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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란 신세계가 미 국방부의 좁은 영토를 떠나 전 지구인의 놀이터, 일터, 배움터로 다가왔을 시점 이미 "더 이상 암기형 지식은 필요없다"는 진단이 많은 전문가들에게서 나오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르고 사람들의 손 안에 슈퍼컴퓨터(<위대한 해체>의 저자 스티브 사마티노가 "스마트폰"을 가리키 한 말) 하나씩이 쥐어진 지금, 어디서나 수시로 참조할 수 있는 지식의 단편들을 두고 이제는 무엇을 창조해야 할 지가 고민이 되는 국면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리 좋은 도구가 주어졌다 해도,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그자리에서 답이 척 나올 만큼 머리에 굳은 자리를 못 잡은 지식이라면 결국 다른 창조 과정의 소재로 쓰이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결국 아무리 창의성이 강조되는 환경에서라도 기본적인 암기가 선행되지 않으면, 창의성이란 재능 역시 두 발을 디디고 설 발판이 없는 셈이겠습니다. 멍텅구리들의 마구잡이 창의성은 그저 장난일 뿐 창조의 바른 원료가 되기 힘듭니다. 저자는 "지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식이 머리의 어느 파티션에 자리를 잡고, 다른 지식과 어떤 연계를 맺으며 제3의 성과를 낼 수 있게 키우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작정 좁은 공간에 모종을 몰아 넣는 식이 아니라, 다른 작물과 효과적으로 공생할 수 있게 여유를 두고 모를 심는 게 더 좋은 방법인 이치와 같습니다. 모판은 창고가 아니고, 살아 있는 벼가 수 개월을 건강하게 여물 수 있는 학교 운동장과 같습니다. 지식과 지식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서로에게 양분을 공급하는 네트웍을 이뤄야 창조적 사고가 가능합니다. 아인슈타인 역시 물리학만 공부한 게 아니라, 당대 첨단을 걸었던 철학자 마흐의 책을 함께 읽고 나서 상대성 이론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과 물리학의 유기적, 필연적 접점을 찾은 것이 올바른 창의성의 육성 경로를 찾은 그의 성과였으며, 그저 머리만 좋다고 업적을 이룬 게 아니었죠. 창의적 사고에 몰두하는 이들은 그만의 쾌감을 깊이 느낍니다. 아인슈타인 역시 "상대성 이론이야말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생각"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저자 도야마 씨는 "마음껏 침잠해도 무방하지만 독단에 빠지지는 말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작가가 아닌 편집자의 눈으로 디자인하라"인데, 이는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라는 뜻과 통합니다. "기억을 믿지 말고 스크랩을 하라"입니다. 최근에 틀린 기억으로 지적을 받고 자료를 수정한 일이 있기에 이 지적은 정말 폐부를 찌르는 고언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불필요한 건 잊어야 새 지식의 수용이 가능하다"며 이 분야 다른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강조하는 오랜 진리를 다시 확인시킵니다. 이분만의 포인트로 꼽을 수 있는 건, "적당히 비워진 (머리의) 자리에 참된 창의성이 싹 틀 여지가 생긴다"입니다. 나만의 생각에 보편성을 더해야 가치 있는 업적으로의 다리가 놓여진다는 마지막 결론은, 자신의 위치에서 모든 걸 던져 가며 업무에 몰두해 본 사람이라야 공감, 감동할 수 있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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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와 크리에이티브를 합쳐서 코리에이티브라는 말을 미리 지어놓았다는 저자는 한국인만의 창의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처음엔 한국적 창의성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창의성이라는 것이 나라별로 다른건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어느정도 수긍이 가기는 했다. 문화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창의성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인 눈물을 흘림으로서 두뇌를 자극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아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어렸을때 부모와의 스킨십의 경우에도 최근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네들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창의성의 세박자 모델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거나 기존의 아이디어를 변형시키는 개인만 있어서는 안되며 이를 평가하고 선택하는 역할을 하는 평가자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나 요즘같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평가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이러한 평가자의 선택에 의해 평가된 산물, 즉 창의적인 결과물이 탄생하거나 빛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대표적인 예로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을 꼽고 있는데 기존의 좌우대칭이라던지 시선처리법 같은 틀에서 벗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에 500여 년 간이나 빛을 못보고 있다가 한 미술평론가의 재해석으로 인해 명작으로 다시 태어난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또 하나 재밌었던 스토리는 바로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모토롤라의 레이저폰 키패드 이야기.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에서 개발된 기술을 국내업체가 알아주지 않아 모토롤라를 통해 빛을 본 사례라는 것이다. 얇은 시계를 만드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금속키패드 기술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문전박대 했다는 것. 얼마전 한 잡지에서 가르텐비어인지 비어가르텐인지 맥주잔을 차갑게 유지해주는 냉각테이블을 개발하여 계속 맛있는 맥주를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아이디어를 실현해보려고 해도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겨우 시제품을 제작 후 결국 성공적인 체인점 운영을 하고 있다는 사례와 오버랩 되기도 했다.
지식과 창의성의 관계를 묘사한 그래프로 흥미로웠다. 때로는 많은 지식이 상상과 변화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체스 고수에게 규칙을 바꾼 후 게임을 했더니 왠만한 초보자보다도 게임을 못풀어나가더라는 연구결과가 바로 이 사실을 뒷받침 하는 것이다. 나 또는 우리의 창의지수는 3차함수를 따른다고 하면 너무 낙관적인 것일까? 스스로 슬럼프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현재 변곡점에 있겠구나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게 만드는 자기암시라고나 할까.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필요한 덕목을 문용린 교수를 빌어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그 약어가 재밌었는데 바로 '정약용책배송(소)'이었다. 정직, 약속, 용서, 책임, 배려, 소유(소유: 타인의 성과와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역량에 맞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의 앞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소유 부분만 부연설명을 써놓았어도 정확히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뭐 덕목으로서 리마인드하기엔 좋은 표현인듯.
전문적인 느낌이면서도 눈높이적인 느낌이 느껴지는, 딱딱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나저나 이 책에서 언급한 전길남 박사님 처럼 나도 뭔가 어려운 문제를 (고민끝에) 확 해결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희열을 자주 느껴보고 싶다는 (작은)소망이 찔끔 들더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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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도 창의성을 연구하는 교수(저자 최인수)가 있고, 창의성을 가르치는 교양과목이 대학에 개설돼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동안 '창의성' 또는 '창조성' 하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래서 내게 말뿐인 수사처럼 들렸음을 고백한다. 그만큼 실제 삶에서 괴리되어 온 영역이자 일부 혜택 받은 사람들이나 영재에게 해당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창의성이 점점 내게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은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성, 창의성을 키우는 문화 환경, 창의성의 발달 단계와 지능과의 관련성,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 등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람은 유연한 사고방식과 유머와 위트가 있고, 독특한 것을 좋아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목표의식이 뚜렷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누구나 닮고 싶은 자질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어디서 나온 건지 아리송하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와 교육이 말로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은연 중에 튀는 사람을 배척해 왔기 때문에 형성된 고정관념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주입식 교육, 과도한 학습 치중 환경, 서열화된 대학 입시경쟁 등은 창의적인 인재 교육과 거리가 멀다고 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창의성이 소수 특정인의 교육에 한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 과정 전반에 도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 해결 능력 등에서 창의적인 인재의 특징이 인성교육과 맞물린다면 매우 바람직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특히 창의적인 사람들이 내재적 동기에 자극 받는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학 문제는 잘 풀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기이한 현상이 내재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외재적 동기에서 교육시켜 나타나는 부작용이 아니고 무엇인가. 학교 교육이 바로 서야 우리나라 학생들의 창의성이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우리 현실에 맞는 창의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소개하는 이 책은 <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와 몇 가지 점에서 비슷하다. 즉, 일반인이 창의성 또는 창조성을 비범한 재능을 소유한 사람이 순간적인 영감을 받아 발휘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창의적인 성취가 나타나는 데는 10년 법칙이 통용된다는 점이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준다. 누구나 꾸준히 노력하면 창의적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또, 자신이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창의적으로 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은 창의성이 부족한 일반인에게 매우 고무적이다.
창의성이 무엇인지, 창조성과 어떻게 다른지,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떤 요소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또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들이 궁금한 사람과 창의적인 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 교사, 일반인이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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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는 창의성이다. 여러가지 미디어 매체나 책으로 창의성이란 단어가 매우 가까이 들린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창의성에 대해 확고한 대답은 없다고 본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나 나 같이 영상일을 하는사람에게는 필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이 보이나 누구나 가질수도, 누구나 없지도 아니한 사항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창의성에 대한 논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창의성에대한 오해와 창의성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칙센트하이머의 플로우- 저자는 이 말로 써주길를 원하신다- 를 비롯한 여러가지 방법론으로 무언가 다른 생각과 실행을 통해 창의성에 이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 10년 법칙도 포함하여- 이전에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틀에박힌 교육과 학원교육을 통해서는 이루어질수 없다고 보고 있다. 보다 대안적이고 장기적인 방향에서 다뤄야 할 문제이며 사회 공론적으로 공교육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육을 통해 발전을 이뤄야 할것이다. 창의성에 대해 확실한 가이드를 위한 책들은 많지만 확실한 논증없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우리가 창의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실행해봐야할 주제들을 들려주고 있다 |