심지어 번역으로 불가능한 사투리성 억양까지 가지고 있다는 등장인물들의 -흑인 공장노동자들과 동성애자들, 흑인 부랑자와 스트리퍼- 대화를 듣자면 남일 같지 않아 읽기를 멈추게 된다. 뻔히 알지만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들처럼 여겨져 다시 책을 미뤄놓게 되는데, 한동안 멀리하여도 그 도피로 인한 자괴감이 상실되지 않기에 가슴이 답답해져 다시 읽곤 했다. '파라다이스 핫도그' 노점상이 없었더라면 난 이 이야기를 그저 그들의 이야기라 치부하고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꿈꾸고 싶어 싸워온 내 20대에게 덜 미안할 수 있을만큼의 뻔뻔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외면하고 바보처럼 주어진 생을 사는 것이 행복이란 걸 쭉 믿을 수 있었을까. 만약 '파라다이스 핫도그' 노점상에서 이그네이셔스가 먹고 튀려 한 노릇하고 뜨끈하고 굵직한 핫도그를 하나만 먹을 수 있었다면 덜 쓸쓸했을까. 어쨌든 그 마음은 이 책을 계속 읽도록 부추겼고, 알지 못하는 시대의 뉴올리언스를 떠올리는데 큰 영감을 주었다. 여기 나오는 다양한 인간군상은 미국이기에 가능하지만 우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밑바닥 삶이라 불러도 좋을 이들이 이뤄낸 단 한 번의 결탁은 그저 작은 소동으로 마무리 되지만 희망을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작은 소동이 큰 회오리 바람이 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세상이 규정한 평균에서 좀 다르다 해서 괴짜로 규정짓는 우리네 사고방식에 반기를 든다. 아마도 평균을 규정짓는 기준이 꽤, 엄청, 대단히 많이 틀려처먹었으리란 생각. 옆집 따라 영어학원, 앞집 따라 미술학원, 뒷집 따라 대기업을 부르짖는 우리네 현실이 우리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한 평균치 기준잣대란 말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리도 없다. 우리가 말하는 '바보'는 그저 만들어놓은 현실에 규격화되지 못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수준 떨어지는 언어에 지나지 않을 지도. 뚱뚱하고 제멋대로고, 예의도 없을 뿐더러 자기 어머니께도 막 대하는 막무가내 이그네이셔스지만 미워할 수만도 없었다. 어머니를 막 대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텐데 정작 주변을 둘러보면 어머니를 정중하게 대하고 효도하는 자식이 더 괴짜같이 느껴진다. 이 무슨 뼛속 깊이 틀어진 뻔뻔한 인간들의 되도안한 입놀림이란 말인가. 이제는 조금 알겠다. 어느 시대든 세상을 바꾸어온 것은 한 명의 괴짜 아니, 소수의 바보들이었다. 물론 여기서 바보가 무기인 걸 아는 이들이 흉내내는 바보는 당연히 제외되어야 한다. 어느새 바보가 무기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 산다. 모두가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현실은 반대다. 바보 아닌 이들은 변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그렇다고 더 가질 기회도 모조리 포기한다. 갖든 갖지 않든 대놓고 달려들 수 있는 이들 역시 가진 것 없는, 잃을 것 없는 바보들이다. '바보'들의 '결탁'은 그래서 의미있는 것이다. 

 

의외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들이다. 작고 사소한 것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지속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그네이셔스처럼 변하지 않을 줄 알면서 하는 바보와 대부분의 우리처럼 바라만 보는 바보는 같은 바보지만 꽤 다를 것이다. 뻔뻔하고 극악무도한 이그네이셔스에게 점점 동화되어 가면서 느낀 생각인데, 순간순간 그래도 나보다 그가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구원도 재앙을 일으킬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능력 같다. 일을 저지르는 것도 해결할 능력 만큼이나 값진 것이다.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해야 하는데만 외치는 사람에 비하면. 비가 내리고, 지상의 먼지를 쓸어간다. 세상에 바보들이 많아지면, 바보 아닌 사람이 오히려 바보들 속에 흡수될 수 있다. 그것이 순리고 진실이다. 한계라면 우린 소설 속 이그네이셔스가 죽어도 될 수 없다는 것 뿐. 지상에 발딪고 사는 누구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 즉 체제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건 앞서 말한 자신감과 능력, 순리 같은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고 그 주인공이 맘에 든다 해서 따라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이그네이셔스의 시대는 1960년대, 배경은 미국 뉴올리언스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조금이나마 위안삼고 도피할 만한 근거가 될까, 과연.  

 

p.s. 멋진 코믹 풍자로 사회비평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으며, 자살한 아들 대신 노력한 어머니 덕으로 우여곡절 끝에 출간될 수 있었던 작품 같은데 이토록 대단한 평가라면 아쉬울 만 하다. 어째서 천재는 늘 일찍 보내고 늦게 발견되는 걸까.

s*****d 2011.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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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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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볼 때면 난 그 책에 붙여진 이름을 유심히 살핀다.바보들의 결탁에 또한 다양한 타이틀이 곁에 있어서 어떤 책일지 궁금했다.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소설, 퓰리처상, 이희호 여사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 추천한책!과연 어떠한 이야기이길래 이러한 타이틀을 지닐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럴 경우에는 읽어보는게 가장 좋은 궁금증 해결법 이그네이셔스는 대학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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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볼 때면 난 그 책에 붙여진 이름을 유심히 살핀다.
바보들의 결탁에 또한 다양한 타이틀이 곁에 있어서 어떤 책일지 궁금했다.
25년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소설, 퓰리처상, 이희호 여사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 추천한책!
과연 어떠한 이야기이길래 이러한 타이틀을 지닐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럴 경우에는 읽어보는게 가장 좋은 궁금증 해결법

이그네이셔스는 대학교까지 나와 소설을 쓰지만 실질적인 백수이다.
어머니와 외출을 했다 사고가 나는 바람에 합의금을 물어줘야 할 상황이 되면서 이그네이셔스는 어머니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돈을 벌러 나간다. 지금껏 어머니께서 항상 돌봐주고 자신 스스로가 일하기 싫어하던 이그네이셔스
그의 사회생활은 정말 엉망진창이고 수없이 많은 웃음코드를 지니고 있다.
수십년 전에 쓰여서 이미 많은 영미인들에게 읽혀진 소설이지만 이그네이셔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나의 모습도 담겨 있는것 같고 작가의 모습도 담겨져 있는거 같았다.
나 또한 이그네이셔스처럼 대학까지 나와 이젠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에가면 엄마부터 찾고,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논하는 나.
그래서 첫 장면부터 이그네이셔스의 어머니가 아들을 구하기위해 경찰에게 저항하고,
술집에서 아들을 다독이지만 그런 어머니를 이해 못하고 자신의 멋대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이게 내 모습이라는 것을 느껴서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이그네이셔스의 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행동자체가 웃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일하기 싫어서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청년들
취업을 해도 많이 받지 못하는 급여, 자신의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이그네이셔스를 보면서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즐거움을 얻었지만 작가는 그 유머속에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얇지 않은 두께여서 처음엔 어떻게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을 수 있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그네이셔스에게 빠진 순간부터는 정말 빠져들만큼 다양한 사건들로 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가장 웃기는 책으로 선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난 아마 한동안 초록색 모자를 보면 이그네이셔스를 생각하지 않을까?


d*******2 2011.01.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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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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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작가와 외국 작가의 책을 읽어보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언어 표현도 그렇고 문화적 차이로 농담이나 호응하는 부분도 조금씩 다르다. 나는 그런 미묘한 차이를 즐기는 편이라 외국 작가의 소설을 자주 접하는 편이지만 그 소설들은 결말이 명확하다. 질질 끌던 글이라도 끝맺음만큼은 확실히 한다. 나는 열린 결말보다는 끝이 확실한 글을 선호하기 때문에 보통 그런 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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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작가와 외국 작가의 책을 읽어보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언어 표현도 그렇고 문화적 차이로 농담이나 호응하는 부분도 조금씩 다르다. 나는 그런 미묘한 차이를 즐기는 편이라 외국 작가의 소설을 자주 접하는 편이지만 그 소설들은 결말이 명확하다. 질질 끌던 글이라도 끝맺음만큼은 확실히 한다. 나는 열린 결말보다는 끝이 확실한 글을 선호하기 때문에 보통 그런 책들을 읽어 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싶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이야기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그런가 했다. 사실 그런 호기심 때문에 보게 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참 황당하고 엉뚱하고 이상하고 신랄하다.

 

[바보들의 결탁]에서는 이그네이셔스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그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보면 되겠다. 일단 외양부터가 평범하지 않다. 책 표지에 나온 것처럼 거대한 몸집에 초록색 모자를 항상 쓰며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런 엉뚱한 모습과 기이한 행동 때문에 경찰에게 끌려갈 뻔하기도 한 주인공이다. 보통 주인공들이 동경의 대상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평범하거나, 특별하게 취급되는 반면 이 책의 주인공은 무조건 거부하고만 싶은 인물이다.

 

이그네이셔스의 신랄함과 내뱉어지는 말들, 그리고 그의 머리속에서 생각하는 것들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못했고 사건들이 뜨문뜨문 생기기는 하지만 시선을 확 잡아두는 것도 아닌지라 난감했다. 500 페이지가 넘는, 결코 가볍게 읽은만한 분량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도도 별로 나가지 않는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보기 시작한 책 끝까지 보자 싶어 다 읽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는 것은 별로 없다. 기묘하기까지 하다.

 

퓰리처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기대를 한 것도 있었지만 기대치에 비해 너무 미치지 못했던지라 아쉬움이 남는다.

스토리보다는 이그네이셔스가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태도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독설, 사건이 터지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일을 잘 모면하는 소소함을 보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뭔가를 얻고자 한다기보다는 장편의 코미디같은 이 이야기를 읽어보는 느낌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더라면 지겹게 느껴지기는 했더라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은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q********8 2011.01.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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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고 색다르지만 영 공감하기 어려운 서양식 유머와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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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인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원제 A Confederacy of Dunces /도마뱀/2010년 12월)>에는 “걸작 코미디”, “대단한 서사 코미디”, “지성과 세련된 기교의 고급 코미디”, “가장 웃기는 책들 중 하나”라는 요란스럽기까지 한 찬사들이 붙어있다. 찬사만 본다면 재미있고 유쾌한 책 일 텐데 읽기 전에 걱정이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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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인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원제 A Confederacy of Dunces /도마뱀/2010년 12월)>에는 “걸작 코미디”, “대단한 서사 코미디”, “지성과 세련된 기교의 고급 코미디”, “가장 웃기는 책들 중 하나”라는 요란스럽기까지 한 찬사들이 붙어있다. 찬사만 본다면 재미있고 유쾌한 책 일 텐데 읽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해외에서 유명하다는 코미디물- 책, 드라마, 영화 장르를 불문하고 -을 소문 때문에 접해봤지만 당최 그들의 농담과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해 실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기발한 착상과 유머감각으로 매니아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러스 애덤스 저)>도 허무개그 같은 영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해 결국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었고, 가끔 빅 히트한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들도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 공감하기가 영 난감하기만 했다. 그나마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면 어린 시절 즐겨 본 미국 TV 시트콤인 <코스비 가족(The Cosby Show)> 정도였을 뿐이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읽기 시작한 560 여 쪽의 이 책, 결론적으로는 역시나 내 우려가 맞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참 난감한 책읽기이었다.

 

책 표지를 보면 빨간색 외투를 입고 초록색 목도리를 걸치고 있는, 그리고 초록색 사냥 모자와 그 위에 새 한 마리가 올라가 있는 - 처음에는 새 인형이 장식되어 있는 독특한 모자인 줄 알았다. 책 말미에 주인공이 펼친 일대 난장판에서 앵무새가 주인공 귀를 무는 장면을 보고서야 알았다 -만화풍의 한 남자가 그려있다. 뚱뚱한 몸집에 짙은 콧수염이 마치 “슈퍼 마리오”를 연상시키는 이 남자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이다. 우스꽝스러운 표지 그림만 보면 참 재미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표지를 펼쳐보면 제일 먼저 “서문”이 나오는 데, 특이하게 작가가 쓴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출간한 “워터 퍼시”가 쓴 글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데, 즉 자신의 첫 작품에 확신이 있었지만 출판사마다 퇴짜를 맞고, 건강악화에 우울증, 어머니와의 불화가 겹치면서 32세의 나이에 자살한 작가, 결국 아들이 죽은 후 어머니가 아들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들을 전전하다가 남부문학의 대가라는 “워커 퍼시”를 만나면서 사후 11년 만에 작품이 출간되고, 이듬해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단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출간 사연을 다시 읽어 보니 엉뚱한 주인공 이그네이셔스가 바로 작가 자신, 즉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는 우울증과 편집증으로 끝마쳤지만 이그네이셔스는 자살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를, 뻔뻔함과 황당함으로 백세를 누리고도 남겠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의 이력을 살펴보자. 표지 그림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외형적으로는 뚱뚱한 거구에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한 삼십 세 청년이다.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록 잠시지만 강사로 대학 교단에도 섰었으며, 매일같이 현대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장문의 글을 쓸 정도로 “유식”한 인텔리라고 할 수 있는 데 이 친구, 옮긴이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엉뚱한 청년이다. 직장이라고는 대학 교단과 도서관 사서로 잠깐 일했을 뿐 버텨내지 못하고 집에서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백수인 주제에 툭하면 큰소리치고 악기를 연주해서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고, 길에서 불신 검문하는 경찰과는 한바탕 댓거리를 하기도 한다. 종종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문(幽門) -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 부분이라는데 여기가 열려 있으면 십이지장액이 위로 역류하여 속이 쓰리고 종종 구토를 하게 된다고 한다 - 이 열리는 통에 항상 신경이 유문에 쏠려 있다. 이 팔자 좋은 청년이 어느날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를 내서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되는 불운을 만나는 바람에 취업 전선에 나서게 된다. 요행히 유행 지난 바지를 만드는 회사인 “라일리 팬츠”에 취직하지만 순진한 노동자들을 선동해 파업 - 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 을 일으켰다가 짤려 버리고, 핫도그 노점상으로 나섰다가 팔라는 핫도그를 죄 먹어버리지 않나 동성애자들의 정치적 권익을 위해 동성애자 정당 “평화당” 건설을 주도하기도 하는 등 엉뚱하고 기괴한 소동을 연이어 벌인다. 결국 정신병원에 넣어 버리려는 어머니의 음모(?)에 맞서 자신의 전 애인이자 역시나 데모꾼인 “머나”에 의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기고 탈출하게 된다. 주인공 외에도 참 많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정상적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엉뚱한 인물들 일색이다. 결국 이 책은 1960년대 60년대 뉴올리언스에서 벌이는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어우러져 벌이는 일대 소동극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그네이셔스가 벌이는 각종 소동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책 마지막 장을 덮을 정도로 나름 재미와 몰입도가 있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소동들이 앞에서 언급한 세련되거나 지적인, 또는 가장 웃긴다는 찬사들에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몇몇 장면에서는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어이없어 지은 헛웃음들이라고 평가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또한 이그네이셔스가 일기처럼 써대는 장문의 글들도 현대 문명에 대한 냉소와 비판이라기보다는 머리에 헛된 망상만 가득 찬 한남자의 넋두리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호평(好評)이 여러 편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는 이 책의 텍스트만 읽었을 뿐 텍스트 행간의 속 뜻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도 있겠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다를 수 도 있겠지만.

 

 참 독특하고 색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도대체 공감할 수 없는, 나에게는 난감하기만 했던 이 책, 결국 서양식 유머와 풍자가 나에게는 이해불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a*****7 2011.02.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대보다 큰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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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서평들이 너무 극찬을 하고 있고 퓰리처상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에 책을 골랐는데, 20페이지도 못가 그냥 닫아버렸다.   사사건건 트집잡고 말꼬리 잡는 주인공의 대화가 너무 피곤하게 느껴져서.. 소설책은 좀 말랑말랑한 감이 있어야할텐데 그런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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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서평들이 너무 극찬을 하고 있고 퓰리처상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에 책을 골랐는데, 20페이지도 못가 그냥 닫아버렸다.

 

사사건건 트집잡고 말꼬리 잡는 주인공의 대화가 너무 피곤하게 느껴져서..

소설책은 좀 말랑말랑한 감이 있어야할텐데

그런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인가.. @.@

s******8 2011.02.0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